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폴리클레이토스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폴리클레이토스는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로, 기원전 5세기에 활동하며 고전 시대 양식을 창조하는 데 기여했다. 그는 '카논'이라는 미학 이론을 제시하고, 이를 자신의 대표작인 '도리포로스'(창을 든 사람)를 통해 구현하여 이상적인 인체 비례를 탐구했다. 폴리클레이토스는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통해 인체의 자연스러움을 표현했으며, 그의 작품은 로마 시대에 널리 복제되어 그의 예술적 영향력을 보여준다. 그는 페이디아스와 함께 조각가 학교를 세웠으며, 스코파스, 리시포스와 같은 후계자들을 배출했다. 그의 아들인 소 폴리클레이토스 역시 조각가로 활동했으며, 에피다우로스 극장을 설계한 건축가로서도 명성을 얻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 리시포스
    리시포스는 기원전 390년경 시키온에서 태어난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로,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개인 조각가로 활동하며 8등신 인체 비례를 확립하고 헬레니즘 시대 조각에 영향을 미쳤다.
  • 고대 그리스의 조각가 - 스코파스
    스코파스는 기원전 4세기 파로스 섬 출신의 고대 그리스 조각가이자 건축가로, 할리카르나소스 영묘 조각 참여와 테게아의 아테나 알레아 신전 건설을 이끌었으며, 정사각형 머리와 깊은 눈, 벌어진 입술의 조각상으로 강렬한 감정 표현을 추구했고, 그의 업적을 기려 달에는 그의 이름을 딴 스코파스 분화구가 있다.
  •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사람 - 소크라테스
    소크라테스는 고대 아테네의 철학자로 서양 철학의 기틀을 마련한 인물 중 한 명이며, 문답법을 통해 진리를 추구하고 '너 자신을 알라'라는 경구를 중시하다 아테네 청년들을 타락시켰다는 죄목으로 사형을 받고 철학적 순교로 여겨지는 죽음을 맞이했다.
  •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사람 - 핀다로스
    고대 그리스 서정 시인이자 보이오티아 키노스케팔라이 출신인 핀다로스는 현존하는 작품이 많은 유일한 보이오티아 시인으로, 그의 작품은 고대 그리스의 신화, 종교, 가치관, 사회상을 보여주며, 특히 《승리 기념시》는 4대 범그리스 경기 승리자들을 찬양하는 대표작이다.
폴리클레이토스
기본 정보
도리포로스의 로마 시대 모작
도리포로스의 로마 시대 모작
다른 이름폴리클레이토스 (로마자 표기: Polykleitos)
국적고대 그리스
활동 시기기원전 5세기
분야조각
활동 지역아르고스
영향 받은 인물하기아다스
영향 준 인물피디아스, 미론, 크레실라스

2. 생애

폴리클레이토스는 아르고스 학파로, 동시대의 페이디아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그는 의도적으로 조각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창조했는데, '카논'이라는 논문을 집필하고, 그 미학 이론을 시험하기 위해 남성 누드상을 만들어 미술가들로부터 '폴리클레이토스의 카논'이라고 불렸다.[20] 이 청동상은 현존하지 않지만, 고대 저술가들의 책에 따르면, 그 주요 이론은 "시메트리아(symmetria)", 히포크라테스가 말하는 "이소노미아(isonomia, 균형)", "리토모스(rhythmos)"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는 "완전성은 다수의 요소(para mikron)의 집합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21]

조각은 정의 가능한 부분으로 명확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것은 이상적인 수학적 비율 및 균형 체계에서 다른 부분에 대해 관계해야 한다는 폴리클레이토스의 말에서, 피타고라스가 음계의 완전한 간격에 대해 세운 비율(1:2(옥타브), 2:3(완전 5도), 3:4(완전 4도))의 용어를 사용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폴리클레이토스의 주조 원형이 점토로 만들어졌다는 것은 플루타르코스의 '모랄리아'(:en:Moralia)에서 "작업은 손톱에 점토가 쌓이면 가장 힘들다"는 언급을 통해 알 수 있다.[22]

폴리클레이토스와 페이디아스는 후진을 위한 학교(유파)를 가진 최초의 세대 그리스 조각가였다. 폴리클레이토스의 학교는 적어도 3세대에 걸쳐 이어졌지만, 가장 화려했던 시기는 기원전 3세기 말부터 기원전 2세기 초까지였다. 로마의 저술가 대 플리니우스와 파우사니아스는 폴리클레이토스 학교에 있던 약 20명의 조각가 이름을 언급하며, 그들이 폴리클레이토스가 설정한 균형의 이론과 정의를 엄수했다고 적고 있다. 스코파스리시포스는 폴리클레이토스의 후계자로서 가장 유명하다.

