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런 존슨설리프
1. 개요
엘런 존슨설리프는 골라족 아버지와 크루족-독일인 혼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2006년부터 2018년까지 라이베리아의 대통령을 역임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한 경제 전문가로, 재무부 장관, 유엔 개발 계획 아프리카 담당 재정국장, 세계은행 근무 경력이 있으며, 1980년대와 1990년대 군사 정권에 반대하여 투옥 및 망명 생활을 겪었다. 2005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여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되었고, 2011년에는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대통령 재임 기간 부채 탕감, 국내 정책, 외교 정책을 추진했으며, 퇴임 후에는 여성 개발을 위한 센터를 설립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이름 | 엘런 유제니아 존슨 설리프 |
|---|---|
| 원어 이름 | Ellen Eugenia Johnson Sirleaf |
| 출생일 | 1938년 10월 29일 |
| 출생지 | 라이베리아 몬로비아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직위 | 라이베리아 대통령 |
|---|---|
| 임기 시작 | 2006년 1월 16일 |
| 임기 종료 | 2018년 1월 22일 |
| 부통령 | 조지프 보아카이 |
| 이전 대통령 | 규데 브라이언트 |
| 다음 대통령 | 조지 웨아 |
| 직위 2 | 재무부 장관 |
| 대통령 2 | 윌리엄 톨버트 |
| 임기 시작 2 | 1979년 |
| 임기 종료 2 | 1980년 4월 12일 |
| 이전 장관 | 제임스 T. 필립스 주니어 |
| 다음 장관 | 페리 줄루 |
| 대통령 3 | 에이모스 소여 |
| 임기 시작 3 | 1990년 |
| 임기 종료 3 | 1990년 |
| 이전 장관 3 | 엠마누엘 쇼 |
| 다음 장관 3 | 스티븐 바이런 타 |
| 정당 | 라이베리아 행동당 (1985–1996) 통일당 (1997–2018) 무소속 (2018–현재) |
|---|---|
| 배우자 | 제임스 설리프 (1956년 결혼, 1961년 이혼) |
| 자녀 | 4명 |
| 친척 | 레타 (조카) |
| 학력 정보 | 매디슨 비즈니스 칼리지 (준학사)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 캠퍼스 (문학사) 하버드 대학교 (공공행정학 석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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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상 내역 | 노벨 평화상 (2011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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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베리아의 노벨상 수상자 -
리마 보위
리마 보위는 라이베리아 내전 종식에 기여한 평화 운동가이자 사회복지사, 평화 구축가, 여성 권리 옹호가로서, Gbowee Peace Foundation Africa를 통해 아프리카 지역의 평화와 여성 권익 향상에 힘쓰고 2011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
미국에 거주한 라이베리아인 -
세쿠 코네
세쿠 코네는 라이베리아 출신 축구 선수로, 네덜란드에서 성장하여 AFC 아약스 유소년 팀을 거쳤으며, 여러 리그와 클럽에서 활약했고, 2015년 라이베리아 축구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A매치 데뷔 후 월드컵 및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예선에 참가했다. -
미국에 거주한 라이베리아인 -
조지프 보아카이
조지프 보아카이는 라이베리아의 정치인으로, 2006년부터 2018년까지 부통령을 역임하고 2023년 대선에서 승리하여 2024년 1월 22일 라이베리아의 제26대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
몽세라도주 출신 -
윌리엄 톨버트
윌리엄 톨버트는 라이베리아 대학교를 졸업하고 부통령을 거쳐 대통령이 되었으나, 쿠데타로 살해당하면서 아메리코-라이베리아인의 정치적 지배가 종식되었다. -
몽세라도주 출신 -
조지프 젱킨스 로버츠
조지프 젱킨스 로버츠는 라이베리아의 초대 대통령으로, 미국에서 이주하여 라이베리아 독립을 주도하고 국가의 기틀을 다졌으며 교육 발전에도 기여하여 그의 업적을 기리는 기념 시설들이 세워졌다.
2. 가계 배경 및 초기 생애
엘런 존슨설리프는 골라족 아버지와 크루족-독일인 혼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존슨 설리프의 가족은 미국인 조상이 없었음에도 아메리코 라이베리안(미국 해방 노예 출신자가 주도한 과거 라이베리아의 소수 기득권)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부모는 모두 가난한 가정 출신이었으나, 성장 과정에서 아메리코 라이베리안의 영향을 받았다.
1938년 몬로비아에서 태어나 1948년부터 1955년까지 서아프리카 대학교를 다녔다. 17세에 제임스 설리프와 결혼했으나, 남편의 학대로 인해 이혼했다.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 매디슨 비즈니스 칼리지에서 회계학 준학사 학위를,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행정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라이베리아로 귀국한 후 윌리엄 톨버트 대통령 아래에서 재무부 차관으로 임명되면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2.1. 가계 배경
엘런 존슨설리프는 골라족 아버지와 크루족-독일인 혼혈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존슨 설리프의 가족은 미국인 조상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메리코 라이베리안(미국 해방 노예 출신자가 주도한 과거 라이베리아의 소수 기득권)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 자말 존슨은 원주민 출신이었으나 아메리코 라이베리안 가정에서 자랐고, 그 성씨도 라이베리아의 제11대 대통령 힐러리 R. W. 존슨에서 따온 것으로 이후 원주민 출신으로서는 최초로 라이베리아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 역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몬로비아의 부유한 아메리코 라이베리안 가정에 입양되었다.
