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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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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오이강은 일본 남알프스에서 발원하여 스루가만으로 흘러드는 강으로, 시즈오카현을 관통한다. 과거에는 도카이도의 난관으로 여겨졌으며, 현재는 수력 발전과 오이가와 철도 관광 노선으로 유명하다. 오이가와는 수력 발전 개발로 유량이 감소했으나, '물을 돌려줘' 운동을 통해 하천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리니어 중앙 신칸센 건설로 인한 유량 감소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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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강
지도 정보
기본 정보
오이 강 상류와 스마타 강의 합류 지점
오이 강 상류와 스마타 강의 합류 지점.
하천 등급1급 하천
지리
발원지아카이시 산맥, 아이노 산(일본)
발원지 표고3,189m
하구스루가 만
하구 표고0m
길이168km
유역 면적1,280km2
수문 정보
평균 방류량76.40m³/s
시설
다시로 댐
교량호라이 다리

2. 지리

오이강은 아카이시 산맥에서 발원하며, 이 산맥은 시즈오카현, 나가노현, 야마나시현의 경계를 이루는 일본 남알프스의 지맥이다. 해발 2000m에서 3000m에 이르는 봉우리들이 있는 이 산맥은 연간 3000mm에 달하는 많은 강수량과 깊은 V자형 계곡이 특징이다. 오이강은 대체로 남쪽으로 흐르며, 중류 지역에서 일곱 번의 넓은 굽이를 이루며 필리핀해스루가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남알프스 남부, 시즈오카현, 나가노현, 야마나시현의 현 경계 부근에 있는 아이노다케에서 발원하여, 아카이시 산맥과 시라네 산맥 사이를 남하한다. 시즈오카현 야이즈시 오이가와와 하바라군 요시다정의 경계에서 스루가만으로 흘러든다.

셋소 협곡
오이가와 철도 이가와선 차내에서 촬영


도카이도의 오이가와에서 강을 건너는 지점.
과거에는 촬영 지점과 강 건너편의 강변도 수면 아래에 있었다.

2. 1. 유역의 자치단체

시즈오카현의 자치단체
시즈오카시, 하바라군 가와네혼초, 시마다시, 후지에다시, 야이즈시, 하바라군 요시다초


3. 명칭 유래

옛날에는 샘물을 "우물"이라고, 용수로나 흐름을 "우물물"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오이강은 "위대한 물", "큰 물의 흐름"이라는 의미를 가진 상서로운 지명으로 여겨진다. 오이가와라는 이름은 이미 『일본서기』에 등장하며, 에도 시대에는 전국에 알려져 있었다[1].

4. 역사

오이강은 나라 시대 기록에서 도토미스루가국의 경계를 이루는 강으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수 세기에 걸쳐 강줄기가 바뀌면서 무로마치 시대 말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에도 시대 도카이도는 에도교토를 연결하는 주요 간선 도로로 발전했고, 서부 의 ''다이묘''들은 ''산킨코타이'' 제도에 따라 정기적으로 에도에 가서 ''쇼군''에게 출석해야 했다. 그러나 도쿠가와 막부는 보안 조치로 주요 강에 다리를 건설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오이강의 경우 나룻배조차 금지되었다. 호쿠사이 등 당시 예술가들의 ''우키요에'' 판화에 묘사된 것처럼, 여행자들은 짐꾼의 어깨나 말을 타고 강을 건넜다. 악천후나 높은 수위의 경우, 시마다주쿠 또는 가나야주쿠와 같은 역참에서 며칠(또는 심지어 몇 주) 동안 강가에 머물러야 했다.

이 때문에 오이강은 도카이도의 가장 어려운 부분으로 여겨졌다. 잘 알려진 가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箱根八里は馬でも越すが、越すに越されぬ大井川

:''하코네 8리는 말이라도 넘지만, 넘을 수 없는 오이강''

:말도 리 8리 (31km)의 하코네를 건널 수 있지만, 오이강은 어떤 방법으로도 건너기 어렵다.

메이지 유신 직후 오이강에는 다리가 건설되었는데, 특히 1879년 호라이 다리가 건설되었으며 (이 다리는 기네스 북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긴 목조 보행자 다리로 등재되었다), 다른 도로 및 철도 다리도 건설되었다. 오늘날 도카이도 신칸센 급행 열차는 몇 초 만에 이 강을 건넌다.

4. 1. 유로 변경과 국경

나라 시대 기록에서 오이강은 도토미스루가국의 경계를 이루는 강으로 언급되었다. 그러나 수 세기에 걸쳐 강줄기가 바뀌면서 무로마치 시대 말기에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2]

에도 시대 동안 도카이도는 에도교토를 연결하는 주요 간선 도로로 발전했고, 서부 의 ''다이묘''들은 ''산킨코타이'' 제도에 따라 정기적으로 에도에 가서 ''쇼군''에게 출석해야 했다. 그러나 도쿠가와 막부는 보안 조치로 주요 강에 다리를 건설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오이강의 경우 나룻배조차 금지되었다. 호쿠사이와 같은 예술가들의 동시대 ''우키요에'' 판화에 묘사된 것처럼, 여행자들은 짐꾼의 어깨나 말을 타고 강을 건넜다. 악천후나 높은 수위의 경우, 그들은 시마다주쿠 또는 가나야주쿠와 같은 역참에서 며칠(또는 심지어 몇 주) 동안 강가에 머물러야 했다.

