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스 오브라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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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키스 오브라이언은 1938년 북아일랜드에서 태어난 가톨릭 성직자로, 1985년부터 2013년까지 세인트앤드루스-에든버러 대교구장이자 추기경으로 재직했다. 그는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화학 학위를 받았고, 사제 서품을 받은 후 여러 교구에서 사목했다. 2003년 추기경에 서임되었으며, 스코틀랜드 독립을 지지하고 낙태와 동성애에 반대하는 등 사회적, 정치적 견해를 표명했다. 2013년 성적 비위 의혹으로 인해 추기경직을 사임하고, 2015년 교황으로부터 모든 직무를 박탈당했다. 2018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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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오브라이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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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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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칭 | 각하 |
이름 | 키스 오브라이언 |
원어 이름 | Keith O'Brien |
출생 이름 | 키스 마이클 패트릭 오브라이언 |
직함 | 은퇴한 세인트앤드루스-에든버러 대교구장, 추기경 |
종교 | 가톨릭 |
모토 | 기쁨으로 주님을 섬기라 |
출생일 | 1938년 3월 17일 |
출생지 | 북아일랜드 앤트림 주 밸리카슬 |
사망일 | 2018년 3월 19일 |
사망 장소 | 잉글랜드 타인 위어 주 뉴캐슬어폰타인 |
직책 | |
교구 | 세인트앤드루스-에든버러 대교구 |
임명 | 1985년 5월 30일 |
착좌 | 1985년 8월 5일 |
임기 종료 | 2013년 2월 25일 |
이전 교구장 | 고든 그레이 |
후임 교구장 | 레오 쿠슐리 |
서품 | 1965년 4월 3일 |
서품자 | 고든 그레이 |
주교 서임 | 1985년 8월 5일 |
주교 서임자 | 고든 그레이 |
추기경 서임 | 2003년 10월 21일 |
추기경 서임자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
계급 | 추기경 사제 |
기타 직책 | 산티 조아키노 에 안나 알 투스콜라노 추기경 (2003–2018) |
이전 직책 | 스코틀랜드 애거일 앤드 더 아일스 교구의 사도 관리자 (1996–1999) |
학력 | |
모교 | 에든버러 대학교 |
2. 어린 시절과 교육
키스 오브라이언은 1938년 3월 17일 성 패트릭의 날에 북아일랜드 앤트림주 발리캐슬에서 태어났다. 초등 교육은 발리캐슬에서 받았으며, 이후 그의 가족은 영국 해군에서 복무하는 아버지를 따라 스코틀랜드로 이주하였다. 처음에는 달뮤어의 St Stephen's 초등학교에 다녔고, 그 후 덤바턴의 성 패트릭 고등학교에서 중등 교육을 계속 받았다. 이후 그의 가족은 에든버러로 이사하였고, 그는 홀리 크로스 아카데미에서 중등 교육을 마쳤다.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1959년 화학 이학사 학위를 받았고, 1966년 교육학 디플로마를 취득했다. 사제 서품을 위한 공부는 록스버그셔의 세인트 앤드류스 칼리지, 드라이그레인지에서 이루어졌으며, 1965년 4월 3일 그의 전임자인 추기경 고든 그레이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었다. 1965년부터 1966년까지 에든버러 홀리 크로스에서 보좌 신부로 사목하였고, 모레이 하우스 교육대학에서 교원양성자격증을 받았다. 1966년부터 1971년까지는 파이프 카운티 의회에 수학 및 과학 교사로 고용되었으며, St Columba's 중등학교의 채플린으로 봉사했다. 처음에는 코든비쓰에서, 그 다음에는 던펌린에서 봉사했고, St Bride's 교구, 코든비쓰에서 보조했다.
1972년부터 1975년까지 킬시스에 있는 세인트패트릭 성당의 주임 사제로 사목하였고, 1975년부터 1978년까지는 배스게이트에 있는 세인트메리 성당의 주임 사제로 사목하였다. 1978년부터 1980년까지 드라이그랜지에 있는 세인트 앤드루 대학교에서 학생들의 영성 지도를 담당하였고, 1980년부터 1985년까지 애버딘 인근 블레어 소신학교 부속 세인트메리 칼리지의 학장으로 있었다.
2. 1. 출생 및 초기 성장
키스 오브라이언은 1938년 3월 17일 성 패트릭의 날에 북아일랜드 앤트림주 발리캐슬에서 태어났다. 발리캐슬에서 초등 교육을 받은 후, 그의 가족은 아버지가 영국 해군에서 파슬레인에서 복무하면서 스코틀랜드로 이사했다. 오브라이언은 처음에는 달뮤어의 St Stephen's 초등학교에 다녔고, 그 후 덤바턴의 성 패트릭 고등학교에서 중등 교육을 계속 받았다. 그 후 그의 가족은 에든버러로 이사했고, 그는 홀리 크로스 아카데미에서 중등 교육을 마쳤다.오브라이언은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1959년 화학 이학사 학위를 받았고, 1966년 교육학 디플로마를 취득했다. 사제 서품을 위한 그의 공부는 록스버그셔의 세인트 앤드류스 칼리지, 드라이그레인지에서 이루어졌고, 그는 1965년 4월 3일 그의 전임자인 추기경 고든 그레이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었다. 1965년부터 1966년까지 에든버러의 홀리 크로스에서 부사제로 처음 봉사했으며, 모레이 하우스 교육대학에서 교사 훈련 자격증을 취득했다. 1972년부터 1975년까지 St Patrick's, 킬시스에서 전임 교구 사도직으로, 그 다음 1975년부터 1978년까지 St Mary's, 배스게이트에서 봉사했다. 그는 1978년부터 1980년까지 세인트 앤드류스 칼리지, 드라이그레인지에서 학생들의 영적 지도자로 봉사했고, 그 다음 1980년부터 1985년까지 애버딘 근처의 주니어 신학교인 St Mary's College, Blairs의 학장으로 봉사했다.
2. 2. 대학교육 및 사제 서품
키스 오브라이언은 1938년 3월 17일 성 패트릭의 날에 북아일랜드 앤트림주 발리캐슬에서 태어났다. 초등 교육은 발리캐슬에서 받았으며, 이후 그의 가족은 영국 해군에서 복무하는 아버지를 따라 스코틀랜드로 이주하였다. 이후 그의 가족은 에든버러로 이사하였고, 그는 홀리 크로스 아카데미에서 중등 교육을 마쳤다.오브라이언은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1959년 화학 이학사 학위를 받았고, 1966년 교육학 디플로마를 취득했다. 사제 서품을 위한 공부는 록스버그셔의 세인트 앤드류스 칼리지, 드라이그레인지에서 이루어졌으며, 1965년 4월 3일 그의 전임자인 추기경 고든 그레이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었다. 1965년부터 1966년까지 에든버러 홀리 크로스에서 보좌 신부로 사목하였고, 모레이 하우스 교육대학에서 교원양성자격증을 받았다.
1972년부터 1975년까지 킬시스에 있는 세인트패트릭 성당의 주임 사제로 사목하였고, 1975년부터 1978년까지는 배스게이트에 있는 세인트메리 성당의 주임 사제로 사목하였다. 1978년부터 1980년까지 드라이그랜지에 있는 세인트 앤드루 대학교에서 학생들의 영성 지도를 담당하였고, 1980년부터 1985년까지 애버딘 인근 블레어 소신학교 부속 세인트메리 칼리지의 학장으로 있었다.
2. 3. 사제 초기 활동
키스 오브라이언은 1938년 3월 17일 북아일랜드 앤트림 지방 발리캐슬에서 태어났다. 발리캐슬에서 초등교육을 받다가 그의 아버지가 영국 해군으로 복무하게 되면서 가족과 함께 스코틀랜드로 이주하였다. 그의 가족은 에든버러로 이사했는데, 그곳에서 키스 오브라이언은 성십자가 아카데미에서 중등교육을 마치고나서 에든버러 대학교로 진학하여 1959년 화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966년에는 교육학 분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키스 오브라이언은 가톨릭 성직자가 되기 위해 스코틀랜드 록스버러 드라이그랜지의 세인트 앤드루 대학교에 들어갔으며, 1965년 4월 3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1972년부터 1975년까지는 킬사이드에 있는 세인트패트릭 본당의 주임 사제로 있었으며, 1975년부터 1978년까지는 배스게이트에 있는 세인트메리 본당의 주임 사제로 있었다. 1978년부터 1980년까지 드라이그랜지에 있는 세인트 앤드루 대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의 영성 지도자로 근무하였으며, 1980년부터 1985년까지 아버딘 인근 블레어 소신학교 부속 세인트메리 칼리지의 학장으로 있었다.
