아낙시메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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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아낙시메네스는 기원전 586/585년경에 태어난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로, 밀레토스 학파에 속한다. 그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였으며, 만물의 근원을 공기라고 주장했다. 아낙시메네스는 공기의 희박화와 응축을 통해 다양한 물질이 생성된다고 설명했으며, 우주와 기상 현상에 대한 독창적인 견해를 제시했다. 그는 밀레토스 학파의 마지막 철학자였으며, 그의 사상은 후대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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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페이론은 아낙시만드로스가 제시한 만물의 근원으로서, 규정되지 않은 무한한 실체를 의미하며, 고대 그리스 신화의 카오스와 연관되어 서양 철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개념이다. - 밀레토스 학파 - 아낙시만드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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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낙시메네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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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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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아낙시메네스 |
출생 | 기원전 586/585년경 |
출생지 | 밀레투스, 이오니아 연맹 (현재의 발라트, 디딤, 아이딘, 튀르키예) |
사망 | 기원전 526/525년경 (60세) |
사망 장소 | 밀레투스 |
철학적 정보 | |
학파 | 이오니아 학파/밀레토스 학파 |
주요 관심사 | 형이상학 자연 철학 |
주요 사상 | 공기가 아르케이다. 물질은 희박화와 응축을 통해 변화한다. |
2. 생애
아낙시메네스는 기원전 586/585년경에 태어났다. 아낙시메네스의 생애에 대한 정보는 제한적이며, 주로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와 테오프라스토스의 기록에서 비롯된다. 테오프라스토스에 따르면 아낙시메네스는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의 동료였던 에우리스트라투스의 아들이었고, 밀레토스에서 살았다. 아낙시메네스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가 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아낙시메네스는 호메로스 서사시,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교의 가르침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그의 철학에 고전 원소의 묘사를 통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그와 다른 밀레토스 철학자들은 부유하여 철학에 전념할 수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아낙시메네스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와 테오프라스토스 등 후대 철학자들의 기록을 통해 알려져 있다.[1] 이들에 따르면, 밀레토스 학파의 철학자들은 만물의 근본적인 기반인 ''아르케(arche)'' (ἀρχή|시작, 기원grc)를 찾으려 한 물질적 일원론자들이었다.[2] 아낙시메네스는 ''아르케''가 공기라고 주장했으며, 공기의 밀도 변화, 즉 희박화와 응축 과정을 통해 불, 바람, 구름, 물, 흙, 돌 등 다양한 물질이 생성된다고 보았다. 이는 물 순환과 같은 자연 현상에 대한 관찰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아낙시메네스의 스승으로 보이는 아낙시만드로스는 모든 것의 기원이 무한한 존재인 아페이론이라고 주장한 밀레토스 철학자였다. 아낙시메네스와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와 함께 세 명의 밀레토스 철학자였다. 이들은 모두 이오니아 학파의 첫 번째 철학자였던 밀레토스 출신의 철학자들이었다. 신의 설명 없이 세상의 물질적 기원에 대한 이론을 발전시킨 최초의 인물로 알려져 서양 세계의 첫 번째 철학자로 여겨진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에 따르면 아낙시메네스는 대략 기원전 585년부터 524년까지 살았다. 아낙시메네스는 단 한 권의 책을 썼는데, 이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책 ''자연에 관하여''에 대한 응답이었을 수 있다. 테오프라스토스는 이를 "간결하고 경제적인 이오니아 스타일"이라고 묘사했다. 아낙시메네스는 기원전 526/525년경에 사망했다.
3. 철학
아낙시메네스는 온도와 밀도의 관계에 대한 초기 개념을 제시했는데, 팽창된 공기는 더 얇고 뜨거우며, 압축된 공기는 더 두껍고 차갑다고 믿었다. 이는 현대 과학과는 다르지만, 입김을 통해 온도를 확인하는 등 당시의 관찰에 기반한 것이었다.
또한,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를 ''피시스(physis)'' (자연 세계)의 근원으로 보았으며, ''테오(theo)'' (신성한 세계)는 배제했다. 공기를 신성한 것으로 여기기는 했지만, 신이나 의인화와 연결 짓지는 않았다. 그는 공기를 살아있는 시스템을 움직이는 제1원인으로 제시했고, 영혼 역시 공기와 같은 원리로 작동한다고 보았다.
