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영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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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민영예상은 일본에서 국민들에게 널리 존경받고 사회에 밝은 희망을 준 인물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1977년 프로 야구 선수 오 사다하루를 기리기 위해 제정되었다. 수상 기준은 '국민들에게 널리 경애를 받고 사회에 밝은 희망을 주는 데 현저한 업적을 세운 자'로, 수상자는 내각총리대신이 결정하며, 표창장과 기념품이 수여된다. 역대 수상자로는 스포츠 선수, 작곡가, 배우 등이 있으며, 단체로는 2011년 일본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수상했다. 선정 기준의 모호성, 정치적 이용 논란, 단체 수상 관련 규정 문제 등 비판도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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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영예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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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영예상 | |
![]() | |
개요 | |
종류 | 일본의 훈장 |
수여 기관 | 내각총리대신 |
수여 대상 | 사회에 밝은 희망과 용기를 준 국민에게 수여 |
제정일 | 1977년 8월 8일 |
법적 근거 | 국민영예상 수여에 관한 각의 결정 |
일본어 명칭 | 국민栄誉賞 (こくみんえいよしょう) |
로마자 표기 | Kokumin Eiyoshō |
영어 명칭 | People's Honour Award |
수여 조건 | |
수여 요건 | 널리 국민에게 존경받고 사회에 밝은 희망과 용기를 준 업적 문화, 스포츠, 예술 분야 업적 등 |
특징 | |
부상 | 상장과 함께 부상이 수여됨 (일반적으로 부상으로 부상금이나 기념품이 수여됨) |
수여 시기 | 수상자의 업적이 인정되는 시점에 수여 (특정 기념일이나 연도에 한정되지 않음) |
수여 횟수 | 매년 수여되는 것은 아니며, 수여 요건을 충족하는 인물이 나타날 때마다 수여 |
함께 수여되는 훈장 | 문화훈장 또는 다른 훈장이 함께 수여될 수 있음 |
기타 | |
논란 | 정치적 의도나 특정 인물에 대한 특혜 논란 발생 가능성 |
역대 수상자 | 수상자 목록 참고 |
관련 링크 | |
수상자 목록 | 국민영예상 수상자 목록 |
수상 관련 공식 자료 | 내각부 홍보실 |
2. 역사
1977년 당시 내각총리대신이었던 후쿠다 다케오가 홈런 세계 신기록을 달성한 프로 야구 선수 오 사다하루를 기리기 위해 창설했다.[60] 이 상은 '국민들에게 널리 경애받고 사회에 밝은 희망을 주는 데 현저한 업적'을 세운 인물에게 수여되며,[63] 첫 수상자인 오 사다하루처럼 일본 국적이 아니어도 수상이 가능하다.[60] 수상자 선정에는 민간 전문가의 의견을 듣고 본인의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를 거친다.[63][60] 수상자에게는 표창장, 방패와 함께 기념품 등이 주어지며,[63] 시상식은 주로 내각총리대신 관저에서 열린다.[66][67] 현재까지 개인 27명과 단체 1곳(일본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수상했으며, 이 중 12명은 사후에 수여되었다.[68]
번호 | 수상자 성명 (예명 등) | 사진 | 수상 당시 연령 | 수상 연월일 (수여 내각) | 직업 | 수상 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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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오 사다하루 | ![]() | 37세 | 1977년 9월 5일 (후쿠다 다케오 내각) | 프로 야구 선수 | 개인 통산 홈런 세계 신기록 달성(756호) |
2 | 코가 마사오 | 고인 | 1978년 8월 4일 (후쿠다 다케오 개조내각) | 작곡가 | ‘고가 멜로디’로 불리는 수많은 악곡 작곡에 대한 공로 | |
3 | 하세가와 카즈오 | 고인 | 1984년 4월 19일 (제2차 나카소네 내각) | 배우 | 연기에 정진하여 영화 및 연극계에 탁월한 공헌 | |
4 | 우에무라 나오미 | ![]() | 고인 | 1984년 4월 19일 (제2차 나카소네 내각) | 모험가 | 세계 5대륙 최고봉 등정 등을 남겼고, 하세가와 카즈오와 함께 사상 최초로 복수의 동시 수상이 됐다. |