3. 세인트앤드루스-에든버러 대교구장 및 추기경
오브라이언은 1985년 5월 30일 세인트앤드루스-에든버러 대교구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85년 8월 5일 에든버러 주교좌 성당인 세인트메리 대성당에서 주교 서품식과 대교구장 착좌식을 동시에 거행하였다.[15]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아길과 제도 교구의 교황 대리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3년 10월 21일 그를 산티 조아키노 에 안나 아이 몬티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에 임명하였다. 2005년 몰타 기사단의 명예 및 헌신의 기사단장, 2001년 예루살렘 성묘 기사단 스코틀랜드 부지부의 그랜드 프라이어, 2003년에는 동 기사단의 기사단 대십자(KGCHS)로 임명되었다.
2004년, 오브라이언은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앤티고니쉬의 세인트 프란시스 자비에 대학교에서 명예 법학 박사 학위를,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교에서 명예 신학 박사 학위를,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명예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5년 교황 선거에 참여하여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선출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2010년 영국 및 스코틀랜드 방문을 앞두고 오브라이언과 웨스트민스터 대주교 빈센트 니콜스는 아르마 대주교이자 추기경인 숀 브래디가 사제 브렌던 스미스 및 기타 성직자 학대 혐의와 관련하여 일으킨 위기는 아일랜드 가톨릭 교회의 문제이며 베네딕토의 방문을 흐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2013년 2월 25일 교황 베네딕토가 그의 대주교 사임을 받아들였다고 발표하면서, 베네딕토의 후임을 선출하기 위한 3월 콘클라베에 참여할 권리를 행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2015년 3월 20일, 교황 프란치스코는 교회 역사상 매우 드문 일인 오브라이언의 추기경으로서의 모든 직무 포기를 받아들였다.
3. 1. 대교구장 임명 및 서임
오브라이언은 1985년 5월 30일 세인트앤드루스-에든버러 대교구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85년 8월 5일 에든버러 주교좌 성당인 세인트메리 대성당에서 주교 서품식과 대교구장 착좌식을 동시에 거행하였다.[15]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아길과 제도 교구의 교황 대리였다.[15]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003년 10월 21일 그를 산티 조아키노 에 안나 아이 몬티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에 임명하였다.[15] 2005년 몰타 기사단의 명예 및 헌신의 기사단장, 2001년 예루살렘 성묘 기사단 스코틀랜드 부지부의 그랜드 프라이어, 2003년에는 동 기사단의 기사단 대십자(KGCHS)로 임명되었다.[15]
2004년, 오브라이언은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앤티고니쉬의 세인트 프란시스 자비에 대학교에서 명예 법학 박사 학위를,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교에서 명예 신학 박사 학위를,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명예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15]
2005년 교황 선거에 참여하여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선출했다.[15]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2010년 영국 및 스코틀랜드 방문을 앞두고 오브라이언과 웨스트민스터 대주교 빈센트 니콜스는 아르마 대주교이자 추기경인 숀 브래디가 사제 브렌던 스미스 및 기타 성직자 학대 혐의와 관련하여 일으킨 위기는 아일랜드 가톨릭 교회의 문제이며 베네딕토의 방문을 흐려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15]
2013년 2월 25일 교황 베네딕토가 그의 대주교 사임을 받아들였다고 발표하면서, 베네딕토의 후임을 선출하기 위한 3월 콘클라베에 참여할 권리를 행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15] 2015년 3월 20일, 교황 프란치스코는 교회 역사상 매우 드문 일인 오브라이언의 추기경으로서의 모든 직무 포기를 받아들였다.[15]
3. 2. 추기경 서임
오브라이언은 1985년 5월 30일 세인트앤드루스 및 에든버러 대교구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85년 8월 5일 에든버러 세인트 메리 대성당에서 주교 서품식과 대교구장 착좌식을 동시에 거행하였다. 2003년 10월 2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산티 조아키노 에 안나 아이 몬티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에 임명하였다.(2015년 3월20일 사제급추기경타이틀을 회수당함과 동시 교황선거권 상실)오브라이언은 2005년 몰타 기사단의 명예 및 헌신의 기사단장, 2001년 예루살렘 성묘 기사단 스코틀랜드 부지부의 그랜드 프라이어, 2003년에는 동 기사단의 기사단 대십자(KGCHS)로 임명되었다.
2004년, 오브라이언은 캐나다 노바스코샤주 앤티고니쉬의 세인트 프란시스 자비에 대학교에서 명예 법학 박사 학위를,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교에서 명예 신학 박사 학위를,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명예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2015년에는 성적 부적절 행위 인정으로 인해 세인트 앤드루스 대학교의 명예 학위 박탈 요구가 있었으나 거부되었다.
오브라이언은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아길과 제도 교구의 교황 대리였다. 그는 2005년 교황 선거에 참여하여 교황 베네딕토 16세를 선출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2010년 영국 및 스코틀랜드 방문을 앞두고 오브라이언은 성직자 성 학대에 대한 응답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2013년 2월 25일 교황 베네딕토가 그의 대주교 사임을 받아들였다고 발표하면서, 3월 콘클라베에 참여할 권리를 행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2015년 3월 20일, 교황 프란치스코는 오브라이언의 추기경으로서의 모든 직무 포기를 받아들였다.