그의 아들 폴리클레이토스(:en:Polykleitos the Younger)는 기원전 4세기에 활동했으며, 운동선수 조각을 만들었지만, 건축가로서 에피다우로스의 극장을 설계하여 명성을 얻었다.

2. 1. 이름

그의 그리스어 이름은 전통적으로 라틴어화되어 'Polycletus'로 표기되었지만, 'Polycleitus' (Πολύκλειτος|폴뤼클레이토스grc, "매우 유명한")로 음역되기도 하며, 고대 그리스어에서 현대 그리스어로의 전환 과정에서 요타시즘으로 인해 'Polyklitos' 또는 'Polyclitus'로 표기되기도 한다. 대 플리니우스와 키케로를 포함한 라틴 작가들은 그를 '''시키오니우스''' (lit. "시키온 출신", 일반적으로 "시키온의"로 번역)라고 불렀으며, 플라톤파우사니아스 같은 다른 사람들은 Ἀργεῖος (lit. "아르고스 출신", "아르고스의"로 번역)라고 불렀다. 그는 주요 건축가이지만 조각가로서는 덜 알려진 그의 아들과 구별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 때때로 원로라고 불린다.[1]

2. 2. 초기 생애와 교육

그의 그리스어 이름은 전통적으로 라틴어화되어 ''Polycletus''로 표기되었지만, ''Polycleitus'' (Πολύκλειτος|폴뤼클레이토스grc, "매우 유명한")로 음역되기도 하며, 고대 그리스어에서 현대 그리스어로의 전환 과정에서 요타시즘으로 인해 ''Polyklitos'' 또는 ''Polyclitus''로 표기되기도 한다. 대 플리니우스와 키케로를 포함한 라틴 작가들에 의해 '''시키오니우스''' (lit. "시키온 출신", 일반적으로 "시키온의"로 번역)라고 불렸으며, 플라톤파우사니아스와 같은 다른 사람들에 의해 Ἀργεῖος (lit. "아르고스 출신", "아르고스의"로 번역)라고 불렸다. 그는 주요 건축가이지만 조각가로서는 덜 알려진 그의 아들과 구별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경우 때때로 원로라고 불린다.

폴리클레이토스는 라틴어로 글을 쓴 일부 작가들에 의해 "시키온 출신"으로 불리는데, 현대 학자들은 이들이 플리니우스의 오류에 의존하여, 피디아스의 제자였던 시키온 출신의 다른 덜 유명한 조각가와 아르고스 출신의 폴리클레이토스를 혼동했다고 본다. 파우사니아스는 그들이 동일 인물이 아니며 폴리클레이토스는 아르고스 출신이라고 단호하게 주장하며, 그는 그곳의 도시 국가에서 초기 훈련을 받았음에 틀림없다.[1] 그는 피디아스의 동시대 사람이었고 (아마도 아겔라다스에게서도 사사받았을 것이다).

3. 작품

폴리클레이토스는 청동 주조로 된 신상과 운동선수 조각상을 많이 만들었다. 그중에는 도리포로스(창을 든 사람), 디아두메노스(머리띠를 매는 청년), 원반 던지는 사람(Discophoros)이 대표적이다.[4] 대 플리니우스에 따르면, 과거 리시마키아에 있던 헤르메스상도 폴리클레이토스의 작품이라고 한다.[4]

폴리클레이토스 '디아두메노스'의 로마 대리석 복제.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 소장.


