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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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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포르투갈 문학은 포르투갈어로 쓰인 문학으로, 12세기 말 파이우 소아레스 드 타베이루의 서사시로 시작되었다. 중세 시대에는 트루바두르 문학이 발달했으며, 16세기 르네상스 시대를 거치며 루이스 드 카몽이스, 질 비센트 등 유명 작가들이 등장하여 황금기를 맞이했다. 19세기에는 낭만주의와 사실주의가 공존하며 알메이다 가레트, 에사 드 케이로스 등이 활동했고, 20세기에는 페르난두 페소아, 주제 사라마구 등 근대주의와 현대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이 등장했다. 주제 사라마구는 199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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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르투갈 문학 - 카몽이스상
    카몽이스상은 포르투갈어권 문학 분야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포르투갈과 브라질 정부 간의 협정에 따라 1989년부터 수여되며, 작품 전체를 기준으로 선정되고 양국이 번갈아 수상자를 배출하며 특별 심사위원단의 결정과 양국 정부 출연금으로 상금이 조성된다.
포르투갈 문학
지도
기본 정보
국가포르투갈
언어포르투갈어
문학
특징포르투갈 문학은 포르투갈어로 쓰여진 문학이다.
포르투갈 문학은 중세 문학, 르네상스 문학, 바로크 문학, 낭만주의 문학, 사실주의 문학, 상징주의 문학, 모더니즘 문학등 다양한 시대를 거쳐 발전했다.
장르서사시


소설
수필
중요한 작가루이스 데 카몽이스
페르난도 페소아
조제 사라마구
에사 드 케이로스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
중세 문학
특징중세 문학은 12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문학이다.
갈리시아-포르투갈어로 쓰여진 서정시가 주류를 이룬다.
장르칸티가 (Cantigas)
연애시 (Cantigas de amor)
풍자시 (Cantigas de escárnio e maldizer)
기독교적 성격을 띤 시 (Cantigas de amigo)
주요 작가 및 작품마르틴 코다스
주앙 소아레스 데 파이바
디니스 1세
페르난 곤살베스
르네상스 문학
특징르네상스 문학은 16세기 문학이다.
고전 문학을 모방하고 인간 중심적인 사상을 추구했다.
장르서사시

목가시
주요 작가 및 작품루이스 데 카몽이스 (Luís Vaz de Camões) - 루시아다스 (Os Lusíadas)
사 데 미란다 (Sá de Miranda)
안토니우 페헤이라 (António Ferreira)
바로크 문학
특징바로크 문학은 17세기 문학이다.
과장되고 화려한 표현과 대조적인 이미지를 사용했다.
장르종교시
세속시
설교
주요 작가 및 작품프란시스쿠 마누엘 드 멜루 (Francisco Manuel de Melo)
안토니우 비에이라 (António Vieira)
소로르 마리아 두 세우 (Soror Maria do Céu)
신 고전주의 문학
특징신 고전주의 문학은 18세기 문학이다.
이성과 질서를 중시하며 고전적인 형식과 규칙을 따랐다.
장르
서사시
풍자시
주요 작가 및 작품안토니우 디니스 다 크루스 이 실바 (António Dinis da Cruz e Silva)
마누엘 마리아 바르보사 두 보카게 (Manuel Maria Barbosa du Bocage)
낭만주의 문학
특징낭만주의 문학은 19세기 전반 문학이다.
감정, 상상력, 개성을 중시했다.
장르
소설
주요 작가 및 작품알메이다 가레트 (Almeida Garrett)
카밀루 카스텔루 브랑쿠 (Camilo Castelo Branco)
주앙 드 데우스 (João de Deus)
사실주의 문학
특징사실주의 문학은 19세기 후반 문학이다.
사회 현실을 객관적으로 묘사하려 했다.
장르소설
비평
주요 작가 및 작품에사 드 케이로스 (Eça de Queirós)
라미 로드리게스 (Ramalho Ortigão)
테오필루 브라가 (Teófilo Braga)
상징주의 문학
특징상징주의 문학은 19세기 후반 문학이다.
감정과 상상력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장르
주요 작가 및 작품아나톨 프란스 (Antero de Quental)
세사리우 베르데 (Cesário Verde)
카밀루 페사냐 (Camilo Pessanha)
모더니즘 문학
특징모더니즘 문학은 20세기 문학이다.
전통적인 형식과 관습을 거부하고 실험적인 시도를 했다.
장르
소설
수필
주요 작가 및 작품페르난도 페소아 (Fernando Pessoa)
마리오 데 사-카르네이루 (Mário de Sá-Carneiro)
조제 레지우 (José Régio)
현대 문학
특징현대 문학은 20세기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문학이다.
다양한 주제와 형식으로 실험하고 있다.
장르소설

주요 작가 및 작품조제 사라마구 (José Saramago)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 (António Lobo Antunes)
미겔 토르가 (Miguel Torga)

2. 역사

포르투갈어로 쓰인 가장 오래된 문헌은 『아퐁수 2세의 유언장』(1214)으로 알려졌으나, 최근 리스본 대학교의 아나 마리아 마르티스에 의해 『보증인에 관한 각서』(1175)라는 더 오래된 문서가 발견되었다.[3] 포르투갈 문학은 파이우 소아레스 드 타베이루가 읊은 12세기 말의 연애 서사시에서 시작되었다.[4]

