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적 자유 작전
1. 개요
항구적 자유 작전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주도한 대테러 작전으로, 아프가니스탄, 필리핀, 아프리카의 뿔 등에서 알 카에다와 탈레반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다. 원래 작전명은 "무한 정의 작전"이었으나, 이슬람 세계의 반발로 인해 변경되었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키고 임시 정부를 수립했지만, 탈레반의 저항과 장기화된 전쟁으로 인해 논란이 일었다. 한국은 의료 지원, 공병 지원, 지방 재건 활동 등을 통해 작전에 참여했다. 작전은 2014년 12월 31일에 종료되었으며, 2021년 미군 철수 이후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탈레반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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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칭 | Operation Enduring Freedom (영어) |
|---|---|
| 관련 | 테러와의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년~2021년) |
| 기간 | 2001년 10월 7일 ~ 2014년 12월 28일 (아프가니스탄) |
| 장소 | 아프가니스탄 필리핀 소말리아 조지아 (나라) 키르기스스탄 사하라 사막 |
| 연합군 | ISAF 북부 동맹 (과거) 알바니아 핀란드 덴마크 미국 영국 프랑스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독일 벨기에 노르웨이 이탈리아 조지아 스페인 포르투갈 폴란드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스웨덴 체코 뉴질랜드 네덜란드 우크라이나 튀르키예 우즈베키스탄 아랍에미리트 |
|---|---|
| 적군 | 탈레반 알카에다 |
| 연합군 | 필리핀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인도네시아 |
|---|---|
| 적군 | 아부 사야프 (2001년부터) 제마 이슬라미야 (2024년까지) 모로 이슬람 해방 전선 (2012년까지) |
| 연합군 | NATO 유럽 연합 SADC 오스트레일리아 아제르바이잔 벨라루스 캐나다 지부티 에티오피아 프랑스 조지아 독일 그리스 인도 인도네시아 이탈리아 일본 카자흐스탄 케냐 대한민국 키르기스스탄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노르웨이 파키스탄 러시아 세이셸 싱가포르 남아프리카 공화국 소말리아 스페인 타지키스탄 태국 튀르키예 투르크메니스탄 우간다 우크라이나 우즈베키스탄 영국 미국 |
|---|---|
| 적군 | 알샤바브 (2006년부터) 히즈불 이슬람 (2014년까지) |
| 연합군 | 조지아 미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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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군 | 대한민국 키르기스스탄 러시아 미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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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군 | 이슬람 마그레브 알카에다 자마아트 나스르 알이슬람 왈무슬리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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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합군 |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 2001–2009)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2009–2014) 토미 프랭크스 (미국 장군, 2001–2003) 존 아비자이드 (미국 장군, 2003–2007) 윌리엄 J. 팰런 (미국 해군 제독, 2007–2008) 마틴 뎀프시 (미국 장군, 2008–2015) 그레이엄 스터럽 (영국 공군 원수, 2003–2011) 데이비드 페트레이어스 (미국 장군, 2008–2010) |
|---|---|
| 적군 | 무함마드 오마르 (탈레반 지도자, 사망) 오사마 빈 라덴 (알카에다 지도자, 사망) 아이만 알-자와히리 (알카에다 지도자, 사망) 카다피 잔잘라니 (아부 사야프 지도자, 사망) 리두안 이사무딘 (제마 이슬라미야 지도자, 포로) |
| 아프가니스탄 | 45,000명 이상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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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 2016년 1월 기준 2,380명 사망 |
| 영국 | 456명 사망 |
| 캐나다 | 158명 사망 |
| 프랑스 | 90명 사망 |
| 독일 | 57명 사망 |
| 이탈리아 | 53명 사망 |
| 덴마크 | 43명 사망 |
| 오스트레일리아 | 41명 사망 |