이 때문에 오이강은 도카이도의 가장 어려운 부분으로 여겨졌다. 잘 알려진 가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箱根八里は馬でも越すが、越すに越されぬ大井川

:''하코네 8리는 말이라도 넘지만, 넘을 수 없는 오이강''

:말도 리 8리 (31km)의 하코네를 건널 수 있지만, 오이강은 어떤 방법으로도 건너기 어렵다.

이 강은 메이지 유신 직후에 다리가 건설되었는데, 특히 1879년 호라이 다리가 건설되었으며 (이 다리는 기네스 북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긴 목조 보행자 다리로 등재되었다), 다른 도로 및 철도 다리도 건설되었다. 오늘날 도카이도 신칸센 급행 열차는 몇 초 만에 이 강을 건넌다.

4. 2. 근세・근대의 치수

나라 시대 기록에서 도토미스루가국의 경계를 이루는 강으로 언급되었던 오이강은, 무로마치 시대 말기에는 수 세기에 걸쳐 강줄기가 바뀌면서 그 경계가 모호해졌다.

우타가와 히로시게 『후지 36경』「스루가・토토미 오이가와」(1858년)


1590년(덴쇼 18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오다와라 정벌도요토미 히데요시로부터 간토 이봉을 명령받았다. 이후, 스루가에는 나카무라 가즈우지슨푸성 성주로, 토토미에는 호리오 요시하루가 하마마츠성 12만 석, 야마우치 가즈토요가케가와성 6만 석으로 영유하는 등 히데요시의 가신들이 배치되었다. 이는 이에야스를 견제하기 위한 히데요시의 도카이도 봉쇄 정책의 일환이었다. 같은 해, 나카무라 가즈우지, 야마우치 가즈토요 등에 의해 우시오산 동쪽을 굴착하여 오이가와의 유로를 동쪽으로 변경하는 '''덴쇼의 세가에'''가 행해졌다.

1600년(게이초 5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도카이도 방면의 다이묘는 히데요시의 의도와 달리 모두 동군・도쿠가와 측에 섰다. 전후, 가즈토요가 도사로 전봉된 것을 시작으로, 호리오・나카무라 등의 다이묘는 서일본으로 전봉되었다. 그 후 도카이도 방면은 천령・친번・후다이 다이묘로 굳혀져 에도의 방위에 충당되었다.

에도 시대 동안 도쿠가와 막부는 보안 조치로 주요 강에 다리를 건설하는 것을 금지했으며, 오이강의 경우 나룻배조차 금지되었다. 이 때문에, 오이가와에 관해서는 에도와 슨푸성의 방위[3]를 위해 가교는 물론이고 뱃사공도 엄금되었다. 다이묘・서민을 불문하고, 오이가와를 도하할 때에는 강찰을 사서 말이나 인부를 이용하여 가마나 어깨에 메는 가마로 도하하는 '''가와고에'''(가와고시)가 행해졌다.[3]

가쓰시카 호쿠사이후가쿠 36경』「도카이도 가나야노 후지」(1830년대)


우키요에 판화에 묘사된 것처럼, 여행자들은 짐꾼의 어깨나 말을 타고 강을 건넜다. 악천후나 높은 수위의 경우, 그들은 시마다주쿠 또는 가나야주쿠와 같은 역참에서 며칠(또는 심지어 몇 주) 동안 강가에 머물러야 했다. 이 때문에 오이강은 도카이도의 가장 어려운 부분으로 여겨졌으며, "''하코네 팔리는 말로도 넘지만, 넘을 수 없는 오이가와''"[4]라는 가사가 생겨났다.

1696년(겐로쿠 9년), 막부는 강의 양쪽에 강 회소를 설치하고, 도섭 제도의 관리를 위해 2명에서 4명의 강 촌장을 두었다. 강 회소는 시마다와 가나야에 설치되어, 각각 오이가와를 도하하는 거점의 숙장 마을이 되어 번성했다. 강 회소는 에도의 도중봉행의 직할로서, 매일 강의 깊이를 계측하여 에도에 비각으로 보고했을 뿐만 아니라, 가와고에 요금과 도하의 순번을 할당했다. 특히 홍수의 경우에는 가와도메가 행해졌다. 수심 4척 5촌(1.5m)을 넘으면 전면적으로 도하가 금지되었다.

오이가와에 걸린 다리


메이지 유신 직후, 오이강에는 다리가 건설되었는데, 특히 1879년 호라이 다리가 건설되었으며 (이 다리는 기네스 북에 의해 세계에서 가장 긴 목조 보행자 다리로 등재되었다), 다른 도로 및 철도 다리도 건설되었다. 1898년 (메이지 31년)에 "하천 시공 규칙"이 시행되자 오이가와는 내무성에 의한 직할 공사 대상의 하천이 되었다. 같은 해부터 고수부지의 치수 정비가 내무성 직할 사업으로 행해져, 1902년 (메이지 35년)에는 일단락되었다.

4. 3. 임업과 강 사냥

오이강 지류인 스마타강 유역의 삼림은 에도 시대슨푸성, 아사마 신사, 에도성 혼마루, 간에이 사 등의 용재로 사용하기 위해 대규모로 벌채되었으며, 오이강을 통해 목재 수송이 이루어졌다. 오이강은 강폭이 좁아 뗏목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10여 명의 인부들이 나무 토막을 능숙하게 운송했다(이것을 강 사냥이라고 한다). 특히 둑(뎃포제키)으로 강의 물을 막아두었다가 모아둔 물과 목재를 한꺼번에 하류로 흘려보내는 방법을 뎃포다시라고 한다.