3. 3. 기타 직책
오브라이언은 1985년 5월 30일 세인트앤드루스-에든버러 대교구장으로 임명되었으며, 1985년 8월 5일 에든버러 주교좌 성당인 세인트메리 대성당에서 주교 서품식과 대교구장 착좌식을 동시에 거행하였다.[14] 2003년 10월 2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를 산티 조아키노 에 안나 아이 몬티 성당의 사제급 추기경에 임명하였다.(2015년 3월20일 사제급추기경타이틀을 회수당함과 동시 교황선거권 상실) 추기경으로 임명된 후, 오브라이언은 사회 홍보 평의회 위원이 되었고, 이주민 및 유랑민 사목 평의회 위원도 겸임했다. 그는 스코틀랜드 주교회의 의장이었으며, 회의 다른 회원들의 요청에 따라 다양한 임무를 수행했다. 그는 때때로 "스코틀랜드의 수석 주교"라고 불리기도 했지만, 이러한 직함이나 지위는 존재한 적이 없다.[14]4. 사회적, 정치적 견해
오브라이언은 자신의 정치적, 영적인 견해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72] 1999년 유럽 주교 시노드에서 그는 티모시 래드클리프를 바실 흄 추기경의 후임 웨스트민스터 대주교로 지명했다. 당시 래드클리프는 오브라이언에게 교회의 권위에 위기가 있지만, 그 해답은 권위에 대한 '더 많은' 강조가 될 수 없다고 호소했다.[73] 시노드에서 래드클리프는 교황 앞에서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 이혼한 사람들, 낙태를 한 여성, 동성애자들에 대해 말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경험을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빵을 먹고, 그들이 제공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하며, 예수를 언급했다.[73][74]
2011년, 오브라이언은 "공격적인 세속주의"를 비판하며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막는다고 비난했다.[75] 그는 공격적인 세속주의가 기독교 유산을 위협하며, 종교가 공적 영역에 남아있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특히 동성애를 용인하도록 요구하는 법률은 그가 반대하는 세속주의의 한 유형이었으며, 그는 모든 기독교 교파의 기독교인들에게 세속주의에 맞서 단결할 것을 촉구했다.[76] 이러한 그의 발언은 전국 세속주의 협회와 영국 인본주의 협회의 에반 해리스로부터 "편집증적이고 정당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76][77][75]
2013년 2월 22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오브라이언은 사제 독신 의무 폐지 가능성에 열려 있다고 밝혔다.[91]
오브라이언은 310년 된 가톨릭 신자의 왕위 계승 금지법의 폐지를 요구했다. 그는 1701년 왕위 계승법이 종파주의를 억제하려는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원칙적으로" 가톨릭 신자와 가톨릭 신자와 결혼한 사람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금지하는 왕위 계승법 개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102] 2011년 퍼스 협정 이후, 2013년 왕위 계승법은 배우자가 가톨릭 신자인 사람이 왕위를 상속받을 가능성에 대한 자격 박탈을 폐지했다.[103]
2011년 설교에서 오브라이언은 국에서 제공하는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언급하며, 실업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고 경제 침체로 인해 국민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생 빈센트 드 폴 협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전에는 부유하다고 생각했지만 현재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빈곤 완화 요구에 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105]
4. 1. 스코틀랜드 독립 지지
키스 오브라이언 추기경은 《가톨릭 해럴드》와의 인터뷰에서 스코틀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된 국가가 될 경우 국가의 번영으로 인해 큰 혜택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사실상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지지하였다.[106] 그는 자신이 정치에 깊게 관련되고 싶지 않지만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자치 정부를 희망한다면 자신은 크게 다행스럽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오브라이언 추기경은 아일랜드가 독립을 선언한 뒤 독립 국가로서 번영하기 시작했고 북유럽의 노르웨이나 덴마크와 같은 나라도 독립을 쟁취한 뒤 국가 발전을 이룩해 왔다고 말했다.[106]
그는 영국 전역에 민족주의, 극우주의가 확산되고 있음을 인정하면서 월드컵에서 보여준 잉글랜드의 고조되는 국가 정체성을 지적했다. 그는 “모든 스포츠 경기에서 잉글랜드의 세인트조지 기가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도 그 같은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이같은 시각에서 본다면 스코틀랜드의 국가 정체성도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결국 영국이란 다국적 정체성을 통해서는 각기 다른 국가 정체성을 표현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106]
세인트앤드루스 대학교 철학자 존 홀데인과의 인터뷰에서, 2006년 10월 ''가톨릭 헤럴드''에 게재된 내용에 따르면, 오브라이언은 스코틀랜드인들이 독립에 찬성표를 던진다면 "기쁘겠다"고 말했으며, 독립이 "머지않아" 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는 스코틀랜드 로마 가톨릭 교회의 독립과 유사성을 제시하며, "교회 독립은 용납할 수 있는데 정치적 독립은 안 된다고 주장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104]
4. 2. 낙태 비판
키스 오브라이언 추기경은 낙태를 대량학살에 비유하며 가톨릭 신자인 정치인들을 향해 낙태 합법화 반대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오브라이언 추기경은 2007년 5월 31일 에든버러 세인트메리 대성당에서 지난 1967년 스코틀랜드에서 제정된 낙태법을 비판하는 강론을 하면서 낙태를 1996년 던블레인 학살에 비유했다.[107]던블레인 학살은 스코틀랜드의 한 학교에서 16명의 어린이가 총기난사에 희생된 사건이다. 오브라이언 추기경은 “우리는 낙태를 통해 매일 한 학급 학생만큼의 태아를 죽이고 있다. 하루에 두 번의 던블레인 학살이 발생하는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느냐?”라고 반문하며 낙태 불법화를 주장했다.[107]
2007년 5월, 오브라이언은 로마 가톨릭 신자들에게 낙태라는 "사회적 악"을 지지하는 정치 후보를 거부할 것을 촉구하며, 그러한 가톨릭 정치인들은 교회의 완전한 구성원으로 남을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92]
2008년 3월에는 의회에서 논의 중인 인간 수정 및 배아 발생법안에 대해, 정부가 "프랑켄슈타인" 실험을 "악"으로 승인함으로써 "인권에 대한 끔찍한 공격"을 가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일부 과학자들은 그가 이 법안에 대한 반대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자극적인 언어를 사용했다고 주장했고, 다른 사람들은 그가 도덕을 옹호했으며 정부가 의원들에게 자유롭게 이 문제에 대해 투표하도록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고든 브라운은 원래 노동당 의원들에게 세 줄의 지침을 부과하여 개인적인 신념에 관계없이 법안을 지지해야 했다.)[93][94][95]
오브라이언은 직접 5분 분량의 영상 녹화를 통해 의회에서 투표에 부쳐질 법안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수많은 우려"를 밝혔다. 이 영상은 유튜브에 게시되었으며, 모든 의원들에게 DVD로 발송되었다.[96] 오브라이언은 이 영상에서 자신이 의학 연구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며, 비배아 줄기 세포를 이용한 연구를 지지하지만, 나중에 파괴될 배아를 사용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분명히 했다. 그는 "인간-동물 혼종"에 대한 교회의 우려를 표명했다.[97]
4. 3. 동성애 및 동성 결혼 반대
키스 오브라이언은 성직자가 되기 전 동성애 문제에 대해 "진보적"인 입장을 보였으나,[78] 2004년 이후 동성애를 "도덕적 타락"으로 규정하는 등 부정적인 입장으로 선회했다.[43][80] 2006년에는 시민 동반자 관계 도입과 스코틀랜드 이혼법 완화를 비판했으며,[82] 동성 커플에게 아이를 맡기는 것을 요구하는 법안에 반대하며 이를 전체주의라고 칭했다.[83]2011년에는 동성 관계가 "관련된 사람들의 의학적, 정서적, 정신적 행복에 명백히 해롭다"고 주장하며 가톨릭 교회의 시민 동반자 관계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다.[84] 2012년에는 동성 결혼 도입 제안을 "미친 짓"이라고 비판하며, 사회를 재정의하고 영국을 부끄럽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했다.[85] 이러한 발언은 마고 제임스 의원 등으로부터 "공포심 조장"이라는 비판을 받았으며,[87] 해리엇 하먼은 "편견을 조장하는 면허증"이라고 비판했다.[87]
