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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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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팔라디움은 트로이의 수호상인 팔라스의 목상으로, 트로이의 멸망과 관련된 신화적 존재이다. 트로이 전쟁 중 그리스인들이 이 상을 훔치면서 트로이가 함락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팔라디움은 트로이에서 로마로, 그리고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졌다는 설이 있으며, 로마 제국의 통치와 관련된 상징으로 여겨졌다. 다른 문화권에서도 유사한 수호신 상징물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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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라디움
고대 팔라디움
팔라디움
팔라디움은 고대 트로이의 운명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었다.
유형목조 신상
문화고대 그리스/고대 로마
관련 장소트로이
로마
관련 인물아이네이아스
누마 폼필리우스

2. 기원

트로이의 팔라디움은 팔라스의 목상으로,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테나, 고대 로마에서는 미네르바에 해당하지만, 본래 신화에서는 다른 인물이다. 이 상은 트로이의 건설자 일로스가 기원을 바쳤을 때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전해진다.[34]

칼 럭과 대니 스테이플스는 "아테나의 가장 오래된 부적 들은 마법적인 발견물이었고, 여신이 의인화되기 전에는 옛 방식대로 얼굴 없는 땅의 기둥이었다"고 기록했다.[3]

2. 1. 아테나의 자책

트로이의 팔라디온은 트리톤의 딸 팔라스의 목상으로 여겨진다. 팔라스는 고대 그리스에서는 아테나(로마 신화미네르바)에 해당한다고 여겨지지만, 본래의 신화에서는 다른 인물이다. 이 상은 일리오스(트로이)의 건설자 일로스가 성벽을 쌓은 직후[18], 제우스에게 기도를 드리자, 그에 응답하여 하늘에서 떨어졌다고 한다.[19]

Ruck와 Staples는 "아테나의 가장 오래된 수호상이며... 불가사의한 발견물이며, 여신이 의인화되어 인간과 같은 외모를 갖게 되기 전에는, 얼굴 없는 기둥이 땅에 서 있을 뿐이었다"고 기록했다.[20]

신화에 따르면, 이 상은 아테나가 팔라스를 죽인 자책감에서 그녀의 모습을 조각하여 만들었다고 한다.[19]

3. 트로이 도착

팔라디움이 트로이에 도착한 이야기는 기원전 7세기부터 그리스인들이 도시 건국 신화의 일부로 다양하게 언급했다. 아틀라스의 딸 엘렉트라는 트로이 왕가의 조상 다르다노스와 사모트라키섬 비교(秘敎)의 조상 이아시온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팔라디움과 사모트라키섬의 비교가 연결된다.[36] 이와 관련하여 여러가지 설이 존재하는데, 엘렉트라가 아테나의 신전에 있는 팔라디움에 손을 댔기 때문에 신이 일리오스 쪽으로 던졌다는 설,[37] 엘렉트라가 직접 팔라디움을 옮겼다는 설,[38] 다르다노스에게 주어졌다는 설[39] 등이 있다. 일로스 왕은 불타는 신전에서 팔라디움을 지키려다 눈이 멀었다고 전해진다.[40]

3. 1. 엘렉트라와 다르다노스

아틀라스의 딸 엘렉트라는 트로이 왕가의 조상 다르다노스사모트라키섬의 비교(秘敎)의 조상 이아시온의 어머니이며, 그 때문에 팔라디움과 사모트라키섬의 비교가 연결된다[36]. 엘렉트라가 팔라디움이 놓여져 있던 아테나의 신전에 임산부로서 와 그 상에 손을 대었기 때문에, 처녀가 아닌 여성의 손으로 더럽혀졌다고 해서 신이 그 상을 일리오스 쪽에 던졌다는 설[37], 엘렉트라가 스스로 상을 가지고 사라졌다는 설[38], 원래 다르다노스에게 그 상이 주어졌다는 설[39]등이 있다. 일리오스의 왕 이로스는 불이 난 신전에서 그 상을 지키려고 거기에 손을 대어, 맹목이 됐다[40]