1958년(쇼와 33년)에 이가와 임도가 개통되면서 대규모의 강 사냥은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다. 뎃포다시는 1967년(쇼와 42년)을 마지막으로 행해지지 않게 되었다.

4. 4. 오이가와 수력 발전 개발

메이지 정부는 20세기 초 오이강 유역의 수력 발전 잠재력을 인지했다. 오이강은 유량이 많고 급류가 특징이며, 상류와 지류는 가파른 계곡과 풍부한 강수량을 보였고 인구 밀도가 낮았다.[1]

1906년 영일 양국의 민간 자본으로 Anglo-Japanese Hydroelectric Company영어(영일수력전기) 합작회사가 설립되어 오이강과 후지강의 잠재력을 활용하기 위한 연구 및 설계에 착수했고, 1911년 소규모 발전소가 건설되었다. 그러나 기소강과 텐류강에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졌고, 회사는 번창하지 못했다. 1921년까지 영국의 지분이 매각되었고, 회사는 早川電力|하야카와 덴료쿠일본어로 변경되었다. 1924년 다시로 댐 공사가 시작되어 1928년 완공되었다.[1] 1925년 하야카와 덴료쿠는 도쿄 전력의 자회사가 되었고, 1938년 국유화되어 日本発送電株式会社|일본 송전 주식회사일본어가 되기 전 오이가와 덴료쿠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1930년대 초, 오이가와 덴료쿠는 오이강 지류에 여러 댐을 완공했지만, 대공황제2차 세계 대전으로 작업이 중단되었다.[1]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미국 점령 당국은 일본 송전의 해체를 명령했고, 중앙 일본은 주부 전력 산하로 편입되어 오이강의 다양한 댐과 프로젝트(다시로 댐 제외)를 인수했다. 주부 전력은 국제 연합의 해외 원조 차관을 통해 새로운 댐 기술을 도입, 1950년대1960년대 초에 여러 대형 댐을 완공했다. 이 댐들은 강물의 흐름을 변화시켜 강 어귀 근처 하류는 거의 말라버렸다.[1]

1902년 영일 동맹으로 영국 자본이 일본 경제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1906년 영일 양국 민간 자본에 의한 수력 발전 사업이 계획되어, '''영일수력발전 주식회사''' 설립 준비가 진행되었으나, 1911년 영국 자본이 철수하고 일본 단독으로 사업이 진행되었다. 같은 해 영일수전이 설립되어 오이가와 수계 최초의 수력 발전소인 '''코야마 발전소'''(인가 출력: 1400kW, 현재는 폐지)가 가동되었다. 당시 기소강, 덴류강 등에서 전원 개발이 활발했고, 전력 회사 합병이 반복되었다. 1921년 영일수전이 하야카와 전력에 흡수 합병되었고, 1925년 하야카와 전력은 도쿄 전력(도호 전력 산하, 현재의 도쿄 전력과는 다름)에 합병되어 '''오이가와 전력'''이 되었다.[2]

쇼와 시대에 들어서면서 오이가와 수계에서 댐식 발전소에 의한 수력 발전이 이루어졌다. 1927년 오이가와 본천 수원부에 다시로 댐이 완공되었고, 다시로 제1 발전소 (인가 출력: 6800kW)·다시로 제2 발전소 (인가 출력: 21000kW)가 가동되었다. 이 다시로 댐은 후지강 수계 하야카와 호리사와 댐으로 도수, 오이가와와 후지강을 넘나드는 수력 발전이 이루어졌다. 이후 오이가와 수계 지류인 스마타강이 후지 전력에 의해 개발되어, 1935년 최상류부에 센즈 댐이 완공되었고 1936년에는 스마타강 댐이 완공되었다. 센즈 댐은 전전(戰前) 시대 오이가와 수계 최대 댐이었다. 1938년 전시 체제에서 "전력 관리법" 시행으로 일본 발송전(닛파츠)이 발족, 전국의 전력 회사가 강제 흡수 합병되었다. 오이가와 전력, 후지 전력도 닛파츠에 흡수되었다.[2]

패전 후, 전력 부족 해소를 위해 전원 개발이 국책으로 추진되었다. 닛파츠는 오이가와에 대규모 댐식 발전소를 건설하려 했다. 당시 시즈오카현은 하천 종합 개발 사업으로 "오이가와 종합 개발 계획"을 추진, 오이가와에서도 종합 개발이 진행되었다. 1951년 연합군 최고 사령부(GHQ)는 닛파츠를 분할·민영화, 오이가와 수계 발전 시설은 '''주부 전력'''에 다시로 댐 외 모든 것이 계승되었다. 닛파츠 계획을 계속 추진, 이가와 지점과 오쿠이즈미 지점에 댐식 발전소 건설을 계획했다.[2]