LGBT 권리 운동 단체 스톤월은 오브라이언에게 "올해의 편견주의자" 상을 수여했지만,[89] 알렉스 살몬드 스코틀랜드 수석 장관은 이를 비판했다.[90]
4. 4. 영국 정치 비판
2010년 2월, 스코틀랜드 담당 국무장관 짐 머피는 영국 하원에서 신앙이 "노동당의 바로 근간"이라고 말하며 공적 생활에서 종교에 대한 개방성을 장려했다. 오브라이언은 이에 대해 "그 감정을 환영한다"고 답했지만 "지난 10년 동안 정부가 종교적 가치를 인정하거나 지지한다는 구체적인 사례도 환영받았을 것이다. 대신 우리는 이 정부가 가족 가치에 대한 체계적이고 끊임없는 공격을 목격했다."라고 말했다.[98] 오브라이언은 스코틀랜드 노동당 대표 이안 그레이에게 "그[교황 베네딕토 16세]가 지난 10년 동안 일어난 일에 대해 지옥을 맛보게 해주길 바랍니다[2010년 9월 방문 중에]."라고 말했다.[99][100]2011년 3월, 오브라이언은 파키스탄 정부가 기독교인 및 기타 종교 소수 집단의 종교 자유를 보장하겠다는 약속을 요구하지 않고 파키스탄에 대한 원조를 대폭 늘린 것에 대해 영국 외교 정책이 "반기독교적"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파키스탄의 명예훼손법에 반대해 발언했던 파키스탄 장관 샤바즈 바티가 암살된 직후 이 성명을 발표했다.[101]
4. 5. 기타
오브라이언은 자신의 정치적, 영적인 견해를 솔직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72] 1999년 유럽 주교 시노드에서 그는 티모시 래드클리프를 바실 흄 추기경의 후임 웨스트민스터 대주교로 지명했다. 당시 래드클리프는 오브라이언에게 교회의 권위에 위기가 있지만, 그 해답은 권위에 대한 '더 많은' 강조가 될 수 없다고 호소했다.[73]2011년, 오브라이언은 "공격적인 세속주의"를 비판하며 기독교인들이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막는다고 비난했다.[75] 그는 공격적인 세속주의가 기독교 유산을 위협하며, 종교가 공적 영역에 남아있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특히 동성애를 용인하도록 요구하는 법률은 그가 반대하는 세속주의의 한 유형이었으며, 그는 모든 기독교 교파의 기독교인들에게 세속주의에 맞서 단결할 것을 촉구했다.[76] 이러한 그의 발언은 전국 세속주의 협회와 영국 인본주의 협회의 에반 해리스로부터 "편집증적이고 정당하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76][77][75]
2013년 2월 22일, BBC와의 인터뷰에서 오브라이언은 사제 독신 의무 폐지 가능성에 열려 있다고 밝혔다.[91]
오브라이언은 310년 된 가톨릭 신자의 왕위 계승 금지법의 폐지를 요구했다. 그는 1701년 왕위 계승법이 종파주의를 억제하려는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원칙적으로" 가톨릭 신자와 가톨릭 신자와 결혼한 사람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금지하는 왕위 계승법 개정을 지지한다고 밝혔다.[102] 2011년 퍼스 협정 이후, 2013년 왕위 계승법은 배우자가 가톨릭 신자인 사람이 왕위를 상속받을 가능성에 대한 자격 박탈을 폐지했다.[103]
2011년 설교에서 오브라이언은 국에서 제공하는 영양가 있는 식사를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언급하며, 실업 문제가 여전히 심각하고 경제 침체로 인해 국민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생 빈센트 드 폴 협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가난한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이전에는 부유하다고 생각했지만 현재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빈곤 완화 요구에 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105]
5. 성적 비위 및 결과
2013년, 키스 오브라이언은 1980년대부터 2003년까지 동성애적이고 부적절하며, 때로는 포식적인 성적 행위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어 세상에 알려졌다.[18]
폭로 및 인정2013년 2월 23일, ''옵서버''는 오브라이언이 1980년대부터 세인트 앤드루스 및 에든버러 대교구 내에서 4명의 남성(사제 3명, 전직 사제 1명)을 상대로 부적절한 성적 행위를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고 보도했다.[18] 전직 사제는 오브라이언이 주교가 되자 사제직에서 사임했으며, "그때부터 그가 항상 나에게 권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 나의 청렴함을 지키기 위해 떠났습니다."라고 말했다.[18] 한 제보자는 오브라이언의 행위로 인해 장기간 상담 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보도되었다.[17]
4명 중 한 명인 "사제 C"는 상급자가 하위 사제에게 행사하는 통제 수준 때문에 그가 오브라이언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다고 주장한다. "그[사제 위의 주교]는 당신에 대해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을 옮길 수 있고, 배척할 수도 있고, 품으로 데려올 수도 있습니다. [...] 그는 당신의 삶의 모든 측면을 통제합니다."[18]
오브라이언의 즉각적인 사임을 요구하는 불만이 교황청 주 영국 대사에게 접수되었고, 최소 한 명의 비판자를 침묵시키려는 노력이 있었다.[19]
오브라이언은 처음에는 의혹을 다투었다. BBC에 따르면, 교회 내 소식통은 오브라이언은 "자신을 고발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그들이 무엇으로 고발하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20] 2013년 2월 24일, 그는 에든버러의 세인트 메리 대성당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8주년 재임 기념 특별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법적 자문을 구했고 참석하지 말라는 조언을 받았다는 보도가 널리 퍼졌다.[21] 2013년 2월 25일, 오브라이언의 이전에 제출된 대주교 사임이 그날 효력을 발휘하며, 임시 교황 행정관이 그의 자리에 임명되었다고 발표되었다. 오브라이언은 그럴 자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콘클라베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22] 그 후 오브라이언은 2013년 5월 초까지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013년 3월 3일, 스코틀랜드 가톨릭 미디어 사무소는 오브라이언의 성명을 발표했으며, 그 안에서 그는 "나는 [...] 나의 성적 행위가 사제, 대주교, 추기경으로서 나에게 기대되는 기준에 미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라고 말했다.[23][24] 그는 교회 공직에서 영구적으로 은퇴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25] 오브라이언의 임시 후임자인 필립 타르탈리아 대주교는 교회의 "신뢰성과 도덕적 권위"가 훼손되었다고 말했다.[25]
같은 달, 한 전직 사제가 오브라이언을 고소할 의사를 발표했는데, 오브라이언이 1980년대 19세의 신학교 시절 그를 성추행하고 키스했다고 말했다.[26] 2013년 오브라이언에 대항하여 증언한 4명의 내부 고발자 중 한 명인 브라이언 데블린은, 나중에 사제직을 떠났으며, 2021년에 익명성을 포기하고 자신의 경험과 개선된 교회 거버넌스 및 책임성 확보를 위한 투쟁에 관한 책 ''추기경의 죄''를 출판했다.[27][28] 데블린은 오브라이언의 비행이 4명이 공개적으로 의혹을 제기하기 전에 내부적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자신의 주교에게 찾아가지만 그는 응답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쁘며 기독교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사람들을 상처 입히고 통제하며, 나는 '이것을 멈춰라. 당신의 잔혹 행위를 멈춰라'라고 말할 자유를 요구합니다."라고 말했다.[29]
오브라이언은 2003년 로마에서 추기경이 된 것을 축하하는 음료 파티에서 한 사제를 성추행하려 했다는 추가적인 비난을 받았다.[30] 오브라이언이 제보자 중 한 명과 장기간 육체적 관계를 맺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31]
오브라이언은 자신의 대교구 내에 "연고주의 문화"가 존재한다는 의혹에 직면했고,[32] 이것이 그가 접근했던 사제들에게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을 낮추었다고 한다.[33][34]
2015년, ''더 글래스고 헤럴드''는 최소 40건의 사건에서 젊은 성직자들이 오브라이언에게 그들의 고해를 듣게 하는 것이 권장되었으며, 이 종교적 행위가 성적 유인에 이용되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오브라이언의 행위를 성범죄자로 받아들이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35] 오브라이언의 성적 학대 피해자들은 교회 내에서 추기경을 징계할 수 있는 사람은 교황뿐이므로 불만을 제기할 수 없다고 느꼈다.[36] 2015년 맥렐란 보고서가 발표된 후, 스코틀랜드 교회 목사 앤드류 맥렐란은 오브라이언에 대한 교회의 처우가 여전히 비밀 유지가 교회 내 "분위기의 중요한 부분"임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37]
