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형벌 대속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형벌 대속은 예수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형벌을 받았다는 기독교 교리이다. 이 이론은 제2성전 유대교에서 기원하여 종교 개혁 시대에 마르틴 루터와 존 칼빈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찰스 호지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형벌 대속은 성경과 기독교 전통에 근거한다고 주장하지만, 파우스토 소치니, 윤리적, 법리적 비판, 현대 신학자들에 의해 비판받아왔다. 옹호자들은 예수의 자발적인 희생과 삼위일체 교리를 근거로 이 이론을 옹호하며, 한국 개신교에서도 수용되어 진보와 보수 신학 사이에서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칼뱅주의 신학 - 총신대학교
    총신대학교는 1901년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로 설립되어 일제강점기 폐교 후 재건, 1975년 현재 교명으로 변경되었으며 개혁주의 신학을 바탕으로 다양한 학부 및 대학원 과정을 운영하는 사립대학교이다.
  • 칼뱅주의 신학 - 기독교 강요
    장 칼뱅이 기독교 신학의 주요 교리를 체계적으로 해설한 "기독교 강요"는 1536년 초판 이후 여러 차례 개정을 거쳐 1559년 최종판이 완성되었으며, 프로테스탄트 신학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기독교 신학의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형벌 대속
개요
이름형벌 대속
영어 명칭Penal substitution
주제기독교 신학
분류속죄 이론
상세 내용
정의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써 인류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을 대신 받았다는 기독교 신학 이론
핵심 내용인간은 죄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 아래 놓여 있음
예수는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음
예수의 희생으로 인간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음
지지 교단개신교, 특히 칼뱅주의
논쟁
비판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비판
도덕적 문제 (예: 무고한 자의 처벌)에 대한 비판
성경적 근거 부족에 대한 비판
대안 이론도덕적 영향설
통치설
그리스도 만유 통치

2. 형벌 대속 이론의 발전

형벌 대속 이론은 대리 속죄에 대한 구체적인 해석이며, 그 기원은 제2성전 유대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6] 출애굽기 32장 30-34절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대신하여 자신의 죽음을 제안한 것을 대리의 예로 제시하기도 한다. 이 이론은 16세기 종교 개혁 시대에 마르틴 루터장 칼뱅에 의해 발전되었으며,[3][7][1][2][4][5][8][15][9] 찰스 호지는 이 이론을 더욱 구체적으로 정립하였다. 형벌 대속 옹호자들은 이 개념이 성경에 근거하고 있으며,[10] 기독교의 역사적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주장한다.[11]

2. 1. 초기 기독교

초기 교부들의 저술에서는 형벌 대속의 단서만 발견되며, 가장 명확한 표현은 종교 개혁 시대에 나타났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인정된다.[3][4][9] 초기 교부 시대에는 형벌 대속이 거의 지배적인 견해였다.[14]

학자들은 순교자 유스티누스(c.100-165), 카이사레아의 에우세비우스(c.275–339), 아타나시우스(c.300–373) 및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354–430)를 포함한 일부 초기 교부들의 저술에서 형벌 대속의 선구자를 해석하는 데 있어 의견이 분분하다. 초기 교회에서 어떤 저술가도 형벌 대속을 주요 속죄 이론으로 가르치지 않았다는 데에는 일반적으로 동의가 이루어진다. 그러나 일부 저술가들은 부수적인 생각이나 곁가지로 형벌 대속의 일부 아이디어를 언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는 아우구스티누스가 시편 51편에 대한 해석에서 형벌 대속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본다. "주님조차 죽음에 순종하셨지만, 죄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형벌을 받으시고, 우리의 죄책을 풀어주셨습니다."[16] 그리고 그의 《요한 복음 강해》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인간이 원죄로 인해 이 진노 아래 놓여 있었으므로… 중재자, 즉 화해자가 필요했는데, 그는 율법과 선지자들의 모든 제물이 유형이었던 한 제물을 드려 이 진노를 제거해야 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진노하신다고 말할 때, 우리는 화난 사람의 마음에 존재하는 것과 같은 그러한 동요된 감정을 그분께 돌리는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그분의 의로운 불만을 '진노'라는 이름으로 부르는데, 이는 인간의 감정에서 유비적으로 옮겨진 단어입니다."[17]

대속적 속죄 이론은 형벌 대속과 마찬가지로 대속적 속죄 이론이다. 따라서 초기 교회 저술가들이 의도적으로 대속적 관점에 대해 언급한 것과 실제 형벌 대속적 아이디어를 구별하기 어려울 수 있다.