| 폴란드 | 40명 사망 |
| 스페인 | 34명 사망 |
| 조지아 | 32명 사망 |
| 기타 | 200명 이상 사망 |
| 아프가니스탄 | 72,000명 이상 사망 |
|---|---|
| 필리핀 | 328명 이상 사망 |
| 소말리아 | 260명 ~ 365명 사망 |
| 작전명 | 항구적 자유 작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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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아프가니스탄 -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년~2021년)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년~2021년)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과 동맹국이 탈레반 정권을 응징하고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시작되어, 탈레반 축출과 미군 철수, 탈레반의 재장악으로 종결되었으며, 막대한 인명 피해와 사회적 영향을 남겼다. -
2001년 아프가니스탄 -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미국이 알카에다를 비호한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고 오사마 빈 라덴을 체포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한 군사 작전으로, 국제사회의 지원과 북부 동맹과의 협력으로 탈레반 정권은 붕괴되었으나 빈 라덴 체포에는 실패하고 아프가니스탄은 장기간 분쟁에 휩싸였다. -
테러와의 전쟁 -
무자헤딘
무자헤딘은 아랍어로 지하드를 수행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초기에는 이슬람교 포교자를 지칭했으나 근대에는 침략에 저항하는 저항 운동을, 20세기에는 아프가니스탄 게릴라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고, 현대에는 지하디스트와 유사한 의미로 무장 단체들이 사용하는 용어이다. -
테러와의 전쟁 -
탈레반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근본주의 무장 단체로, 샤리아 법을 적용한 통치와 인권 유린 등으로 국제 사회의 비난을 받으며 테러 조직으로 지정되기도 했으나, 현재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고 있다. -
미국이 참전한 전쟁 -
라오스 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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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참전한 전쟁 -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
베트남에 평화를! 시민연합은 1965년 미국군의 베트남 북부 폭격에 반대하며 결성된 일본의 시민 단체로, 반전 운동과 미일안보조약 반대 시위를 주도했으나 1974년 해산되었다.
2. 역사적 배경
항구적 자유 작전(OEF)은 부시 행정부가 대테러 전쟁의 일환으로 국제 테러 위협을 막기 위한 방어전으로 시작했다.
당초 작전명은 "무한 정의 작전(Operation Infinite Justice)"이었으나, 이슬람교에서 "Infinite"가 알라를 의미할 수 있다는 이슬람 율법학자들의 비판에 따라 변경되었다.
현재 아프가니스탄 (OEF-A), 동남아시아 (OEF-P, 필리핀 불멸의 자유 작전), 아프리카의 뿔 (OEF-HOA, 아프리카의 뿔 불멸의 자유 작전), 트랜스 사하라/사헬 (OEF-TS, 트랜스 사하라 불멸의 자유 작전) 등 세계 6곳에서 작전이 전개되고 있다.
"OEF"는 보통 2001년 10월 7일 미영 양군 공격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의 군사 작전을 의미한다.
2.1. 9.11 테러와 미국의 대응
2001년 9월 11일, 알 카에다 테러 조직이 미국 뉴욕의 세계 무역 센터와 워싱턴 D.C.의 국방부 건물(펜타곤)을 공격하여 수천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는 9.11 테러가 발생했다. 이에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테러 조직과 그 배후 세력을 응징할 것을 천명했다.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이 9.11 테러의 배후라고 발표하고, 탈레반에게 알 카에다 지도자 인도, 테러 훈련 캠프 폐쇄 등 다섯 가지 요구사항을 담은 최후통첩을 보냈다. 2001년 9월 21일, 탈레반은 빈 라덴의 연관 증거가 없다며 이 최후통첩을 거부했다.
이후 미국은 탈레반의 여러 제안을 거부하였고,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2002년 1월 16일 빈 라덴, 알 카에다, 잔여 탈레반에 대한 무기 금수 조치 및 자산 동결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2001년 10월 7일, 미국과 영국은 항구적 자유 작전의 일환으로 아프가니스탄 내 탈레반과 알카에다 세력에 대한 군사 작전을 시작했다. 이 작전에는 육상 기반 폭격기, 항공모함 기반 전투기,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등이 동원되었다.