설리프의 아버지는 빈곤한 농촌 지역의 골라족 가문에서 태어났고, 골라족의 작은 족장 자말 카니와 그의 아내 중 한 명인 제네의 아들이었다. 그는 교육을 위해 몬로비아로 보내졌으며, 힐러리 R. W. 존슨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성을 존슨으로 바꿨다. 자말 존슨은 몬로비아에서 성장했으며, 아메리카-라이베리아인인 맥크리티 가문에서 자랐다.
설리프의 어머니 또한 그린빌에서 가난하게 태어났다. 그녀의 할머니 주아 사르위는 설리프의 어머니를 수도 몬로비아로 보냈는데, 이는 그녀의 독일인 남편(설리프의 할아버지)이 제1차 세계 대전 중 라이베리아가 독일 제국에 선전 포고를 한 후 나라를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수도에서 저명한 아메리카-라이베리아 가문 출신인 세실리아 던바가 설리프의 어머니를 입양하여 키웠다.
2.2. 초기 생애 및 교육
엘런 존슨설리프는 1938년 몬로비아에서 골라족 아버지와 크루족-독일인 혼혈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 비록 미국인 조상은 없었지만, 존슨 설리프의 가족은 아메리코 라이베리안(미국 해방 노예 출신자가 주도한 과거 라이베리아의 소수 기득권) 정체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 자말 존슨은 원주민 출신이었으나 아메리코 라이베리안 가정에서 자랐고, 그의 성씨는 라이베리아의 제11대 대통령 힐러리 R. W. 존슨에서 따온 것이었다. 이후 그는 원주민 출신으로는 최초로 라이베리아 국회의원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 역시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몬로비아의 부유한 아메리코 라이베리안 가정에 입양되었다.
1948년부터 1955년까지 서아프리카 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17세에 제임스 설리프와 결혼하여 네 아들을 낳았고, 주로 주부로 지냈다. 결혼 초기에 제임스는 농업부에서 일했고, 설리프는 자동차 수리점에서 경리 담당으로 일했다.
1961년, 설리프는 남편과 함께 교육을 계속 받기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 위스콘신주 매디슨에 있는 매디슨 비즈니스 칼리지에서 회계학 준학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라이베리아로 돌아와 제임스는 농업부에서, 설리프는 재무부에서 경력을 쌓았다. 제임스의 학대로 인해 1961년에 이혼했다.
설리프는 학사 학위를 받기 위해 다시 대학에 다녔다. 1970년, 콜로라도 대학교 볼더 경제 연구소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 1969년부터 1971년까지 하버드 케네디 스쿨에서 경제학 및 공공 정책을 공부하여 행정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3. 정치 경력
엘런 존슨설리프는 '철의 여인'이라는 별명처럼 강한 의지와 결단력을 가진 인물로,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경제 전문가이다. 1970년대 말 유엔 개발 계획의 아프리카 담당 재정국장, 세계은행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다.
1980년대 새뮤얼 도 군사정권과 1990년대 찰스 테일러 군사정권에 반대하며 투옥과 두 차례의 해외 망명을 겪는 등 민주 투사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1997년 망명에서 돌아온 뒤에는 부패와의 전쟁에 투신했고, 찰스 테일러와 대선에서 맞붙어 2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2003년에는 국가개혁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부패에 대한 과도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며 대선에 출마했다.
2005년 라이베리아 대통령 선거에서 전직 축구 선수였던 조지 웨아를 누르고 아프리카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며, 2006년 1월 16일부터 2018년 1월 22일까지 대통령직을 수행했다.
2011년에는 라이베리아의 리마 보위, 예멘의 타우왁쿨 카르만과 함께 노벨 평화상을 공동 수상했다.
3.1. 초기 정치 경력 (1970년대 ~ 1980년대)
1961년 미국으로 건너가 매디슨 비즈니스 대학에서 경영 관리학을 전공했고 콜로라도 주립 대학교에서 졸업장을, 하버드 대학교에서 국정 박사학위를 받았다. 라이베리아로 귀국하여 1979년 윌리엄 톨버트 대통령 아래에서 재정부 차관이 되면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1980년 새뮤얼 도 상사가 이끄는 군사 쿠데타로 톨버트가 살해되고, 휘그당 정권이 붕괴되자, 설리프는 케냐로 피신하였다. 1983년부터 1985년까지 나이로비에서 시티뱅크에서 근무하였다.
1985년 부통령 후보로 출마하기 위해 잭슨 도와 함께 1985년 선거에서 라이베리아 행동당 소속으로 라이베리아로 돌아왔다. 그러나 새뮤얼 도 정권을 비판하는 연설을 한 탓에 반역죄로 10년형을 선고받았다. 국제적인 석방 요구가 있은 후, 새뮤얼 도는 그녀를 사면하고 석방했다. 정부의 압력으로 인해 대통령 후보에서 제외되었고, 몬세라도 카운티의 상원 의원 자리에 출마했다.
