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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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전라도는 대한민국 서남부에 위치한 역사적 지역으로, 현재의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를 아우른다. 지리적으로는 서북쪽으로 금강, 동쪽으로 소백산맥과 섬진강을 경계로 충청도와 경상도에 접하며, 서쪽으로는 황해, 남쪽으로는 동중국해에 면한다. 고려 시대 전라주도로 처음 명명되었으며, 전주와 나주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조선 시대에는 전라도라는 명칭이 유지되었고, 일제강점기 행정구역 개편으로 폐지되었다가,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전라북도와 전라남도로 분리되었다. 전라도는 서남 방언을 사용하며, 정치적으로는 평화민주당 계열 정당의 지지 기반이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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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경을 중심으로 한 경기 지역과 황해도 일대를 관할했던 고려 시대의 행정 구역인 관내도는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으며, 개성부, 남경유수관 양주, 해주, 황주목 등을 포함한 다양한 지역으로 구성되었다.
2. 지리
서북부는 금강 하류를 경계로 충청도와 접하고, 동쪽으로 소백산맥과 섬진강을 경계로 경상도와 접한다. 영산강, 섬진강, 만경강 등이 흐른다. 주요 도시로는 광주광역시, 전주시, 익산시, 군산시, 목포시, 남원시, 순천시, 여수시 등이 있다.
삼한 시대에 전라도 지역에는 마한 연맹체가 있었으며, 제주도에는 탐라국이 있었다.[1] 1세기 무렵, 노령산맥 이북의 마한 소국들은 백제 온조왕과 다루왕에게 통합되었다. 노령산맥 이남의 마한 세력은 백제의 영향 아래 침미다례라는 연맹을 형성했다. 고구려의 공격으로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하면서 백제의 영향력이 약화되자 가야가 순천, 여수 등지를 침략하고, 남원 일대에 기문 지방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이후 국력을 회복한 백제가 침미다례를 탈환하고 가야 세력을 축출하여 전라도의 마한 세력은 완전히 백제에 통합되었다. 백제는 지방행정단위인 5방(方) 가운데 현재의 전라북도 지역에 고부군을 치소로 중방(中方), 전라남도 지역에 장성을 중심으로 남방(南方)을 설치하였다. 백제 무왕은 익산을 천도지로 선정하고 미륵사를 창건했다.
3. 역사
신라는 660년 당의 도움을 받아 백제를 정복하면서, 그 지역은 후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이는 문무왕 16년의 일이었다.[1] 신라는 이 지역을 9주(州)와 5경(京)으로 재편성하였는데, 그중 3주는 옛 백제 지역에 속했다.[1] 옛 백제의 북쪽 영토인 웅주(熊州)는 오늘날 충청남도에 해당한다.[1] 완산주(完山州)와 남원시는 오늘날 전라북도에 해당하며, 완산주는 나중에 전주로 개칭되었다.[1] 남쪽 지역은 무진주(武珍州)였는데, 경덕왕 16년(757년)에 무주(武州)로 개칭되었다.[1] 무주는 1군(郡)과 43현(縣)으로 구성되었으며, 오늘날 전라남도에 해당한다.[1]
983년, 고려 성종 2년에 전국이 12목으로 개편되면서 전라도 지역에는 전주목, 나주목, 승주목(순천)이 설치되었다. 995년, 성종은 전국을 10도(道)로 개편하면서 전라북도 일대를 강남도(江南道), 전라남도 일대를 해양도(海陽道)로 정하였다.
