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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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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는 1988년 4월 26일에 치러졌으며, 총 유권자 수는 26,198,205명이었다. 소선거구 비례대표 병립제와 소선거구제를 통해 지역구 224석과 전국구 75석으로 총 299석의 국회의원을 선출했다. 선거 결과, 민주정의당이 제1당을 차지했지만 과반 의석 확보에는 실패하여 '여소야대' 국면이 시작되었다. 이로 인해 국정조사권이 발동되고 5공 비리 청문회가 열리는 등 정치적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이후 여당과 야당의 일부 세력이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을 창당하면서 정계 개편이 이루어졌다. 선거는 지역주의 심화를 보여주었고, 민주주의 발전과 함께 지역 갈등이라는 과제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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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지도 정보
1988년 대한민국 국회의원 선거구별 결과
기본 정보
국가대한민국
선거 유형국회의원 선거
이전 선거대한민국 제12대 국회의원 선거
이전 선거 연도1985년
다음 선거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다음 선거 연도1992년
선출 의석299석
과반 의석150석
선거일1988년 4월 26일
투표율75.77% (8.80pp)
선거 결과
정당민주정의당
대표노태우
득표수6,670,494
득표율33.96%
의석수125석
의석 변동23
득표율 변동1.29pp
정당평화민주당
대표박영숙
득표수3,783,279
득표율19.26%
의석수70석
의석 변동신생
득표율 변동신생
정당통일민주당
대표김명윤
득표수4,680,175
득표율23.83%
의석수59석
의석 변동신생
득표율 변동신생
정당신민주공화당
대표김종필
득표수3,062,506
득표율15.59%
의석수35석
의석 변동신생
득표율 변동신생
국회의장
선거 전 국회의장이재형
선거 전 국회의장 정당민주정의당
선거 후 국회의장김재순
선거 후 국회의장 정당민주정의당

2. 선거 정보

총유권자수는 26,198,205명이었다. 대통령은 노태우 (민주정의당)이었다. 의석 정수는 299석 (지역구 224석 + 전국구 75석) 이었고, 선거 제도는 소선거구제 + 비례대표제였다. 투표일은 1988년 4월 26일이었다.

1988년 3월 17일 공포·시행된 새 국회의원 선거법에 따라 실시되었다. 개정 선거법의 특징은 ① 중선거구 중심 제도에서 소선거구 중심 제도(병립제)로 변경되었고, ② 지역구 의석 비율 증가(3분의 2 → 4분의 3), ③ 전국구에서 제1당에 대한 보너스 의석 감소(3분의 2 → 2분의 1) 등으로 지역구 결과가 각 당의 선거 결과를 크게 좌우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의원 임기는 4년이었다. 선거 제도는 소선거구비례대표병립제로, 제8대 총선 이후 16년 만에 부활했다.[2]

선거 제도의 상세 내용은 다음과 같다.[2]

# 유권자는 지역구 후보자에게만 투표(기호식)한다.

# 지역구에서 최다 의석을 얻은 정당에 전국구의 절반인 38석을 배분한다. 나머지 의석을 지역구에서 5석 이상 얻은 정당에 의석 수에 따라 헤어식으로 배분한다.

# 소수 정당에 대한 배려 조치로 지역구에서 5석 미만이더라도 총 득표율이 3%를 초과하는 경우 전국구 1석을 배분한다(그 경우 제2당 이하의 배분이 감소).

# 전회와 마찬가지로 지역구에서 1석도 획득하지 못하고 득표율이 2% 미만인 정당은 정당 자격을 상실한다.

선거 인구는 26,198,205명이었다. 입후보자 수(지역구)는 1,040명이었다.

