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아베 신조 내각
1. 개요
제2차 아베 신조 내각은 2012년 12월 16일 치러진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자유민주당이 압승한 후, 12월 26일 아베 신조를 내각총리대신으로 선출하여 발족했다. 이 내각은 '위기 돌파 내각'을 표방하며, 아소 다로를 부총리 겸 재무대신으로 임명했다. 주요 정책으로는 TPP 협상 참가, 소비세 증세, 노동 시장 유연화, 성장 전략 추진 등이 있었으며,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중국 해군 레이더 조사,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 등 외교·안보 문제에도 직면했다. 내각은 2014년 3월 이민 대량 수용을 검토하고, 2016년에는 노동력 확보를 위한 특명 위원회를 발족하는 등 사회·경제 전반에 걸쳐 다양한 정책을 추진했다.
-
2013년 일본 -
다카라즈카 가극단 99기생
다카라즈카 가극단 99기생은 2013년 입학하여 2015년 졸업한 40명의 단원으로, 각 조에서 활약하며 츠키구미 톱 여역 미소노 사쿠라, 에트와르 경험의 하나 유키, 마노 아스카 등을 배출했고, 하나부사 카오토, 스와 사키 등 미래를 짊어질 재목으로 평가받는 단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
2013년 일본 -
아와지섬 지진
아와지섬 지진은 2013년 4월 13일 아와지섬 중부에서 발생한 규모 Mj6.3의 지진으로, 35명이 부상하고 주택 피해가 발생했으며 간사이 지방의 교통 운행에 차질을 빚었다. -
2012년 일본 -
태풍 볼라벤 (2012년)
2012년 태풍 볼라벤은 마리아나 제도에서 발생하여 오키나와를 거쳐 한반도를 관통하면서 대한민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에 막대한 피해를 입힌 강력한 열대 저기압으로, 라오스의 볼라웬 고원을 의미하는 이름이다. -
2012년 일본 -
노다 내각
노다 내각은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일본의 제95대 내각으로 출범하여 피해 복구, 경제 재건, 소비세 인상, 미일 동맹 강화 등을 추진했으나, 정치적 쟁점과 국민적 불신으로 2012년 총선에서 패배하며 짧게 집권했다. -
2014년 일본 -
제3차 아베 신조 내각
아베 신조가 재선 후 출범한 제3차 아베 신조 내각은 아베노믹스 심화와 헌법 개정을 주요 목표로 정책 변화를 모색하며 경제, 외교, 안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정책들을 추진했으나 여러 비판에 직면했다. -
2014년 일본 -
태풍 누리 (2014년)
태풍 누리 (2014년)는 2014년 10월 말 괌 동남동쪽 해상에서 발생하여 급격히 발달, 최대 강도에 도달한 후 북동진하며 온대 저기압으로 변질되었다가 강력한 온대 저기압으로 재발달하여 일본 오가사와라 제도에 접근한 태풍이다.
2. 내각 조각의 배경
2012년 12월 16일에 실시된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노다 요시히코 대표가 이끄는 여당 민주당은 기존 230석의 1/4도 안되는 57석을 얻어 참패했다. 반면 아베 신조 총재가 이끄는 제1야당 자유민주당은 2005년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296석을 얻은 이후 두 번째로 많은 294석을 차지하여 압승했다. 공명당과 합하면 중의원 전체 의석의 2/3를 확보했다. 자유민주당과 공명당 양당은 연립 정권 발족에 합의하고, 같은 해 12월 26일 소집된 특별국회에서 자유민주당 아베 신조 총재를 수반으로 옹립, 내각총리대신 지명 선거를 거쳐 내각을 발족했다.
자유민주당·공명당 연립 정권은 아소 내각 이후 약 3년 3개월 만에 재집권에 성공했고, 민주당 정권(민사국 연립 정권 → 민국 연립 정권)은 막을 내렸다. 한 번 퇴진한 총리가 다시 집권한 것은 요시다 시게루(1947년 5월 퇴진 → 1948년 10월 재임) 전 총리 이후 64년 만이다.
3. 국회 총리 지명 선거
2012년 12월 26일, 제182회 국회에서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 모두 내각총리대신 지명 선거가 실시되었다.
중의원에서는 아베 신조가 자유민주당, 공명당, 무소속 의원들의 지지를 받아 총 328표로 과반수를 훌쩍 넘기며 총리로 지명되었다. 가이에다 반리는 57표, 이시하라 신타로는 54표를 얻는 데 그쳤다.
참의원에서는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아 결선 투표가 진행되었다. 1차 투표에서는 아베 신조 107표, 가이에다 반리 87표, 와타나베 요시미 11표, 모리 유코 8표, 시이 가즈오 6표, 후쿠시마 미즈호 5표, 지미 쇼자부로와 이시하라 신타로 각 3표, 가메이 시즈카 1표, 기권 3표였다. 결선 투표 결과, 아베 신조가 107표를 얻어 96표를 얻은 가이에다 반리를 제치고 총리로 지명되었다. 무효 1표, 기권 30표였다.
3.1. 중의원
2012년 12월 26일, 제182회 국회 중의원 본회의에서 내각총리대신 지명 선거가 실시되었다. 총 투표수 477표 중 과반수인 239표를 얻어야 하는 이 선거에서 아베 신조는 자유민주당(294표), 공명당(31표), 무소속(3표)의 지지를 받아 총 328표를 획득하여 내각총리대신으로 지명되었다.
가이에다 반리는 민주당에서 57표, 이시하라 신타로는 일본유신회에서 54표, 와타나베 요시미는 모두의 당에서 18표, 시이 가즈오는 일본공산당에서 8표, 모리 유코는 생활의 당에서 7표, 후쿠시마 미즈호는 사회민주당에서 2표, 지미 쇼자부로는 국민신당에서 1표를 얻었다. 무소속 2명은 기권하였고, 3표는 미투표 처리되었다.
3.2. 참의원
2012년 12월 26일 제182회 국회 참의원 본회의에서 내각총리대신 지명 선거가 실시되었다. 1차 투표에서는 총 234표 중 과반수인 118표를 얻어야 했으나, 아베 신조는 107표, 가이에다 반리는 87표를 얻어 과반 득표에 실패했다. 와타나베 요시미 11표, 모리 유코 8표, 시이 가즈오 6표, 후쿠시마 미즈호 5표, 지미 쇼자부로와 이시하라 신타로 각 3표, 가메이 시즈카 1표를 얻었으며, 기권은 3표였다.
결선 투표에서는 아베 신조 107표, 가이에다 반리 96표를 얻어 아베 신조가 내각총리대신으로 지명되었다. 무효 1표, 기권 30표였다.
4. 인사에 관한 개요
* 아베 신조 총리는 이전에 제1차 아베 신조 내각과 제1차 아베 신조 개조내각에서 자유민주당 총재 및 총리대신을 역임했다. 총리 경험자가 자유민주당 총재로 다시 선출된 것은 자유민주당 역사상 처음이며, 총리 재임은 1948년 제2차 요시다 내각의 요시다 시게루 총리 이후이다.
* 요시다 시게루의 손자인 아소 다로 전 총리는 부총리로 입각했다. 총리 경험자가 입각한 사례는 오부치 내각의 미야자와 기이치가 대장대신으로, 제2차 모리 내각 개조내각에서 하시모토 류타로가 오키나와 개발청 장관·행정개혁 담당 대신으로 입각한 이후 처음이다. 전직 총리가 부총리로 재입각한 경우도 사상 최초이다.
* 전 총재인 다니가키 사다카즈와 2012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 출마한 이시하라 노부테루, 하야시 요시마사는 입각했고, 결선 투표에서 패한 이시바 시게루는 당 간사장으로 유임됐다.
* 첫 입각자는 10명, 재입각자는 8명이며, 이 중 아소, 아마리, 기시다, 스가 등 4명은 제1차 아베 신조 내각과 제1차 아베 신조 개조내각에서 각료를 맡은 적이 있었다. 제1차 아베 신조 개조내각에서 각료를 맡았던 고무라 마사히코는 당 부총재로 유임됐다.
* 연립 여당인 공명당에서는 오타 아키히로 전 대표가 국토교통대신으로 입각했다.
* 오부치 게이조 전 총리의 딸인 오부치 유코 전 저출산 대책 담당상은 내각 발족 전 각료 내정자로 거론되었으나, 각료 조정 과정에서 국무 대신이 아닌 재무 부대신으로 발탁됐다.
