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루크셰트라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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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쿠루크셰트라 전쟁은 마하바라타 서사시에 등장하는 고대 전쟁으로, 역사적 사실 여부에 대한 논쟁이 있다. 기원전 12세기에서 8세기 사이에 발생했다는 설과 기원전 3138년에 발생했다는 설이 존재하며, 십왕 전쟁이 이 전쟁의 기원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쿠루족의 왕위 계승 다툼으로 시작된 이 전쟁은 판다바와 카우라바 두 사촌 집단 간의 갈등으로, 두료다나가 판다바들을 유배 보내면서 본격화되었다. 전쟁은 다르마유다 규칙에 따라 진행되었으며,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바가바드 기타를 통해 다르마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18일간의 전투 끝에 판다바가 승리했으며, 이 전쟁은 힌두교의 중요한 사건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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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루크셰트라 전쟁 - [전쟁]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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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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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 | 쿠루크셰트라 |
영토 | 판다바의 통치 하에 쿠루 왕국의 도시 하스티나푸라와 인드라프라스타 재통일 드로나가 점령한 판찰라 왕국 영토 회복 휴전 및 개전 이전 상태 유지 |
결과 | 판다바와 동맹국의 피로스의 승리, 카우라바 축출 하스티나푸라의 몰락 드리타라슈트라의 하스티나푸라 왕위 포기와 유디슈티라의 즉위 유유추의 통치 하에 인드라프라스타가 하스티나푸라의 봉신국으로 전락 앙가, 체디 왕국, 간다라 왕국, 칼링가, 코살라, 마드라 왕국, 마가다, 마츠야 왕국, 판찰라, 신두 왕국에서 왕위 계승 위기 발생 쿠루 왕국에서 판찰라로 지역 헤게모니 이동 |
교전 세력 | |
교전국 1 | 영토가 없는 쿠루 왕국의 판다바 크리슈나 마가다 판찰라 마츠야 왕국 체디 왕국 쿤티 왕국 기타 동맹국 |
교전국 2 | 쿠루 왕국의 카우라바 앙가 간다라 왕국 신두 왕국 마드라 왕국 칼링가 캄보자 바흘리카 트리가르타 프라지요티샤 야다바 군대 (크리슈나의 나라야니 세나) 기타 동맹국 |
지휘관 및 지도자 | |
병력 규모 | |
교전국 2 병력 | 1,048,405,700명) |
사상자 및 피해 | |
교전국 1 사상자 | 거의 전멸 (1,530,892명) 판다바 5형제, 크리슈나, 사티야키, 유유추 단 8명 생존 |
교전국 2 사상자 | 거의 전멸 (2,405,697명) 아슈와타마, 크리파, 크리타바르마 단 3명 생존 |
기타 사상자 | 유디슈티라는 1,660,020,000명이 사망하고 24,165명이 실종되었다고 보고함.인용 서적 |
기타 정보 |
2. 역사성
오늘날 쿠루크셰트라 전쟁의 역사성은 논란이 되고 있다.[37][13] 주류 역사학자들은 실제 사건이라는 가정 하에 쿠루크셰트라 전쟁이 발생한 연도를 베다 시대 초기에 해당하는 기원전 12세기에서 기원전 8세기 사이로 보고 있다. 반면, 힌두교 학자들은 크리슈나의 죽음으로 칼리 유가(기원전 3102년~현재)가 시작되었으며, 이는 쿠루크셰트라 전쟁 종결 36년 후라고 보기 때문에 전쟁 발생 시기를 칼리 유가 이전인 드와파라 유가 말기, 즉 기원전 3138년으로 본다.