교황청의 대응 및 조사2013년 4월 27일, ''스코츠맨''은 마크 우엘레 추기경이 오브라이언에 대한 조사를 이끌 것이며, 조사 완료 전까지 스코틀랜드 주교 임명이 중단될 것이라고 보도했다.[38] 그러나 이는 바티칸이 공식 조사를 열거나 어떠한 공식 보고서도 발표하지 않을 것이라는 또 다른 보고와 상반되었는데, 그 이유는 "교회는 그렇게 운영되지 않기 때문"이었다.[39] 오브라이언의 강등이나 사제직 박탈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38][39]
오브라이언은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이스트 로디언 던바에 있는 교회 소유의 별장에서 은퇴 생활을 하려 했다. 그의 고발자 중 한 명인 전 신학생은 "키스 오브라이언은 이제 조용하고 평화로운 은퇴를 원하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나의 경험은 사라지지 않았고... 저는 키스 오브라이언에게 문제가 있고, 그것은 처리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40] 2013년 3월 15일, 바티칸이 오브라이언에게 스코틀랜드를 떠나라고 명령한 것이 확인되었고,[42] 그는 수개월 동안 "기도와 참회"를 위해 떠났다.[43][42][44] ''워싱턴 포스트''는 "이 성명은 바티칸이 오브라이언에게 벌로 이 결정을 강요했음을 명시하지 않았으며... 그러나 과거에 잘못된 사제들은 바티칸으로부터 '기도와 참회'라는 처벌을 받았으며, 이 성명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조치를 지지하고 교황청이 그의 미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라고 보도했다.[45]
바티칸은 2013년 5월 15일, 오브라이언이 "영적 갱신, 기도 및 참회를 위해 수개월 동안 스코틀랜드를 떠날 것이며", "그의 에미넌스[키스 오브라이언 추기경]의 미래 거취에 관한 어떠한 결정도 교황청과 합의될 것"이라고 발표했다.[46] 오브라이언의 지지자들은 교회가 오브라이언에게 스코틀랜드를 떠나도록 요구하는 것에 반대했다. 사제 캐논 크리너는 오브라이언의 "강제 추방"을 막기 위해 법적 조치를 위협했고, 리처드 할로웨이 전 에든버러 주교는 스코틀랜드 성공회에서 "오브라이언을 스코틀랜드에서 추방하는 것은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할로웨이는 오브라이언의 강제 추방을 미국 중앙 정보국(CIA)의 "특별 이송"(사법 외 이송) 전술에 비유했다.[47]
4명의 고발자는 오브라이언이 심리 상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고발 사제는 "키스는 극도로 심리 조작적이며 그의 거부에서 벗어나도록 도전을 받을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가 치료를 받지 않으면, 저는 그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여전히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완전한 이야기가 밝혀지지 않은 채 연막이 있다고 믿었고, 오브라이언의 행동의 범위를 밝히기 위한 조사를 원했다.[49][48]
2013년 7월 현재, 오브라이언은 여전히 영국에서 가장 고위직의 가톨릭 신자였다. 가톨릭 미디어 사무소의 홍보 이사인 피터 카니에 따르면, 오브라이언 사건은 로마만이 처리할 수 있으며, 스코틀랜드에서는 추기경에게 이의를 제기할 권한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49] 캐서린 데베니가 ''옵저버''에 기고한 내용에 따르면, 오브라이언의 사임 이후 세인트 앤드루스 및 에든버러의 임시 지도자였던 타르탈리아 대주교는 이 문제에 직면하지 못했으며, 배후에서는 "교회 내부자"들이 비판적이었다. 카니는 ''옵저버''에 스코틀랜드 조사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교황 대사가 올바르게 고발자들을 식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카니는 아르가일 및 아일스 주교(Bishop of Argyll and the Isles)인 조셉 토알이 이름을 받고 연락 담당자가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49]
데베니는 이 문제가 더 이상 개인적인 실패가 아니라 시스템적인 실패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으며, 신학자 베르너 좐론드의 말을 인용하여 "교회로서 우리는 동성애와 타협하는 데 실패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스코틀랜드 성직자를 포함한 다른 많은 스캔들이 있으며, 적어도 한 명의 주교가 관련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불법 행위에는 성적 비행, 과음, 스캔들을 덮기 위한 뇌물 및 심각한 학대가 포함되며, "오브라이언은 시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급은 그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라고 말했다.[49]
2013년 7월, 오브라이언은 유럽의 수도원이나 잉글랜드 미들랜즈의 폐쇄된 수도원에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50][51] 2013년 11월에는 오브라이언이 더 이상의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보고가 있었는데, 이는 피해 주장자와 피해자 단체를 실망시켰다.[52]
2013년 6월 23일자 ''옵저버''에 따르면, 바티칸은 얼마간의 지연 끝에 사도적 방문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고위급 공식 조사로, "방문자"는 교황으로부터 직접 권한을 부여받는다. 이 경우 방문자는 당시 아직 임명되지 않았던 세인트 앤드루스-에든버러 대주교였다. 교황 대사 안토니오 메니니는 "레니"라는 전직 사제인 민원인에게 이 결정을 알렸다.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은 증거를 제시할 수 있으며,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판단되면 로마에서 더 심층적인 절차가 진행될 것이다. 레니는 마침내 사실이 조사될 것이라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방문 조사에서 "추기경의 측근들에게 승진이 부여되었는지 여부"도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54][53]
로마의 고위 관계자들은 방문 조사가 스코틀랜드 교회 내의 보다 일반적인 도덕적 실패 혐의도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53] 오브라이언의 후임 에든버러 대주교를 방문자로 선택한 것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교회법 변호사 톰 도일(Thomas P. Doyle)은, 중요한 점은 외부인이 조사하는 것이며, 오브라이언의 후임을 선택하면 교회가 "바보처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도일은 사도적 방문으로 아일랜드에서 광범위한 아동 학대와 관련된 이전 사건을 처리한 것은 "완전한 조롱"이었다고 말했다.[54][53]
민원인들은 레오 커슐리(Leo Cushley) 대주교와 협상해왔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도 호소했다. 그들은 교구의 운영 방식, 오브라이언의 임명 방식, 측근들이 권력의 자리에 임명되었는지 여부, 그리고 오브라이언의 약탈적 행동의 정도에 대한 조사를 원하고 있다. 커슐리는 요청을 직접 전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사건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는 자제했다.[55] 오브라이언이 살아있는 동안 교회법 재판은 가능성이 있지만, 실현될 가능성은 낮았다.[56] "레니"는 오브라이언 아래 세인트 앤드루스-에든버러 대교구의 재정이 부정행위가 있었는지 내부적으로 조사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오브라이언이 친구를 위해 제트 스키를 샀으며 그 자금의 출처는 불분명하다고 말한다.[55] 교회는 이를 확인하거나 부인하지 않았다.[57]
오브라이언은 2014년 1월부터 노섬벌랜드주 엘링턴 마을에 있는 가톨릭 교회가 제공한 집에서 살았다.[58][59] 오브라이언은 나중에 타인 강 뉴캐슬로 이사했다.[60]
찰스 시클루나는 2014년 4월 오브라이언을 조사했으며,[61] 추기경에 대한 이러한 조사는 전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62]
시클루나의 사도적 방문 이후, 교황청은 2015년 3월 20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키스 패트릭 오브라이언 추기경의 추기경의 권리와 의무로부터 사임을 수락했다"고 발표했다.[64][65] 스코틀랜드 가톨릭 교회의 성명은 오브라이언이 그의 나이와 쇠약함으로 인해 상황을 검토해야 할 때까지 스코틀랜드 밖에서 계속 살 것이라고 확인했다. 그는 추기경의 칭호를 유지했지만, 더 이상 추기경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으며 개인적으로만 추기경의 옷을 입는 것이 허용되었다. 교황청 공보실에 따르면 오브라이언은 교황 선거에 참여하거나, 교황 자문 역할을 하거나, 바티칸 회의 및 평의회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며, 추기경의 다른 역할도 잃게 될 것이다.[66]
