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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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검도는 죽도를 사용하여 머리, 손목, 허리, 목을 치거나 찌르는 일본 무술이다. 1895년 일본에서 전통 무술을 보존하기 위해 설립된 대일본무도회를 통해 발전했으며, 한국에는 일제강점기에 전래되었다. 검도는 정신 수양을 중시하며, 예의, 존중, 스포츠맨십을 강조한다. 경기는 호구를 착용하고 죽도를 사용하여 진행되며, 득점은 기세, 정확한 타격, 몸의 균형이 조화를 이룰 때 인정된다. 검도의 단계는 급과 단으로 나뉘며, 수련자는 급 단계를 거쳐 단으로 승급한다. 검도는 해동검도, 태권도 등 다른 무술과 비교되기도 하며, 다양한 기술과 스타일을 포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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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도 | |
---|---|
지도 | |
기본 정보 | |
한국어 명칭 | 검도 |
한자 표기 | 劍道 |
로마자 표기 | Geomdo |
문화어 | 격검 |
영어 표기 | Kumdo |
의미 | 칼의 길 |
개요 | |
종류 | 한국무술 |
사용 무기 | 죽도 한국도 |
경기 방식 | 개인 대전 |
올림픽 종목 | 비종목 |
공식 웹사이트 | 대한검도회 |
역사 | |
발상지 | 한국 |
특징 | |
훈련 도구 | 죽도 |
복장 | 도복 호구 |
관련 무술 | |
일본 무술 | 검도 |
2. 역사
일본의 전통 무도에서 유래하여 한국에서 스포츠로 발전한 종목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평생 즐길 수 있으며, 정해진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죽도(대나무 칼)로 특정 부위를 치거나 찔러 승패를 겨룬다. 기술 연마와 함께 정신 수양 및 예절을 중시하며, 특히 국가, 스승, 상호 간의 예를 강조하는 '삼례'가 있다.[11] 현대 사회에서는 건강 유지, 정신 수양, 다이어트, 스트레스 해소 등의 효과로 주목받고 있다.
현대 검도의 직접적인 형성은 19세기 말 일본에서 시작되었다. 1895년 4월, 일본 교토에서 전통 무술 보존을 위해 대일본무도회(DNBK)가 설립되었고, 이는 여러 검술 유파를 기반으로 했다. 죽도와 보호구를 훈련에 도입한 것은 쇼토쿠 시대 지키신카게류의 나가누마 시로자에몬 쿠니사토(長沼四郎左衛門國里)로 알려져 있으며,[2] 이는 안전한 수련과 대련을 가능하게 했다.
1896년, 대일본무도회는 조선부(朝鮮部)를 설치하며 한국으로 확장되었다.[3] 일제강점기 동안 일본식 검술은 한국의 경찰 및 학교 교육 과정에 도입되었다. 초기에는 격검(擊劍)이라 불렸으나, 1920년 검도(kendo)로 명칭이 바뀌었고, 1939년부터는 한국 학교의 필수 과목이 되어 1945년 해방 전까지 교육되었다.
해방 이후, 한국에서는 일본 검도와는 별개로 독자적인 길을 모색하며 검도(Keomdo)를 발전시켰다. 1948년 대한검도회의 전신이 설립되고[4] 1953년 정식 발족하여[4] 한국 검도의 체계화와 보급을 이끌었다.
검도의 기원에 대해서는 명(明)나라 『무비지(武備志)』에 기록된 '조선세법(朝鮮勢法)' 등을 근거로 한국 고유의 검술에서 유래했다는 주장과, 현대 검도는 일본에서 체계화되어 전래되었다는 주장이 병존하고 있다. 전일본검도연맹[9]과 국제검도연맹[10] 등은 검도의 기원이 일본에 있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다.
2. 1. 기원과 발전
검도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존재한다. 명(明)나라 말기 병학자 모원의(茅元儀)가 1620년대에 저술한 『무비지(武備志)』에는 왜구(倭寇)의 왜도(倭刀) 사용법(일본 음류(陰流) 검술(剣術) 기반)과 함께, 양날 장검을 사용하는 '조선세법(朝鮮勢法)'이 기록되어 있다. 모원의는 이 조선세법이 친구가 조선에서 배운 장검(剣)술이라고 언급했다.현대 검도의 직접적인 뿌리는 일본에서 찾을 수 있다. 1895년 4월, 일본 교토에서는 전통 무술 보존을 목적으로 대일본무도회(DNBK)가 설립되었다. 이곳에서는 여러 검술(剣術) 유파의 기술을 바탕으로 검술 수련 체계를 만들었다. 죽도(竹刀)와 보호구(防具, bōgu)를 검술 훈련에 도입한 것은 쇼토쿠 시대 지키신카게류의 나가누마 시로자에몬 쿠니사토(長沼四郎左衛門國里)로 알려져 있다.[2]
1896년, 대일본무도회는 나카무라 토키치(中村徳吉) 주도로 한국에 조선부(朝鮮部)를 설치하며 세력을 확장했다.[3] 일본에서는 1911년, 나이토 타카하루(内藤高治)와 이소가이 하지메(磯貝肇) 등의 주장으로 유도(柔道)와 함께 일본 검술이 교육 제도에 편입되었다. 죽도와 보호구를 사용함으로써 안전하게 기술을 연마하고 겨룰 수 있다는 점이 고려되었기 때문이다. 대일본무도회는 이러한 스포츠화된 검술을 처음에는 격검(擊劍, gekiken)이라 불렀으나, 1920년에 검도(kendo)로 명칭을 변경했다.