1985년 선거에서 새뮤얼 도와 라이베리아 국민민주당이 대통령직과 양원 모두에서 압승을 거두었으나, 이 선거는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 설리프는 상원 선거에서 승리자로 선언되었지만, 선거 부정에 항의하며 의원직 수락을 거부했다.
토마스 퀴원카가 1985년 11월 12일 도 정부에 대한 쿠데타를 시도한 이후, 설리프는 11월 13일 도의 군대에 의해 다시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그녀는 상원 의원직 수락을 계속 거부했음에도 불구하고 1986년 7월에 석방되었고, 그해 말 비밀리에 미국으로 도피했다.
3.2. 1997년 대선 및 망명
1989년 제1차 라이베리아 내전이 시작될 당시, 설리프는 찰스 테일러의 새뮤얼 도 정권에 대한 반란을 지지했다. 그녀는 전쟁 자금을 모금하는 데 도움을 주었고 테일러, 톰 워유위와 함께 라이베리아 국민 애국 전선을 설립했다. 이 때문에 도 정부는 설리프에게 30년간 라이베리아 정치 참여 금지를 권고했다.
그러나 이후 설리프는 테일러의 전쟁 수행 방식과 잭슨 도와 같은 경쟁 야당 지도자들에 대한 처우에 반대했다. 1996년 서아프리카 경제 공동체(ECOWAS) 평화 유지군의 주둔으로 적대 행위가 중단되었다. 국가는 1997년 라이베리아 총선거를 실시했고, 설리프는 이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라이베리아로 돌아왔다. 그녀는 통합당의 대통령 후보로 출마하여 25%의 득표율을 기록, 75%를 득표한 찰스 테일러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선거 결과에 대한 논란과 반역 혐의를 받은 후, 설리프는 라이베리아를 떠나 아비장으로 망명했다.
3.3. 2005년 대선 승리 및 대통령 취임
2005년 라이베리아 총선에서 통일당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엘런 존슨설리프는 1차 투표에서 전 축구 선수인 조지 웨아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결선 투표에서 설리프는 59%의 득표율로 웨아(40%)를 앞섰으나, 웨아는 그 결과에 문제를 제기했다.
새로운 지도자 발표는 추가적인 선거 조사가 이루어질 때까지 연기되었다. 2005년 11월 23일, 설리프는 라이베리아 선거 승리자로 선언되었고, 아프리카 국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으로 확정되었다. 2006년 1월 16일에 열린 취임식에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 장관과 로라 부시 미국 영부인을 포함한 많은 외국 고위 인사들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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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2011년 대선 재선
2010년 1월, 설리프는 국회 합동 회의에서 연설하며 2011년 대통령 선거에서 두 번째 임기에 출마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야당 지도자들은 그가 2005년 선거 운동에서 당선되면 한 번만 임기를 수행하겠다고 한 약속을 어겼다고 지적했다. 2010년 10월 31일, 설리프는 당 전국대회에서 통합당의 대통령 후보로 재지명되었다. 같은 날, 부통령 조셉 보아이는 설리프에 의해 지명되었고, 대표단에 의해 설리프의 러닝 메이트로 확정되었다.
선거 4일 전 설리프에게 노벨 평화상이 수여된 것은 야당으로부터 비판을 받았으며, 민주변화 의회 후보 윈스턴 투브만은 이 상을 "과분한" 것이자 "우리나라 정치에 대한 정치적 간섭"이라고 칭했다. 설리프는 이 상의 시기가 우연의 일치라고 말했으며, 선거 운동 마지막 날에는 이 상에 대해 언급을 피했다.
설리프는 1차 투표에서 43.9%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다른 후보들보다 높은 득표율을 얻었지만, 결선 투표를 피하기 위해 필요한 50%에는 미치지 못했다. 투브만은 32.7%를 얻어 2위를 차지했으며, 결선 투표에서 설리프와 대결하게 되었다. 투브만은 1차 투표 결과가 조작되었다고 주장하며 결선 투표 보이콧을 요구했다. 설리프는 의혹을 부인했고, 국제 참관인들은 1차 투표가 자유롭고 공정하며 투명했다고 보고했다. 보이콧 결과로, 설리프는 2차 투표에서 90.7%를 얻어 승리했지만, 투표율은 1차 투표에 비해 크게 감소했다. 선거 후 설리프는 노벨 평화상 수상자 리마 보위가 이끄는 "국가 평화 및 화해 이니셔티브"를 창설하여 국가 분열 문제를 해결하고 "우리들을 하나로 묶는 국가적 대화"를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녀는 2012년 1월 16일 두 번째 대통령 취임 선서를 했다.