주부 전력은 해외 기술 고문단(OCI) 조언으로 이가와 지점에 일본 최초 중공 중력식 콘크리트 댐 건설을 계획했다. 이탈리아에 관계자를 파견, 기술을 배워 '''이가와 댐'''을 1957년 완공했다. 전 해에는 오쿠이즈미 댐이 완공, 오이가와 수계에 댐이 많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1961년 하타나기 제2 댐, 1962년 '''하타나기 제1 댐'''이 완공되었다. 하타나기 제1 댐은 세계 최대 중공 중력식 댐이며, 하타나기 제1 발전소는 인가 출력 137000kW로 오이가와 수계 최대 출력이다.[2]

1990년 하타나기 제1 댐 상류 사와강에 아카이시 댐이 건설된 것이 오이가와 전력 회사 관리 댐의 마지막 예이다. 오이가와 전체 발전소 총 인가 출력은 715700kW로 순 양수 발전소가 없는 하천으로는 전국 최고 수준이다. 2001년 하타나기 제2 댐 하천 유지 방류를 이용한 히가시카와 발전소 (인가 출력: 170kW)가 가동되었다.[2]

4. 5. 오이가와 철도 부설

오이가와 전력이 댐식 발전소 건설을 본격화하면서 자재 운반을 위한 인프라 정비가 필요했다. 오이강은 급류인데다 상류는 험준한 협곡이어서 인력이나 말로는 대량 수송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철도를 이용한 물자 운반이 필요하다고 판단되었다.

철도 노선은 과거 도카이도의 역참 마을이었던 가나야를 기점으로 건설되어, 1927년 가나야역에서 요코오카역(폐지) 간 6.5km가 개통되었다.[8] 이후 스마타강 유역의 전원 개발 계획이 진행되면서 합류점인 센즈까지 연장하는 계획이 세워져, 1931년에는 가나야역 - 센즈역 간 39.5km가 개통되었다. 이에 따라 센즈 댐이나 스마타 강 댐 건설을 위한 물자가 철도로 수송되었고, 댐 건설에 따른 유목 보상에도 철도가 이용되어 목재 수송도 이루어졌다. 또한, 연선 주민들의 교통 수단으로도 이용되기 시작했다.

전후에는 오이가와 철도로 독립했지만, 댐 건설 물자 수송 역할은 계속되었다. 1951년 이카와 댐, 오쿠이즈미 댐 건설 사업이 시작되면서 셋소쿄를 안전하게 수송하기 위한 노선 정비가 이루어졌고, 센즈역에서 이카와까지 연장 사업이 시작되었다. 1954년 완성된 이 노선이 '''오이가와 철도 이카와선'''이며, 현재의 가나야 - 이카와 간이 전선 개통되었다.

1957년 이카와 댐이 완성된 후에는 지역의 중요한 교통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이카와선은 주부 전력이 소유하고, 운영은 오이가와 철도가 담당하고 있다.

전원 개발 사업 종료 후, 지역의 중요한 교통 수단으로 이용되었지만 모터리제이션의 발달로 경영난을 겪으며 다른 로컬선처럼 적자 노선으로 전락했다. 1969년 나고야 철도 산하에 들어가 경영 재건에 힘썼지만, 1972년에는 적자 노선에 대한 국고 보조 대상 노선으로까지 떨어졌다. 이 무렵 철도 폐지가 검토되기 시작했지만, 1976년 전국적으로 폐지된 증기 기관차(SL)를 가나야 - 센즈 간에 도입했다. 이는 폐지 위기에 놓인 철도 노선 경영에 큰 경제적 효과를 가져왔고, SL을 보러 오는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하면서 오이가와 철도의 경영은 점차 회복되었다. 그 결과 1978년 노선 존속이 정식 결정되었고, 1980년에는 결손 보조금 대상에서도 제외되어 경영 재건을 이루었다.

1990년 이카와선은 나가시마 댐 건설로 인해 셋소쿄를 지나는 구간이 수몰될 위기에 처하면서 다시 폐지 위기에 놓였다. 대체 선로에서는 센즈에서 셋소쿄까지 경사가 급해 운전이 불가능한 상태였기 때문에 아프트식 철도를 도입했다. 아프트 이치시로역에서 전기 기관차를 연결하여 나가시마 댐역까지 급경사를 오르내리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이 아프트식 철도 도입은 1963년 신에쓰 본선 요코카와역 - 가루이자와역우스이 고개의 아프트식 철도가 폐지된 이후 "부활"한 것이라 더욱 주목받았다.

이처럼 오이가와 철도는 근대 철도가 버린 것을 활용하여 독자적인 존재감을 보이며 인기를 얻고 있다. 이카와선은 적자이지만, 주부 전력의 보조금으로 적자를 메우고 있다.

4. 6. 오이가와 용수 사업

1947년(쇼와 22년), 농림성(현 농림수산성)은 "국영 농업 수리 사업"을 전개했다.[9] 이 사업은 농업용 댐을 하천에 건설하여 수원으로 삼고, 하류에 두수공을 설치하여 취수한 물을 용수로로 농지에 공급하여 농작물 생산량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했다. 농림성은 가코가와, 야스가와, 구즈류가와, 오이가와 등 4개 수계・하천을 국영 농업 수리 사업 대상 하천으로 지정하고 대규모 관개 사업을 시작했다.

"국영 오이가와 농업 수리 사업"은 오이가와 양안의 농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9] 주부 전력이 관리하는 사사마가와 댐을 취수원으로 하는 가와구치 발전소를 이용하고, 이 발전소에 부설된 가와구치 취수구를 수원으로 삼았다. 여기서 취수된 물은 오이가와 수로교를 통해 시마다시의 신자 분수공으로 이동하여 오이가와 좌안 간선과 오이가와 우안 간선으로 나뉜다.