5 | 야마시타 야스히로 | ![]() | 27세 | 1984년 10월 9일 (제2차 나카소네 내각) | 유도 선수 | 유도에 있어 진지한 정진과 전인미답의 기록 달성 등을 남겼다. |
6 | 기누가사 사치오 | ![]() | 40세 | 1987년 6월 22일 (제3차 나카소네 내각) | 프로 야구 선수 | 연속 경기 출장 세계 신기록 달성(2,215경기) |
7 | 가토 가즈에 (미소라 히바리) | ![]() | 고인 | 1989년 7월 6일 (우노 내각) | 가수 | 진지하게 정진한 가요를 통해 일본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 |
8 | 아키모토 미쓰구 (지요노후지 미쓰구) | ![]() | 34세 | 1989년 9월 29일 (제1차 가이후 내각) | 스모 요코즈나 | 사상 제2위의 연승 기록, 스모계에 현저한 공헌 |
9 | 마스나가 다케오 (후지야마 이치로) | ![]() | 81세 | 1992년 5월 28일 (미야자와 내각) | 가수 | 가요를 통해서 일본 국민들에게 희망과 격려를 준 공로, 아름다운 일본어 보급에 공헌. |
10 | 하세가와 마치코 | ![]() | 고인 | 1992년 7월 28일 (미야자와 내각) | 만화가 | 가정 만화(《사자에상》)를 통해서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일본 사회에 윤택함과 평온함을 주었다. |
11 | 핫토리 료이치 | ![]() | 고인 | 1993년 2월 26일 (미야자와 개조내각) | 작곡가 | 수많은 가요곡들을 만들어 일본 국민들에게 희망과 윤택함을 주었다. |
12 | 다도코로 야스오 (아츠미 키요시) | ![]() | 고인 | 1996년 9월 3일 (제1차 하시모토 내각) | 배우 | 영화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를 통해 인정미가 풍부한 연기로 일본 국민들에게 기쁨과 윤택함을 주었다. |
13 | 요시다 다다시 | ![]() | 고인 | 1998년 7월 7일 (제2차 하시모토 개조내각) | 작곡가 | ‘요시다 멜로디’로 불리는 수많은 악곡들을 작곡하여 일본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과 윤택함을 주었다. |
14 | 구로사와 아키라 | ![]() | 고인 | 1998년 10월 1일 (오부치 내각) | 영화 감독 | 수많은 불후의 명작을 통해 일본 국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세계 영화사에 훌륭한 족적을 남겼다. |
15 | 다카하시 나오코 | ![]() | 28세 | 2000년 10월 30일 (제2차 모리 내각) | 육상 선수 | 2000년 시드니 하계 올림픽 여자 마라톤에서 우승해 육상 경기에서는 일본 여자 선수 첫 금메달을 획득해 일본 국민들에게 깊은 감동과 용기를 주었다. |
16 | 엔도 미노루 | ![]() | 고인 | 2009년 1월 23일 (아소 내각) | 작곡가 | 세대를 넘어 길고 애창되는 정감으로 가득 넘친 많은 명곡들을 내보내어 일본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과 윤택함을 주었다. |
17 | 무라카미 미쓰 (모리 미츠코) | ![]() | 89세 | 2009년 7월 1일 (아소 내각) | 배우 | 오랜 세월에 걸쳐 예능 분야의 일선에서 활약을 하여 특히 연극 《방랑기》에서 무려 2,000회를 넘는 주연을 맡아 일본 국민들에게 꿈과 희망과 윤택함을 주었다. 현재 생존 중에 수상한 사람 가운데 역대 최고령 보유자.[70] |
18 | 모리시게 히사야 | ![]() | 고인 | 2009년 12월 22일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 | 배우 | 예능 분야에 있어 오랜 세월에 걸쳐 제1선에서 수많은 활약을 하는 등 뛰어난 연기와 가창력으로 일본 국민들에게 사랑을 받으면서 꿈과 희망과 윤택함을 주었다.[71] |
19 | 2011년 FIFA 여자 월드컵 일본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 ![]() | 단체 | 2011년 8월 18일 (간 제2차 개조내각) | 여자 축구팀 | 2011년 FIFA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을 차지하면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한결같은 자세로 일본 국민들에게 감동을 안겨 주었으며 특히 동일본 대지진 등으로 인해 실의에 빠진 일본 국민들에게 용기를 주었다.[72] |
20 | 요시다 사오리 | ![]() | 30세 | 2012년 11월 7일 (노다 제3차 개조내각) | 레슬링 선수 | 세계 대회에서 13연패라는 레슬링 경기 사상 전인미답의 위업을 달성하면서 국민들에게 감동과 희망, 용기를 주었다. |