5. 국무대신
| 직책 | 성명 | 사진 | 소속 | 특기 사항 | 비고 |
|---|---|---|---|---|---|
| 내각총리대신 | 아베 신조 | 중의원 자유민주당 (마치무라파) | 자유민주당 총재 | ||
| 부총리 재무대신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금융 담당) | 아소 다로 | 중의원 자유민주당 (아소파) | 디플레이션 탈출 담당 엔고 대책 담당 내각총리대신 임시 대리 취임 순위 제1위(부총리) | ||
| 총무대신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국가 전략 특별 구역 담당) (지방 분권 개혁 담당) | 신도 요시타카 | 중의원 자유민주당 (누카가파) | 지역 활성화 담당 도주제 담당 | 첫 입각 | |
| 법무대신 | 다니가키 사다카즈 | 중의원 자유민주당 (다니가키 그룹) | 내각총리대신 임시 대리 취임 순위 제3위 | ||
| 외무대신 | 기시다 후미오 | 중의원 자유민주당 (기시다파) | |||
| 문부과학대신 | 시모무라 하쿠분 | 중의원 자유민주당 (마치무라파) | 교육 재생 담당 국립국회도서관 연락조정위원회 위원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담당 | 첫 입각 | |
| 후생노동대신 | 다무라 노리히사 | 중의원 자유민주당 (누카가파) | 첫 입각 | ||
| 농림수산대신 | 하야시 요시마사 | 참의원 자유민주당 (기시다파) | |||
| 경제산업대신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원자력 손해배상 지원 기구 담당) | 모테기 도시미쓰 | 중의원 자유민주당 (누카가파) | 원자력 경제 피해 담당 산업 경쟁력 담당 | ||
| 국토교통대신 | 오타 아키히로 | 중의원 공명당 | 물순환 정책 담당 | 첫 입각 공명당 의장 | |
| 환경대신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원자력 방재 담당) | 이시하라 노부테루 | 중의원 자유민주당 (이시하라파) | 내각총리대신 임시 대리 취임 순위 제5위 | ||
| 방위대신 | 오노데라 이쓰노리 | 중의원 자유민주당 (기시다파) | 첫 입각 | ||
| 내각관방장관 | 스가 요시히데 | 중의원 자유민주당 (무파벌) | 국가 안전 보장 강화 담당 내각총리대신 임시 대리 취임 순위 제2위 | ||
| 부흥대신 | 네모토 다쿠미 | 중의원 자유민주당 (기시다파) |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 사고 재생 총괄 담당 | 첫 입각 | |
|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방재 담당) | 후루야 게이지 | 중의원 자유민주당 (니카이파) | 납치 문제 담당 국토강인화 담당 | 첫 입각 |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오키나와 및 북방 대책 담당) (과학 기술 정책 담당) (우주 정책 담당) | 야마모토 이치타 | 참의원 자유민주당 (무파벌) | 정보통신기술(IT) 정책 담당 해양 정책 담당 영토 문제 담당 | 첫 입각 |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소비자 및 식품 안전 담당) (저출산 대책 담당) (남녀 공동 참가 담당) | 모리 마사코 | 참의원 자유민주당 (마치무라파) | 여성 활력 담당 육아 지원 담당 자살 대책 담당 원자력 발전 풍평 담당 특정비밀보호법안 담당 | 첫 입각 |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경제 재정 정책 담당) | 아마리 아키라 | 중의원 자유민주당 (무파벌) | 경제 재생 담당 사회 보장·세금 일체 개혁 담당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 담당 내각총리대신 임시 대리 취임 순위 제4위 |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규제 개혁 담당) | 이나다 도모미 | 중의원 자유민주당 (마치무라파) | 행정 개혁 담당 공무원 제도 개혁 담당 국가 공무원 제도 담당 재도전 담당 쿨 재팬 전략 담당 | 첫 입각 | |
6. 내각관방부장관·내각법제국 장관
7. 부대신
| 직책 | 성명 | 소속 | 비고 |
|---|---|---|---|
| 부흥 부대신 | 다니 고이치 | 중의원 / 자유민주당(니카이파) | |
| 하마다 마사요시 | 참의원 / 공명당 | ||
| 아키바 겐야 | 중의원 / 자유민주당(무파벌) | 후생노동 부대신 겸임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데라다 미노루 | 중의원 / 자유민주당(기시다파) | 내각부 부대신 겸임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아이치 지로 | 참의원 / 자유민주당(무파벌) | 재무 부대신 겸임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오카다 히로시 | 참의원 / 자유민주당(무파벌) | 내각부 부대신 겸임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내각부 부대신 | 다테 주이치 | 참의원 / 자유민주당(마치무라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니시무라 야스토시 | 중의원 / 자유민주당(마치무라파) | ||
| 데라다 미노루 | 중의원 / 자유민주당(기시다파) | 부흥 부대신 겸임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사카모토 데쓰시 | 중의원 / 자유민주당(이시하라파) | 총무 부대신 겸임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아카바 가즈요시 | 중의원 / 공명당 | 경제산업 부대신 겸임 | |
| 이노우에 신지 | 중의원 / 자유민주당(아소파) | 환경 부대신 겸임 | |
| 고토다 마사즈미 | 중의원 / 자유민주당(무파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오카다 히로시 | 참의원 / 자유민주당(무파벌) | 부흥 부대신 겸임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세키구치 마사카즈 | 참의원 / 자유민주당(누카가파) | 총무 부대신 겸임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총무 부대신 | 시바야마 마사히코 | 중의원 / 자유민주당(마치무라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사카모토 데쓰시 | 중의원 / 자유민주당(이시하라파) | 내각부 부대신 겸임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가미카와 요코 | 중의원 / 자유민주당(기시다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세키구치 마사카즈 | 참의원 / 자유민주당(누카가파) | 내각부 부대신 겸임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법무 부대신 | 고토 시게유키 | 중의원 / 자유민주당(무파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오쿠노 신스케 | 중의원 / 자유민주당(마치무라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외무 부대신 | 스즈키 슌이치 | 중의원 / 자유민주당(기시다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마쓰야마 마사지 | 참의원 / 자유민주당(기시다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기시 노부오 | 중의원 / 자유민주당(마치무라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미쓰야 노리오 | 중의원 / 자유민주당(다니가키 그룹)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재무 부대신 | 오부치 유코 | 중의원 / 자유민주당(누카가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야마구치 슌이치 | 중의원 / 자유민주당(아소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후루카와 요시히사 | 중의원 / 자유민주당(무파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아이치 지로 | 참의원 / 자유민주당(무파벌) | 부흥 부대신 겸임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문부과학 부대신 | 다니가와 야이치 | 중의원 / 자유민주당(마치무라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후쿠이 데루 | 중의원 / 자유민주당(기시다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사쿠라다 요시타카 | 중의원 / 자유민주당(누카가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니시카와 교코 | 중의원 / 자유민주당(아소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후생노동 부대신 | 마스야 게이고 | 중의원 / 공명당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아키바 겐야 | 중의원 / 자유민주당(무파벌) | 부흥 부대신 겸임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사토 시게키 | 중의원 / 공명당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쓰치야 시나코 | 중의원 / 자유민주당(무파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농림수산 부대신 | 에토 다쿠 | 중의원 / 자유민주당(무파벌) | |
| 가지야 요시토 | 참의원 / 자유민주당(기시다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요시카와 다카모리 | 중의원 / 자유민주당(누카가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경제산업 부대신 | 스가와라 잇슈 | 중의원 / 자유민주당(무파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아카바 가즈요시 | 중의원 / 공명당 | 내각부 부대신 겸임 | |
| 마쓰시마 미도리 | 중의원 / 자유민주당(마치무라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국토교통 부대신 | 가지야마 히로시 | 중의원 / 자유민주당(무파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쓰루호 요스케 | 참의원 / 자유민주당(니카이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다카기 쓰요시 | 중의원 / 자유민주당(마치무라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노가미 고타로 | 참의원 / 자유민주당(마치무라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환경 부대신 | 다나카 가즈노리 | 중의원 / 자유민주당(무파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이노우에 신지 | 중의원 / 자유민주당(아소파) | 내각부 부대신 겸임 | |
| 기타가와 도모카쓰 | 중의원 / 자유민주당(오시마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방위 부대신 | 에토 아키노리 | 중의원 / 자유민주당(오시마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다케다 료타 | 중의원 / 자유민주당(무파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8. 대신 정무관
| 직책 | 성명 | 소속 | 비고 |
|---|---|---|---|
| 부흥대신 정무관 | 가메오카 요시타미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마치무라파) | 내각부대신 정무관 겸임 |
| 시마지리 아이코 | 참의원 / 자유민주당 (누카가파) | 내각부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나가시마 다다요시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니카이파) | 농림수산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도쿠다 다케시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다니가키 그룹) | 국토교통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2월 4일 퇴임 | |
| 사카이 마나부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무파벌) | 국토교통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2월 6일 임명 | |
| 고이즈미 신지로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무파벌) | 내각부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후쿠오카 다카마로 | 참의원 / 자유민주당 (누카가파) | 내각부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내각부대신 정무관 | 야마기와 다이시로 | 중의원 / 자유민주당 (이시하라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가메오카 요시타미 | 부흥대신 정무관 겸임 | ||