주요 정당 입후보자 수
정파후보자 수
민주정의당225
통일민주당198
신민주공화당179
평화민주당169
무소속110



:출처:중앙선거관리위원회 역대 선거 정보 시스템

2. 1. 선거 제도

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는 1988년 3월 17일 공포·시행된 새 국회의원 선거법에 따라 실시되었다.[2] 개정 선거법은 제8대 총선 이후 16년 만에 소선거구제를 부활시킨 것이 특징이다. 총 299석의 의석 중 224석은 소선거구제를 통해 선출되었고, 나머지 75석은 전국구 비례대표제로 배분되었다.[2]

선거 제도[2]의 상세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유권자는 지역구 후보자에게만 투표한다.
  • 지역구에서 최다 의석을 얻은 정당에게 전국구 의석의 절반(38석)을 배분한다.
  • 나머지 전국구 의석은 지역구에서 5석 이상을 얻은 정당에 의석수 비율(헤어식)에 따라 배분한다.
  • 지역구에서 5석 미만을 얻었더라도 총 득표율이 3%를 초과하는 정당에게는 전국구 1석을 배분한다.
  • 지역구에서 1석도 얻지 못하고 득표율이 2% 미만인 정당은 정당 자격을 상실한다.


이러한 선거 제도 변경으로 인해 지역구 선거 결과가 각 당의 총 의석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2. 2. 투표율

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의 전국 투표율은 75.8%로, 26,198,205명의 선거인 중 19,850,815명이 투표하였다. 이는 대한민국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 84.6%보다 낮고, 대한민국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의 투표율 71.9%보다는 높은 수치이다.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지역별 투표율
서울부산대구인천광주경기강원충북충남전북전남경북경남제주
투표율69.3 %77.7 %76.8 %70.1 %77.9 %71.3 %82.0 %83.1 %78.8 %80.0 %80.3 %83.3 %79.9 %82.6 %


3. 선거 결과

대한민국 제13대 총선 결과


여당인 민주정의당(민정당)은 제1당 자리는 확보했으나, 과반수(150석)를 크게 밑도는 의석 수에 그치면서 한국 헌정사상 처음으로 여당이 야당 총의석 수를 하회하는 ‘여소야대’ 상황이 되었다. 야당은 평화민주당(평민당)이 득표율에서 민정당과 통일민주당(민주당)에 이어 세 번째였음에도 불구하고, 전라도와 서울시에서 효율적으로 당선자를 배출한 것이 주효하여 의석 수에서 민주당을 넘어 제2당으로 도약했다. 민주당은 득표율에서는 민정당에 이어 제2당이 되었지만, 의석 수에서는 제3당에 머무르는 결과가 되었다. 또한 김종필이 이끄는 신민주공화당(공화당)은 그의 고향인 충청남도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어,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데 필요한 20석을 넘는 의석을 얻을 수 있었다.[3]

전년도 대통령 선거에서 ‘비지’(김대중 후보 비판적 지지 그룹) 그룹, ‘후단’(김영삼 후보를 염두에 둔 야당 후보 단일화 그룹) 그룹, ‘독후’(독자 민중 후보 옹립파, 재야 운동가 백기완을 옹립) 그룹으로 분열되었던 재야 운동 세력은, 비지 그룹이 평민당에 입당하고, 후단 그룹의 주요 부분은 ‘한겨레민주당’을 결성하고, 독후 그룹은 ‘민중당’을 결성하여 이번 선거에 도전했다. 선거 결과, 재야에서 평민당과 민주당에 입당한 문동환, 박영숙, 조승형, 서경원, 양성우, 박석무, 이철용, 이상수, 김영진, 정상용, 이해찬(이하 평민당), 강신옥, 노무현(후일 제16대 대한민국 대통령), 이인제(이하 민주당) 등이 당선되어 국회에 진출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한겨레민주당과 민중당은 실질적으로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했고(한겨레민주당에서 당선된 박형오는 당선 직후 평민당에 입당), 현실 정치의 벽의 두께를 실감하는 결과가 되었다.

  • '''투표율''':75.8% (이전 평균 투표율 79.6%)
  • *총 투표자 수:19,850,815명
  • *유효표 수:19,642,040표[3]


정당별 의석수와 득표수
정당명당선자 수득표수%
지역구전국구합계%
민주정의당873812541.96,670,49433.9
평화민주당54167023.43,783,27919.3
통일민주당46135919.74,680,17523.8
신민주공화당2783511.73,062,50615.6
한겨레민주당1010.3251,2361.3
기타 정당0000.0261,1891.2
무소속993.0933,1614.8
합계22475299100.019,642,040100.0



:출처: “<표 8-7>제13대 국회의원 총선거” 김호진 『한국 정치의 연구』 이건우 역 (삼일서방) 242쪽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역대 선거정보 시스템”을 참조하여 작성. 의석을 획득하지 못한 정당(신한민주당·민주한국당 등 9개 정당)의 득표는 “기타 정당”으로 합산하여 게재함.