13세기에는 남프랑스 프로방스에서 유래한 트루바두르의 서사시가 갈리시아-포르투갈어로 기록되기 시작했다. 이 시들은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여성의 심정을 노래한 칸티가스 데 아미구, 사랑을 노래한 칸티가스 데 아모르, 사회 풍자를 노래한 칸티가스 데 에스칼니우 이 마르디제르의 세 가지 장르로 나뉘었다. 디니슈 1세는 포르투갈어 보급에 힘썼고, 칸티가스 데 아모르 작품을 남겼다.[4] 카스티야 왕국의 알폰소 10세도 갈리시아-포르투갈어로 『성모 마리아 찬가의 책』을 남겼다.[6] 이러한 트루바두르 문학은 14세기 중엽에 사라졌지만,[5] 『아주다 문고에 있는 시가집』, 『바티칸 도서관에 있는 시가집』, 『리스본 국립 도서관에 있는 시가집』과 같은 시가집(칸시오네이루스)에 기록되어 현재까지 전해진다.[7]

16세기에 프란시스쿠 드 사 드 미란다에 의해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학이 도입되면서 고전주의 시대가 시작되었다.[8] 베르길리우스호라티우스고대 로마고대 그리스 문화가 규범이 되었고,[8] 질 비센치와 루이스 드 카몽이스가 등장했다. 대항해시대를 이끌었던 포르투갈은 해외 진출을 그린 기행 문학도 발달했다.[9] 고메스 에아네스 드 아주라라의 『서아프리카 항해의 기록』, 페루 바스 드 카미냐의 『서한』, 주앙 드 바루스의 『아시아사』 등이 대표적이다. 페르낭 드 올리베이라는 『포르투갈어 문법』(1536)을 저술하여 포르투갈어 체계화에 기여했다.

17세기에는 스페인에 병합되면서 포르투갈 국력이 쇠퇴했고, 문학에도 영향을 미쳤다. 예수회 안토니오 비에이라 신부는 『설교집』을 통해 포르투갈령 브라질의 노예 제도를 비판했다. 18세기에는 많은 지식인이 영국이나 프랑스로 이주했고,[10] 폰발 백작 시대에 지적 부흥 계획이 있었지만,[10] 문화 활동은 정체되었다.

19세기에는 나폴레옹 전쟁 종결 후 낭만주의가 전해졌다. 알메이다 가레트는 『카몽이스』(1825)를 통해 포르투갈 낭만주의를 이끌었고, 알렉산드레 에르크라누는 실증주의 역사학적 저술을 남겼다.[11] 코임브라 문제를 통해 70년대 세대가 등장하여 실증주의를 주창했다. 에사 드 케이루스는 『아마루 신부의 죄』, 『마이아 가의 사람들』 등 뛰어난 사실주의 소설을 남겼다.

공화혁명 이후 포르투갈 르네상스 운동이 시작되었고, 테이셰이라 드 파스쿠아이슈는 사우다지즘을 통해 포르투갈 정신을 표현했다. 페르낭두 페소아는 사우다지즘에서 영향을 받아 『포르투갈의 바다』 등을 남겼다. 안토니우 세르지우 등은 『세아라 노바』를 창간하여 공화주의를 옹호했다.[14]

1926년 5월 28일 쿠데타 이후 살라자르의 에스타두 노부 체제는 문예 운동을 정체시켰지만, 아킬리누 리베이루, 미겔 토르가, 페르낭두 페소아 등은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 현대에는 주제 사라마구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고,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 등이 활동하고 있다.[16]

2. 1. 중세 시대 (12세기 - 14세기)

헨리 로즈먼 랭(Henry Roseman Lang)과 카롤리나 미카엘리스 드 바스콘셀루스(Carolina Michaëlis de Vasconcellos) 등 저명한 초기 학자들에 따르면, 기록이 남기 시작하기 전에도 토착 민중시가 존재했다고 한다. 그러나 최초로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시편들은 1200년에서 1225년 사이의 작품들로, 프로방스의 영향을 보여준다. 이 시들은 갈리시아-포르투갈어(구 포르투갈어)로 쓰여졌다. 최초의 시 활동 장소는 갈리시아와 포르투갈 북부의 귀족 법정이었으며(포르투갈 역사가 안토니우 레젠디 드 올리베이라(António Resende de Oliveira)의 연구 덕분에 알 수 있게 됨), 그 후 중심지는 카스티야와 레온(등)의 왕인 알폰소 10세(현명한 왕)의 궁정으로 옮겨졌다. 같은 시인들 중 일부와 다른 시인들은 프랑스에서 교육받은 포르투갈의 아폰수 3세(Afonso III of Portugal)의 궁정에서도 활동했다. [3]

갈리시아-포르투갈어 시의 주요 사본 자료는 13세기 후반 사본인 ''아주다 가요집(Cancioneiro da Ajuda)'', ''바티칸 가요집(Cancioneiro da Vaticana)'', 그리고 ''국립도서관 가요집(Cancioneiro da Biblioteca Nacional)''(또는 ''콜로치-브랑쿠티 가요집(Cancioneiro Colocci-Brancuti)''이라고도 함)이다. 후자의 두 사본은 이탈리아 인문주의자 안젤로 콜로치(Angelo Colocci)의 의뢰로 로마에서 아마도 1525년경에 필사되었다.

