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학
1. 개요
안영학은 일본 출신의 재일 조선인 3세로, 미드필더로 활약한 축구 선수이다. 2002년 알비렉스 니가타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J리그, K리그, J2리그 등에서 활동했다. 북한 국가대표팀 선수로 2010년 FIFA 월드컵 본선에 출전했으며, 2017년 은퇴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본명 | 안영학 |
|---|---|
| 출생일 | 1978년 10월 25일 |
| 출생지 | 일본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 |
| 신장 | 1.82m |
| 포지션 | 수비형 미드필더 |
| 유소년 클럽 | 도쿄 조선 제3초급학교 도쿄 조선중고급학교 릿쇼 대학 |
| 클럽 | 알비렉스 니가타 (2002-2004) 나고야 그램퍼스 (2005) 부산 아이파크 (2006-2007)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8-2009) 오미야 아르디자 (2010) 가시와 레이솔 (2011-2012) 요코하마 FC (2014-2017) |
|---|---|
| 출장 및 득점 | 알비렉스 니가타: 94경기 7골 나고야 그램퍼스: 21경기 0골 부산 아이파크: 59경기 5골 수원 삼성 블루윙즈: 18경기 2골 오미야 아르디자: 17경기 0골 가시와 레이솔: 8경기 0골 요코하마 FC: 34경기 3골 |
| 통산 출장 및 득점 | 251경기 17골 |
| 국가대표팀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2002-2012) 재일 조선인 (2018) |
|---|---|
| 출장 및 득점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40경기 3골 재일 조선인: 1경기 0골 |
| 감독팀 | 재일 조선인 (2018) |
|---|
-
K리그1의 북한인 축구 선수 -
량규사
량규사는 재일 조선인으로 일본과 대한민국 프로 축구 선수,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로 활동했으며, K리그 최초의 북한 국적 선수 기록을 세웠고, 은퇴 후 파지아노 오카야마 FC에서 지도자 경력을 쌓았다. -
대한민국에 거주한 북한인 -
문기남
문기남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출신으로 선수 시절 축구 국가대표팀 공격수로 활약했고 은퇴 후에는 여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팀 감독을 역임했으며, 2003년 대한민국으로 귀순 후 울산대학교 축구팀 감독을 맡았다. -
대한민국에 거주한 북한인 -
리영직
재일교포 3세인 리영직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축구 선수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J리그를 거쳐 2024년 K리그2 FC 안양에 입단했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U-23 대표팀으로 아시안 게임 은메달을, A대표팀으로 AFC 아시안컵에 참가했다. -
구라시키시 출신 -
호시노 센이치
호시노 센이치는 일본 프로 야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주니치 드래건스 에이스 투수, 주니치·한신·라쿠텐 감독을 역임하며 각 팀을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고, 특히 라쿠텐에서는 창단 첫 일본 시리즈 우승을 달성하며 '요미우리 킬러'라는 별명과 함께 투지와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 스타일로 사랑받았다. -
구라시키시 출신 -
오모토 마키코
오모토 마키코는 일본의 여성 성우이자 내레이터로, 애니메이션 《별의 커비》의 커비 역과 《짱구는 못말려》의 하토가야 밋치 역 등으로 알려져 있으며, 1/f 요동 파장의 목소리를 낼 수 있고 브라이들 사업 참여 및 카페 프로듀싱 등 다방면에서 활동한다.
2. 선수 경력
릿쇼 대학 졸업 후 2002년 알비렉스 니가타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니가타에서 J1리그 승격에 기여한 뒤 2005년 나고야 그램퍼스로 이적했다. 2006년에는 대한민국 K리그1의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하여 조선적 선수로서 K리그 무대를 밟았으며, 이후 2008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팀을 옮겼다. 수원에서는 출전 기회가 많지 않았으나 팀의 리그 우승을 경험했다.