교부들은 종종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묘사하는 성경 인용문을 인용했으며,[21] 때로는 성경의 여러 곳에서 가져온 구절을 서로 더하기도 했다.[22] 구원론적 저술에서 그리스 교부들, 예컨대 알렉산드리아의 아타나시우스(c.296/298–373)의 지배적인 흐름은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심으로써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셨다는 소위 "육적" 이론이었지만, 그와 함께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를 죄의 저주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필요했으며, 그분은 우리를 위해 희생 제물로 자신을 바치셨다는 확신이 혼합되어 있다.[23]

2. 2. 안셀무스의 만족설

캔터베리의 안셀무스(1033/4–1109)는 그의 저서 ''인간이 되신 하느님''(1098)에서 죄를 짓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할 것을 드리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30][31] 안셀무스의 견해는 중세 봉건적 권위, 제재, 그리고 보상 개념과 관련지어 이해할 수 있다. 안셀무스는 만족(보상)을 처벌의 대안으로 보았다는 점에서 형벌 대속과 구별된다.

안셀무스에 따르면, "빼앗긴 명예는 갚아야 하거나, 처벌이 따라야 한다" (1권 8장).[32] 그는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은 명예이며, "'명예'는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 생물과 무생물이 창조주에게 빚진 모든 봉사와 예배를 포함한다. 인간이 마땅히 드려야 할 봉사를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의 명예가 손상된다"라고 설명했다.[32]

안셀무스의 만족설은 인간이 하나님께 갚아야 할 빚을 강조하며, 이는 인간의 능력 밖의 일이라고 보았다. 그는 그리스도가 죄 없는 삶을 살고, 사랑으로 죽음을 기꺼이 감수함으로써 하나님의 명예를 만족시키고, 잉여적인 행위로 동료들의 빚을 갚을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33]

형벌 대속은 종종 안셀무스와 연관되지만, 안셀무스의 '만족' 이론이 형벌 대속과 엄격하게 같은지는 개혁 신학자들 사이에서도 의문시된다.[34]

2. 3. 종교개혁과 칼뱅주의

종교 개혁 시기에 마르틴 루터장 칼뱅은 형벌 대속 이론을 옹호하며 발전시켰다.[9] 이 이론은 16세기 종교 개혁 시대에 발전했으며,[3][7][1][2][4][5][8][15] 개혁신학자 찰스 호지(1797–1878)에 의해 더욱 구체적으로 정립되었다.

마르틴 루터는 안셀무스의 견해를 따르면서도,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이 율법에 대한 능동적이고 수동적인 순종을 모두 포함한다고 주장했다. 즉, 그리스도는 완전하고 죄 없는 존재로서 율법을 완벽하게 준수했고, 십자가에서의 죽음으로 모든 사람이 율법을 어긴 것에 대해 받아야 할 영원한 형벌을 대신 짊어졌다는 것이다. 루터는 만족과 형벌을 모두 결합했으며,[40]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 사이의 실제적 갈등이라는 개인적인 측면에서 십자가를 이해했다.[41]

장 칼뱅은 안셀무스의 사상을 차용했지만, 법학을 전공한 경험을 바탕으로 형법 용어로 변경했다.[43] 그는 인간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유죄이며, 유일한 형벌은 영원한 죽음이라고 보았다. 하나님의 아들은 인간이 되어 인간의 자리에 서서 하나님의 무한한 진노, 즉 저주와 정죄를 짊어졌다고 주장했다. 칼뱅은 "죄인들의 자리에 대리인이자 보증인이 되어, 그들에게 내려졌어야 할 모든 형벌을 감수하고 고통받았다."라고 설명했다.[43]

칼뱅은 ישעיהו|이사야he 53장의 고난받는 종의 구절과, 그리스도 이전에 죽은 영혼들의 해방인 "지옥으로의 강하"를 언급하는 Α΄ Πέτρου|베드로전서el 3장 18-22절에 특별히 주목했다. 그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라는 구절을 인용하며, 하나님의 목적 안에서 형벌 대속이 필수적인 요소임을 강조했다.[44][45]

2. 4. 존 웨슬리와 감리교

존 웨슬리는 감리교의 창시자로, 일부 학자들은 그가 형벌 대속 이론을 지지했다고 주장한다. 케네스 J. 콜린스는 저서 『존 웨슬리의 신학: 거룩한 사랑과 은혜의 모습』에서 "웨슬리에게 있어서 그리스도는 죄 많은 인류를 대신하고, 그들의 일원으로 간주되며, 결국 벌, 즉 죄의 대가를 짊어짐으로써 하나님의 정의를 보상하고 충족시킨다"라고 설명한다.[46] 웨슬리는 "원죄 교리"에서 "우리의 죄는 그의 모든 고난을 초래하는 원인이었다. 그의 고난은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적인 결과였다. ... 모든 징계는 어떤 잘못에 대한 것이다. 그리스도에게 가해진 징계는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것이었고, 분노한 율법 제정자와 죄 있는 피조물을 서로 화해시키는 데 필요했다"라고 썼다.[47]