3.5. 퇴임 이후
2017년 대선에서 설리프는 헌법상 연임 제한으로 출마할 수 없었다. 조셉 보아카이 부통령이 통합당 후보로 출마했으나, 설리프는 선거 과정에서 보아카이와 대립하며 상대 후보였던 조지 웨아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아카이는 12월 결선 투표에서 패배했고, 2018년 1월 14일 통합당은 선거 기간 중 설리프의 행동을 이유로 그를 제명했다. 2018년 1월 22일, 설리프는 조지 웨아에게 대통령직을 이양하고 퇴임했다. 이후 보아카이는 2023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여 재선을 노리던 웨아를 결선 투표에서 꺾고 당선되었다.
2021년 12월, 설리프의 아들 제임스 설리프가 라이베리아 자택에서 알 수 없는 이유로 사망했다.
4. 대통령 재임 (2006-2018)
엘런 존슨설리프는 2005년 라이베리아 대통령 선거에서 전직 축구 선수였던 조지 웨아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고, 2006년 1월 16일부터 2018년 1월 22일 조지 웨아에게 대통령직을 이양할 때까지 재임했다.
대통령 취임식에는 콘돌리자 라이스 미국 국무장관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로라 부시 여사 등이 참석했다. 2011년에는 라이베리아의 리마 보위, 예멘의 타우왁쿨 카르만과 함께 노벨 평화상 공동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2011년 10월 7일, 노벨 평화상 수상 직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 1차 투표에서 43.9%를 득표, 11월 결선 투표에서 90.7%로 압승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빈곤 대책이 불충분했다는 평가도 있다.
헌법상 연임 제한으로 2017년 라이베리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고, 조셉 보아카이 부통령이 통합당 후보로 출마했다. 그러나 선거전 중 보아카이와 대립하여 조지 웨아를 지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아카이는 12월 결선 투표에서 패배했고, 2018년 1월 14일 통합당은 설리프 등의 선거전 중 행동을 이유로 제명했다. 보아카이는 2023년 대통령 선거에서 웨아를 꺾고 당선되었다.
| 설리프 1기 내각 | ||
|---|---|---|
| 직위 | 이름 | 임기 |
| 대통령 | 엘렌 존슨 설리프 | 2006–2012 |
| 부통령 | 조지프 보아이 | 2006–2012 |
| 외무부 장관 | 조지 월리스 올루뱅크 킹 아케렐레 토가 맥킨토시 | 2006–2007 2007–2010 2010–2012 |
| 재무부 장관 | 안투아네트 사예 오거스틴 크페헤 응아푸안 | 2006–2008 2008–2012 |
| 법무부 장관 겸 검찰총장 | 프랜시스 존슨-모리스 필립 A. Z. 뱅크스 크리스티아나 타 | 2006–2007 2007–2009 2009–2012 |
| 국방부 장관 | 브라우니 사마카이 | 2006–2012 |
| 내무부 장관 | 앰벌라이 존슨 해리슨 칸웨아 | 2006–2010 2010–2012 |
| 교육부 장관 | 조지프 코르토 E. 오텔로 공가 | 2006–2010 2010–2012 |
| 우편통신부 장관 | 잭슨 E. 도 제레미아 설런테 프레데릭 B. 노케 | 2006–2008 2008–2010 2010–2012 |
| 공공사업부 장관 | 윌리스 너클스 루세니 돈조 사무엘 코피 우즈 | 2006 2007–2009 2009–2012 |
| 농업부 장관 | 크리스토퍼 토 플로렌스 체노웨스 | 2006–2009 2009–2012 |
| 보건사회복지부 장관 | 월터 그웨니게일 | 2006–2012 |
| 정보문화관광부 장관 | 조니 맥클레인 로렌스 브로플 | 2006 2006–2009 |
| 기획경제부 장관 | 토가 맥킨토시 아마라 모하메드 코네 | 2006–2008 2008–2012 |
| 토지광산에너지부 장관 | 유진 섀넌 루즈벨트 제이제이 | 2006–2010 2010–2012 |
| 상공부 장관 | 올루뱅크 킹 아케렐레 프랜시스 존슨-모리스 미아타 베이솔로우 | 2006–2007 2007–2008 2008–2012 |
| 젠더아동사회보호부 장관 | 바바 가이플로 | 2006–2012 |
| 노동부 장관 | 사무엘 코피 우즈 타이원 공글로 바바 가이플로 | 2006–2009 2009–2010 2010–2012 |
| 청소년체육부 장관 | 제임세타 하워드 울로콜리에 에트모니아 타페 | 2006–2007 2007–2012 |
| 교통부 장관 | 제레미아 설런테 잭슨 E. 도 알폰소 가예 윌러드 러셀 | 2006–2008 2008–2009 2009–2010 2010–2012 |
| 대통령실 국무 장관 | 모리스 듀컬리 윌리스 너클스 에드워드 B. 맥클레인 주니어 | 2006 2006–2007 2007–2012 |
| 설리프 2기 내각 | ||
|---|---|---|
| 직책 | 이름 | 임기 |
| 대통령 | 엘렌 존슨 설리프 | 2012–2018 |
| 부통령 | 조지프 보아카이 | 2012–2018 |
| 외무부 장관 | 어거스틴 퀘헤 응아푸안 마존 카마라 | 2012–2015 2015–2018 |