디니스 1세(1261~1325) 왕 시대에는 후기의 번영이 있었는데, 그는 매우 박식한 인물이었으며, 그의 작품이 가장 많이 보존되어 있다(137편). 주요 장르는 남성 시점의 ''칸티가 다모르(cantiga d'amor)'', 여성 시점의 ''칸티가 다미구(cantiga d'amigo)''(모든 시인이 남성이었지만) 그리고 ''칸티가 데스카르니우 이 말디제르(cantigas d'escarnio e maldizer)''(조롱과 모욕의 노래)라는 모욕의 시였다. [4] 주로 사랑과 인신공격(종종 잘못된 풍자라고 불림)을 다루는 이 13세기 궁정시는 결코 프로방스 모델과 관습에서 완전히 유래한 것이 아니다(흔히 말하는 것처럼). 대부분의 학자와 비평가들은 아마도 "지역 민요에 뿌리를 두고 있는"(헨리 로즈먼 랭, 1894) ''칸티가 다미구''를 선호하며, 어쨌든 고대 또는 중세 유럽에서 살아남은 가장 많은 여성 시점의 연애 서정시이다. ''산타 마리아의 칸티가스(Cantigas de Santa Maria)''를 제외한 중세 갈리시아-포르투갈어 서정시의 전체 작품은 약 1,685편이다. [5][6] 위에 언급된 대규모 사본 외에도, 6편의 ''칸티가 다미구''의 선율을 담고 있는 ''빈델 양피지(Vindel Parchment)''와 7편의 ''칸티가 다모르''를 담고 있는 필사본 조각인 ''샤러 양피지(Pergaminho Sharrer)''에 음악이 붙은 몇몇 노래도 있다. 이 두 사본 모두에 있는 시는 대형 사본에서 찾을 수 있는 시와 같고, 게다가 순서도 같다.

15세기 중반까지 트루바두르 시는 사실상 사라졌다.[7]

2. 2. 르네상스 시대 (15세기 - 16세기)

프란시스쿠 드 사 드 미란다는 이탈리아의 운율 형식을 도입하고 시의 수준을 높였다.[8] 포르투갈에서도 베르길리우스호라티우스고대 로마고대 그리스의 문화가 규범이 되었다.[8] 그는 우수한 문체가 특징인 안토니우 페헤이라, Diogo Bernardes, Andrade Caminha의 뒤를 이었지만, 16세기 시인들(''Quinhentistas'')의 고전적 모방은 자발성을 희생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프레이 Agostinho da Cruz의 시가 그 예외였다. 루이스 드 카몽이스의 천재성은 그가 이탈리아와 민중의 시적 영감의 가장 좋은 요소들을 융합하여 새로운 시를 창조하게 했다. 후대에 모방자들이 나타났지만, 그들의 서사시 대부분은 운문으로 된 연대기 이상의 것이 아니다. 서사시에는 Jerónimo Corte-Real의 세 작품과 Pereira Brandão, Francisco de Andrade, Rodrigues Lobo, Pereira de Castro, Sá de Menezes, Garcia de Mascarenhas의 각각 한 작품이 포함된다.

16세기에 들어서면서, 시인 프란시스쿠 드 사 드 미란다에 의해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학이 도입되어 고전주의 시대를 맞이했다.[8] 셰익스피어 이전에 유럽 최대의 극작가로 인정받았고,[8] 사회 모순을 묘사하고 스페인어로도 창작한 질 비센치나, 고대 루시타니아인부터 바스쿠 다 가마에 이르는 포르투갈인의 역사를 저술한 서사시 『루지아다스』를 남긴 루이스 드 카몽이스가 등장했다.

사 드 미란다는 또한 희곡 개혁에도 힘썼고, 이탈리아 모델을 본떠 "에스트란제이루스(Estrangeiros)"를 썼다. Jorge Ferreira de Vasconcellos는 "에우프로시나(Eufrosina)"에서 최초의 산문극을 만들었지만, 사와 안토니우 페헤이라의 희극은 인위적이고 생명력이 없는 작품이다. 하지만 후자의 비극 "이네스 드 카스트로(Inês de Castro)"는 극적인 면에서는 약하지만, 시의 정신과 형식에서 소포클레스의 영향을 어느 정도 보여준다.