1018년, 고려 현종 9년에 전국이 다시 5도로 개편되면서 강남도와 해양도가 합쳐져 전라주도(全羅州道)가 되었다. 전라주도는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주요 도시 이름에서 유래하였으며, 현재 전라도로 알려진 지역이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통합된 최초의 사례이다. 이후 거의 8세기 동안 이러한 체제가 유지되었다. 「고려사 지리지」에 따르면, 전라도는 2목 2부 18군 82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고려 왕건은 고려 왕조의 안정을 위해 훈요십조를 남겼다. 그중 8조에서는 고려에 끝까지 저항한 후백제가 있었던 전라도 지역에 대해 “간교한 말로 권세를 농락하고 정사를 어지럽히며 재변을 일으키므로 비록 선량한 백성이라 할지라도 그에 상응하는 벼슬에 임명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는 후백제 멸망 당시 아버지 견훤에게 아들 신검이 반역한 결과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나, 전라도 출신을 정사에 참여시키지 않는 차별 의식이 여기서 생겨났고, 다른 지역 출신자들로부터 배신자의 땅이라는 차별 의식은 후세에 영향을 미쳤다.[4]
조선 시대에도 전라도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태조 이성계는 본관인 전라북도 전주를 한양, 개성과 더불어 3경으로 승격하였으며, 태종 이방원은 전주에 경기전을 지어 선조들을 모셨다. 1409년(태종 9년)에는 전라도 관찰사 윤향(尹向)의 건의로 속현과 향·소·부곡이 다른 지역보다 먼저 폐지되었다.
1645년(인조 23년) 나주에서 향리가 목사를 칼로 찔러 중상을 입히는 사건이 일어나 나주목이 금성현(錦城縣)으로 강등되고, 나주 대신 남원을 따서 전남도(全南道)라 하였다. 1654년(효종 5년) 금성현은 나주목으로, 전남도는 전라도로 복구되었다. 그러나 1년 후인 1655년 나주에서 전패(殿牌)가 파손되는 사건이 일어나 다시 금성현으로 강등되고 전남도가 되었다. 이후 광남도(光南道) 등으로 개칭했다가 되돌렸다.
1728년(영조 4년)에는 이인좌의 난(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인 전주 이씨 임영대군 후손의 역모 사건)이 일어나 나주목이 또다시 현으로 강등되고, 광주를 따서 전광도(全光道)로 변경되기도 했으나, 1737년에 곧 다시 전라도로 돌아왔다. 1895년 23부제 시행으로 전라도는 폐지되고 전주부, 남원부, 나주부, 제주부로 분리되었다(금산군은 공주부에 편입).
동학 농민 혁명과 남한 대토벌 작전 때 조선군과 일본 제국군에 의해 전라도 인민들이 학살당하여 세력이 약화되었다.[6][7]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전라북도는 전주와 북부 남원 지역으로, 전라남도는 남부 남원 지역, 나주 지역, 그리고 제주도로 구성되었다.[1] 전주는 전라북도의 도청 소재지로 남았고, 광주는 전라남도의 도청 소재지가 되었다.[1] 2005년 전라남도청이 무안으로 이전되었고, 광주는 광역시로 지정되었다.[1]
3. 1. 고대
삼한 시대에 전라도 지역은 마한 연맹체가 있었으며, 제주도에는 탐라국이 있었다.[1] 1세기 무렵, 노령산맥 이북의 마한 소국들은 백제 온조왕과 다루왕에게 통합되었다. 노령산맥 이남의 마한 세력은 백제의 영향 아래 침미다례라는 연맹을 형성했다. 고구려의 공격으로 백제가 웅진으로 천도하면서 백제의 영향력이 약화되자 가야가 순천, 여수 등지를 침략하고, 남원 일대에 기문 지방이 형성되기도 하였다. 이후 국력을 회복한 백제가 침미다례를 탈환하고 가야 세력을 축출하여 전라도의 마한 세력은 완전히 백제에 통합되었다. 백제는 지방행정단위인 5방(方) 가운데 현재의 전라북도 지역에 고부군을 치소로 중방(中方), 전라남도 지역에 장성을 중심으로 남방(南方)을 설치하였다. 백제 무왕은 익산을 천도지로 선정하고 미륵사를 창건했다.