| 재무부 장관 | 아마라 모하메드 코네 보이마 카마라 | 2012–2016 2016–2018 |
| 법무부 장관 겸 법무부 장관 | 크리스티아나 타 베네딕트 F. 산노 프레데릭 체루 | 2012–2014 2014–2016 2016–2018 |
| 국방부 장관 | 브라우니 사무카이 | 2012–2018 |
| 내무부 장관 | 블라모 넬슨 모리스 듀컬리 엔리케 토크파 | 2012–2013 2013–2015 2015–2018 |
| 교육부 장관 | 에트모니아 데이비드 타르페 조지 워너 | 2012–2015 2015–2018 |
| 우정통신부 장관 | 프레데릭 B. 노케 | 2012–2018 |
| 공공사업부 장관 | 사무엘 코피 우즈 안토아네트 위크스 기드 무어 | 2012–2013 2013–2014 2014–2018 |
| 농업부 장관 | 플로렌스 체노웨스 모세스 지나 | 2012–2014 2014–2018 |
| 보건사회복지부 장관 | 월터 그웨니게일 버니스 단 | 2012–2015 2015–2018 |
| 정보, 문화관광부 장관 | 루이스 브라운 레니 유진 나가베 | 2012–2016 2016–2018 |
| 토지광물에너지부 장관 | 패트릭 센돌로 | 2002–2018 |
| 상공부 장관 | 미아타 베이소로 악셀 아디 | 2012–2013 2013–2018 |
| 젠더, 아동 및 사회 보호부 장관 | 줄리아 던컨-캐슬 | 2012–2018 |
| 노동부 장관 | 주아 로슨 네토 Z. 리게 | 2012–2014 2014–2018 |
| 청소년체육부 장관 | 토르놀라 바필라 레니 유진 나가베 사 N'토 | 2012–2013 2013–2016 2016–2018 |
| 교통부 장관 | 레니 유진 나가베 안젤라 카셀 부시 | 2012–2013 2013–2018 |
| 대통령실 국무장관 | 에드워드 B. 맥클레인 주니어 | 2012–2016 |
4.1. 국내 정책
엘런 존슨설리프는 대통령 취임 후 국민 화합을 위해 야당 정치인들을 여러 각료로 임명했을 뿐만 아니라, 안토아네트 사이에 재무부 장관 (후의 IMF 아프리카 국장)과 같은 유능한 여성 각료도 여럿 기용했다. 부패를 절대 용납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실행하기 위해 제도를 정비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자신의 형제가 부패 의혹으로 각료에서 사임하는 등 불상사도 있어 부패를 완전히 근절하는 것은 어려운 현실이었다. 국가의 해외 채무 49억 미국 달러(4.9)를 감축하기 위해 노력한 결과, 채무 부담이 큰 빈곤 국가로서의 채무 감축이 국제 사회에 인정받았다. 또한, 내전에 관련된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설치했으나, 과거 찰스 테일러와의 관계 때문에 그녀 자신도 보고서에 엄중하게 지목되는 결과를 낳았다.
2006년 7월 26일, 대통령 관저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건물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이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구성된 독립 패널은 방화 가능성을 배제하고 화재의 원인을 전기적 결함으로 보았다. 설리프 정부는 더 시급한 필요에 직면하여 관저 수리에 대한 자금 지원을 우선순위에서 낮게 설정했으며, 설리프는 집무실을 인근 외무부 건물로 이전하고 몬로비아에 있는 개인 자택에서 생활하기로 했다.
2007년 7월 26일, 설리프는 "라이베리아 160주년: 미래를 되찾다"라는 주제로 라이베리아의 160주년 독립 기념일을 축하했다. 그녀는 25세의 라이베리아 활동가인 키미 위크스에게 기념식의 국가 연설자로 활동해 줄 것을 요청하는 전례 없는 상징적인 조치를 취했으며, 위크스는 정부에 교육과 건강 관리를 우선시할 것을 촉구했다. 며칠 후, 설리프 대통령은 모든 초등학생 연령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교육을 무상 및 의무화하는 행정 명령을 발표했다.
2010년 10월 4일, 설리프는 정보 공개 법안에 서명하여 서아프리카 최초의 이와 같은 종류의 법안을 제정했다. 이를 인정받아 그녀는 아프리카 편집인 연합으로부터 아프리카 미디어의 친구 상을 받은 최초의 현직 국가 원수가 되었다.
2011년 4월 1일, 설리프는 기자들에게 정부의 부패에 항의하는 집회를 조직한 야당 후보를 선동죄로 기소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녀의 대변인은 나중에 이 발언이 만우절 농담이었다고 해명했다.
4.2. 부채 탕감 노력
설리프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2006년 당시 약 4900에 달했던 국가 부채 감축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미국은 2007년 초 라이베리아에 대한 부채 391 전액을 탕감해준 첫 번째 국가가 되었다. 그 해 9월,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이끄는 G8은 라이베리아가 국제 통화 기금에 진 빚의 60%를 갚도록 324.5를 지원했는데, 이는 설리프 행정부가 추진한 거시 경제 정책에 대한 평가였다.
