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노 신지
1. 개요
오노 신지는 일본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1998년 J리그에서 프로 데뷔하여 신인왕과 베스트 일레븐을 수상했으며, 1999년 FIFA U-20 월드컵에서 일본 U-20 대표팀의 준우승을 이끌었다. 이후 페예노르트에서 UEFA컵 우승을, 우라와 레즈에서 J리그와 천황배 우승을 경험했다. 2002년 아시아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으며, 2006년, 2002년, 2006년 FIFA 월드컵에 출전했다. 2023년 현역 은퇴 후 홋카이도 콘사도레 삿포로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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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명 | 오노 신지 (小野 伸二) |
|---|---|
| 로마자 표기 | Ono Shinji |
| 별칭 | 신지, 센세 |
| 출생일 | 1979년 9월 27일 |
| 출생지 | 일본 시즈오카현 누마즈시 |
| 키 | 1.75m |
| 포지션 | 미드필더 (CM, DM) |
| 주발 | 양발 |
| 유소년 클럽 1 | 이마자와 보이스 SC (누마즈 시립 이마자와 초등학교) |
|---|---|
| 유소년 클럽 2 | 이마자와 중학교 |
| 유소년 클럽 3 | 시미즈 상업 고등학교 |
| 클럽 1 | 우라와 레즈 |
| 출장 1 | 79 |
| 득점 1 | 20 |
| 클럽 2 | 페예노르트 |
| 출장 2 | 112 |
| 득점 2 | 19 |
| 클럽 3 | 우라와 레즈 |
| 출장 3 | 53 |
| 득점 3 | 8 |
| 클럽 4 | VfL 보훔 |
| 출장 4 | 29 |
| 득점 4 | 0 |
| 클럽 5 | 시미즈 에스펄스 |
| 출장 5 | 70 |
| 득점 5 | 8 |
| 클럽 6 |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
| 출장 6 | 51 |
| 득점 6 | 10 |
| 클럽 7 | 콘사돌레 삿포로 |
| 출장 7 | 62 |
| 득점 7 | 2 |
| 클럽 8 | FC 류큐 |
| 출장 8 | 23 |
| 득점 8 | 0 |
| 클럽 9 | 콘사돌레 삿포로 |
| 출장 9 | 6 |
| 득점 9 | 0 |
| 통산 출장 | 485 |
| 통산 득점 | 67 |
| 국가대표 1 | 일본 U-17 |
|---|---|
| 출장 1 | 3 |
| 득점 1 | 0 |
| 국가대표 2 | 일본 U-20 |
| 출장 2 | 6 |
| 득점 2 | 2 |
| 국가대표 3 | 일본 올림픽 축구 국가대표팀 (와일드카드) |
| 출장 3 | 3 |
| 득점 3 | 2 |
| 국가대표 4 | 일본 |
| 출장 4 | 56 |
| 득점 4 | 6 |
| 메달 스포츠 | 남자 축구 |
|---|---|
| 메달 대회 | AFC 아시안컵 |
| 메달 내역 1 | 2000 레바논 우승 |
| 메달 대회 2 |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 메달 내역 2 | 2001 한국/일본 준우승 |
| 클럽 마지막 업데이트 | 2022년 11월 5일 15:16 |
|---|---|
| 대표팀 마지막 업데이트 | 2008년 8월 20일 |
-
누마즈시 출신 -
하라다 마사토
하라다 마사토는 일본의 영화 감독, 각본가, 배우, 영화 평론가, 대학교수로, 영화 평론가로 데뷔 후 감독으로도 활동하며 국제적인 경험을 쌓았고, 배우 활동과 더불어 다수의 영화제에서 수상하는 등 다방면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
누마즈시 출신 -
무로후시 고지
무로후시 고지는 일본의 해머던지기 선수이자 스포츠 행정가로, 올림픽 금메달과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 우승을 차지했으며 현재 일본 스포츠청 장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
아시아 올해의 축구 선수 수상자 -
세르베르 제파로프
세르베르 제파로프는 우즈베키스탄의 전 축구 선수이자 현 감독으로, 우즈베키스탄 클럽에서 다수의 우승을 차지하고 2008년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을 수상했으며, 해외 클럽과 우즈베키스탄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한 후 U-14 국가대표팀 감독 및 수석코치를 역임했다. -
아시아 올해의 축구 선수 수상자 -
알리 다에이
이란 출신의 전 축구 선수이자 감독인 알리 다에이는 국제 A매치 역대 최다 득점 기록을 보유하고, 이란 축구 국가대표팀 주장과 독일 분데스리가 선수로 활약했으며, 은퇴 후 감독으로서도 활동하며 아시아축구연맹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기도 했으나, 친일 논란 및 정치적 발언으로 논쟁에 휘말리기도 했다. -
1979년 출생 -
양동근
양동근은 1987년 아역 배우로 데뷔하여 드라마와 영화에서 활동하며 YDG aka Madman이라는 예명으로 힙합 가수로도 데뷔하여 독특한 스타일과 개성 있는 음악으로 입지를 다진 대한민국의 배우이자 힙합 래퍼이다. -
1979년 출생 -
팀 케이힐
팀 케이힐은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축구 선수로, 다양한 클럽과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에서 핵심 선수로 활약하며 뛰어난 골 결정력과 투지 넘치는 플레이를 선보인 인물이다.