2.2. 탈레반 정권과 알 카에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이후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철수한 후, 탈레반은 1996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했다. 이들은 이슬람 율법에 대한 극단적인 해석으로 음악, 텔레비전, 스포츠 등을 금지하고 가혹한 처벌을 시행했다. 특히 여성 인권 탄압과 바미안 석불 파괴로 국제적인 비판을 받았다.
1996년, 사우디 반체제 인사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가니스탄으로 이주하면서 탈레반과 알 카에다 간의 동맹이 맺어졌다. 알 카에다 훈련병들은 탈레반 군대에 통합되었고, 양측은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2001년 9월 20일, 미국은 9.11 테러의 배후로 오사마 빈 라덴을 지목하고 탈레반에게 알 카에다 지도자 인도, 투옥된 외국인 석방, 테러 훈련 캠프 폐쇄, 테러리스트 인도, 훈련 캠프 사찰 권한 부여 등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러나 탈레반은 9월 21일 빈 라덴의 연루 증거가 없다며 이를 거부했다.
이후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아라비아는 탈레반 정권 인정을 철회했고, 파키스탄만이 외교 관계를 유지했다. 탈레반은 빈 라덴을 샤리아 율법에 따른 국제 재판소에 넘기거나, 증거가 제시되면 제3국에 인도하겠다는 제안을 했지만, 미국은 이를 거부했다.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는 2002년 1월 16일 빈 라덴, 알 카에다, 잔여 탈레반 자산 동결 및 무기 금수 조치를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2.3. 작전명 변경 논란
당초 작전명은 "무한 정의 작전(Operation Infinite Justice)"이었으나, "무한(Infinite)"이라는 표현이 이슬람교에서 알라를 지칭하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는 이슬람 율법학자들의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슬람 율법학자들은 "궁극의 정의는 알라만이 줄 수 있으므로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미국은 이슬람 세계의 반발을 고려하여 작전명을 "항구적 자유 작전"으로 변경했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001년 9월 "이 성전, 이 테러와의 전쟁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라고 언급한 것도 작전명 변경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는데, 이는 이슬람 세계로부터 광범위한 비판을 받았다.
3. 주요 작전
2001년 10월 7일, 미국과 영국은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지원하는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에서 군사 작전을 개시했다. 이 작전은 "항구적 자유 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 OEF)으로 명명되었다.
항구적 자유 작전에는 다음과 같은 주요 작전들이 포함된다.
* [[아프가니스탄 전쟁 (2001년~2021년)|아프가니스탄 전쟁]] (OEF-A): 2001년부터 2014년까지 아프가니스탄에서 진행된 군사 작전으로, 탈레반 정권 붕괴와 알 카에다 소탕을 목표로 했다.
* 필리핀 불멸의 자유 작전 (OEF-P): 2002년부터 필리핀 남부에서 아부 사야프와 제마 이슬라미야 등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를 소탕하기 위해 필리핀군을 지원하는 작전이다.
* 아프리카의 뿔 불멸의 자유 작전 (OEF-HOA): 2002년부터 아프리카의 뿔 지역에서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고 테러 조직의 역량을 감소시키기 위한 작전이다. 지부티의 캠프 레모니어에 주둔한 연합 기동 부대 150과 미국 군 특수 부대가 주도했다.
* 트랜스 사하라 불멸의 자유 작전 (OEF-TS): 미국이 사하라 사막 이남 사헬 지대에서 활동하는 테러 조직을 억제하기 위해 지역 국가들과 협력하여 군사 훈련, 정보 공유, 국경 통제 강화 등의 활동을 펼친 군사 작전이다.
3.1. 아프가니스탄 전쟁 (OEF-A)
2001년 10월 7일, 미국은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 라덴과 알 카에다를 지원하는 탈레반 정권을 축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개시했다. 이 군사 작전은 "항구적 자유 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 OEF)으로 명명되었으며, 주로 아프가니스탄 내 군사 작전(OEF-A)을 지칭한다.