일제강점기 동안 한국에서도 이러한 흐름이 도입되었다. 1895년 갑오개혁 이후 경찰 개혁의 일환으로 경무청(警察學校) 사관생도들에게 격검(擊劍) 훈련이 도입되었고, 1904년에는 용성군관학교(龍城軍官學校) 교육과정에 일본 군도를 사용하는 격검 훈련이 포함되었다. 1906년부터는 학교 교육과정에도 격검이 도입되었으며, 1939년에는 검도가 한국 학교의 필수 과목이 되어 1945년 해방 전까지 교육되었다. 유명한 일본인 검도가인 모리타 세이지(持田盛二), 나카노 소우스케(中野宗助), 하가 준이치(羽賀準一), 오노 토오(小野十生) 등이 조선총독부 경찰의 검도 사범으로 부임하기도 했다.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의 검도는 일본 검도(kendo)와는 다른 독자적인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47년 서울 경찰 검도 대회를 시작으로 일본 무술의 영향에서 벗어나 한국 검도(Keomdo)를 재구성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다.[4] 1948년에는 약 100명의 고위 검도 사범들이 창덕궁에 모여 대한검도회의 전신을 설립했다.[4] 1953년에는 대한검도회(KKA)가 정식 발족하여 대한체육회에 가맹했으며,[4] 같은 해 제1회 전국 개인 검도 선수권 대회가 개최되었다.[4] 이는 전일본검도연맹이 설립된 해이기도 하다. 이후 검도는 전국체육대회 정식 종목 채택(1956년), 각종 전국 대회 개최 등을 통해 점차 대중화되었다.[4]
일부 한국의 검도 단체들은 검도(Keomdo)가 '한국 전통 검술'이며 일본 검도(kendo)의 기원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한편, 전일본검도연맹[9]과 국제검도연맹[10] 등 일본 측에서는 이러한 주장이 역사적 사실과 다르며 검도의 기원은 일본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다음은 검도 발전의 주요 연표이다.
연도 | 주요 내용 |
---|---|
1895년 4월 | 일본 교토에서 대일본무도회(DNBK) 설립.[3] |
1895년 | 갑오개혁 이후 한국 경찰 개혁의 일환으로 경무청 사관생도에게 격검(擊劍) 훈련 도입. |
1896년 | 나카무라 토키치(中村徳吉) 주도로 대일본무도회 조선부(朝鮮部) 설립.[3] |
1904년 | 용성군관학교(龍城軍官學校) 교육과정에 격검 훈련 포함. |
1906년 | 한국 학교 교육 과정에 격검 도입. |
1908년 | 한국 경찰과 일본 경찰 간 격검 대회 개최. 최초의 국가 체육 프로그램에 격검 포함. |
1910년 | 일본의 한국 병합. |
1919년 | 일본에서 검도(kendo)라는 용어 사용 시작 (일본 기록 기준). |
1920년 | 대일본무도회에서 격검을 검도(kendo)로 개칭. |
1927년 | 검도가 중학교 공식 교육 과목이 됨. |
1935년 | 제16회 조선 전국체육대회에 검도 포함.[4] |
1939년 | 검도가 한국 학교 필수 과목이 됨. |
1945년 | 한국 해방. |
1947년 | 서울 경찰 검도 대회 개최, 한국 검도의 독자적 재구성 시작.[4] |
1948년 | 대한검도회 전신 설립 (창덕궁).[4] |
1950년 | 제1회 전국 경찰 검도 대회 개최.[4] |
1952년 | 대한검도회(KKA) 설립 준비 위원회 발족.[4] |
1953년 | 대한검도회(KKA) 정식 발족 및 대한체육회 가맹.[4] 제1회 전국 개인 검도 선수권 대회 개최.[4] (전일본검도연맹 설립 연도와 동일) |
1956년 | 전국체육대회 공식 종목으로 검도 재포함 (20년 만).[4] |
1959년 | 대통령기 등급별 대회, 전국 학생 선수권 대회 개최 등 대중화 시작.[4] |
1964년 | 학생 검도 연맹, 대한검도회(KKA) 가맹.[4] |