21 | 나야 고키 (다이호 고키) | 고인 | 2013년 2월 25일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 스모 요코즈나 | 1960년대 일본에서 어린이가 좋아하는 것으로서 요미우리 자이언츠나 계란말이와 함께 유행어가 되었을 정도의 인기를 얻었고 스모 대회 사상 최다인 32회의 우승을 기록하는 등 ‘쇼와의 요코즈나’로서 스모계에 훌륭한 공적을 남기는 것과 동시에 많은 국민에게 사랑받는 국민적인 영웅으로서 일본 사회에 밝은 희망과 용기를 주었다.[73][74] | |
22 | 나가시마 시게오 | ![]() | 77세 | 2013년 5월 5일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 프로 야구 선수 야구 감독 | 투지 넘치는 플레이와 경이로운 승부 근성으로 야구사에 빛나는 성적을 남겼고, ‘미스터 프로 야구’로 모든 이에게 사랑 받았던 국민적 스타로서 프로 야구를 국민 스포츠로까지 끌어올렸으며 야구계의 발전에 매우 현저한 공헌을 했을 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사회에 밝은 꿈과 희망을 주었다는 점에서 현저한 실적을 남겼다.[75][76] 또한 수상일을 이날(2013년 5월 5일)로 택한 이유는 나가시마의 등번호 ‘3’번 및 나가시마의 프로 생활로부터 55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
23 | 마쓰이 히데키 | ![]() | 38세 | 2013년 5월 5일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 프로 야구 선수 | 나가시마 시게오와는 사제 관계에 있어 한결같은 노력과 진지한 플레이에 힘입어 미국과 일본을 통틀어 20여년 간 팀의 주축을 담당했고 2009년 아시아 출신 선수 최초로 월드 시리즈 MVP를 차지하는 등의 수많은 성적을 남겼으며 ‘고질라’라는 애칭으로 일본 국민들에게 사랑받아 그의 활약은 사회에 큰 감동과 기쁨을 주면서 많은 청소년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었다.[75][76] 또한 수상일을 이날(2013년 5월 5일)로 택한 이유는 마쓰이의 현역 시절 등번호가 ‘55’번이기 때문이다. 또한, 나가시마와 마쓰이의 동시 수상은 1984년 우에무라·하세가와 이후 29년 만에 역대 두 번째가 된다. |
24 | 이초 가오리 | ![]() | 32세 | 2016년 10월 20일 (제3차 아베 신조 제2차 개조내각) | 레슬링 선수 | 올림픽 사상 최초로 여자 개인 종목 4연패라는 위업을 달성해 많은 국민들에게 깊은 감동과 용기, 사회에 밝은 희망을 주었다.[77][78] |
25 | 하부 요시하루 | 47세 | 2018년 2월 13일[79] (제4차 아베 신조 내각) | 쇼기 기사 | 쇼기계를 이끄는 기사 1인자로서 1996년에 처음으로 7관왕을 동시에 제패하는 등 비할 데 없는 공적을 쌓았고 쇼기계에선 최초로 영세 7관왕이라는 역사에 새기는 위업을 달성하여 많은 국민들에게 꿈과 감동을 사회에 밝은 희망과 용기를 줬다는 현저한 업적이 있다.[80] | |
26 | 이야마 유타 | ![]() | 28세 | 2018년 2월 13일[79] (제4차 아베 신조 내각) | 바둑 기사 | 바둑계를 이끄는 기사 1인자로서 현저한 공적을 계속 쌓아올려 연간 그랜드 슬램을 포함한 바둑계에선 최초로 두 번의 7관왕을 동시에 제패했다는 역사에 새기는 위업을 달성하여 많은 국민들에게 꿈과 감동을 사회에 밝은 희망과 용기를 줬다는 현저한 업적이 있다.[80] 특히 헤이세이 태생으로서는 최초의 국민영예상 수상자이며, 또한 하부와 이야마의 동시 수상은 2013년의 나가시마·마쓰이 이후 5년 만에 역대 세 번째이다. |
27 | 하뉴 유즈루 | ![]() | 23세 | 2018년 7월 2일[81] (제4차 아베 신조 내각) | 피겨스케이팅 선수 |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남자 싱글 부문에서 우승하여 남자 싱글 종목에서는 66년 만에 2연패를 달성하는 등 세계 역사에 남는 쾌거를 달성해 많은 국민에게 꿈과 감동을, 그리고 사회에 밝은 희망과 용기를 줬다. 현재 수상자 중에서 역대 최연소 기록 보유자(개인).[81] |
28 | 구니에다 신고 | ![]() | 39세 | 2023년 3월 17일 (제2차 기시다 내각) | 휠체어 테니스 선수 | 휠체어 테니스 그랜드슬램 및 패럴림픽에서 우승하여 장애인 스포츠의 사회적 인지도 향상과 그 발전에 현저한 공헌을 했다. 장애인 스포츠인으로는 최초 수상. |
첫 수상자인 오 사다하루는 중화민국 국적이며, 현재까지 유일한 외국 국적 수상자이다. 일본 국적자 중 첫 수상자는 코가 마사오이며, 일본 국적자 중 생존 시 첫 수상자는 야마시타 야스히로이다. 역대 수상자 가운데 프로 야구 선수는 4명인데, 기누가사 사치오를 제외한 3명(오 사다하루, 나가시마 시게오, 마쓰이 히데키)이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 선수였다. 또한 이들 4명은 모두 센트럴 리그 소속 구단 선수였으며, 퍼시픽 리그 소속 선수의 수상 사례는 아직 없다.