그러나 콜린스는 웨슬리가 다른 개혁가들과 달리 칭의와 전가에 대한 견해가 신자의 성화를 저해한다고 생각했으며, 성화가 '하나님과 협력하여 은혜 안에서 번성하고 성장하는 능력'이라고 믿었다고 덧붙인다.[48] 즉, 웨슬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짊어졌기에 그의 의가 신자에게 전가되어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를 용서한다는 형벌 대속 이론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는다. 랜디 매독스는 웨슬리의 신학을 "속죄의 도덕적 영향 목적과 속량 효과를 가진 형벌 충족 설명"으로 정의한다.[49] 이는 웨슬리의 속죄 신학을 초기 교회의 충족 이론, 도덕적 영향 및 속량 이론과 더 일관성있게 연결한다.

3. 형벌 대속 이론의 주요 내용

형벌 대속 이론은 예수가 인류의 죄 때문에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받았다고 가르친다. 이는 신성한 용서는 신성한 정의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즉, 하나님은 죄에 대한 대가를 먼저 요구하지 않고는 죄를 용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예수의 모습으로 자신을 내어주어, 타락한 인류가 죄 때문에 받아야 할 죽음, 형벌, 저주를 받게 하셨다.[1]

형벌 대속의 중요한 신학적 개념은 삼위일체 교리에 기반한다. 삼위일체 교리에 따르면 예수는 하나님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형벌을 내리는 대신 스스로 형벌을 받으셨다고 믿는다.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는 예수가 스스로 형벌을 받음으로써, 관련 없는 제3자가 아닌 그와 하나 된 사람들을 위해 정의의 요구를 충족시킨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죄와 불의를 다룬다면, 그의 부활은 의의 갱신과 회복을 가져온다.[1]

3. 1. 대리 속죄

이사야 53장 4-6절, 10-11절은 "고난받는 종"에 대해 언급하며,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12]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그를 하나님께 징벌을 받아 고난받는 자로 여겼노라.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 자기의 의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리니 이는 그가 그들의 죄악을 담당하리라."

3. 2. 신약성경의 증거

C. 마빈 페이트에 따르면, 초기 교회는 그리스도의 속죄에 대해 대리 속죄, 종말론적 사탄의 패배 (그리스도 승리자), 그리스도의 모방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이라는 세 가지 측면을 제시했다.[13] 페이트는 이 세 가지 측면이 초기 기독교 저술에서는 서로 얽혀 있었지만, 교부 시대 이후로 이 얽힘이 사라졌다고 언급한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의 대리 속죄를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는 주요 신약성경 구절은 다음과 같다.

  • 로마서 3:23–26—"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NRSV)
  • 고린도후서 5:21—"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RSV)
  • 갈라디아서 3:10, 13—"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는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을지어다' 함과 같으니라.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으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RSV)
  • 골로새서 2:13–15—"또 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우리를 대적하는 율례들의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RSV)
  • 베드로전서 2: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RSV)
  • 베드로전서 3:18—"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RSV)


N. T. 라이트는 로마서 3:23-26을 근거로 정당화에 대한 생각과 속죄와 희생이 함께 작용하는 형벌 대속의 다양한 모델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주장했다.[13]

3. 3. 삼위일체와 형벌 대속

형벌 대속에 대한 중요한 신학적 개념은 삼위일체 교리에 달려 있다. 삼위일체 교리에 따르면 예수는 하나님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형벌을 가하는 대신 스스로 형벌을 받으셨다고 믿는다.[1] 그리스도와의 연합 교리는 예수가 스스로 형벌을 받음으로써 관련 없는 제3자가 아닌 그와 동일시된 사람들을 위해 정의의 요구를 충족시킨다고 주장한다.[1] 속죄에 대한 형벌 대속적 이해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이 죄와 불의를 다룬다면, 그의 부활은 의의 갱신과 회복이다.[1]

4. 형벌 대속 이론에 대한 비판과 반론

파우스토 소치니는 형벌 대속이 "비합리적이고, 모순되며, 부도덕하고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광범위하게 비판했다.[54][55] 그는 죄에 대한 완전한 만족은 신의 용서를 불가능하게 만들고, 무죄한 자를 벌하고 유죄한 자를 풀어주는 것은 부당하며, 한 사람의 유한한 고통이 많은 사람의 무한한 고통과 같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한, 완전한 만족의 은혜는 죄를 지을 자유를 주는 것처럼 보인다고 비판했다.