1970년 | 학생 연맹이 대학 연맹과 중고등학교 연맹으로 분리. 국제검도연맹(FIK) 설립, 한국인 부회장 임명.[4] |
1972년 | 전국소년체육대회에 검도 포함.[4] |
1979년 | 동아일보 후원 대통령배 전국 선수권 대회 개최.[4] |
1988년 | 한국 사회 검도 연맹 설립 및 제1회 전국 사회인 선수권 대회 개최.[4] |
1993년 | SBS배 전국 검도왕 대회 발족.[4] |
2. 2. 한국 전래와 발전
1895년 4월, 일본 교토에서 전통 무술인 검술, 궁술, 창술 등을 보존하기 위해 대일본무도회(大日本武徳会, DNBK)가 설립되었다. 일본 검객들은 수 세기 동안의 군사적 유산을 통해 검술(剣術|켄주쓰jpn) 도장을 설립했고, 이것이 DNBK 검술의 기초가 되었다.대나무 검(竹刀|시나이jpn)과 보호구(防具|보구jpn)를 검술 훈련에 도입한 것은 쇼토쿠 시대에 지키신카게류의 나가누마 시로자에몬 쿠니사토(長沼四郎左衛門國里)에 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
1896년, DNBK는 나카무라 토키치(中村徳吉) 휘하에 대일본무도회 조선부(朝鮮部)로서 한국으로 확장되었다. 유도와 마찬가지로 일본 검술(剣術|켄주쓰jpn)은 1911년 나이토 타카하루(内藤高治)와 이소가이 하지메(磯貝肇) (둘 다 DNBK 소속)의 주장으로 일본 교육 제도에 채택되었다. 이는 유연한 대나무 검과 완충재가 있는 보호구를 사용하면 경기자들이 더 안전하게 검술 기술로 서로 공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DNBK는 이러한 스포츠 형태의 검술을 처음에는 격검(擊劍|게키켄jpn)이라고 불렀지만, 1920년에 검도(剣道|켄도jpn)로 개칭했다. 당시 일제강점기하에 있던 한국에도 검도가 보급되었으며, 일본식 용어 대신 한국어 용어를 사용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1939년 한국 학교의 필수 과목이 된 검도는 1945년까지 계속 가르쳐졌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한국의 검도와 일본의 검도는 분리되어 거의 동일한 형태의 무술로 발전했다.
명(明)나라 말기의 병학자 모원의가 1620년대에 저술한 『무비지』에는 왜도를 양손으로 사용하는 「척계광 연의 왜구 도법」(일본의 음류(陰流) 검술에서 고안)과 양날의 장검을 양손으로 사용하는 「조선세법」이라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이 중 조선세법에 대해서는 모원의의 친구가 조선에서 배운 장검술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메이지(明治) 이후 일본 통치하에서 일본의 방구(防具)·죽도·도복·하카마를 사용하고, 양손으로 칼을 사용하는 형식의 검도(剣道|켄도jpn)가 한국에 전래되어 정착해 갔다. 검도의 기술에는 머리치기, 손목치기, 허리치기, 찌르기가 있지만, 모두 한쪽 날의 일본도 동작을 기반으로 한다.
한국의 검도는 한일병합 이후 일제강점기에 도입된 일본 검도가 기원이다. 당시 유명한 일본인 검도가인 모치다 세이지(持田盛二), 나카노 소스케(中野宗助), 하가 준이치(羽賀準一), 오노 토오(小野十生) 등이 조선총독부 경찰에 검도 사범으로 부임했다. 일부 한국 검도 단체에서는 검도를 '한국 전통 검술'로 여기며 일본 검도의 기원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명확한 역사적 근거는 부족하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일본의 국내 경기 연맹인 전일본검도연맹[9] 및 전일본검도연맹 산하 국제 경기 연맹인 국제검도연맹[10]은 홈페이지를 통해 한국 검도 단체의 기원 주장은 역사적으로 잘못되었으며, 검도의 기원은 일본에 있다고 발표했다.
다음은 한국 검도 발전의 간략한 연표이다.