오이가와 좌안 간선은 아카마쓰 간선, 무카이타니 간선, 시다신 간선, 하라이치 간선, 세토가와 간선 등 5개의 간선 용수로로 분기되며, 각 간선 수로는 다시 지선 용수로로 세분화된다. 야이즈시, 후지에다시, 시마다시, 마키노하라시, 하라이치군 요시다정이 공급 대상 지역이다.[9]

오이가와 우안 간선은 신자 분수공에서 오가사 간선이 분기된 후 가케가와 간선, 기쿠가와 간선, 기쿠가와 우안 간선, 기쿠가와 좌안 간선의 4개 간선 용수로로 분기되고, 다시 각각의 지선 용수로로 분기된다. 우안 용수는 기쿠가와 수계를 통해 이용되며, 기쿠가와 본류에 기쿠가와 두수공을 건설하여 용수를 보급한다. 공급 대상 지역은 가케가와시, 후쿠로이시, 기쿠가와시, 오마에자키시이다.[9]

이 두 용수로를 통해 11,588ha의 농지가 혜택을 받게 되었으며, 오이가와 용수는 1968년(쇼와 43년)에 완성되었다.[9]

오이가와 용수는 본래 목적인 농업용수 공급 외에도 방화 용수, 환경 유지 용수, 친수 목적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고도 경제 성장 이후 급속한 인구 증가로 상수도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시즈오카현 오이가와 광역 수도 사업단은 오이가와 용수를 이용한 상수도 공급을 실시하고 있으며, 공업 용수도 역시 오이가와 용수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농업용수의 타 목적 전용은 금지되어 있어, 2006년(헤이세이 18년)을 목표로 전용 절차가 진행 중이다. 또한 용수 시설 노후화로 인한 누수 문제가 발생하여, 1999년(헤이세이 11년) 농림수산성은 시즈오카현과 공동으로 "국영 오이가와 용수 농업 수리 사업"을 시행하여 2017년(헤이세이 29년)에 완료했다.[9]

4. 7. 전후의 치수

20세기 초, 메이지 정부는 오이강 유역의 수력 발전에 주목했다. 오이강은 유량이 많고 급류를 이루는 특징을 가지고 있었고, 강 상류와 지류는 가파른 계곡과 풍부한 강수량을 보이는 지역이었으며 인구 밀도가 낮았다.

1906년 민간 투자자들과 함께 합작 회사인 日英水力電気|영일 수력 전기일본어가 설립되어 오이강 개발을 시작했다. 1911년에는 소규모 발전소가 건설되었으나, 기소강과 텐류강에 밀려 회사는 어려움을 겪었다. 1921년 영국 지분이 매각되고, 회사 이름을 早川電力|하야카와 덴료쿠일본어로 변경했다. 1928년 다시로 댐이 완공되었다. 1938년에는 국유화되어 日本発送電株式会社|일본 송전 주식회사일본어가 되었다. 1930년대 초, 오이가와 덴료쿠는 오이강 지류에 여러 댐을 완공했지만, 대공황제2차 세계 대전으로 작업이 중단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후, 미국 점령 당국은 일본 송전을 해체하고 지역 전력 회사로 분할했다. 중앙 일본은 주부 전력 산하로 편입되었으며, 오이강의 다양한 댐과 프로젝트(다시로 댐 제외)를 인수했다. 주부 전력은 국제 연합의 해외 원조 차관을 통해 새로운 댐 기술을 도입하여 1950년대와 1960년대 초에 여러 대형 댐을 완공했다. 그러나 이 댐들은 강물의 흐름을 변화시켜 하류를 거의 말라버리게 했다.

전후에도 제방 건설 및 개수를 중심으로 한 고수부지 개수가 주류였다. 1954년 9월 홍수를 계기로 본격적인 개수가 요구되었고, 1967년 5월에는 '''1급 수계'''로 지정되어 수계 일관의 치수 계획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1974년 3월 "'''오이가와 수계 공사 실시 기본 계획'''"이 수립되었으나, 칠석 호우로 인해 계획이 개정되었다.[1]

1971년부터 예비 조사가 진행되고 있던 나가시마 댐 계획이 정식 사업으로 추진되었다. 그러나 댐 건설에는 수몰 지역 주민과 하류 주민들의 반대가 있었다. 건설성(현 국토교통성)은 수원 지역 대책 특별 조치법 지정 및 유수 부활을 위한 중재 등을 통해 사업을 추진, 2000년에 나가시마 댐을 완공했다. 나가시마 댐은 치수, 용수 공급, 관광 등 다양한 역할을 하고 있다.[1]

도카이 지진에 의한 쓰나미 대책도 이루어지고 있다. 오이가와 유역은 "'''도카이 지진에 관한 지진 방재 대책 강화 지역'''" 및 "'''도난카이·난카이 지진 방재 대책 추진 지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과거 니가타 지진, 도카치 오키 지진, 동일본 대지진 등에서 확인된 쓰나미 피해를 방지하기 위한 제방 보강 등의 대책이 실시되고 있다.[1]

현재 "오이가와 수계 공사 실시 기본 계획"을 대체하는 새로운 오이가와 치수 계획인 "'''오이가와 수계 하천 정비 계획'''"이 수립 중이다.[1]

5. 오이가와의 재생을 위한 노력

오이가와 강은 수력 발전과 관개에 이용되어 유역뿐만 아니라 다른 현에도 큰 공헌을 해왔지만, 그 대가로 유수 감소 및 단절 문제가 발생했다. 특히 1961년 시오고 댐 완공 이후[10] 댐 하류 20km 구간이 완전히 물이 끊기는 무수 구간이 되어 어업과 하천 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이에 유역 주민들은 "오이가와의 맑은 물을 되돌려 달라"며 "'''물을 돌려줘 운동'''"을 시작했다.