2009년 4월, 정부는 국제 개발 협회, 독일, 노르웨이, 미국, 영국의 자금 지원을 통해 97% 할인된 가격으로 부채를 매입하는 거래를 통해 1200의 해외 상업 부채를 추가로 탕감하는 데 성공했다. 이 할인율은 개발도상국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였다.
라이베리아는 2008년에 채무국 빈곤국(HIPC) 이니셔티브에 참여할 자격을 얻었다. 2010년 6월, 라이베리아는 HIPC 이니셔티브의 완료 단계에 도달하여 모든 대외 부채를 탕감받을 자격을 얻었다. 같은 달, 세계 은행과 IMF는 라이베리아의 다자간 부채 1500를 탕감하는 데 합의했다. 9월 16일, 파리 클럽은 1260를 탕감하기로 합의했고, 독립적인 양자 채권자들은 추가로 107를 탕감하여 라이베리아의 남은 대외 부채를 사실상 탕감했다. 설리프 대통령은 연간 차입액을 GDP의 3%로 제한하고 모든 차입 자금을 일회성 사회 기반 시설 프로젝트에만 지출하도록 제한하여 향후 지속 불가능한 차입을 막겠다고 다짐했다.
4.3. 진실과 화해 위원회 (TRC)
2006년, 진실과 화해 위원회(TRC)는 20년이 넘는 라이베리아 내전을 조사하고 "국가 평화, 안보, 통일 및 화해를 증진"하는 임무를 가지고 업무를 시작했다. TRC는 C. 가이드 브라이언트가 이끄는 과도 정부 하에서 2005년 법률을 통해 구성되었다.
2009년 6월에 발표된 최종 보고서에서 TRC는 엘런 존슨설리프를 "전쟁 세력과 연루된 혐의"로 "공직에 선출되거나 임명되는 것을 30년 동안 특별히 금지해야"하는 50명의 명단에 포함시켰다. 이 금지 조항은 제1차 라이베리아 내전 초기에 그녀가 전 대통령 찰스 테일러를 재정적으로 지원한 데서 비롯되었다.
2009년 7월 26일, 설리프는 찰스 테일러를 지지한 것에 대해 라이베리아에 사과하며 "테일러 씨의 진정한 의도가 알려지자, 그녀보다 더 열정적인 비판자나 민주적 절차에서 그를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8월 28일, 국회는 위원회의 권고 사항을 시행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약 1년 동안 지역구민과 상의해야"한다고 발표했다.
2010년 외교협회에 출연하여 설리프는 TRC의 권고 금지 조항을 시행하는 것은 그녀의 적법 절차에 대한 권리를 위헌적으로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0년 10월, 설리프의 통일당 의장인 바니 셔먼은 해당 권고의 시행은 위헌이라고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헌법 제21조 (a)항이 소급 입법을 금지하고 있으며, 설리프는 테일러를 재정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공직 금지라는 처벌을 부과하는 법을 위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2011년 1월, 라이베리아 대법원은 TRC 보고서에서 공직 금지 권고를 받은 다른 사람이 제기한 윌리엄스 대 타 사건에서 TRC의 권고가 열거된 개인의 절차적 적법 절차에 대한 권리를 위헌적으로 침해하며, 정부가 제안된 금지 조항을 시행하는 것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4.4. 동성애 권리 문제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2011년 12월 미국의 대외 원조를 동성애자 권리 보호를 증진하는 데 사용하겠다고 연설한 후, 라이베리아의 LGBT 권리 문제는 라이베리아에서 중요한 정치적 이슈가 되었다. 가디언은 "클린턴의 발언 이후 라이베리아 신문들은 동성애를 '모독', '학대', '혐오'로 묘사하는 수많은 기사와 사설을 게재했다"라고 보도했다. 라이베리아 법은 "자발적인 소돔" 행위에 대해 최대 1년의 징역형을 선고할 수 있도록 규정했지만, 수년 동안 이 법을 근거로 기소된 사람은 없었다.
2012년 2월, 봉 카운티 상원의원 주얼 테일러는 동성애 행위에 대해 10년의 징역형을 부과하는 법안을 제안했고, 유사한 법안이 하원에도 제출되었다. 3월 19일, 설리프 대통령은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하며 현행법을 폐지하지 않겠지만, 두 개의 법안에도 서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설리프 대통령은 "우리는 지금의 우리 모습을 좋아합니다 [...] 우리 사회에는 보존하고 싶은 특정한 전통적 가치관이 있습니다"라고 덧붙였다. 티완 콩글로 라이베리아 전 법무 차관은 "그녀가 [현재 동성애 반대] 법을 비범죄화하려고 한다면 정치적 자살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설리프 대통령의 언론 비서는 가디언에 보낸 서한에서 언론이 자신의 발언을 잘못 묘사했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재 라이베리아에는 동성애를 언급하는 법률이 없으며, 따라서 대통령은 동성애에 관한 법률을 옹호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은 [...] 동성애와 관련된 법률이 자신에게 제출되면 거부할 것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습니다. 이 진술은 라이베리아 입법부의 두 구성원이 동성애를 겨냥한 더 강력한 법률을 도입하려는 시도에도 적용됩니다." 이 서한은 "라이베리아의 현 상태는 관용이었으며 그 [현재] 법에 따라 기소된 사람은 한 명도 없었습니다"라고 덧붙였으며, "대통령은 라이베리아가 오늘날 누리는 전례 없는 언론 및 표현의 자유를 통해 우리의 싹트는 민주주의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수용하고 가치와 라이베리아의 법률을 개방적이고 존중하며 독립적으로 논의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밝히며 미래의 자유화 가능성을 시사했다. 가디언은 해당 기사에 정정 사항을 게재했다.