연도 | 내용 |
---|---|
1895년 | 4월: 교토에서 대일본무도회(大日本武徳会, DNBK) 설립.[3] 갑오개혁의 일환으로 경찰청(警務廳) 사관생도 훈련 과목에 격검(擊劍, kyok geom, J. "gekki ken") 도입. |
1896년 | 나카무라 토키치(中村徳吉) 휘하에 대일본무도회 조선부(朝鮮部, DNBK, Chosen-bu) 설립.[3] |
1904년 | 용성군관학교(龍城軍官學校) 교육과정에 일본 군도(軍刀, K. "kyok gom") 훈련 포함. |
1906년 | 한국 학교 교육 과정에 격검(Gekiken) 도입. |
1908년 | 한국 경찰과 일본 경찰 간의 격검 대회 개최. 최초의 공식 국가 체육 프로그램에 격검 포함. |
1910년 | 일본의 한국 병합. |
1919년 | 일본 기록에 따르면, 검도(kendo)라는 용어가 1919년 8월 1일 일본에서 만들어짐. |
1927년 | 검도가 중학교 공식 교육 과목이 됨. |
1935년 | 제16회 조선 전국체육대회에 검도 포함.[4] |
1945년 | 한국 해방. |
1947년 | 서울 경찰 검도 대회 개최. 한국 검도가 일본 검도와 구별되는 독자적인 발전을 모색하기 시작.[4] |
1948년 | 약 100명의 고위 검도 사범들이 창덕궁에 모여 대한검도회의 전신 설립.[4] |
1950년 | 제1회 전국 경찰 검도 대회 개최.[4] |
1952년 | 대한검도회(KKA) 설립을 감독할 위원회 설립.[4] |
1953년 | 대한검도회(KKA) 발족 및 대한체육회 가맹.[4] 제1회 전국 개인 검도 선수권 대회 개최 (같은 해 전일본검도연맹 설립).[4] |
1956년 | 전국체육대회 공식 종목으로 검도 재포함 (20년 만).[4] |
1959년 | 대통령기 등급별 대회와 전국 학생 선수권 대회를 통해 검도 인기 상승.[4] |
1964년 | 한국 중고등학교 검도 연맹이 대한검도회(KKA)에 가맹.[4] |
1970년 | 학생 연맹이 대학 연맹과 중고등학교 연맹으로 분리. 국제검도연맹(FIK) 설립, 한국인이 부회장으로 임명.[4] |
1972년 | 전국소년체육대회에 검도 포함.[4] |
1979년 | 동아일보가 대한검도회(KKA)와 협력하여 대통령배 전국 선수권 대회 후원.[4] |
1988년 | 한국 사회인 검도 연맹 설립 및 제1회 전국 사회인 선수권 대회 개최.[4] |
1993년 | SBS배 전국 검도왕 대회 발족.[4] |
2. 3. 해방 이후
1945년 광복 이후, 한국 검도는 일제강점기의 영향을 벗어나 독자적인 발전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1947년 서울 경찰 검도 대회가 개최되며 한국 검도의 재구성이 본격화되었고,[4] 1948년에는 약 100명의 고위 검도 사범들이 창덕궁에 모여 대한검도회의 전신을 설립했다.[4] 이후 한국 검도는 조직화와 대중화를 거치며 현대 스포츠로서의 기틀을 다져나갔다.다음은 해방 이후 한국 검도의 주요 발전 과정이다.
연도 | 주요 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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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년 | 서울 경찰 검도 대회 개최. 일본 무술과의 차별화 및 한국 검도 재구성 시작.[4] |
1948년 | 약 100명의 고위 검도 사범, 창덕궁에서 대한검도회 전신 설립.[4] |
1950년 | 제1회 전국 경찰 검도 대회 개최.[4] |
1952년 | 대한검도회 설립을 위한 위원회 구성.[4] |
1953년 | |
1956년 | 전국체육대회 공식 종목으로 20년 만에 재포함.[4] |
1959년 | 대통령기 등급별 대회 및 전국 학생 선수권 대회 개최로 인기 상승.[4] |
1964년 | 학생 검도 연맹, 대한검도회 가맹.[4] |
1970년 | |
1972년 | 전국소년체육대회 종목 포함.[4] |
1979년 | 동아일보, 대한검도회와 공동으로 대통령배 전국 선수권 대회 후원 시작.[4] |
1988년 | 한국 사회 검도 연맹 설립 및 제1회 전국 사회인 선수권 대회 개최.[4] |
1993년 | SBS 후원, SBS 로얄 전국 선수권 대회 발족.[4] |
2. 4. 검도의 기원 논쟁
검도(剣道)의 기원에 대해서는 한국과 일본 간에 서로 다른 주장이 존재한다.일본에서는 1895년 교토에서 전통 무술 보존을 목적으로 대일본무도회(DNBK)가 설립된 것을 현대 검도의 중요한 기점으로 본다. 일본의 검술(剣術)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발전해 왔으며, 쇼토쿠(承德) 시대에 가시마 신덴 지키신카게류(鹿島神傳直心影流)의 나가누마 시로자에몬 쿠니사토(長沼四郎左衛門國里)가 죽도( 竹刀|시나이일본어 )와 보호구( 防具|보구일본어 )를 도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2] 이러한 장비의 도입은 수련자들이 더 안전하게 대련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1911년, 대일본무도회 소속의 나이토 타카하루(内藤高治)와 이소가이 하지메(磯貝肇)의 주장으로 일본 교육 제도에 검술이 채택되었고, 당시에는 격검( 擊劍|게키켄일본어 )이라 불렸으나 1920년에 검도( 剣道|겐도일본어 )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일제강점기하의 한국에는 1896년 대일본무도회 조선부(朝鮮部)가 설립되면서[3] 일본식 검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되었다. 1895년 갑오개혁 이후 한국 경찰 교육 과정에 격검( 擊劍|게키켄일본어, K. 격검)이 포함되었고, 이후 학교 교육 과정에도 도입되어 1939년부터는 필수 과목이 되었다. 당시 유명한 일본인 검도가인 모리타 세이지(持田盛二), 나카노 소우스케(中野宗助), 하가 준이치(羽賀準一), 오노 토오(小野十生) 등이 조선총독부 경찰에 검도 사범으로 부임하기도 했다. 이처럼 현대 한국 검도(Kumdo/Keomdo)는 방구, 죽도(竹刀), 도복(道着), 하카마(袴) 등 일본식 장비와 양손으로 칼을 사용하는 일본 검도의 기술 체계(면, 소태, 동, 찌르기)를 기반으로 형성되었다.
