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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료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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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두료다나는 힌두 서사시 마하바라타의 등장인물로, 하스티나푸라의 왕위를 차지하려는 욕망과 판다바 형제에 대한 질투로 인해 쿠루크셰트라 전쟁을 일으킨 인물이다. 그는 굽히지 않는 성격과 뛰어난 무술 실력을 갖췄지만, 탐욕과 권력욕으로 인해 악행을 저질렀다. 두료다나는 곤봉술에 능했지만, 비마와의 최후의 결투에서 패배하여 죽음을 맞이했다. 그는 권력 남용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인물로 평가받으며, 힌두교 신자들에게는 악마의 화신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두료다나는 소설, 영화, TV 드라마 등 다양한 매체에서 재해석되며 현대 사회에도 권력과 욕망에 대한 경고를 전달하는 인물로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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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료다나
기본 정보
[[크리슈나]]가 [[쿠루크셰트라 전쟁]] 전에 사절로 왔을 때의 모습. [[라자 라비 바르마]] 그림.
두료다나(크리슈나가 사절로 왔을 때)
별칭수요다나
무기가다 (철퇴)
가족 관계
아버지드리타라슈트라
어머니간다리
형제두샤사나, 비카르나, 그리고 97명의 형제
자매두샬라
이복형제유유추
친척판다바 (부계 이복 사촌)
외삼촌샤쿠니
배우자 및 자녀
배우자칼링가의 공주
자녀락슈마나 쿠마라, 락슈마나
인물 정보
소속카우라바

2. 출생과 성장 배경

간다리의 임신 기간이 비정상적으로 길어지자, 시어머니 암비카와 암발리카는 크게 분노했다. 판두와 쿤티가 이미 아들 유디슈티라를 낳았기 때문에, 간다리는 좌절감에 휩싸여 자신의 자궁을 쳤다. 그 결과, 굳어진 회색 살덩어리가 나왔다.[3] 간다리는 과거 성자 뱌사를 공손히 대접하여 100명의 아들을 얻는 은총을 받았었다.[33] 간다리는 비야사에게 "Shata Putra Praptirasthu"(산스크리트어로 "백 명의 아들을 축복하다")라는 축복을 지켜달라고 간청했다.[3] 비야사는 살덩어리를 101개의 조각으로 나누어 우유 항아리에 넣고 밀봉하여 2년 동안 땅에 묻었다. 2년 후, 첫 번째 항아리에서 두료다나가 나왔다.[3]

두료다나가 태어났을 때, 육식 짐승과 자칼이 울부짖는 등 불길한 징조가 나타났다.[34] 바라문들과 비두라(드리타라슈트라의 이복 동생)는 "이 아이는 일족을 멸망시킬 것이므로 버려야 한다"라고 드리타라슈트라 왕에게 충고했지만, 왕은 아들에 대한 애착 때문에 따르지 않았다.[34]

자바 와양(Wayang)의 두료다나


두료다나는 가족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와 그의 형제들 대부분은 판다바 형제들만큼 덕망, 의무, 어른에 대한 존경심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다. 두료다나는 모든 사람이 판다바에게 보이는 편애가 단지 그들의 출생 환경 때문이라고 느꼈다. 그는 외삼촌 샤쿠니의 지도를 받았는데, 샤쿠니는 두료다나가 판다바를 굴욕시키고 죽이려는 음모의 대부분을 계획했다.

두료다나는 가장 연장자의 아들로서 하스티나푸라 왕위의 상속자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판다바에 대한 증오심을 품었다. 아버지 (드르타라슈트라)가 맹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왕위를 남동생 판두에게 양보해야 했다. 두료다나는 정당하게 자신의 것이었던 것이 사촌 형인 유디슈티라에게 넘겨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또한 판다바가 쿤티와 데바/신의 아들이고 판두의 아들이 아니라고 느꼈다. 그는 여러 차례 그들의 장점을 의심했고 항상 그들을 '칸테야'(쿤티의 아들)라고 불렀다. 그는 판다바를 형제로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들을 억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는 또한 자신보다 어리고 육체적 힘이 엄청나 스포츠와 기술에서 형제들을 지배했던 비마에 대한 깊은 증오심을 품었다. 분노와 질투심으로 그는 비마를 독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는 스승인 드로나차르야로부터 무술을 배워 철퇴에 매우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이후 발라라마에게 철퇴술을 전문적으로 배워 그에게 호감을 얻어 가장 아끼는 제자가 되었다. 발라라마는 두료다나의 몸을 "번개가 살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묘사했다.

2. 1. 출생의 비밀

간다리의 임신 기간이 비정상적으로 길어지자, 시어머니 암비카와 암발리카는 크게 분노했다. 판두와 쿤티가 이미 아들 유디슈티라를 낳았기 때문에, 간다리는 좌절감에 휩싸여 자신의 자궁을 쳤다. 그 결과, 굳어진 회색 살덩어리가 나왔다.[3] 간다리는 과거 성자 뱌사를 공손히 대접하여 100명의 아들을 얻는 은총을 받았었다.[33] 간다리는 비야사에게 "Shata Putra Praptirasthu"(산스크리트어로 "백 명의 아들을 축복하다")라는 축복을 지켜달라고 간청했다.[3] 비야사는 살덩어리를 101개의 조각으로 나누어 우유 항아리에 넣고 밀봉하여 2년 동안 땅에 묻었다. 2년 후, 첫 번째 항아리에서 두료다나가 나왔다.[3]

두료다나가 태어났을 때, 육식 짐승과 자칼이 울부짖는 등 불길한 징조가 나타났다.[34] 바라문들과 비두라(드리타라슈트라의 이복 동생)는 "이 아이는 일족을 멸망시킬 것이므로 버려야 한다"라고 드리타라슈트라 왕에게 충고했지만, 왕은 아들에 대한 애착 때문에 따르지 않았다.[34]

2. 2. 판다바 형제들과의 갈등

두료다나는 가족의 사랑을 받았지만, 그와 그의 형제들 대부분은 판다바 형제들만큼 덕망, 의무, 어른에 대한 존경심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여겨졌다. 두료다나는 모든 사람이 판다바에게 보이는 편애가 단지 그들의 출생 환경 때문이라고 느꼈다.[35] 그는 외삼촌 샤쿠니의 지도를 받았는데, 샤쿠니는 두료다나가 판다바를 굴욕시키고 죽이려는 음모의 대부분을 계획했다.

두료다나는 가장 연장자의 아들로서 하스티나푸라 왕위의 상속자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에서 판다바에 대한 증오심을 품었다. 아버지 (드르타라슈트라)가 맹인이었기 때문에 그의 아버지는 왕위를 남동생 판두에게 양보해야 했다. 두료다나는 정당하게 자신의 것이었던 것이 사촌 형인 유디슈티라에게 넘겨지고 있다고 믿었다. 그는 또한 판다바가 쿤티와 데바/신의 아들이고 판두의 아들이 아니라고 느꼈다.[35] 그는 여러 차례 그들의 장점을 의심했고 항상 그들을 '칸테야'(쿤티의 아들)라고 불렀다. 그는 판다바를 형제로 결코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들을 억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는 또한 자신보다 어리고 육체적 힘이 엄청나 스포츠와 기술에서 형제들을 지배했던 비마에 대한 깊은 증오심을 품었다. 분노와 질투심으로 그는 비마를 독살하려 했지만 실패했다.

드라우파디가 파치시 게임에 초대되는 장면


인망이 있고 연장자인 유디슈티라가 쿠루국의 차기 왕에 어울린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두료다나는 질투와 불안에 시달렸다.[35] 왕위를 노리는 두료다나는 판다바 형제를 정복하고 자신이 권력을 얻기를 원했다. 그 때문에 두료다나는 외삼촌 샤쿠니, 절친인 카르나(카르나와의 관계는 카르나 항목 참조), 동생 두흐샤사나 등을 복심으로 두고, 판다바 형제에게 다양한 책략을 펼쳤다.