2010년 FIFA 월드컵 출전을 위해 꾸준한 경기 출장이 가능한 팀을 찾아 2010년 오미야 아르디자로 이적하며 5년 만에 J리그로 복귀했다. 이후 2011년 가시와 레이솔, 2014년 요코하마 FC를 거치며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2017년 3월 17일,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은퇴 후인 2018년 5월에는 ConIFA 월드 풋볼컵에 출전하는 재일 조선인 축구단 '유나이티드 코리안즈 인 재팬'의 선수 겸 감독으로 참가했다. 선수 시절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나 센터백 포지션에서 뛰었다.
2.1. 유소년 시절
안영학은 일본 오카야마현 구라시키시에서 태어났으며, 5살 때 도쿄도로 이사하였다. 이름은 할아버지가 꽃뿌리(英)의 강인함을 배우라(學)는 의미로 지어주었다. 재일 조선인 3세로, 할아버지는 대한민국 전라남도 광양 출신이다.
그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계열의 조선학교인 도쿄조선제3초급학교, 도쿄조선중고급학교 중급부, 도쿄조선중고급학교 고급부를 다녔다. 도쿄 조선중고급학교 고급부 재학 중, J리그에서 "외국적 취급을 하지 않는 선수" 자격(재일 조선인 선수를 위한 특별 쿼터) 인정을 받기 위해 일본의 일반 학교 졸업 자격이 필요했기 때문에, 릿쇼 대학으로 진학하여 졸업하였다.
대학 재학 중, 1년 선배인 아라이 겐지를 지켜보던 알비렉스 니가타 스태프에게 발탁되어 2002년 알비렉스 니가타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2.2. 클럽 경력
릿쇼 대학 재학 중 스카우트되어 2002년 J2리그의 알비렉스 니가타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니가타에서 주전으로 활약하며 팀의 J1리그 승격에 기여했고, 2005년에는 나고야 그램퍼스로 이적했다.
2006년 K리그1의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하며 한국 무대에 데뷔했다. 조선적 선수로서 K리그에서 활동한 이례적인 경우였다. 부산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으나 2007년 시즌 중 부상으로 이탈하기도 했다. 2008년 안정환과의 맞트레이드를 통해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했으나, 주전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다.
2010년 FIFA 월드컵 출전을 고려하여 꾸준한 경기 출장이 가능한 팀을 찾았고, 2010년 J리그의 오미야 아르디자로 이적하며 5년 만에 일본 무대로 복귀했다. 이후 2011년 가시와 레이솔로 이적했고, 2012년 시즌 종료 후 팀을 나왔다. 2013년에는 소속팀 없이 지내다가 2014년 요코하마 FC에 입단하여 2016년 시즌까지 활약한 뒤 2017년 3월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선수 시절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나 센터백 포지션에서 뛰었다.
2.2.1. 일본 (2002-2005, 2010-2016)
2.2.2. 대한민국 (2006-2009)
2006년 K리그1의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이적을 추진하였으나 계약금에 이견을 보여 결렬되었고, 결국 1년 계약으로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하여 K리그1 무대에 진출하였다. 선수로서 조선적인 채로 K리그1에서 뛰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한 뒤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 2007년 1월에는 부산 아이파크와 1년 재계약에 합의하였다. 하지만 2007년 9월 22일 성남 일화 천마와의 경기에서 상대 수비수와 충돌하여 콩팥이 손상되는 부상을 입어 시즌을 마감하였다.
부상 복귀 직후인 2008년, 안정환과의 맞트레이드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하였다. 그러나 당시 수원 감독이었던 차범근의 구상에서 제외되어 출전 기회를 거의 잡지 못했고(리그 4경기 출전), 다른 팀으로의 이적설이 나오기도 하였다. 팀은 그 해 리그 우승을 차지했지만, 안영학 본인에게는 불만족스러운 시즌이었다. 시즌 종료 후 수원 퇴단이 발표되었으나, 차범근 감독의 만류로 2009년 시즌에도 수원에 잔류하게 되었다. 2009년에는 6월 28일 울산 현대와의 리그 13라운드 경기와 8월 1일 FC 서울과의 리그 18라운드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는 등 이전 시즌보다 출전 기회가 늘어났다(리그 14경기 2골). 하지만 여전히 주전 확보에는 어려움을 겪었고, 시즌 도중 일본 J리그의 가시와 레이솔로의 임대 이적설이 나오기도 하였다.