그의 아마존 조각상은 에페소스에서 칭송받았으며, 금과 상아로 만든 거대한 헤라상은 아르고스의 헤라 신전에 있었는데,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과 비교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 폴리클레이토스의 아스트라갈리존테스(공기놀이하는 소년들)는 티투스 황제가 소유했으며 그의 아트리움에 명예롭게 배치되었다.[5]

폴리클레이토스는 에페소스아르테미스 신전을 위해 부상당한 아마존을 만드는 기원전 5세기 경쟁에 참여한 5명의 주요 조각가 중 한 명이었으며, 이와 관련된 대리석 복제품들이 남아있다.[6] 폴리클레이토스가 만든 아마존상은 페이디아스나 크레실라스가 만든 아마존상보다 뛰어나다고 여겨졌다.

3. 1. 도리포로스 (창을 든 사람)

폴리클레이토스는 '도리포로스'(창을 든 사람)라는 유명한 남성 누드 청동상을 만들었는데, 이는 남성 신체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전형적인 그리스 조각상이다. 폴리클레이토스는 이 조각상에서 인간 형상의 이상적인 비율을 포착하려 했으며, 이는 '카논' 또는 '규칙'으로 알려졌다.[7] 그는 수학적 비율을 기반으로 이 시스템을 만들었다. 비록 폴리클레이토스의 공식에 대한 정확한 세부 사항은 알 수 없지만, 도리포로스에서 나타난 최종 결과는 그리스인들이 '대칭'이라고 부르는 것의 완벽한 표현이었다.[7]

이 조각상은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보여주는데, 몸은 오른발에 가장 많이 기대고 있으며, 이상화된 신체를 가지고 있어 자연주의는 덜하다. 왼손에는 한때 창이 있었지만, 지금은 분실되었다. 몸의 자세는 그가 전사이자 영웅임을 보여준다.[7] 실제로, 어떤 사람들은 이 묘사된 인물이 트로이 전쟁으로 가는 아킬레우스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는 아킬레우스 화가가 그린 꽃병에서 방패를 든 아킬레우스의 비슷한 묘사가 거의 같은 시기에 보이기 때문이다.[8]

도리포로스는 로마 시대의 수많은 복제품 형태로 남아있다.

3. 2. 디아두메노스 (머리띠를 매는 청년)

디아두메노스는 '머리띠를 매는 청년'이라고도 불리는 폴리클레이토스의 조각상으로, 여러 복제품으로 알려져 있다. 머리띠를 매는 소년의 모습은 운동 경기에서의 승리를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4] 이 조각상은 기원전 430년경에 제작된 그리스 청동 원본을 1세기 A.D.에 로마 시대에 복제한 것이다.[4] 폴리클레이토스는 운동선수임을 보여주기 위해 근육 윤곽을 뚜렷하게 조각했다. 디아두메노스의 가슴과 골반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져 몸통에 리듬감 있는 대비를 이루며 생동감 넘치는 인상을 준다. 서 있는 자세와 걷는 자세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발의 위치는 잠재적인 움직임을 느끼게 한다. 폴리클레이토스에게 귀속되는 거의 모든 작품에서 발견되는 이 엄격하게 계산된 자세는 그리스-로마 시대와 이후 서유럽 미술에서 표준적인 공식으로 사용되었다.

3. 3. 원반 던지는 사람 (Discophoros)

3. 4. 헤르메스

플리니우스에 따르면 폴리클레이토스에게 귀속된 조각상으로 한때 리시마키아에 놓여 있던 헤르메스가 있다고 한다.[4]

3. 5. 아마존

폴리클레이토스는 에페소스에서 칭송받은 아마존 조각상을 제작했다. 그는 아르테미스 신전을 위해 부상당한 아마존을 만드는 기원전 5세기 경쟁에 참여한 5명의 주요 조각가 중 한 명이었으며, 이 경쟁과 관련된 대리석 복제품들이 남아있다.[6] 폴리클레이토스가 에페소스를 위해 만든 아마존상은 페이디아스나 크레실라스가 만든 아마존상보다 뛰어나다고 여겨졌다.