소년기에 두료다나는 동생들과 함께 판다바 5형제의 차남 비마의 힘에 휘둘리는 것에 증오심을 품고 비마를 모략으로 살해하려 했다. 이어서 장남 유디슈티라와 동생들을 무력으로 포박하여 권력을 얻으려 했다. 물놀이를 했을 때, 피곤해 잠든 비마를 밧줄로 묶어 갠지스 강에 던졌지만, 비마는 깨어나 족쇄를 풀고 생환했다. 맹독을 가진 뱀들에게 비마를 물게 하거나, 새로 만든 독으로 비마를 살해하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36]

두료다나는 다른 쿠루의 왕자들과 함께 드로나, 크리파라는 두 명의 무예 스승 아래서 수련을 했다. 쿠루의 왕자들이 각자 습득한 무술을 선보이기 위한 어전 시합이 열렸을 때, 두료다나는 비마와 격렬한 곤봉전을 선보였다. 아르주나에게 대항 의식을 불태우는 카르나가 난입하여 아르주나와 마찬가지로 활로 수많은 기술을 선보였다. 카르나는 아르주나를 도발하여 결투를 걸려고 했지만, 결투를 하기 위해서는 신분을 밝혀야 했고, 왕족은 자신보다 아래인 자와 싸워서는 안 된다는 크리파의 말에 카르나는 곤경에 처했다. 그러자 두료다나는 그 자리에서 카르나를 앙가 왕으로 즉위시킨다. 두료다나는 카르나에게 "영원한 우정을 원한다"고 답하고, 두 사람은 껴안고 기쁨을 나눈다.[37] 왕족이 된 카르나와 아르주나였지만, 장소에 나타난 카르나의 양아버지 아디라타를 보고 비마가 "마부의 아들에게 아르주나에게 죽을 자격은 없다"고 말하자, 두료다나는 왕족에게는 힘이 가장 중요하며, 귀고리와 갑옷을 착용한 카르나는 왕에 어울린다고 반론했다. 결국 결투는 이루어지지 않은 채 시합은 해산되었다. 카르나는 두료다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감미로운 말로 아첨을 하고, 그것을 받아들인 두료다나는 아르주나에 대한 두려움을 소멸시켰다.[37]

그 후에도 두료다나는 아르주나나 비마의 뛰어난 무술에 고민하고, 카르나와 샤쿠니와 함께 판다바 살해를 여러 번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판다바는 비두라의 조언에 따라, 가해를 공언하지 않았다. 시민들은 유디슈티라 등 판다바의 미덕을 높이 평가하고, "판다바의 장남인 유디슈티라는, 젊지만 노련하며, 진실된 사람이고, 자비로운 사람이다. 즉위하면 비슈마와 드리타라슈트라와 그 아들들을 존경하고, 수많은 은혜를 베풀어 줄 것이다"라고 말했다.[38] 이 말에 두료다나는 격렬하게 질투하고, 드리타라슈트라에게 "이대로는 우리는 영원히 왕위 계승에서 제외되고, 세상 사람들에게 경멸당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신속하게 대처해주십시오"라고 진언한다. 드리타라슈트라는 한 번은 부정하지만, 두료다나가 명예와 재물로 신하들을 꾀어, 판다바를 왕도에서 쫓아낼 것을 제안하자, 그것을 받아들여버린다.[38]

두료다나는 불에 잘 타는 소재를 사용하여 궁전을 짓게 하고, 거기에 판다바 형제를 살게 하여 불을 질러 죽이려 했다.[39] 판다바는, 비두라의 조언과 유디슈티라의 지혜에 의해 화재에서 도망쳐 잠복 후, 드라우파디라는 신부를 얻고, 드루파다 왕의 후원을 얻어 귀국한다.(자세한 내용은 아르주나, 유디슈티라 항목 참조) 두료다나는 판다바 암살이 실패한 것을 알고 낙담하여, 실행범인 프로차나의 험담을 동생들과 나누었다.[40]

2. 3. 무예 수련

그는 스승인 드로나차르야로부터 무술을 배워 철퇴에 매우 뛰어난 기량을 보였다. 이후 발라라마에게 철퇴술을 전문적으로 배워 그에게 호감을 얻어 가장 아끼는 제자가 되었다. 발라라마는 두료다나의 몸을 "번개가 살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묘사했다.

3. 권력욕과 악행

두료다나는 왕위를 노리고 항상 판다바 형제를 정복하고 자신이 권력을 얻기를 원했다. 인망이 있고 연장자인 유디슈티라가 쿠루국의 차기 왕에 어울린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두료다나는 질투와 불안에 시달렸다.[35] 그 때문에 두료다나는 외삼촌 샤쿠니, 절친인 카르나(카르나와의 관계는 카르나 항목 참조), 동생 두흐샤사나 등을 복심으로 두고, 판다바 형제에게 다양한 책략을 펼쳤다.

소년기에 두료다나는 다른 쿠루의 왕자들과 함께 드로나, 크리파라는 두 명의 무예 스승 아래서 수련을 했다. 쿠루의 왕자들이 각자 습득한 무술을 선보이기 위한 어전 시합이 열렸을 때, 두료다나는 비마와 격렬한 곤봉전을 선보였다. 거기에 아르주나에게 대항 의식을 불태우는 카르나가 난입하여, 아르주나와 마찬가지로 활로 수많은 기술을 선보였다. 카르나는 아르주나를 도발하여 결투를 걸려고 했지만, 결투를 하기 위해서는 신분을 밝혀야 했고, 왕족은 자신보다 아래인 자와 싸워서는 안 된다는 크리파의 말에 카르나는 곤경에 처했다. 그러자 두료다나는 그 자리에서 카르나를 앙가 왕으로 즉위시킨다. 이에 감사한 카르나에게 두료다나는 "영원한 우정을 원한다"고 답하고, 두 사람은 껴안고 기쁨을 나눈다. 이로써 왕족이 된 카르나와 아르주나였지만, 장소에 나타난 카르나의 양아버지 아디라타를 보고 비마가 "마부의 아들에게 아르주나에게 죽을 자격은 없다"고 말하고, 이에 두료다나가 왕족에게는 힘이 가장 중요하며, 귀고리와 갑옷을 착용한 카르나는 왕에 어울린다고 반론한 시점에서 해가 지고, 결투는 이루어지지 않은 채 시합은 해산되었다. 카르나는 두료다나에게 더할 나위 없이 감미로운 말로 아첨을 하고, 그것을 받아들인 두료다나는 아르주나에 대한 두려움을 소멸시켰다.[37]

시민들은 유디슈티라 등 판다바의 미덕을 높이 평가하고, "판다바의 장남인 유디슈티라는, 젊지만 노련하며, 진실된 사람이고, 자비로운 사람이다. 즉위하면 비슈마와 드리타라슈트라와 그 아들들을 존경하고, 수많은 은혜를 베풀어 줄 것이다"라고 광장이나 집회장에 모여 말했다. 이 말에 두료다나는 격렬하게 질투하고, 드리타라슈트라에게 "이대로는 우리는 영원히 왕위 계승에서 제외되고, 세상 사람들에게 경멸당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가 고통받는 일이 없도록 신속하게 대처해주십시오"라고 진언한다. 드리타라슈트라는 한 번은 부정하지만, 두료다나가 명예와 재물로 신하들을 꾀어, 판다바를 왕도에서 쫓아낼 것을 제안하자, 그것을 받아들여버린다.[38]