질 비센치 (극작가)가 연극을 창시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포르투갈 연극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그의 44편의 작품 중 14편은 포르투갈어로, 11편은 카스티야어로 쓰여졌고, 나머지는 이중 언어로 된 작품으로, 종교극(autos), 희비극, 그리고 익살극으로 구성되어 있다. 1502년 종교극으로 시작하여, 그중 "영혼의 종교극(Auto da Alma)"과 유명한 "배들(Barcas)" 3부작이 두드러지며, 그는 곧 희극과 풍자적인 요소를 도입하여 휴식을 제공하고 도덕적인 목표를 달성한다. 1536년 경력의 끝 무렵에는 "이네스 페레이라(Inês Pereira)"와 "오류의 숲(Floresta de Enganos)"에서 볼 수 있듯이 순수한 희극에 도달했고, 인물 연구도 발전시켰다. 줄거리는 단순하고, 대사는 활기차며, 가사는 종종 완벽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며, 길 비센테는 위대한 극작가가 되기에는 너무 일찍 등장했지만, 그의 희곡은 모든 계층의 유형, 관습, 언어 및 일상생활을 완벽하게 반영한다. 그를 따른 극작가들은 뛰어난 재능이나 궁정의 후원도 없었고, 고전주의 학파로부터 문화 부족을, 종교 재판소로부터는 저속함을 비난받으면서, 시골의 박람회와 축제에서 하층민을 즐겁게 하는 것으로 전락했다.

포르투갈 목가시는 다른 나라들의 목가시보다 더 자연스럽고 진솔한데, 이는 목가주의 창시자인 Bernardim Ribeiro가 국민적인 세라닐리아(serranilhas)에서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목가시는 감정과 리듬의 조화가 풍부함에도 불구하고 Cristóvão Falcão의 "크리스팔(Crisfal)"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 작품들과 함께 사 드 미란다의 목가시와 격언적인 편지("Cartas")들은 모두 "베르수스 드 아르테 마이오르(versos de arte mayor)"로 쓰여졌다. 국민적인 운율이었던 "메디다 벨랴(medida velha)"(이탈리아의 11음절시(hendecasyllable)과 구분하기 위해 나중에 그렇게 불리게 됨)는 카몽이스가 그의 소위 소품들에서, 그리고 António Gonçalves de Bandarra가 그의 예언들에서, 길 비센테도 사용한 운율이었다.

16세기 최고의 산문 작품은 역사와 탐험에 집중되어 있다. 주앙 드 바로스는 그의 "데카다스(Decadas)"에서, Diogo do Couto가 계속해서 이어나간 이 작품에서, 포르투갈인들이 동양의 땅과 바다를 발견하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이룬 업적을 능숙하게 묘사했다. 인문주의자이자 에라스뮈스의 친구였던 Damião de Góis는 포르투갈의 마누엘 1세 치세에 대해 흔치 않은 독립적인 시각으로 서술했다. 오소리오 주교는 같은 주제를 라틴어로 다루었지만, 그의 흥미로운 "카르타스(Cartas)"는 구어체로 쓰여졌다. 동양을 다룬 다른 작가들로는 Fernão Lopes de Castanheda, António Galvão, Gaspar Correia, Brás de Albuquerque, 프레이 Gaspar da Cruz, 그리고 프레이 João dos Santos 등이 있다. 왕국 연대기는 Francisco de Andrade와 프레이 Bernardo da Cruz가 계속해서 집필했고, Miguel Leitão de Andrade는 흥미로운 "잡저(Miscellanea)"를 편찬했다. 당시의 탐험 문학은 너무 방대하여 상세히 언급하기 어렵다. 페르시아, 시리아, 에티오피아, 플로리다, 브라질이 방문되어 묘사되었고, 루세나 신부는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인의 고전적인 전기를 편찬했다. 전형적인 정복자였던 Fernão Mendes Pinto의 "순례(Peregrination)"는 활기차고 색채와 생명력이 넘치는 문체로 묘사된 놀라운 모험담으로, 모든 이야기책을 합친 것보다 가치가 있다. 한편, 1552년부터 1604년까지의 주목할 만한 난파선 기록인 "트라지쿠-마리티마 역사(História trágico-marítima)"는 간결한 익명의 서술의 좋은 예시를 보여준다. 리스본 유대인 Samuel Usque의 대화도 언급할 만하다. 종교적 주제는 대개 라틴어로 다루어졌지만, 구어체를 사용한 도덕가들 중에는 프레이 Heitor Pinto, 아라에스 주교, 그리고 그의 "예수의 노고(Trabalhos de Jesus)"가 여러 언어로 출판된 프레이 Tomé de Jesus가 있다.

16세기에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영향으로 포르투갈문학의 황금 시대를 맞이했다.

2. 3. 고전주의와 바로크 시대 (17세기 - 18세기)

프란시스쿠 드 사 드 미란다에 의해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학이 도입되면서 포르투갈고전주의 시대를 맞이했다.[8] 포르투갈에서도 베르길리우스호라티우스고대 로마고대 그리스의 문화가 규범이 되었고,[8] 셰익스피어 이전에 유럽 최대의 극작가로 인정받은[8] 질 비센치는 사회 모순을 묘사하고 스페인어로도 창작했으며, 루이스 드 카몽이스는 고대 루시타니아인부터 바스쿠 다 가마에 이르는 포르투갈인의 역사를 저술한 서사시 『루지아다스』를 남겼다. 16세기부터 17세기에 걸쳐 포르투갈이 인도 항로를 개척하고 브라질을 "발견"하는 등 대항해시대를 선도했기 때문에, 이러한 해외 진출을 그린 기행 문학이 발달했다.[9] 고메스 에아네스 드 아주라라의 『서아프리카 항해의 기록』은 포르투갈 항해사에 의한 서아프리카 항해와 노예 무역을 기록했고, 페루 바스 드 카미냐의 『서한』(1500)은 브라질 "발견"을 기록했으며, 주앙 드 바루스의 『아시아사』, 토메 피레스의 『동방 열국기』, 페르낭 멘데스 피뉴투의 『동양 순례기』(1614) 등은 해외 진출의 실증적인 역사 기록이다. 에스파냐 제국의 지배 때문에 『카스티야어 문법』(1492)을 저술하여 스페인어를 체계화한 안토니오 데 네브리하를 본받아, 포르투갈에서도 페르낭 드 올리베이라에 의해 『포르투갈어 문법』(1536)이 저술되어, 포르투갈어의 체계화가 추진되었다.