현대 법에서는 무죄한 자를 처벌하고 유죄한 자를 풀어주는 것을 불의의 예시로 간주한다.[56] 성공회 신학자 F. W. 딜리스톤은 "속죄에 대한 엄격한 형벌 신학은 20세기의 세상에서 확신을 갖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57]

칼 바르트위르겐 몰트만은 화해와 속죄가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적용될 때 잘못된 범주라고 주장했다.[65]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스스로를 화해시키는 것이 속죄이며, 이는 용서하는 분이 자신의 비용으로 죄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의미한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은혜는 값없이 주어지지만, 결코 값싼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한, 단 한 번의 사면으로 인간 구원을 정의하는 것은 이후의 행동[66]과 파스카 신비 시대 이전 사람들의 삶과의 관계를 설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67] 칼 바르트 등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만족이라는 개념이 비성경적이라고 비판했다.[68]

형벌 대속 이론 옹호자들은 비판자들이 예수의 자발적인 희생과, 삼위일체 교리에 따른 하나님의 자기희생이라는 점을 간과한다고 주장한다. 예수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אֵין אַהֲבָה גְּדוֹלָה מִזּוֹ שֶׁיַּקְרִיב אָדָם אֶת נַפְשׁוֹ בְּעַד יְדִידָיו|에인 아하바 게돌라 미조 셰야크리브 아담 엩 나프쇼 베아드 예디다브he)라고 가르쳤으며, 자신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음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의도적으로 가고 있다고 반복해서 선포했다.(καὶ ἤρξατο διδάσκειν αὐτοὺς ὅτι δεῖ τὸν υἱὸν τοῦ ἀνθρώπου πολλὰ παθεῖν|카이 에릌사토 디다스케인 아우투스 호티 데이 톤 휘온 투 안드로푸 폴라 파테인grc)ἀναβαίνομεν εἰς Ἱεροσόλυμα καὶ ὁ υἱὸς τοῦ ἀνθρώπου παραδοθήσεται|아나바이노멘 에이스 히에로솔뤼마 카이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 파라도데세타이grc)[55]

J. I. 패커는 대속을 다음과 같이 비유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둘째 아담이자 마지막 아담이시며, 아담이 우리를 죄에 빠뜨린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그분의 죄를 짊어지는 데 참여하게 하셨다."[55]

4. 1. 소치니의 비판

파우스토 소치니는 형벌 대속이 "비합리적이고, 모순되며, 부도덕하고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광범위하게 비판했다.[54][55] 종교 개혁 시기 재세례파 운동의 파우스토 소치니는 형벌 대속에 대한 최초의 광범위한 비판을 제기했다.[54] 소치니의 이러한 견해는 칼뱅주의 폴란드 형제단 교회에 의해 채택되었다. 그의 비판은 다음과 같다.

  • 죄에 대한 완전한 만족은 신의 용서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 무죄한 자를 벌하고 유죄한 자를 풀어주는 것은 부당하다.
  • 한 사람의 유한한 고통이 많은 사람의 무한한 고통과 같을 수 없다.
  • 완전한 만족의 은혜는 죄를 지을 자유를 주는 것처럼 보인다.


현대 법에서는 무죄한 자를 처벌하고 유죄한 자를 풀어주는 것을 불의의 예시로 간주한다.[56] 성공회 신학자 F. W. 딜리스톤은 "속죄에 대한 엄격한 형벌 신학은 20세기의 세상에서 확신을 갖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57]

4. 2. 윤리적, 법리적 비판

형벌 대속 교리는 종교 개혁 시대 이후 성경적, 도덕적, 논리적 근거로 꾸준히 비판받아 왔다. 21세기에도 이러한 비판은 계속되고 있다.[50][51][52][53] 파우스토 소치니는 형벌 대속이 비합리적이고, 모순되며, 부도덕하고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광범위한 비판을 제기했다.[54][55]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 죄에 대한 완전한 만족은 신의 용서를 불가능하게 한다.
  • 무죄한 자를 벌하고 유죄한 자를 풀어주는 것은 부당하다.
  • 한 사람의 유한한 고통이 많은 사람의 무한한 고통을 대신할 수 없다.
  • 완전한 만족의 은혜는 죄를 지을 자유를 주는 것처럼 보인다.