3. 6. 아르고스의 헤라 신전의 헤라상

폴리클레이토스가 제작한 금과 상아로 만든 거대한 헤라상은 아르고스의 헤라 신전에 있었으며, 올림피아의 제우스 상과 비견될 정도로 호평을 받았다.[4] [19]

3. 7. 아스트라갈리존테스 (공기놀이하는 소년들)

폴리클레이토스의 ''아스트라갈리존테스''(공기놀이하는 소년들)는 티투스 황제가 소유했으며 그의 아트리움에 명예롭게 배치되었다.[5]

4. 양식

폴리클레이토스는 페이디아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 고전 양식을 창조했다. 그의 원본 작품은 남아 있지 않지만, 문헌 자료와 로마 시대 대리석 복제품을 통해 그의 작품을 재구성할 수 있다.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실으면서 신체의 균형이 이동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포즈인 콘트라포스토는 그의 명성의 원천이었다.[9]

아르고스 학파였던 폴리클레이토스는 동시대의 페이디아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에페소스를 위해 만든 아마존상은 페이디아스나 크레실라스가 만든 아마존상보다 뛰어나다고 여겨졌다. 또한 아르고스의 헤라 신전(헤라이온, Argive Heraion, :en:Heraion of Argos)의 상아로 만들어진 폴리클레이토스의 거대한 헤라 숭배상은 페이디아스의 제우스상과 동격으로 여겨졌다.

폴리클레이토스는 '카논'이라는 논문을 집필하고, 그 미학 이론을 시험하기 위해 남성 누드상을 만들어 미술가들로부터 '폴리클레이토스의 카논'이라고 불렸다.[20] 플루타르코스의 ''모랄리아''(:en:Moralia)에서 "작업은 손톱에 점토가 쌓이면 가장 힘들다"는 언급을 통해[22], 폴리클레이토스의 주조 원형이 점토로 만들어졌다는 정교한 세부 묘사를 알 수 있다.

폴리클레이토스는 청동 주조로 된 신상과 운동선수 조각상을 많이 만들었다. 대표작으로는 '도리포로스', '디스코포로스'(:en:Discophoros), '디아두메노스'(:en:Diadumenos)가 있다. 대 플리니우스에 따르면, 과거 리시마키아(:en:Lysimachia (Thrace))에 있던 헤르메스상도 폴리클레이토스의 작품이라고 한다. 폴리클레이토스의 '공기놀이를 하는 소년들'(Astragalizontes)은 황제 티투스가 빼앗아 자신의 아 트리움 윗자리에 두었다.[19]

4. 1. 카논과 콘트라포스토

폴리클레이토스는 페이디아스와 함께 고대 그리스 고전 양식을 창조한 조각가이다. 그의 원본 작품은 남아 있지 않지만, 문헌 자료와 로마 시대 대리석 복제품을 통해 그의 작품을 재구성할 수 있다. 특히, 한쪽 다리에 체중을 실으면서 신체의 균형이 이동하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포즈인 콘트라포스토는 그의 명성을 가져다주었다.

폴리클레이토스는 조각에 대한 새로운 접근 방식을 창조했다. 그는 '카논'이라는 논문을 집필하고, 자신의 미학 이론을 시험하기 위해 남성 누드상을 만들었다. 이 청동상은 현존하지 않지만, 고대 저술가들의 기록에 따르면, 그 주요 이론은 "시메트리아(symmetria)", 히포크라테스가 말하는 "이소노미아(isonomia, 균형)", "리토모스(rhythmos)"라는 말로 표현된다. 그는 "완전성은 다수의 요소(para mikron)의 집합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21] 조각은 정의 가능한 부분으로 명확하게 구성되어 있으며, 모든 것은 이상적인 수학적 비율 및 균형 체계에서 다른 부분과 관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폴리클레이토스의 대표작 중 하나인 '도리포로스'는 '창을 든 자'라고도 불리며, 남성 신체의 아름다움을 묘사한 전형적인 그리스 조각상이다. 폴리클레이토스는 이 조각상에서 인간 형상의 이상적인 비율을 포착하려 했으며, 이는 카논 또는 '규칙'으로 알려졌다.[7] 그는 수학적 비율을 기반으로 이 시스템을 만들었다. 비록 폴리클레이토스의 공식에 대한 정확한 세부 사항은 알지 못하지만, 도리포로스에서 나타난 최종 결과는 그리스인들이 '대칭'이라고 부르는 것의 완벽한 표현이었다.[7] 이 조각상은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보여주며, 몸은 오른발에 가장 많이 기대고 있다. 도리포로스는 이상화된 신체를 가지고 있으며, 왼손에는 한때 창이 있었지만, 현재는 분실되었다. 몸의 자세는 그가 전사이자 영웅임을 보여준다.[7]