2.3. 국가대표 경력
2002년 9월 7일 서울에서 열린 대한민국과의 비공식 친선 경기인 '2002 남북통일축구경기'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가대표팀 데뷔를 하였다. 2004년 9월 8일 평양에서 열린 태국과의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는 A매치 첫 득점을 포함하여 2골을 기록했다.
2006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는 팀의 중원을 맡아 최종 예선 3경기에 출전했으나, 팀은 2006년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그 뒤 2006년 K리그 무대에 진출한 이후로는 한동안 국가대표팀에 선발되지 못하다가, 2008년 2월 6일 암만에서 열린 요르단과의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국가대표팀에 다시 발탁되었다. 이후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에서 팀의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1966년 FIFA 월드컵 이후 44년 만에 FIFA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는 데 공헌하였다. 2010년 FIFA 월드컵 본선 명단에도 포함되었고, 본선 무대에서는 팀의 주력 선수로 조별 리그 3경기에 모두 풀타임 출전했다. 당시 3경기 총 주행 거리는 36.22km(경기당 평균 12.07km)로, 조별 리그에 출전한 모든 선수 중 가장 긴 거리를 기록했다.
A매치 데뷔 경기인 '2002 남북통일축구경기'를 비롯하여, 대한민국과 여러 차례 경기를 치렀다. 주요 경기로는 2008년 2월 20일 중화인민공화국 충칭에서 열린 2008년 동아시아컵 2차전, 3월 26일 상하이에서 열린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2차전, 6월 20일 서울에서 열린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3차 예선 6차전, 9월 10일 상하이에서 열린 2010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2차전 등이 있다.
=== A매치 득점 기록 ===
득점 및 결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득점을 먼저 기록한다.
| # | 날짜 | 경기장 | 상대 | 점수 | 결과 | 대회 |
|---|---|---|---|---|---|---|
| 1. | 2004년 9월 8일 | 양각도경기장, 평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태국 | 1–0 | 4–1 |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 |
| 2. | 4–1 | |||||
| 3. | 2012년 12월 5일 | 홍콩 스타디움, 홍콩 | 오스트레일리아 | 1–1 | 1–1 | 2013년 EAFF 동아시안컵 예선 2라운드 |
=== 국가대표팀 출장 기록 ===
국제 A매치 42경기 3득점 (2002년-2012년)
| 연도 | 출장 | 득점 |
|---|---|---|
| 2002 | 1 | 0 |
| 2003 | 0 | 0 |
| 2004 | 2 | 2 |
| 2005 | 3 | 0 |
| 2006 | 0 | 0 |
| 2007 | 0 | 0 |
| 2008 | 12 | 0 |
| 2009 | 4 | 0 |
| 2010 | 6 | 0 |
| 2011 | 9 | 0 |
| 2012 | 5 | 1 |
| | 42 || 3 |
3. 개인 기록
(내용 없음 - 하위 섹션에서 상세 내용을 다루므로 중복 방지를 위해 생략)
3.1. 클럽 기록
2001년 J2 리그의 알비렉스 니가타에 입단하여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2004년 팀의 J1 리그 승격에 기여했다. 2005년 K리그의 FC 서울 등 복수 구단의 영입설이 있었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고, 가이모토 고지로와의 맞트레이드를 통해 나고야 그램퍼스로 이적했다.
2006년 K리그의 인천 유나이티드가 영입을 추진했으나 계약금 문제로 결렬되었고, 결국 1년 계약으로 부산 아이파크에 입단하며 K리그 무대에 데뷔했다. 부산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 2007년 1월, 1년 재계약에 성공했지만, 같은 해 9월 22일 성남 일화 천마와의 경기 도중 콩팥 부상을 당해 시즌을 조기에 마감했다.