| 시마지리 아이코 | 부흥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기타무라 시게오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마치무라파) | 총무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다이라 마사아키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무파벌) | 경제산업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아키노 고조 | 참의원 / 공명당 | 환경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고이즈미 신지로 | 부흥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후쿠오카 다카마로 | 부흥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마쓰모토 후미아키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마치무라파) | 총무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이토 다다히코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니카이파) | 총무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이소자키 요시히코 | 참의원 / 자유민주당 (기시다파) | 경제산업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우키시마 도모코 | 중의원 / 공명당 | 환경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총무대신 정무관 | 다치바나 게이이치로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무파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마쓰모토 후미아키 | 내각부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가타야마 사쓰키 | 참의원 / 자유민주당 (니카이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기타무라 시게오 | 내각부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후지카와 마사히토 | 참의원 / 자유민주당 (아소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이토 다다히코 | 내각부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법무대신 정무관 | 모리야마 마사히토 | 중의원 / 자유민주당 (기시다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히라구치 히로시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누카가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외무대신 정무관 | 아베 도시코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다니가키 그룹)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기우치 미노루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무파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와카바야시 겐타 | 참의원 / 자유민주당 (마치무라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이시하라 히로타카 | 중의원 / 자유민주당 (이시하라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기하라 세이지 | 중의원 / 자유민주당 (기시다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마키노 다카오 | 참의원 / 자유민주당 (누카가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재무대신 정무관 | 이토 요시타카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니카이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다케우치 유즈루 | 중의원 / 공명당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하나시 야스히로 | 중의원 / 자유민주당 (기시다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야마모토 히로시 | 참의원 / 공명당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문부과학대신 정무관 | 니와 히데키 | 중의원 / 자유민주당 (오시마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요시이에 히로유키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마치무라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도미오카 쓰토무 | 중의원 / 자유민주당 (이시하라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우에노 미치코 | 참의원 / 자유민주당 (무파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후생노동대신 정무관 | 도카시키 나오미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누카가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마루카와 다마요 | 참의원 / 자유민주당 (마치무라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다카토리 슈이치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마치무라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아카이시 기요미 | 참의원 / 자유민주당 (마치무라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농림수산대신 정무관 | 이나쓰 히사시 | 중의원 / 공명당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나가시마 다다요시 | 부흥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오자토 야스히로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다니가키 그룹)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요코야마 신이치 | 참의원 / 공명당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경제산업대신 정무관 | 사토 유카리 | 참의원 / 자유민주당 (무파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다나카 료세이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무파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다이라 마사아키 | 내각부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이소자키 요시히코 | 내각부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국토교통대신 정무관 | 아카자와 료세이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무파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마쓰시타 신페이 | 참의원 / 자유민주당 (다니가키 그룹)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도쿠다 다케시 | 부흥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2월 4일 퇴임 | ||
| 도이 도루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마치무라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나카하라 야이치 | 참의원 / 자유민주당 (니카이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사카이 마나부 | 부흥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2월 6일 임명 | ||
| 환경대신 정무관 | 사이토 겐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무파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마키하라 히데키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무파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아키노 고조 | 내각부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우키시마 도모코 | 내각부대신 정무관 겸임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방위대신 정무관 | 사토 아키라 | 중의원 / 자유민주당 (기시다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사토 마사히사 | 참의원 / 자유민주당 (누카가파) | 2013년 9월 30일 퇴임 | |
| 기하라 미노루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누카가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 와카미야 겐지 | 중의원 / 자유민주당 (누카가파) | 2013년 9월 30일 임명 | |
9.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 직책 | 성명 | 소속 | 비고 |
|---|---|---|---|
| 내각총리대신보좌관(고향 담당) | 기무라 다로 | 중의원 자유민주당(마치무라파) | |
| 내각총리대신보좌관(국가 안전 보장 회의 및 선거 제도 담당) | 이소자키 요스케 | 참의원 자유민주당(마치무라파) | 2014년 1월 7일까지 |
| 내각총리대신보좌관(국가 안전 보장에 관한 중요 정책 및 선거 제도 담당) | 이소자키 요스케 | 2014년 1월 7일부터 | |
| 내각총리대신보좌관(국정의 중요 과제 담당) | 에토 세이이치 | 참의원 자유민주당(니카이파) | |
| 내각총리대신보좌관(정책 기획 담당) | 하세가와 에이이치 | 민간 | 내각 홍보관 겸임 |
| 내각총리대신보좌관(국토강인화 및 부흥 등의 사회 자본 정비 및 지역 활성화 담당) | 이즈미 히로토 | 민간 전 내각관방참여 | 2013년 1월 21일 임명 |
10. 내각의 활동
아베 신조는 이번 내각을 "위기 돌파 내각"이라고 명명했다. 제1차 아베 내각에서 각료를 맡았던 모두의 당 대표 와타나베 요시미는 "엉성한 내각", 류큐 신보는 "조상 회귀 내각", 정치 평론가 이타가키 히데노리는 "맹우·중진, 친구 내각", "경제 최우선 내각", 경제 분석가 모리나가 타쿠로는 "고이즈미 구조 개혁 재현 내각", 경제 평론가 가쓰마 가즈요는 "경제 재생 필승 내각", 정치 저널리스트 고토 켄지는 "거두 내각", 정치 평론가 아사카와 히로타다는 "필승 견실 내각", 정치 평론가 모리타 미노루는 "극우 흥분 내각"이라고 명명했다. 뉴스위크 일본판은 "페이스북 재상"이라고 썼다(2013년 7월 30일 호).
* 아베는 이 정권 발족 이전에도 자민당 총재 및 내각총리대신을 역임한 적이 있다(제90대, 제1차 아베 내각, 제1차 아베 개조 내각). 수상 경험자에 의한 자민당 총재 재선은 당 사상 최초이며, 수상 재임은 1948년 (쇼와 23년)에 성립된 제2차 요시다 내각의 요시다 시게루 (제45대, 제48대~51대) 이래이다.
* 전 수상 아소 다로는 부총리 겸 재무대신으로 입각했지만, 수상 경험자의 입각은 오부치 내각에서 미야자와 기이치가 대장 대신 (2001년1월 6일 이후에는 재무 대신)으로 입각 (다음 제2차 모리 개조 내각까지), 제2차 모리 개조 내각에서 하시모토 류타로가 오키나와 개발청 장관 및 행정 개혁 담당 대신으로 입각했을 때 이래이다. 전 수상이 부총리로 재입각하는 것은 제1차 요시다 내각의 히데하라 키주로 이래이다.
* 귀신이 된 나카가와 쇼이치를 제외한 맹우 그룹 NASA의 모임의 전원이 내각의 중요 각료로 입각했다.
* 전 총재에 해당하는 타니가키 사다카즈 외, 그 다음 총재를 결정하는 2012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 입후보한 이시하라 노부테루와 하야시 요시마사도 입각했다. 마찬가지로 입후보하여 결선 투표에서 패배한 이시바 시게루는 계속 당 간사장에 유임되었다. 2013년 10월부터는 이시하라 노부테루의 동생 이시하라 히로타카가 외무대신 정무관으로 취임했다.
* 아베, 아소, 타니가키 3명은, 후쿠다 야스오 (내각 성립 전의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은퇴. 지역구를 물려받은 아들 후쿠다 타츠오가 출마하여 첫 당선)와 함께 포스트 고이즈미 (고이즈미 준이치로)로 여겨져 "아소 타니가키 야스오"라고 불리던 멤버이다. 또한, 2013년 10월부터는, 고이즈미 준이치로의 아들인 고이즈미 신지로가 자민당 청년국 국장을 퇴임하고 내각부 대신 정무관 겸 부흥 대신 정무관으로 취임했다.