리그베다에 언급된 십왕 전쟁이 쿠루크셰트라 전쟁 이야기의 핵심을 이루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전쟁 이야기는 ''마하바라타''에서 크게 확대되고 수정되었기 때문에 그 역사성에 의문이 제기된다.[15] 일부 연구에서는 쿠루크셰트라 전쟁의 역사적 시기를 기원전 1000년경으로 추정하기도 한다.[14] 하지만 민간에서는 이 전쟁이 칼리 유가로의 전환점을 나타낸다고 보며, 이를 기원전 3102년경으로 여긴다.[16]
쿠루크셰트라 전쟁은 베다 문학에는 직접 언급되지 않지만, 후대 문학에서 중요성이 커졌다. 영국의 인도학자 A. L. 배샴은 쿠루크셰트라에서 "거대한 전투"가 있었고, 이것이 크게 확대되어 ''마하바라타''를 형성했다고 보았다. 그는 이 전쟁이 후대 사람들에게 한 시대를 마감하는 사건으로 여겨졌지만, 실제로는 내전이라기보다 "언덕에서 온 몽골족 부족에 의한 쿠루족 정복에 대한 혼란스러운 기억"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배샴은 가장 대중적인 전설인 기원전 3102년 설과 기원전 15세기 설 모두 고고학적 증거와 맞지 않다고 보았으며, 브라만 문학의 증거와 빈약한 고고학적 유물을 바탕으로 전쟁 시기를 기원전 9세기 초로 추정했다.[18]
푸라나 문학은 ''마하바라타'' 이야기와 관련된 계보 목록을 제시한다. 푸라나 문헌은 두 가지 종류의 증거를 제시한다. 첫째, 파릭시트(아르주나의 손자)의 출생과 마하파드마 난다의 즉위(일반적으로 기원전 382년 추정) 사이의 기간이 1,015년(또는 1,050년)이었다는 직접적인 진술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바라타 전투(쿠루크셰트라 전쟁)를 약 기원전 1400년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17] 그러나 이는 계보에 나열된 왕들의 평균 통치 기간이 비정상적으로 길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18] 둘째, 아디시마크리슈나(파릭시트의 증손자) 시대와 마하파드마 난다 시대 사이의 병행 계보를 분석하는 방법이 있다. 파지터는 10개의 다른 왕조 목록을 평균하여 26세대를 추정하고, 평균 통치 기간을 18년으로 가정하여 아디시마크리슈나 시대를 기원전 850년으로, 바라타 전투를 약 기원전 950년으로 산출했다.[19]
현존하는 《마하바라타》 텍스트는 많은 개정을 거쳤으며, 대부분 기원전 500년에서 서기 400년 사이에 속한다.[20] 원래는 8,800절의 작은 시 '자야(승리)'였으나, 24,000절의 '바라타'를 거쳐 현재의 10만 절에 달하는 《마하바라타》가 되었다는 견해도 있다.[21] 《마하바라타》의 액자 소설 구조 내에서 파릭시트와 자나메자야 왕은 쿠루 가문의 후손으로 중요하게 등장한다.[15] 마이클 비첼은 서사시의 일반적인 배경이 대략 기원전 1200년에서 800년 사이에 쿠루 왕국이 정치적 중심지였던 베다 시대에 역사적 선례를 두고 있다고 결론 내렸다.[15] 반면, 알프 힐테베이텔 교수는 《마하바라타》가 본질적으로 신화적이라고 본다. 인도의 역사학자 우핀더 싱은 "판다바스와 카우라바스 사이에 격렬한 전쟁이 실제로 일어났는지 여부는 증명하거나 반증할 수 없다"고 하며, "음유 시인과 시인에 의해 거대한 서사시 전쟁으로 변모된 작은 규모의 갈등이 있었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일부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이 이 갈등의 시기를 기원전 1000년경으로 추정한다고 덧붙였다.
핀란드의 인도학자 아스코 파르폴라는 이 전쟁이 채색 회색 도기 문화의 후기 단계인 기원전 750년에서 350년 사이에 발생했을 수 있다고 본다.
다양한 학자들이 제시한 쿠루크셰트라 전쟁의 추정 연대는 다음과 같다.
마하바라타는 쿠루 가문의 여러 세대에 걸친 이야기를 다룬 서사시다.[8] 이 서사시의 핵심 내용은 쿠루 가문에 속한 두 경쟁 집단, 즉 판두의 아들들인 판다바와 드리타라스트라의 아들들인 카우라바 사이의 갈등과 전쟁이다.[9]
이 전쟁은 다르마유다라는 고대 크샤트리야의 맹약에 따라 다음과 같은 규칙 아래 진행되었다.[40]
3. 배경
두 집단은 본래 쿠루 왕국의 왕위 계승권을 놓고 대립하고 있었다. 이 갈등을 잠재우기 위해 왕국은 하스티나푸라를 수도로 하는 카우라바 왕국과 인드라프라스타를 수도로 하는 판다바 왕국으로 분할 통치되었다. 그러나 카우라바의 지도자인 두료다나는 판다바 왕국의 영토에 욕심을 내어 주사위 게임 내기를 제안했다. 이 내기에서 카우라바가 승리하면서, 판다바는 인드라프라스타 지역을 카우라바에게 넘겨주고 13년 동안 왕국을 떠나 유배 생활을 해야만 했다.
13년의 유배 기간이 끝나고 판다바가 돌아왔지만, 두료다나는 약속을 어기고 인드라프라스타를 돌려주는 것을 거부했다. 이에 판다바는 최후의 수단으로, 그들의 지지자이자 유지신 비슈누의 화신인 크리슈나를 평화 사절로 쿠루 왕국에 파견했다. 크리슈나는 하스티나푸라에서 열린 회의에서 두료다나에게 인드라프라스타를 판다바에게 돌려주고 화해할 것을 권고했다. 그러나 두료다나는 "바늘 끝만큼의 땅도 줄 수 없다"고 말하며 크리슈나의 평화 제안을 일축했다. 심지어 그는 장로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크리슈나를 포박하라고 병사들에게 명령했다. 크리슈나는 이에 웃으며 강렬한 빛을 내뿜는 신성한 모습을 드러내 보였고, 두료다나에게 그의 몰락이 확실함을 경고했다.
