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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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378년은 동진, 전진 등 여러 국가의 연호가 사용된 해이다. 훈족이 트라키아를 침략하고,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로마 제국이 서고트족에게 패배하여 발렌스 황제가 사망했다. 테오도시우스 1세가 동로마 제국의 새로운 황제가 되었으며, 마르코만니족과 쿠아디족이 판노니아를 침략하고, 아르메니아는 페르시아에 넘어갔다. 또한, 마야 문명에서는 시야흐 칵이 테오티우아칸의 지배를 강화하며 여러 도시를 정복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수도교가 완공되었으며,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로 서임되었다. 오세르의 게르마누스가 태어났고, 세바스티아누스, 트라야누스, 발렌스, 아린테우스, 보스트라의 티투스가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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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8년 - 아드리아노폴리스 전투
아드리아노폴리스 전투는 378년 고트족과 동로마 황제 발렌스 간의 전투로, 로마군이 참패하고 발렌스 황제가 전사하면서 로마 제국의 군사적 권위가 실추되는 결과를 낳았다. - 빈 문단이 포함된 문서 - 광주고등법원
광주고등법원은 1952년에 설치되어 광주광역시, 전라남도, 전북특별자치도, 제주특별자치도를 관할하며, 제주와 전주에 원외재판부를 두고 있다. - 빈 문단이 포함된 문서 - 1502년
1502년은 율리우스력으로 수요일에 시작하는 평년으로, 이사벨 1세의 이슬람교 금지 칙령 발표, 콜럼버스의 중앙아메리카 해안 탐험,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상관 설립, 크리미아 칸국의 킵차크 칸국 멸망, 비텐베르크 대학교 설립, 최초의 아프리카 노예들의 신대륙 도착 등의 주요 사건이 있었다.
378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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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8년 | |
기원전 | 기원전 378년 |
기원후 | 378년 |
10년 단위 | 370년대 |
100년 단위 | 4세기 |
1000년 단위 | 1천년기 |
일본 | |
고훈 시대 | 14년 (닌토쿠 천황) |
중국 | |
동진 | 태원(太元) 3년 |
전진 | 건원(建元) 14년 |
한국 | |
백제 | 근구수왕 4년 |
고구려 | 소수림왕 8년 |
신라 | 내물 마립간 23년 |
2. 연호
- 동진(東晉) 태원(太元) 3년
- 전진(前秦) 건원(建元) 14년
- 일본 닌토쿠 천황 66년, 황기 1038년
- 고구려 소수림왕 8년
- 백제 근구수왕 4년
- 신라 내물왕 23년
- 단기 2711년
- 불멸기원 921년
- 유대력 4138년 - 4139년
3. 기년
4. 사건
- 훈족이 트라키아를 침략했다.[1]
- 고트 전쟁: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동고트 왕국이 로마 제국을 격파하고 발렌스 황제가 전사했다. 이 전투는 프리티게른이 이끌었으며, 로마군은 발렌스황제가 직접 이끌었다.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로마군은 서고트족에게 대패했다.[1]
- 테오도시우스 1세가 동로마 제국의 새로운 황제가 되었다.
- 마르코만니족과 쿠아디족이 판노니아를 침략했다.
- 아르메니아가 페르시아에게 넘어갔다.
- 로마 제국에서 점성술사 폴로스 알렉산드리누스가 점성술 입문서를 저술했다.[1]
- 시야흐 칵은 마야 문명의 왕들을 테오티우아칸의 황제 창던지는 부엉이의 친척들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 시야흐 칵은 1월 8일 와카를, 1월 16일 티칼을 정복하고, 왁사크툰을 정복했다.