17세기에 들어서면서 스페인에 병합되었던 포르투갈의 국력이 쇠퇴하자, 그 영향은 문학에도 미쳤다. 이 시기에 『설교집』을 저술하고, 포르투갈령 브라질에서의 흑인 노예 제도와 인디오의 노예화를 비판한 예수회의 안토니오 비에이라 신부가 특필된다. 18세기에 들어서면서 포르투갈의 문화적 정체는 더욱 악화되어, 많은 지식인이 영국이나 프랑스로 이주했다.[10] 폰발 백작의 계몽 전제주의 시대에는 아르카디아 루지타나(포르투갈 작가 협회, 1756)의 창설이나, 코임브라 대학교의 개혁 등 지적인 부흥 계획이 진행되었지만,[10] 포르투갈의 문화 활동 정체는 감출 수 없었다.

2. 4. 낭만주의와 사실주의 (19세기)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이 끝나자 포르투갈에도 낭만주의가 전해졌다. 포르투갈 낭만주의는 1825년 프랑스에 머물던 시인 알메이다 가레트가 『카몽이스』를 저술하며 시작되었다.[11] 가레트는 희곡 『수도사 루이스 드 소우자』 등도 남겼다. 초기 낭만주의에서는 알렉산드레 에르크라누도 활약하여, 『포르투갈의 역사』 등 실증주의 역사학적 역사 저술을 썼다.[11] 가레트와 에르크라누의 뒤를 이어 『파멸의 연애』(1862) 등 북부 풍습을 담은 산문 소설을 쓴 카밀루 카스텔루 브랑쿠와 시인 안토니우 페르난두 데 카스티유 등이 나타났다. 그러나 낭만주의를 이은 보수적인 초낭만주의는 코임브라 대학교 학생들에게 후진성을 비판받았고, 이는 포르투갈의 후진성을 둘러싼 논쟁으로 발전한 1865년 코임브라 문제로 이어졌다.

코임브라 문제에서 초낭만주의의 보수성과 포르투갈의 후진성이 비판받자, 실증주의를 주창하는 "70년대 세대"가 등장했다. "70년대 세대"에서는 시인 안테루 드 쿠엔타르를 필두로, 역시 시인인 게라 훈케이루, 사실주의 소설가 에사 드 케이루스, 역사가 올리베이라 마르티스 등이 활약했다. 특히 에사 드 케이루스는 『아마루 신부의 죄』(1875), 『마이아 가의 사람들』(1888) 등 높은 평가를 받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

2. 5. 20세기와 현대 문학

근대주의의 대표적인 시인페르난두 페소아이며, 소설에서는 아킬리누 히베이루, 신사실주의 작가로는 페레이라 드 카스트루가 있다. 1950년 이후에는 아구스티나 베사 루이스 등의 작가가 주목받고 있다.

1926년 5월 28일 쿠데타와, 이어지는 살라자르이스타두 노부 체제 확립은 문예 운동에 큰 정체를 가져왔다. 그러나, 아킬리누 리베이루, 미겔 토르가, 페르낭두 페소아, 페레이라 드 카스트루, 페르낭두 나모라 등의 인물은 검열과 탄압 속에서도 창작 활동을 계속했다.

현대 문학가로는 『수도원 회상록』, 『흰 어둠』, 『리카르두 레이스의 죽음의 해』의 주제 사라마구나,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 카네이션 혁명 등을 소재로 하는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16], 아구스티나 베사 루이스 등이 활동하고 있으며, 사라마구는 1998년에 포르투갈어권에서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3. 주요 작가 및 작품

프란시스쿠 드 사 드 미란다(Sá de Miranda)는 이탈리아의 운율 형식을 포르투갈에 도입하여 시의 수준을 높였다. 그의 뒤를 이어 António Ferreira), 디우구 베르나르디스(Diogo Bernardes), 안드라지 카미냐(Andrade Caminha) 등이 등장했지만, 16세기 시인들(''Quinhentistas'')의 고전적 모방은 자발성을 희생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아구스치뉴 다 크루스(Agostinho da Cruz)의 시는 예외였다.[1]

루이스 드 카몽이스(Luís de Camões)는 이탈리아와 민중의 시적 영감을 융합하여 새로운 시를 창조했다. 그의 사후 모방자들이 나타났지만, 그들의 서사시 대부분은 운문으로 된 연대기 이상은 아니었다. 서사시에는 제로니무 코르티-레알(Jerónimo Corte-Real)의 세 작품과 페헤이라 브란당(Pereira Brandão), Francisco de Andrade), 로드리게스 로부(Rodrigues Lobo), 페헤이라 드 카스트루(Pereira de Castro), 사 드 메네지스(Sá de Menezes), 가르시아 드 마스카렌야스(Garcia de Mascarenhas)의 각각 한 작품이 포함된다.[1]