개혁주의 기독교인들은 법에 대한 존경심을 바탕으로 형벌 대속을 지지했지만, 가톨릭교회는 교황청의 권위와 성사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현대 법에서는 무죄한 자를 처벌하고 유죄한 자를 풀어주는 것을 불의로 간주한다.[56] F. W. 딜리스톤은 형벌 대속 신학이 현대 사회에서 설득력을 얻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57]

형벌 대속 이론은 다음과 같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58]

  • "형벌"이라는 단어는 법과의 연관성을 의미하지만, 신학적 개념과 법 제도의 관계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 유대 율법, 로마법, 16세기 유럽 법, 현대 관습법에서 정의와 처벌에 대한 개념이 다르다.
  • 칼뱅 이후 법적 언어와 제의적 언어가 상호 작용하면서 혼란을 야기한다.
  • 속죄화해라는 단어의 의미가 모호하며, 형벌 대속에 대한 비판을 불러일으킨다.[60][61][62][63][64]


칼 바르트위르겐 몰트만은 화해와 속죄가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적용될 때 잘못된 범주라고 주장했다.[65]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스스로를 화해시키는 것이 속죄이며, 이는 용서하는 분이 자신의 비용으로 죄의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의미한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은혜는 값없이 주어지지만, 결코 값싼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한, 단 한 번의 사면으로 인간 구원을 정의하는 것은 이후의 행동[66]과 파스카 신비 시대 이전 사람들의 삶과의 관계를 설명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67]

칼 바르트 등은 하나님의 진노에 대한 만족이라는 개념이 비성경적이라고 비판했다.[68]

4. 3. 현대 신학에서의 비판

칼 바르트를 비롯한 현대 신학자들은 형벌 대속 교리에 대해 여러 비판을 제기했다.[68] 특히 하나님의 진노를 만족시켜야 한다는 개념은 성경적이지 않다는 비판을 받았다.[68]

파우스토 소치니는 형벌 대속이 비합리적이고 모순되며 부도덕하고 불가능하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은 반론을 제시했다.[54][55]

  • 죄에 대한 완전한 만족은 신의 용서를 불가능하게 만든다.
  • 무죄한 자를 벌하고 유죄한 자를 풀어주는 것은 부당하다.
  • 한 사람의 유한한 고통이 많은 사람의 무한한 고통과 영원한 죽음을 대신할 수 없다.
  • 완전한 만족의 은혜는 죄를 지을 자유를 주는 것처럼 보인다.


현대 법에서는 무죄한 자를 처벌하고 유죄한 자를 풀어주는 것을 불의의 예시로 간주한다.[56] 프레더릭 딜리스톤은 속죄에 대한 엄격한 형벌 신학은 현대 사회에서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고 말했다.[57]

"형벌"이라는 단어는 법과의 연관성을 의미하지만, 신학적 개념과 사회 제도로서의 법 사이의 관계는 변화한다.[58] 정의와 처벌에 대한 생각은 유대 율법, 로마법, 16세기 유럽 법, 현대 관습법에서 동일하지 않다.

칼 바르트위르겐 몰트만은 화해와 속죄가 삼위일체 하나님에게 적용될 때 잘못된 범주라고 주장했다.[65]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용서하신다면, 그 대가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 치르신 것이기 때문이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은혜는 공짜이지만 값싼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4. 4. 옹호론

형벌 대속 이론 옹호자들은 비판자들이 예수의 자발적인 희생과, 삼위일체 교리에 따른 하나님의 자기희생이라는 점을 간과한다고 주장한다.

예수는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없나니"(אֵין אַהֲבָה גְּדוֹלָה מִזּוֹ שֶׁיַּקְרִיב אָדָם אֶת נַפְשׁוֹ בְּעַד יְדִידָיו|에인 아하바 게돌라 미조 셰야크리브 아담 엩 나프쇼 베아드 예디다브he)라고 가르쳤으며, 자신이 죽음을 향해 가고 있음을 알면서도 예루살렘으로 의도적으로 가고 있다고 반복해서 선포했다.(καὶ ἤρξατο διδάσκειν αὐτοὺς ὅτι δεῖ τὸν υἱὸν τοῦ ἀνθρώπου πολλὰ παθεῖν|카이 에릌사토 디다스케인 아우투스 호티 데이 톤 휘온 투 안드로푸 폴라 파테인grc)ἀναβαίνομεν εἰς Ἱεροσόλυμα καὶ ὁ υἱὸς τοῦ ἀνθρώπου παραδοθήσεται|아나바이노멘 에이스 히에로솔뤼마 카이 호 휘오스 투 안드로푸 파라도데세타이grc[55]

예수 자신이 하나님이라는 정체성은 형벌 대속의 핵심이다. 예수가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인류가 죄를 지은 대상인 하나님께서 스스로 형벌을 받으러 오셨다고 믿는다.(וַאֲנִי אֶת־דְּבָרַי לֹא אֶשְׁמַע כִּי אִם־לְפָנָיו אֶעֱמֹד וְאֶשָּׂא פָנָי|바아니 엩-데바라이 로 에쉬마 키 임-레파나브 에에모드 베에사 파나이he)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인류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 이 땅에 오시기로 선택하신 것에 대해 부당함을 느끼지 않는다.