2. 1. 제정 배경
1977년, 당시 내각총리대신 후쿠다 다케오가 홈런 세계 신기록을 달성한 프로 야구 선수 오 사다하루(왕정치)를 기리기 위해 창설했다.[60] 이는 기존의 내각총리대신 현창이 ‘학술 및 문화 진흥에 공헌한 자’ 등 6개 분야로 수상 대상을 정해두었으나 프로 야구 선수를 표창한 전례가 없었고,[60][61] 오 사다하루가 당시 서훈을 받기에는 나이가 너무 젊었기 때문에[62] 보다 유연한 규정을 가진 표창으로 마련되었다.[60]이 상은 1977년 8월 30일 내각총리대신 결정으로 제정된 '국민영예상 표창 규정'에 근거하며, 그 목적은 "널리 국민에게 존경받고 사회에 밝은 희망을 주는 데 현저한 업적이 있었던 자의 영예를 칭송하는 것"[63]으로 규정되어 있다. 수상 대상은 "내각총리대신이 본 표창의 목적에 비추어 표창하는 것을 적절하다고 인정하는 자"[63]로 상당히 폭넓게 해석될 수 있다. 첫 수상자인 오 사다하루가 중화민국 국적이었던 점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 국적 보유는 필수 요건이 아니다. 또한 공개된 기준 외에도 "지금까지의 공적 위에 더욱 역사를 새로 쓸 만한 압도적인 공적을 세운 자"라는 암묵적인 기준도 충족해야 하는 것으로 보인다.[60]
수상자 선정은 '국민영예상 표창 규정 실시 요령'에 따라 후보자에 대해 "민간 전문가의 의견을 듣도록"[63] 정하고 있어, 총리의 의향만으로 결정될 수는 없다. 전문가는 수상 대상자와 관련된 분야에서 선정되며, 순차적으로 의견을 청취한다.[60] 또한 수상 결정에 앞서 본인(고인의 경우 유족 등 관계자)에게 의사를 확인하며, 정식 검토 절차는 수상 의사가 확인된 후에 시작된다.[60]
수상자에게는 표창장과 방패 외에 기념품 또는 금일봉이 수여된다.[63] 지금까지 금일봉이 수여된 사례는 없으며 모두 기념품이 증정되었다. 기념품으로는 은제품이나 시계가 많고, 그 외에 오 사다하루에게는 독수리 박제,[60] 2011 FIFA 여자 월드컵 일본 여자 축구 대표팀에게는 구마노후데 화장솔 세트,[64] 요시다 사오리에게는 진주 목걸이,[65] 이초 가오리에게는 니시진오리 금색 띠 등이 수여되었다.