사 드 미란다는 희곡 개혁에도 힘썼고, 이탈리아 모델을 본떠 "에스트란제이루스(Estrangeiros)"를 썼다. 조르주 페헤이라 드 바스콩셀루스(Jorge Ferreira de Vasconcellos)는 "에우프로시나(Eufrosina)"에서 최초의 산문극을 만들었지만, 사와 안토니우 페헤이라의 희극은 인위적이었다. 하지만 후자의 비극 "이네스 드 카스트로(Inês de Castro)"는 극적인 면에서는 약하지만, 시의 정신과 형식에서 소포클레스의 영향을 보여준다.[1]

19세기 초, 알메이다 가렛(Almeida Garrett)은 망명 생활 중 영국과 프랑스의 낭만주의와 접촉하여 국내 전통을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서사시 "카몽이스(Camões)"(1825)에서 기존의 작문 규칙을 깨고, 이후 "열매 없는 꽃(Flores sem Fruto)"과 연애시 모음집 "떨어진 잎(Folhas Caídas)"을 발표했다. 그의 산문은 "나의 땅에서의 여행(Viagens na minha terra)"에서 볼 수 있다.[1]

알렉산드레 에르쿨라누(Alexandre Herculano)의 시는 종교적 또는 애국적인 동기를 가지고 있으며 라메네(Lamennais)를 연상시킨다. 가렛과 에르쿨라누가 시작한 운동은 초낭만주의(Ultra-Romantismo)가 되었고, 주앙 드 레무스(João de Lemos)와 소아레스 드 파수스(Soares de Passos)의 시는 제한된 범위의 개인적인 감정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들의 모방자들은 깊이 느끼지 못한 감정을 표현한다. 애국시 "돈 자이메(D. Jayme)"의 저자인 토마스 리베이루(Tomás Ribeiro)는 진솔했지만 형식과 선율을 지나치게 중시했다.[1]

1865년, 안테루 드 켄탈(Antero de Quental)과 테오필루 브라가(Teófilo Braga)가 이끄는 젊은 시인들은 카스티유가 장악한 문학계의 지배에 반기를 들었다. 격렬한 팸플릿 전쟁은 카스티유의 몰락을 알렸고, 시는 폭넓고 현실적인 것이 되었지만, 많은 경우 비기독교적이고 혁명적인 것이 되었다.[1]

켄탈은 신불교적이고 독일의 불가지론적 사상에서 영감을 받은 소네트를 제작했고, 브라가는 실증주의자(Positivist)로서 인류의 서사시인 "시대의 비전(Visão dos Tempos)"을 편찬했다.[1]

게라 훈케이루(Guerra Junqueiro)는 "돈 주앙의 죽음(Morte de D. João)"에서 주로 풍자적이며, "조국(Pátria)"에서는 브라간사 왕가(Bragança (royal house)) 왕들을 비판하고, "단순한 것들(Os Simples)"에서는 자연과 농촌 생활을 해석한다. 고메스 레알(Gomes Leal)은 보들레르(Baudelaire)의 영향을 받은 반기독교적인 작가이다. 주앙 드 데우스(João de Deus)는 이상주의자였고, 종교와 여성에게서 영감을 얻었으며, "꽃밭(Campo de Flores)"의 초기 시들은 부드러운 감정과 관능적인 신비주의로 특징지어진다.[1]

다른 시인으로는 소네트 작가 주앙 페냐(João Penha), 파르나스파 곤살베스 크레스푸(Goncalves Crespo), 상징주의자 우제니우 드 카스트루(Eugénio de Castro)가 있다. 종교와 정치의 급진주의 선전을 위한 시 사용에 대한 반발이 성공했고, 20세기 초 시인인 코레이아 드 올리베이라(Correia de Oliveira)와 로페스 비에이라(Lopes Vieira)는 외부의 목적 없이 자연스러운 가수들이었다. 그들은 안토니우 노브레(António Nobre)의 "소(Só)"에 많은 빚을 지고 있다.[1]

알메이다 가렛(Almeida Garrett)은 영국과 독일의 낭만주의를 배웠지만, 독자적인 노선으로 무대 개혁을 시도했다. 국가적 드라마를 찾고자 했던 그는 포르투갈 역사에서 소재를 선택하여 "질 비센테의 오토(An Auto of Gil Vicente)"로 시작하여 일련의 산문극을 제작했고, 걸작인 "브라더 루이스 드 소우사"로 절정에 달했다. 그의 모방자인 멘데스 레알(Mendes Leal)과 피뉴에이루 샤가스(Pinheiro Chagas)는 극단적 낭만주의의 희생양이 되었지만, 페르난두 칼데이라(Fernando Caldeira)와 제르바시오 로바토(Gervásio Lobato)는 사실적이고 재치 있는 희극을 썼고, 최근에는 D. 주앙 다 카마라(João da Camara)의 지역 작품들이 포르투갈 외부에서도 성공을 거두었다. 현재 로페스 드 멘돈사(Lopes de Mendonça), 줄리우 단타스(Júlio Dantas), 마르셀리누 메스키타(Marcellino Mesquita), 에두아르두 슈발바흐(Eduardo Schwalbach)의 역사극과 사회극과 함께 극예술은 번성하고 있으며, 가렛의 작품은 그의 사후 50년이 지나서도 그 결실을 맺고 있다.[1]