미국 정부는 2001년 10월 7일부터 2014년 12월 31일까지의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공식적으로 "항구적 자유 작전"으로 칭했다. 이 작전은 당초 "무한 정의 작전"(Operation Infinite Justice)으로 불렸으나, 이슬람교에서 "무한한"이라는 표현이 알라를 지칭하는 경우가 있어 이슬람 율법학자들의 비판을 받았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이 성전, 이 테러와의 전쟁은 시간이 걸릴 것이다"라고 언급한 것도 작전명 변경에 영향을 미쳤다.
미국과 영국은 B-1 랜서, B-2 스피릿, B-52 스트래토포트리스 폭격기, 항공모함 기반 F-14 톰캣 및 F/A-18 호넷 전투기,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 등을 동원하여 아프가니스탄 내 테러 훈련소와 기반 시설 파괴, 알 카에다 지도자 체포, 테러 활동 중단을 목표로 공격을 시작했다.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국가들의 작전인 국제 안보 지원군(ISAF)은 미국과 영국, 아프가니스탄이 공동으로 수행한 항구적 자유 작전과는 별개로 진행되었다.
2001년 이후, 미국 정부의 항구적 자유 작전에 대한 누적 지출은 150를 초과했다.
3.1.1. 탈레반 정권 붕괴와 임시 정부 수립
2001년 10월 7일, 미국과 영국은 전투기와 군함의 순항 미사일을 동원하여 탈레반과 알카에다 세력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북부 동맹군은 제5 특수부대 그룹 소속 그린 베레, 제160 특수 작전 항공 연대 (SOAR) 소속 항공 승무원, 공군 전투 통제사로 구성된 합동 특수 작전팀의 지원을 받았다. 이들은 미국의 폭격과 대규모 탈주자들의 도움을 받아 11월 9일 마자르이샤리프를 점령했고, 이후 아프가니스탄 북부 대부분 지역을 빠르게 장악했다. 11월 13일, 탈레반이 예상치 못하게 도시에서 철수하면서 카불이 함락되었다. 탈레반은 좁은 지역으로 밀려났으며, 북부 지역에서 그들이 마지막으로 점령하고 있던 도시인 쿤두즈는 11월 26일에 함락되었다. 대부분의 탈레반 대원들은 파키스탄으로 도주했다.
전쟁은 칸다하르로 후퇴한 탈레반이 남아있는 아프가니스탄 남부에서 계속되었다. 칸다하르에서 탈레반은 항복에 동의했지만, 도널드 럼즈펠드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탈레반 지도자 물라 모하메드 오마르에 대한 사면 가능성을 이유로 이 거래를 거부했다. 결국 12월에 칸다하르가 함락되었고, 이후에도 탈레반과 알카에다 잔당들은 저항을 계속했다.
2001년 12월, 하미드 카르자이를 수반으로 하는 아프가니스탄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다.
3.1.2. 탈레반의 저항과 ISAF의 역할
탈레반은 권좌에서 축출된 이후에도 파키스탄 국경 지대를 중심으로 저항을 계속했다. 2006년 1월부터 NATO 국제 안보 지원군(ISAF)은 아프가니스탄 남부에서 전투 임무를 수행했는데, 주로 영국, 캐나다, 네덜란드 군으로 구성되었고 덴마크, 루마니아, 에스토니아의 소규모 지원과 노르웨이의 공중 지원, 미국의 공중 및 포병 지원을 받았다. ISAF는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치안 유지 노력을 지원하고, 탈레반 및 기타 반군 세력과의 전투를 수행했다. 미군은 칸다하르, 바그람, 카불(캠프 에거스, 캠프 피닉스 포함) 등에서 NATO와 별개로 군사 작전을 수행했다.
3.1.3. 한국의 기여
한국은 2002년 2월 의료 지원을 위해 동의 부대를 파병했고, 2003년 3월에는 공병 지원 부대인 다산 부대를 파병해 아프가니스탄 재건 및 평화 유지 활동에 기여했다. 2010년 7월부터 2014년 6월까지는 지방재건팀(PRT)인 오쉬노 부대를 파르완 주에 파견해 지역 안정화 및 개발 사업을 지원했다.