두료다나는 판다바 암살이 실패한 것을 알고, 낙담하여, 실행범인 프로차나의 험담을 동생들과 나누었다.[40] 판다바가 왕국으로 귀환하자, 두료다나는 어머니가 다른 유디슈티라, 비마, 아르주나와, 나쿨라, 사하데바 사이를 바라문을 이용하여 갈라놓는 것, 아내인 드라우파디를 화나게 하여 사이를 갈라놓는 것, 비마를 암살하는 것 등을 제안한다. 한편, 카르나는 두료다나의 의견을 기각하고, 무력으로 판다바를 쓰러뜨리는 것을 제안한다.[41] 그러나 쿠루국의 가신들은 이를 좋게 여기지 않고, 판다바와의 강화를 위해, 영토를 각각 분할할 것을 드리타라슈트라 왕에게 제안했고, 드리타라슈트라는 이를 받아들였다. 즉, 쿠루국의 수도 하스티나푸르(Hastinapur)가 두료다나에게, 변경의 땅 칸다바프라스타(Khandavaprastha)가 유디슈티라에게 주어졌다.[42] 유디슈티라는 칸다바프라스타를 인드라프라스타(Indraprastha)로 개칭하고, 불모지를 영화가 극에 달하는 땅으로 개척했다. 그리고 유디슈티라는 여러 왕들이 동경하는 세계 황제의 즉위식(라자수야(Rajasuya))을 거행하여, 권세를 극에 달했다.[43] 두료다나는 그 즉위식의 호화로움에 압도되어 질투하여 창백해졌다.[44]

거기서 숙부 샤쿠니는 "도박에 능숙한 자신이라면, 쉽게 유디슈티라에게서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다"고 말하며, 두료다나를 격려했다.[45] 두료다나는 샤쿠니와 함께 드리타라슈트라를 설득하여, 판다바 형제를 윷놀이 도박판에 초대하게 한다.[46] 두료다나는 자신의 대신 속임수에 능숙한 샤쿠니로 유디슈티라의 상대하게 하고, 그가 건 재산, 영토, 심지어 형제와 아내인 드라우파디까지 모두 빼앗았다.

드라우파디를 획득했을 때, 두료다나는 동생 두흐샤사나에게, 생리 중이라 방에 틀어박혀 있던 드라우파디를 끌어내서라도 데려오도록 명령했다. 두흐샤사나는 드라우파디를 집회장으로 억지로 끌고 와서 격렬하게 흔들며 "노예 계집"이라고 욕했다. 카르나는 이 조롱을 더욱 기뻐하며, 더 나아가 옷을 벗기라고 명령했다[47]

그 후, 드리타라슈트라의 배려로, 걸었던 모든 것이 유디슈티라에게 반환되었지만, 두료다나는 "패자는 12년간 숲에서 산 뒤, 1년간 정체를 알리지 않고 숨어 지내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워, 다시 유디슈티라를 윷놀이 도박으로 유혹하여, 샤쿠니의 사기극으로 그를 꺾고, 판다바 형제를 숲으로 추방했다. 두료다나는 계획의 성공에 의기양양했지만, 이 폭거는 판다바들의 분노를 사서, 비마와 나쿨라는 두료다나 이하 동생들을, 사하데바는 샤쿠니를, 아르주나는 카르나를 죽일 것을 맹세했다.[48]

판다바가 추방된 동안, 두료다나는 판다바의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며 즐거워하려 카르나, 샤쿠니 등과 함께 목장 시찰을 계획한다.[49] 대군을 이끌고 숲으로 들어가, 오락을 위한 집을 병사들에게 만들게 하지만, 그곳은 반신 간다르바들이 이미 진을 치고 있었다. 간다르바들과 자리를 놓고 다투게 되지만, 반신인 그들을 당해내지 못하고, 형세가 불리하다고 판단한 카르나를 포함한 전군이 도망치고, 두료다나는 붙잡히고 만다.[50] 두료다나의 신하들의 부탁을 듣고 구하러 온 판다바 형제에게 구원받았지만, 굴욕감에 자살을 생각한다. 두흐샤사나와 카르나, 샤쿠니가 격려하지만, 두료다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때 나타난 악마들이, 두료다나의 상반신은 바즈라의 집적으로, 하반신은 여신에 의해 꽃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하며, 악마와 라크샤사가 아군이라고 격려했다. 더욱이 악마는 두료다나에게 자신들의 왕으로서 지상을 통치하도록 권했다. 이로 인해 두료다나는 살아갈 희망을 되찾고, 판다바 형제를 죽이고 왕국을 얻을 것을 다시 결의했다.[51]

정신을 차린 두료다나는 유디슈티라의 황제 즉위식에 대항하여 바이슈나바라는 대제를 치렀다. 약정으로 13년간 왕국에서 추방된 판다바가, 약정에 따르는 이상 초대를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판다바에게도 초대의 사자를 보냈다. 유디슈티라는 정중하게 이를 거절했지만, 이 모욕적인 행위는 비마의 분노를 샀다.[52]

3. 1. 판다바 암살 시도

어린 시절, 비마는 자신의 엄청난 힘으로 카우라바 형제들에게 부상을 입혔다. 비마가 음식을 좋아했기 때문에, 두료다나는 샤쿠니의 지시에 따라 그에게 독을 먹여 죽이려 했지만, 비마는 함정에서 살아남아 이전보다 더욱 강해졌다.[36] 물놀이를 했을 때, 피곤해 잠든 비마를 밧줄로 묶어 갠지스 강에 던졌지만, 비마는 깨어나 족쇄를 풀고 생환했다. 또한 맹독을 가진 뱀들에게 비마를 물게 하거나, 새로 만든 독으로 비마를 살해하려 했지만, 모두 실패했다.[36]

그 후 두료다나는 샤쿠니의 음모에 참여하여 바르나바타에서 판다바들을 밀랍집에 가두고 불태우려 했다.[39] 그러나 그들은 비두라의 경고를 받아 함정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38] 판다바 암살이 실패한 것을 안 두료다나는 낙담하여 실행범인 프로차나의 험담을 동생들과 나누었다.[40]

인망이 있고 연장자인 유디슈티라가 쿠루국의 차기 왕에 어울린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두료다나는 질투와 불안에 시달렸다.[35] 왕위를 노리는 두료다나는 항상 판다바 형제를 정복하고 자신이 권력을 얻기를 원했다. 그 때문에 두료다나는 외삼촌 샤쿠니, 절친인 카르나(카르나와의 관계는 카르나 항목 참조), 동생 두흐샤사나 등을 복심으로 두고, 판다바 형제에게 다양한 책략을 펼쳤다.

3. 2. 주사위 도박과 드라우파디 모욕

두료다나는 인드라프라스타의 번영과 명성에 질투를 느꼈고, 판다바에게 굴욕을 당한 후 그들을 몰락시키고 싶어했다.[41] 그의 숙부 샤쿠니는 유디스티라(Yudhishthira)를 주사위 도박으로 꺾어 왕국과 재산을 빼앗는 계략을 꾸몄다. 샤쿠니는 조종 가능한 주사위를 가지고 있어 이길 수밖에 없었다.[45][46]

외교적 이유로 초대를 거절할 수 없었던 유디스티라는 도박에서 자신의 왕국, 재산, 형제들, 심지어 아내 드라우파디까지 모두 잃었다.[46] 두료다나는 동생 두샤사나를 시켜 드라우파디를 법정으로 끌고 오게 했고, 두샤사나는 드라우파디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끌고 왔다.[47] 카르나는 두료다나에게 드라우파디를 왼쪽 허벅지에 앉히라고 부추겼고, 두료다나는 그녀를 모욕하기 위해 왼쪽 허벅지를 보여주고 두드렸다. 드라우파디가 거부하자 두료다나는 두샤사나에게 옷을 벗기라고 명령했다. 두샤사나는 드라우파디의 사리를 잡아당겼으나, 크리슈나의 은총으로 옷은 유지되었다.[12] 이 사건으로 비마는 두료다나의 허벅지를 부러뜨리겠다고 맹세했다.[48]

간다리)의 개입과 드리타라슈트라(Dhritarashtra)의 우려로 유디스티라의 모든 손실은 되돌려졌다.[48] 그러나 두료다나는 다시 주사위 도박을 제안했고, 샤쿠니는 판다바 형제들이 13년간 숲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1년간 아갸타바사(변장)를 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판다바는 패배하여 망명 생활을 시작했다.[48]

쿠루국의 가신들은 판다바와의 강화를 위해 영토 분할을 제안했고, 하스티나푸르는 두료다나에게, 칸다바프라스타는 유디슈티라에게 주어졌다.[42] 유디슈티라는 칸다바프라스타를 인드라프라스타로 개칭하고 발전시켰으며, 라자수야를 거행하여 권세를 떨쳤다.[43][44]

3. 3. 왕국 찬탈과 전쟁 도발

판다바들이 밀랍집에서 살아남고 드라우파디를 아내로 맞이하자, 비슈마는 왕국을 분할할 것을 제안했다.[10][11] 유디슈티라는 칸다바프라스타의 왕이 되었고, 두료다나는 하스티나푸라의 왕세자가 되었다. 그는 아버지 드리타라슈트라의 맹목성을 이용하여 사쿠니, 두샤사나, 카르나 등과 함께 국정을 관리했다.