여성 당선자 6명[4]
정당전국구
민주정의당5
평화민주당1
합계6



시·도별 지역구 의석수
지역선거구정당
민정평민민주공화무소
합계2248754462719
수도권서울특별시42101710302
인천직할시7601000
경기도281614601
강원도14803102
충청도충청북도9700200
충청남도182021301
호남(전라도)광주직할시5050000
전라북도140140000
전라남도18017001[5]0
영남(경상도)부산직할시151014000
대구직할시8800000
경상북도211702200
경상남도221209001
제주도3001002



:출처: 문경수 저 『한국현대사』(岩波新書) 172쪽의 「표6-제13대 국회의원 선거 시·도별 당선자수」.

지역별 득표율
colspan="2" |민정민주평민공화
전체34.023.819.315.8
수도권서울특별시26.223.427.016.1
인천직할시37.528.314.115.5
경기도36.122.915.918.2
충청도충청북도43.716.01.433.3
충청남도30.215.03.846.5
호남(전라도)광주직할시9.70.488.60.6
전라북도28.81.361.52.5
전라남도22.90.867.91.3
강원도43.621.64.020.2
영남(경상도)대구직할시48.228.40.713.2
부산직할시32.154.31.96.8
경상북도51.024.50.916.0
경상남도40.236.91.010.3
제주도36.027.16.03.4


  • 약칭에 관하여


:민주정의당=민정, 평화민주당=평민, 통일민주당=민주

:신민주공화당=공화, 한겨레민주당=한, 무소속=무소

  • 굵게 표시된 숫자는 해당 지역에서 제1당이 된 정당을 나타낸다.
  • 출처: 대니 유「한국 경우-지역주의의 향방」, 표5「민주화 이후의 국회의원 선거 정당별 득표율」(198~199쪽), 매진 칸 외 편저 『신판 비교·선거 정치-21세기 초두에 있어서의 선진 6개국의 선거』미네르바 서방. 참고로 본 표 작성에 있어 지역별로 구분하여 다시 정리했다.

3. 1. 정당별 득표 및 의석 현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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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득표의석
득표수%±지역구±전국구±합계±
민주정의당6,670,49433.9687±038125
통일민주당4,680,17523.83461359
평화민주당3,783,27919.26541670
신민주공화당3,062,50615.5927835
한겨레민주당251,2361.2810±01
민중의당65,6500.330±00±00±0
신한민주당46,8770.24
민주한국당32,7990.17
rowspan="5"|대한정의당25,4330.13±0±0±0
제3세대당16,1480.08
한주의통일한국당3,7360.02
사회민주당3,2670.02
기독성민당2,2470.01±0±0
무소속933,1614.759colspan=2 bgcolor=#F4F4F4|9
기권/무효208,775colspan=8 bgcolor=#F4F4F4|
합계19,850,815100±022475299
등록유권자/투표율26,198,20575.77colspan=7 bgcolor=#F4F4F4|



민주정의당은 득표율에서 제1당을 차지했지만, 지역구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했다. 통일민주당부산광역시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선전했지만, 서울특별시에서 평화민주당에 밀려 제2당에 머물렀다. 김대중이 이끄는 평화민주당은 호남 지방에서 압승을 거두며 제3당으로 올라섰고, 신민주공화당충청도 지역에서 선전하며 제4당이 되었다. 한겨레민주당은 1석을 얻는데 그쳤다.