* 오부치 유코는, 내각 발족 직전까지 입각 내정으로 되어 있었지만, 포스트 조정으로 국무대신이 아닌 재무 부대신으로 충원되었다 (2013년 10월까지).
* 첫 입각자는 10명, 재입각자는 8명. 이 8명 중 아소, 아마리, 키시다, 스가 4명은 1번째 아베 정권 (제1차 아베 내각·제1차 아베 개조 내각)에서도 각료를 맡고 있었다(다만, 전원 이 내각과는 다른 포스트). 마찬가지로 이전의 아베 내각에서 각료를 맡았던 타카무라 마사히코는 당 부총재에 유임, 타카이치 사나에는 당 정무조사회장, 이부키 분메이는 중의원 의장에 각각 취임했다.
* 아비루 루비에 의하면 외무대신의 인선이 난항이었다고 한다. 아비루가 "타카무라 마사히코 씨 어떠십니까?"라고 말하자 아베가 "건강 상태 때문에 거절당했다. 가와구치 요리코 씨는 본인이 싫어하는 것 같다."라고 대답했고, 그 후, 아베로부터 "외무대신은 키시다 씨로 했다"라는 연락이 있었다。
* 연립을 구성하는 공명당에서는, 전 대표 오오타 아키히로가 국토교통대신으로 첫 입각. 오오타는 자민당이 야당이 되기 직전 (아소 내각 때)까지의 공명당의 대표이며, 다음으로 대표가 된 야마구치 나츠오에게는 여당의 당수가 되는 것이 이 내각에서 처음이 된다.
내각의 수상과 모든 각료가 동일한 인원인 내각으로는, 2014년 2월 24일에 제1차 사토 에이사쿠 내각의 제1차 개조 내각의 425일을 넘어, 같은 해 9월 3일까지 617일을 기록하여 전후 최장 기록을 경신했다。이 이상의 기간이 되는 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전을 포함해도 그 외에는 메이지 시대의 제2차 야마가타 아리토모 내각 (711일) 뿐이다。또한, 2013년은 1년 동안 (1월 1일~12월 31일) 각료의 교체가 한 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내각 개조나 사직에 따른 각료의 교체가 전혀 없는 해는, 미키 내각의 1975년 이래 38년 만이었다.
제1차 아베 내각의 관방 부장관이었던 토바 쥰조는, 제2차 아베 내각의 장기 집권화 이유를 "반대 의견이 많은 가운데, 스스로 총재 선거에 출마하여 흐름을 만들었다. 중의원 선거, 참의원 선거의 승리로 아베 키즈가 생겨 당내 기반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제2차 아베 신조 내각은 내정과 외교 및 안전 보장에서 여러 정책들을 추진했다.
내정
* 행정 개혁: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은 지방 공무원 급여를 국가 공무원 수준으로 삭감하려 했으나, 자민당과 공명당에서 반발이 있었다. 결국, 임시 각의에서 지방 공무원 급여 인하를 자치 단체에 요구하는 방침이 결정되었다.
민주당 정권에서 임명된 관료들이 교체되는 등 이례적인 인사가 이어졌다. 내각법제국 장관에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합헌이라는 입장을 가진 외교관 고마쓰 이치로가 임명되었다.
* 노동 시장 유연화: 일용직 파견 부활이 제안되었으나, 구체적인 대책은 제시되지 않았다. 규제 개혁 회의는 사용자 측에도 수요가 있다고 주장하며, 사람을 바꾸면 하나의 업무를 파견 사원이 계속 담당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구조도 도입되었다.
규제 개혁 회의는 '상용 대체(정규직에서 파견 노동자로 교체하는 것) 방지' 재검토를 목표로 했으며, 임금 상승과 고용 유동성은 트레이드 오프 관계에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모리나가 타쿠로는 과거 고이즈미 내각의 노동 시장 개혁으로 고용자 보수가 감소하고 정규직이 격감했던 것과 같은 실패를 반복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해고 절차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을 검토하는 한편, "사전형 금전 해결 제도" 도입은 보류되었고, 해고 무효 판결 후의 "사후형 금전 해결"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었다.
"한정 정사원"은 직무가 계속되는 한 기간을 정하지 않고 고용되지만, 기업이 직무를 폐지했을 경우에는 고용 계약이 종료되는 고용 형태이다. 규제 개혁 회의는 이 제도를 도입하면 고용의 유동화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산업 경쟁력 회의에서 고용 유동화를 위한 고용 제도 개혁의 골격이 정해져, "한정 정사원" 증원을 촉진하는 방침이 정해졌다.
* 성장 전략: 아베 신조 총리는 미국에 초전도 리니어 신칸센 기술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표명했다.
'아베노믹스 전략 특구'를 3대 도시권을 중심으로 창설하는 검토에 들어갔다. 도쿄는 외국인 의사 수용 및 영어 대응 구급차, 약사를 배치하는 특구를 설치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혼합 진료도 검토 대상이다. 중부권에서는 고도의 기술을 가진 외국인 노동자 수용 특구를 창설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노동 시간 규제 완화를 하는 '미래형 고용 특구'를 검토하고 있다.
다케나카 헤이조는 성장 전략 내용에 불만을 표시했으며, 월스트리트 저널은 일본의 의료 제도를 비판하며 영리 목적의 병원 및 의원 허가를 요구했다.
성장 전략 제3탄이 발표되었지만, 도쿄 주식 시장에서는 "실망 매도"로 인해 주가가 대폭 하락했다. 성장 전략 제3탄의 내용은 "국가 전략 특구" 창설, PFI 확대, 일반 의약품의 인터넷 판매 해금 등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코노미스트들은 성장 전략에 대해 "일률적인 법인세 감세나 고용 유동화 대책이 포함되지 않아 주축이 되는 정책이 빠져 있다"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한화 그룹이 일본 국내에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게 되었다.
고도 인재로 인정된 외국인이 영주권을 취득하는 데 필요한 재류 기간을 단축하고, 부모나 가사 사용인의 동반도 허용하는 법안이 각의 결정되었다. 매년 20만 명의 이민 대량 수용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갔으며, "노동력 확보에 관한 특명 위원회"를 발족하여 이민을 포함한 노동력으로서의 외국인 수용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다.
* 소비세 증세: 아소 다로 재무상은 소비세 증세를 예정대로 인상할 생각임을 표명했다. 소비세 증세 판단에 관한 집중 점검 회의에서 증세파가 다수를 차지했으며, 아베 신조 총리는 소비세 8% 인상을 결정했다.
* 기타 내정 문제: 자유민주당이 와타미 그룹 회장 와타나베 미키를 참의원 선거에 옹립하는 방침을 밝혀 논란이 되었다. 와타미 푸드 서비스 사원의 자살이 장시간 노동이 원인으로 산재 인정된 바 있어, 옹립에 대해 비판이 나왔다. 와타나베는 과거 금융 완화 정책에 회의적이었고, 반원전과 소비세 증세도 주장했다. 주간 문춘의 기사에 대해 제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민당이 참의원 비례구에서 71세의 사사키 요헤이를 공인한 것에 대해 비판이 높아졌지만, 니카이 토시히로 총무회장 대행은 옹호했고, 후보 변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출신인 나가시마 시게오, 마쓰이 히데키 두 사람에게 국민영예상 수여 방침을 발표했지만, 표창 기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었다.
'블랙 기업'에 대해 회사명을 공표하는 등의 조치를 정부에 건의하는 방침을 굳혔다. 고무라 마사히코 자민당 부총재는 비정규직 차별에 대해 쓴소리를 했으며, '블랙 기업' 공표에 관해서는, 설문 조사에서 93.5%의 찬성이 모였다. 와타나베 미키는 블랙 기업 정의를 명확히 하고 해당 기업명을 공표하는 움직임에 찬성하며, 와타미 그룹을 블랙 기업이라고 부르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외교 및 안전 보장
(하위 섹션에서 상세히 다루므로 간략하게 요약)
*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중국 해군의 레이더 조사 문제,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 협상 참가 문제 등이 주요 현안이었다.
* 야스쿠니 신사 방화범에 대한 한국 법원의 정치범 판단, 블루 임펄스 기체 번호 '731' 논란, 북방 영토에서의 제3국 기업 활동 등도 외교적 문제로 불거졌다.
10.1. 외교 및 안전 보장
제2차 아베 신조 내각은 외교 및 안전 보장 분야에서 여러 문제에 직면했다.