결국 크리슈나의 평화 임무는 실패로 끝났고,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전쟁이 벌어진 장소는 쿠룩셰트라(문자 그대로 "쿠루의 지역")로, 다르마크셰트라("달마의 지역")라고도 불린다.[10][11] 《마하바라타》 원전에 따르면, 이 땅은 매우 신성하여 이곳에서 저지른 죄는 용서받는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전쟁터로 선택되었다고 한다.[12]
쿠룩셰트라 전쟁 관련 사건들은 《마하바라타》 전체 내용의 4분의 1 이상을 차지하며, 이 부분은 서사시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 중 하나로 여겨진다.
4. 전쟁의 규칙
5. 군대 편성
쿠루크셰트라 전쟁에 참여한 양 군대의 총 병력 수는 약 394만 명에 달했다.[38] 전쟁 기간 동안에는 활, 폴암, 도검, 창, 아스트라 등 다양한 무기가 사용되었다.[39] 판다바는 비라타의 영토인 우파플라비아에 진영을 갖추고 군대를 모았으며, 전국 각지에서 지원 병력이 합류했다.
5. 1. 판다바 군대

유디슈티라는 형제들에게 군대 조직을 요청한다. 판다바는 동맹국들의 도움을 받아 총 7개의 아크샤우히니로 군대를 구성했다. 판다바스는 지휘관들과 상의한 후 판찰라의 왕자 드리스타듀므나를 판다바 군대의 총사령관(세나파티)으로 임명했으며, 크리슈나가 참모 역할을 맡았다.
판다바 군대의 편성은 다음과 같다.
지휘관 | 소속/출신 | 병력 규모 |
---|---|---|
사티야키 | 브리슈니 장군 | 1 아크샤우히니 |
판디아, 촐라, 체라의 왕들 | 판디아, 촐라, 체라 | 1 아크샤우히니 |
드리슈라케투 | 체디 왕 | 1 아크샤우히니 |
(마가다의 왕) | 마가다 | 1 아크샤우히니 |
드루파다 | 판찰라 왕 | 1 아크샤우히니 |
비라타 | 마츠야 왕 | 1 아크샤우히니 |
가토가챠 | 랴크샤사 왕 | 1 아크샤우히니 |
5. 2. 카우라바 군대
카우라바 군대는 11개의 악샤우히니로 구성되었다. 총사령관은 비슈마가 맡았으며, 각 부대는 두료다나를 비롯한 카우라바 100형제, 두료다나의 친구인 카르나, 브라만 출신의 드로나와 그의 아들 아슈와타마, 자야드라타, 샬리야, 크리파, 크리타바르마 등이 지휘했다. 샤쿠니는 참모 역할을 맡았다. 군대의 상세 편성은 다음과 같다.지휘관 | 소속/직위 | 담당 병력 |
---|---|---|
두료다나 | 쿠루 왕국 수장 | 1 악샤우히니 |
바가닷타 | 비타라의 왕 | 1 악샤우히니 |
샬리야 | 마드라의 왕 | 1 악샤우히니 |
카르나 | 앙가의 왕 | 1 악샤우히니 |
크리타바르마 | 브리슈니의 장군 | 1 악샤우히니 (나라야나 부대) |
자야드라타 | 신두의 왕 | 1 악샤우히니 |
수닥시나 | 캄보자의 왕 | 1 악샤우히니 |
바흘리카 왕 | 바흘리카 왕국의 왕 | 1 악샤우히니 |
칼링가 군대 | 칼링가 | 1 악샤우히니 |
샤쿠니 | 간다라의 왕 | 1 악샤우히니 |
수사르마 | 트리가르타의 왕 | 1 악샤우히니 |
전쟁 준비 과정에서 두료다나와 아르주나는 크리슈나의 지원을 얻기 위해 드바라카로 향했다. 두료다나가 먼저 도착하여 잠든 크리슈나의 머리맡에 앉았고, 뒤이어 도착한 아르주나는 발치에 앉아 기다렸다. 잠에서 깬 크리슈나는 아르주나를 먼저 보았고, 그에게 먼저 소원을 말할 기회를 주었다. 크리슈나는 자신의 강력한 군대인 나라야니 세나[29][30][31][32]와, 직접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는 자기 자신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제안했다. 두료다나는 아르주나가 강력한 군대를 택할까 염려했지만, 아르주나는 크리슈나 자신을 선택하며 그의 마부가 되어 달라고 요청했다. 크리슈나는 이를 수락했고, 두료다나는 나라야니 세나를 얻게 되어 만족하며 돌아갔다. 나라야니 세나는 본래 일곱 명의 마하라티와 일곱 명의 아티라티로 구성된 정예 부대였으며, 이 중 크리타바르마가 카우라바 측에 합류하여 1 악샤우히니를 이끌었다.