디아두메노스 조각상은 '머리띠를 매는 청년'이라고도 하며, 운동 경기에서 승리한 것을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조각상은 기원전 430년경에 제작된 그리스 청동 원본을 1세기 A.D.에 로마 시대에 복제한 것이다.[4] 폴리클레이토스는 운동선수임을 보여주기 위해 근육의 윤곽을 뚜렷하게 조각했다. 디아두메노스의 가슴과 골반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져 몸통에 리듬감 있는 대비를 주며 생동감 넘치는 인상을 준다. 서 있는 자세와 걷는 자세 사이에서 균형을 잡은 발의 위치는 잠재적인 움직임을 느끼게 한다.

폴리클레이토스와 페이디아스는 후진을 위한 학교(유파)를 가진 최초의 세대 그리스 조각가였다. 폴리클레이토스의 학교는 적어도 3세대에 걸쳐 이어졌지만, 가장 화려했던 시기는 기원전 3세기 말부터 기원전 2세기 초까지였다. 로마의 저술가 대 플리니우스와 파우사니아스는 폴리클레이토스 학교에 있던 약 20명의 조각가 이름을 언급하며, 그들이 폴리클레이토스가 설정한 균형의 이론과 정의를 엄수했다고 적고 있다. 폴리클레이토스의 후계자로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스코파스리시포스이다.

아들인 폴리클레이토스는 기원전 4세기에 활동했으며, 운동선수 조각을 만들었지만, 명성을 얻은 것은 오히려 건축가로서였다. 에피다우로스의 극장을 설계한 사람이 바로 그이다.

4. 2. 이론적 재구성

리스 카펜터의 이 주제에 대한 관찰은 여전히 유효하다.[15] "그러나 지금까지 아무도 눈에 보이는 구현체로부터 쓰여진 카논의 공식을 추출하고, 우리가 알고 있는 그것이 포함하는 측정 가능한 숫자를 컴파일하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 고고학적 학문의 진기함 중 하나로 간주되어야 한다."

1975년 논문에서 미술사학자 리처드 토빈(Richard Tobin)은 카논을 재구성하려는 이전의 연구들이 선형 비율보다는 면적 비례를 기반으로 한다는 잘못된 가정을 했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카논이 새끼손가락의 가장 바깥 부분("말단 손가락뼈")의 길이에서 시작된다고 추측했다.

이 변의 정사각형의 대각선 길이(수학적으로 , 약 1.4142)는 중간 손가락뼈의 길이를 제공한다. 이 과정을 반복하면 근위 손가락뼈의 길이가 얻어지고, 다시 반복하면 중수골과 손목뼈의 길이, 즉 손가락 관절에서 자뼈 머리까지의 거리가 얻어진다. 다음으로, 새끼손가락에서 손목까지의 손의 길이와 같은 변을 가진 정사각형은 팔뚝의 길이와 같은 대각선을 산출한다. 이 "정사각형의 대각선" 과정은 인체 남성의 많은 다른 주요 기준 거리의 상대적 비율을 제공한다. 이 과정은 제곱근 측정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예술가는 긴 끈을 가져가 앞의 길이에 그려진 정사각형의 대각선과 같은 거리에 의해 서로 분리된 매듭을 만들 수 있다. 신체 자체에서 이 과정이 반복되지만 기하학적 진행은 (손/팔에서처럼 가산적으로가 아니라) 머리 꼭대기에서 취해지고 다시 취해진다. 머리 꼭대기에서 턱까지는 팔뚝과 같은 크기이고, 머리 꼭대기에서 쇄골까지는 위팔과 같다. 그 정사각형의 대각선은 머리 꼭대기에서 젖꼭지 선까지의 거리를 산출한다. 토빈은 자신의 이론적 모델을 나폴리 국립 고고학 박물관에 있는 ''도리포로스''의 로마 복사본과 비교하여 자신의 계산을 검증했다.