두료다나는 인드라프라스타로 번영한 유디슈티라를 질투했다. 유디슈티라가 라자수야 야그나를 수행하고 다른 왕국에 대한 권위를 얻자 질투심은 더욱 커졌다. 인드라프라스타 방문 중 물웅덩이에 빠져 비마, 아르주나 등에게 조롱당한 사건은 그의 분노를 더욱 키웠다. 하지만 베다 비야사가 쓴 원본 경전에 따르면 드라우파디는 두료다나를 조롱하지 않았다.[10][11]

판다바가 추방된 후, 두료다나는 그들의 고통을 즐기기 위해 숲으로 갔다가 간다르바들에게 붙잡혔다. 판다바 형제들에게 구출된 후 굴욕감에 자살을 생각했지만, 악마들의 격려로 마음을 바꿔 판다바를 죽이고 왕국을 얻을 것을 결의했다.[51]

정신을 차린 두료다나는 유디슈티라의 황제 즉위식에 대항하여 바이슈나바라는 대제를 치렀다. 판다바를 초대했지만, 유디슈티라는 거절했고, 이는 비마의 분노를 샀다.[52]

4. 쿠루크셰트라 전쟁

주사위 도박의 약속대로 판다바 형제가 13년간의 추방을 마치고 돌아왔음에도, 두료다나는 판다바 형제에게 일체의 영토 반환을 거부했다. 부모, 무예 스승인 드로나, 일족의 장로인 비슈마의 설득, 판다바 측의 평화 협상까지 모두 거절했기 때문에[53], 쿠루크셰트라 전쟁으로 이어졌다.

전쟁에는 여러 나라의 왕들이 두료다나 등 카우라바 진영과 유디슈티라 등 판다바 진영으로 나뉘어 싸웠다. 두료다나는 유디슈티라의 동생인 쌍둥이 나쿨라, 사하데바의 삼촌인 마드라 국왕 샬리야를 판다바보다 먼저 대접하여 아군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다.[54]

쿠루크셰트라 전쟁에서 두료다나는 11 악샤우히니(당시 군대의 규모 단위)라는, 유디슈티라의 7 악샤우히니에 비해 큰 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진군했다.

그러나 전쟁은 두료다나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우선 자진영의 가장 강력한 전사인 비슈마와 카르나가 대립했고, 카르나는 비슈마가 쓰러질 때까지 열흘 동안 일족과 함께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55]

또한 비슈마가 쓰러진 후, 강력한 전사인 드로나가 판다바에게 손을 대는 것을 거부했다. 아군이 차례차례 비마아르주나에게 쓰러지는 가운데, 두료다나는 유디슈티라를 생포하도록 드로나에게 명령한다. 드로나는 겨우 평화를 맺을 마음이 생겼다고 감동하지만, 곧 "생포 후, 주사위 도박으로 다시 추방한다"는 두료다나의 말에 실망한다.[56] 게다가, 아슈바타마가 쏜 강력한 무기는 "싸울 의지가 없는 자에게는 효력이 없다"는 특성이 있었고, 크리슈나의 활약으로 무기를 버린 판다바 진영에는 효력이 없었다. 아슈바타마에게 다시 무기를 쏘도록 요구하지만, 한 번 쏘아진 무기는 되돌릴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57]

비슈마, 드로나, 카르나, 샬리야 등 자진영의 강력한 전사들을 차례로 잃고, 비마에게 동생들을 죽임을 당하고, 사하데바에게 샤쿠니를 잃어 혼자가 된 두료다나는 호수로 도망쳐 몸을 숨겼다.[58]

두료다나와 비마의 결투. 라즈마나마(마하바라타의 페르시아어 번역)의 삽화. 1598년


전쟁 18일째, 군대가 자신만 남게 된 두료다나는 아슈와타마, 크리파, 크리타바르마와 함께 호수에서 명상에 들어갔다.[21] 판다바크리슈나가 마침내 그를 찾아내자 두료다나는 그들에게 왕국을 선물하고 숲으로 은퇴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유디슈티라는 하스티나푸라는 두료다나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거절했다. 대신 유디슈티라는 판다바 형제 중 한 명을 골라 자신이 선택한 무기로 1대 1로 싸우고, 전투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전쟁의 승자가 되는 방식을 제안했다.[21]

가다를 사용하여 유디슈티라, 아르주나, 나쿨라, 사하데바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료다나는 자신의 숙적인 비마를 선택했다.[21] 비마가 신체적으로 우위에 있었지만, 두료다나는 그의 기술에 대한 헌신 덕분에 더 나은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발라라마의 두 제자 사이의 길고 잔혹한 전투 끝에 두료다나는 비마를 지치게 만들기 시작했고, 비마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이 시점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크리슈나비마에게 손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반복해서 쳤다. 비마는 주사위 게임 후에 두료다나의 허벅지를 부수겠다고 맹세한 것을 떠올렸다.[21] 비마는 승리한 듯 자신의 철퇴로 두료다나를 공격하여 그의 허벅지를 쳐서 치명상을 입혔다. 비마에게 얼굴을 모욕적으로 걷어차인 두료다나는 철퇴 싸움에서 허리 아래를 공격하는 것은 불법이므로 부당한 방법으로 살해되었다고 신음했다.[21]

이러한 위반에 격분한 크리슈나의 형제인 발라라마는 공격하기 위해 무기를 들었으나, 크리슈나는 두료다나의 악행을 상기시키고 참여를 거부한 전쟁에 영향을 미치려 한 그를 꾸짖으며 발라라마를 위로했다.[21]

패배한 채 누워 있던 두료다나는 판다바에게 자신이 어떻게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것이고, 판다바가 망명 생활을 하는 동안 하스티나푸라를 어떻게 즐겼는지, 그리고 이제 어떻게 친구 및 친척들과 함께 사후 세계를 보낼 것인지 자랑했다. 그는 전쟁 중에 판다바의 모든 책략을 다시 비난했고 그들의 유산을 깎아내렸다. 그의 인품을 존경하며 두료다나는 행복하게 죽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두료다나가 비마에게 패배하는 장면


호수에 숨어있는 곳에, 살아남은 카우라바의 전사들(크리파, 아슈바타만, 크리타바르만)이 찾아와 다시 판다바들과 싸울 것을 권했지만, 두료다나는 지금은 쉬고 싶다고 말하며 거절했다. 숲에서 사냥을 하던 사냥꾼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는 곧바로 판다바들에게 알리자, 유디슈티라는 군대를 이끌고 호수로 향했다. 유디슈티라는 두료다나에게 "좋아하는 무기, 그리고 우리들 중 누군가 한 명을 골라 싸우자. 만약 두료다나가 이긴다면 자신은 패배를 인정하겠다"라고 약속했다.

두료다나는 곤봉을 골랐고, 평생 미워했던 비마를 대전 상대로 선택했다.

크리슈나는 "두료다나는 곤봉술에 있어서 비할 데 없는 전사이다. 그런 그에게, 그대는 너무나도 쉽게 약속을 해 버렸다"라며 유디슈티라를 비난했다.

예상대로, 두료다나는 비마를 맹렬하게 몰아붙였다.

그러자 크리슈나는, 과거 두료다나가 드라우파디를 모욕했을 때, 비마가 두료다나의 허벅지를 부수겠다고 맹세했던 것을 그에게 상기시켜 비마가 두료다나의 허벅지를 공격하게 하여 꺾어버렸다.

곤봉을 사용한 싸움에서, 이처럼 배꼽 아래를 노리는 것은 반칙이었기에, 두료다나 자신이나, 그리고 그와 비마에게 곤봉술의 공통의 스승인 발라라마 등이 이 점을 비난했다.