J. I. 패커는 대속을 다음과 같이 비유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둘째 아담이자 마지막 아담이시며, 아담이 우리를 죄에 빠뜨린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그분의 죄를 짊어지는 데 참여하게 하셨다."[55]

5. 한국 개신교와 형벌 대속 이론

형벌 대속 이론은 한국 개신교, 특히 보수적인 장로교와 성결교단에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교리이다. 이 교리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등 주요 교단의 신학적 입장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이러한 형벌 대속 이론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일부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은 이 이론이 성경의 가르침과 맞지 않거나,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왜곡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비판은 주로 기독교대한감리회와 같은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교단에서 제기된다.

형벌 대속 이론에 대한 논쟁은 한국 개신교 신학계의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이며, 다양한 신학적 관점과 해석이 공존하고 있다.

참조

[1] 서적 The atonement in the light of history and the modern spirit http://archive.org/d[...] London, Hodder and Stoughton 1919
[2] 문서 Vincent Taylor, ''The Cross of Christ'' (London: Macmillan & Co, 1956), pp. 71–72: '...the ''four main types'', which have persisted throughout the centuries. The oldest theory is the ''Ransom Theory''...It held sway for a thousand years. ... The ''Forensic Theory'' is that of the Reformers and their successors.' Vincent Taylor
[3] 문서 J. I. Packer, ''What did the Cross Achieve? The Logic of Penal Substitution'' (Tyndale Biblical Theology Lecture, 1973): '... Luther, Calvin, Zwingli, Melanchthon and their reforming contemporaries were the pioneers in stating it [i.e. the penal substitutionary theory]...' J. I. Packer
[4] 서적 A Short History of the Doctrine of the Atonement https://books.google[...] Manchester University Press 1920
[5] 문서 H. N. Oxenham, ''[[iarchive:catholicdoctrine00oxeniala|The Catholic doctrine of the atonement]]'' (London: Longman, Green, Longman, Roberts, and Green, 1865), pp. 112–113,119: '...we may pause to sum up briefly the main points of teaching on Christ's work of redemption to be gathered from the patristic literature of the first three centuries as a whole. And first, as to what it does not contain. There is no trace, as we have seen, of the notions of vicarious satisfaction, in the sense of our sins being imputed to Christ and His obedience imputed to us, which some of the Reformers made the very essence of Christianity; or, again, of the kindred notion that God was angry with His Son for our sakes, and inflicted on Him the punishment due to us ; nor is Isaiah s prophecy interpreted in this sense, as afterwards by Luther; on the contrary, there is much which expressly negatives this line of thought. There is no mention of the justice of God, in the forensic sense of the word; the Incarnation is in variably exclusively ascribed to His love; the term satisfaction does not occur in this connection at all, and where Christ is said to suffer for us, ''huper'' (not ''anti'') is the word always used. It is not the payment of a debt, as in St. Anselm's ''Cur Deus Homo'', but the restoration of our fallen nature, that is prominent in the minds of these writers, as the main object of the Incarnation. They always speak, with Scripture, of our being reconciled to God, not of God being reconciled to us.' [pp. 112–113]; 'His [Jesus'] death was now [in the Reformation period], moreover, for the first time viewed as a vicarious punishment, inflicted by God on Him instead of on us.' [p. 119] H. N. Oxenham
[6] 서적 The Atonement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19-07-28
[7] 간행물 Gregg Allison, 'A History of the Doctrine of the Atonement' in ''[[Southern Baptist Journal of Theology]]'' 11.2 (Summer 2007): 4-19: 'The Reformers introduced another view of the atonement, generally called ''the penal substitutionary theory'' ' (p. 10); '...the penal substitutionary theory of the atonement, originated by the Reformers and developed by their successors' (p. 14-15). Gregg Allison
[8] 문서 Gustaf Aulen, ''Christus Victor'' (1931) (London: SPCK), p. 143: 'The history of the doctrine of the Atonement is a history of three types of view, which emerge in turn. The classic idea emerges with Christianity itself, and remains the dominant type for of teaching for a thousand years. The origin of the Latin doctrine can be exactly determined...' Gustaf Aulen
