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상 (신라)
1. 개요
의상은 신라 시대의 승려로, 화엄종을 개창한 인물이다. 644년에 출가하여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으며, 지엄에게 화엄학을 배우고 671년에 귀국했다. 676년에는 부석사를 창건하여 신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삼았고, 702년에 입적했다. 의상은 당나라 유학 중 만난 선묘의 일화와 부석사 창건 설화 등 다양한 일화를 남겼으며, 화엄일승법계도 등 저술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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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의상 |
|---|---|
| 한자 표기 | 義湘 |
| 로마자 표기 | Uisang |
| 출생 | 625년 |
| 사망 | 702년 |
| 국적 | 신라 |
| 종교 | 불교 |
| 종파 | 화엄종(해동 화엄종) |
| 스승 | 지엄 |
| 속성 | 김씨 또는 박씨 |
| 직업 | 승려 |
|---|---|
| 주요 활동 지역 | 부석사 |
| 주요 저서 | 《화엄일승법계도(華巖一乘法界圖)》 《입법계품초기(入法界品鈔記)》 《화엄십문간법관(華嚴十門看法觀)》 《아미타경의기(阿彌陀經義記)》 《제반청문(諸般請文)》 《백화도장발원문(白花道場發願文)》 《화엄일승발원문(華巖一乘發願文)》 《투사례(投師禮)》 외 |
| 주요 제자 | 오진(悟眞) 지통(智通) 표훈(表訓) 진정(眞定) 진장(眞藏) 도융(道融) 양원(良圓) 상원(相源) 능인(能仁) 의적(義寂) 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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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2년 사망 -
효소왕
효소왕은 신라의 제30대 왕으로, 신문왕의 아들이자 신목왕후의 아들이며, 당나라로부터 신라왕으로 책봉받고 국내 통치를 시작하여 서시전과 남시전을 설치하고 일본 사신을 접견했으며 이찬 경영의 모반을 진압하다가 16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702년 사망 -
진자앙
진자앙은 현실 반영 시를 옹호하며 사회 비판적인 작품을 남긴 당나라 초기의 시인으로, 24세에 진사에 급제하고 측천무후의 조언자로서 정치 활동을 했으며, 독특한 방식으로 문학적 재능을 알리고 당나라 시 발전에 기여했다. -
625년 출생 -
하산 이븐 알리
하산 이븐 알리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손자이자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와 파티마 즈흐라의 아들로, 시아파에서는 12이맘 중 두 번째 이맘으로 숭배받으며, 아버지 알리 사후 칼리파로 추대되었으나 무아위야 1세와의 갈등 끝에 칼리파직을 포기하고 메디나로 은퇴한 인물이다. -
625년 출생 -
후사인 이븐 알리
후사인 이븐 알리는 알리와 파티마의 아들이자 무함마드의 손자로, 시아파 이맘이자 순교자로 존경받으며 680년 카르발라 전투에서 사망한 사건은 이슬람 역사에서 중요한 비극으로 여겨진다. -
신라의 불학자 -
원광
원광은 6세기 신라의 승려로서 대승 불교를 전파하고 화랑도에게 세속오계를 가르쳤으며, 수나라에 고구려 출병을 요청하는 걸사표를 지어 국가 의식을 보여주었다. -
신라의 불학자 -
원효
원효는 신라의 승려, 학자, 저술가로서, 화쟁사상을 바탕으로 통불교를 주창하고 불교 대중화에 기여했으며, 일체유심조의 깨달음 이후 저술 활동과 요석공주와의 혼인, 그리고 그의 사상이 한국, 중국, 일본 불교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의상은 신라 귀족 출신으로 여겨진다. 644년(선덕여왕 13년), 19세에 경주 황복사에서 출가했다. 650년(진덕여왕 4년), 26세에 원효와 함께 당나라 유학길에 올랐으나 고구려 국경 부근에서 좌절되었다.
661년(문무왕 1년), 37세에 당나라 유학을 떠나 이듬해 662년 지엄에게서 화엄학을 배웠다. 671년(문무왕 11년), 47세에 신라로 귀국하였다.
676년(문무왕 16년), 부석사를 건립하여 신라 화엄종의 근본 도량으로 삼았다. 해인사, 옥천사, 범어사, 화엄사 등 화엄십찰에서 교학을 널리 펼쳤으며, 오진, 지통, 표훈, 진정, 진장, 도융, 양원, 상원, 능인, 의적 등 의상십철이라 불리는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702년(성덕왕 1년), 78세로 입적했다.
일본에서도 화엄종의 조사로 가마쿠라 시대의 화엄종조사도에 그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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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출가와 초기 활동
644년(선덕여왕 13년), 경주 황복사에서 출가하였다. 650년(진덕여왕 4년) 원효(元曉)와 함께 당나라 유학을 시도했으나 고구려 국경 부근에서 좌절되었다. 원효는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깨닫고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그와 헤어졌다.