2013년, 아베 총리를 비롯한 각료들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한국과 중국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국회는 일본의 군국주의 회귀 움직임에 대한 결의를 가결했고, 미국 언론과 오바마 행정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우려를 표명했다. 아베 총리는 "영령에게 존숭의 염을 표하는 자유"를 강조하며 참배를 옹호했다.
중국 해군의 레이더 조사 문제와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 협상 참가 문제도 주요 현안이었다. TPP 협상 참가는 일본 내 농업계의 반발을 샀으며, 미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자동차, 보험 등 여러 분야에서 이견이 있었다. 아베 총리는 국경 개방과 시장 개방을 강조하며 TPP 추진 의지를 밝혔지만, 협상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야스쿠니 신사 방화범에 대한 한국 법원의 정치범 판단, 블루 임펄스 기체 번호 '731' 논란, 북방 영토에서의 제3국 기업 활동 등도 외교적 문제로 불거졌다.
10.1.1.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
2013년 4월, 야스쿠니 신사 봄 예대제에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대신, 신도 요시타카 총무대신, 고야 게이지 납치 문제 담당 대신, 가토 가쓰노부 관방 부장관이 참배했고, 아베 총리는 마사카키를 봉납했다. 모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의 모임에서는 168명이 참배했다.
이에 중국 외무성 대변인 화춘잉은 "일본은 역사를 직시하고 전시 중의 침략 행위로 인한 희생자의 감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견해를 발표했고, 아시아 개발 은행 연차 총회에 맞춰 열리던 중일한 재무 장관·중앙 은행 총재 회의를 중지했다.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도 "극히 불쾌"라고 비판했고, 윤병세 외무부 장관의 방일이 중지되었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 장관은 외상 회담 중지 견해를 부정했다. 2013년 4월 23일 참의원 예산 위원회에서 아베 총리가 "침략의 정의는 학문적으로도 국제적으로도 정해져 있지 않다"고 답변하자, 한국 언론들은 일제히 비판했다. 한국 국회는 2013년 4월 29일 일본의 군국주의 회귀 움직임에 대해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를 압도적 다수로 가결했다.
뉴욕 타임스는 2013년 4월 24일 "일본의 쓸데없는 국가주의"라는 사설에서 아베 총리가 역사 문제 대신 경제 개선과 민주 국가로서의 역할 강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워싱턴 포스트는 2013년 4월 27일 '아베 신조는 역사를 정시할 수 없다'라는 제목으로 비판했다. 버락 오바마 정권은 동아시아 정세 불안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고, 2013년 6월 2일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도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아베 총리는 2013년 4월 24일 참의원 예산 위원회에서 각료들의 참배를 옹호했고, "모두 참배하는 모임" 회장 오츠지 히데히사는 참배가 자연스러운 행위라고 주장했다. 일본 유신회 하시모토 도루는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외교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인식을 나타냈다.
미 의회 조사국은 2013년 5월 1일 아베 내각 일부 각료의 극단적 국가주의 견해를 지적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10.1.2. 중국 해군 레이더 조사 문제
2013년 2월 7일,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의 군함이 해상자위대 호위함에 화기 관제용 레이더를 조사한 문제에 대해, 아베가 보고를 받은 것은 사건 발생 6일 후였음이 밝혀져, 국회에서 추궁을 받았다. 다만, 민주당 정권 시대에도 여러 차례 레이더 조사가 있었다고 아사히 신문 6일 석간 및 니케이 신문 7일 조간 등에서 잇따라 보도되었으며, 민주당 하라구치 카즈히로의 졸렬한 추궁도 문제시되었다.
10.1.3. TPP 협상 참가 문제
2013년 3월 15일, 아베 신조 내각은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 협상 참가를 표명했다.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전 아소 타로가 당시 내각총리대신 노다 요시히코에게 전화하여 TPP 참가를 강요했던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TPP 협상 참가에 대한 반대 의견도 있었다. 6월 2일, 야마가타현 농협 정치 연맹은 TPP 참가를 반대하는 미도리의 바람 소속 후나야마 야스에를 추천하기로 결정했고, 자민당 니시카와 코야는 이에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3월 18일, 예산위원회에서 아베 총리는 TPP에 반대하는 홋카이도 선출 의원을 염두에 두고 "국익과 자민당의 당익이 상반될 때에는 자민당 따위 해산하는 것"이라 답변했다. 자민당 내 신중파에게는 "정부에 조건을 너무 많이 요구하고 있다"고 비판하며 일본 유신회 하시모토 토오루와의 연계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2013년 3월 24일, 자동차・보험 이외 "비관세 조치" 관련 협의 결론도 협상 참가를 위한 미 의회 통보 전제 조건이 됨이 밝혀졌다. 이는 일본의 협상 참가를 늦추거나, 미국 측 양보를 양국 간 거래로 해결하려는 목표로 보인다. 4월 1일, 스가 관방장관은 7월 협상 참가를 목표로 하는 방침을 제시하며, 더 늦어지면 일본 입장을 '주장할 수 없게' 되므로 '아슬아슬한 시기'라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는 "저작권 보호 기간 연장", "상표권 관련 손해액 증명 없이도 법원이 배상 금액을 정할 수 있는 '법정 손해 배상' 도입" 등에서 미국 측 공세가 강화되고 있다고 한다.
4월 9일, 자동차・보험 분야에서 미국과의 사전 협의가 마무리될 공산이 커져, 7월 중 협상 참가 방향으로 흘렀다. 12일 발표된 사전 협의 합의에 따르면, 9개 분야 비관세 조치("지적 재산권", "보험 분야", "투명성과 무역 원활화", "식품 안전 기준", 기업 경쟁 촉진 "경쟁 정책", 공공 사업 등 "정부 조달", "투자 규칙", "택배", 공업 제품 등 "규격과 기준")가 미일 양국 간 직접 협의 대상이 되었다. 이는 미일 경제 조화 대화와 연차 개혁 요망서와 내용이 중복된다.
협상 참가 교환 조건으로, 승용차와 트럭 관세를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 결정된 것에 일본 자동차 공업회는 실망했다. 농산물 성역화는 구체적 안건이 협상 개시 후에 결정되며, 성역이 인정되더라도 극히 일부에 한정될 것으로 보여 궤멸적 피해가 예측되는 홋카이도를 중심으로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
2013년 5월 17일, 말레이시아 7월 TPP 회담이 15~24일 일정으로 열릴 전망이 되면서, 미국 의회 승인이 23일이기에 일본 조기 협상 참가는 실질적으로 거부되었다. 이후 일본 측 요청으로 하루 연장되어, 견해 표명과 독자 제안만은 실시할 수 있을 전망이 되었다.
내각총리대신 아베 신조는 정치가가 된 이후 국경을 열고 일본 사회와 시장을 개방하는 것을 철학으로 삼아 "세계에 대해 어디까지나, 넓게, 오픈으로 연결되는 일본"을 추구한다. 2013년 6월 19일 런던 강연에서 "국경을 열고, 일본 시장을 오픈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치가가 된 이후, 제 안에 흐르는 일관된 철학이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제 국경이나 국적에 얽매이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미일) 양국이 TPP를 만드는 것은 역사의 필연입니다."라는 견해를 보이며, 글로벌 기업 활동의 국경 철폐를 목표로 한다.
10.1.4. 기타 외교·안보 문제
2013년 1월 3일, 야스쿠니 신사에 방화한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의 피의자 류창에 대해 서울고등법원은 이 행위를 "정치범"으로 간주하여 일본으로의 인도를 불허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 판결은 한일 범죄인 인도 조약에 따라 "(류창 용의자를) 일본으로 인도하는 것은 한국의 정치적 질서나 헌법 이념, 그리고 다수의 문명 국가가 공유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부정하는 것"이라는 판단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다음날인 1월 4일, 외무성 사무차관 가와이가 주일 대사 신각수에게 항의했고, 신 대사는 "야스쿠니 신사를 단순한 종교 시설이 아닌, 과거의 침략 전쟁을 정당화하는 정치 질서의 상징으로 간주한 범행"이라고 답변했다.