한편, 일부 한국 검도 단체에서는 검도가 삼국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한국 고유의 검술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일본 검도의 기원이 한국에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 중 하나로 명(明)나라 말기의 병학자 모원의(茅元儀)가 저술한 『무비지(武備志)』에 기록된 '조선세법(朝鮮勢法)'이 언급된다. 『무비지』에는 왜도(倭刀)를 사용하는 일본식 검술(일본 음류(陰流)에서 유래)과 함께, 양날의 장검(剣)을 사용하는 조선세법이 소개되어 있으며, 이는 모원의의 친구가 조선에서 배운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수련되는 검도(Kumdo/Keomdo)가 이러한 조선세법에서 직접적으로 유래했다거나, 일본 검도의 기원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할 명확한 역사적 증거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 후 한국에서는 일본 검도로부터의 독립적인 정체성을 확립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졌고, '검도(Keomdo)'라는 이름으로 발전해왔다.[4] 하지만 일본의 전일본검도연맹[9]과 국제검도연맹[10]은 공식적으로 검도의 기원이 일본에 있으며, 한국 측의 기원 주장은 역사적으로 잘못되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3. 철학
일본의 전통 무도에서 유래했지만, 한국 검도는 기술 연마와 승패를 넘어 정신 수양과 예절을 중시하는 무술이다. 예로부터 검도에서는 '삼례(三禮)'라 하여 국가에 대한 예, 스승에 대한 예, 상호[11] 간의 예를 중요하게 여겼다. 현대 사회에서는 건강 유지, 정신 수양, 다이어트, 스트레스 해소 등의 효과로 인해 많은 이들이 수련하고 있다.
전 세계 무술처럼 한국 검도는 현대 사회와 역사적 과거의 문화적, 철학적 사상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러한 방식으로 검도 수련의 스포츠적 측면은 수련자들의 강한 인격을 함양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강한 인격은 예의, 존중, 스포츠맨십, 공정 경쟁의 원칙을 존중하면서 열정적인 경쟁심을 기르는 데 기여한다. 검도는 현대에 유래되었지만, 검도 도장에서는 여전히 삼국 시대 신라 왕국과 관련된 "오계(五戒)"를 강조한다. 현대적인 해석은 다음과 같다.[5]
- 조국과 단체에 충실하고 충성할 것.
- 부모와 어른에게 효도하고 공경할 것.
- 친구와 동료에게 충실하고 공경할 것.
- 불의에 직면했을 때 자신감을 가지고 용기를 보일 것.
- 자비로울 것.
현대에는 경쟁에서 흔히 발생하는 어려움을 반영하여 추가적인 계율이 더해졌다. "검도의 사독(四毒)"으로 알려진 이것들은 놀라움, 두려움, 의심(또는 주저), 혼란을 포함한다. 이러한 자연스러운 반응을 꾸준히 제어하기 위해 규칙적이고 열정적인 수련이 장려된다. 마찬가지로, 검도 수련자들은 상황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고 방법을 자연스럽게 실행하는 상태인 "평상심(平常心)"을 개발하려고 한다. "기위(Kiwi)"로 알려진 또 다른 상태는 정신적, 육체적, 정신적 훈련의 상태로서 당면한 문제에 대한 명확성과 객관성을 추구한다. 그리고 잔심(殘心, "남아있는 마음")은 굳건함과 인내심에 관한 것이다.[5]
4. 경기
검도 경기는 두 명의 선수가 몸을 보호하는 장비(호구)를 착용하고 죽도를 사용하여 정해진 규칙에 따라 상대방의 특정 부위를 치거나 찔러 점수를 얻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경기는 일반적으로 도복을 입고 맨발로 하며, 심판의 판정에 따라 승패가 결정된다.
4. 1. 경기장과 용구
- '''경기장'''
- : 경기장은 가로, 세로 9m에서 11m 이내의 나무 마루나 우레탄 매트 등 평평한 지면으로 만들어진다. 경기장 바깥쪽에는 1.5m 이상의 여유 공간이 있어야 한다.
- '''용구'''


용구는 수련 및 경기에 필요한 장비들을 말한다. 도복, 죽도, 호구, 목검 등이 있다.
- * 도복(道服)
수련 및 경기 시 착용하는 복장이다. 주로 감색 또는 백색을 사용하며, 한국식 백색 도복은 하의에 검은색 세로줄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팔꿈치를 살짝 덮는 반소매 상의와 통이 넓은 긴 바지로 구성된다.