[9] 문서 'The roots of the penal substitution view are discernible in the writings of John Calvin (1509-1564), though it was left to later expositors to systematize and emphasize it in its more robust forms.' (Paul R. Eddy and James Beilby, 'The Atonement: An Introduction', in P. R. Eddy and J. Beilby [eds], ''The Nature of the Atonement: Four Views'' [Downers Grove: IVP, 2006], p. 17) Paul R. Eddy and James Beilby
[10] 문서 'But he was pierced for our transgressions; he was crushed for our iniquities; upon him was the chastisement that brought us peace, and with his wounds we are healed.' Isaiah 53:5 ESV Isaiah
[11] 웹사이트 Penal Substitution in the Early Church https://www.thegospe[...] 2021-04-13
[12] 문서 RSV
[13] 웹사이트 The Cross and the Caricatures https://archive.toda[...] N. T. Wright
[14] 문서 Michael Green, ''The Empty Cross of Jesus'' (Eastbourne: Kingsway, 2004; first published 1984), p. 64-5: 'The simplest and most obvious understanding of the cross is to see it as the supreme example. ... This is a favourite theme in the early Fathers, as H.E.W. Turner showed in ''The Patristic Doctrine of Redemption''. ... It can scarcely be denied that much of the second century understanding of the cross was frankly exemplarist.' Michael Green
[15] 문서 J. F. Bethune-Baker, [https://archive.org/stream/anintroductionto00bethuoft An introduction to the early history of Christian doctrine to the time of the Council of Chalcedon] (London: Methuen & Co, 1903), pp. 328, 351–352: 'Of the various aspects of the Atonement which are represented in the pages of the New Testament, the early Fathers chiefly dwell on those of sacrifice (and obedience), reconciliation, illumination by knowledge, and ransom. Not till a later time was the idea of satisfaction followed up' [p. 328]; 'The only satisfaction which was thought of was the satisfaction which the penitent himself makes. There is no suggestion of any satisfaction of the divine justice through the sufferings of Christ. ' [p. 328, n. 3]; 'From this review of the teaching of the Church it will be seen that there is only the most slender support to be found in the earliest centuries for some of the views that became current at a later time. It is at least clear that the sufferings of Christ were not regarded as an exchange or substitution of penalty, or as punishment inflicted on him by the Father for our sins. There is, that is to say, no idea of vicarious satisfaction, either in the sense that our sins are imputed to Christ and his obedience to us, or in the sense that God was angry with him for our sakes and inflicted on him punishment due to us.' [pp. 351–352]. J. F. Bethune-Baker
[16] 웹사이트 CHURCH FATHERS: Exposition on Psalm 51 (Augustine) https://www.newadven[...] 2022-03-10
[17] 웹사이트 CHURCH FATHERS: Handbook on Faith, Hope and Love (St. Augustine) https://www.newadven[...] 2022-03-10
[18] 문서 Kelly p. 376
[19] 문서 Fr. J. S. Romanides (translated by G. S. Gabriel), The Ancestral Sin, Zephyr Publishing, Ridgewood, NJ, 1998 Fr. J. S. Romanides
[20] 간행물 D. Flood, 'Substitutionary Atonement and the Church Fathers' in ''[[Evangelical Quarterly]]'' 82.2 (2010) 142-159. [http://therebelgod.com/AtonementFathersEQ.pdf Online] (accessed 28/12/10). D. Flood
[21] 문서 Justin Martyr ''Dialogue with Trypho'': "Cursed is everyone who hangeth on a tree" – Deuteronomy 21:23; "Cursed is everyone who continues not in all things that are written in the book of the law": Deuteronomy 27:26, quoted in Galatians 3:10–13 Justin Martyr
[22] 문서 Gregory of Nazianzus quotes in the same passage Galatians (above), 1 Corinthians 15 (the "new Adam") and Hebrews 5:8 (obedience through suffering) Gregory of Nazianzus
[23] 문서 Kelly p. 377; Gregory of Nyssa, who follows him, developed the 'classic' theory of Christ as a ransom. Gregory of Nyssa
[24] 문서 S. Finlan, ''Problems with Atonement'' (Liturgical Press, 2005), p. 121 S. Finlan
[25] 문서 Athanasius, The Incarnation of the Word, http://www.ccel.org/ccel/schaff/npnf204.vii.html Athanasius
[26] 문서 Athanasius ''On the Incarnation of the Word''. Athanasius
[27] 문서 Gregory of Nazianzus, Second Easter Oration, http://www.ccel.org/ccel/schaff/npnf207.iii.xxvii.html Gregory of Nazianzus