이에 대해, 크리슈나는 두료다나가 해왔던 악행을 들며, 불법으로 불법에 보답하고 정의를 세우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괴로운 숨결 속에서 두료다나는 크리슈나를 심하게 욕하며, 자신이 세워온 왕족으로서의 업적을 들고, 그리고 전사로서 용감하게 싸워 죽어가는 것을 자랑한다는 뜻을 말했다. 또한, "이 세상에 남아 황폐한 집으로 돌아가 처참하게 죽은 친구를 생각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오랫동안 바라던 승리의 맛이 모래를 씹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닫겠지. 자, 나와 너, 어느 쪽이 축복받을까?"라고 말했다.

그때, 천상의 신들이 묘한 음악을 연주하며 꽃을 뿌려 두료다나를 칭찬했다.(꽃이 쏟아지는 것은 초인적인 행위를 찬양하는 대중적인 표현이며, 마하바라타에서도 드문 일이 아니고 빈번하게 등장한다).[59]

두료다나는 비마에게 패배한 후, 달려온 크리파, 크리타바르만, 아슈바타만 중에서 아슈바타만을 마지막 총지휘관으로 임명한다.[60] 아슈바타만은 명령을 받고 판다바들에게 야습을 감행한다. 두료다나는 핏물 속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슈바타만의 성공 보고를 받고 숨을 거두었다.[60] 덧붙여, 실제로는 판다바 5형제는 생존해 있었으며, 아슈바타만의 야습은 실패했다.

4. 1. 전쟁 준비

유배 기간이 끝났음에도 불구하고 두료다나는 유디슈티라에게 왕국을 돌려주라는 비슈마, 드로나차르야, 비두라의 충고를 거부했다.[53] 드리타라슈트라는 공개적으로 아들을 비난했지만, 판다바들이 인드라프라스타와 하스타니푸라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다섯 개의 마을을 받는 것에 동의하는 마지막 제안을 바랐다. 두료다나는 판다바들에게 바늘 끝만큼의 땅도 주지 않겠다고 말하며 비웃었다. 크리슈나의 부추김을 받은 두료다나는 그를 체포하려 했으나, 크리슈나는 자신의 비슈와루파 모습을 드러내었다. 카우라바 궁정 전체는 이 모습에 일시적으로 눈이 멀었으나, 비슈마, 드로나, 비두라, 크리파, 드리타라슈트라는 신성한 시야를 얻어 크리슈나가 진정으로 최고 존재임을 확인했다. 두료다나는 자만심이 강했기에 크리슈나의 신성을 확신하지 못하고, 무력으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으며 그 사건을 일축했다.

전쟁이 불가피해지자, 두료다나는 강력한 봉신들로부터 지지를 얻었다. 비슈마, 드로나, 카르나, 아슈와타마, 크리파, 샬야, 부리스라바스, 바가다타, 브리샤세나, 크리타바르마 등 강력한 전사들은 과거의 약속 때문에 두료다나를 위해 싸울 수밖에 없었다. 그는 경쟁자들보다 더 큰 군대를 모았다.[54]

사쿠니는 두료다나에게 크리슈나의 도움을 구하라고 조언했다. 두료다나는 드와르카로 급히 갔지만 크리슈나는 잠들어 있었다. 그는 크리슈나의 침대 머리맡에서 기다렸고, 그때 아르주나가 같은 목표를 가지고 도착했다. 크리슈나는 무장하지 않은 자신, 혹은 브리슈니 군대 전체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제안했고, 두료다나는 자신이 먼저 왔기 때문에 먼저 선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크리슈나는 아르주나가 더 어리므로 먼저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아르주나가 크리슈나의 군대를 거부하고 크리슈나만 선택하자, 두료다나는 기뻐하며 브리슈니 군대를 손에 넣고 하스티나푸라로 돌아왔지만, 사쿠니에게 질책을 받았다.

두료다나는 나쿨라사하데바의 외삼촌인 샬야의 군대를 얻는 데도 성공했다. 쿠루크셰트라로 오는 샬야의 군대를 가로막고 환대를 제공한 후, 두료다나는 속임수를 드러내고 샬야가 이제 그에게 빚을 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 부채를 이용하여 샬야의 군대와 지원을 얻어냈다. 두료다나는 카르나가 아르주나의 크리슈나와 동등한 전차병을 갖기를 원했다.[54]

주사위 도박의 약속대로 판다바 형제가 13년간의 추방을 마치고 돌아왔음에도, 두료다나는 판다바 형제에게 일체의 영토 반환을 거부했다. 부모, 무예 스승인 드로나, 일족의 장로인 비슈마의 설득, 판다바 측의 평화 협상까지 모두 거절했기 때문에[53], 이 발발했다.

쿠루크셰트라 전쟁에서 두료다나는 11 악샤우히니라는, 유디슈티라의 7 악샤우히니에 비해 큰 규모의 군대를 이끌고 진군했다. 그러나 전쟁은 두료다나의 뜻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우선 자진영의 가장 강력한 전사인 비슈마와 카르나가 대립했고, 카르나는 비슈마가 쓰러질 때까지 열흘 동안 일족과 함께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55]

비슈마가 쓰러진 후, 드로나는 판다바에게 손을 대는 것을 거부했다. 아군이 비마나 아르주나에게 쓰러지는 가운데, 두료다나는 유디슈티라를 생포하도록 드로나에게 명령한다. 드로나는 겨우 평화를 맺을 마음이 생겼다고 감동하지만, 곧 "생포 후, 주사위 도박으로 다시 추방한다"는 두료다나의 말에 실망한다.[56] 아슈와타마가 쏜 강력한 무기는 "싸울 의지가 없는 자에게는 효력이 없다"는 특성이 있었고, 크리슈나의 활약으로 무기를 버린 판다바 진영에는 효력이 없었다. 아슈와타마에게 다시 무기를 쏘도록 요구하지만, 한 번 쏘아진 무기는 되돌릴 수 없다는 말을 듣는다.[57]

비슈마, 드로나, 카르나, 샬리야 등 자진영의 강력한 전사들을 차례로 잃고, 비마에게 동생들을 죽임을 당하고, 사하데바에게 샤쿠니를 잃어 혼자가 된 두료다나는 호수로 도망쳐 몸을 숨겼다.[58]

4. 2. 전투 과정

두료다나는 마츠야 왕국의 총사령관 키차카와 절친한 사이였다. 비마가 드라우파디를 모욕한 혐의로 키차카를 죽이자, 두료다나는 비라타 왕에게 책임을 물었다. 비라타는 이에 분노하여 두료다나를 모욕하고 왕국에서 추방했다. 이후 두료다나는 군대를 이끌고 마츠야를 공격했지만, 아르주나와 비마의 방어로 실패했다.[13]

비마는 두료다나를 공격하여 활을 끊었다. 두료다나는 반격하여 비마의 활을 끊고 가슴에 화살을 쏘았다. 비마는 큰 고통을 느껴 전장에서 도망쳤다.[13] 8일째, 가토르카차 군대의 라크샤사들이 두료다나를 공격했고, 두료다나는 베가바트, 마하루드라, 비듀지흐바, 프라마틴 등 많은 라크샤사를 죽였다.[13] 또한 쿤티-보자의 아들 비샤라다를 죽였다.[14]

웃타마우자와 유다마뉴 (드루파다의 아들)가 두료다나를 공격했지만, 두료다나는 몽둥이 싸움에서 그들을 물리쳤다. 자야드라타의 죽음 이후, 두료다나는 판다바 군대를 공격했으나 유디슈티라에게 패배하여 도망쳤다.

가토르카차와 카르나의 야간 전투에서 두료다나는 카르나에게 샤크티(무기)를 사용하도록 재촉했고, 카르나는 이를 사용하여 가토르카차를 죽였다.