- 봄 – 발렌스 황제는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와 4만 명의 군대를 동원했다. 그는 세바스티아누스를 트라키아에서 로마 군대를 재편성하기 위한 ''군사령관''(magister militum)으로 임명했다.[1]
- 2월 – 알레마니의 일부인 렌티엔세스는 얼어붙은 라인강을 건너 시골을 습격했으나, 서부 국경을 방어하는 로마 ''보조군단''(auxilia palatina)에 의해 격퇴되었다.[1]
- 5월 – 아르젠토바리아 전투: 그라티아누스 황제는 동쪽으로 보낸 군대를 소환해야 했다. 렌티엔세스는 콜마르(프랑스) 근처에서 말로바우데스에게 패배했고, 그라티아누스는 ''Alemannicus Maximus''라는 칭호를 얻었다.[1]
- 프리티게른은 군대를 카빌레(불가리아)에 집중시켰다. 고트족은 주로 발칸 산맥 남쪽의 강 계곡, 베로에, 카빌레 및 디발툼 마을 주변에 집중되었다.[1]
- 7월 – 로마 장군 프리게리두스는 "야만인"이 북서쪽(판노니아)으로 탈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치(이흐티만) 고개를 요새화했다.[1]
- 그라티아누스는 가벼운 무장 부대와 함께 라우리아쿰(오스트리아)에서 출발하여 다뉴브강을 따라 배로 이동했다. 그는 세르비아의 시르미움에서 4일 동안 머물면서 열병을 앓았다.[1]
- 8월 – 그라티아누스는 "마르스 진영"(현대 니시 근처의 국경 요새)으로 다뉴브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알란족 무리의 매복으로 여러 병사를 잃었다.[1]
- 프리티게른은 카빌레에서 남쪽으로 뻗어 툰자강을 따라 아드리아노플 방향으로 이동하여 군수품 공급망 관리 뒤편으로 이동하려고 했다.[1]
- 로마 정찰은 고트족을 탐지했고, 이미 아드리아노플 서쪽에 있던 발렌스는 방향을 바꿔 도시 외곽에 요새화된 진영을 구축했다.[1]
- 수레와 가족이 공격에 취약한 고트족은 북쪽으로 철수했다. 로마 정찰병은 툰자 계곡 위쪽에서 추가로 식량 조달을 하는 그레투응기 기병대를 탐지하지 못했다.[1]
- 프리티게른은 기독교 사제를 로마 진영으로 보내 발렌스에게 조건 제안과 편지를 보냈으나, 평화 제안은 거부되었다.[1]
- 고트족은 아드리아노플을 공격했으나, 방어벽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려다 석조물 덩어리를 떨어뜨리는 수비대에 의해 격퇴되었다.[1]
- 훈족의 지원을 받은 고트족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이동했으나, 제국의 동쪽 가장자리를 통제하는 아랍 부족에서 모집된 사라센에 의해 저지되었다.[1]
- 10월 – 식량 부족에 직면한 그레투응기는 분리되어 서쪽의 판노니아로 이동하여 가족들을 따라 마을과 농지를 습격했다.[1]
4. 1. 로마 제국
- 훈족이 트라키아를 침략했다.[1]
- 봄 – 발렌스 황제는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돌아와 4만 명의 군대를 동원했다. 그는 세바스티아누스를 트라키아에서 로마 군대를 재편성하기 위한 ''군사령관''(magister militum)으로 임명했다.[1]
- 2월 – 알레마니의 일부인 렌티엔세스는 얼어붙은 라인강을 건너 시골을 습격했으나, 서부 국경을 방어하는 로마 ''보조군단''(auxilia palatina)에 의해 격퇴되었다.[1]
- 5월 – 아르젠토바리아 전투: 그라티아누스 황제는 동쪽으로 보낸 군대를 소환해야 했다. 렌티엔세스는 콜마르(프랑스) 근처에서 말로바우데스에게 패배했고, 그라티아누스는 ''Alemannicus Maximus''라는 칭호를 얻었다.[1]
- 고트 전쟁: 발렌스는 정예 부대(2,000명)를 세바스티안과 함께 트라키아로 보내 고트족에 대항하여 게릴라전을 재개했다. 그는 에디르네 주변의 소규모 고트족 습격대를 추격했다.[1]