2013년 5월 15일, 동일본 대지진 피해 현장 시찰에서 아베가 탑승한 블루 임펄스의 기체 번호가 '731'이었던 탓에, YTN 텔레비전 등 한국 미디어에서 구 일본군의 731 부대를 연상시킨다며 '도발'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주일 대사 신각수는 '731 부대 피해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일본 측은)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타이거 머시너리(Tiger Machinery)의 자회사인 사할린 머시너리(사할린 Machinery)가 일본과 러시아가 영유권을 두고 분쟁 중인 북방 4개 섬에서 지열·풍력 발전소 건설 공사를 수주했다. 산케이 신문은 북방 영토에서의 경제 활동에 참여하는 제3국의 기업과 관계자에게 일본 입국 금지와 같은 경제 제재 조치를 가할 것을 제안했지만, 일본 외무성은 항의 외에 별다른 대항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2013년 4월, 야스쿠니 신사의 봄 예대제에 부총리 겸 재무대신 아소 다로, 총무대신 신도 요시타카, 납치 문제 담당 대신 고야 게이지, 관방 부장관 가토 가쓰노부가 참배하고, 아베는 마사카키를 봉납했다. 모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의 모임에서는 168명이 참배했다.
이에 대해 중국 외무성 대변인 화춘잉은 "일본은 역사를 직시하고 전시 중의 침략 행위로 인한 희생자의 감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견해를 발표했다. 한국 정부 고위 관계자도 "극히 불쾌"라고 비판했고, 월말에 예정되어 있던 윤병세 외무부 장관의 방일 중지를 결정했다. 같은 달 29일, 한국 국회도 "(일본의 군국주의 회귀의 움직임에 대해) 모든 외교적 수단을 동원해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요구한다"는 결의를 압도적 다수로 가결했다.
뉴욕 타임스는 "일본의 쓸데없는 국가주의"라는 제목의 사설을 게재했고, 워싱턴 포스트는 '아베 신조는 역사를 정시할 수 없다'라는 제목으로 비판했다. 버락 오바마 정권은 외교 루트로 비공식적으로 동아시아 정세의 불안정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고, 2013년 6월 2일에는 유엔 사무총장 반기문이 "과거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요구하며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아베는 "우리 각료는 어떤 협박에도 굴하지 않는다. 고귀한 영령에게 존숭의 염을 표하는 자유를 확보해 나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라고 참배 용인의 자세를 보였다.
10.2. 내정
제2차 아베 신조 내각은 내정 면에서 여러 개혁과 정책을 추진했다.
행정 개혁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은 지방 공무원 급여를 국가 공무원 수준으로 삭감하려 했으나, 자민당과 공명당에서 반발이 있었다. 정부는 지방 자치 단체의 지방 교부세를 삭감하는 방침을 정했지만, 총무성 지방 재정 심의회는 지방이 이미 독자적인 인원 및 급여 삭감을 실시해 왔다고 지적했다. 결국, 임시 각의에서 지방 공무원 급여 인하를 자치 단체에 요구하는 방침이 결정되었다.
내각 출범 이후 민주당 정권에서 임명된 관료들이 교체되는 등 이례적인 인사가 이어졌다. 내각관방부장관보, 방위사무차관, 총무사무차관, 외무사무차관, 재무사무차관, 후생노동사무차관, 일본 우정 사장, 문부과학사무차관, 상공조합중앙금고 사장, 국토교통사무차관, 해상보안청 장관 등이 취임 1년 미만 또는 1년여 만에 퇴임했다. 내각법제국 장관에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합헌이라는 입장을 가진 외교관 고마쓰 이치로가 임명되었다.
노동 시장 유연화
일용직 파견 부활이 제안되었으나, 구체적인 대책은 제시되지 않았다. 규제 개혁 회의는 "사용자 측에도 니즈가 있다"고 주장하며, "사람을 바꾸면 하나의 업무를 파견 사원이 계속 담당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구조도 도입되었다.
규제 개혁 회의는 '상용 대체(정규직에서 파견 노동자로 교체하는 것) 방지' 재검토를 목표로 했으며, 임금 상승과 고용 유동성은 트레이드 오프 관계에 있다는 주장이 나왔다. 모리나가 타쿠로는 과거 고이즈미 내각의 노동 시장 개혁으로 고용자 보수가 감소하고 정규직이 격감했던 것과 같은 실패를 반복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해고 절차를 명확히 규정하는 것을 검토하는 한편, "사전형 금전 해결 제도" 도입은 보류되었고, 해고 무효 판결 후의 "사후형 금전 해결"에 대한 논의는 계속되었다.
"한정 정사원"은 직무가 계속되는 한 기간을 정하지 않고 고용되지만, 기업이 직무를 폐지했을 경우에는 '고용 계약이 종료'되는 고용 형태이다. 규제 개혁 회의는 이 제도를 도입하면 고용의 유동화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산업 경쟁력 회의에서 고용 유동화를 위한 고용 제도 개혁의 골격이 정해져, "한정 정사원" 증원을 촉진하는 방침이 정해졌다.
성장 전략
아베 신조 총리는 미국에 초전도 리니어 신칸센 기술을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표명했다.
'아베노믹스 전략 특구'를 3대 도시권을 중심으로 창설하는 검토에 들어갔다. 도쿄는 외국인 의사 수용 및 영어 대응 구급차, 약사를 배치하는 특구를 설치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혼합 진료도 검토 대상이다. 중부권에서는 고도의 기술을 가진 외국인 노동자 수용 특구를 창설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노동 시간 규제 완화를 하는 '미래형 고용 특구'를 검토하고 있다.
다케나카 헤이조는 성장 전략 내용에 불만을 표시했으며, 월스트리트 저널은 일본의 의료 제도를 비판하며 영리 목적의 병원 및 의원 허가를 요구했다.
성장 전략 제3탄이 발표되었지만, 도쿄 주식 시장에서는 "실망 매도"로 인해 주가가 대폭 하락했다. 성장 전략 제3탄의 내용은 "국가 전략 특구" 창설, PFI 확대, 일반 의약품의 인터넷 판매 해금 등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코노미스트들은 성장 전략에 대해 "일률적인 법인세 감세나 고용 유동화 대책이 포함되지 않아 주축이 되는 정책이 빠져 있다"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한화 그룹이 일본 국내에 태양광 발전소를 건설하게 되었다.
고도 인재로 인정된 외국인이 영주권을 취득하는 데 필요한 재류 기간을 단축하고, 부모나 가사 사용인의 동반도 허용하는 법안이 각의 결정되었다. 매년 20만 명의 이민 대량 수용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갔으며, "노동력 확보에 관한 특명 위원회"를 발족하여 이민을 포함한 노동력으로서의 외국인 수용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다.
소비세 증세
아소 다로 재무상은 소비세 증세를 예정대로 인상할 생각임을 표명했다. 소비세 증세 판단에 관한 집중 점검 회의에서 증세파가 다수를 차지했으며, 아베 신조 총리는 소비세 8% 인상을 결정했다.
기타 내정 문제
자유민주당이 와타미 그룹 회장 와타나베 미키를 참의원 선거에 옹립하는 방침을 밝혀 논란이 되었다. 와타미 푸드 서비스 사원의 자살이 장시간 노동이 원인으로 산재 인정된 바 있어, 옹립에 대해 비판이 나왔다. 와타나베는 과거 금융 완화 정책에 회의적이었고, 반원전과 소비세 증세도 주장했다. 주간 문춘의 기사에 대해 제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민당이 참의원 비례구에서 71세의 사사키 요헤이를 공인한 것에 대해 비판이 높아졌지만, 니카이 토시히로 총무회장 대행은 옹호했고, 후보 변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요미우리 자이언츠 출신인 나가시마 시게오, 마쓰이 히데키 두 사람에게 국민영예상 수여 방침을 발표했지만, 표창 기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었다.
'블랙 기업'에 대해 회사명을 공표하는 등의 조치를 정부에 건의하는 방침을 굳혔다. 고무라 마사히코 자민당 부총재는 비정규직 차별에 대해 쓴소리를 했으며, '블랙 기업' 공표에 관해서는, 설문 조사에서 93.5%의 "찬성"이 모였다. 와타나베 미키는 블랙 기업 정의를 명확히 하고 해당 기업명을 공표하는 움직임에 찬성하며, 와타미 그룹을 블랙 기업이라고 부르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10.2.1. 행정 개혁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은 지방 공무원 급여에 관해 평균 7.8% 삭감된 국가 공무원 수준으로 삭감할 것을 요청했으나, 2013년 1월 16일 자민당의 일본 경제 재생 본부 회의에서 소속 의원들로부터 이의가 잇따랐다. 니시다 쇼지는 "이상한 포퓰리즘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라고 했고, 코지마 토시후미는 "지방 자치 단체는 이미 열심히 급여를 삭감해 오고 있다. 여름 참의원 선거에서 질 수도 있다"라고 주장하여 대립이 이어졌다. 공명당 대표인 야마구치 나츠오도 16일 밤에 자치노에 출두하여 아소에게 쓴소리를 했다.