피해자들의 증언 및 추가 폭로마크 우엘레 추기경은 키스 오브라이언에 대한 조사를 이끌 예정이었고, 조사 완료 전까지 스코틀랜드 주교 임명은 중단될 예정이었다.[38] 그러나 바티칸은 공식 조사를 열거나 어떠한 공식 보고서도 발표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고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교회는 그렇게 운영되지 않기 때문"이었다.[39] 오브라이언의 강등이나 사제직 박탈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38][39]
오브라이언은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이스트 로디언 던바에 있는 교회 소유의 별장에서 은퇴 생활을 하려 했다. 그의 고발자 중 한 명인 전 신학생은 "키스 오브라이언은 이제 조용하고 평화로운 은퇴를 원하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나의 경험은 사라지지 않았고, 내가 아는 한 이것은 상황을 다시 분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키스 오브라이언에게 문제가 있고, 그것은 처리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40] 2013년 3월 15일, 바티칸은 오브라이언에게 스코틀랜드를 떠나 수개월 동안 "기도와 참회"를 하라고 명령했다.[42][43][44] ''워싱턴 포스트''는 "이 성명은 바티칸이 오브라이언에게 벌로 이 결정을 강요했음을 명시하지 않았으며, 사실 결정이 오브라이언의 것이라고 암시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잘못된 사제들은 바티칸으로부터 '기도와 참회'라는 처벌을 받았으며, 이 성명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조치를 지지하고 교황청이 그의 미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라고 보도했다.[45]
바티칸은 2013년 5월 15일, 오브라이언이 "영적 갱신, 기도 및 참회를 위해 수개월 동안 스코틀랜드를 떠날 것이며", "그의 에미넌스[키스 오브라이언 추기경]의 미래 거취에 관한 어떠한 결정도 교황청과 합의될 것"이라고 발표했다.[46]
오브라이언의 지지자들은 교회가 오브라이언에게 스코틀랜드를 떠나도록 요구하는 것에 반대했다. 사제(John) 캐논(Canon) 크리너는 오브라이언의 "강제 추방"을 막기 위해 법적 조치를 위협했고, 변호인단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리처드 할로웨이 전 에든버러 주교는 스코틀랜드 성공회에서 "오브라이언을 스코틀랜드에서 추방하는 것은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할로웨이는 오브라이언의 강제 추방을 미국 중앙 정보국(CIA)의 "특별 이송"(사법 외 이송) 전술에 비유했다.[47]
4명의 고발자는 오브라이언이 기도와 참회보다는 심리 상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고발 사제는 "키스는 극도로 심리 조작적이며 그의 거부에서 벗어나도록 도전을 받을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가 치료를 받지 않으면, 저는 그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여전히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49]
스캔들이 진행되는 동안 스코틀랜드 가톨릭 교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2013년 7월 현재, 오브라이언은 여전히 영국에서 가장 고위직의 가톨릭 신자였다. 가톨릭 미디어 사무소의 홍보 이사(공식 논평에 대해 거의 이용할 수 없었음)인 피터 카니에 따르면, 오브라이언 사건은 로마만이 처리할 수 있으며, 스코틀랜드에서는 추기경에게 이의를 제기할 권한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49]
캐서린 데베니는 ''옵저버''에 기고한 내용에서 오브라이언의 사임 이후 세인트 앤드루스 및 에든버러의 임시 지도자였던 타르탈리아 대주교는 이 문제에 직면하지 못했으며, 배후에서는 "교회 내부자"들이 비판적이었다고 전했다. 한 사람은 그녀에게 "그는 리더십 자질이 완전히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카니는 ''옵저버''에 스코틀랜드 조사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교황 대사가 올바르게 고발자들을 식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카니는 아르가일 및 아일스 주교(Bishop of Argyll and the Isles)인 조셉 토알이 이름을 받고 연락 담당자가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49]
데베니는 이 문제가 더 이상 개인적인 실패가 아니라 시스템적인 실패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으며, 신학자 베르너 좐론드의 말을 인용하여 "교회로서 우리는 동성애와 타협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교회의 최고 성직자 대표는 자신의 동성애를 인정하도록 허용하지 않은 시스템의 희생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스코틀랜드 성직자를 포함한 다른 많은 스캔들이 있으며, 적어도 한 명의 주교가 관련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불법 행위에는 성적 비행, 과음, 스캔들을 덮기 위한 뇌물 및 심각한 학대가 포함되며, "오브라이언은 시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급은 그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 문제가 스코틀랜드 성직자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말했다.[49]
2013년 7월, 오브라이언은 유럽의 수도원이나 잉글랜드 미들랜즈의 폐쇄된 수도원에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50][51] 2013년 11월에는 오브라이언이 더 이상의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보고가 있었는데, 이는 피해 주장자와 피해자 단체를 실망시켰다.[52]
결과오브라이언은 공개적으로 처리된 최초의 비행을 저지른 가톨릭 추기경이었다. 미국의 전직 사제이자 교회 학대 문제를 연구하는 리처드 시프는 당시 오브라이언이 유일한 사례가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에게도 한 사람이 있습니다. 곧 공개될 것입니다." 그는 오브라이언과는 달리 결국 추기경직을 박탈당한 미국의 테오도어 매캐릭 추기경을 언급했다.[27]
오브라이언 사건은 가톨릭 교회 내에서 이러한 사건에 대한 책임 추궁과 논의를 강요했고, 로마는 절차를 만들어야 했다. 오브라이언의 피해자 키스 데블린에 따르면 오브라이언과 매캐릭의 사건은 연관되어 있다. "우리가 그때 ''옵서버''에 가지 않았다면, 교회는 매캐릭을 완전히 다르게 처리했을 것입니다. 오브라이언이 없었다면 교회의 절차도 없었을 것입니다."[27]
5. 1. 폭로 및 인정
2013년 2월 23일, ''옵서버''는 O'Brien이 1980년대부터 세인트 앤드루스 및 에든버러 대교구 내에서 4명의 남성(사제 3명, 전직 사제 1명)을 상대로 부적절한 성적 행위를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고 보도했다.[18] 전직 사제는 O'Brien이 주교가 되자 사제직에서 사임했으며, "그때부터 그가 항상 나에게 권력을 행사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 나의 청렴함을 지키기 위해 떠났습니다."라고 말했다.[18] 한 제보자는 O'Brien의 행위로 인해 장기간 상담 치료를 받아야 했다고 보도되었다.[17]4명 중 한 명인 "사제 C"는 상급자가 하위 사제에게 행사하는 통제 수준 때문에 그가 O'Brien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웠다고 주장한다. "그[사제 위의 주교]는 당신에 대해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을 옮길 수 있고, 배척할 수도 있고, 품으로 데려올 수도 있습니다. [...] 그는 당신의 삶의 모든 측면을 통제합니다."[18]
O'Brien의 즉각적인 사임을 요구하는 불만이 교황청 주 영국 대사에게 접수되었고, 최소 한 명의 비판자를 침묵시키려는 노력이 있었다.[19]
O'Brien은 처음에는 의혹을 다투었다. BBC에 따르면, 교회 내 소식통은 O'Brien은 "자신을 고발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그들이 무엇으로 고발하는지도 모른다"고 말했다.[20] 2013년 2월 24일, 그는 에든버러의 세인트 메리 대성당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8주년 재임 기념 특별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는 법적 자문을 구했고 참석하지 말라는 조언을 받았다는 보도가 널리 퍼졌다.[21] 2013년 2월 25일, O'Brien의 이전에 제출된 대주교 사임이 그날 효력을 발휘하며, 임시 교황 행정관이 그의 자리에 임명되었다고 발표되었다. O'Brien은 그럴 자격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가오는 콘클라베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말했다.[22] 그 후 O'Brien은 2013년 5월 초까지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013년 3월 3일, 스코틀랜드 가톨릭 미디어 사무소는 O'Brien의 성명을 발표했으며, 그 안에서 그는 "나는 [...] 나의 성적 행위가 사제, 대주교, 추기경으로서 나에게 기대되는 기준에 미치지 못했던 적이 있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라고 말했다.[23][24] 그는 교회 공직에서 영구적으로 은퇴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25] O'Brien의 임시 후임자인 필립 타르탈리아 대주교는 교회의 "신뢰성과 도덕적 권위"가 훼손되었다고 말했다.[25]