두료다나는 비슈마에게 카우라바 군대의 총사령관직을 제안했다. 비슈마는 판다바 다섯 형제를 해치지 않겠다는 조건과, 자신이 전장에 있는 동안에는 카르나가 참전하지 않고 두료다나의 호위를 맡아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고 이를 수락했다. 두료다나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 비슈마의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를 총사령관으로 임명했으며, 카르나는 비슈마가 전장에서 물러난 후에야 전쟁에 참여하게 되었다.
6. 전개
전쟁의 서막은 산자야가 지구의 여러 대륙(드비파)과 다른 세계(나가라바)를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는 특히 고대 인도 아대륙, 즉 바라타 바르샤의 지리, 왕국, 부족, 도시, 강, 산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또한, 산자야는 전쟁 기간 동안 매일 양측 진영의 군사 배치, 주요 영웅들의 죽음, 전투의 세세한 부분까지 기록하여 전달했다.
전쟁을 피하기 위한 마지막 노력으로, 크리슈나는 판다바스의 평화 사절로서 하스티나푸라로 향했다. 그는 카우라바스에게 이성적으로 판단하여 동족 간의 유혈 사태를 피하고 평화의 길을 택할 것을 설득하고자 했다. 그러나 두료다나는 크리슈나의 방문을 모욕으로 받아들였고, 그가 왕궁의 환대를 거절하자 더욱 분노했다. 두료다나는 크리슈나를 체포하여 공개적으로 모욕함으로써 판다바스의 위신을 깎아내리고 전쟁을 선포하려 했다.
크리슈나는 쿠루 왕궁의 마하사바에서 공식적으로 평화 제안을 발표했다. 그는 두료다나에게 인드라프라스타를 판다바스에게 돌려주거나, 최소한 다섯 개의 마을이라도 내어줄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두료다나는 이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으며, 원로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크리슈나를 체포하라고 명령했다. 이에 크리슈나는 웃으며 자신의 신성한 모습을 드러내 강렬한 빛을 발산했고, 두료다나가 결국 그의 허벅지를 부수기로 맹세한 자의 손에 죽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평화 사절로서의 임무가 완전히 실패하고 모욕까지 당하자, 크리슈나는 우파플라비아의 판다바 진영으로 돌아가 다르마(정의와 의로움)를 지키기 위한 유일한 길은 전쟁뿐임을 알렸다. 돌아가는 길에 크리슈나는 쿤티의 첫째 아들이자 유디슈티라의 형인 카르나를 만나 판다바스를 돕고 정의의 편에서 싸울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카르나는 두료다나에게 진 빚을 갚아야 한다며 이 제안을 거절하고 판다바스와 싸울 것임을 밝혔다.
《마하바라타》에 따르면, 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해에는 30일 간격으로 세 번의 일식이 관측되었는데, 이는 힌두 점성술에서 매우 불길한 징조로 여겨졌다.[33]
전쟁 첫날부터 양측 군대는 정해진 방향으로 진을 쳤다. 카우라바 군대는 서쪽을, 판다바 군대는 동쪽을 향했다. 판다바 군대는 유디슈티라와 아르주나의 지휘 아래 바즈라(금강저) 형태로 진형을 구축했다. 10개의 아크샤우히니로 구성된 카우라바 군대는 팔랑크스 진형을 취했으며, 특히 비슈마를 보호하기 위해 11번째 부대를 그의 직접 지휘 아래 두었다. 두료다나는 최고 사령관인 비슈마의 안전과 능력에 전쟁의 승패를 걸고 있었다.
6. 1. 바가바드 기타

양군이 쿠루크셰트라 지역에 모여 대치를 완료하고 전투가 개시되기 직전, 아르주나는 적진에 선 자신의 친족들과 존경하는 스승 드로나, 그리고 사랑하는 삼촌 비슈마 등을 죽여야 하는 현실에 괴로워하며 크리슈나에게 이를 하소연했다. 아르주나는 무엇이 옳고 그른지 혼란스러워하며 신성한 조언과 가르침을 구했다.[34]
아르주나의 전차 마부 역할을 하던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두려워하거나 죄책감을 느끼지 말고, 품위 없는 무력함에 굴복하지 말고 자신의 본분과 의무에 충실하라고 설교했다. 크리슈나는 이 전쟁이 정의(다르마)와 불의(아다르마) 사이의 싸움이며, 판다바는 다르마의 편이고 카우라바는 아다르마의 세력이므로, 불의를 편드는 자들을 없애는 것이 아르주나의 의무임을 상기시켰다. 또한 크리슈나는 악이 만연할 때마다 자신이 지상에 강림한다고 설명하며 자신의 신성한 모습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34] 전투에 관한 충고 외에도 요가와 신비로운 지식 등 힌두교의 여러 교리를 설파했는데, 이 설교 내용이 바로 힌두교의 중요한 경전 중 하나인 바가바드 기타이다. 크리슈나의 설교를 들은 아르주나는 평정심을 되찾았다.