3. 2. 여러 가지 설

팔라디움이 트로이에 나타난 이야기는 기원전 7세기 이후 그리스인들이 도시의 건국 신화의 일부로 다양하게 언급한다. 아틀라스의 딸 엘렉트라는 트로이 왕가의 조상 다르다노스와 사모트라키섬 비교(秘敎)의 조상 이아시온의 어머니였기 때문에 팔라디움과 사모트라키섬의 비교가 연결된다.[36]

여러 가지 설에 따르면,

  • 엘렉트라가 팔라디움이 놓여 있던 아테나의 신전에 임산부로서 찾아와 그 상에 손을 대었기 때문에, 처녀가 아닌 여성의 손으로 더럽혀졌다고 해서 신이 그 상을 이리오스 쪽에 던졌다는 설[37]
  • 에이레크트라가 스스로 상을 가지고 사라졌다는 설[38]
  • 다르다노스에게 그 상이 주어졌다는 설[39]


등이 있다.

이리오스의 왕 일로스는 불이 난 신전에서 그 상을 지키려고 거기에 손대어, 맹목이 됐다.[40]

3. 3. 일로스의 맹목

팔라디움이 트로이에 출현한 이야기는 기원전 7세기 이후 그리스인들이 여러 가지로 참조하는 도시의 건국 신화의 일부이다. 아틀라스의 딸 엘렉트라는 트로이 왕가의 조상 다르다노스와 사모트라키섬의 비교(秘敎)의 조상 이아시온의 어머니이며, 그 때문에 팔라디움과 사모트라키섬의 비교가 연결된다[36][6][21].

엘렉트라가 팔라디움이 놓여져 있던 아테나의 신전에 임산부로서 와 그 상에 손대었기 때문에, 처녀가 아닌 여성의 손으로 더럽혀졌다고 해서 신이 그 상을 이리오스 쪽에 던졌다는 설[37][7], 엘렉트라가 스스로 상을 가지고 사라졌다는 설[38][8], 원래 다르다노스에게 그 상이 주어졌다는 설[39][9], 제우스가 엘렉트라와 관계를 가질 때 조각상을 일리오스 쪽으로 던졌다는 설[19], 엘렉트라 자신이 조각상을 가져가 다르다노스에게 주었다는 설[22] 등이 있다.

이리오스의 왕 일로스는 불이 난 신전에서 그 상을 지키려고 거기에 손대어, 맹목이 됐다[40][10][23].

4. 트로이 전쟁과 도난

트로이아 전쟁에서 팔라디움의 중요성은 프리아모스의 아들이자 예언자인 헬레노스를 통해 그리스 측에 알려졌다. 헬레노스는 팔라디움이 트로이 성벽 안에 있으면 트로이는 함락되지 않는다고 예언했다. 이 때문에 오디세우스디오메데스는 팔라디움을 훔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24]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가 팔라디움을 훔치는 모습. (아풀리아의 적색 토기 오이노코에, 기원전 360-350년경, 레지오 디 칼라브리아 출토.)


디오메데스가 팔라디움을 들고 제단으로 다가가는 모습


그리스 측 기록에 따르면 오디세우스디오메데스비밀 통로를 통해 트로이의 성채로 잠입하여 팔라디움을 훔쳐냈고, 이후 트로이 목마라는 계략을 사용하여 트로이는 함락되었다.[25]

서사시환의 '소(小) 일리아스'에 따르면, 배로 돌아오는 도중 오디세우스디오메데스를 죽이고 팔라디움과 공훈을 독차지하려고 했다. 그러나 디오메데스는 달빛에 비친 칼을 보고 위험을 감지, 오디세우스를 제압하고 묶은 뒤 칼 등으로 때리며 앞장서 가게 했다. 이 일화에서 강요에 의해 행동하는 것을 뜻하는 "디오메데스의 필요성"이라는 그리스 속담이 생겨났다.[12]