- * 죽도(竹刀)
연습 및 시합 시 주로 사용하는 칼이다. 길고 두꺼운 네 쪽의 대나무를 엮어 만든다.
- '''구조''': 손잡이 부분인 병혁(柄革)은 가죽으로 덮여 있으며, 타격부(때리는 부분)는 전체 길이의 약 3분의 1에 해당하며, 칼끝(선혁)과 경계 부위(준혁)에 가죽을 동여맨다. 코등이(tsuba|쓰바일본어, 코등이한국어)는 손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죽도의 지름은 8cm 이내여야 하며, 연령대와 성별에 따라 길이와 무게 규정이 다르다.
- '''세부 부위''':
- # '''손잡이 끝부분''': 칼의 일부이지만, 정식 경기에서는 타격 부위로 인정되지 않는다.
- # '''코등이'''(코등이한국어, tsuba|쓰바일본어): 손잡이 부분의 가드로, 손을 보호하고 근접전에서 활용되기도 한다.
- # '''칼날'''(칼날한국어): 죽도에서 타격 시 유효한 부분으로, 등줄의 반대쪽이며 코등이 앞쪽 죽도 길이의 약 3분의 2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 # '''등줄''': 코등이에서 칼끝까지 이어지는 노란색 끈으로, 칼의 등을 나타낸다.
- # '''준혁''': 유효 타격 부위의 시작점을 표시하는 가죽 띠.
- # '''선혁''': 칼의 끝부분을 감싼 가죽 마개. 찌르기는 이 부분으로만 유효하다.
- # '''병혁''': 손잡이 부분.
- # '''타돌부''': 선혁과 준혁 사이의 영역으로, 칼날의 앞쪽 3분의 1을 의미한다. 유효 타격은 이 부분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 '''규격 및 재질''': 성인용 표준 죽도는 길이가 120cm이며, 무게는 남성용 최소 510g, 여성용 최소 420g이다. 전통적으로 네 개의 대나무 조각을 가죽으로 묶어 만들지만, 최근에는 고강도 플라스틱이나 탄소 섬유로 만든 죽도도 개발되었다. 그러나 공식 시합에서는 대나무로 만든 죽도만 사용할 수 있다. 어린이 선수를 위한 작은 크기의 죽도도 있다.[6]
- * 호구(護具)
머리, 목, 손목, 허리, 가슴 등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장비이다. 일본어로는 보구(bōgu|보구일본어)라고 한다. 일정 수준의 기초 수련 과정을 거친 후에 착용하게 된다. 호구는 에도 시대에 나가누마 쿠니사토, 나카니시 타네타케 등에 의해 개발되기 시작했다.
- '''구성''':
- * 면수건(면수건한국어, tenugui|테누구이일본어): 땀 흡수 및 시야 확보를 위해 호면 안에 쓰는 면 수건.
- * 호면(호면한국어, men|멘일본어): 얼굴을 보호하는 철망이 달린 투구. 머리와 목을 보호한다.
- * 갑(갑한국어, dō|도일본어): 가슴과 허리 부분을 보호하는 보호대.
- * 갑상(갑상한국어, tare|타레일본어): 허리에 두르는, 캔버스와 가죽으로 만들어진 치마 형태로 엉덩이와 사타구니 부위를 보호한다.
- * 호완(호완한국어, kote|코테일본어): 한 쌍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손과 손목 부위를 보호하는 헝겊과 가죽으로 된 장갑.
- * 이보호대: 다른 격투 스포츠와 마찬가지로 마우스피스 사용이 강력히 권장된다.
- * 목검(木劍)
나무를 깎아 만든 칼로, 주로 본(本)이나 검법 수련 시 사용된다. 과거에는 시합에도 사용되었으나, 부상 위험(심각한 경우 사망 가능성 포함) 때문에 현재는 강철 검 대용으로 형태 연습이나 약속 대련 등 구조화된 훈련에서 주로 사용된다.
4. 2. 경기 방법 및 규칙
모든 수련과 경기는 도복을 착용하고 맨발로 진행한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은 도복만 입지만, 보통 2달 정도 수련한 후에는 호구를 착용한다. 원래는 도복 안에 속옷을 입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선수나 전문 수련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속옷을 입는다.검도에서는 모든 공격 시 큰 소리로 기합을 넣는 것이 매우 중요하며, 이는 경기의 핵심 요소이다.[12] 공격할 때는 기합을 외치거나 공격하는 부위(머리, 손목, 허리 등)를 외치는 것이 일반적이며, 경기 시작 전이나 중간에도 기합을 넣는다.
경기는 호구를 착용한 선수 두 명이 죽도를 사용하여 상대방의 특정 부위(머리, 손목, 허리)를 치거나 목을 찌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득점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세(기합), 올바른 죽도 사용, 정확한 몸놀림이 모두 일치하는 유효타격이어야 한다. 경기장은 보통 한 변의 길이가 9m에서 11m 사이인 정사각형 또는 직사각형이며, 주변에 1.5m의 안전 공간이 있다. 경기는 주심 1명과 부심 2명이 진행한다.