전투가 시작되기 전, 판다바의 수장 유디슈티라는 무기를 내려놓고 갑옷을 벗은 채 카우라바 진영으로 걸어가 비슈마의 발 앞에 엎드려 전투에서의 성공을 기원하는 축복을 구했고, 비슈마는 그를 축복했다. 예를 갖춘 유디슈티라는 자신의 전차로 돌아왔고, 양군은 전투를 시작할 준비를 마쳤다.
6. 2. 1일차 ~ 10일차: 비슈마의 활약과 죽음
전쟁 첫날, 카우라바의 총사령관 비슈마는 아르주나가 펼친 바즈라 진형에 혼란을 겪었다. 이 틈을 타 아르주나의 아들 아비만유가 비슈마에게 돌진하여 호위병들을 물리치고 공격했으나, 비슈마에게 패배하고 물러났다. 이후 비슈마는 비라타의 아들들인 웃타라와 스웨타를 죽이는 등 활약하여 첫날 전투는 카우라바 측의 승리로 끝났다. 판다바 군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고 유디슈티라는 낙담했지만, 크리슈나는 결국 승리할 것이라며 그를 위로했다.둘째 날, 전날의 패배로 사기가 떨어진 판다바 군을 위해 아르주나는 비슈마를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크리슈나는 능숙하게 전차를 몰아 비슈마에게 접근했고, 아르주나는 간디바로 비슈마를 공격했다. 두 영웅은 몇 시간 동안 아스트라를 주고받으며 격렬한 싸움을 벌였다. 한편, 드로나의 군대에 포위된 드리스타드윰나를 구하기 위해 비마가 나섰다. 두료다나는 칼링가 군대를 보내 비마를 공격하게 했지만, 비마는 오히려 칼링가 왕을 포함한 대부분의 칼링가 군대를 죽였다. 비슈마가 칼링가 군대를 구하러 왔으나, 비마를 돕던 사탸키가 쏜 화살에 비슈마의 마부가 죽자 비슈마의 말들이 날뛰며 그를 전장에서 이탈시켰다. 이로써 둘째 날은 판다바 측의 승리로 끝났다.
셋째 날, 비슈마는 카우라바 군대로 가루다 진형을 구축했고, 두료다나의 군대는 후방을 방어했다. 판다바 군은 비마와 아르주나를 양쪽 끝에 배치한 초승달 진형으로 맞섰다. 카우라바 군은 아르주나에게 공격을 집중했고, 아르주나의 전차는 화살과 투창으로 뒤덮였다. 아르주나는 간디바에서 끝없이 화살을 쏘아 자신의 전차 주위에 방어벽을 만들었다. 다른 전장에서는 아비만유와 사탸키가 샤쿠니의 간다라 군대를 격파했고, 비마와 그의 아들 가토르카차는 두료다나를 공격했다. 비마의 화살에 맞은 두료다나는 정신을 잃고 전차에서 쓰러졌고, 그의 마부는 서둘러 전장에서 벗어났다. 지도자를 잃은 카우라바 군대는 혼란에 빠졌으나, 비슈마가 나서 질서를 회복시켰다. 잠시 후 돌아온 두료다나는 판다바 형제들에게 관대하다며 비슈마를 비난했다. 이에 자극받은 비슈마는 분노하여 판다바 군대에 맹렬한 공격을 퍼부었고, 아르주나가 그를 막아서면서 다시 격렬한 결투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비슈마는 수많은 판다바 병사들을 죽였다.