- 프리티게른은 군대를 카빌레(불가리아)에 집중시켰다. 고트족은 주로 발칸 산맥 남쪽의 강 계곡, 베로에, 카빌레 및 디발툼 마을 주변에 집중되었다.[1]
- 7월 – 로마 장군 프리게리두스는 "야만인"이 북서쪽(판노니아)으로 탈출하는 것을 막기 위해 수치(이흐티만) 고개를 요새화했다.[1]
- 그라티아누스는 가벼운 무장 부대와 함께 라우리아쿰(오스트리아)에서 출발하여 다뉴브강을 따라 배로 이동했다. 그는 세르비아의 시르미움에서 4일 동안 머물면서 열병을 앓았다.[1]
- 8월 – 그라티아누스는 "마르스 진영"(현대 니시 근처의 국경 요새)으로 다뉴브강을 따라 내려가다가 알란족 무리의 매복으로 여러 병사를 잃었다.[1]
- 프리티게른은 카빌레에서 남쪽으로 뻗어 툰자강을 따라 아드리아노플 방향으로 이동하여 군수품 공급망 관리 뒤편으로 이동하려고 했다.[1]
- 로마 정찰은 고트족을 탐지했고, 이미 아드리아노플 서쪽에 있던 발렌스는 방향을 바꿔 도시 외곽에 요새화된 진영을 구축했다.[1]
- 수레와 가족이 공격에 취약한 고트족은 북쪽으로 철수했다. 로마 정찰병은 툰자 계곡 위쪽에서 추가로 식량 조달을 하는 그레투응기 기병대를 탐지하지 못했다.[1]
- 프리티게른은 기독교 사제를 로마 진영으로 보내 발렌스에게 조건 제안과 편지를 보냈으나, 평화 제안은 거부되었다.[1]
- 발렌스는 반란에 맞서기 위해 트라키아로 정예 로마 군대를 이끌었지만, 아드리아노플 전투에서 패배했다.[1]
- 고트족은 아드리아노플을 공격했으나, 방어벽에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려다 석조물 덩어리를 떨어뜨리는 수비대에 의해 격퇴되었다.[1]
- 훈족의 지원을 받은 고트족은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이동했으나, 제국의 동쪽 가장자리를 통제하는 아랍 부족에서 모집된 사라센에 의해 저지되었다.[1]
- 10월 – 식량 부족에 직면한 그레투응기는 분리되어 서쪽의 판노니아로 이동하여 가족들을 따라 마을과 농지를 습격했다.[1]
- 동로마 제국 황제 발렌스가 이끄는 로마군과 서고트족 사이에 아드리아노플 전투가 일어났다.[1]
- 로마 제국에서 점성술사 폴로스 알렉산드리누스가 점성술 입문서를 저술했다.[1]
4. 2. 메소아메리카
훈족이 트라키아를 침략했다. 시야흐 칵은 마야 문명의 왕들을 테오티우아칸의 황제 창던지는 부엉이의 친척들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시야흐 칵은 1월 8일 와카를, 1월 16일 티칼을 정복하고, 왁사크툰을 정복했다.4. 3. 기타
훈족이 트라키아를 침략하였다. 동로마 제국 황제 발렌스가 이끄는 로마군과 서고트족 사이에 아드리아노플 전투가 일어났다. 로마 제국에서 점성술사 폴로스 알렉산드리누스가 점성술 입문서를 저술했다. 고트 전쟁중 아드리아노플 전투가 있었다.5.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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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건축
7. 종교
나지안조스의 그레고리오스가 콘스탄티노폴리스의 주교로 서임되었다. 교황 다마소 1세는 간통 혐의로 고발되었으나 그라티아누스에 의해 무죄로 판결받았다.
8. 탄생
- 오세르의 게르마누스, 기독교 주교 (추정)
분류:378년 출생
9. 사망
- 8월 9일
- * 세바스티아누스, 로마 장군 (''마기스테르 페디툼'')
- * 트라야누스, 로마 장군 (''마기스테르 밀리툼'')
- * 발렌스, 로마 집정관이자 황제 (328년 출생)
- 아린테우스, 로마 정치인이자 장군
- 보스트라의 티투스, 기독교 주교이자 신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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