시상식은 관례적으로 내각총리대신 관저에서 열리지만 예외도 있었다. 2013년 5월 5일 나가시마 시게오와 마쓰이 히데키의 시상식은 도쿄 돔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 공식 경기 중 마쓰이의 은퇴식을 겸해 치러졌다. 당시 내각총리대신이었던 아베 신조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시상식에 참석했고, 시구식에서는 심판 역할을 맡기도 했다.[66][67]
2. 2. 수상 기준 및 절차
이 상은 1977년 8월 30일 내각총리대신 결정으로 제정된 국민영예상 표창 규정에 근거하며, 그 목적은 "널리 국민에게 존경받고 사회에 밝은 희망을 주는 데 현저한 업적이 있었던 것에 대해 그 영예를 찬양하는 것"[63]으로 규정되어 있다. 수상 대상은 "내각총리대신이 본 표창의 목적에 비추어 표창하는 것을 적절하다고 인정하는 것"[63]으로, 상당히 폭넓은 해석이 가능하다. 첫 수상자인 왕정치가 중화민국 국적이었던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일본 국적 보유는 필수 요건이 아니다. 또한 공개된 수여 기준 외에도, "지금까지 공적을 쌓아온 위에, 더욱 역사를 바꿀 만한, 압도적인 공적을 올린"이라는 소위 '암묵적인 이해'를 충족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시각이 있다.[60]수상자 선정 방식은 국민영예상 표창 규정 시행 요령에 따라 "민간 유식자의 의견을 듣는다"[63]고 정하고 있어, 총리의 의향만으로 결정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유식자는 수상 대상자의 활동 분야에 맞춰 선정되며, 순차적으로 의견을 청취한다.[60] 또한, 수상 결정에 앞서 본인(고인의 경우에는 유족 등 관계자)에게 수여 의사를 타진하며, 공식적인 검토 절차는 수상 의사가 확인된 후에 시작된다.[60]
수상자에게는 표창장 및 방패 외에 기념품 또는 금일봉이 부상으로 주어진다.[63] 현재까지 금일봉이 수여된 사례는 없으며[17], 모두 기념품이 증정되었다. 기념품은 대부분 은제품이나 시계이지만, 왕정치에게는 독수리 박제,[60] 2011 FIFA 여자 월드컵 일본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에게는 구마노후데 화장붓 7개,[64] 요시다 사오리에게는 진주 목걸이,[65] 레슬링 선수 이초 카오루에게는 니시진오리 금색 허리띠가 수여된 바 있다. 하뉴 유즈루는 부상인 기념품과 금일봉을 모두 사퇴한 사례가 있다.
증정 및 시상식은 관례적으로 내각총리대신 관저에서 열린다. 하지만 2013년 5월 5일에 열린 나가시마 시게오와 마쓰이 히데키에 대한 시상식은 예외적으로 도쿄 돔에서 열린 요미우리 자이언츠 주최 공식 경기 중 마쓰이 히데키의 은퇴식을 겸하여 치러졌다. 이 날 증정식에는 당시 내각총리대신이었던 아베 신조가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고 참석하여 시구식에서 심판 역할을 맡기도 했다.[66][67]
2. 3. 기념품 및 시상식
수상자에게는 표창장과 방패 외에 기념품 또는 금일봉이 주어진다.[63] 하지만 2021년 기준으로 금일봉이 수여된 사례는 없으며,[17] 명확한 금액은 공표되지 않았다. 언론 등에서는 약 100만 엔 정도로 추정하고 있지만, 이는 기준이나 근거가 불명확한 추측에 불과하다. 하뉴 유즈루는 부상인 기념품과 금일봉을 모두 사퇴한 바 있다.대부분의 수상자에게는 기념품으로 은제품이나 시계가 수여되었다. 그 외 특별한 기념품으로는 다음과 같은 사례가 있다.
- 왕정치: 독수리 박제[60]
- 2011 FIFA 여자 월드컵 일본 여자 대표팀: 구마노후데 화장붓 7개[64][18]
- 요시다 사오리: 진주 목걸이[65][19]
- 이초 카오리: 니시진오리 금색 허리띠
시상식은 관례적으로 내각총리대신 관저에서 열린다. 그러나 2013년 5월 5일에 열린 나가시마 시게오와 마쓰이 히데키의 시상식은 예외적으로 도쿄 돔에서 진행되었다. 이 시상식은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공식 경기 중에 마쓰이 히데키의 은퇴식을 겸하여 치러졌다. 당시 내각총리대신이었던 아베 신조는 현직 총리 신분으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유니폼을 착용하고 시구식에서 심판 역할을 맡기도 했다.[66][67][20][21][22]
3. 역대 수상자
일본의 국민영예상은 1977년 창설 이래 2023년까지 개인 28명과 단체 1곳에 수여되었으며, 이 중 개인 12명은 사후에 추서되었다.[68] 단체로는 2011년 2011년 FIFA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한 일본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처음으로 수상했으며, 당시 선수와 코칭 스태프 35명 전원이 수상 대상이 되었다.[68][72][24]
원칙적으로 일본인을 대상으로 하지만, 첫 수상자인 프로 야구 선수 오 사다하루는 중화민국 국적자로, 현재까지 유일한 외국 국적 수상자이다.[2] 일본 국적자 중 최초 수상자는 작곡가 고가 마사오이며, 일본 국적자 최초의 생존 수상자는 유도 선수 야마시타 야스히로이다.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일본계 외국인의 수상 사례는 아직 없다.