3.2. 필리핀 불멸의 자유 작전 (OEF-P)
2002년 1월, 미국 태평양 특수 작전 사령부(SOCPAC)는 필리핀군이 필리핀 남부 지역에서 활동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인 아부 사야프(ASG)와 제마 이슬라미야(JI)를 소탕하는 것을 지원하기 위해 1,200명 이상의 병력을 필리핀에 배치했다. 이 작전은 필리핀군의 대테러 역량 강화, 정보 공유, 그리고 Operation Smiles을 통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공하여 지역 주민들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미국 특수 부대는 필리핀군의 특수 부대와 수색 레인저를 훈련시키고 장비를 지원하여 경보병 중대(LRC)를 창설했다. 이들은 바실란 섬에 배치되어 ASG의 은신처와 경로를 차단하고, 지원 마을과 주요 인물을 감시하며, AFP의 작전을 지원하고, 민간 업무 작전을 수행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 작전으로 아부 사야프는 바실란에서 축출되었고, 미국인 인질 1명이 구출되었으며, ASG의 병력은 크게 감소했다. 또한, "미소 작전"을 통해 14개의 학교, 7개의 진료소, 3개의 병원이 건설되었고, 18,000명 이상의 바실란 주민에게 의료 서비스가 제공되었다. 이러한 인도주의적 지원은 무장 단체가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 세력을 확보하는 것을 방지하는 데 기여했다.
3.3. 아프리카의 뿔 불멸의 자유 작전 (OEF-HO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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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10월, 연합 기동 부대 150과 미국 군 특수 부대가 지부티의 캠프 레모니어에 주둔했다. 이 작전의 목표는 인도적 지원을 제공하고, 아프리카의 뿔 지역을 순찰하여 테러 조직의 역량을 감소시키는 것이었다.
군사적 측면에서는 연합군이 이 지역으로 들어오는 선박을 수색하고 불법 화물을 단속하며, 지역 군대에 훈련과 장비를 제공하는 것이 포함된다. 인도적 측면에서는 학교, 진료소, 우물을 건설하여 지역 주민들의 신뢰를 얻는 것이 포함된다.
항구적 자유 작전 - 아프리카의 뿔(OEF-HOA)은 특정 테러 조직을 표적으로 삼지 않는다. 대신 이 지역의 테러 활동을 방해하고 탐지하며, 테러 세포와 활동의 재발을 막기 위해 협력 국가와 협력하는 데 집중한다. 2002년 10월, 연합 합동 태스크 포스, 아프리카의 뿔 (CJTF-HOA)은 지부티의 캠프 레모니어에 설립되었다. CJTF-HOA는 미국 군대 및 특수 작전 부대(SOF), 연합군 부대 구성원, 연합 태스크 포스 150(CTF-150)를 포함하여 약 2,000명의 인원으로 구성되었다. 연합군은 호주, 캐나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인도, 이탈리아, 파키스탄, 뉴질랜드, 스페인, 터키, 영국의 선박으로 구성된다. 연합군의 주요 목표는 아프리카의 뿔 지역으로 들어오는 의심스러운 선적을 감시, 검사, 탑승 및 중단하는 것이다.
2003년부터 미국 군대는 소말리아에서 알 카에다 연계 전투원을 표적으로 삼는 작전을 수행했으며, 이 작전으로 2016년 초까지 113명에서 136명의 무장 세력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3월 7일, 모가디슈 북쪽의 알 샤바브 훈련 캠프에 대한 미국의 공습으로 150명이 더 사망했다.
CJTF-HOA는 지부티, 케냐, 에티오피아의 선택된 군 부대에 대한 대테러 및 대반란 전술 훈련에 노력을 집중해 왔다. CJTF-HOA가 수행하는 인도주의적 노력에는 학교 및 의료 클리닉 재건, 그리고 훈련을 받는 국가에 의료 서비스 제공 등이 포함된다.