같은 달, 한 전직 사제가 O'Brien을 고소할 의사를 발표했는데, O'Brien이 1980년대 19세의 신학교 시절 그를 성추행하고 키스했다고 말했다.[26] 2013년 O'Brien에 대항하여 증언한 4명의 내부 고발자 중 한 명인 브라이언 데블린은, 나중에 사제직을 떠났으며, 2021년에 익명성을 포기하고 자신의 경험과 개선된 교회 거버넌스 및 책임성 확보를 위한 투쟁에 관한 책 ''추기경의 죄''를 출판했다.[27][28] 데블린은 O'Brien의 비행이 4명이 공개적으로 의혹을 제기하기 전에 내부적으로 잘 알려져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사람들이 진심으로 자신의 주교에게 찾아가지만 그는 응답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나쁘며 기독교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사람들을 상처 입히고 통제하며, 나는 '이것을 멈춰라. 당신의 잔혹 행위를 멈춰라'라고 말할 자유를 요구합니다."라고 말했다.[29]
O'Brien은 2003년 로마에서 추기경이 된 것을 축하하는 음료 파티에서 한 사제를 성추행하려 했다는 추가적인 비난을 받았다.[30] O'Brien이 제보자 중 한 명과 장기간 육체적 관계를 맺었다는 의혹도 제기되었다.[31]
O'Brien은 자신의 대교구 내에 "연고주의 문화"가 존재한다는 의혹에 직면했고,[32] 이것이 그가 접근했던 사제들에게 이의를 제기할 가능성을 낮추었다고 한다.[33][34]
2015년, ''더 글래스고 헤럴드''는 최소 40건의 사건에서 젊은 성직자들이 O'Brien에게 그들의 고해를 듣게 하는 것이 권장되었으며, 이 종교적 행위가 성적 유인에 이용되었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O'Brien의 행위를 성범죄자로 받아들이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가 있었다고 한다.[35] O'Brien의 성적 학대 피해자들은 교회 내에서 추기경을 징계할 수 있는 사람은 교황뿐이므로 불만을 제기할 수 없다고 느꼈다.[36] 2015년 맥렐란 보고서가 발표된 후, 스코틀랜드 교회 목사 앤드류 맥렐란은 O'Brien에 대한 교회의 처우가 여전히 비밀 유지가 교회 내 "분위기의 중요한 부분"임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37]
5. 2. 교황청의 대응 및 조사
2013년 4월 27일, ''스코츠맨''은 마크 우엘레 추기경이 오'브라이언에 대한 조사를 이끌 것이며, 조사 완료 전까지 스코틀랜드 주교 임명이 중단될 것이라고 보도했다.[38] 그러나 이는 바티칸이 공식 조사를 열거나 어떠한 공식 보고서도 발표하지 않을 것이라는 또 다른 보고와 상반되었는데, 그 이유는 "교회는 그렇게 운영되지 않기 때문"이었다.[39] 오'브라이언의 강등이나 사제직 박탈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38][39]오'브라이언은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이스트 로디언 던바에 있는 교회 소유의 별장에서 은퇴 생활을 하려 했다. 그의 고발자 중 한 명인 전 신학생은 "키스 오'브라이언은 이제 조용하고 평화로운 은퇴를 원하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나의 경험은 사라지지 않았고... 저는 키스 오'브라이언에게 문제가 있고, 그것은 처리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40] 2013년 3월 15일, 바티칸이 오'브라이언에게 스코틀랜드를 떠나라고 명령한 것이 확인되었고,[42] 그는 수개월 동안 "기도와 참회"를 위해 떠났다.[43][42][44] ''워싱턴 포스트''는 "이 성명은 바티칸이 오'브라이언에게 벌로 이 결정을 강요했음을 명시하지 않았으며... 그러나 과거에 잘못된 사제들은 바티칸으로부터 '기도와 참회'라는 처벌을 받았으며, 이 성명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조치를 지지하고 교황청이 그의 미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라고 보도했다.[45]
바티칸은 2013년 5월 15일, 오'브라이언이 "영적 갱신, 기도 및 참회를 위해 수개월 동안 스코틀랜드를 떠날 것이며", "그의 에미넌스[키스 오'브라이언 추기경]의 미래 거취에 관한 어떠한 결정도 교황청과 합의될 것"이라고 발표했다.[46] 오'브라이언의 지지자들은 교회가 오'브라이언에게 스코틀랜드를 떠나도록 요구하는 것에 반대했다. 사제 캐논 크리너는 오'브라이언의 "강제 추방"을 막기 위해 법적 조치를 위협했고, 리처드 할로웨이 전 에든버러 주교는 스코틀랜드 성공회에서 "오'브라이언을 스코틀랜드에서 추방하는 것은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할로웨이는 오'브라이언의 강제 추방을 미국 중앙 정보국(CIA)의 "특별 이송"(사법 외 이송) 전술에 비유했다.[47]
4명의 고발자는 오'브라이언이 심리 상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고발 사제는 "키스는 극도로 심리 조작적이며 그의 거부에서 벗어나도록 도전을 받을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가 치료를 받지 않으면, 저는 그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여전히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완전한 이야기가 밝혀지지 않은 채 연막이 있다고 믿었고, 오'브라이언의 행동의 범위를 밝히기 위한 조사를 원했다.[49][48]
2013년 7월 현재, 오'브라이언은 여전히 영국에서 가장 고위직의 가톨릭 신자였다. 가톨릭 미디어 사무소의 홍보 이사인 피터 카니에 따르면, 오'브라이언 사건은 로마만이 처리할 수 있으며, 스코틀랜드에서는 추기경에게 이의를 제기할 권한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49] 캐서린 데베니가 ''옵저버''에 기고한 내용에 따르면, 오'브라이언의 사임 이후 세인트 앤드루스 및 에든버러의 임시 지도자였던 타르탈리아 대주교는 이 문제에 직면하지 못했으며, 배후에서는 "교회 내부자"들이 비판적이었다. 카니는 ''옵저버''에 스코틀랜드 조사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교황 대사가 올바르게 고발자들을 식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카니는 아르가일 및 아일스 주교(Bishop of Argyll and the Isles)인 조셉 토알이 이름을 받고 연락 담당자가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49]
데베니는 이 문제가 더 이상 개인적인 실패가 아니라 시스템적인 실패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으며, 신학자 베르너 좐론드의 말을 인용하여 "교회로서 우리는 동성애와 타협하는 데 실패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스코틀랜드 성직자를 포함한 다른 많은 스캔들이 있으며, 적어도 한 명의 주교가 관련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불법 행위에는 성적 비행, 과음, 스캔들을 덮기 위한 뇌물 및 심각한 학대가 포함되며, "오'브라이언은 시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급은 그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라고 말했다.[49]
2013년 7월, 오'브라이언은 유럽의 수도원이나 잉글랜드 미들랜즈의 폐쇄된 수도원에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50][51] 2013년 11월에는 오'브라이언이 더 이상의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보고가 있었는데, 이는 피해 주장자와 피해자 단체를 실망시켰다.[52]
2013년 6월 23일자 ''옵저버''에 따르면, 바티칸은 얼마간의 지연 끝에 사도적 방문을 하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이는 고위급 공식 조사로, "방문자"는 교황으로부터 직접 권한을 부여받는다. 이 경우 방문자는 당시 아직 임명되지 않았던 세인트 앤드루스-에든버러 대주교였다. 교황 대사 안토니오 메니니는 "레니"라는 전직 사제인 민원인에게 이 결정을 알렸다. 영향을 받는 모든 사람은 증거를 제시할 수 있으며, 충분한 증거가 있다고 판단되면 로마에서 더 심층적인 절차가 진행될 것이다. 레니는 마침내 사실이 조사될 것이라는 사실에 안도했지만, 방문 조사에서 "추기경의 측근들에게 승진이 부여되었는지 여부"도 조사해야 한다고 말했다.[54][53]