2008년 안정환과의 맞트레이드로 수원 삼성 블루윙즈로 이적했으나, 주전 경쟁에서 밀려 많은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고 이적설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2009년 팀 잔류를 선택했고, 6월 28일 울산 현대전과 8월 1일 FC 서울전에서 득점을 기록하는 등 점차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시즌 중 가시와 레이솔 임대 이적설이 제기되기도 했다.
2010년 J1 리그의 오미야 아르디자로 이적하며 일본 무대로 복귀했고, 2011년 가시와 레이솔로 완전 이적했다. 2012년 시즌 종료 후 가시와를 떠나 2013년에는 소속팀 없이 휴식기를 가졌다. 2014년 J2 리그의 요코하마 FC에 입단하여 2016년 시즌까지 활약한 뒤 현역에서 은퇴했다.
클럽 통산 기록
| 시즌 | 클럽 | 등번호 | 리그 | 리그 | 리그컵 / J리그컵 | FA컵 / 천황배 | AFC | 합계 | ||||||
|---|---|---|---|---|---|---|---|---|---|---|---|---|---|---|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출장 | 골 | |||||
| 일본 | ||||||||||||||
| 2002 | 알비렉스 니가타 | 17 | J2 리그 | 39 | 3 | - | 2 | 2 | - | 41 | 5 | |||
| 2003 | 29 | 1 | - | 0 | 0 | - | 29 | 1 | ||||||
| 2004 | J1 리그 | 26 | 3 | 4 | 0 | 1 | 0 | - | 31 | 3 | ||||
| 2005 | 나고야 그램퍼스 | 21 | 0 | 0 | 0 | 2 | 0 | - | 23 | 0 | ||||
| 대한민국 | ||||||||||||||
| 2006 | 부산 아이파크 | 17 | K리그1 | 17 | 2 | 12 | 1 | 1 | 0 | - | 30 | 3 | ||
| 2007 | 22 | 3 | 8 | 1 | 2 | 0 | - | 32 | 4 | |||||
| 2008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4 | 0 | 5 | 0 | 1 | 0 | - | 10 | 0 | ||||
| 2009 | 14 | 2 | 0 | 0 | 3 | 0 | - | 17 | 2 | |||||
| 일본 | ||||||||||||||
| 2010 | 오미야 아르디자 | 5 | J1 리그 | 17 | 0 | 1 | 0 | 1 | 0 | - | 19 | 0 | ||
| 2011 | 가시와 레이솔 | 17 | 2 | 0 | 1 | 0 | 0 | 0 | 0 | 0 | 3 | 0 | ||
| 2012 | 6 | 0 | 1 | 0 | 1 | 0 | 2 | 0 | 10 | 0 | ||||
| 2014 | 요코하마 FC | J2 리그 | 27 | 2 | - | 0 | 0 | - | 27 | 2 | ||||
| 2015 | 7 | 1 | - | 0 | 0 | - | 7 | 1 | ||||||
| 2016 | 1 | 0 | - | 0 | 0 | - | 1 | 0 | ||||||
| 통산 | J1 리그 | 72 | 3 | 7 | 0 | 5 | 0 | 2 | 0 | 86 | 3 | |||
| 통산 | J2 리그 | 103 | 7 | - | 2 | 2 | - | 105 | 9 | |||||
| 통산 | K리그1 | 57 | 7 | 25 | 2 | 7 | 0 | - | 89 | 9 | ||||
| 클럽 통산 | 232 | 17 | 32 | 2 | 14 | 2 | 2 | 0 | 280 | 21 | ||||
기타 공식 경기
* 2012년 일본 슈퍼컵 1경기 0득점
최종 업데이트: 2016년 2월 23일
3.2. 국가대표팀 득점 기록
2004년 9월 8일 평양직할시에서 열린 태국과의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에서 A매치 첫 득점을 포함하여 2골을 기록하였다.