1975년 오이가와의 발전용 수리권 갱신 때, 시즈오카현은 도쿄 전력과 주부 전력에 수리권 반환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1986년 시오고 댐의 수리권 갱신을 앞두고 주민들의 "물 돌려줘 운동"은 더욱 거세졌다. 혼카와네정, 나카가와네정, 가와네정 (당시 3개 정)은 시즈오카현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주민들은 결의 대회를 개최하는 등 압력을 가했다.

당시 시즈오카현 지사였던 사이토 시게요시는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주부 전력에 수리권 일부 반환을 요구했다. 1987년 4월, 주부 전력은 시오고 댐 등에서 하천 유지 방류를 실시하여 25년 만에 오이가와에 물이 흐르게 되었다. 그러나 주민들은 만족하지 않았고, 1989년 2월에는 오이가와 하천 부지에서 1,000명이 모여 결의 대회를 개최했다. 결국 주부 전력은 추가적인 수리권 반환을 표명했다.

시오고 댐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최상류부 다시로 댐의 수리권 문제는 도쿄 전력의 거부로 해결되지 않았다. 2005년 다시로 댐 수리권 갱신을 앞두고 유역 자치단체는 발전용 수리권 일부 반환을 요구했다. 야마나시현까지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에 국토교통성 등이 참여하는 협의회가 결성되었다.

1997년 하천법 개정으로 하천 환경 유지가 중요 목표로 제시되면서,[11] 도쿄 전력은 수리권 일부 반환에 합의했다. 그러나 방류량에 대한 교섭은 불발되었고, 유역 주민들은 2만 명의 서명을 모아 방류량 증액을 요구했다. 결국 도쿄 전력은 '''매초 0.43 - 1.49톤[12]의 방류, 수리권의 10년 갱신'''을 제시했고, 11월 28일 교섭이 타결되었다.

2006년부터 다시로 댐에서 시험 방류가 실시되고 있다. 시오고 댐 완공 45년 만에 오이가와의 무수 구간은 해소되었지만, "'''강변 사막'''"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과거의 오이가와 부활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5. 1. 유수 감소 문제와 '물을 돌려줘' 운동

오이가와 강은 수력 발전과 관개에 이용되어 유역뿐만 아니라 다른 현에도 큰 공헌을 해왔다. 그러나 그 대가로 유수 감소 및 단절 문제가 발생했다.

1960년대까지 오이가와 수계에는 여러 댐과 보가 건설되었고, 이로 인해 오이가와 본류로 직접 방류되는 물이 극단적으로 줄어들었다. 특히 1961년 시오고 댐 완공 이후[10] 댐 하류 20km 구간이 완전히 물이 끊기는 무수 구간이 되어 어업과 하천 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과거 평균 수심 76cm였던 오이가와의 모습은 사라지고, "사이가와라"만이 남았다. 강가에서는 바람에 모래가 날려 "'''강가 사막'''"이라 불릴 정도였다. 또한, 차의 해충 증가, 해안선 침식 등의 피해도 발생했다.

이러한 상황에 유역 주민들은 "오이가와의 맑은 물을 되돌려 달라"며 "'''물을 돌려줘 운동'''"을 시작했다.

1975년 오이가와의 발전용 수리권 갱신 때, 시즈오카현은 도쿄 전력과 주부 전력에 수리권 반환을 요구했으나 거부당했다. 1976년 시오고 댐에서 잠정 방류가 실시되었지만, 무수 구간은 해소되지 않았다.

1986년 시오고 댐의 수리권 갱신을 앞두고 주민들의 "물 돌려줘 운동"은 더욱 거세졌다. 혼카와네정, 나카가와네정, 가와네정 (당시 3개 정)은 시즈오카현에 진정서를 제출하고, 주민들은 결의 대회를 개최하는 등 압력을 가했다.

당시 시즈오카현 지사였던 사이토 시게요시는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주부 전력에 수리권 일부 반환을 요구했다. 1987년 4월, 주부 전력은 시오고 댐에서 매초 3톤, 오이가와 댐에서 매초 1톤, 스마타가와 댐군에서 매초 0.6 - 0.7톤의 하천 유지 방류를 실시하여 25년 만에 오이가와에 물이 흐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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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주민들은 만족하지 않았고, 1989년 2월에는 오이가와 하천 부지에서 1,000명이 모여 결의 대회를 개최했다. 결국 주부 전력은 "'''통년 방류량 매초 3톤, 농번기 방류량 매초 5톤'''"의 수리권 반환을 표명했다.