[28] 간행물 D. Flood, Substitutionary Atonement and the Church Fathers' in ''Evangelical Quarterly'' 82.2 (2010), p. 155. [http://therebelgod.com/AtonementFathersEQ.pdf Online]. D. Flood
[29] 간행물 D. Flood, Substitutionary Atonement and the Church Fathers' in ''Evangelical Quarterly'' 82.2 (2010) 142-159. [http://therebelgod.com/AtonementFathersEQ.pdf Online]. '[O]ne must look at how a patristic author is using ... concepts within their own understanding of the atonement and ask: what salvic purpose does Christ bearing our suffering, sin, D. Flood
[30] 문서 J. N. D. Kelly, ''Early Christian Doctrines'' (fifth, revised edition; London: Adam & Charles Black, 1977), p. 375. Compare F. W. Dillistone ''The Christian Understanding of the Atonement'' (Nisbet 1968). J. N. D. Kelly
[31] 문서 ''Cur Deus Homo'', Book I, XI
[32] 문서 Richard Southern, ''Anselm and his biographer'' (CUP 1963) Richard Southern
[33] 문서 The primitive character of Germanic tribal law is perhaps best evidenced by how closely it resembles the codes of ethics found among the street gangs of a major American city.
[34] 문서 Steve Jeffery, [[Mike Ovey|Michael Ovey]], Andrew Sach, 'N. T. Wright on Pierced for our Transgression', quoted in D. Flood, 'Substitutionary atonement and the Church Fathers' in ''Evangelical Quarterly'' 82.2 (2010), p. 143: 'Anselm did not teach penal substitution. Yes, he brought to prominence the vocabulary of ‘satisfaction’, which became important in later formulations. But in Anselm's feudal thought-world, it was God's honour that needed to be satisfied by substitutionary obedience, not his justice by substitutionary penalty.' Steve Jeffery, Mike Ovey, Andrew Sach
[35] 웹사이트 Europe in the Age of Reformation https://europeanhist[...] Zwingli
[36] 인용
[37] 웹사이트 Christianity today http://www.christian[...] 2004-01-16
[38] 서적 The Reception of the Church Fathers in the West: From the Carolingians to the Maurists
[39] 간행물 Concordia Theological Quarterly
[40] 기타
[41] 기타
[42] 기타
[43] 서적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44] 서적
[45] 서적
[46] 서적 The Theology of John Wesley: Holy Love and the Shape of Grace
[47] 서적 Wesley's Works
[48] 서적 The Scripture Way of Salvation 1997
[49] 서적 Responsible Grace
[50] 서적 Moral Transformation: The Original Christian Paradigm of Salvation Bridgehead 2011
[51] 서적 Paul on the Cross: Reconstructing the Apostle's Story of Redemption Fortress Press 2006
[52] 서적 Problems With Atonement: The Origins Of, And Controversy About, The Atonement Doctrine Liturgical Press 2005
[53] 서적 Recovering the Scandal of the Cross: Atonement in New Testament & Contemporary Contexts IVP Academic 2000
[54] 서적 De Jesu Christo Servatore 1578
[55] 웹사이트 What did the Cross achieve – The Logic of Penal Substitution http://www.the-highw[...] 2009-03-01
[56] 서적 Virtue Ethics
[57] 서적 The Christian Understanding of the Atonement Nisbet 1963
[58] 서적 Studies in Biblical law CUP 1947
[59] 서적
[60] 사전 Atonement
[61] 서적 Reconciliation and Hope
[62] 서적 Doctrines of the Creed
[63] 서적 Said or Sung
[64] 서적 The Church of Christ: A Biblical Ecclesiology for Today Eerdmans 1996
[65] 서적 Church Dogmatics
[66] 서적 Past Event and Present Salvation: The Story of the Atonement 1989
[67] 서적 The remaking of Christian Doctrine SCM 1974
[68] 서적 Church Dogmatics
[69] 서적 Atonement And The Modern Mind Hodder And Stoughton 1903
[70] 서적 The Cross of Christ IVP 1986
[71] 서적 The Lost Message of Jesus Zondervan 2003
[72] 서적 Pierced for our Transgressions: Rediscovering the Glory of Penal Substitution IVP 2007
[73] 간행물 Lent Talks BBC Radio 4 2007-04-04
[74] 뉴스 Easter message: Christ did not die for sin https://www.telegrap[...] The Telegraph 2011-02-27
[75] 간행물 Today BBC Radio 4 2007-04-04
[76] 뉴스 Easter message: Christ did not die for sin https://www.telegrap[...] The Telegraph 2011-02-27
[77] 웹사이트 BBC http://www.bbc.co.uk[...] 2011-02-27
[78] 서적 Mere Christianity Fount 1981
[79] 서적 Proclaiming the Scandal of the Cross Baker Academic 2006
[80] 서적 Atonement, Justice, and Peace Eerdmans 2011
[81] 서적 A Reader's Guide to Caspian IVP 2008
[82] 웹사이트 Unspoken Sermons, Series I., II., and III. https://www.gutenber[...] 2023-05-17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