4. 1. 헬레노스의 예언

트로이아 전쟁 당시, 트로이에서 팔라디움의 중요성은 프리아모스의 아들이자 예언자인 헬레노스가 그리스인들에게 밝혔다고 한다. 파리스 사후 헬레노스는 트로이를 떠났지만, 오디세우스에게 붙잡혔다. 그리스인들은 헬레노스로부터 트로이의 약점을 알아냈는데, 팔라디움이 트로이 성벽 안에 있는 한 트로이는 결코 함락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24]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는 팔라디온을 훔치는 중요한 임무를 맡았다. 오디세우스는 거지로 변장하여 밤에 트로이로 잠입했고, 헬레네가 그를 알아보고 팔라디온의 위치를 알려주었다. 오디세우스는 여러 트로이 병사를 살해하고 디오메데스와 함께 팔라디온을 훔쳐 귀환했다.[25] 이후, 그리스 측의 트로이 목마 계책으로 트로이는 함락되었다.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에서 시논프리아모스에게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가 아테나 신전 호위를 죽이고 "피로 물든 손으로" 팔라디온을 훔쳤으며,[26] 이로 인해 아테나가 분노하여 팔라디온이 불타오르며 공중에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리스인들은 여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거대한 말 조각상을 건조하고 일시 퇴각해야 했다고 한다.[27] 그러나 시논의 말은 무장들이 탄 목마를 트로이인들이 전리품으로 여기도록 유도하기 위한 책략이었다.

일설에 따르면 팔라디온을 실제로 손에 넣은 것은 디오메데스라고 한다. 그는 오디세우스의 어깨를 딛고 성벽을 넘어 트로이에 침입하여 혼자 팔라디온을 훔쳐 배까지 운반했다.[28] 팔라디온을 든 디오메데스를 그린 조각상이나 그림이 여럿 전해진다. 혹은 디오메데스와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의 비밀 통로를 통해 성채에 침입했다고도 한다.

서사시 환의 『소(小) 일리아스』에 따르면, 배로 향하던 중 오디세우스는 디오메데스를 죽이고 팔라디온과 공로를 독차지하려 했다. 오디세우스가 디오메데스의 등을 찌르려 칼을 휘두르자, 디오메데스는 달빛에 반사된 칼날을 보고 위험을 감지했다. 그는 오디세우스의 칼을 빼앗아 묶고, 칼의 평평한 부분으로 때리며 걷게 했다. 이 고사에서 그리스에서는 강제로 행동하는 것을 "디오메데스의 필요성(Diomedes' necessity)"이라고 부른다. 프랑스 조각가 피에르 줄 카발리에는 1842년에 이 모습을 조각상으로 묘사했는데, 팔라디온을 든 디오메데스가 어깨 너머로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며 오디세우스는 등장하지 않는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공략에 필요했기 때문에 디오메데스는 그를 벌하지 않았다.

디오메데스는 트로이를 떠날 때 팔라디온을 가지고 갔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팔라디온을 이탈리아로 가져갔다고 하며, 다른 설에서는 귀로에 도난당했다고 한다.

4. 2.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

트로이아 전쟁 당시 프리아모스의 아들이자 예언자였던 헬레노스는 그리스인들에게 팔라디움이 트로이 성벽 안에 있으면 트로이가 함락되지 않을 것이라는 비밀을 알려주었다.[24] 이 때문에 그리스 진영의 오디세우스디오메데스는 팔라디움을 훔쳐오는 중대한 임무를 맡게 되었다.

4. 2. 1. 작전 수행 과정

트로이아 전쟁 때, 프리아모스의 아들이자 예언자인 헬레노스는 그리스인들에게 트로이의 약점을 밝혔는데, 팔라디움이 트로이 성벽 안에 있는 한 트로이는 함락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24] 파리스 사후 헬레노스는 트로이를 떠났지만, 오디세우스에게 잡혔다.