나쿨라는 두료다나와 싸워 패배하고 체키타나의 전차를 타고 도망갔다. 16일째, 두료다나는 유디슈티라와 맞서 싸웠으나 패배하고 전차가 파괴되었다. 그는 카르나에 의해 구출되었다.[16] 나쿨라사하데바가 두료다나를 공격했으나 거의 죽을 뻔했고, 드리스타디윰나가 그들을 구했다. 이후 유디스티라, 비마, 드리스타디윰나, 사탸키 등 많은 판다바 전사들이 두료다나를 공격했지만, 두료다나는 혼자서 그들을 모두 격퇴했다.[17]

18일째, 판다바 형제들이 다시 두료다나를 공격했지만, 두료다나는 그들 모두를 물리쳤다.[18][19] 두료다나는 체키타나를 죽이기도 했다. 이후, 드리스타드윰나가 두료다나의 전차병을 죽이고 전차를 파괴하여 두료다나는 도망쳤다.[20]

판다바 형제가 13년간의 추방을 마치고 돌아왔음에도, 두료다나는 영토 반환을 거부했다. 부모, 무예 스승인 드로나, 일족의 장로인 비슈마의 설득과 판다바 측의 평화 협상도 모두 거절하여 쿠루크셰트라 전쟁이 발발했다.[53]

두료다나는 11 악샤우히니(군대 단위)라는 대규모 군대를 이끌었지만, 전쟁은 불리하게 진행되었다. 가장 강력한 전사인 비슈마와 카르나가 대립했고, 카르나는 비슈마가 쓰러질 때까지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다.[55]

비슈마가 쓰러진 후, 드로나는 판다바에게 소극적이었다. 두료다나는 드로나에게 유디슈티라 생포를 명령했지만, 드로나는 "생포 후 주사위 도박으로 다시 추방한다"는 두료다나의 말에 실망한다.[56] 아슈바타마가 쏜 강력한 무기는 크리슈나의 활약으로 무기를 버린 판다바 진영에는 효과가 없었다.[57]

비슈마, 드로나, 카르나, 샬리야 등 강력한 전사들을 잃고, 비마에게 동생들을, 사하데바에게 샤쿠니를 잃은 두료다나는 호수로 도망쳐 몸을 숨겼다.[58]

4. 3. 최후의 결전



전쟁 18일째, 군대가 자신만 남게 된 두료다나는 아슈와타마, 크리파, 크리타바르마와 함께 호수에서 명상에 들어갔다.[21] 판다바크리슈나가 마침내 그를 찾아내자 두료다나는 그들에게 왕국을 선물하고 숲으로 은퇴하고 싶다고 말했지만, 유디슈티라는 하스티나푸라는 두료다나가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거절했다. 대신 유디슈티라는 판다바 형제 중 한 명을 골라 자신이 선택한 무기로 1대 1로 싸우고, 전투에서 승리하는 사람이 전쟁의 승자가 되는 방식을 제안했다.[21]

가다를 사용하여 유디슈티라, 아르주나, 나쿨라, 사하데바보다 유리한 입장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두료다나는 자신의 숙적인 비마를 선택했다.[21] 비마가 신체적으로 우위에 있었지만, 두료다나는 그의 기술에 대한 헌신 덕분에 더 나은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 발라라마의 두 제자 사이의 길고 잔혹한 전투 끝에 두료다나는 비마를 지치게 만들기 시작했고, 비마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이 시점에서 싸움을 지켜보던 크리슈나는 비마에게 손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반복해서 쳤다. 비마는 주사위 게임 후에 두료다나의 허벅지를 부수겠다고 맹세한 것을 떠올렸다.[21] 비마는 승리한 듯 자신의 철퇴로 두료다나를 공격하여 그의 허벅지를 쳐서 치명상을 입혔다. 비마에게 얼굴을 모욕적으로 걷어차인 두료다나는 철퇴 싸움에서 허리 아래를 공격하는 것은 불법이므로 부당한 방법으로 살해되었다고 신음했다.[21]

이러한 위반에 격분한 크리슈나의 형제인 발라라마는 공격하기 위해 무기를 들었으나, 크리슈나는 두료다나의 악행을 상기시키고 참여를 거부한 전쟁에 영향을 미치려 한 그를 꾸짖으며 발라라마를 위로했다.[21]

패배한 채 누워 있던 두료다나는 판다바에게 자신이 어떻게 영광스러운 죽음을 맞이할 것이고, 판다바가 망명 생활을 하는 동안 하스티나푸라를 어떻게 즐겼는지, 그리고 이제 어떻게 친구 및 친척들과 함께 사후 세계를 보낼 것인지 자랑했다. 그는 전쟁 중에 판다바의 모든 책략을 다시 비난했고 그들의 유산을 깎아내렸다. 그의 인품을 존경하며 두료다나는 행복하게 죽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호수에 숨어있는 곳에, 살아남은 카우라바의 전사들(크리파, 아슈바타만, 크리타바르만)이 찾아와 다시 판다바들과 싸울 것을 권했지만, 두료다나는 지금은 쉬고 싶다고 말하며 거절했다. 숲에서 사냥을 하던 사냥꾼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는 곧바로 판다바들에게 알리자, 유디슈티라는 군대를 이끌고 호수로 향했다. 유디슈티라는 두료다나에게 "좋아하는 무기, 그리고 우리들 중 누군가 한 명을 골라 싸우자. 만약 두료다나가 이긴다면 자신은 패배를 인정하겠다"라고 약속했다.

두료다나는 곤봉을 골랐고, 평생 미워했던 비마를 대전 상대로 선택했다.

크리슈나는 "두료다나는 곤봉술에 있어서 비할 데 없는 전사이다. 그런 그에게, 그대는 너무나도 쉽게 약속을 해 버렸다"라며 유디슈티라를 비난했다.

예상대로, 두료다나는 비마를 맹렬하게 몰아붙였다.

그러자 크리슈나는, 과거 두료다나가 드라우파디를 모욕했을 때, 비마가 두료다나의 허벅지를 부수겠다고 맹세했던 것을 그에게 상기시켜 비마가 두료다나의 허벅지를 공격하게 하여 꺾어버렸다.

곤봉을 사용한 싸움에서, 이처럼 배꼽 아래를 노리는 것은 반칙이었기에, 두료다나 자신이나, 그리고 그와 비마에게 곤봉술의 공통의 스승인 발라라마 등이 이 점을 비난했다.

이에 대해, 크리슈나는 두료다나가 해왔던 악행을 들며, 불법으로 불법에 보답하고 정의를 세우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더욱이, 괴로운 숨결 속에서 두료다나는 크리슈나를 심하게 욕하며, 자신이 세워온 왕족으로서의 업적을 들고, 그리고 전사로서 용감하게 싸워 죽어가는 것을 자랑한다는 뜻을 말했다. 또한, "이 세상에 남아 황폐한 집으로 돌아가 처참하게 죽은 친구를 생각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오랫동안 바라던 승리의 맛이 모래를 씹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닫겠지. 자, 나와 너, 어느 쪽이 축복받을까?"라고 말했다.

그때, 천상의 신들이 묘한 음악을 연주하며 꽃을 뿌려 두료다나를 칭찬했다.(꽃이 쏟아지는 것은 초인적인 행위를 찬양하는 대중적인 표현이며, 마하바라타에서도 드문 일이 아니고 빈번하게 등장한다).[59]

두료다나는 비마에게 패배한 후, 달려온 크리파, 크리타바르만, 아슈바타만 중에서 아슈바타만을 마지막 총지휘관으로 임명한다.[60] 아슈바타만은 명령을 받고 판다바들에게 야습을 감행한다. 두료다나는 핏물 속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슈바타만의 성공 보고를 받고 숨을 거두었다.[60] 덧붙여, 실제로는 판다바 5형제는 생존해 있었으며, 아슈바타만의 야습은 실패했다.

5. 죽음과 평가



전황이 정리되자, 싸움을 지켜보며 두료다나의 명예를 훼손하고 싶지 않았던 아슈와타마, 크리파차르야, 크리트바르마가 두료다나의 부서진 시신 곁으로 다가갔다. 아슈와타마는 두료다나에게 판다바 형제들과 그들의 동맹군을 야마의 영역으로 보내겠다고 약속하며 전쟁을 계속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했다.