개인전은 3판 2선승제로 진행되며, 정해진 경기 시간(보통 5분) 안에 먼저 2판을 따내는 쪽이 승리한다. 만약 시간 내에 한쪽만 1판을 얻었을 경우, 그 선수가 승리한다. 경기 시간이 끝나도 승부가 나지 않으면 3분간 연장전을 치르며, 연장전에서는 먼저 득점하는 쪽이 승리한다. 단체전은 미리 정해진 순서에 따라 선수들이 1:1로 경기를 치러 승패를 가린다. 단체전에서 승부가 결정되지 않으면 각 팀의 대표 선수가 나와 '대표전'을 치른다. 경기 도중 경기장 밖으로 나가면 벌칙 1점이 주어지며, 벌칙 2점을 받으면 상대에게 1점을 내주게 된다. 수련 과정에서는 가끔 배우거나 지역 대회에서 볼 수 있는, 상대의 무장을 해제시킨 후 던지거나 관절을 꺾는 기술은 국제 대회에서는 허용되지 않는다. 심판들은 공격의 유효성과 선수들의 태도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깃발 신호로 판정을 내리며, 과반수의 동의가 있어야 결정이 인정된다.
한국은 3년마다 열리는 세계 검도 선수권 대회(WKC)에 꾸준히 참가하며 좋은 성적을 거두어왔다. 특히 2006년 타이페이에서 열린 제13회 세계 검도 선수권 대회에서는, 남자 단체전 결승에서 미국을 꺾고 사상 처음으로 우승을 차지했다. 이는 일본 외 국가가 WKC에서 우승한 최초의 사례로, 당시 준결승에서는 미국이 일본을 탈락시키는 이변이 있었다.[7]
경기 스타일 면에서 검도와 검무도는 차이를 보인다. 검무도 선수들은 보다 역동적이고 빠르며 공격적인 스타일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작은 기술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실제 전투 상황과 유사하게 공격 기회를 만드는 데 중점을 둔다. 반면, 검도 선수들은 완벽한 한판을 중요하게 생각하며, 결정적인 공격을 위한 정확한 기회와 타이밍을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두 종목 간의 교류와 경쟁이 늘어나면서 이러한 스타일 차이는 점차 줄어들고 있다. (검무도 심판은 파란색과 흰색 깃발을 사용하는 등 검도의 빨간색과 흰색 깃발과 약간의 차이가 있다.) 이러한 사소한 차이를 제외하면, 경기 규칙은 국내외 대회에서 검도와 검무도 단체 모두 유사하게 적용된다.
5. 단계
검도에서 수련자의 단계는 차례를 가리키는 급(級)과 단(段)으로 나누고, 각 단계에 올라 있는 수련자를 가리켜 유급자와 유단자로 칭한다. 급과 단은 모두 9단계로 나뉘며, 급은 9급부터 1급까지, 단은 1단부터 9단까지 있다.
단(段) | 수련 기간 | 제한 연령 |
---|---|---|
초단 | 1급 취득 후, 3개월 이상 | 중학교 2학년 (일본), 만 14세 (대한민국) |
2단 | 초단 취득 후, 1년 이상 | 제한 없음 (일본), 만 16세 (대한민국) |
3단 | 2단 취득 후, 2년 이상 | |
4단 | 3단 취득 후, 3년 이상 | |
5단 | 4단 취득 후, 4년 이상 | |
6단 | 5단 취득 후, 5년 이상 | |
7단 | 6단 취득 후, 6년 이상 | |
8단 | 7단 취득 후, 10년 이상 | 만 46세 (일본), 만 48세 (대한민국) |
9단 | 8단 취득 후, 10년 이상 | 만 65세 이상 |
제한 연령은 나라마다 주관하는 단체의 규정에 따라 다른데, 초단은 일본에서는 중학교 2학년 이상, 대한민국에서는 만 14세 이상이어야 한다. 2단은 일본에서는 제한 연령이 없지만, 대한민국에서는 만 16세 이상이어야 한다. 8단은 일본에서는 만 46세 이상, 대한민국에서는 만 48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13][14]
5단 이상의 경지에 오른 검도인 중에서 다른 수련자들에게 귀감이 되는 이에게는 연사(錬士|렌시일본어), 교사(教士|쿄시일본어), 범사(範士|한시일본어)의 칭호를 부여한다.
검도 수련자는 가장 낮은 단계인 9급부터 시작하여 1급까지 실력과 지식을 향상시킨다. 승급 요건은 도장이나 소속 단체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급 단계의 목표는 수련자에게 기본적인 체력 단련, 신체 움직임, 전략 및 경쟁에 대한 기본기를 가르치는 것이다. 급 단계를 마친 수련자는 1단부터 시작하는 단이라고 하는 고급 단계를 통해 계속해서 발전할 수 있다. 단 단계로 승급하기 위해서는 필수 시험을 통과하고 경쟁에서 실력을 보여주어야 하며, 이는 도장 및 단체의 간부들에 의해 면밀히 관찰되고 평가된다.