그리스인들은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에게 팔라디움을 훔치는 중요한 임무를 맡겼다. 오디세우스는 거지로 변장하여 밤에 트로이에 잠입했고, 헬레네가 그를 알아보고 팔라디움의 위치를 가르쳐주었다.[25]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병사 다수를 살해하고 디오메데스와 함께 팔라디움을 훔쳐 귀환했다.[25] 다른 전승에서는 디오메데스와 오디세우스가 트로이의 비밀 통로를 통해 성채에 침입하여 팔라디움을 훔쳤다고도 한다.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에서 시논프리아모스에게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가 아테나 신전의 호위를 죽이고 "피로 물든 손으로" 팔라디움을 훔쳤다고 말한다.[26] 아테나는 피의 부정함에 분노하여 팔라디움이 불타오르며 공중에 떠올랐고, 그리스인들은 여신의 노여움을 풀기 위해 트로이 목마를 건조하고 일시적으로 퇴각해야 했다.[27] 그러나 시논의 말은 트로이인들이 목마를 전리품으로 여기게 하기 위한 책략이었다.

일설에 따르면 팔라디움을 실제로 손에 넣은 것은 디오메데스다. 그는 오디세우스의 어깨를 딛고 성벽을 넘어 트로이에 침입하여 혼자 팔라디움을 훔쳐 배까지 운반했다.[28] 팔라디움을 든 디오메데스를 그린 조각상이나 그림이 몇몇 있다.

서사시환의 『소(小) 일리아스』에 따르면, 배로 가는 도중 오디세우스는 디오메데스를 죽이고 팔라디움과 공로를 독차지하려 했다. 오디세우스가 디오메데스의 등을 찌르려 하자, 디오메데스는 달빛에 반사된 칼날을 보고 위험을 감지했다. 그는 오디세우스의 칼을 빼앗아 묶고, 칼의 평평한 부분으로 때려 앞으로 걷게 했다. 이 고사에서 강제로 행동하는 것을 "디오메데스의 필요성(Diomedes' necessity)"이라고 부른다.[12] 프랑스조각가피에르 줄 카발리에는 1842년에 이 모습을 조각했는데, 팔라디움을 든 디오메데스가 어깨 너머로 뒤를 돌아보는 모습이고 오디세우스는 등장하지 않는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공략에 필요했기 때문에 디오메데스는 그를 벌하지 않았다.

디오메데스는 트로이를 떠날 때 팔라디움을 가지고 갔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그것을 이탈리아로 가져갔고, 다른 설에 따르면 귀로에 도난당했다고 한다.

4. 2. 2. 디오메데스의 필요성

트로이아 전쟁 당시, 트로이에서 팔라디움의 중요성은 프리아모스의 아들이자 예언자인 헬레노스가 그리스인들에게 밝혔다고 한다. 파리스 사후 헬레노스는 트로이를 떠났지만, 오디세우스에게 잡혔다. 그리스인들은 이 예언자로부터 트로이의 약점을 알아냈는데, 팔라디움이 트로이 성벽 안에 있는 동안은 트로이가 함락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24]

이 조각상을 훔치는 중요한 임무는 오디세우스와 디오메데스에게 주어졌다. 오디세우스는 디오메데스를 기다리게 하고 거지로 변장하여 밤에 트로이로 잠입했다. 헬레네가 오디세우스를 알아보고 팔라디움의 위치를 가르쳐주었다. 오디세우스는 팔라디움을 훔치는 데 성공하여, 다수의 트로이 병사를 살해한 후 디오메데스와 함께 귀환했다.[25] 그 후, 그리스 측의 트로이 목마라는 계략으로 트로이는 함락되었다.

