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조선)
1. 개요
정보는 고려 말 학자 정몽주의 손자이자 조선 초 문신이다. 세종의 총애를 받았으며,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어 유배를 갔다가 죽음을 맞았다. 사후 신원되어 이조참의에 증직되었고, 정조는 그를 '죽지 않은 사육신'으로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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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자 -
생육신
생육신은 세조의 왕위 찬탈에 반대하며 절개를 지킨 김시습, 성담수, 원호, 이맹전, 조려, 남효온 등 여섯 명의 은둔 신하를 지칭하며, 이들은 단종 복위 운동 실패 후 관직에 나아가지 않거나 은둔하며 저항했고 사림 세력에 의해 충절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
은자 -
피에르 레르미트
피에르 레르미트는 11세기 말 제1차 십자군 당시 빈민 십자군을 이끈 프랑스 은둔자이자 설교가로,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무장 순례를 주도하며 민중을 이끌었으나 군사적 실패 후 제후 십자군에 합류하여 사기를 고무하는 역할을 했으며, 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고 대중문화 작품에 영감을 주었다. -
조선의 문신 -
정유길
정유길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쳐 명종 때 왕의 총애를 받았으며, 윤원형 탄핵에 앞장서 훈구파, 소윤파, 사림파 모두에게 존경받아 좌의정에 이르렀다. -
조선의 문신 -
윤증
윤증은 조선 중기 문신이자 소론의 영수로 우의정까지 역임한 정치가였으며, 성리학적·정치적 갈등으로 스승 송시열과 결별하고 탕평책을 지지했으나 당쟁 속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으며, 실천적 삶을 강조한 무실학을 추구하며 조선 후기 정치와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
조선의 정치인 -
방우정
방우정은 조선 후기 무신으로 홍경래의 난 진압에 참여하여 서정군의 좌초관으로 활약했으며, 난에 대한 경험을 바탕으로 《서정일기》를 저술하여 홍경래의 난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남겼다. -
조선의 정치인 -
이승만
이승만은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독립운동가로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고 해방 후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으나, 독재적 통치와 부정부패에 대한 비판도 받으며 4·19 혁명 후 하와이로 망명하여 서거하였다.
2. 생애
운곡 정보는 고려 말의 학자이자 충신인 포은 정몽주의 손자이자 이조참의 정종성의 아들로 태어났다. 1392년 할아버지 정몽주는 이방원의 정변에 반대하여 이성계와 조준, 정도전 등의 역성혁명파를 제거하려다가 살해되었다. 그러나 이성계나 이방원은 그에게 연좌제를 적용하지 않았다.
정보는 학문이 뛰어나 세종의 총애를 받았고, 예안 현감과 사헌부 감찰을 역임했다. 성삼문, 박팽년 등과 일찍이 친교를 맺고 학문을 논하기도 하였다. 정몽주의 제자는 길재, 이숭인, 권우 등이었다. 권우는 후에 세종대왕의 스승이 되었고, 길재는 김숙자-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사림파의 태두를 형성하였다. 조부의 제자인 권우의 제자였던 세종대왕은 그를 각별히 총애하였다.
1456년 6월 단종복위사건이 일어나자, 서매제인 한명회를 찾아가 사육신의 무죄를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천추의 악인이라며 규탄하였다. 정보는 한명회에게 사육신을 죽이지 말 것을 요청했고, 그들을 죽인다면 만고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명회는 그의 요청을 거절했고, 그는 천추의 악인이라며 규탄하고 나왔다. 그해 12월 한명회가 그를 난언죄(亂言罪)로 고발하여 죽음을 받게 하였다.
그는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에는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을 의로운 사람들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서매제인 한명회의 고발로 의금부로 압송되었다. 단종 복위를 꾀한 성삼문, 박팽년을 변호하여 세조가 직접 신문할 때에 “일찍이 성삼문, 박팽년 등을 정인군자(正人君子)라고 했기 때문에 실제로 이런 말을 하였다.”라고 하여 환열(轘裂)을 명하였다. 하지만 세조는 그가 고려 충신 정몽주의 손자임을 감안하여 정상을 참작, 죄질을 한 등급 감하여 감형, 연일(延日)에 유배시켰다. 그리고 가산을 적몰하는 것으로 종결하였다. 그 뒤 양사의 진언으로 단성 문태촌으로 이배되었다가, 그곳에서 간사한 무리들의 참소로 누명을 쓰고 단성 배소에서 죽음을 당하였다.
사망 당시 그의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고령의 나이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2.1. 출생과 가계
운곡 정보는 고려 말의 학자이자 충신인 포은 정몽주의 손자이자 이조참의 정종성의 아들로 태어났다. 1392년 할아버지 정몽주는 이방원의 정변에 반대하여 이성계와 조준, 정도전 등의 역성혁명파를 제거하려다가 살해되었다. 그러나 이성계나 이방원은 그에게 연좌제를 적용하지 않았다.
아버지 정종성은 늙으막에 얻은 첩에게서 서녀(庶女) 한 명을 보았는데, 이 서녀는 후일 한명회의 첩이 되었다.