로마의 고위 관계자들은 방문 조사가 스코틀랜드 교회 내의 보다 일반적인 도덕적 실패 혐의도 다룰 것이라고 말했다.[53] O'Brien의 후임 에든버러 대주교를 방문자로 선택한 것에 대한 비판이 있었다. 교회법 변호사 톰 도일(Thomas P. Doyle)은, 중요한 점은 외부인이 조사하는 것이며, O'Brien의 후임을 선택하면 교회가 "바보처럼 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도일은 사도적 방문으로 아일랜드에서 광범위한 아동 학대와 관련된 이전 사건을 처리한 것은 "완전한 조롱"이었다고 말했다.[54][53]
민원인들은 레오 커슐리(Leo Cushley) 대주교와 협상해왔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에게도 호소했다. 그들은 교구의 운영 방식, O'Brien의 임명 방식, 측근들이 권력의 자리에 임명되었는지 여부, 그리고 O'Brien의 약탈적 행동의 정도에 대한 조사를 원하고 있다. 커슐리는 요청을 직접 전달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 사건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는 자제했다.[55] O'Brien이 살아있는 동안 교회법 재판은 가능성이 있지만, 실현될 가능성은 낮았다.[56] "레니"는 O'Brien 아래 세인트 앤드루스-에든버러 대교구의 재정이 부정행위가 있었는지 내부적으로 조사받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O'Brien이 친구를 위해 제트 스키를 샀으며 그 자금의 출처는 불분명하다고 말한다.[55] 교회는 이를 확인하거나 부인하지 않았다.[57]
O'Brien은 2014년 1월부터 노섬벌랜드주 엘링턴 마을에 있는 가톨릭 교회가 제공한 집에서 살았다.[58][59] O'Brien은 나중에 타인 강 뉴캐슬로 이사했다.[60]
찰스 시클루나는 2014년 4월 O'Brien을 조사했으며,[61] 추기경에 대한 이러한 조사는 전례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62]
시클루나의 사도적 방문 이후, 교황청은 2015년 3월 20일 프란치스코 교황이 "키스 패트릭 O'Brien 추기경의 추기경의 권리와 의무로부터 사임을 수락했다"고 발표했다.[64][65] 스코틀랜드 가톨릭 교회의 성명은 O'Brien이 그의 나이와 쇠약함으로 인해 상황을 검토해야 할 때까지 스코틀랜드 밖에서 계속 살 것이라고 확인했다. 그는 추기경의 칭호를 유지했지만, 더 이상 추기경의 역할을 수행하지 않았으며 개인적으로만 추기경의 옷을 입는 것이 허용되었다. 교황청 공보실에 따르면 O'Brien은 교황 선거에 참여하거나, 교황 자문 역할을 하거나, 바티칸 회의 및 평의회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며, 추기경의 다른 역할도 잃게 될 것이다.[66]
5. 3. 피해자들의 증언 및 추가 폭로
마크 우엘레 추기경은 키스 오브라이언에 대한 조사를 이끌 예정이었고, 조사 완료 전까지 스코틀랜드 주교 임명은 중단될 예정이었다.[38] 그러나 바티칸은 공식 조사를 열거나 어떠한 공식 보고서도 발표하지 않을 것이라는 보고가 있었는데, 그 이유는 "교회는 그렇게 운영되지 않기 때문"이었다.[39] 오'브라이언의 강등이나 사제직 박탈 결정은 내려지지 않았다.[38][39]오'브라이언은 스코틀랜드로 돌아와 이스트 로디언 던바에 있는 교회 소유의 별장에서 은퇴 생활을 하려 했다. 그의 고발자 중 한 명인 전 신학생은 "키스 오'브라이언은 이제 조용하고 평화로운 은퇴를 원하는 인상을 주고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나의 경험은 사라지지 않았고, 내가 아는 한 이것은 상황을 다시 분명하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키스 오'브라이언에게 문제가 있고, 그것은 처리되어야 합니다."라고 말했다.[40] 2013년 3월 15일, 바티칸은 오'브라이언에게 스코틀랜드를 떠나 수개월 동안 "기도와 참회"를 하라고 명령했다.[42][43][44] ''워싱턴 포스트''는 "이 성명은 바티칸이 오'브라이언에게 벌로 이 결정을 강요했음을 명시하지 않았으며, 사실 결정이 오'브라이언의 것이라고 암시했습니다. 그러나 과거에 잘못된 사제들은 바티칸으로부터 '기도와 참회'라는 처벌을 받았으며, 이 성명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이 조치를 지지하고 교황청이 그의 미래 운명을 결정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라고 보도했다.[45]
바티칸은 2013년 5월 15일, 오'브라이언이 "영적 갱신, 기도 및 참회를 위해 수개월 동안 스코틀랜드를 떠날 것이며", "그의 에미넌스[키스 오'브라이언 추기경]의 미래 거취에 관한 어떠한 결정도 교황청과 합의될 것"이라고 발표했다.[46]
오'브라이언의 지지자들은 교회가 오'브라이언에게 스코틀랜드를 떠나도록 요구하는 것에 반대했다. 사제(John) 캐논(Canon) 크리너는 오'브라이언의 "강제 추방"을 막기 위해 법적 조치를 위협했고, 변호인단을 준비했다고 말했다. 리처드 할로웨이 전 에든버러 주교는 스코틀랜드 성공회에서 "오'브라이언을 스코틀랜드에서 추방하는 것은 국제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할로웨이는 오'브라이언의 강제 추방을 미국 중앙 정보국(CIA)의 "특별 이송"(사법 외 이송) 전술에 비유했다.[47]
4명의 고발자는 오'브라이언이 기도와 참회보다는 심리 상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 고발 사제는 "키스는 극도로 심리 조작적이며 그의 거부에서 벗어나도록 도전을 받을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가 치료를 받지 않으면, 저는 그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여전히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49]
스캔들이 진행되는 동안 스코틀랜드 가톨릭 교회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2013년 7월 현재, 오'브라이언은 여전히 영국에서 가장 고위직의 가톨릭 신자였다. 가톨릭 미디어 사무소의 홍보 이사(공식 논평에 대해 거의 이용할 수 없었음)인 피터 카니에 따르면, 오'브라이언 사건은 로마만이 처리할 수 있으며, 스코틀랜드에서는 추기경에게 이의를 제기할 권한이 있는 사람이 없었다.[49]
캐서린 데베니는 ''옵저버''에 기고한 내용에서 오'브라이언의 사임 이후 세인트 앤드루스 및 에든버러의 임시 지도자였던 타르탈리아 대주교는 이 문제에 직면하지 못했으며, 배후에서는 "교회 내부자"들이 비판적이었다고 전했다. 한 사람은 그녀에게 "그는 리더십 자질이 완전히 부족하다"라고 말했다. 카니는 ''옵저버''에 스코틀랜드 조사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는데, 그 이유는 교황 대사가 올바르게 고발자들을 식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었다. 카니는 아르가일 및 아일스 주교(Bishop of Argyll and the Isles)인 조셉 토알이 이름을 받고 연락 담당자가 되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49]
데베니는 이 문제가 더 이상 개인적인 실패가 아니라 시스템적인 실패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으며, 신학자 베르너 좐론드의 말을 인용하여 "교회로서 우리는 동성애와 타협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교회의 최고 성직자 대표는 자신의 동성애를 인정하도록 허용하지 않은 시스템의 희생자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스코틀랜드 성직자를 포함한 다른 많은 스캔들이 있으며, 적어도 한 명의 주교가 관련되어 있다고 덧붙였다. 불법 행위에는 성적 비행, 과음, 스캔들을 덮기 위한 뇌물 및 심각한 학대가 포함되며, "오'브라이언은 시체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계급은 그가 알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라고 말했다. 그녀는 이 문제가 스코틀랜드 성직자에 관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라고 말했다.[49]
2013년 7월, 오'브라이언은 유럽의 수도원이나 잉글랜드 미들랜즈의 폐쇄된 수도원에 있는 것으로 보도되었다.[50][51] 2013년 11월에는 오'브라이언이 더 이상의 처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보고가 있었는데, 이는 피해 주장자와 피해자 단체를 실망시켰다.[52]
5. 4. 결과
오브라이언은 공개적으로 처리된 최초의 비행을 저지른 가톨릭 추기경이었다. 미국의 전직 사제이자 교회 학대 문제를 연구하는 리처드 시프는 당시 오브라이언이 유일한 사례가 아니라고 말했다. "우리에게도 한 사람이 있습니다. 곧 공개될 것입니다." 그는 오브라이언과는 달리 결국 추기경직을 박탈당한 미국의 테오도어 매캐릭 추기경을 언급했다.[27]오브라이언 사건은 가톨릭 교회 내에서 이러한 사건에 대한 책임 추궁과 논의를 강요했고, 로마는 절차를 만들어야 했다. 오브라이언의 피해자 키스 데블린에 따르면 오브라이언과 매캐릭의 사건은 연관되어 있다. "우리가 그때 ''옵서버''에 가지 않았다면, 교회는 매캐릭을 완전히 다르게 처리했을 것입니다. 오브라이언이 없었다면 교회의 절차도 없었을 것입니다."[27]
6. 사망
오브라이언은 장기 기증자 카드 소지자였으며, 심장 질환으로 2008년 3월 심장 박동 조율기를 삽입했다.[70][97] 2013년 2월 교황 베네딕토 16세에게 세인트앤드루스 및 에든버러 대주교직 사임을 제출했는데, 당시 오브라이언은 75세가 다 되어가고 건강이 좋지 않다고 밝혔다.[15]
2018년 3월 19일, 80세 생일 이틀 뒤에 낙상 사고로 사망했다.[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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