3. 1. 1. 지역별 의석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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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총 의석 수획득 의석 수
민주정의당 (DJP)평화민주당 (PDP)통일민주당 (RDP)신민주공화당 (NDRP)한겨레민주당 (HDP)무소속
style="background:" |style="background:" |style="background:" |style="background:" |style="background:" |style="background:" |
서울42101710302
부산151014000
대구8800000
인천7601000
광주5050000
경기281614601
강원14803102
충북9700200
충남182021301
전북140140000
전남180170010
경북211702200
경남221209001
제주3001002
지역구 총계2248754462719
비례대표75381613800
총계29912570593519



어떤 정당도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고 다당제 상황이 나타났지만, 전년도 대통령 선거에서 표면화된 지역주의가 크게 영향을 미쳤다. 서울을 제외한 전국 각지에 거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평화민주당광주시를 포함한 전라도에서 37석 중 36석을 획득하여 거의 독점(나머지 1석도 당선자가 평민당에 입당하여 완전 독점이 됨)하는 등 각 당이 각각 근거지로 삼고 있는 지역에서 압도적인 강세를 보였다. 또한 평민당은 전라도와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는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고, 득표율 또한 수도권과 전라도 이외 지역에서는 10%를 밑도는 등 경상도충청도 지역 주민들의 반(反)전라도 정서가 뚜렷하게 나타나는 결과가 되었다.

3. 1. 2. 전국구 의석 배분

국회의원 선거법에 따라, 지역구 의석 1위인 민주정의당에 전국구 의석수의 1/2인 38석이 배분되었고, 지역구 5석 이상을 획득한 통일민주당, 평화민주당, 신민주공화당에 지역구 의석수에 따라 각각 13석, 16석, 8석이 배분되었다.



각 정당별 전국구 국회의원 명단은 다음과 같다.


3. 2. 주요 정당 분석

노태우 대통령의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은 198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였으나, 이번 총선에서는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는 뼈아픈 결과를 맞이하였다. 이는 전임 대통령인 전두환의 인기가 하락하고, 강력한 야당들이 등장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와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열망이 높아진 상황에서, 민주정의당은 국민들의 변화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록 민주정의당은 원내 제1당의 지위를 유지했지만, 과반 의석 확보 실패로 인해 정국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결국 1990년 1월,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의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을 창당하며 정치적 돌파구를 모색하게 된다.

김영삼이 이끌었던 통일민주당에게 이번 선거는 국회 의석 3위라는 큰 좌절이었다. 김영삼은 첫 민주적 선거였던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을 앞서 2위를 차지했었기에 더욱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김대중이 이끌었던 평화민주당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으로서는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하여 제1야당이 되었다. 이는 198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3위를 차지했던 김대중에게는 정당성을 입증하는 결과였다. 그러나 평화민주당은 득표율에서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에 이어 3위를 차지했고, 호남과 수도권에서만 의석을 확보하는 지역적 한계를 드러냈다. 이러한 결과는 평화민주당이 전국 정당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과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민주당은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온 김대중의 지도력과 호남 지역의 확고한 지지를 기반으로, 이후 한국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김종필이 이끄는 신민주공화당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4위를 차지했다. 비록 득표율은 낮았지만, 민주정의당이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신민주공화당국회에서 주요한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다. 특히 충청 지역에서 선전하여, 지역 기반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는 김종필의 정치적 영향력과 지역 기반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정당대표이념의석 수지위
직전 선거선거 전
민주한국당유치송자유주의
새한국민주당신도환
한국국민당이만섭보수주의
신사회당사회주의해산됨
신민당류갑종자유주의해산됨



민주한국당, 새한국민주당, 한국국민당 등은 원내 의석 확보에 실패하였다. 이는 군소정당 난립과 야권 분열의 결과로 해석된다. 특히, 신사회당과 신민당과 같이 진보적 이념을 가진 정당들은 제도권 진입에 실패하며, 당시 대한민국 정치 지형에서 진보 정당의 입지가 매우 약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과는 진보 진영에 대한 탄압과 보수 세력의 강세라는 당시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는 것으로, 민주화 이후에도 진보 정치의 성장이 더디게 진행될 것임을 시사한다.