아낙시메네스는 공기의 움직임에 의한 순환적 변화 이론을 제시했는데, 이는 덥고 추움, 건조하고 습함과 같이 상반되는 힘들의 상호작용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그는 물질이 생성되거나 파괴되지 않고, 단지 형태만 바뀔 뿐이라고 믿었으며, 물질의 질적 특성은 양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주가 처음에는 모두 공기로 이루어져 있었고, 액체와 고체는 응축을 통해 생성되었다고 보았다. 평평한 지구가 공기 위에 떠 있다고 생각했으며, 천체는 지구에서 분리되어 불로 증발하거나 희석된 것으로 묘사했다. 태양은 흙으로 구성되었으며, 빠른 움직임으로 인해 연소한다고 생각했다.
아낙시메네스는 천둥과 번개는 구름 속 바람이 나올 때 발생하고, 지진은 땅의 건조와 습윤의 반복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무지개는 햇빛이 구름에 반사되어 나타나며, 빛과 어둠의 상호작용으로 다양한 색상이 나타난다고 보았다.
아낙시메네스의 견해는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의 견해를 조화시킨 것으로 해석된다. 공기를 '아르케'로 보는 것은 아낙시만드로스의 '아페이론'처럼 무한한 개념이면서도, 탈레스의 물처럼 정의된 물질이라는 특징을 가진다.[1] 그는 아낙시만드로스와 달리 물질 변화에 대한 경험적 설명을 제시하려 했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3. 1. 만물의 근원으로서의 공기
아낙시메네스의 철학은 후대 철학자,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와 테오프라스토스에 의해 알려졌다.[1] 그들에 따르면, 밀레토스 학파의 철학자는 모든 것의 근본적인 기반인 ''아르케(arche)'' (ἀρχή|시작, 기원grc)를 찾으려 했던 물질적인 일원론자였다.[2] 아낙시메네스는 ''아르케''가 공기라고 주장했다.
그는 공기의 징후로 여겨지는 몇 가지 기본 요소를 밀도가 낮은 것부터 높은 것 순으로 불, 공기, 바람, 구름, 물, 흙, 돌로 분류했다. 철학자들은 아낙시메네스가 물 순환에서 자연스럽게 관찰 가능한 현상, 즉 희박화와 응축 과정에 근거하여 결론을 내렸다고 보았다. 그는 각 물질이 공기의 밀도를 높이는 응축 또는 밀도를 낮추는 희박화를 통해 만들어진다고 제안했다. 아낙시메네스가 설명한 희박화 과정은 펠트 제작에 비유되기도 한다.
온도는 아낙시메네스의 철학에서 중요했으며, 그는 온도와 밀도 사이의 연관성에 대한 초기 개념을 발전시켰다. 그는 팽창된 공기는 더 얇고 뜨겁고, 압축된 공기는 더 두껍고 차갑다고 믿었다. 현대 과학은 그 반대가 사실임을 밝혀냈지만, 그는 입을 크게 벌렸을 때 숨결이 따뜻하고 입술을 통해 공기가 압축될 때는 차갑다는 사실에서 이러한 믿음을 도출했다.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를 ''아르케''로 하는 자신의 개념을 다른 질문에도 적용했다. 그는 ''피시스(physis)'' 즉 자연 세계를 믿었지, ''테오(theo)'' 즉 신성한 세계를 믿지 않았다. 아낙시메네스는 어떤 의미에서 공기를 신성한 것으로 여겼지만, 그것을 신이나 의인화와 연관시키지는 않았다. 그는 공기를 살아있는 시스템을 추진하는 제1원인으로 제시했으며, 공기 자체가 어떤 것에 의해 발생했다는 것을 나타내지 않았다.
아낙시메네스는 또한 영혼을 공기에 비유하여, 숨결에 의해 움직이고 인간이 행동하도록 하는 존재로 묘사했다. 이러한 믿음은 영혼과 물질 세계를 연결하며, 영혼과 물질 세계가 동일한 물질, 즉 공기로 만들어졌음을 시사한다. 아낙시메네스는 개별 영혼이든 온 세상이든 모든 것은 사물을 함께 유지하고 공기에 의해 인도되는 동일한 원칙에 따라 작동한다고 제안했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바람과 영혼을 의미하는 단어는 공통적인 어원을 공유했다.