소설은 19세기에 알렉상드르 에르쿨라누(Alexandre Herculano)에 의해 시작되었으며, 월터 스콧(Walter Scott)의 스타일을 따른 역사 로맨스였다. 그 뒤를 이어 ''A Mocidade de D. João V''의 레벨루 다 실바(Rebelo da Silva), 안드라데 코르부(Andrade Corvo) 등이 계승했다. 풍속 소설은 카밀루 카스텔루 브랑쿠(Camilo Castelo Branco)가 ''Amor de Perdição'', ''Novellas do Minho'' 등의 책에서 19세기 초반의 삶을 묘사하며 발전시켰다. 낭만적 이상주의자인 고메스 쿠엘류(Gomes Coelho)(줄리우 디니스(Júlio Dinis))는 ''As Pupilas do Senhor Reitor''로 가장 잘 알려져 있지만, 자세 마리아 드 에사 드 케이로스(José Maria de Eça de Queirós)는 자연주의 학파의 창시자이자 ''Primo Basílio'', ''Correspondência de Fradique Mendes'', ''A Cidade e as Serras''의 저자였다. 그의 등장인물들은 살아 숨쉬고 그의 많은 묘사적이고 풍자적인 구절들은 고전이 되었다. 그보다 덜 유명한 소설가들로는 피뉴에이루 샤가스(Pinheiro Chagas), 아르날두 가마 루이스 드 마갈량이스(Arnaldo Gama Luís de Magalhães), 테이셰이라 드 케이로스(Teixeira de Queirós), 말레이루 디아스(Malheiro Dias) 등이 있다.[1]

루이스 바스 데 카몽이스(1524년 ~ 1580년 6월 10일)는 서사시 오 루지아다스(Os Lusíadas)의 저자이다.[2]

에사 드 케이루스(1845–1900)는 포르투갈의 소설가이다. 포르투 근처 포부아 드 바르짐에서 태어나 영사로서 세계 여러 곳을 여행했다. 1888년 파리 영사관에 배치되어 1900년 8월 16일 사망할 때까지 그곳에 머물렀다. 그가 파리에서 집필한 책들은 포르투갈 사회를 비판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마이아스(Os Maias)』(1878), 『아마로 신부의 죄(O Crime do Padre Amaro)』(1876) 그리고 『바질리오 사촌(O Primo Bazilio)』(1878)이 있다. "포르투갈의 졸라"라는 별명을 가진 에사는 포르투갈 자연주의의 창시자였다.[1]

페르난두 페소아(1888–1935)는 포르투갈의 시인이자 산문 작가였다. 그는 이명을 사용하여 시인에게 일반적으로 허용되지 않는 다양한 스타일로 글을 쓸 수 있었다. 그의 가장 유명한 작품 중 하나는 서사시적인 서정시 "Mensagem"(메시지)이다.[1]

메시지는 세바스티아니즘과 알카세르 키비르 전투에서 포르투갈의 세바스티앙의 죽음 이후에 생겨난 포르투갈의 예언을 논한다. 포르투갈 사람들은 안개 낀 날 죽은 왕의 귀환, 즉 포르투갈을 제5제국을 통치하게 할 "국가적 자아"(''Eu Nacional'')의 귀환을 기다린다.[1]

안테루 드 켄탈(Antero de Quental)은 코임브라 대학교(University of Coimbra)에서 공부했으며, 그의 재능과 불안정함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주로 소네트에 전념했다. 한 권의 시집을 출판한 후, 그는 젊은이들의 반란에 참여하여 안토니우 펠리시아누 드 카스티유(António Feliciano de Castilho)를 그 자리에서 끌어내렸다. 그 후 그는 여행을 떠났고, 귀국 후에는 정치적, 사회주의적 활동에 참여했으며, 그의 최근 시 작품에 나타나는 온화한 염세주의에 이르게 되었다. 그의 우울증은 척추 질환으로 악화되었고, 수년간 은둔 생활을 한 후 고향 섬에서 자살했다.[1]

알렉산드르 마누엘 바이아 드 카스트루 오닐(Alexandre Manuel Vahía de Castro O’Neill) (1924년 12월 19일 – 1986년 8월 21일)은 아일랜드계 포르투갈 시인이었다.[1]

1948년, 오닐은 마리우 세자리니 드 바스콩셀루스(Mário Cesariny de Vasconcelos), 조제-아우구스투 프랑사(José-Augusto França) 등과 함께 리스본 초현실주의 운동의 창립 멤버 중 한 명이었다. 그의 작품은 초현실주의에서 벗어나 독창적인 스타일을 형성했으며, 그의 시에는 조국에 대한 애증이 반영되어 있다.[1]

호세 사라마구(1922–2010)는 포르투갈의 소설가로, 「수도원의 기념비」(Memorial do Convento)와 같은 작품들을 집필했으며, 1998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1]