4.5. 외교 정책
엘런 존슨 설리프는 대통령 당선 후 첫 외교 방문으로 이웃 국가인 코트디부아르를 방문하여 제2차 라이베리아 내전 중 코트디부아르가 라이베리아 민주주의 운동을 지원한 이후 양국 관계 개선을 위해 로랑 그바그보 코트디부아르 대통령과 만났다. 2010-2011년 코트디부아르 위기 동안, 설리프는 마노 강 연합 의장으로서, 2010년 코트디부아르 대통령 선거에서 그바그보의 경쟁자인 알라산 와타라를 승자로 인정하는 ECOWAS의 결정을 지지했지만, 위기에 대한 군사적 해결책 요구는 거부했다.
설리프는 라이베리아의 전통적인 동맹국인 미국과도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미국 아프리카 사령부(AFRICOM)가 미국 군대에 의해 설립된 후, 설리프는 미국이 새 사령부의 본부를 라이베리아에 두도록 제안했는데, 이는 그렇게 한 유일한 아프리카 지도자였다. 이 사령부는 결국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본부를 두게 되었다. 2006년 3월 15일, 설리프 대통령은 미국 의회 합동 회의에서 연설하며, 미국에게 "자유에 대한 사랑이 무엇을 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아프리카와 세계의 훌륭한 등불, 모범이 되도록" 자국을 돕기 위한 지원을 요청했다.
설리프는 또한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를 강화하여, 하나의 중국 정책에 대한 라이베리아의 약속을 재확인했다. 이에 대한 대가로 중국은 라이베리아의 재건에 기여하여, 라이베리아 방송 시스템을 전국적으로 확장하기 위해 여러 송신기를 건설하고, 라이베리아 대학교의 새로운 캠퍼스를 건설했다.
설리프는 여성 세계 지도자 협의회의 회원이며, 이 협의회는 여성과 공평한 발전에 중요한 문제에 대한 집단 행동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최고위 여성 지도자들을 동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현직 및 전직 여성 대통령 및 총리의 국제 네트워크이다.
2011년 리비아 내전 동안, 설리프는 이전 리비아 지도자 무아마르 알 카다피에게 폭력과 정치적 탄압 전술을 중단하라고 요구하는 국제 사회의 목소리에 동참했다. 그러나 그녀는 2011년 리비아 군사 개입을 비판하며 "폭력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과정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그녀의 정부는 나중에 리비아와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며, "정부는 리비아 상황을 신중하게 검토한 후, 카다피 대령의 정부가 리비아를 통치할 정당성을 상실했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2015년 2월 27일, 설리프 대통령은 백악관 보도 비서관실의 공식 온라인 성명에 따르면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날 예정이었다. 다른 문제들과 함께, 그들은 최근의 2013-2015년 에볼라 바이러스 유행을 신속하게 종식시키기를 희망하는 것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었는데, 이는 라이베리아, 시에라리온, 기니 및 서아프리카의 다른 지역(및 치료를 위한 사례 수입과 일부 새로운 감염으로 인해 다른 국가에서도 발생)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으며, 라이베리아와 인근 지역에서 이상적으로 보고되는 사례가 0건이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보고, 관리, 지원, 재정 및 전문적인 지원을 제공할 예정이었다. 그들은 또한 대규모 발병으로 인한 사망자 수와 지역에 미치는 영향 이후 의료 인프라와 국가의 다른 어려움을 어떻게 유지하고 재건할지, 그리고 지금까지 이루어진 진전과 이를 지속하기 위한 노력에 대해서도 논의할 예정이었다.
5. 퇴임 이후 활동
2018년, 엘렌 존슨 설리프는 "아프리카의 가장 풍부하고 활용되지 않은 힘, 즉 여성의 힘을 발휘하도록 돕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엘렌 존슨 설리프 여성 개발 대통령 센터를 설립했다. 2019년, 세계 보건 기구(WHO) 사무총장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는 설리프를 보건 인력에 대한 WHO 친선 대사로 임명했다. 2020년 코로나19 범유행 가운데, 설리프는 WHO 친선 대사 직책에서 물러나 헬렌 클라크와 함께 WHO의 팬데믹 대비 및 대응 독립 패널(IPPR) 공동 의장을 맡았다. 같은 해, 미국 국제 개발 금융 공사의 개발 자문 위원회 위원으로도 임명되었다.
엘렌 존슨 설리프는 다음 직책도 겸임하고 있다.