2. 선수 경력
오노 신지는 시즈오카현 누마즈시 출신으로, 초등학생 시절부터 '천재'로 불리며 지역에서 이름을 알렸다.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가정에서 성장했다. 1992년 누마즈 FC 소속으로 제1회 전일본 소년 풋살 대회에 참가하여 준우승, 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이후 고향의 공립 중학교에 진학, 1993년 13세에 U-16 일본 대표로 발탁되었고, 각 연령대 대표팀의 중심 선수로 활약했다. 1994년 제6회 U-16 아시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우승, 1995년 FIFA U-17 세계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시미즈 상업 고등학교 시절, 전국 고등학교 축구 선수권 대회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전일본 유스 선수권 대회 준우승(1997년), 인터하이 베스트 16(1997년), 국민 체육 대회 2년 연속 우승(1996년, 1997년, 시즈오카현 선발 소년부)을 기록했다.
| 대회 | 결과 | 비고 |
|---|---|---|
| 전일본 유스 선수권 대회 | 준우승 | |
| 인터하이 | 베스트 16 | |
| 국민 체육 대회 | 2년 연속 우승 | 시즈오카현 선발 소년부 |
1998년 J리그 13개 구단의 제의를 받고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 해 J리그 신인왕과 J리그 베스트 일레븐을 수상했다.
1999년 FIFA U-20 월드컵에서 일본 대표팀 주장을 맡아 준우승을 이끌었으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 필리핀전에서 왼쪽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중상을 입었다. 2000년 팀이 J2로 강등되었음에도 잔류, 구단 역사상 최연소 주장으로 활약하며 J1 승격을 이끌었다.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일본 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하며 준우승에 기여했고, J1 1st 스테이지 종료 후 페예노르트로 이적했다. 2002년 UEFA컵 우승에 기여하며, 유럽 트로피를 획득한 최초의 일본인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잦은 부상으로 2004-05 시즌 대부분을 결장한 후 팀에서 방출되었다. 웨슬리 스나이더는 "오노 신지는 내가 상대한 선수 중 가장 힘든 상대였다"고 언급했다.
2006년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로 복귀, 그 해 J1리그 우승, 천황배 우승, 슈퍼컵 우승을 달성하였다. 2008년 독일 분데스리가의 VfL 보훔으로 이적하였다. VfL 보훔에서의 첫 경기인 SV 베르더 브레멘과의 원정 경기에서 2개의 도움을 기록하였으나, 이후 부상을 당했다.
2010년 시미즈 에스펄스로 이적하여 J리그로 복귀, 2011년부터 팀의 주장을 맡았다. 2012년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로 이적, 창단 첫 시즌 정규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2014년 J2리그의 콘사도레 삿포로로 이적, 2016년 팀의 J2리그 우승 및 J1리그 승격에 기여했다. 2021년 1월 1일 콘사도레 삿포로로 복귀했다. 2022년 1월 28일 콘사도레 삿포로와 종신 계약을 체결했다. 2023년 9월 27일, 44세 생일에 은퇴를 발표, 12월 3일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의 경기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2.1. 클럽 경력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오노는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의 페예노르트로 이적했다. 페예노르트에서 첫 시즌에 2002년 UEFA컵 우승에 기여하며, 유럽 트로피를 획득한 최초의 일본인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이후 잦은 부상으로 인해 오랫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2004-05 시즌 대부분을 결장한 후 팀에서 방출되었다. 페예노르트 시절 오노의 활약은 높이 평가받았으며, 네덜란드 미드필더 웨슬리 스나이더는 "오노 신지는 내가 상대한 선수 중 가장 힘든 상대였다"고 언급했다.
오노는 이후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1998-2001, 2006-2007), VfL 보훔(2008-2009), 시미즈 에스펄스(2010-2012),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FC(2012-2014), 홋카이도 콘사도레 삿포로(2014-2019, 2021-2023), FC 류큐(2019-2020)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2.1.1. 유소년 시절
오노 신지는 시즈오카현 누마즈시 출신으로, 초등학생 시절부터 '천재'로 불리며 지역에서 이름을 알렸다. 가난한 어머니와 단 둘이 사는 가정에서 성장했다. 초등학생 시절에는 축구 소년단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오노가 혼자 축구하는 것을 본 소년단 감독의 권유로 입단했다. 12세에 나쇼날 트레이닝 센터에 참가하여 또래 선수들 사이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였다. 이나모토 준이치는 "굉장한 녀석이 있다"며 오노의 플레이에 감탄했다.