호수에 숨어있던 두료다나는 살아남은 카우라바 전사들(크리파, 아슈와타마, 크리타바르만)에게 발견되어 다시 판다바들과 싸울 것을 권유받았지만, 지금은 쉬고 싶다며 거절했다. 숲에서 사냥을 하던 사냥꾼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판다바들에게 알리자, 유디슈티라는 군대를 이끌고 호수로 향했다. 유디슈티라는 두료다나에게 원하는 무기를 고르고 판다바 형제 중 한 명과 싸워 이기면 패배를 인정하겠다고 약속했다.

두료다나는 곤봉을 골랐고, 평생 미워했던 비마를 대전 상대로 선택했다. 크리슈나는 두료다나가 곤봉술에 비할 데 없는 전사라며 유디슈티라를 비난했다. 예상대로 두료다나는 비마를 맹렬하게 몰아붙였다. 그러자 크리슈나는 과거 두료다나가 드라우파디를 모욕했을 때 비마가 두료다나의 허벅지를 부수겠다고 맹세했던 것을 상기시켜 비마가 두료다나의 허벅지를 공격하게 했다. 곤봉 싸움에서 배꼽 아래를 공격하는 것은 반칙이었기에, 두료다나와 발라라마 등이 이 점을 비난했다.

크리슈나는 두료다나의 악행을 들며 불법으로 불법에 보답하고 정의를 세우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두료다나는 크리슈나를 심하게 욕하며 자신이 세워온 왕족으로서의 업적과 전사로서 용감하게 싸워 죽어가는 것을 자랑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세상에 남아 황폐한 집으로 돌아가 처참하게 죽은 친구를 생각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오랫동안 바라던 승리의 맛이 모래를 씹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닫겠지. 자, 나와 너, 어느 쪽이 축복받을까?"라고 말했다.[59] 그때, 천상의 신들이 묘한 음악을 연주하며 꽃을 뿌려 두료다나를 칭찬했다.

두료다나는 비마에게 패배한 후, 달려온 크리파, 크리타바르만, 아슈와타만 중에서 아슈와타만을 마지막 총지휘관으로 임명했다. 아슈와타만은 명령을 받고 판다바들에게 야습을 감행했다. 두료다나는 핏물 속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슈와타만의 성공 보고를 받고 숨을 거두었다.[60] 덧붙여, 실제로는 판다바 5형제는 생존해 있었으며, 아슈와타만의 야습은 실패했다.

우파판다바들과 판찰라족의 마지막 잔당을 죽인 후, 아슈와타마는 두료다나에게 돌아왔다. 그는 우파판다바들의 피가 묻은 칼을 두료다나에게 보여주었고, 두료다나는 복수에 만족하며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 두료다나의 죽음과 함께 산자야는 두료다나의 아버지 드르타라슈트라에게 전쟁 상황을 전달하는 데 사용했던 신성한 시력을 잃게 된다. 이는 전쟁의 종결을 상징한다. 판다바 형제들이 물러난 후, 유디슈티라만이 살아있는 채로 천국에 도달했다. 그곳에서 그는 두료다나를 보았고, 이는 그를 충격에 빠뜨렸다. 유디슈티라가 묻자, 나르다는 두료다나가 그의 종교적 의무를 다했다고 대답했다.[22]

두료다나는 분석의 인기 있는 대상이며, 그의 장점, 결점, 상징성, 관련성은 널리 논의된다. 많은 힌두교 신자들은 두료다나가 탐욕, 자만심, 욕망과 같은 악마적 특성을 가진 칼리의 화신이라고 믿는다. 칼리는 칼리 유가를 관장하는 악마이다. 많은 비평가들은 그에게 긍정적인 면이 없지 않다고 주장한다.

우루방가는 서기 2~3세기에 바사가 쓴 산스크리트어 희곡으로, 두료다나가 주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비극으로 쓰여진 이 드라마는 마하바라타 사건에 대한 그의 시각에 초점을 맞춘다. 비극적인 영웅으로서의 그의 묘사는 산스크리트 드라마 작품 전체에서 특히 독특하다.

학자들은 마하바라타의 다른 대부분의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진실은 흑백논리로 나눌 수 없다고 믿는다. 그의 이름은 종종 나쁜 통치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되지만, 실제로 그의 이름은 "어려운"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단어 "두"/"두흐"와 "싸움"/"전쟁"을 의미하는 "요다나"에서 유래되었다. 따라서 두료다나는 실제로 ''싸우거나 물리치거나 전쟁을 벌이기가 극도로 어려운 사람''을 의미한다.

두료다나는 어떤 이들에게는 드르타라슈트라의 야망의 산물로, 또한 비유적인 의미에서 그의 "맹목성"의 산물로 여겨진다. 그는 또한 크샤트리야로서의 의무를 준수하는 것으로 칭찬받으며, 마지막 전투에서도 용감하게 싸운다. 그는 다른 모든 판다바들을 제치고 비마와 전투를 선택했는데, 비마와의 전투에서는 철퇴 싸움에서 유리했다. 철퇴 실력 또한 칭찬받았으며, 많은 이야기에서 그를 당대 최고의 철퇴 싸움꾼이라고 부른다.

5. 1. 죽음



전황이 정리되자, 싸움을 지켜보며 두료다나의 명예를 훼손하고 싶지 않았던 아슈와타마, 크리파차르야, 크리트바르마가 두료다나의 부서진 시신 곁으로 다가갔다. 아슈와타마는 두료다나에게 판다바 형제들과 그들의 동맹군을 야마의 영역으로 보내겠다고 약속하며 전쟁을 계속할 수 있도록 허락을 구했다.[22]

호수에 숨어있던 두료다나는 살아남은 카우라바 전사들(크리파, 아슈와타마, 크리타바르만)에게 발견되어 다시 판다바들과 싸울 것을 권유받았지만, 지금은 쉬고 싶다며 거절했다. 숲에서 사냥을 하던 사냥꾼들이 이 이야기를 듣고 판다바들에게 알리자, 유디슈티라는 군대를 이끌고 호수로 향했다. 유디슈티라는 두료다나에게 원하는 무기를 고르고 판다바 형제 중 한 명과 싸워 이기면 패배를 인정하겠다고 약속했다.

두료다나는 곤봉을 골랐고, 평생 미워했던 비마를 대전 상대로 선택했다. 크리슈나는 두료다나가 곤봉술에 비할 데 없는 전사라며 유디슈티라를 비난했다. 예상대로 두료다나는 비마를 맹렬하게 몰아붙였다. 그러자 크리슈나는 과거 두료다나가 드라우파디를 모욕했을 때 비마가 두료다나의 허벅지를 부수겠다고 맹세했던 것을 상기시켜 비마가 두료다나의 허벅지를 공격하게 했다. 곤봉 싸움에서 배꼽 아래를 공격하는 것은 반칙이었기에, 두료다나와 발라라마 등이 이 점을 비난했다.

크리슈나는 두료다나의 악행을 들며 불법으로 불법에 보답하고 정의를 세우는 것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두료다나는 크리슈나를 심하게 욕하며 자신이 세워온 왕족으로서의 업적과 전사로서 용감하게 싸워 죽어가는 것을 자랑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세상에 남아 황폐한 집으로 돌아가 처참하게 죽은 친구를 생각하며 고통스러워하고, 오랫동안 바라던 승리의 맛이 모래를 씹는 것과 같다는 것을 깨닫겠지. 자, 나와 너, 어느 쪽이 축복받을까?"라고 말했다.[59]

두료다나는 비마에게 패배한 후, 달려온 크리파, 크리타바르만, 아슈와타만 중에서 아슈와타만을 마지막 총지휘관으로 임명했다.[60] 아슈와타만은 명령을 받고 판다바들에게 야습을 감행했다. 두료다나는 핏물 속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슈와타만의 성공 보고를 받고 숨을 거두었다.[60] 실제로는 판다바 5형제는 생존해 있었으며, 아슈와타만의 야습은 실패했다.