3.4. 트랜스 사하라 불멸의 자유 작전 (OEF-TS)
항구적 자유 작전 - 트랜스 사하라(OEF-TS)는 미국이 사하라 사막 이남 사헬 지대에서 활동하는 테러 조직을 억제하기 위해 지역 국가들과 협력하여 군사 훈련, 정보 공유, 국경 통제 강화 등의 활동을 펼친 군사 작전이다.
4. 법적 근거 및 지휘 체계
항구적 자유 작전(OEF)은 국제 연합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에 의해 승인된 집단 안보 조치는 아니었지만, 유엔 헌장 제51조에 명시된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일환으로 간주된다.
2001년 10월 7일, 미국과 영국은 유엔 안보리에 서한을 보내 9.11 테러에 대한 자위권 행사로서 군사 행동을 개시했음을 통보했다. 존 네그로폰테 당시 미국 유엔 대사는 안보리 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유엔 헌장 제51조에 따라 미국이 개별적 및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조치를 개시했음을 보고했다. 이는 2001년 9월 12일 안보리 결의 1368호의 "헌장에 따른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의 고유 권리를 인식하며"라는 문구를 통해 확인되었다.
미국 중앙 사령부(CENTCOM)는 플로리다주탬파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항구적 자유 작전(OEF)을 담당하며, 예하 부대인 카불의 아프가니스탄 합동 안보 전환 사령부(CSTC-A)와 바그람의 합동 임무 부대 82(CJTF-82)가 작전을 관장한다.
4.1. 법적 근거
항구적 자유 작전(OEF)은 국제 연합 안전 보장 이사회 결의에 의해 승인된 집단 안보 조치는 아니었다. 그러나 이 작전은 유엔 헌장 제51조에 명시된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권 행사의 일환으로 간주된다.
2001년 10월 7일, 미국과 영국은 유엔 안보리에 서한을 보내 9.11 테러에 대한 자위권 행사로서 군사 행동을 개시했음을 통보했다. 당시 존 네그로폰테 미국 유엔 대사는 안보리 의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 유엔 헌장 제51조에 따라, 본국 정부를 대표하여 미국이 2001년 9월 11일에 자행된 무력 공격에 대응하여 개별적 및 집단적 자위의 고유한 권리를 행사하는 조치를 다른 국가들과 함께 개시했음을 보고합니다.
이는 2001년 9월 12일의 안보리 결의 1368호 전문에 명시된 "헌장에 따른 개별적 또는 집단적 자위의 고유 권리를 인식하며"라는 문구를 통해 확인되었다.
4.2. 지휘 체계
미국 중앙 사령부(CENTCOM)는 플로리다주탬파에서 아프가니스탄에서의 항구적 자유 작전(OEF)을 담당하며, 예하 부대인 카불의 아프가니스탄 합동 안보 전환 사령부(CSTC-A)와 바그람의 합동 임무 부대 82(CJTF-82)가 작전을 관장한다.
5. 한국의 참여와 기여
한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직접 전투 병력을 파병하지는 않았지만, 의료 및 공병 부대 파견, 해상 수송 지원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기여했다.
5.1. 군사적 지원
한국은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직접 전투 병력을 파병하지는 않았지만, 의료 및 공병 부대 파견, 해상 수송 지원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기여했다. 일본은 2001년 11월 2일부터 해상 차단 작전(OEF-MIO)에 정식으로 참여하여, 인도양에 해상자위대 함정을 파견했다. (자위대 인도양 파견 참고)
6. 비판과 논란
이란의 강경파 신문과 레바논의 종교 학자들은 이 작전에 대해 "무한 제국주의", "무한 오만", 또는 "무한 불의"가 더 적절한 이름이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AFP는 2004년 4월 3일자 뉴요커 기사에서, "20년 이상 육군 특수 부대에서 복무했으며 미국 국방부의 의뢰를 받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조사한" 은퇴한 육군 대령 하이 로스틴은 "이 분쟁이 '군벌주의, 강도질, 아편 생산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조건을 만들었다고 결론지었다"고 보도했다.