1992년 1월에는 누마즈 FC 소속으로 제1회 전일본 소년 풋살 대회에 참가, 결승전에서 요미우리 축구 클럽 주니어 유스에게 패했지만 준우승을 차지했고, 오노는 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이후 오노는 고향의 공립 중학교에 진학하여 1993년 13세에 U-16 일본 대표로 처음 발탁되었고, 이후 각 연령대 대표팀의 중심 선수로 활약했다. 1994년에는 제6회 U-16 아시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했고, 1995년에는 FIFA U-17 세계 선수권 대회에 출전했다.
고등학교는 시미즈 상업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히라카와 타다아키, 이케하타 요우스케 등과 함께 팀의 중심으로 활약했으나, 전국 고등학교 축구 선수권 대회 본선 진출에는 실패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던 1997년에는 전일본 유스 선수권 대회 준우승, 인터하이 베스트 16, 국민 체육 대회 2년 연속 우승(시즈오카현 선발 소년부)을 기록했다.
| 대회 | 결과 | 비고 |
|---|---|---|
| 전일본 유스 선수권 대회 | 준우승 | |
| 인터하이 | 베스트 16 | |
| 국민 체육 대회 | 2년 연속 우승 | 시즈오카현 선발 소년부 |
2.1.2.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1998-2001)
1998년 J리그 13개 구단의 제의를 받고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에 입단하며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그 해 J리그 신인왕과 J리그 베스트 일레븐을 수상했다.
1999년 FIFA U-20 월드컵에서 일본 대표팀 주장을 맡아 준우승을 이끌었으나,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아시아 지역 예선 필리핀전에서 상대 수비수의 태클로 왼쪽 무릎 인대가 파열되는 중상을 입어 장기간 결장했다. 이 부상으로 리그 경기의 절반 이상을 결장했고, 팀은 J2로 강등되었다.
2000년 팀이 J2로 강등되었음에도 잔류를 선택, 구단 역사상 최연소 주장으로 활약하며 J1 승격을 이끌었다.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일본 대표팀 주전으로 활약하며 준우승에 기여했고, J1 1st 스테이지 종료 후 네덜란드 리그의 페예노르트로 이적했다.
2.1.3. 페예노르트 (2001-2006)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에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주전으로 활약하며 준우승에 기여한 오노 신지는, J1 1st 스테이지 종료 후 네덜란드 에레디비시의 페예노르트로 이적했다. 2001-02 시즌 UEFA컵 우승에 공헌하며 유럽 무대에서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보냈고, 이는 일본인 선수 최초의 유럽 트로피 획득이었다. 그러나 이후 잦은 부상으로 인해 오랫동안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2004-05 시즌 대부분을 결장한 후 구단에서 방출되었다. 로테르담을 연고로 하는 페예노르트에서의 활약은 매우 높이 평가되었으며, 네덜란드 미드필더 웨슬리 스나이더는 "오노 신지는 내가 상대한 선수 중 가장 힘든 상대였다"고 회고했다.
2.1.4.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복귀 (2006-2007)
2006년 1월 13일, 오노는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로 복귀하기로 결정되었고, 1월 26일에 정식 계약을 맺었다. 등번호는 18번을 받았다. 그 해 우라와 레즈는 J1리그 우승, 천황배 우승, 슈퍼컵 우승을 달성하였다. 오노는 천황배 준준결승 주빌로 이와타전에서 교체 출전하여 2골을 넣으며 역전에 기여했고, 준결승 가시마 앤틀러스전에서는 선발 출전하여 선제골을 기록하고 롭슨 폰테와의 원투 패스로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는 등 맹활약하며 팀의 천황배 우승에 크게 공헌했다.
그러나 리그 경기에서는 잦은 부상과 수비를 중시하는 기도 부흐발트 감독의 전술적인 이유로 주전으로 출전하지 못하는 경기도 있었다.
2007년, 산토스 알레산드로가 오스트리아의 레드불 잘츠부르크로 이적하면서 오노는 등번호를 8번으로 변경했다. 6월 30일 주빌로 이와타전에서는 프리킥과 룹 슛으로 2골을 기록하는 등 천재적인 플레이를 선보이기도 했지만, 부흐발트 감독에 이어 수비적인 전술을 선호하는 홀거 오지크 감독의 방침으로 인해 교체 출전하는 경기도 많았다.
2.1.5. VfL 보훔 (2008-2009)
2008년 독일 분데스리가의 VfL 보훔으로 이적하며 다시 유럽 진출을 추진하였다. VfL 보훔에서의 첫 경기인 SV 베르더 브레멘과의 원정 경기에서 2개의 도움을 기록하며 VfL 보훔 역사상 첫 SV 베르더 브레멘 원정 승리를 이끌었으나, 이후 부상을 당하며 부진에 빠졌다.
2.1.6. 시미즈 에스펄스 (2010-2012)
2010년, 오노는 고향 팀인 시미즈 에스펄스로 이적하여 J리그로 복귀하였다. 2011년부터 팀의 주장을 맡아 활약했다.