포르투갈어로 쓰인 가장 오래된 문헌은 『아퐁수 2세의 유언장』(1214)으로 알려져 왔지만, 최근 리스본 대학교의 아나 마리아 마르티스에 의해 『보증인에 관한 각서』(1175)라는 더욱 오래된 문헌이 발견되었다.[3] 포르투갈 문학의 시작은 파이우 소아레스 드 타베이루가 읊은 12세기 말의 연애 서사시로 거슬러 올라간다.[4] 13세기에 들어서면서 남프랑스프로방스에 기원을 둔 트루바두르의 서사시가 갈리시아-포르투갈어로 기록되기 시작하여,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여성의 심정을 노래한 칸티가스 데 아미구, 사랑을 노래한 칸티가스 데 아모르, 사회 풍자를 노래한 칸티가스 데 에스칼니우 이 마르디제르라는 세 가지 장르로 세분되었다. 특히, 12세기 말부터 13세기에 걸쳐 재위한 국왕 디니슈 1세는 포르투갈어의 보급에 힘썼고, 칸티가스 데 아모르 작품을 남겼다.[4]

16세기에 들어서면서, 시인 프랑시스쿠 드 사 드 미란다에 의해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학이 도입되어 고전주의 시대를 맞이했다.[8] 베르길리우스호라티우스고대 로마고대 그리스의 문화가 규범이 되었고,[8] 셰익스피어 이전에 유럽 최대의 극작가로 인정받았고,[8] 사회 모순을 묘사하고 스페인어로도 창작한 질 비센치나, 고대 루시타니아인부터 바스쿠 다 가마에 이르는 포르투갈인의 역사를 저술한 서사시 『루지아다스』를 남긴 루이스 드 카몽이스가 등장했다.[8]

19세기에 들어서면서 나폴레옹 전쟁이 종결되자, 포르투갈에도 낭만주의가 전해졌다. 포르투갈에서의 낭만주의는 1825년 시인 알메이다 가레트가 체류 중이던 프랑스에서 『카몽이스』를 저술한 것에 의해 도입되었다. 가레트는 그 외에도 희곡 『수도사 루이스 드 소우자』 등을 남겼다.[10]

코임브라 문제에서 초낭만주의자의 보수성과 포르투갈의 후진성이 비판되자, 이러한 흐름은 "70년대 세대"라고 불리는 실증주의를 주창하는 그룹을 낳았다. "70년대 세대"에서는, 주창자가 된 시인 안테루 드 쿠엔타르을 필두로, 역시 시인인 게라 훈케이루, 사실주의 소설가 에사 드 케이루스, 역사가 올리베이라 마르티스 등이 활약했다. 특히 에사 드 케이루스는 『아마루 신부의 죄』(1875), 『마이아 가의 사람들』(1888) 등 높이 평가되는 작품을 많이 남겼다.[11] 1890년대에 들어서면서 사실주의는 쇠퇴하고, 우제니우 드 카스트루의 『오아리스투스』(1890)에서 상징주의가 주창되었다.[11]

1910년 공화혁명에 의해 제1공화정이 성립되자, 1912년에 자이메 코르테잔과 라울 프루엔사에 의해 포르투갈의 재생을 목표로 하는 포르투갈 르네상스 운동이 시작되었고, 같은 해에 페르낭두 페소아에 의해 포르투에서 기관지 『아기아』가 창간되어, 문학, 미술, 음악 등 문화 전반에 많은 인재를 배출했다. 특히, 이 운동에서 나타난 테이셰이라 드 파스쿠아이슈는 강한 민족주의에서 향수를 의미하는 "사우다지"가 포르투갈 정신을 표현하는 말이라는 것을 찾아내어, 이 사우다지즘에 포르투갈의 아이덴티티를 발견했다. 『포르투갈의 바다』 등에서 20세기의 카몽이스[13]라고도 평가받은 페르낭두 페소아는 사우다지즘에서 태어났다.[11]

1926년 5월 28일 쿠데타와, 이어지는 살라자르에 의한 에스타두 노부 체제의 확립은 문예 운동에도 큰 정체를 강요했다. 그러나, 아킬리누 리베이루나 미겔 토르가, 페르낭두 페소아, 페레이라 드 카스트루, 페르낭두 나모라 등의 인물은 검열과 탄압 속에서도 창작 활동을 계속했다.[11]

현대의 문학가로는, 『수도원 회상록』, 『흰 어둠』, 『리카르두 레이스의 죽음의 해』의 주제 사라마구나, 포르투갈의 식민지 전쟁, 카네이션 혁명 등을 소재로 하는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16], 아구스티나 베사 루이스 등이 활약하고 있으며, 사라마구는 1998년에 포르투갈어권에서 처음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11]

참조

[1] 웹사이트 .:: Cantigas Medievais Galego-Portuguesas ::. https://cantigas.fcs[...]
[2] 웹사이트 The Lusiads http://www.wdl.org/e[...] 1800-1882
[3] 서적
[4] 서적
[5] 서적
[6] 서적
[7] 서적
[8] 서적
[9] 웹사이트 The Lusiads http://www.wdl.org/e[...] 1800-1882
[10] 서적
[11] 서적
[12] 서적
[13] 서적
[14] 서적
[15] 서적
[16] 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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