시오고 댐 문제는 해결되었지만, 최상류부 다시로 댐의 수리권 문제는 도쿄 전력의 거부로 해결되지 않았다. 2005년 다시로 댐 수리권 갱신을 앞두고 유역 자치단체는 발전용 수리권 일부 반환을 요구했다. 야마나시현까지 관련된 문제였기 때문에 국토교통성, 시즈오카현, 야마나시현, 오이가와 유역 자치단체, 도쿄 전력 5자 간의 "'''오이가와 수리 유량 조정 협의회'''"가 결성되었다.

1997년 하천법 개정으로 하천 환경 유지가 중요 목표로 제시되면서,[11] 도쿄 전력은 수리권 일부 반환에 합의했다. 그러나 방류량에 대한 교섭은 불발되었고, 유역 주민들은 2만 명의 서명을 모아 방류량 증액을 요구했다. 결국 도쿄 전력은 '''매초 0.43 - 1.49톤[12]의 방류, 수리권의 10년 갱신'''을 제시했고, 11월 28일 교섭이 타결되었다.

2006년부터 다시로 댐에서 매초 0.43톤의 시험 방류가 실시되고 있다. 시오고 댐 완공 45년 만에 오이가와의 무수 구간은 해소되었지만, "'''강변 사막'''"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고, 과거의 오이가와 부활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

5. 2. 리니어 중앙 신칸센 공사의 영향

도카이 여객철도(JR 도카이)가 추진하는 리니어 중앙 신칸센의 남알프스 터널 공사로 인해 오이강 상류의 유량이 최대 매초 2톤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JR 도카이는 "지하수가 암반 틈새에서 터널 내로 용수(湧水)로 배출된다"[13]는 전제하에, 환경 보전 조치로서 NATM 공법[14]을 채택하여 "복공 콘크리트와 지산 사이에 공간이 생기지 않기 때문에, 터널 내로의 지하수 용출이 적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천 유량의 감소량을 줄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15]고 밝혔다. 또한, 연장 약 12km의 도수로 터널을 오이가와 우안에 건설하여, 터널 내 용수를 시즈오카시 북부 지역에서 오이가와에 합류시켜 수량 감소를 매초 0.7톤으로 억제할 방침을 제시하고 있다[16]. 나머지 용수에 관해서도, 필요에 따라 도수로 터널로 펌프하여 감소를 회피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17].

6. 주요 지류

(km)비고오쓰야강오쓰야가와1차 지류시즈오카현
시마다시후지에다시, 시마다시3.85이타야강이타야가와2차 지류시즈오카현
시마다시시마다시5.7오가와오가와2차 지류시즈오카현
시마다시시마다시1.4오지로강오지로가와1차 지류시즈오카현시마다시11.74신보리강신보리가와2차 지류시즈오카현시마다시0.91시미즈강
손쿠로강시미즈가와
마고쿠로가와2차 지류시즈오카현
시마다시시마다시0.4왓파자가와강왓파자가와가와2차 지류시즈오카현시마다시1.39오카야강오카야가와1차 지류시즈오카현
시마다시시마다시5이쿠미강이쿠미가와1차 지류시즈오카현시마다시13.76오쿠보강오쿠보가와2차 지류시즈오카현
후지에다시시마다시, 후지에다시4.5후쿠요강후쿠요가와1차 지류시즈오카현시마다시1.18핫코강핫코가와1차 지류시즈오카현시마다시1.38미나리강미나리가와1차 지류시즈오카현시마다시3.7이에야마강이에야마가와1차 지류시즈오카현시마다시5.64기리야마강기리야마가와2차 지류시즈오카현시마다시1.65사사마강
하타스미강사사마가와
하타스미가와1차 지류시즈오카현
시마다시
가와네혼정시마다시, 가와네혼정15.5가와네사카이강가와네사카이가와1차 지류시즈오카현가와네혼정3시모이즈미코치강시모이즈미코치가와1차 지류시즈오카현가와네혼정1.8나카쓰강나카쓰가와1차 지류시즈오카현가와네혼정0.7가와네나가오강가와네나가오가와1차 지류시즈오카현가와네혼정2미즈카와강미즈카와가와1차 지류시즈오카현가와네혼정1.1하이바라강하이바라가와1차 지류시즈오카현가와네혼정1코나카이코치강코나카이코치가와1차 지류시즈오카현가와네혼정3.2스마타강스마타가와1차 지류시즈오카현가와네혼정16.57요코자와강요코자와가와2차 지류시즈오카현가와네혼정2.2쿠리시로강쿠리시로가와2차 지류시즈오카현가와네혼정4.5오마강오마가와2차 지류시즈오카현가와네혼정4.4유자와유자와3차 지류시즈오카현가와네혼정0.3오쿠유자와오쿠유자와3차 지류시즈오카현가와네혼정0.3히라노강히라노가와2차 지류시즈오카현가와네혼정0.3세키노사와강
(세키노사와강)세키노사와가와1차 지류중부지방정비국
시즈오카현가와네혼정, 시즈오카시3
(직할 1 포함)이카와니시야마자와강이카와니시야마자와가와1차 지류시즈오카현시즈오카시1.2히가시코치강히가시코치가와1차 지류시즈오카현시즈오카시2.5묘진강묘진가와1차 지류시즈오카현시즈오카시1.5아카이시자와강아카이시사와가와1차 지류시즈오카현시즈오카시7.2이카와세이자와강이카와세이자와가와2차 지류시즈오카현시즈오카시4.2오쿠니시카와치강오쿠니시카와치가와1차 지류시즈오카현시즈오카시4.31니시마타강니시마타가와1차 지류시즈오카현시즈오카시7.35