2.1.7.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2012-2014)
2012년, 오노 신지는 호주 A리그의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로 이적했다.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는 창단 첫 시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노 신지의 활약에 힘입어 정규 리그 우승을 차지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2013-14 시즌에는 AFC 챔피언스리그에 참가하여 8강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2.1.8. 콘사도레 삿포로 (2014-2019, 2021-2023)
2014년 J2리그의 콘사도레 삿포로로 이적했다. 2016년 팀의 J2리그 우승 및 J1리그 승격에 기여했다. 2019년 8월 5일, FC 류큐로 이적했다가 2020년 시즌 후 팀을 떠났다.
2021년 1월 1일, 콘사도레 삿포로로 복귀했다. 등번호는 이전과 같은 44번을 배정받았다. 같은 해 6월 9일, 천황배 2회전 소니 센다이와의 경기에서 프리킥으로 4년 만에 득점하며 천황배 최고령 득점(41세 255일) 기록을 세웠다.
2022년 1월 28일, 콘사도레 삿포로와 종신 계약을 체결했다. 오노는 "홋카이도는 제2의 고향"이라며 구단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고, 미카미 마사카츠 단장은 오노의 의사를 존중하여 향후 진로를 결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2023년 9월 27일, 44세 생일에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현역 은퇴를 발표했다. 2023년 12월 3일,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와의 경기에서 마지막 경기를 치렀고, 경기 후 은퇴식에서 "매일 즐겁게 축구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보물"이라며 앞으로도 일본 축구에 기여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2.2. 국가대표 경력
오노 신지는 1994년 AFC U-16 챔피언십 우승을 시작으로 각급 연령별 대표팀에서 활약했다. 1998년 1998년 FIFA 월드컵에 18세의 나이로 출전하여 일본 축구 역사상 최연소 월드컵 출전 기록을 세웠다. 1999년 FIFA U-20 월드컵 준우승, 2000년 2000년 AFC 아시안컵 우승,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준우승을 이끌었다.
2002년 2002년 FIFA 월드컵에서는 일본 대표팀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며 16강 진출에 기여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와일드카드로 출전했으나 팀은 조별리그에서 탈락했다. 2006년 2006년 FIFA 월드컵에도 출전했지만, 부상으로 인해 예선 최종 라운드에서는 한 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고, 2003년과 2005년 컨페더레이션스컵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1998년 4월 1일 대한민국과의 친선 경기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으며, 2008년까지 A매치 통산 56경기 6골을 기록했다.
주요 국제 대회 참가 경력
| 대회 | 연도 | 결과 |
|---|---|---|
| AFC U-16 선수권 대회 | 1994년 | 우승 |
| FIFA U-17 월드컵 | 1995년 | 조별리그 탈락 |
| 1998년 FIFA 월드컵 | 1998년 | 조별리그 탈락 |
| AFC U-19 선수권 대회 | 1998년 | 준우승 |
| FIFA U-20 월드컵 | 1999년 | 준우승 |
| 시드니 올림픽 예선 | 2000년 | - |
| 2000년 AFC 아시안컵 | 2000년 | 우승 |
| 컨페더레이션스컵 | 2001년 | 준우승 |
| 2002년 FIFA 월드컵 | 2002년 | 16강 |
| 아테네 올림픽 | 2004년 | 조별리그 탈락 |
| 2006년 FIFA 월드컵 | 2006년 | 조별리그 탈락 |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출전 기록 (1998년 ~ 2008년)
| | 출장 || 득점 | ||
|---|---|---|
| 1998 | 3 | 0 |
| 1999 | 0 | 0 |
| 2000 | 12 | 1 |
| 2001 | 9 | 1 |
| 2002 | 8 | 1 |
| 2003 | 5 | 0 |
| 2004 | 7 | 2 |
| 2005 | 2 | 0 |
| 2006 | 9 | 1 |
| 2007 | 0 | 0 |
| 2008 | 1 | 0 |
| | 56 || 6 |