역대 수상자 가운데 프로 야구 선수는 4명(오 사다하루, 기누가사 사치오, 나가시마 시게오, 마쓰이 히데키)인데, 이 중 기누가사 사치오를 제외한 3명이 요미우리 자이언츠 소속 선수 출신이다. 또한 4명 모두 센트럴 리그 소속 구단 선수였으며, 퍼시픽 리그 소속 구단 선수가 수상한 사례는 없다. 장애인 스포츠 선수로는 2023년 휠체어 테니스 선수 구니에다 신고가 최초로 수상했다.[35]
3. 1. 개인 수상자
국민영예상은 일본에서 공적이 현저한 인물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1977년 창설 이후 2023년까지 개인 28명과 단체 1곳(일본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이 수상했으며, 이 중 개인 12명은 사후에 추서되었다.[68] 개인 수상자는 다음과 같다.번호 | 수상자 성명 (예명 등) | 사진 | 수상 당시 연령 | 수상 연월일 (수여 내각) | 직업 | 수상 사유 | 기념품 | 기타 영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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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왕정치(王貞治) | ![]() | 37세 | 1977년 9월 5일 (후쿠다 다케오 내각) | 프로 야구 선수 | 개인 통산 홈런 세계 신기록 달성(756호).[2] | 매 박제 | 문화공로자 |
2 | 고가 마사오(古賀政男) | 사후 수상 (만 73세 사망) | 1978년 8월 4일 (후쿠다 다케오 개조내각) | 작곡가 | ‘고가 멜로디’로 불리는 독자적인 악곡 작곡 업적. | 회중시계 | 종사위, 훈삼등 수보장, 자수포장, 은배 하나(국화 문장) | |
3 | 하세가와 카즈오(長谷川一夫) | 사후 수상 (만 76세 사망) | 1984년 4월 19일 (제2차 나카소네 내각) | 배우 | 탁월한 연기로 영화 및 연극계에 공헌. 우에무라 나오미와 함께 최초 동시 수상. | 은제 장식액 화병 | 훈삼등 수보장, 자수포장, 은배 하나(국화 문장) | |
4 | 우에무라 나오미(植村直己) | ![]() | 사후 수상 (만 43세 사망) | 1984년 4월 19일 (제2차 나카소네 내각) | 모험가 | 세계 5대륙 최고봉 등정 등 공적. 하세가와 카즈오와 함께 최초 동시 수상. | 도자기 항아리 | |
5 | 야마시타 야스히로(山下泰裕) | 27세 | 1984년 10월 9일 (제2차 나카소네 내각) | 유도 선수 | 유도에서의 진지한 정진과 전인미답의 기록 달성.[4] | 탁상시계 | 자수포장, 은배 한 벌(국화 문장) | |
6 | 기누가사 사치오(衣笠祥雄) | 40세 | 1987년 6월 22일 (제3차 나카소네 내각) | 프로 야구 선수 | 연속 경기 출장 세계 신기록 달성(2,215경기). | 은제 릴리프 | ||
7 | 가토 가즈에 (미소라 히바리, 美空ひばり) | 사후 수상 (만 52세 사망) | 1989년 7월 6일 (우노 내각) | 가수 | 진지한 가요 활동을 통해 국민에게 꿈과 희망을 줌. | 은제 꽃병 | 감청포장 | |
8 | 아키모토 미쓰구 (지요노후지 미쓰구, 千代の富士貢) | ![]() | 34세 | 1989년 9월 29일 (제1차 가이후 내각) | 스모 요코즈나 | 통산 승리 수 기록 경신 등 스모계에 현저한 공헌.[5] | 청자기 항아리 | 종사위, 욱일중수장 |
9 | 마스나가 다케오 (후지야마 이치로, 藤山一郎) | 81세 | 1992년 5월 28일 (미야자와 내각) | 가수 | 가요를 통해 국민에게 희망과 격려를 주고, 아름다운 일본어 보급에 공헌. | 회중시계 | 종사위, 훈삼등 수보장, 자수포장, 은배 하나(국화 문장) | |
10 | 하세가와 마치코(長谷川町子) | 사후 수상 (만 72세 사망) | 1992년 7월 28일 (미야자와 내각) | 만화가 | 가정 만화 《사자에상》을 통해 제2차 세계 대전 후 일본 사회에 윤택함과 평온함을 줌. | 은제 꽃병 | 훈사등 보관장, 자수포장 | |