득점 및 결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득점을 먼저 기록한다.
| No. | 날짜 | 경기장 | 상대 | 점수 | 결과 | 대회 |
|---|---|---|---|---|---|---|
| 1. | 2004년 9월 8일 | 양각도경기장, 평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태국 | 1–0 | 4–1 |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 |
| 2. | 4–1 | |||||
| 3. | 2012년 12월 5일 | 홍콩 스타디움, 홍콩 | 호주 | 1–1 | 1–1 | 2013년 EAFF 동아시안컵 예선 |
4. 수상 내역
(내용 없음 - 하위 섹션에서 상세 내용을 다루므로 중복을 피해 생략)
4.2. 개인
2004년 일본의 한 축구 전문지에서 'J리그 전반기 베스트 11'에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 7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부터 '공훈체육인' 칭호를 받았다. 2005년 2월 9일 일본과의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 당시 국가대표팀 동료들과 함께 자신의 모교인 도쿄 조선중고급학교를 방문하기도 했다.
2006년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한 뒤 2월 28일 경남정보대학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했으며, 같은 해 4월 넷째주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주간 MVP로 선정되어 받은 부상을 부산광역시 영도구의 상리초등학교와 해운대구의 장산초등학교에 기부하기도 했다. 11월 6일에는 제44회 영화의 날 기념식에서 열린 앙드레 김 패션쇼의 메인 모델로 피날레를 장식했고, 12월 3일에는 경기도 고양시 백양중학교에서 '1일 축구교실'을 열었다. 2007년 3월 11일에는 절도 피해를 입기도 했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활약하던 2008년 12월 23일에 일본 도쿄도에서 재일동포 3세와 결혼식을 올렸다. 2009년 6월 17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김정일로부터 친서를 받기도 했으며, 같은 해 6월 23일에는 하이마트 수원시청점 개장을 기념하여 이관우, 남궁웅과 함께 특별 팬 사인회를 가졌다. 2009년 12월 2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부터 '인민체육인' 칭호를 받았다. 2010년 5월 19일 정대세, 량용기와 함께 일본 도쿄도에서 열린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환송 행사에 참석하기도 했다.
* K리그1 우승 1회 : 2008년
* 코리아컵 우승 1회 : 2009년
* 리그컵 우승 1회 : 2008년
5. 기타 활동 및 논란
2004년 일본의 한 축구 전문지에서 'J리그 전반기 베스트 11'에 선정되었으며, 같은 해 7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부터 '공훈체육인' 칭호를 받았다.
2005년 2월 9일 일본과의 2006년 FIFA 월드컵 예선 당시 국가대표팀 동료들과 함께 자신의 모교인 도쿄 조선중고급학교를 방문하였다.
2006년 부산 아이파크로 이적한 뒤 2월 28일 경남정보대학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였고, 5월 23일에는 4월 넷째 주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주간 MVP로 선정되어 받은 부상을 부산광역시 영도구의 상리초등학교와 해운대구의 장산초등학교에 기부하기도 하였다. 같은 해 11월 6일 제44회 영화의 날 기념식 앙드레 김 패션쇼의 메인 모델로 피날레를 장식하였으며, 12월 3일에는 경기도 고양시 백양중학교에서 '1일 축구교실'을 개최하였다.
2007년 3월 11일에는 절도 피해를 당하기도 하였다.
수원 삼성 블루윙즈에서 활약하던 2008년 12월 23일에 일본 도쿄도에서 재일동포 3세와 결혼식을 올렸다.
2009년 6월 17일 사우디아라비아와의 2010년 FIFA 월드컵 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친서를 받았으며, 6월 23일에는 하이마트 수원시청점 개장 기념으로 이관우, 남궁웅과 함께 특별 팬 사인회를 갖기도 하였다. 같은 해 12월 22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부터 '인민체육인' 칭호를 수여받았다.
2010년 5월 19일에는 정대세, 량용기와 함께 일본 도쿄도에서 열린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환송 행사에 참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