국가대표팀 경기 상세 기록
| # | 개최일 | 개최지 | 경기장 | 대결국가 | 승패 | 감독 | 경기 개요 |
|---|---|---|---|---|---|---|---|
| 1. | 1998년 4월 1일 | 서울 | 대한민국 | ● 1-2 | 오카다 타케시 | 월드컵 기념 경기 | |
| 2. | 1998년 5월 24일 | 가나가와현 | 요코하마 국제종합경기장 | 체코 | △ 0-0 | 키린컵 | |
| 3. | 1998년 6월 26일 | 리옹 | 자메이카 | ● 1-2 | 월드컵 | ||
| 4. | 2000년 2월 5일 | 홍콩 | 멕시코 | ● 0-1 | 필립 트루시에 | 칼스버그컵 | |
| 5. | 2000년 2월 13일 | 마카오 | 싱가포르 | ○ 3-0 | 아시안컵 예선 | ||
| 6. | 2000년 2월 16일 | 마카오 | 브루나이 | ○ 9-0 | 아시안컵 예선 | ||
| 7. | 2000년 2월 20일 | 마카오 | 마카오 | ○ 3-0 | 아시안컵 예선 | ||
| 8. | 2000년 3월 15일 | 아이치현 | 고베 종합운동공원 유니버 기념경기장 | 중국 | △ 0-0 | 키린 비버리지컵 | |
| 9. | 2000년 8월 16일 | 히로시마현 | 히로시마 광역공원 육상경기장 | 아랍에미리트 | ○ 3-1 | 키린 챌린지컵 | |
| 10. | 2000년 10월 14일 | 사이다 | 사우디아라비아 | ○ 4-1 | 아시안컵 | ||
| 11. | 2000년 10월 17일 | 사이다 | 우즈베키스탄 | ○ 8-1 | 아시안컵 | ||
| 12. | 2000년 10월 20일 | 베이루트 | 카타르 | △ 1-1 | 아시안컵 | ||
| 13. | 2000년 10월 24일 | 베이루트 | 이라크 | ○ 4-1 | 아시안컵 | ||
| 14. | 2000년 10월 29일 | 베이루트 | 사우디아라비아 | ○ 1-0 | 아시안컵 | ||
| 15. | 2000년 12월 20일 | 도쿄도 |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경기장 | 대한민국 | △ 1-1 | 키린 비버리지컵 | |
| 16. | 2001년 5월 31일 | 니가타현 | 니가타 스타디움 | 캐나다 | ○ 3-0 | 컨페더레이션스컵 | |
| 17. | 2001년 6월 2일 | 니가타현 | 니가타 스타디움 | 카메룬 | ○ 2-0 | 컨페더레이션스컵 | |
| 18. | 2001년 6월 4일 | 이바라키현 | 이바라키현립 가시마 삭커 스타디움 | 브라질 | △ 0-0 | 컨페더레이션스컵 | |
| 19. | 2001년 6월 7일 | 가나가와현 | 요코하마 국제종합경기장 | 오스트레일리아 | ○ 1-0 | 컨페더레이션스컵 | |
| 20. | 2001년 6월 10일 | 가나가와현 | 요코하마 국제종합경기장 | 프랑스 | ● 0-1 | 컨페더레이션스컵 | |
| 21. | 2001년 7월 1일 | 홋카이도 | 삿포로 돔 | 파라과이 | ○ 2-0 | 키린컵 | |
| 22. | 2001년 7월 4일 | 오이타현 | 오이타 스포츠공원 종합경기장 |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 ○ 1-0 | 키린컵 | |
| 23. | 2001년 10월 7일 | 사우샘프턴 | 나이지리아 | △ 2-2 | 국제 친선 경기 | ||
| 24. | 2001년 11월 7일 | 사이타마현 |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 이탈리아 | △ 1-1 | 키린 챌린지컵 | |
| 25. | 2002년 3월 27일 | 우치 | 폴란드 | ○ 2-0 | 국제 친선 경기 | ||
| 26. | 2002년 5월 14일 | 오슬로 | 노르웨이 | ● 0-3 | 국제 친선 경기 | ||
| 27. | 2002년 5월 25일 | 도쿄도 |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경기장 | 스웨덴 | △ 1-1 | 키린 챌린지컵 | |
| 28. | 2002년 6월 4일 | 사이타마현 |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 벨기에 | △ 2-2 | 월드컵 | |
| 29. | 2002년 6월 9일 | 가나가와현 | 요코하마 국제종합경기장 | 러시아 | ○ 1-0 | 월드컵 | |
| 30. | 2002년 6월 14일 | 오사카부 | 나가이 육상경기장 | 튀니지 | ○ 2-0 | 월드컵 | |
| 31. | 2002년 6월 18일 | 미야기현 | 미야기 스타디움 | 터키 | ● 0-1 | 월드컵 | |
| 32. | 2002년 10월 16일 | 도쿄도 |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경기장 | 자메이카 | △ 1-1 | 지쿠 | 키린 챌린지컵 |
| 33. | 2003년 3월 28일 | 도쿄도 |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경기장 | 우루과이 | △ 2-2 | 국제 친선 경기 | |
| 34. | 2003년 9월 10일 | 니가타현 | 니가타 스타디움 | 세네갈 | ● 0-1 | 키린 챌린지컵 | |
| 35. | 2003년 10월 8일 | 튀니스 | 튀니지 | ○ 1-0 | 국제 친선 경기 | ||