일설에 따르면 팔라디움을 실제로 손에 넣은 것은 디오메데스라고 한다. 그는 오디세우스의 어깨를 딛고 성벽을 넘어 트로이에 침입하여 혼자 팔라디움을 훔쳐 배까지 운반했다.[28] 팔라디움을 손에 든 디오메데스를 그린 조각상이나 그림이 몇몇 있다. 또는 디오메데스와 오디세우스는 트로이의 비밀 통로를 빠져나가 성채에 침입했다고도 한다.

서사시환의 소(小) 일리아스에 따르면, 배로 향하는 도중에 오디세우스는 디오메데스를 죽이고 팔라디움과 공로를 독차지하려 했다. 오디세우스는 디오메데스의 등을 찌르려고 칼을 휘둘렀다. 디오메데스는 칼이 달빛에 반사되어 번뜩이는 것을 느끼고 위험을 감지했다. 그는 오디세우스의 칼을 빼앗아 묶고, 칼의 평평한 부분으로 때려 앞으로 걷게 했다. 이 고사에서 그리스에서는 강제로 행동하는 것을 "디오메데스의 필요성(Diomedes' necessity)"이라고 부른다.[12] 이 모습은 프랑스의 조각가 피에르쥘 카벨리에가 1842년에 조상으로 묘사했다. 오디세우스는 트로이 공략에 필요했기 때문에, 디오메데스는 그를 벌하는 것을 삼갔다.

디오메데스는 트로이를 떠날 때 팔라디움을 함께 가지고 갔다. 일설에 따르면 그는 그것을 이탈리아로 가져갔다. 다른 설에 따르면, 귀로에 도난당했다고 한다.

5. 로마로의 이동

트로이의 팔라디움은 여러 전설을 통해 아테네, 아르고스, 스파르타(모두 그리스) 또는 이탈리아로마로 옮겨졌다고 전해진다. 로마로 옮겨졌다는 설에는 망명한 트로이인 아이네이아스가 가져왔다는 설과 디오메데스 본인이 넘겨주었다는 설이 있다. 로마 시대에 팔라디움으로 여겨지는 실제 물건은 여러 세기 동안 로마 포럼에 있는 베스타 신전에 보관되었으며, 로마 통치(임페리움)의 신성한 징표 또는 서약인 ''pignora imperii'' 중 하나로 여겨졌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팔라디움을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로 옮겨 그의 포럼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기둥 아래에 묻었다는 소문이 있었다. 이러한 움직임은 로마의 우위를 약화시켰을 것이며, 콘스탄티누스가 자신의 통치와 새로운 수도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자연스럽게 여겨졌다. 논란이 많았던 황제 엘라가발루스(재위 218–222)가 로마 종교의 가장 신성한 유물을 각 사당에서 엘라가발리움으로 옮겼을 때, 팔라디움도 그중 하나였다.[16]

5. 1. 아이네이아스 설과 디오메데스 설

트로이의 팔라디움의 이후 행방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아테네, 아르고스, 스파르타그리스 국내 설과 이탈리아로마라는 설이 있다. 로마 설은 아이네이아스가 가져왔다는 설(이 경우 디오메데스가 훔친 것은 가짜)과 디오메데스 자신이 인도했다는 설로 나뉜다. 팔라디움으로 전해지는 상은 포로 로마눔의 베스타 신전에 안치되어 있었다.[41]

그 후, 콘스탄티누스 1세가 팔라디움을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겨, 포룸 안의 콘스탄티누스의 원주 아래에 묻었다는 소문이 돌았다.[41] 이러한 소문은 로마의 몰락을 설명하는 것으로, 콘스탄티누스 1세의 치세 (수도 이전)를 정당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 플리니우스에 따르면, 메텔루스는 베스타 신전이 불이 났을 때 팔라디움을 구출해 내려고 맹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 고사는 오비디우스[42]우레리우스 마크심스[43]도 암시하고 있다.