7. 하천 시설

오이강 수계에는 수력 발전을 위한 시설이 많이 설치되어 있다. 오이강 본류에는 6곳의 전력 회사 관리 댐과 시오고 댐과 같은 소규모 댐이 있다. 주요 지류인 스마타강과 사사마강에도 댐과 소규모 댐이 건설되어 물 이용률을 높였지만, 오이강의 환경을 해치기도 했다. 다목적 댐으로는 '''나가시마 댐'''이 있고, 치수 댐으로는 평상시에는 물을 전혀 저수하지 않는 "구멍 뚫린 댐"인 '''오시로가와 방재 댐'''이 있다. 홍수 조절 기능을 가진 댐은 이 두 댐뿐이다. 현재 시공 중인 하천 시설은 없다.

일본에 13기밖에 없는 중공 중력식 콘크리트 댐이 오이강에 3기나 연속으로 건설되어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일본 최초의 '''이카와 댐''', 세계 최대의 '''하타나기 제1 댐''', 마이크로 수력 발전 시설을 갖춘 '''하타나기 제2 댐'''이 있으며, 일본의 댐 역사에서 중요한 하천으로 꼽힌다.

오이강의 주요 댐은 다음과 같다.

1차 지류명 (본류)2차 지류명3차 지류명댐명둑 높이 (m)총 저수 용량 (천 m3)형식사업자비고
오이강--다시로 댐17.3220중력식도쿄 전력
오이강--하타나기 제1 댐125.0107,400중공 중력식주부 전력
오이강--하타나기 제2 댐69.011,400중공 중력식주부 전력
오이강--이카와 댐103.6150,000중공 중력식주부 전력
오이강--오쿠이즈미 댐44.53,150중력식주부 전력
오이강--나가시마 댐109.078,000중력식국토교통성
오이강--오이강 댐33.5788중력식주부 전력
오이강--시오고 댐--중력식주부 전력소규모 댐
아카이시자와강--아카이시 댐58.03,090중력식주부 전력
스마타강--센토 댐64.04,950중력식주부 전력
스마타강--오마 댐46.11,519중력식주부 전력
스마타강--스마타강 댐34.8987중력식주부 전력
사카이강--사카이강 댐34.21,173중력식주부 전력
사사마강--사사마강 댐46.46,340중력식주부 전력
오시로강--오시로강 댐43.0621중력식시즈오카현구멍 댐


8. 관광

오이가와 철도는 오이강 계곡에서 두 개의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원래는 댐 건설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건설되었지만, 현재 두 노선 모두 주로 관광객을 위해 운영되며, 산속으로 운행하는 인기 있는 증기 기관차 노선도 포함한다.[1]

참조

[1] 웹사이트 大井川について https://www.cbr.mlit[...] 2019-09-06
[2] 서적 静岡県史 静岡県史 null
[3] 웹사이트 川越制度 - 島田市公式ホームページ https://www.city.shi[...] 2019-09-06
[4] 웹사이트 箱根馬子唄 https://www2.nhk.or.[...] NHK 2013-03-14
[5] 웹사이트 大いなる川、よみがえれ http://damnet.or.jp/[...] 一般社団法人日本ダム協会 2020-03-14
[6] 웹사이트 2016年3月-5月の貴重書展示 大井川 http://www.tosyokan.[...] 静岡県立中央図書館 2017-06-23
[7] 서적 わが街道 建築資料研究社
[8] 웹사이트 大井川鐵道大井川本線 その1 https://tetsudo-ch.c[...] 鉄道チャンネル 2020-03-15
[9] 웹사이트 大井川用水農業水利事業所 https://www.maff.go.[...] 関東農政局 2020-03-15
[10] 뉴스 "放水足りぬ」地元切実 大井川 水返せ運動30年 https://web.archive.[...] 2020-03-11
[11] 웹사이트 大井川鐵道大井川本線 その5 https://tetsudo-ch.c[...] 鉄道チャンネル 2020-03-15
[12] 뉴스 大井川とリニア 水と生きる(中)「水返せ」の思い今も https://www.at-s.com[...] 2020-03-15
[13] 문서 本来介在するトンネルの覆工コンクリートについては言及なし。
[14] 문서 掘削部分に直接コンクリートを吹き付け、ボルトを固い岩盤まで打ち込むことで地山とトンネルを一体化させる工法。
[15] 웹사이트 中央新幹線(東京都・名古屋市間)環境影響評価書(平成26年8月) 静岡県 第8章 環境影響評価の調査の結果の概要並びに予測及び評価の結果 https://company.jr-c[...] 東海旅客鉄道 2020-06-28
[16] 뉴스 リニア南アルプストンネル、水資源維持に残る不安 https://www.nikkei.c[...] 2017-08-24
[17] 웹사이트 第4回大井川水資源検討委員会 説明資料 https://company.jr-c[...] 東海旅客鉄道 2020-06-28
[18] 웹사이트 河川コード台帳(河川コード表編) https://www.cbr.mlit[...] 2023-06-16
[19] 웹사이트 河川コード台帳(河川模式図編) https://www.cbr.mlit[...] 2023-06-16
[20] 웹사이트 大井川水系 川の紹介 http://www.shizuoka-[...] 2023-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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