| 36. | 2003년 10월 11일 | 부쿠레슈티 | 루마니아 | △ 1-1 | 국제 친선 경기 | ||
| 37. | 2003년 11월 19일 | 오이타현 | 오이타 스포츠공원 종합경기장 | 카메룬 | △ 0-0 | 키린 챌린지컵 | |
| 38. | 2004년 3월 31일 | 싱가포르 | 싱가포르 | ○ 2-1 | 월드컵 예선 | ||
| 39. | 2004년 4월 28일 | 프라하 | 체코 | ○ 1-0 | 국제 친선 경기 | ||
| 40. | 2004년 5월 30일 | 맨체스터 | 아이슬란드 | ○ 3-2 | 국제 친선 경기 | ||
| 41. | 2004년 6월 1일 | 맨체스터 | 잉글랜드 | △ 1-1 | 국제 친선 경기 | ||
| 42. | 2004년 6월 9일 | 사이타마현 |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 인도 | ○ 7-0 | 월드컵 예선 | |
| 43. | 2004년 9월 8일 | 콜카타 | 인도 | ○ 4-0 | 월드컵 예선 | ||
| 44. | 2004년 10월 13일 | 무스카트 | 오만 | ○ 1-0 | 월드컵 예선 | ||
| 45. | 2005년 3월 25일 | 테헤란 | 이란 | ● 1-2 | 월드컵 예선 | ||
| 46. | 2005년 5월 27일 | 도쿄도 | 국립 가스미가오카 육상경기장 | 아랍에미리트 | ● 0-1 | 키린컵 | |
| 47. | 2006년 2월 10일 | 샌프란시스코 | 미국 | ● 2-3 | 국제 친선 경기 | ||
| 48. | 2006년 2월 18일 | 시즈오카현 | 시즈오카현 오가사야마 종합운동공원 스타디움 | 핀란드 | ○ 2-0 | 키린 챌린지컵 | |
| 49. | 2006년 2월 22일 | 가나가와현 | 요코하마 국제종합경기장 | 인도 | ○ 6-0 | 아시안컵 예선 | |
| 50. | 2006년 2월 28일 | 도르트문트 |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 2-2 | 국제 친선 경기 | ||
| 51. | 2006년 3월 30일 | 오이타현 | 오이타 스포츠공원 종합경기장 | 에콰도르 | ○ 1-0 | 키린 챌린지컵 | |
| 52. | 2006년 5월 9일 | 오사카부 | 나가이 육상경기장 | 불가리아 | ● 1-2 | 키린컵 | |
| 53. | 2006년 5월 13일 | 사이타마현 | 사이타마 스타디움 2002 | 스코틀랜드 | △ 0-0 | 키린컵 | |
| 54. | 2006년 6월 4일 | 뒤셀도르프 | 몰타 | ○ 1-0 | 국제 친선 경기 | ||
| 55. | 2006년 6월 12일 | 카이저슬라우테른 | 오스트레일리아 | ● 1-3 | 월드컵 | ||
| 56. | 2008년 8월 20일 | 홋카이도 | 삿포로 돔 | 우루과이 | ● 1-3 | 오카다 타케시 | 키린 챌린지컵 |
국가대표팀 득점 기록
3. 플레이 스타일
天才일본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오노는 넓은 시야, 뛰어난 기술, 정확한 패싱으로 유명한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그의 패스는 상대에게 부드럽고 편안하게 전달되어, 일본에서는 "엔젤 패스", 네덜란드에서는 "벨벳 패스"라고 불리며 많은 도움을 기록했다. 주 포지션은 공격형 미드필더였지만, 수비형 미드필더와 양쪽 윙을 포함한 미드필드 어디에서든 뛸 수 있었다.
정확한 볼 컨트롤 때문에 "볼과 대화할 수 있는 선수"라고 불렸다. 양발 모두 정확하고 섬세한 볼 터치를 가지고 있으며, 주로 직접 플레이로 경쾌하게 경기를 조율하는 게임 메이커였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골키퍼와의 일대일 상황이나 PK에서 슈팅을 놓친 적이 없을 정도로 슈팅 기술에도 뛰어났다.
한때는 활동량이나 헌신적인 움직임이 부족한 것이 약점으로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네덜란드에서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되거나, 대표팀에서 측면으로 기용되는 등 활동량과 수비 부담이 큰 포지션에서 더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 시미즈 에스펄스 이적 후에는 활동량과 수비에도 갈고 닦아, 공수 양면에서 더욱 기여하게 되었다.
전 네덜란드 대표 스나이더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상대한 선수 중 가장 뛰어난 선수로 오노 신지를 꼽았다. 라모스 류이는 "만약 오노 신지가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괴물 같은 선수가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페예노르트 시절 팀 동료였던 로빈 판 페르시는 "오노는 천재다. 네덜란드 대표팀 연습에서 오노보다 잘하는 선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4. 은퇴 후
2024년 1월 14일, 오노 신지는 홋카이도 콘사돌레 삿포로의 홍보대사 겸 "O.N.O(One Hokkaido Nexus Organizer)" 직책에 취임하였다.