넷째 날, 비슈마는 카우라바 군에게 차크라뷰하(원형 진형)를 짜도록 명령하고 공격을 시작했다. 아비만유는 이 진형에 들어가는 법은 알았지만 나오는 법은 몰랐기에, 진형 안에 갇혀 많은 카우라바 왕자들에게 포위 공격을 받았다. 아르주나와 비마는 아비만유를 구출하기 위해 진형으로 뛰어들었다. 두료다나는 거대한 전투 코끼리 부대를 동원해 비마를 공격했다. 비마는 전차에서 내려 쇠로 만든 철퇴로 코끼리 부대를 공격하여 흩어지게 만들었다. 이어서 그는 두료다나의 형제들을 공격하여 8명을 죽였으나, 카우라바의 둘째인 두샤사나가 쏜 화살에 가슴을 맞고 부상을 입어 전차에 쓰러졌다. 전투가 끝난 후, 형제들을 잃은 슬픔에 잠긴 두료다나는 비슈마에게 가서 카우라바의 전력이 우세함에도 왜 계속 패배하는지 물었다. 비슈마는 판다바가 정의의 편에 서 있으며, 특히 아르주나는 인드라의 아스트라인 아인드라스트라를 사용하여 수천 명을 죽일 수 있는 강력한 영웅이기 때문이라고 답하며, 두료다나에게 평화를 모색하라고 조언했다.
다섯째 날에도 전투와 살육은 계속되었다. 판다바 군대는 비슈마의 공격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 사탸키는 드로나의 공격을 견디지 못했지만 비마가 구출했다. 아르주나는 두료다나가 보낸 수천 명의 병사들을 물리쳤다. 비마는 비슈마와 다시 맞붙어 격렬한 결투를 벌였으나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드루파다와 그의 아들 시크한디가 비마를 돕기 위해 나섰지만, 두료다나의 형제 중 하나인 비카르나의 공격을 받아 심하게 부상당했다.
여섯째 날부터 아흐레 날까지의 전투에서는 드로나가 많은 판다바 군인들을 죽이는 등 양측의 격렬한 전투가 이어졌고, 양 군대의 진형이 여러 차례 무너졌다. 비마는 카우라바 진형을 뚫고 들어가 두료다나를 공격하여 패퇴시키기도 했다. 드라우파디의 아들들인 우파판다바스는 아슈와타마와 싸워 그의 전차를 파괴하는 활약을 보였다.

열흘째 되는 날, 판다바는 비슈마를 쓰러뜨리기 위해 계책을 사용했다. 과거 생에 여성이었던 시크한디를 앞세워 비슈마에게 접근한 것이다. 비슈마는 여성을 공격하지 않겠다는 맹세를 했기 때문에, 시크한디를 보고 무기를 내려놓았다. 시크한디는 아무런 방해 없이 비슈마에게 화살을 쏘아 맞혔다.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아르주나는 시크한디 뒤에 서서 비슈마의 갑옷 약점을 향해 강력한 화살들을 퍼부어 마침내 그를 쓰러뜨렸다.
비슈마가 쓰러지자 카우라바와 판다바 양측 모두 전투를 멈추고 그에게 모여들었다. 비슈마의 요청에 따라 아르주나는 세 개의 화살을 땅에 쏘아 그의 머리를 받쳐주었다. 비슈마는 아버지 샨타누 왕에게 하스티나푸라가 모든 위협으로부터 안전해질 때까지 살아남겠다고 맹세했었다. 이 맹세를 지키기 위해, 그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이차 므리티유'(자신이 원하는 때에 죽을 수 있는 능력) 축복을 사용하여 죽음을 미루었다. 그는 전쟁이 끝나고 하스티나푸라가 안전해진 후, 판다바에게 정치와 비슈누 사하스라나마에 대한 가르침을 전해주고 우타라야나(해가 북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는 길일)의 첫날에 죽음을 맞이하기로 결정하고 화살 침대에 누워 전장을 지켜보게 되었다.
6. 3. 11일차 ~ 15일차: 드로나의 지휘와 죽음
비슈마가 전투 불능 상태가 되자, 카르나가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카르나의 제안에 따라 드로나가 카우라바 군대의 새로운 총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두료다나는 전쟁을 빨리 끝내기 위해 유디스티라를 생포하여 인질로 삼으려 했다. 드로나는 유디스티라를 포위하여 위기에 빠뜨렸으나, 아르주나가 나타나 유디스티라를 구출하면서 생포 시도는 실패했다.드로나는 두료다나에게 아르주나가 있는 한 유디스티라를 생포하기는 어렵다고 조언했다. 이에 두료다나는 트리가르타 왕국의 전사들인 삼삽타카 군대에게 아르주나를 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유인하여 붙잡아 두라고 명령했다. 삼삽타카 군대는 판다바 가문과 오랜 적대 관계였기에 이 명령을 기꺼이 따랐다. 그러나 아르주나는 그들을 빠르게 물리치고 전장으로 복귀했다. 이후 아르주나는 카우라바의 동맹군 왕인 바가닷타와 맞섰다. 바가닷타는 슈프라티카라는 거대한 코끼리를 타고 싸웠으나, 격렬한 전투 끝에 아르주나에게 죽임을 당했다. 드로나는 계속해서 유디스티라를 생포하려 했지만, 그날은 우파판다바 중 한 명인 프라티빈디아에 의해 저지되었다.