3. 2. 1. 민주정의당

노태우 대통령의 여당이었던 민주정의당은 198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하였으나, 이번 총선에서는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는 뼈아픈 결과를 맞이하였다. 이는 전임 대통령인 전두환의 인기가 하락하고, 강력한 야당들이 등장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특히 5.18 민주화운동에 대한 진상규명 요구와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열망이 높아진 상황에서, 민주정의당은 국민들의 변화 요구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비록 민주정의당은 원내 제1당의 지위를 유지했지만, 과반 의석 확보 실패로 인해 정국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결국 1990년 1월,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의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을 창당하며 정치적 돌파구를 모색하게 된다.

3. 2. 2. 통일민주당

김영삼이 이끌었던 통일민주당에게 이번 선거는 국회 의석 3위라는 큰 좌절이었다. 김영삼은 첫 민주적 선거였던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을 앞서 2위를 차지했었기에 더욱 실망스러운 결과였다.

3. 2. 3. 평화민주당

김대중이 이끌었던 평화민주당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야당으로서는 가장 많은 의석을 확보하여 제1야당이 되었다. 이는 1987년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3위를 차지했던 김대중에게는 정당성을 입증하는 결과였다. 그러나 평화민주당은 득표율에서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에 이어 3위를 차지했고, 호남과 수도권에서만 의석을 확보하는 지역적 한계를 드러냈다. 이러한 결과는 평화민주당이 전국 정당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과제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화민주당은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온 김대중의 지도력과 호남 지역의 확고한 지지를 기반으로, 이후 한국 정치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3. 2. 4. 신민주공화당

김종필이 이끄는 신민주공화당대한민국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4위를 차지했다. 비록 득표율은 낮았지만, 민주정의당이 과반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신민주공화당국회에서 주요한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다. 특히 충청 지역에서 선전하여, 지역 기반 정당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이는 김종필의 정치적 영향력과 지역 기반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3. 2. 5. 기타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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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대표이념의석 수지위
직전 선거선거 전
style="background:" |민주한국당유치송자유주의}}}}
style="background:" |새한국민주당신도환}}}}
style="background:" |한국국민당이만섭보수주의}}}}
style="background:#FF4500" |신사회당사회주의해산됨
style="background:#189868" |신민당류갑종자유주의해산됨



민주한국당, 새한국민주당, 한국국민당 등은 원내 의석 확보에 실패하였다. 이는 군소정당 난립과 야권 분열의 결과로 해석된다. 특히, 신사회당과 신민당과 같이 진보적 이념을 가진 정당들은 제도권 진입에 실패하며, 당시 대한민국 정치 지형에서 진보 정당의 입지가 매우 약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결과는 진보 진영에 대한 탄압과 보수 세력의 강세라는 당시 시대적 배경을 반영하는 것으로, 민주화 이후에도 진보 정치의 성장이 더디게 진행될 것임을 시사한다.

3. 3. 당선자


4. 선거 이후

4. 1. 여소야대 국회와 정국 변화

총선 결과 여당이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고 야당이 다수를 차지함에 따라 의원 활동이 활발해지고 정국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야당 각 당은 1988년 6월, 「5공(제5공화국) 정치 권력 형태 비리 조사 특위 구성 결의안」을 채택하고, 결의에 따라 한국 헌정사상 최초의 국정조사권이 발동되어, 같은 해 11월에 「5공 비리 문제( 신군부 정권의 정치 자금 및 정경 유착 문제)」와 「광주 민주화 운동」, 그리고 「언론 문제」에 대한 국회 청문회가 각각 5회씩 개최되었다. 정재계 유력 인사들이 다수 소환되었고, 청문회 모습이 TV로 생중계되었다. 이 청문회에서 노무현은 증거에 기반한 냉정침착한 증인 심문으로 널리 이름을 알리게 되었다. 이 일련의 청문회에서 5공 시대의 부정이 드러나면서, 전두환은 부정 축재로 국민에게 사과해야 했고, 강원도 산사에서 은둔 생활을 강요당하게 되었다. 그러나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는 여당과 증인들의 불성실한 태도, 진상 규명의 불철저함으로 국민들은 점차 실망감을 느끼게 되었고, 청문회의 열기도 식어갔다. 이를 이용하여 정권은 강경 자세로 돌아서 야당 간의 협조 체제를 무너뜨리고, 흐지부지하게 마무리 지어 버렸다.