661년(문무왕 1년) 당나라 사신의 배편을 빌려 당나라 유학을 떠나 중난산 지상사(至相寺)에서 지엄(화엄종 제2대 조사) 문하에서 화엄의 이치를 깨달았다.
당나라 유학 중, 그의 설법에 참석하던 선묘라는 여성이 그를 사모했으나, 의상은 그녀를 제자로 삼았다. 의상이 신라로 귀국하던 날, 선묘는 그를 지켜주겠다며 황해바다에 몸을 던져 죽었다. 후에 의상이 영주 봉황산에 산사를 지을 때, 공중에 떠다니는 바위의 도움으로 사찰을 준공하였다고 한다.
2.2. 당나라 유학과 화엄학 수학
650년(진덕여왕 4년) 20세에 출가하여 사형(師兄)인 원효와 함께 당나라 유학을 가던 중 난을 당해 당항성의 어느 동굴에서 유숙하게 되었다. 이때 해골에 괸 물을 마신 원효는 일체유심조의 진리를 깨닫고 당나라 유학을 포기하고 그와 헤어진다.
661년(문무왕 1년) 신라의 삼국통일 전쟁의 혼란을 피하여 당나라 사신의 배편을 빌려 타고 건너가 중난산 지상사에서 지엄(중국 화엄종의 제2대 조사)의 문하에서 현수와 같이 화엄의 깊은 이치를 깨달았다. 현수는 지엄의 뒤를 이어 중국 화엄종의 제3조가 되고, 의상은 귀국 후 한국 화엄종의 시조가 된다.
2.3. 귀국과 화엄종 전파
670년(문무왕 10)에 귀국하여 관음굴에서 백일을 기도하고 676년에 왕의 뜻을 받아 봉황산에 부석사를 창건하고 화엄교학을 강술하여 화엄종의 시조가 되었다.
692년(효소왕 1)에 현수는 승전이 귀국할 때 그의 저술 《화엄경탐현기》와 그 비판을 구하는 서신을 의상에게 보냈는데, 그 친필 서신이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의상은 문하에게 이것을 나누어 강술하면서 전교(傳敎)에 전심하다 죽었다.
671년 (문무왕 16년) 신라로 귀국하여, 676년 (문무왕 16년) 부석사를 건립하여 신라 화엄종 근본 도량으로 삼았다. 해인사, 옥천사, 범어사, 화엄사 등 이른바 화엄십찰에서 교학을 널리 펼쳤으며, 오진, 지통, 표훈, 진정, 진장, 도융, 량원, 상원, 능인, 의적 등 의상십철이라 불리는 많은 문하생을 배출했다.
2.5. 사후
고려 숙종은 의상에게 해동화엄시조원교국사(海東華嚴始祖圓敎國師)라는 시호를 내렸다. 의상의 문인으로는 뛰어난 10대덕과 전교(傳敎)의 10대찰이 있었다. 702년 (성덕왕 1년)에 78세로 입적했다.
일본에서도 화엄종의 조사로 가마쿠라 시대의 화엄종조사도에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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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철학
신라의 고승 원효(元曉)와 무애 사상 등으로 잘 알려진 의상은 동문수학한 사형제지간(師兄弟之間)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신주 철학교수는 의상의 철학세계를 '세계는 하나의 거대한 그물이고 씨줄 날줄이 교차되는 곳에 살아 있는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죽으면 전체 세계가 다 울려서 내 마음도 아파온다'라는 표현으로 언급한 바 있다.
3.1. 화엄일승법계도
* 화엄일승법계도 1권
* 입법계품초기 1권 (산실)
* 화엄십문간법관 1권 (산실)
* 아미타경의기 1권 (산실)
* 제반청문 (산실)
* 백화도량발원문 (일부 현존)
* 화엄일승발원문
* 투사례
4. 저술
* 화엄일승법계도 1권
* 입법계품초기 1권 (산실)
* 화엄십문간법관 1권 (산실)
* 아미타경의기 1권 (산실)
* 제반청문 (산실)
* 백화도량발원문 (일부 현존)
* 화엄일승발원문
* 투사례
5. 일화
의상이 귀국할 때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당나라는 삼국 통일을 도왔지만, 신라가 고구려와 백제를 모두 차지한 것에 분노하여 신라 승상 김흠순을 잡아 가두었다. 당 고종이 신라를 공격하려는 움직임을 김흠순 등에게 들은 의상은 급히 귀국하여 왕에게 알리고, 명랑이 밀단법을 베풀어 위기를 모면했다고 한다.
범어사 전설에 따르면, 흥덕왕 때 왜병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듣고 금정산에서 빌어 이를 막았다고 하지만, 이는 근거가 확실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