아낙시메네스의 철학은 공기의 움직임에 의해 정의되는 지속적인 순환을 통한 변화 이론에 중심을 두었다. 이러한 순환은 서로 상호 작용하고 대체하는 반대 세력으로 구성되었다. 이것은 날씨와 계절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덥고 추움, 건조하고 습함, 밝음과 어둠 사이를 번갈아 가며 나타난다. 아낙시메네스는 어떤 물질도 생성되거나 파괴될 수 있다고 믿지 않았으며, 단지 한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물질의 질적 특성이 양적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모델을 제안했다.
3. 2. 우주론과 기상 현상
아낙시메네스는 우주가 처음에는 모두 공기로 이루어졌으며, 액체와 고체는 응축을 통해 공기로부터 생성되었다고 믿었다.[1] 그는 공기를 사용하여 평평한 지구와 주변 천체의 본질을 설명했다. 그는 공기로부터 응축되어 처음으로 나타난 것 중 하나인 평평한 지구를 믿었으며, 이 지구는 그 아래의 공기의 압력에 의해 떠 있다고 생각했다.[2]
아낙시메네스는 천체를 지구에서 분리된 것으로 간주했다. 아낙시메네스의 생각을 기록한 철학자들은 그가 이것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그는 천체들을 불로 증발하거나 희석된 것으로 묘사했을 수도 있다. 그는 지구, 태양, 별의 움직임을 바람에 떠다니는 나뭇잎에 비유하기도 하고, 하늘에 박힌 못에 별을 비유하기도 했다. 일부 학자들은 아낙시메네스가 행성과 별을 구별하여 두 모델을 모두 믿었을 수 있으며, 이는 그를 그렇게 한 최초의 사람이 되게 할 것이라고 제안했다.[2] 태양은 불꽃으로 묘사되지만, 아낙시메네스는 그것이 별처럼 희박한 공기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흙으로 구성되었다고 생각했다. 의사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아낙시메네스는 태양의 연소가 그 구성이 아니라 빠른 움직임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다.
아낙시메네스는 태양이 지구 아래로 내려간다는 일반적인 생각을 거부하고, 대신 지구 주위를 회전한다고 말했다. 로마의 히폴리투스는 그것을 사람의 머리 주위를 회전하는 모자에 비유했다. 이 비유가 히폴리투스가 직접 만든 것인지, 아니면 아낙시메네스의 설명의 일부였는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태양의 움직임에 대한 이 모델은 이후 철학자들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었다.
아낙시메네스는 다른 자연 현상의 원인도 설명했다. 아낙시만드로스와 마찬가지로 그는 천둥과 번개가 구름 속에 갇힌 바람이 나올 때 발생한다고 믿었다.[1] 그는 지진이 땅이 번갈아 건조하고 습해지면서 갈라지고 부풀어 오르는 주기를 겪게 되는 결과라고 주장했다. 그는 무지개에 대한 과학적 설명을 시도한 최초의 철학자였으며, 아리스토텔레스 이전까지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무지개를 구름에서 반사된 햇빛으로 묘사했으며, 다양한 색상은 빛과 어둠의 상호 작용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이론화했다.
3. 3. 밀레토스 학파 내에서의 위치
아낙시메네스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제자로 기록되어 있으며, 탈레스와 함께 밀레토스 학파 철학자 중 한 명이었다. 이들은 모두 이오니아 학파의 첫 번째 철학자들이었다.[1]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에 따르면 아낙시메네스는 대략 기원전 585년부터 524년까지 살았다.
아낙시메네스의 견해는 그의 두 전임자인 탈레스와 아낙시만드로스의 견해를 조화시킨 것으로 해석되어 왔다. 공기를 '아르케'로 보는 것은 아낙시만드로스가 '아르케'를 '아페이론'이라고 부른 추상적인 무한자로 보았던 이론과 유사하게 무한한 개념이다. 동시에 공기를 '아르케'로 보는 것은 탈레스가 '아르케'를 물로 보았던 이론과 유사하게 정의된 물질이었다.[1]
아낙시메네스의 철학은 아낙시만드로스의 철학에 기초했지만, 전통적으로 그는 몇몇 분야에서 그의 스승을 비판했다고 전해진다. 아낙시메네스는 물질이 어떻게 다른 형태로 변화하는지에 대한 경험적인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낙시메네스와 아낙시만드로스는 물리적인 것들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왜 그렇게 변화하는지에 대해 정당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유사했다. 아낙시만드로스는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정의와 응보의 비유를 사용했고,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하기 위해 신들과 신성한 존재에 직접적으로 호소했다. 아낙시메네스는 이 두 가지 생각 모두에서 아낙시만드로스와 달랐다.