5. 수상 내역
| 클럽 수상 | |
|---|---|
| 페예노르트 | 2001-02 UEFA컵 우승 |
|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 | 2006년 J리그 디비전 1 우승 |
| 2006년 천황배 우승 | |
| 2006년 제록스 슈퍼컵 우승 | |
| 2007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 |
|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 | 2012-13 A리그 우승 |
| 국가대표 수상 | |
| 1994년 AFC U-16 챔피언십 우승 | |
| 2000년 AFC 아시안컵 우승 | |
| 개인 수상 | |
| 1998년 | J리그 신인왕 |
| J리그 베스트 일레븐 | |
| J리그 올스타 축구 격려상 | |
|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 최우수 선수, 아시아 올해의 유소년 선수상 | |
| 1999년 | FIFA U-20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 |
| 2002년 | UEFA 올해의 팀 후보 |
|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 | |
| 2007년 | J리그 올스타 축구 격려상 |
| 2013년 | A리그 베스트 일레븐, 주시드니 일본 총영사관 재외공관장 표창 |
| 2014년 | 파라마타시 명예 시민상 |
| 2020년 | JFA 창립 100주년 역대 일본 대표 베스트 일레븐 |
| 2023년 | J30 베스트 어워즈 베스트 일레븐 |
| 2024년 | 주네덜란드 일본대사관 재외공관장 표창 |
5.1. 클럽
오노 신지는 1998년 우라와 레즈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데뷔 2경기만에 프로 데뷔골을 기록하는 등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J리그 신인왕과 베스트 일레븐을 수상했다. 1999년 FIFA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에 기여했지만, 필리핀과의 경기에서 왼쪽 무릎 인대 파열이라는 심각한 부상을 당하며 오랜 기간 경기에 나서지 못했다.
2001년, 오노는 네덜란드 페예노르트로 이적하여 2001-02 UEFA컵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2002년 UEFA 슈퍼컵 준우승, 2002-03 KNVB 컵 준우승을 차지하며 유럽 무대에서도 성공적인 경력을 이어갔다.
2006년, 오노는 우라와 레즈로 복귀하여 J리그 디비전 1 우승, 천황배 우승, 제록스 슈퍼컵 우승을 이끌었다. 2007년에는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과 FIFA 클럽 월드컵 3위를 차지하며 아시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
2008년, 독일 보훔으로 이적하여 유럽 무대에 다시 도전했지만, 잦은 부상으로 인해 많은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다.
2010년, 가족과의 시간을 위해 일본 시미즈 에스펄스로 이적했다.
2012년, 오노는 호주 웨스턴 시드니 원더러스로 이적하여 A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2014년, 콘사도레 삿포로로 이적하여 J2리그 우승과 J1리그 승격에 기여했다.
2019년에는 FC 류큐에서 잠시 활동한 후, 2021년 홋카이도 콘사도레 삿포로로 복귀하여 2023년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2023년 12월 3일, 우라와와의 경기에서 마지막 프로 경기를 치르고 은퇴했다.
클럽 경력 요약
5.2. 국가대표
* 1994년 AFC U-16 챔피언십 우승
* 1998년 AFC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
* 1999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준우승
* 2000년 AFC 아시안컵 우승
*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준우승
|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전 | 득점 |
|---|---|---|---|
| 일본 | 1998 | 3 | 0 |
| 1999 | 0 | 0 | |
| 2000 | 12 | 1 | |
| 2001 | 9 | 1 | |
| 2002 | 8 | 1 | |
| 2003 | 5 | 0 | |
| 2004 | 7 | 2 | |
| 2005 | 2 | 0 | |
| 2006 | 9 | 1 | |
| 2007 | 0 | 0 | |
| 2008 | 1 | 0 | |
| 총계 | 56 | 6 | |
| 번호 | 날짜 | 경기장 | 상대팀 | 득점 | 결과 | 대회 |
|---|---|---|---|---|---|---|
| 1 | 2000년 10월 14일 | 시돈, 레바논 | 4–0 | 4–1 | 2000년 AFC 아시안컵 | |
| 2 | 2001년 5월 31일 | 니가타, 일본 | 1–0 | 3–0 | 2001년 FIFA 컨페더레이션스컵 | |
| 3 | 2002년 10월 16일 | 도쿄, 일본 | 1–0 | 1–1 | 친선경기 | |
| 4 | 2004년 6월 1일 | 맨체스터, 잉글랜드 | 1–1 | 1–1 | 2004년 FA 서머 토너먼트 | |
| 5 | 2004년 9월 8일 | 콜카타, 인도 | 2–0 | 4–0 | 2006년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 예선 | |
| 6 | 2006년 2월 22일 | 요코하마, 일본 | 1–0 | 6–0 | 2007년 AFC 아시안컵 예선 |
5.3. 개인
* 1998년 AFC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MVP
* 1998년 아시아 올해의 청소년 축구 선수
* 1998년 J리그 신인상
* 1998년 J리그 베스트 일레븐
* 1999년 FIFA 세계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베스트 일레븐
* 2002년 아시아 올해의 축구 선수
* 2013년 A리그 베스트 일레븐
* 2023년 J30 베스트 일레븐
* 10남매 중 여섯째(남자 형제로는 다섯째)이지만, '二'가 들어가는 '신지'라는 이름을 받았다. 그 이유에 대해 본인은 "어머니가 마키 신지의 열렬한 팬이었다"고 밝히고 있다. 어머니는 2023년 10월에 별세했다.
* 자서전에 따르면, 그의 가장 큰 특징인 종합적인 테크닉은 소년 시절부터 공을 이용한 혼자서 벽치기 연습이나 볼 리프팅을 통해 갈고닦은 노력의 결과이다.