우파판다바들과 판찰라족의 마지막 잔당을 죽인 후, 아슈와타마는 두료다나에게 돌아왔다. 그는 우파판다바들의 피가 묻은 칼을 두료다나에게 보여주었고, 두료다나는 복수에 만족하며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 두료다나의 죽음과 함께 산자야는 두료다나의 아버지 드르타라슈트라에게 전쟁 상황을 전달하는 데 사용했던 신성한 시력을 잃게 된다. 이는 전쟁의 종결을 상징한다. 판다바 형제들이 물러난 후, 유디슈티라만이 살아있는 채로 천국에 도달했다. 그곳에서 그는 두료다나를 보았고, 이는 그를 충격에 빠뜨렸다. 유디슈티라가 묻자, 나르다는 두료다나가 그의 종교적 의무를 다했다고 대답했다.[22]

5. 2. 평가

두료다나는 분석의 인기 있는 대상이며, 그의 장점, 결점, 상징성, 관련성은 널리 논의된다. 많은 힌두교 신자들은 두료다나가 탐욕, 자만심, 욕망과 같은 악마적 특성을 가진 칼리의 화신이라고 믿는다. 칼리는 칼리 유가를 관장하는 악마이다. 많은 비평가들은 그에게 긍정적인 면이 없지 않다고 주장한다.

우루방가는 서기 2~3세기에 바사가 쓴 산스크리트어 희곡으로, 두료다나가 주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비극으로 쓰여진 이 드라마는 마하바라타 사건에 대한 그의 시각에 초점을 맞춘다. 비극적인 영웅으로서의 그의 묘사는 산스크리트 드라마 작품 전체에서 특히 독특하다.

학자들은 마하바라타의 다른 대부분의 등장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진실은 흑백논리로 나눌 수 없다고 믿는다. 그의 이름은 종종 나쁜 통치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오해되지만, 실제로 그의 이름은 "어려운"을 의미하는 산스크리트어 단어 "두"/"두흐"와 "싸움"/"전쟁"을 의미하는 "요다나"에서 유래되었다. 따라서 두료다나는 실제로 ''싸우거나 물리치거나 전쟁을 벌이기가 극도로 어려운 사람''을 의미한다.

두료다나는 어떤 이들에게는 드르타라슈트라의 야망의 산물로, 또한 비유적인 의미에서 그의 "맹목성"의 산물로 여겨진다. 그는 또한 크샤트리야로서의 의무를 준수하는 것으로 칭찬받으며, 마지막 전투에서도 용감하게 싸운다. 그는 다른 모든 판다바들을 제치고 비마와 전투를 선택했는데, 비마와의 전투에서는 철퇴 싸움에서 유리했다. 철퇴 실력 또한 칭찬받았으며, 많은 이야기에서 그를 당대 최고의 철퇴 싸움꾼이라고 부른다.

6. 현대적 의미

두료다나는 남인도에서 유일하게 카우라바가 신으로 여겨지는 케랄라주 콜람 구의 포루바지 페루비루티 말라나다 사원에서 주요 신으로 숭배받고 있다.[25] 우타라칸드의 쿠마온(Kumaon division) 지역과 가르왈(Garhwal division) 오슬라에도 두료다나를 기리는 사원이 있다.[26]

K.M. 문시 박사의 ''크리슈나바타라''(힌디어: कृष्णअवतार)와 비스와나탄 라구나탄의 ''두료다나'' (2014, 하퍼콜린스(HarperCollins)) 등의 소설에서 두료다나를 다루고 있다.

푸니트 이사르는 TV 시리즈 마하바라트 (1988–1990)에서 두료다나 역할을 맡았다.[27] 맘무티는 1991년 콜리우드 영화 탈라파티에서, 마노지 바즈페이는 2010년 볼리우드 영화 라즈니티에서 두료다나를 모티브로 한 인물을 연기했다.

연도작품배우국가언어
1964카르난S. A. 아쇼칸인도타밀어
1977다나 비라 슈라 카르나N. T. 라마 라오텔루구어
1988마하바라트 (1988 TV 시리즈)푸니트 이사르힌디어
1989마하바라타조르주 코라파스벨기에, 호주, 미국, 스웨덴, 포르투갈, 노르웨이, 네덜란드, 일본,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핀란드, 덴마크, 영국, 프랑스영어
1993크리슈나 (TV 시리즈)쿠마르 헤지인도힌디어
2002마하라티 카르나니마이 발리힌디어
2008카하니 하마라 마하바라트 키아리안 바이드힌디어
2013마하바라탐 (TV 시리즈)베트리 벨타밀어
2013마하바라트아르피트 랑카힌디어
2013마하바라트재키 슈로프 (목소리)힌디어
2015수르야푸트라 카르나살린 바노트힌디어
2018카르나 상기니파라스 차브라힌디어
2019쿠룩셰트라다르샨칸나다어, 말라얄람어, 타밀어, 텔루구어, 그리고 힌디어
2020라다크리슈나크립 수리힌디어


6. 1. 권력 남용에 대한 경고

6. 2. 한국 사회에 주는 메시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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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사이트 Suyodhana, Su-yodhana: 12 definitions https://de.wisdomlib[...] 2017-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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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웹사이트 Indian Myth and Legend: Chapter XVIII. The Battle of Eighteen Days http://www.sacred-te[...] Sacred-texts.com
[10] 웹사이트 The Mahabharata, Book 2: Sabha Parva: Sisupala-badha Parva: Section XLVI http://www.sacred-te[...]
[11] 웹사이트 Did Draupadi Insult Duryodhana during Rajasuya, Karna in Swayamvara? https://www.myindiam[...] 2020-0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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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웹사이트 The Mahabharata, Book 6: Bhishma Parva: Bhagavat-Gita Parva: Section LXIV https://sacred-texts[...] 20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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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웹사이트 The Mahabharata, Book 9: Shalya Parva: Section 22 https://sacred-texts[...] 2020-06-04
[20] 웹사이트 The Mahabharata, Book 9: Shalya Parva: Section 12 https://sacred-texts[...] 2020-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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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웹사이트 The Mahabharata, Book 18: Svargarohanika Parva: Section 1 https://www.sacre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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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웹사이트 Poruvazhy Peruviruthy Malanada | The one and only one Duryodhana Temple in South India http://www.malanada.[...] Malanada.com 2014-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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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문서 山際版6巻に登場するが名前は不詳
[29] 문서 プーナ批判校訂版3.226.21に、「bhāryāḥ」と複数形で言及がある。
[30] 문서 プーナ批判校訂版18.5.2に、「duryodhanasutāś」と複数形で言及がある。
[31] 문서 カタカナ表記については'''ドゥリヨーダナ'''ないし'''ドゥリーヨダナ'''等とされることもある。しかしながら、サンスクリットの音韻体系の観点からは、カタカナ語表記について、「dur-yodhana」で切れるため、「i」の発音は発生しないこと、サンスクリット語の「e,o」は長音しか存在しないことから、「ドゥルヨーダナ」が一般的な表記である。
[32] 서적 マハーバーラタ入門 勉誠出版
[33] 서적 マハーバーラタ 第1巻 三一書房
[34] 서적 原典訳 マハーバーラタ1 筑摩書房
[35] 서적 原典訳 マハーバーラタ1 筑摩書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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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서적 原典訳 マハーバーラタ2 筑摩書房 2002
[42] 서적 原典訳 マハーバーラタ2 筑摩書房 2002
[43] 서적 原典訳 マハーバーラタ2 筑摩書房 2002
[44] 서적 原典訳 マハーバーラタ2 筑摩書房 2002
[45] 서적 原典訳 マハーバーラタ2 筑摩書房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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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서적 原典訳 マハーバーラタ5 筑摩書房 2002
[55] 서적 原典訳 マハーバーラタ5 筑摩書房 2002
[56] 서적 原典訳 マハーバーラタ7 筑摩書房 2003
[57] 서적 原典訳 マハーバーラタ7 筑摩書房 2003
[58] 서적 マハーバーラタ 第5巻 三一書房 1996
[59] 서적 マハーバーラタ(下) 第三文明社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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