3. 2. 통일 신라
신라는 660년 당의 도움을 받아 백제를 정복하면서, 그 지역은 후신라의 영토가 되었다. 이는 문무왕 16년의 일이었다.[1] 신라는 이 지역을 9주(州)와 5경(京)으로 재편성하였는데, 그중 3주는 옛 백제 지역에 속했다.[1]
옛 백제의 북쪽 영토인 웅주(熊州)는 오늘날 충청남도에 해당한다.[1] 완산주(完山州)와 남원시는 오늘날 전라북도에 해당하며, 완산주는 나중에 전주로 개칭되었다.[1] 남쪽 지역은 무진주(武珍州)였는데, 경덕왕 16년(757년)에 무주(武州)로 개칭되었다.[1] 무주는 1군(郡)과 43현(縣)으로 구성되었으며, 오늘날 전라남도에 해당한다.[1]
3. 3. 고려
983년, 고려 성종 2년에 전국이 12목으로 개편되면서 전라도 지역에는 전주목, 나주목, 승주목(순천)이 설치되었다. 995년, 성종은 전국을 10도(道)로 개편하면서 전라북도 일대를 강남도(江南道), 전라남도 일대를 해양도(海陽道)로 정하였다.
1018년, 고려 현종 9년에 전국이 다시 5도로 개편되면서 강남도와 해양도가 합쳐져 전라주도(全羅州道)가 되었다. 전라주도는 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주요 도시 이름에서 유래하였으며, 현재 전라도로 알려진 지역이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통합된 최초의 사례이다. 이후 거의 8세기 동안 이러한 체제가 유지되었다. 「고려사 지리지」에 따르면, 전라도는 2목 2부 18군 82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고려 왕건은 고려 왕조의 안정을 위해 훈요십조를 남겼다. 그중 8조에서는 고려에 끝까지 저항한 후백제가 있었던 전라도 지역에 대해 “간교한 말로 권세를 농락하고 정사를 어지럽히며 재변을 일으키므로 비록 선량한 백성이라 할지라도 그에 상응하는 벼슬에 임명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이는 후백제 멸망 당시 아버지 견훤에게 아들 신검이 반역한 결과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나, 전라도 출신을 정사에 참여시키지 않는 차별 의식이 여기서 생겨났고, 다른 지역 출신자들로부터 배신자의 땅이라는 차별 의식은 후세에 영향을 미쳤다.[4]
3. 4. 조선
조선 시대에도 전라도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태조 이성계는 본관인 전라북도 전주를 한양, 개성과 더불어 3경으로 승격하였으며, 태종 이방원은 전주에 경기전을 지어 선조들을 모셨다. 1409년(태종 9년)에는 전라도 관찰사 윤향(尹向)의 건의로 속현과 향·소·부곡이 다른 지역보다 먼저 폐지되었다.1645년(인조 23년) 나주에서 향리가 목사를 칼로 찔러 중상을 입히는 사건이 일어나 나주목이 금성현(錦城縣)으로 강등되고, 나주 대신 남원을 따서 전남도(全南道)라 하였다. 1654년(효종 5년) 금성현은 나주목으로, 전남도는 전라도로 복구되었다. 그러나 1년 후인 1655년 나주에서 전패(殿牌)가 파손되는 사건이 일어나 다시 금성현으로 강등되고 전남도가 되었다. 이후 광남도(光南道) 등으로 개칭했다가 되돌렸다.
1728년(영조 4년)에는 이인좌의 난(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인 전주 이씨 임영대군 후손의 역모 사건)이 일어나 나주목이 또다시 현으로 강등되고, 광주를 따서 전광도(全光道)로 변경되기도 했으나, 1737년에 곧 다시 전라도로 돌아왔다. 1895년 23부제 시행으로 전라도는 폐지되고 전주부, 남원부, 나주부, 제주부로 분리되었다(금산군은 공주부에 편입).
동학 농민 혁명과 남한 대토벌 작전 때 조선군과 일본 제국군에 의해 전라도 인민들이 학살당하여 세력이 약화되었다.[6][7]
3. 5. 대한민국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전라북도는 전주와 북부 남원 지역으로, 전라남도는 남부 남원 지역, 나주 지역, 그리고 제주도로 구성되었다.[1] 전주는 전라북도의 도청 소재지로 남았고, 광주는 전라남도의 도청 소재지가 되었다.[1] 2005년 전라남도청이 나주로 이전되었고, 광주는 광역시로 지정되었다.[1]4. 행정 구역
전라도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를 거치며 행정 구역에 변화가 있었다.