* 동기인 고원 나오야, 이나모토 준이치 등과 친분이 좋다. 이 세 사람을 따라다닌 후지TV 계열의 설날 특집 프로그램 "월드컵을 둘러싼 모험"이 2002년부터 2007년까지 방영되었다. 고원과는 시미즈에서, 이나모토와는 삿포로에서 동료 선수였다.
* 우라와에서 친분이 좋았던 사람은 1년 선배인 타바타 아키히로이며, 둘은 팬 감사제 토크쇼 등에 출연했다. 2001년에는 타바타가 제프 이치하라로 이적하여 대결했지만, 오노의 프리킥이 타바타의 머리를 맞고 골이 되었다. 이것이 페예노르트 이적 전 마지막 골이었고, 경기 후 시상식에서는 타바타에게서 꽃다발을 받았다. 그 후, 삿포로로 이적한 타바타를 응원하러 가는 등 교류가 계속되었다. 타바타는 2005년에 삿포로를 떠나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9년 후인 2014년에 오노가 삿포로에 입단했다.
* 2001년 7월 19일, 전 독자 모델의 일반 여성과 결혼했다. 2004년 12월 19일에 장녀 하렌(夏蓮), 2007년 3월에는 차녀 리오(里桜)가 태어났다.
* 축구 잡지에서 마작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은퇴 후에는 프로 마작 기사나 마작을 좋아하는 연예인과 어울리는 기회가 늘어났고, 자택에 프로 마작 기사인 무라카미 준, 아사이 도우기, 성우, 배우인 코야마 고우시를 초대하여 "제1회 오노 신지 컵"을 개최했다. 아사이의 SNS에 따르면, 주최자인 오노가 우승했다고 한다.
* 어린 시절 동경했던 선수는 마라도나였다.
* 오시마 츠카사의 만화 작품 『슛!』의 이야기 후반부에 고원 나오야와 함께 실명으로 등장한다.
* 과거 FC 류큐에 소속되었던 오노 마사토모는 친동생이다.
* 2009년에 전 일본 대표 미우라 야스토시와 대담했을 때, "지금은 해외에서 뛰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시미즈 에스펄스에서 뛰고 싶다"고 발언했고, 2010년에 시미즈에 입단했다.
* 출신지인 누마즈시가 위촉하는 "찬찬 누마즈 대사"에 두 번(4년간) 취임한 경험이 있다. 처음에는 시미즈 소속 시절인 2010년도부터 2년간, 두 번째는 시드니에서 삿포로로 이적한 시기인 2013년도부터 2014년도였다. 2023년 7월 1일에 누마즈시가 시제 100주년을 맞이했을 때, 5월 19일에 축하 메시지 영상이 유튜브의 누마즈시 공식 채널에 게재되었다.
* 나이키와 계약했지만, 후에 아식스와 계약했다.
* 네덜란드 텔레그래프지의 기획에서, 네덜란드 왕실에 시집온 막시마 소레기에타와 함께 '2001년, 네덜란드어 실력이 가장 향상된 외국인'으로 선정되었다. 같은 기획에서 '네덜란드 국내에서 가장 알려진 신 외국인'으로도 막시마 소레기에타에 이어 2위로 선정되었다.
* 2006년 월드컵이 개최되고 있던 중 본 합숙에서는 나카타 히데토시와 준비 운동이나 2인조 패스 연습에서 짝을 이루어, "둘이서 하는 편이 재미있으니까"라고 말하며 남아서 슛 연습에도 함께했다.
* 2017년 1월 네덜란드 FOX Sport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Shinji – Japanse voetbalkunst in De Kuip’가 방송되어, 축구 실력뿐 아니라 경기장 밖의 이야기, 특히 모국으로부터의 큰 주목이나, 대표팀 경기를 위한 잦은 이동의 고생, 반복되는 부상에 초점이 맞춰졌다.
* 축구 선수로서 특히 발을 소중히 여겼으며, 은퇴 이유를 말할 때에도 "발은 동료"라고 할 정도로 소중히 이야기했다.
* 우에다 키세가 페예노르트로 이적할 때, 오노 신지가 환영 영상에 출연했다.
* 혼야마 마사시의 은퇴 경기에 참가했다. 뛰어난 테크닉을 선보여, 오노 신지 코멘트가 일어났다.
* 1998년 - J리그 신인왕
* 1998년 - J리그 베스트 일레븐
* 1998년 - J리그 올스타 축구 격려상
* 1998년 -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대회 최우수 선수
* 1998년 - 아시아 올해의 유소년 선수상
* 1999년 - FIFA U-20 월드컵 베스트 일레븐
* 2002년 - UEFA 올해의 팀 후보
* 2002년 - 아시아 올해의 선수상
* 2007년 - J리그 올스타 축구 격려상
* 2013년 - A리그 베스트 일레븐
* 2013년 - 주시드니 일본 총영사관 재외공관장 표창
* 2014년 - 파라마타시 명예 시민상
* 2020년 - JFA 창립 100주년 역대 일본 대표 베스트 일레븐
* 2023년 - J30 베스트 어워즈 베스트 일레븐
* 2024년 - 주네덜란드 일본대사관 재외공관장 표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