5. 영향

폴리클레이토스는 피디아스와 함께 고전 시대의 조각 양식을 확립했다. 비록 그의 원작은 남아있지 않지만, 로마 시대의 대리석 복제품과 문헌 기록을 통해 그가 추구했던 조각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폴리클레이토스 조각의 핵심은 콘트라포스토라고 불리는, 무게 중심을 이동시켜 균형을 잡는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자세에 있다.

폴리클레이토스는 조각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의도적으로 창안했다. 그는 '카논'이라는 논문을 쓰고, 자신의 미학 이론을 검증하기 위해 남성 누드상을 제작했는데, 미술가들은 이를 '폴리클레이토스의 카논'이라 불렀다.[20] 이 청동상은 현재 전해지지 않지만, 고대 문헌에 따르면 "시메트리아(symmetria)", 히포크라테스가 언급한 "이소노미아(isonomia, 균형)", "리토모스(rhythmos)" 등의 개념을 통해 조각의 완전성을 설명했다. 그는 "완전성은 다수의 요소(para mikron)의 집합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하며,[21] 조각을 정의 가능한 부분들로 구성하고, 각 부분이 이상적인 수학적 비율과 균형 체계 속에서 서로 관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5. 1. 폴리클레이토스 학파

폴리클레이토스와 피디아스는 추종자들을 모은 최초의 그리스 조각가들 중 한 명이었다. 폴리클레이토스의 학파는 최소 3세대 동안 지속되었지만, 기원전 4세기 말과 3세기 초에 가장 활발했던 것으로 보인다. 로마 작가 플리니우스와 파우사니아스는 폴리클레이토스의 균형과 정의의 원칙을 따르는 약 20명의 조각가들의 이름을 언급했다. 스코파스리시포스는 아테노도로스와 아소포도로스와 같은 다른 덜 알려진 조각가들과 함께 폴리클레이토스의 가장 유명한 후계자들 중 하나이다.[22]

폴리클레이토스(:en:Polykleitos the Younger)는 폴리클레이토스의 아들로, 기원전 4세기에 활동했으며, 운동선수 조각을 만들었지만, 명성을 얻은 것은 오히려 건축가로서였다. 에피다우로스의 극장을 설계한 사람이 바로 그이다.

참조

[1] Encyclopedia Polyclitus https://www.britanni[...] 2023-06-25
[2] 서적 One Hundred Greek Sculptors: Their Careers and Extant Works Yale University Press
[3] 문서 Natural Histories
[4] 웹사이트 Statue of Diadoumenos (youth tying a fillet around his head) http://www.metmuseum[...] Metropolitan Museum of Art 2015-06-24
[5] 문서 Naturalis Historia
[6] 웹사이트 Statue of a wounded Amazon http://www.metmuseum[...] Metropolitan Museum of Art 2015-06-24
[7] 웹사이트 Art: Doryphoros (Canon) https://www.learner.[...] Annenberg Learner 2015-09-27
[8] 웹사이트 Greek vases 800-300 BC: key pieces https://www.beazley.[...] 2021-05-20
[9] 문서 Quaest. conv. II 3, 2, 636B-C
[10] 웹사이트 Art: Doryphoros (Canon) https://www.learner.[...] Annenberg Learner 2020-09-15
[11] 문서 Mechanicus
[12] 문서 De Temperamentis
[13] 서적 Gardner's Art Through the Ages https://archive.org/[...] Thomson/Wadsworth 1991
[14] 문서
[15] 서적 Greek Sculpture : a critical review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6] 간행물 Tobin appointed director of UNM's Harwood Museum of Art https://news.unm.edu[...] 2016-04-22
[17] 문서
[18] 문서 Polykleitos of Argos
[19] 문서 博物誌
[20] 문서
[21] 문서 Mechanicus
[22] 문서 Moralia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