6. 현대 검도
현대 검도는 일본의 전통 무도에서 유래한 한국의 스포츠 중 하나이다. 남녀노소 누구나 평생 할 수 있는 운동으로, 정해진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죽도(竹刀, 대나무 칼)를 사용하여 상대방의 특정 부위를 찌르거나 쳐서 승패를 겨루는 무술이다. 단순히 기술을 익혀 상대를 이기는 것뿐만 아니라, 정신 수양과 예절을 갖추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예로부터 검도에서는 예의범절을 중시하여 '삼례'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국가에 대한 예, 스승에 대한 예, 상호[11] 간의 예를 의미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건강 유지의 좋은 방법으로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특히 정신 수양, 다이어트, 손발 지압 효과, 그리고 기합과 타격을 통한 스트레스 해소 등에 뛰어난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6. 1. 타 무술과의 비교
검도와 검무도의 주요 차이점은 경기 스타일에서 나타난다. 검무도 선수들은 일반적으로 역동적이고 빠르며 공격적인 작은 동작의 타격을 선호하여, 실전과 유사한 상황을 만들어 공격 기회를 창출하는 데 중점을 둔다. 반면, 검도(Kendo) 선수들은 완벽한 단일 타격에 집중하며 결정적인 공격을 위한 기회와 적절한 타이밍을 기다리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최근 두 무술 간의 교류와 경쟁이 빈번해지면서 이러한 스타일 차이는 다소 모호해지고 있으며, 선수 개인의 선호에 따른 다양한 경기 스타일이 나타나고 있다. 경기 규칙은 대부분 유사하지만, 예를 들어 검무도 심판은 파란색과 흰색 깃발을 사용하는 반면 검도(Kendo) 심판은 빨간색과 흰색 깃발을 사용하는 등 사소한 차이가 존재한다.검도는 일본에서 유래한 검도(Kendo)와 관련이 있지만, 기술과 목표에서 차이를 보인다. 일본의 검도(Kendo)는 비교적 통일된 형태로 수련되며 스포츠적인 측면이 강조되어, 정해진 표적 부위를 빠르고 정확하게 타격하여 점수를 얻는 데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에 비해 한국의 검도는 더 넓은 범위의 기술과 다양한 스타일을 포괄하는 특징을 지닌다.
해동검도는 역동적이면서도 아름다운 검술 형(形)을 포함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고대 전장에서 사용되었던 유려하고 실전적인 검의 움직임을 반영한 것이다.
한편, 발차기와 손기술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 고유의 무술인 태권도는 검이나 목검 등 무기를 사용하는 검도나 검도(Kendo)와는 기술 체계에서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도, 해동검도, 검도(Kendo), 태권도는 모두 정신 수련, 예의범절, 그리고 전통을 중시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특히 유교 사상의 영향을 받아 인내와 전통에 대한 존중이라는 가치를 공유하며, 수련 과정에서 높은 수준의 신체 단련과 정신 수양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찾을 수 있다.[7]
7. 용어
검도는 한국 고유의 용어를 주로 사용하지만, 많은 용어가 일본 검도에서 유래한 용어와 한자 어원이 동일하다. 예를 들어, 유효 타격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인 기검체(氣劍體)는 일본 검도의 '기켄타이잇치'(気剣体一致)와 같은 한자어에서 유래했다. 기검체는 '기'(氣, 정신), '검'(劍, 칼), '체'(體, 몸)가 일치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아래 표는 한국 검도와 일본 검도에서 사용되는 주요 용어와 해당 한자를 비교한 것이다. 일부 한자의 모양이 약간 다른 것은 일본에서 신자체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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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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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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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Apologetic for the DNBK
2002-11-2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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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서적
HwaRang Keomdo Association Student Manual
USA Hwarang Kumdo Assoc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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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HwaRang Kumdo Association Student Manual
USA Hwarang Kumdo Association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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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th Korea crowned team kendo champ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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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ipei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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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논문
Temperament and Character in Mexican Practitioners of Haidong Gumdo (Korean Sword): A Psychobiological Perspective on Personality.
https://www.scipedia[...]
2024-12-08
[9]
웹사이트
剣道に関する全剣連の見解 | 剣道を知る | 全日本剣道連盟
https://www.kendo.or[...]
[10]
웹사이트
国際剣道連盟 剣道の歴史(英語)
http://www.kendo-fik[...]
[11]
기타
운동을 함께하는 사람들
[12]
기타
예: 얏!, 머리!, 손목!, 허리!, 찌름!
[13]
웹인용
剣道称号・段位審査規則 - 段位の審査
http://www.kendo.or.[...]
2007-12-09
[14]
웹인용
대한검도회 심사규정 - 제11 조(심사자격의 제한)
http://www.kumdos.or[...]
2007-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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