2013년 1월 17일, 정부는 지방 자치 단체의 4월부터 지방 공무원 급여 인하를 위해 급여에 충당되는 지방 교부세를 2013년도 예산에서 삭감하는 방침을 정했다. 한편, 총무성의 지방 재정 심의회의 진노 나오히코는 "지방은 지금까지 국가보다 먼저 독자적인 인원 삭감과 급여 삭감을 실시해 왔다"라고 못 박았다.
2013년 1월 24일, 임시 각의에서 지방 공무원의 급여를 국가 공무원 수준으로 인하하도록 자치 단체에 요구하는 방침을 결정했다. 자치 단체의 자율적인 판단으로는 국가에 따르는 움직임이 거의 없기 때문에, 삭감 요청으로 방침을 전환했다.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출범 이후 이례적인 관료 인사가 이어져 민주당 정권 하에서 임명된 간부 공무원 등이 교체되었다. 2012년 내각이 출범하자, 취임한 지 불과 1개월 정도였던 내각관방부장관보 우메모토 가즈요시가 퇴임하였다. 2013년 3월에는 방위사무차관 가나자와 히로노리가 취임 1년 만에 퇴임했으며, 같은 해 6월에는 총무사무차관 오가사와라 미치아키, 외무사무차관 가와이 모리오, 재무사무차관 마사고 야스시, 후생노동사무차관 가네코 준이치와 일본 우정 사장 사카 아쓰로가 취임 1년 미만으로 퇴임했으며, 문부과학사무차관 모리구치 야스다카도 취임 1년여 만에 퇴임했다.
같은 달, 상공조합중앙금고 사장 세키 테쓰오가 전 경제산업사무차관 스기야마 슈지로 교체되었으며, 8월에는 국토교통사무차관 사토 나오라 및 해상보안청 장관 기타무라 다카시가 1년 미만으로 퇴임했다. 또한 내각법제국 장관에 통례였던 내각 법제 차장으로부터의 승진이 아닌, 집단적 자위권 행사가 합헌이라는 입장을 취하는 외교관인 고마쓰 이치로를 임명했다.
10.2.2. 노동 시장 유연화
2013년 10월 4일, 연말 파견촌이나 인터넷 카페 난민으로 사회 문제가 되었던 일용직 파견을 부활하는 것이 제안되었다. 일용직 파견 남용 방지를 검토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대책은 제시되지 않았다。규제 개혁 회의의 츠루 코타로는 "사용자 측에도 니즈가 있다", "단기간만 일하고 싶은 사람도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사람을 바꾸면 하나의 업무를 파견 사원이 계속 담당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구조도 도입되었으며, 이에 대해 스미토모 상사 상담역인 오카 모토유키는 "노사가 납득"하여 "다양한 방식으로 일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3년 5월 14일, 츠루 코타로를 좌장으로 하는 규제 개혁 회의의 고용 부회에서 '상용 대체(항상 존재하는 업무에 대해 정규직에서 파견 노동자로 교체하는 것을 인정하는 것) 방지' 재검토를 목표로 하는 것이 확인되었다. 노동 빅 뱅 당시와 마찬가지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의 양극화를 시정한다"는 것이 명시되었다. 츠루 코타로는 임금 상승과 고용 유동성은 트레이드 오프 관계에 있다는 생각을 내세운 후 '(노동 시장 양극화의 시정을 위해서는) 정규 고용으로의 개혁을 포함해 실시하지 않으면 양극화의 근본적인 해결은 없다'고 설명했다。
규제 개혁 회의에서는 전문 26개 업무를 제외하고 최장 3년으로 제한하고 있는 파견 노동자의 수용 기간 규제를 변경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 모리나가 타쿠로는 과감한 금융 완화에 따른 호황 후에 고이즈미 내각에 의해 실시된 일련의 노동 시장 개혁(제조업으로의 파견 노동 해금 등)으로 고용자 보수가 감소하고 정규직이 격감했던 것과 같은 실패를 반복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2013년 4월 2일, 아베는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산업경쟁력회의의 민간 의원이자 경제동우회 대표 간사인 하세가와 칸시의 주장인 "사후적인 금전 해결 등 해고 절차를 노동계약법으로 명확히 규정"하는 것을 검토 대상으로 할 의향을 보였다.
2013년 4월 23일, 재취업 지원금을 지불하면 해고할 수 있는 "사전형 금전 해결 제도" 도입은 6월에 책정할 성장 전략에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 한편, 해고 무효 판결 후의 "사후형 금전 해결"에 대해서는 논의를 계속하기로 했다.
"한정 정사원"은 현재의 정사원과 비정규직의 중간에 위치하는 고용 형태이며, 직무가 계속되는 한 기간을 정하지 않고 고용되지만, 기업이 직무를 폐지했을 경우에는 '고용 계약이 종료'되는 것이다. 구조 조정 등으로 사업 구조가 크게 변경되었을 경우 인건비를 삭감하기 쉬운 장점이 있다。규제 개혁 회의가 제시한 6월의 답신에 포함되게 되었다。규제 개혁 회의에서 이 제안을 하고 있는 민간 의원 츠루 코타로는 "한정 정사원"을 도입하면 기업이 잉여 인력을 안게 되는 일이 없어지므로 고용의 유동화로 이어진다고 설명했다。
2013년 4월 23일의 산업 경쟁력 회의에서 고용 유동화를 위한 고용 제도 개혁의 골격이 정해져, 근무 지역이나 직종 등을 한정하는 이른바 "한정 정사원"의 증원을 촉진하는 방침이 정해졌다。5월 13일에는, 규제 개혁 회의의 고용 부회가 "(한정 정사원의) 해고에 필요한 조건의 룰화"를 요구하기로 결정했지만, "개별 사례마다 사법 판단을 한다"며 후생노동성은 난색을 표하고 있다고 한다。
10.2.3. 성장 전략
아베 신조 총리는 2014년 4월 24일 열린 미일 정상회담에서 일본의 초전도 리니어 신칸센 기술을 미국에 무상으로 제공하겠다고 표명했다. 2013년 2월 정상회담에서도 "미일 동맹의 상징"으로 기술 제공을 제안했다. 리니어 연구는 1962년부터 시작되었으며, 일반적으로 리니어 기술 제공을 희망하는 경우에는 라이선스료가 징수된다.
2013년 4월 16일, 아베 주도 하에 규제를 완화하는 '아베노믹스 전략 특구'를 3대 도시권을 중심으로 창설하는 검토에 들어갔다. 도쿄는 외국인 의사 수용 및 영어 대응 구급차, 약사를 배치하는 특구를 설치하여 최첨단 의료 도시를 목표로 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혼합 진료도 검토 대상이다. 중부권에서는 고도의 기술을 가진 외국인 노동자 수용 특구를 창설하고, 다른 지역에서는 노동 시간 규제 완화를 하는 '미래형 고용 특구'를 검토하고 있다.
2013년 5월 14일 산업 경쟁력 회의에서, 고이즈미 구조 개혁의 중심 인물이자 일본유신회와도 가까운 입장인 다케나카 헤이조가 "혼합 진료 등 난공불락이라고 여겨졌던 항목들이 빠져 있다"라며 내용에 불만을 표시했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사설에서 일본의 의료 제도에 대해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에 필적하는 악몽 같은 의료 보험 시스템"이라고 비판하며 영리 목적의 병원 및 의원 허가를 요구하고 있다. 또한, "정규직 해고를 쉽게 하는 계획"이 후퇴하고 있다는 것에 불만을 표시하며 "(아베의) 정치적 기세를 이러한 규제 장벽을 깨뜨리는 힘으로 이용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2013년 6월 5일, 성장 전략 제3탄이 발표되었지만, 도쿄 주식 시장에서는 "실망 매도"로 인해 500엔 이상 대폭 하락했다. 성장 전략 제3탄의 내용은 ① "국가 전략 특구" 창설 (도심의 용적률 규제 완화, 국제 학교 설립 지원, 외국인 의사의 국내 의료 행위 인가 등) ② 공항, 도로 정비로 PFI(민간 자본을 활용한 사회 자본 정비) 확대 ③ 일반 의약품(시판약)의 인터넷 판매 해금 등이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코노미스트들은 성장 전략에 대해 "일률적인 법인세 감세나 고용 유동화 대책이 포함되지 않아 주축이 되는 정책이 빠져 있다"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고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영어를 사용하기 쉬운 환경 외에 고용 관련 규제 완화도 필요하다"라며 '해고를 쉽게 하는 것'의 의의를 설명하고 있다.