휴먼 라이츠 워치는 2004년에 발표한 보고서 항구적 자유 작전 - 아프가니스탄 내 미국군의 만행에서 미군에 대한 비판을 가했다. 파키스타니아트의 편집자 마수드 아슈라프 라자와 같은 일부 파키스탄 학자들도 테러와의 세계 전쟁이 이 지역에 미친 결과와 관련된 보다 구체적인 비판을 제시했다.
6.1. 민간인 피해 문제
이란의 강경파 신문과 레바논의 종교 학자들은 이 작전에 대해 "무한 제국주의", "무한 오만", 또는 "무한 불의"가 더 적절한 이름이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AFP는 2004년 4월 3일자 뉴요커 기사에서, "20년 이상 육군 특수 부대에서 복무했으며 미국 국방부의 의뢰를 받아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조사한" 은퇴한 육군 대령 하이 로스틴은 "이 분쟁이 '군벌주의, 강도질, 아편 생산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조건을 만들었다고 결론지었다"고 보도했다.
미국 기반의 인권 단체인 휴먼 라이츠 워치는 2004년에 발표한 보고서 항구적 자유 작전 - 아프가니스탄 내 미국군의 만행에서 미군에 대한 비판을 가했다. 파키스타니아트의 편집자 마수드 아슈라프 라자와 같은 일부 파키스탄 학자들도 테러와의 세계 전쟁이 이 지역에 미친 결과와 관련된 보다 구체적인 비판을 제시했다.
6.2. 인권 침해 논란
이란의 강경파 신문과 레바논의 종교 학자들은 이 작전에 대해 "무한 제국주의", "무한 오만", 또는 "무한 불의"가 더 적절한 이름이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휴먼 라이츠 워치는 2004년에 발표한 보고서 항구적 자유 작전 - 아프가니스탄 내 미국군의 만행에서 미군에 대한 비판을 가했다. 파키스타니아트의 편집자 마수드 아슈라프 라자와 같은 일부 파키스탄 학자들도 테러와의 세계 전쟁이 이 지역에 미친 결과와 관련된 보다 구체적인 형태의 비판을 제시했다.
7. 결과 및 영향
미국 주도의 연합군은 초기에는 탈레반을 권좌에서 축출하고 알 카에다 및 관련 무장 세력을 아프가니스탄에서 크게 약화시켰다. 그러나 2001년 침공 이후 탈레반 반군 진압에는 성공하지 못했다. 전쟁이 장기화되면서 탈레반은 인접 국가인 파키스탄의 은신처 덕분에 자신들을 격파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2004년 10월 9일, 아프가니스탄은 첫 직접 선거에서 하미드 카르자이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이듬해 9월 18일에는 2005년 아프가니스탄 총선을 치렀다. 침공 이후 수백 개의 학교와 모스크가 건설되었고, 수백만 달러의 원조가 배분되었으며, 폭력 발생이 감소했다.
군대가 반란군을 저지하고 어느 정도의 안보를 보장하는 동안, 지방 재건팀은 도로 및 교량 건설, 홍수 지원, 아프가니스탄 난민에게 식량 및 물 제공과 같은 사회 기반 시설 구축을 담당했다. 많은 군벌들이 충성 프로그램에 참여하여 아프가니스탄 정부의 정당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병력과 무기를 공식적으로 항복했다. 그러나 이후의 행동은 그들의 진정한 충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했다.
아프가니스탄 국민군, 아프가니스탄 경찰, 아프가니스탄 국경 경찰은 자국 안보를 책임질 수 있도록 훈련을 받고 있었다.
2014년 12월 31일, 항구적 자유 작전이 종료되었고, 2015년 1월 1일 자유의 수호자 작전이 뒤를 이었다.
2020년, 미국은 2021년 중반까지 미국군이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협정에 따라 아프가니스탄을 탈레반에게 넘겨주었다. 2021년 8월 15일, 카불을 제외한 모든 아프가니스탄 지역이 다시 탈레반의 손에 들어갔다. 8월 31일까지 모든 미국 및 동맹군은 하미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철수하여 아프가니스탄 내 공식 작전을 종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