11 | 핫토리 료이치(服部良一) | 사후 수상 (만 85세 사망) | 1993년 2월 26일 (미야자와 개조내각) | 작곡가 | 수많은 가요곡 작곡으로 국민에게 희망과 윤택함을 줌. | 은제 꽃병 | 종사위, 훈삼등 수보장, 자수포장, 은배 하나(국화 문장) | |
12 | 다도코로 야스오 (아츠미 키요시, 渥美清) | 사후 수상 (만 68세 사망) | 1996년 9월 3일 (제1차 하시모토 내각) | 배우 | 영화 《남자는 괴로워》 시리즈의 인정미 넘치는 연기로 국민에게 기쁨과 윤택함을 줌. | 은제 화기 | 자수포장, 은배 하나(국화 문장) | |
13 | 요시다 다다시(吉田正) | 사후 수상 (만 77세 사망) | 1998년 7월 7일 (제2차 하시모토 개조내각) | 작곡가 | ‘요시다 멜로디’ 작곡으로 국민에게 꿈과 희망, 윤택함을 줌. | 은제 장식 접시 | 종사위, 훈삼등 욱일중수장, 자수포장 | |
14 | 구로사와 아키라(黒澤明) | 사후 수상 (만 88세 사망) | 1998년 10월 1일 (오부치 내각) | 영화 감독 | 수많은 명작으로 국민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세계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김. | 도자기 꽃병 | 종삼위, 문화훈장, 문화공로자, 은배 한 벌(국화 문장) | |
15 | 다카하시 나오코(高橋尚子) | ![]() | 28세 | 2000년 10월 30일 (제2차 모리 내각) | 육상 경기 선수 |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여자 마라톤 우승, 일본 여자 육상 선수 첫 금메달.[4] | 손목시계(파텍 필립) | 은배 한 벌(국화 문장) |
16 | 엔도 미노루(遠藤実) | 사후 수상 (만 76세 사망) | 2009년 1월 23일 (아소 내각) | 작곡가 | 세대를 넘어 애창되는 정감 넘치는 명곡 다수 발표.[6] | 손목시계 | 정사위, 욱일중광장, 문화공로자, 자수포장 | |
17 | 무라카미 미쓰 (모리 미츠코, 森光子) | ![]() | 89세 | 2009년 7월 1일 (아소 내각) | 배우 | 오랜 세월 예능계 최전선에서 활약, 특히 연극 《방랑기》 2,000회 이상 주연.[23][7] 생존 수상자 중 최고령. | 손목시계(오메가) | 종삼위, 문화훈장, 훈삼등 수보장, 문화공로자, 자수포장 |
18 | 모리시게 히사야(森繁久彌) | ![]() | 사후 수상 (만 96세 사망) | 2009년 12월 22일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 | 배우 | 오랜 기간 예능계 최전선에서 다채롭게 활약하며 뛰어난 연기와 가창력으로 국민적 사랑을 받음.[71][2] 사후 수상자 포함 최고령. | 손목시계 | 종삼위, 문화훈장, 훈이등 수보장, 문화공로자, 자수포장, 감청포장 |
19 | 2011년 FIFA 여자 월드컵 일본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 단체 수상 | 2011년 8월 18일 (간 제2차 개조내각) | 여자 축구팀 | 2011년 FIFA 여자 월드컵 우승으로 동일본 대지진 등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한 국민에게 감동과 용기를 줌.[72][24][8] | 화장솔(쿠마노후데) | 자수포장 | |
20 | 요시다 사오리(吉田沙保里) | ![]() | 30세 | 2012년 11월 7일 (노다 제3차 개조내각) | 레슬링 선수 | 세계 대회 13연패라는 레슬링 사상 전인미답의 위업 달성.[4] | 진주 목걸이(미키모토 제작) | 자수포장 |
21 | 나야 고키 (다이호 고키, 大鵬幸喜) | 사후 수상 (만 72세 사망) | 2013년 2월 25일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 스모 요코즈나 | 스모 역사상 최다인 32회 우승 기록 등 ‘쇼와의 요코즈나’로서 스모계 공헌 및 국민적 영웅.[73][74][25][26][9] | 벽시계 | 정사위, 욱일중광장, 문화공로자, 자수포장 | |