13일차, 드로나는 유디스티라를 생포할 목적으로 군대를 차크라(파드마/카말라) 진형으로 배치했다. 이 진형은 매우 복잡하여 돌파하기가 거의 불가능했으며, 판다바 측에서는 오직 아르주나와 크리슈나만이 돌파법을 알고 있었다. 카우라바 군대는 이를 막기 위해 삼삽타카 군대를 보내 아르주나를 전장 다른 곳에서 교전하도록 묶어두었다.
아르주나가 자리를 비운 사이, 유디스티라는 아르주나의 아들 아비마뉴에게 차크라 진형을 돌파하도록 지시했다. 아비마뉴는 진형에 들어가는 방법은 알았지만 빠져나오는 방법은 몰랐다. 다른 판다바 영웅들이 그를 돕기 위해 뒤따르려 했으나, 자야드라타 왕이 시바 신에게 받은 축복의 힘으로 비마세나와 사티아키를 포함한 판다바 군대 전체를 막아섰다.
홀로 차크라 진형에 갇힌 아비마뉴는 용감하게 싸우며 코살라의 왕 브리하드발라, 아스마카의 왕, 마르티카바타(크리타바르마의 아들), 룩마라타(살랴의 아들), 살랴의 남동생, 락슈마나(두료다나의 아들), 두쉬마나(두샤사나의 둘째 아들) 등 수많은 카우라바 전사들을 죽였다. 아비마뉴의 용맹에 카우라바 군대가 큰 피해를 입자, 드로나는 전멸을 우려하여 전쟁 규칙을 어기기로 결정했다. 드로나의 지시에 따라 카르나, 아슈와타마를 비롯한 여섯 명의 카우라바 영웅들이 동시에 아비마뉴를 공격했다. 이들은 아비마뉴의 전차를 부수고 무기를 빼앗았으며, 결국 아비마뉴는 두샤사나의 아들과의 곤봉 싸움에서 전사했다.[41][35] 아들 아비마뉴의 비겁한 죽음을 전해 들은 아르주나는 분노하여, 다음 날 해가 지기 전까지 자야드라타를 죽이겠다고 맹세했으며, 만약 실패하면 스스로 불에 뛰어들어 목숨을 끊겠다고 선언했다.
15일차, 카우라바의 총사령관인 드로나는 강력한 아스트라인 브라흐마스트라를 소유하고 있어 사실상 무적에 가까웠다. 크리슈나는 드로나를 무너뜨리기 위해 계략을 제안했다. 그는 유디스티라에게 드로나가 아들 아슈와타마의 죽음 소식을 들으면 슬픔에 빠져 전의를 상실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에 비마세나가 아슈와타마와 이름이 같은 코끼리를 죽인 뒤, "아슈와타마가 죽었다!"라고 큰 소리로 외쳤다. 드로나는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 항상 진실만을 말한다고 알려진 유디스티라에게 다가갔다. 크리슈나의 설득에 넘어간 유디스티라는 마지못해 "(코끼리) 아슈와타마가 죽었다"고 말했지만, 뒷부분은 작은 소리로 말하여 드로나는 아들이 죽었다는 부분만 듣게 되었다. 아들의 죽음에 절망한 드로나는 무기를 내려놓고 명상에 잠겼고, 이 틈을 타 판다바 군의 드리스타드윰나가 드로나의 목을 베어 살해했다.
그날 밤, 아슈와타마는 아버지 드로나가 속임수에 의해 비참하게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두료다나에게 전해 듣고 판다바에 대한 깊은 원한을 품게 되었다. 그는 밤에는 싸우지 않는다는 전쟁 규칙을 무시하고 비마나를 타고 판다바 진영을 야습했다. 아슈와타마는 강력한 아스트라인 나라야나스트라를 발사했다. 이 무기는 대상을 무조건 죽일 수 있지만, 대상이 무기를 버리고 저항하지 않으면 해를 끼치지 않는 특성이 있었다. 나라야나(비슈누)의 화신인 크리슈나는 이 특성을 알고 있었기에, 판다바 군대에게 즉시 무기를 버리고 전차에서 내리라고 명령했다. 덕분에 판다바 군대는 나라야나스트라의 공격에도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분노한 아슈와타마는 다시 아그네야스트라를 발사했지만, 아르주나가 브라흐마스트라를 사용하여 이를 상쇄시키면서 아슈와타마의 야습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6. 4. 16일차 ~ 18일차: 카르나와 샬리야의 지휘, 판다바의 승리
16일째에 카르나는 카우라바의 총사령관이 되었다. 그는 판다바 장군들에게 포위되어 공격을 받았지만, 그들을 물리치지 못하고 오히려 판다바 군대에 심각한 피해를 입혔다.