고려 시대에는 2목, 2부, 18군, 82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1]
조선 시대에는 1부, 4목, 7도호부, 11군, 33현으로 구성되었다.[2]
이러한 행정 구역 변화는 각 시대의 지방 통치 체제와 관련이 있다.
4. 1. 전라북도의 행정구역 변천
고려 시대에는 전주목을 비롯하여 남원부, 고부군, 임피현, 진례현, 김제현, 금구현 등이 전라북도 지역에 위치했다.
조선시대에는 전주부, 남원도호부, 익산군 등이 있었다. 1949년 전주시가 전주부로 승격되었다.
4. 2. 전라남도의 행정구역 변천
고려 지리지를 기준으로 전라도는 2목, 2부, 18군, 82현으로 구성되어 있었다.5. 정치
고려 태조 왕건은 고려 왕조의 안정을 위해 십계명(훈요십조)을 남겼다. 그중 8조에서는 고려에 끝까지 저항한 후백제가 있었던 전라도 지역에 대해 “간교한 말로 권세를 농락하고 정사를 어지럽히며 재변을 일으키므로 비록 선량한 백성이라 할지라도 그에 상응하는 벼슬에 임명해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 후백제 멸망 당시 아버지 견훤에게 아들 신검이 반역한 결과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이나, 반역의 지역이라는 이유로 전라도 출신자를 정사에 참여시키지 않는다는 차별 의식이 여기서 생겨났고, 다른 지역 출신자들로부터 배신자의 땅이라는 차별 의식은 후세에 영향을 미쳤다.[4]
대한민국 독립 후, 박정희 정권 하의 1970년대( 제3공화국 말기 이후)에 경상도와의 대립이 발생한 결과, 1990년대 이후( 제6공화국) 전라도는 유권자의 80% 전후가 좌파 정당에 투표하는 강력한 좌파 지역 기반이 되었다.[4] 이는 전라도 출신의 유력 정치가인 김대중과 경상도 출신의 역대 대통령들이 대립한 것, 전라도 개발이 미뤄지고 중앙 관청에서 전라도 출신자가 냉대받은 것,[5]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이 발생하면서 경상도 출신자가 주류를 차지하는 보수 정당에 대한 반발이 커진 때문이며, 제6공화국에서 실시된 국정 선거에서 김대중이 결성한 평화민주당 계열 정당(현재 더불어민주당)이 지역 내 제1당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도 마찬가지로, 현행 선거 제도가 된 1987년 5월 대통령 선거 이후 전라북도, 전라남도, 광주광역시 모두 김대중 또는 평화민주당 계열 정당의 후보자가 최다 득표를 기록하고 있다. 2019년 4월 5일 여론 조사에서도 전라도만 69%로 문재인 정권의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았고, 다른 지역에서는 모두 지지율보다 불지지율이 더 높았다.
6. 언어
전라도 지역에서는 서남 방언을 사용한다.[1]
7. 출신 인물
참조
[1]
웹사이트
https://www.jeonbuk.[...]
[2]
웹사이트
History {{!}} jeollanamdo
https://www.jeonnam.[...]
2024-05-26
[3]
기타
[4]
서적
物語韓国の歴史
中公新書
1989
[5]
뉴스
様々な差別ある韓国 全羅道が長く地域差別の対象となった訳
https://www.news-pos[...]
NEWSポストセブン
2015-10-15
[6]
웹인용
일본군 동학농민 학살 '진중일지' 공개
https://www.joongang[...]
2023-04-07
[7]
웹인용
알라딘: 일제강점기 학살당한 한국인들
https://www.aladin.c[...]
2023-09-08
[8]
웹사이트
조선시대법령자료
https://db.history.g[...]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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