4. 영향 및 평가
아낙시메네스는 밀레토스 학파의 마지막 철학자였다. 기원전 494년 페르시아의 공격으로 밀레투스가 파괴되면서, 그의 삶에 대해서는 탈레스, 아낙시만드로스 등 다른 밀레토스 학파 철학자들에 비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이들은 함께 서구 세계에서 과학의 시초가 된 인물들로 평가받는다.
고대 그리스에서 아낙시메네스의 사상은 널리 존경받았으며, 아폴로니아의 디오게네스 등 다양한 철학자들에 의해 대중화되어 그의 선배들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졌다. 그는 물질이 물리적 과정을 통해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화하는 것에 대한 설명을 제시한 최초의 철학자였으며, 묘사적인 산문으로 글을 쓴 최초의 철학자로서 과학적 글쓰기의 원형을 개발했을 수 있다.
그의 저작은 단편만이 직접 보존되어 있으며, 후대 저자들이 기록하면서 원래 텍스트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는 알 수 없다. 달의 아낙시메네스 크레이터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초기 의학은 아낙시메네스와 유사하게 공기가 생명을 제공하고 질병을 옮기므로 건강의 근본이라고 제안했다. 그의 공기 개념은 양적인 조직을 통해 모든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 및 아원자 입자와 유사한 것으로 여겨져 왔으며, 성경에서 하나님이 만들어낸 생명의 숨결과 비교되기도 한다.
그의 물리적 특성에 대한 이해는 개별적, 보편적 규모에서 적용되는 양적 차이로, 자연 과학 발전에 근본적인 아이디어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철학을 실용적인 용어로 유추하여 세상의 기능을 일반적인 활동에서 관찰할 수 있는 행동과 비교한 최초의 철학자였다. 또한 개인의 기능을 세상의 기능과 동일시하여, 인간을 정의하는 숨결을 세상을 정의하는 공기와 동일시했다. 인간 규모와 보편적 규모에서 동일한 특성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그의 믿음은 아이작 뉴턴에 의해 증명되었다.
4. 1. 후대의 해석
헬레니즘 시대에 아낙시메네스의 저작 일부가 언급되었지만, 현재 해당 문서의 기록은 존재하지 않는다.[1] 헤라클레이토스, 아낙사고라스, 아폴로니아의 디오게네스와 같은 철학자들은 모두 아낙시메네스의 저작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다.[2] 아폴로니아의 디오게네스는 아낙시메네스의 사상을 스토아주의 철학에 적용했다.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구름''에서 조롱하는 아이디어는 아낙시만드로스와 아낙시메네스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되었다. 크세노파네스와 같은 철학자들은 나중에 아낙시메네스의 우주론 모델을 채택했다. 크세노파네스의 '아르케'가 흙과 물이라는 이론은 아낙시메네스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기도 한다.플라톤은 ''파이돈''에서 사고의 원인으로서 공기의 개념을 언급했지만, 신체의 상태가 운명을 결정하지 않는다는 주장을 통해 이를 거부했다. ''티마이오스''에서 플라톤은 돌에서 불까지 물질의 일곱 가지 상태에 대한 아낙시메네스의 이론을 호의적으로 언급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낙시메네스의 사상에 비판적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저서 ''형이상학''에서 아낙시메네스와 그의 선배들을 모든 것이 단일 물질로 구성되어 있다고 믿는 일원론자로 특징지었다. 이러한 묘사는 철학에서 널리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실천한 사람들은 아낙시메네스를 자연주의의 창시자로 간주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 테오프라스토스는 밀레토스 학파 철학자들과 다른 이오니아 학파의 교의학을 이어갔다. 그는 아낙시메네스를 자연 철학자로 묘사했다. 아낙시메네스의 저작을 분석한 다른 고대 철학자로는 심플리키우스, 아이티우스, 히폴리토스, 플루타르코스가 있다.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은 아낙시메네스가 자연 철학의 사상을 의식 철학으로 옮긴 최초의 철학자라고 말했다.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아낙시메네스의 철학이 과학적 이해에 지장을 초래했다고 말했는데, 이는 분석을 물리적 속성 자체에서 벗어나게 했기 때문이다. 칼 포퍼는 아낙시메네스와 아낙시만드로스가 합리주의 비판 철학을 발전시켰고, 스승에 대한 비판을 허용했으며, 이는 르네상스까지 부활하지 않았다고 제안했다.
참조
[1]
서적
[2]
서적
すごい物理学講義
河出文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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