한편, 비마는 두샤사나의 전차를 부수고 그를 붙잡았다. 비마는 두샤사나의 오른쪽 팔을 어깨에서 뜯어내 죽이고, 그의 가슴을 찢어 피를 마셨다. 이는 과거 드라우파디가 겪었던 굴욕에 대한 맹세를 이행한 것이었다. 비마는 두샤사나의 피를 드라우파디의 풀어진 머리카락에 바르기 위해 가져갔다. 이날 전투 후 쿠루군은 퇴각하였다.
17일째에 아르주나는 수샤르마, 트리가르타, 삼삽타카를 죽였다. 카르나는 사티아키, 시칸디, 판다바 형제인 나쿨라, 사하데바, 유디슈티라, 비마와의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어머니 쿤티와의 약속대로 아르주나를 제외한 판다바 형제들의 목숨은 살려주었다. 카르나는 판다바 군대의 여러 아크샤우히니와 판찰라들을 죽이며 맹활약했다.

이후 카르나는 아르주나와 다시 운명의 결투를 벌였다. 격렬한 전투 중 카르나의 전차 바퀴가 진흙에 빠지자, 그는 전쟁 규칙에 따라 잠시 공격을 멈춰달라고 아르주나에게 애원했다. 그러나 크리슈나는 아르주나에게 과거 아비만유가 무기와 전차 없이 홀로 싸울 때 카르나가 보였던 무자비함을 상기시켰다. 아들의 비극적인 죽음을 떠올린 아르주나는 카르나의 요청을 무시하고, 전차 바퀴를 빼려던 카르나에게 "안잘리카스트라"라는 아스트라를 쏘아 그의 목을 베었다.
18일째, 카르나가 죽자 샬리야가 남은 카우라바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취임했다. 그러나 이미 전세는 판다바 측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있었다. 유디슈티라는 창 싸움 끝에 샬리야를 죽였고, 사하데바는 샤쿠니를, 나쿨라는 샤쿠니의 아들 울루카를 죽였다.
자신의 패배를 깨달은 두료다나는 전장에서 도망쳐 호수 속에 몸을 숨겼지만, 판다바 형제들의 도발에 넘어가 결국 호수 밖으로 나왔다. 마침 전쟁터로 돌아온 발라라마의 참관 하에, 비마와 두료다나 사이에 최후의 철퇴(곤봉) 대결이 벌어졌다. 크리슈나의 지시에 따라, 비마는 규칙을 어기고 두료다나의 허벅지(또는 허리)를 가격하여 그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다.
아슈와타마, 크리파, 크리타바르마는 죽어가는 두료다나 곁에서 복수를 맹세했다. 그날 밤, 아슈와타마는 판다바 진영을 기습 공격했다. 그는 시바 신에게 받은 검으로 잠든 판다바 군대(아이들 포함)를 무참히 살해했다. 이 학살에서 판다바 5형제와 크리슈나, 사티아키, 유유추만이 살아남았다.[36]

6. 5. 19일차
판다바 형제들에게 쫓기던 아슈와타마는 그들을 향해 "브라흐마시라스트라"라는 강력한 아스트라를 사용했다. 아르주나 역시 같은 아스트라로 맞서려 했으나, 세상의 파멸을 걱정한 리쉬들이 두 사람에게 아스트라를 거두라고 요청했다. 아르주나는 요청에 따라 아스트라를 거두었지만, 아슈와타마는 아스트라를 회수하는 방법을 몰랐다. 결국 그는 충동적으로 아르주나의 며느리이자 뱃속에 파리크시트를 임신하고 있던 웃타라에게 아스트라를 날려버렸다.그러나 크리슈나의 도움으로 웃타라와 태아 파리크시트는 모두 목숨을 건졌다. 이후 판다바에게 붙잡힌 아슈와타마는 영원히 씻을 수 없는 악취와 낫지 않는 깊은 상처의 고통 속에서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를 떠돌아야 하는 형벌을 받게 되었다. 이로써 기나긴 전쟁은 완전히 막을 내렸다.
7. 결과
전쟁에서 살아남은 주요 전사는 단 11명뿐이다. 이들은 판다바 5형제, 크리슈나, 사티야키, 아슈와타마, 크리파, 유유추, 크리타바르마이다. 유디슈티라는 하스티나푸라의 왕이 된다. 36년간 통치한 후, 그는 왕위를 포기하고 아르주나의 손자 파리크시트에게 왕위를 넘겨준다. 드라우파디와 비마, 아르주나, 나쿨라, 사하데바 등 판다바 4형제는 여정 중에 죽는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경건한 마음을 가진 유디슈티라는 야마의 초청을 받아 필멸자로서 천국에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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