4. 2. 3당 합당과 민주자유당 탄생

국회에서 야당이 다수를 차지하는 ‘여소야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여당 세력은 1990년 1월 11일부터 13일까지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 평화민주당 김대중 총재,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총재와 개별적으로 청와대에서 당수 회담을 갖고 정계 재편에 대한 논의를 진행한 후, 여당 민주정의당과 야당인 보수 성향의 통일민주당 및 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에 합의하여 '''민주자유당'''을 발족시키게 되었다.

민주자유당은 1990년2월 9일 합당 대회를 개최하고, 강령으로

# 성숙한 민주 정치의 구현

# 지속적인 경제 성장

# 공동체 사회의 구축

# 교육의 자립성과 기회 균등의 보장, 민족 문화의 발전

# 평화적 민주 통일과 자주적인 외교 노력

이상 5개 항을 채택했다. 그리고 5월 9일 전당대회를 개최하여 노태우를 당 총재로, 김영삼을 대표 최고위원으로 선출했다. 민자당의 발족으로 200석이 넘는 거대 여당이 탄생하여 ‘여소야대’ 정국에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민자당 발족에 대해 평민당과 재야 세력은 국민의 의견을 무시한 일종의 정치적 쿠데타라고 비난하는 의사를 표명했다. 통일민주당 내에서 3당 합당에 반대한 이기택노무현 등의 그룹은 민주당을 1990년2월 27일 발기인 대회, 그리고 6월 17일 창당대회를 거쳐 발족시켰고, 평민당에서 당명을 개칭한 '''신민주연합당'''(총재: 김대중)과 1991년9월에 통합되었다 (통합 후 당명도 '''민주당''').

4. 2. 1. 3당 합당에 대한 비판

3당 합당은 1990년 1월 22일, 노태우 대통령의 민주정의당, 김영삼 총재의 통일민주당, 김종필 총재의 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하여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을 창당하기로 합의한 사건이다. 이는 정국에 큰 파장을 일으켰으며, 특히 야권에서는 강력하게 반발하였다.

3당 합당은 '구국의 결단'이라는 명분으로 추진되었지만, 사실상 지역주의에 기반한 보수 세력의 대연합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특히, 김영삼 총재는 오랜 기간 민주화 운동을 이끌어온 인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군사 정권의 후예인 민주정의당과의 합당을 결정함으로써 많은 지지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다.

민주당은 3당 합당을 "호남 고립을 위한 정계 개편"이라고 비판하며 강력하게 반발했다. 또한, 3당 합당에 참여하지 않은 일부 통일민주당 의원들은 꼬마민주당을 창당하여 야권의 명맥을 이어갔다.

4. 3. 재야 세력의 정치 참여

5. 평가 및 의의

5. 1. 지역주의 심화

전년도 대통령 선거에서 표면화된 지역주의가 13대 총선에 크게 영향을 미쳐, 다당제 상황이 나타났다. 어떤 정당도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한 가운데, 서울을 제외한 전국 각지에서 각 당이 근거지로 삼고 있는 지역에서 압도적인 강세를 보였다. 특히 평민당광주시를 포함한 전라도에서 37석 중 36석을 획득하여 거의 독점했고(나머지 1석도 당선자가 평민당에 입당하여 완전 독점이 됨), 전라도와 수도권 이외 지역에서는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 평민당의 득표율 또한 수도권과 전라도 이외 지역에서는 10%를 밑돌았는데, 이는 경상도충청도 지역 주민들의 반(反)전라도 정서가 뚜렷하게 나타난 결과였다.

5. 2. 민주주의 발전과 과제

참조

[1] 서적 Elections in Asia: A data handbook, Volume II 2001
[2] 서적 各国の選挙-変遷と現状 木鐸社
[3] 문서 선거 인원과 총 투표자 수, 유효표 수는 한국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역대 선거 정보 시스템”에서 인용
[4] 서적 現代韓国と女性 新幹社
[5] 문서 선거 직후 평민당에 입당
[6] 문서 김옥두 등록무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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