5. 2. 베스타 신전

트로이의 팔라디움은 이후 아테네, 아르고스, 스파르타그리스 지역이나 이탈리아로마로 옮겨졌다는 여러 설이 있다. 로마로 옮겨졌다는 설은 아이네이아스가 가져왔다는 설과 디오메데스가 직접 건네주었다는 설로 나뉜다. 전자의 경우 디오메데스가 훔친 것은 가짜 팔라디움이 된다. 팔라디움으로 여겨진 상은 포로 로마눔의 베스타 신전에 안치되어 있었다.[41]

대 플리니우스[13]에 따르면, 루키우스 카에킬리우스 메텔루스는 기원전 241년 베스타 신전에 불이 났을 때 팔라디움을 구출하려다 눈이 멀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오비디우스[14]발레리우스 막시무스[15]도 언급했다.

5. 3. 콘스탄티노플 이전

그 후 트로이의 팔라디움의 행방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는데, 아테네, 아르고스, 스파르타와 같은 그리스 국내 설과 이탈리아로마라는 설도 있다.[29][30] 로마 설은 아이네이아스가 가져왔다는 설(이 경우 디오메데스가 훔친 것은 가짜이다)과 디오메데스 자신이 인도했다는 설로 나뉜다. 팔라디움으로 전해진 상은 포로 로마눔의 웨스타 신전에 안치되어 있었다.

대 플리니우스 (N'H, VII, XLV)에 따르면, 메텔루스는 웨스타 신전에 불이 났을 때 팔라디움을 구출해 내려고 맹인이 되었다고 한다. 이 고사는 오비디우스[32] Valerius Maximus|발레리우스 막시무스la[33]도 암시하고 있다.

6. 다른 문화권에서의 유사한 상징물


  • Asherah pole|아세라 기둥영어 - 우가리트 신화의 여신 아세라와 관련된 신성한 나무 또는 기둥.
  • Ancile|안킬레영어 - 신성한 방패. 로마의 팔라디온.
  • 호데게트리아의 성모 (고대의 성모자상) - 동로마 제국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수호자. 포위 공격을 받았을 때 도시 밖으로 향하게 했다. 1453년에 오스만 제국군에 의해 함락되었을 때 약탈되어 사라졌다.
  • 에메랄드 불상 - 태국에게 팔라디온과 같은 존재.

참조

[1] Harv 1911
[2] 기타 Palladium, 2 OED 1600
[3] 서적 The World of Classical Myth 2017-02
[4] 문서
[5] 문서 Bibliotheke
[6] 문서 Bibliotheke
[7] 문서 Bibliotheke
[8] 문서 Phoenissae Scholia
[9] 문서 Taking of Ilios http://www.theoi.com[...] fourth century AD
[10] 문서 Foundations of Cities
[11] 문서 Bibliotheca
[12] 문서
[13] 문서 Natural History
[14] 문서
[15] 문서
[16] 문서 Life of Elagabalus https://penelope.uch[...] Augustan History
[17] 서적 Apologeticus
[18] 기타 祭暦
[19] 기타
[20] 기타 The World of Classical Myth
[21] 기타
[22] 웹사이트 Electra http://www.perseus.t[...] Perseus Digital Library
[23] 문서 Foundations of Cities
[24] 기타
[25] 기타
[26] 기타 アエネーイス
[27] 기타 アエネーイス
[28] 기타 ギリシア・ローマ神話辞典
[29] 기타
[30] 기타
[31] 기타 The Later Roman Empire
[32] 기타 祭暦
[33] 문서
[34] 기타 The World of Classical Myth
[35] 문서 Bibliotheke
[36] 서적 Bibliotheke
[37] 서적 Bibliotheke
[38] 논문 Scholia on Euripides Phoenissae
[39] 웹사이트 Taking of Ilios http://www.theoi.com[...] "0300"
[40] 서적 Foundations of Cities
[41] 서적 The Later Roman Empire
[42] 간행물 Fast. B
[43] 간행물 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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