22 | 나가시마 시게오(長嶋茂雄) | 77세 | 2013년 5월 5일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 프로 야구 선수 야구 감독 | 투지 넘치는 플레이로 ‘미스터 프로 야구’로 불리며 프로 야구를 국민 스포츠로 끌어올리는 데 공헌.[75][76][27][28][10] 마쓰이 히데키와 동시 수상(역대 2번째). | 순금제 야구 방망이 | 문화훈장, 문화공로자 | |
23 | 마쓰이 히데키(松井秀喜) | ![]() | 38세 | 2013년 5월 5일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 프로 야구 선수 | 미국과 일본에서 활약하며 월드 시리즈 MVP 등 성과, ‘고질라’ 애칭으로 사랑받음.[75][76][10] 나가시마 시게오와 동시 수상. | ||
24 | 이초 가오리(伊調馨) | ![]() | 32세 | 2016년 10월 20일 (제3차 아베 신조 제2차 개조내각) | 레슬링 선수 | 올림픽 사상 최초 여자 개인 종목 4연패 달성.[77][78][29][30] | 띠 | 자수포장 |
25 | 하부 요시하루(羽生善治) | ![]() | 47세 | 2018년 2월 13일[79][31] (제4차 아베 신조 내각) | 쇼기 기사 | 쇼기계 최초 영세 7관 달성 등 비할 데 없는 공적.[80][32][11] 이야마 유타와 동시 수상(역대 3번째). | 벼루(아마바타 스즈리) 화장솔(쿠마노후데) | 내각총리대신 표창, 자수포장 |
26 | 이야마 유타(井山裕太) | 28세 | 2018년 2월 13일[79][31] (제4차 아베 신조 내각) | 바둑 기사 | 바둑계 최초 두 차례 7관 동시 제패 등 역사적 위업 달성.[80][32][12] 하부 요시하루와 동시 수상. 헤이세이 시대 출생 최초 수상자. | 내각총리대신 표창, 자수포장 | ||
27 | 하뉴 유즈루(羽生結弦) | ![]() | 23세 | 2018년 7월 2일[81][33] (제4차 아베 신조 내각) | 피겨스케이팅 선수 |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남자 싱글 2연패(66년 만) 등 세계적 쾌거 달성.[13] 개인 최연소 수상자. | 사퇴 | 자수포장 |
28 | 구니에다 신고(国枝慎吾) | 39세 | 2023년 3월 17일[34][35] (제2차 기시다 제1차 개조내각) | 휠체어 테니스 선수 | 휠체어 테니스 커리어 골든 슬램 달성 및 패럴림픽 4회 금메달 등 장애인 스포츠 발전에 현저히 공헌.[14] 장애인 스포츠 선수 최초 수상. | 손목시계(그랜드 세이코) | 자수포장 |
3. 2. 주요 수상자 목록 (표)
(예명 등)(수여 내각)
(후쿠다 다케오 내각)
(후쿠다 다케오 개조내각)
(제2차 나카소네 내각)
(제2차 나카소네 내각)
(제2차 나카소네 내각)
(제3차 나카소네 내각)
(미소라 히바리美空ひばり|미소라 히바리일본어)
(우노 내각)
(지요노후지 미쓰구千代の富士貢|지요노후지 미쓰구일본어)
(제1차 가이후 내각)
(후지야마 이치로藤山一郎|후지야마 이치로일본어)
(미야자와 내각)
(미야자와 내각)
(미야자와 개조내각)
(아쓰미 기요시渥美清|아쓰미 기요시일본어)
(제1차 하시모토 내각)
(제2차 하시모토 개조내각)
(오부치 내각)
(제2차 모리 내각)
(아소 내각)
(모리 미츠코森光子|모리 미쓰코일본어)
(아소 내각)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
일본 여자 축구 국가대표팀
(간 제2차 개조내각)
(노다 제3차 개조내각)
(다이호 고키大鵬幸喜|다이호 고키일본어)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야구 감독
(제2차 아베 신조 내각)
(제3차 아베 신조 제2차 개조내각)
(제4차 아베 신조 내각)
(제4차 아베 신조 내각)
(제4차 아베 신조 내각)
(제2차 기시다 개조내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