2013년 한국의 한화 그룹이 총 출력 100MW의 태양광 발전소를 일본 국내에 건설하게 되었다. 재생 가능 에너지의 전량 매입 제도로 채산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이며, 앞으로도 외자 대형 투자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2014년 3월 11일, 아베 내각은 고도 인재로 인정된 외국인이 영주권을 취득하는 데 필요한 재류 기간을 3년으로 단축하고, 부모나 가사 사용인의 동반도 허용하는 출입국관리 및 난민인정법 개정안을 각의 결정했다. 외국인 노동자 수용 규제 완화와 '이민의 대량 수용'은 궤를 같이 한다는 시각이 있으며, 외국인 노동자 수용 규제 완화로 들어오는 이민의 대다수는 중국인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있다.
2014년 3월, 매년 20만 명의 이민 대량 수용에 대한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갔다.
2016년 3월, "노동력 확보에 관한 특명 위원회"를 발족하여 이민을 포함한 노동력으로서의 외국인 수용에 관한 논의를 시작했다. 시모무라 하쿠분은 "1000만 명, 2000만 명이 오는 것은 국민적 이해를 얻을 수 없다"고 했지만, 특명위 위원장 기무라 요시오는 "『이민 직전』까지 갈 수 있는지를 포함해 논의하고 싶다"고 밝혔다.
10.2.4. 소비세 증세
정부는 종전에는 "(소비세 증세는) 다양한 지표를 보고 종합적으로 시기를 판단하고 싶다"고 했지만, 아소 다로 재무상은 G20 직전인 2013년 4월 19일자 파이낸셜 타임스 기고 등에서 "예정대로 (세율을) 인상할 생각이다"라고 표명했고, 주요 언론은 일제히 '과감한' 표현을 사용하여 보도했다。 그 후 열린 2013년 4월 23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아소는 "(판단할 때 보는) 지표는 여러 가지가 있다. 정치적 판단으로 결정된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올릴 수 없다고 (세제 근본 개혁법 부칙에) 쓰여 있다"라며 기존 정부 입장을 반복했지만, 재무성 간부는 그날 저녁 열린 아소와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과의 회담에서 아소가 "(증세를) 실시할 수 있도록 경제 환경을 확실하게 만들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고 니혼게이자이 신문에 발표했다. 더욱이 다음날인 24일에는 재무성이 2013년 1-3월기 전국 경기 판단을 "완만하게 회복되고 있다"라고 상향 수정 발표했다。
2014년 8월부터 소비세 증세 판단에 관한 집중 점검 회의가 여러 차례 개최되었다. 이 회의 자료에서 도이 다케로는 '예정대로 소비세율 인상의 필요성'이라는 표제로 강조하고, 이토 다카토시는 '예정대로 소비세율 인상에 찬성하는 3가지 이유'라는 설명에서 아시아 금융 위기 등이 1997년 증세 실패의 원인이라고 지적했으며, 요시카와 히로시는 '소비세율은 예정대로 인상해야 한다'라고 특별히 대서특필하는 등 증세파가 회의의 다수를 차지했고, 신중파는 가타오카 다케시, 시시도 슌타로 등 소수에 그쳤다. 이러한 경위를 거쳐 2013년 10월 1일 아베 신조 총리는 소비세 8% 인상을 결정했다。
10.2.5. 기타 내정 문제
2013년 5월 28일, 자유민주당이 와타미 그룹 회장 와타나베 미키를 참의원 선거에 옹립하는 방침이 밝혀졌다. 그러나 2008년, 와타미 푸드 서비스의 사원이 입사 2개월 만에 자살했고, 장시간 노동이 원인인 자살로 산재 인정된 바 있어, 이번 옹립에 대해 "블랙 조크" 같다는 비판이 나왔다. 와타미는 "노사 대등보다는 노사 일체"를 중시하며,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는다. 무라카미 류는 닛케이 스페셜 캄브리아 궁전에서 와타나베와 대담했을 때 "(무리라고 생각해서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도중에 멈춰버리니까 무리가 되는 겁니다", "코피를 흘리든 쓰러지든, 어쨌든 전력으로 시킨다" 등의 주장에 대해 무슨 말을 하는지 의미를 알 수 없었다고 말했다.
와타나베는 원래 아베노믹스로 대표되는 금융 완화 정책에 회의적이었고, 2011년 도쿄도지사 선거에서는 민주당의 지원을 받았던 인물이다. 그러나 아베노믹스로 주식 시장이 순조롭게 성장하자 "금융 정책, 재정 정책으로 시간을 버는 동안 규제 완화나 TPP 참가를 포함한 카드를 꺼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라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TPP에 대해 "국회의원은 우리들이 선거로 뽑고 있다. 그렇다면, 원리적으로 국민의 2할이 TPP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 된다. 그런 일이 있을까."라는 견해를 보였을 뿐만 아니라 반원전과 소비세 증세도 주장했는데, 이는 민주당의 중의원 선거 공약과 거의 같다.
2013년 6월 6일, 와타나베는 주간 문춘의 기사에 대해 제소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기사는 "365일 24시간 죽을 때까지 일하라" 등과 같이 쓰여진 『이념집』이라는 사내 책자가 존재한다는 내용이었다. 또한, 입사 내정자에게 배포되는 "질의 응답집"이라는 소책자에는 "휴일이 있어도, 자신의 의지로 출근하는 사원도 있습니다"라는 시간 외 노동을 요구하는 듯한 기술도 있었다고 한다.
2013년 5월 31일, 자민당이 참의원 비례구에서 "70세 정년제"의 예외 규정을 적용하여 71세의 사사키 요헤이를 공인한 것에 대해 비판이 높아졌지만, 니카이 토시히로 총무회장 대행은 "나이가 하나 많다거나, 시시한 일로 뽑는 게 아니다. 정말 어리석다. 젊으면 좋다면 30세 후보를 찾아오면 된다"라며 주먹을 휘두르며 옹호했고, 후보 변경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사키는 낙선했다.
2013년 4월 1일, 요미우리 자이언츠 출신인 나가시마 시게오, 마쓰이 히데키 두 사람에게 국민영예상 수여 방침을 발표했지만, 권력자의 "속셈"으로 결정된다고 하는 애매한 표창 기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질문이 잇따랐다. 교도 통신은 이번 수여에 대해 같은 해 5월 5일 도쿄 돔에서 마쓰이 은퇴 기념 세레모니를 발표(나가시마도 참석 예정)한 것을 예로 들며 "어째서 한 구단에서 더블인가", "어딘가 썩 시원치 않다"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청년들을 '소모품' 취급하는 것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면서, '블랙 기업'에 대해 회사명을 공표하는 등의 조치를 정부에 건의하는 방침을 굳혔다. 구체적인 방안으로는 (1) 중대하고 악질적인 경우의 사법 처분과 기업명 공표 (2) 문제 기업에 대한 취업 억제책 검토 (3) 상담 창구 개설 등이 제시되었다. 고무라 마사히코 자민당 부총재는 "정규직 사원의 급여를 인상하는 것은 좋지만, 비정규직 사원이 같은 노동을 하고도 같은 임금을 받지 못하는 것은 정의에 반한다", "경제 정책으로도 같은 급여를 인상한다면 정규직보다 비정규직을 올리는 편이 좋다."고 말하며 급여 체계에 대해 쓴소리를 했다. '블랙 기업' 공표에 관해서는, 야후! 뉴스 클릭 리서치의 "블랙 기업 사명 공표, 찬성? 반대?"라는 설문 조사에서 93.5% (44222표)의 "찬성"이 모였다.
2013년 5월 31일, 참의원 선거 자민당 비례구 공천을 받은 와타미 그룹 회장 와타나베 미키는 "자민당과 정부에서는 현재, 블랙 기업의 정의를 명확히 하고 해당 기업명을 공표하는 등의 움직임이 있는 것 같습니다만, 저는 이에 크게 찬성합니다", "일부 정보만 가지고 일방적으로 와타미 그룹을 블랙 기업이라고 부르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등의 코멘트를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