* 아프리카 유럽 재단(AEF), 아프리카-유럽 관계 고위급 인물 그룹 위원 (2020년 이후)
* 브렌터스트 재단, 자문 위원회 위원
* 마스터카드 재단, 이사회 위원 (2020년 이후)
6. 비판
설리프는 2014년 의붓아들인 폼바 설리프와 보안 기관이 연루된 형사 사건에 개입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녀의 법무부 장관 크리스티아나 타는 2014년 10월 사임하면서, 설리프 대통령이 2014년 7월 무영장 호텔 급습에서 국가안보국(NSA)에 의해 한국 사업가들로부터 불법적으로 돈을 압수한 사건에 대한 형사 수사에 개입했다고 비난했다.
2019년에는 그녀의 아들 찰스 설리프가 75 상당의 자국 통화를 불법적으로 인쇄하여 경제 사보타주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 조사는 조사 감사 회사인 Kroll에 의해 수행되었다. 2017년 11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가 실시한 조사에서 설리프는 "파라다이스 페이퍼스" 관련 의혹으로 언급된 정치인 목록에 포함되었다고 밝혔다.
7. 수상 및 서훈
엘런 존슨설리프는 다양한 상과 훈장을 받았다. 주요 수상 및 서훈 내역은 다음과 같다.
| | 구분 || 내용 || 비고 | |||
|---|---|---|---|
| 1988년 | 수상 | 루즈벨트 연구소 언론 자유상 | |
| - | 수상 | 랄프 번치 국제 리더십상 | |
| 1996년 | 서훈 | 모노 훈장 사령관 | |
| 2006년 | 수상 | 공통 기반상, 공통 기반 탐색 | |
| 2006년 | 수상 | 지속 가능한 기아 종식을 위한 아프리카 리더십상, 기아 프로젝트 | |
| 2006년 | 기타 | 에모리 대학교 클라우스 M. 할레 국제 학습 연구소 특별 연구원 | |
| 2006년 | 학위 | 마르케트 대학교 명예 법학 박사 학위 | |
| 2006년 | 수상 | 시너지스에서 데이비드 록펠러 브리징 리더십상 | |
| 2007년 | 서훈 | 대통령 자유 훈장 (미국 대통령이 수여하는 최고 민간 훈장) | 조지 W. 부시 대통령 수여 |
| 2008년 | 수상 | 업적 아카데미 골든 플레이트 상 | |
| 2008년 | 학위 | 인디애나 대학교, 다트머스 대학교, 브라운 대학교 명예 법학 박사 학위 | |
| 2009년 | 수상 | "국가가 EITI(투명성 이니셔티브) 이행을 위해 빠르게 발전한 것"에 대한 EITI 상 | |
| 2009년 | 학위 | 탬파 대학교 명예 인문학 박사 학위 | |
| 2010년 | 학위 | 예일 대학교, 러트거스 대학교 명예 법학 박사 학위 | |
| 2010년 | 수상 | 아프리카 언론인 연합으로부터 아프리카 미디어 친구상 | |
| 2011년 | 학위 | 하버드 대학교 명예 법학 박사 학위 | |
| 2011년 | 수상 | 아프리카 성 평등상 | |
| 2011년 | 수상 | 노벨 평화상 (리마 보위, 타우왁쿨 카르만과 공동 수상) | |
| 2012년 | 수상 | 평화, 군축 및 개발을 위한 인디라 간디상 | |
| 2014년 | 기타 | 포브스 선정 세계에서 70번째로 영향력 있는 여성 | |
| 2017년 | 기타 | 나이지리아 추장 제도 칭호 (아다 디 오한마, 이보 족) | Eze 새뮤얼 오히리 수여 |
| 2017년 | 기타 | BBC 선정 2017년 100명의 여성 | |
| 2018년 | 수상 | 2017년 이브라힘상 아프리카 리더십 업적 부문 | |
| - | 서훈 | 라이베리아 개척자 훈장 단장 및 특급대수장 | |
| - | 서훈 | 아프리카의 별 훈장 단장 및 특급대십자장 | |
| - | 서훈 | 레지옹 도뇌르 훈장 그랑크루아 | |
| 2017년 9월 7일 | 서훈 | 코트디부아르 국가 훈장 그랑크루아 | |
| - | 서훈 | 케냐 황금 심장 훈장 | |
| 1996년 | 서훈 | 모노 훈장 사령관 | |
| 2007년 | 서훈 | 자유 훈장 |
8. 역대 선거 결과
| 선거명 | 직책명 | 대수 | 정당 | 1차 득표율 | 1차 득표수 | 2차 득표율 | 2차 득표수 | 결과 | 당락 |
|---|---|---|---|---|---|---|---|---|---|
| 1985년 선거 | 라이베리아의 부통령 | 26대 | 라이베리아 행동당 | 26.46% | 137,270표 | 2위 | 낙선 | ||
| 1997년 선거 | 라이베리아의 대통령 | 22대 | 통일당 | 9.58% | 59,557표 | 2위 | 낙선 | ||
| 2005년 선거 | 라이베리아의 대통령 | 24대 | 통일당 | 19.75% | 192,326표 | 59.40% | 478,526표 | 1위 | |
| 2011년 선거 | 라이베리아의 대통령 | 24대 | 통일당 | 43.93% | 530,020표 | 90.71% | 607,618표 | 1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