2.2. 초기 생애와 학문
정보는 학문이 뛰어나 세종의 총애를 받았고, 한때 예안 현감으로 나갔다가 사헌부 감찰이 되었다. 성삼문, 박팽년 등과 일찍이 친교를 맺고 학문을 논하기도 하였다.
정몽주의 제자는 길재, 이숭인, 권우 등이었다. 권우는 후에 세종대왕의 스승이 되었고, 길재는 김숙자-김종직으로 이어지는 사림파의 태두를 형성하였다. 조부의 제자인 권우의 제자였던 세종대왕은 그를 각별히 총애하였다. 이후 관직에 올라 예안 현감을 역임했다.
2.3. 세조 즉위와 죽음
1456년 6월 단종복위사건이 일어나자, 서매제인 한명회를 찾아가 사육신의 무죄를 주장하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천추의 악인이라며 규탄하였다. 정보는 한명회를 찾아가 사육신을 죽이지 말 것을 요청했고, 그들을 죽인다면 만고의 죄인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한명회는 그의 요청을 거절했고, 그는 천추의 악인이라며 규탄하고 나왔다. 그해 12월 한명회가 그를 난언죄(亂言罪)로 고발하여 죽음을 받게 하였다.
그는 사육신의 단종 복위 운동에는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이들을 의로운 사람들이라고 판단했다. 그는 서매제인 한명회의 고발로 의금부로 압송되었다.
단종 복위를 꾀한 성삼문, 박팽년을 변호하여 세조가 직접 신문할 때에 “일찍이 성삼문, 박팽년 등을 정인군자(正人君子)라고 했기 때문에 실제로 이런 말을 하였다.”라고 하여 환열(轘裂)을 명하였다가, 세조는 그가 고려 충신 정몽주의 손자임을 감안하여 정상을 참작, 죄질을 한 등급 감하여 감형, 연일(延日)에 유배시켰다. 그리고 가산을 적몰하는 것으로 종결하였다. 그 뒤 양사의 진언으로 단성 문태촌으로 이배되었다가, 그곳에서 간사한 무리들의 참소로 누명을 쓰고 단성 배소에서 죽음을 당하였다.
사망 당시 그의 정확한 나이는 알 수 없으나 고령의 나이에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사후
숙종 25년(1699년) 지경연사 이유 등의 상소로 신원(伸寃)되었고, 이조참의에 증직되었다. 후일 정조는 그를 '죽지 않은 사육신'으로 평가하였다. 1905년(광무 9년) 자헌대부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경기도 용인 충렬서원에 제향되었으나, 흥선대원군 섭정 때 서원철폐령으로 헐렸다. 1982년 공주 동학사 숙모전에도 배향되었다.
3.1. 신원과 증직
숙종 25년(1699년) 지경연사(知經筵事) 이유(李濡) 등의 상소로 신원(伸寃)되었고, 이조참의에 증직되었다. 후일 정조는 그를 두고 '죽지 않은 사육신'으로 평가하였다. 1905년(광무 9년) 자헌대부 이조판서에 추증(追贈)되었다.
3.2. 추증과 제향
1699년 당시 지경연사(知經筵事) 이유(李濡) 등의 상소로 신원(伸寃)되었고, 이조참의에 증직되었다. 후일 정조는 그를 두고 '죽지 않은 사육신'으로 평가하였다. 1905년(광무 9년) 자헌대부 이조판서에 추증(追贈)되었다.
경기도 용인 충렬서원(忠烈書院)에 제향되었으나, 흥선대원군 섭정 때 서원철폐령으로 헐렸다. 1982년 공주 동학사 숙모전에도 배향되었다.
4. 가계
| | 이름 || 출생 || 사망 || 비고 | ||||
|---|---|---|---|---|
| 증조부 | 정운관 | |||
| 할아버지 | 정몽주 | 1337년 | 1392년 음력 4월 4일 | |
| 숙부 | 정종본 | |||
| 서숙 | 정종화 | |||
| 아버지 | 정종성 | 1374년 | 1442년 | |
| 어머니 | 미상 | |||
| 서모 | 미상 | |||
| 부인 | 미상 | |||
| 부인 | 밀양 박씨 | 박등의 딸 | ||
| 누이 | 오천군부인 연일 정씨 | 선성군에게 출가 | ||
| 매부 | 선성군 | 정종의 다섯째 서자, 이방원의 서조카 | ||
| 서누이동생 | 정경부인 정씨 | 한명회의 첩 | ||
| 서매제 | 한명회 | 1415년 | 1487년 11월 14일 | |
| 딸 | 정씨 | 이석형에게 출가 | ||
| 사위 | 이석형 | 1415년 | 1477년 | 연안 이씨 |
| 외손자 | 이혼 | 1445년 | ? | |
| 딸 | 정씨 | 이계손에게 출가 | ||
| 사위 | 이계손 | 1423년 | 1484년 | 여주 이씨 |
| 딸 | 정씨 | 이지에게 출가 | ||
| 사위 | 이지 | 1420년 | ? | 고성 이씨 |
| 외손자 | 이륙 | 1438년 | 1498년 | |
| 외손자 | 이맥 | 1455년 | 1528년 | |
| 아들 | 정윤화 | 1453년 | ? | 다른 이름은 원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