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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벤스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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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벤스보른은 나치 독일이 자국민의 출산율을 높이고 우생학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1935년 설립한 단체이다. 초기에는 SS 대원과 경찰 조직원의 아내를 위한 복지 시설로 시작했으며, 독일, 노르웨이, 점령된 동유럽 등지에 시설을 운영했다. 레벤스보른은 '인종적으로 가치 있는' 아이들을 선별하여 출산을 장려하고, 다른 아이들을 납치하여 독일인 가정에 입양시키는 등 강제 게르만화를 시도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레벤스보른은 아동 납치와 관련된 혐의로 재판을 받았으며,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차별과 고통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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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벤스보른
기본 정보
명칭레벤스보른 e.V.
원어 명칭lang: de
text: Lebensborn e.V.
설립일1935년 12월 12일
해산일1945년
설립자하인리히 힘러
본부뮌헨, 독일
회원수8,000명 (1939년)
상위 기관친위대
개요
목적나치 독일의 우생학 프로그램

2. 역사적 배경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일은 많은 병사의 사망으로 남성이 부족했고, 하이퍼인플레이션과 대공황 등으로 출산율이 감소했다. 1933년 나치당이 정권을 잡으면서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출산 장려 정책을 시행했다.[32]

2. 1. 나치당의 출산 장려 정책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많은 병사가 사망하여 독일에는 남성이 부족했고, 전쟁이 끝날 무렵에는 25세에서 30세 여성 4명 당 남성이 1명밖에 없을 정도였다.[33] 하이퍼인플레이션과 대공황 등으로 출산율이 감소했다.[32] 1933년, 정권을 잡은 나치당은 이러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아이를 늘리는 정책을 연이어 시행했다.[32]

나치당은 당시 사회 진출이 활발하던 여성을 가정으로 돌아가 육아에 전념하도록 유도하고, 많은 아이를 낳도록 피임 기구 광고를 금지하고, 낙태를 하는 경우 엄벌에 처했다.[34]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도 낙태는 불법으로 벌금형이 있었지만, 나치 독일 시대에는 장기 징역형이 부과되었다.[32] 또한, 아이를 많이 낳은 어머니에게는 Cross of Honour of the German Mother|어머니 십자 훈장영어을 수여했다.[35]

한편, 아돌프 히틀러는 나치당 집회나 자신의 저서 나의 투쟁 등에서 독일인의 우월성과 혈통의 순수성을 강조하며, 열등 인종을 제거함으로써 독일 민족이 강화된다고 주장하며 단종법을 제정했다. 유전 질환이 있는 여성은 의사가 신고하도록 의무화하고, 독일 각지에 우생 법원을 설치하여 민족적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들을 강제로 거세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시작되기 전까지 32만 명이 단종되었다.[36] [37] [38] 1931년 12월 31일에는 친위대 인종 및 이주 본부(RuSHA)가 설립되었고, 이후 레벤스보른은 RuSHA의 관리를 받게 되었다.[39] [40]

2. 2. 우생학적 조치

제1차 세계 대전에서 다수의 병사가 사망하여 독일은 남성이 부족했고,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시에는 25세에서 30세의 여성 4명에 대해 남성은 1명밖에 없는 상황이었다.[33] 하이퍼인플레이션이나 대공황 등으로 출산율이 감소했다.[32] 1933년, 정권을 획득한 나치당은 아이를 늘리기 위한 정책을 잇달아 시행했다.[32] 여성을 가정으로 되돌리는 정책, 피임 기구 광고 금지, 낙태를 한 경우 엄벌 처분을 가하는 것 등이 있었다.[34]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에도 낙태는 불법이었지만, 나치 독일 시대에는 장기 징역형이 부과되었다.[32] 다산한 어머니에게는 Cross of Honour of the German Mother|독일 어머니 십자 훈장영어을 수여했다.[35]

아돌프 히틀러는 독일인의 우월성, 피의 순수성과 열등 인종을 제거함으로써 독일 민족은 강화된다고 주장하며, 단종법을 제정했다. 유전성 질환이 인정되는 여성에 대한 의사의 신고 의무를 제정하고, 우생 법원을 독일 각지에 설치하여, 민족적 기준을 충족하지 않는 자는 거세하는 등, 제2차 세계 대전이 개전하기까지 32만 명이 단종되었다.[36] [37] [38] 1931년 12월 31일에는 친위대 인종 및 이주 본부(RuSHA)가 설립되었고, 이후 레벤스보른은 RuSHA가 관리하게 되었다.[39] [40]

3. 레벤스보른 설립과 운영 (1935-1945)

'''레벤스보른'''(Lebensborn, 생명의 샘)은 나치 독일의 저출산율에 대처하고 나치 우생학을 장려하기 위해 1935년 12월 12일에 설립되었다.[1][2] 뮌헨에 위치한 이 단체는 친위대(SS) 내의 한 부서이자 나치 지도자들을 위한 협회였다.

1936년 9월 13일, 하인리히 힘러는 친위대 구성원들에게 편지를 써서 "레벤스보른 e.V." 단체가 인종적으로 가치 있는 아이들의 선발 및 입양에 있어 친위대 지도자들을 돕는다고 밝혔다. 힘러는 이 단체가 자신의 개인적인 지휘하에 있으며, 친위대의 인종 및 정착 중앙국에 속해 있다고 설명했다.[3] 1939년에는 회원 수가 8,000명에 달했으며, 이 중 3,500명이 친위대 지도자였다.[4]

1935~1936년경, 라인헤세 지역에서 열린 "레벤스보른" 아동 세례식


레벤스보른은 SS 장교의 아내들을 위한 복지 기관 역할을 했으며, 산후조리원과 같은 시설을 운영하여 여성들이 출산하거나 가족 문제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또한, 미혼모이거나 이미 출산을 했고 도움이 필요한 여성도 여성과 아이의 아버지가 모두 "인종적으로 가치 있는" 것으로 분류되는 경우에 받아들였다. 어머니의 약 60%가 미혼모였으며, 비밀리에 출산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5]

레벤스보른 운영 비용은 회원(SS 대원)의 회비, 유대인의 몰수 재산, 기업 기부금 등으로 충당되었다.[53][54] [55] [56] 유대인의 몰수 재산 중 약 가 레벤스보른에 할당되었다.[32]

SS 대장 하인리히 힘러는 1936년 9월 회람 문서에서 SS 대원은 4명의 아이를 낳을 것을 명령하고, 혼외 출산을 장려했다.[46] 아이를 갖지 못하는 SS 대원이 있다면 레벤스보른에서 출산한 아이를 입양할 수 있도록 보장했다.[47] [48] [49][50][51][52]

1939년 10월 28일, 힘러는 친위대에 혼외 출산이라도 아이를 낳도록 장려하는 명령을 내렸고,[64] 1939년 12월 푈키셔 베오바흐터에 게재된 루돌프 헤스의 미혼모에 대한 견해를 인용하며 반대파의 의견을 봉쇄했다.[32]

힘러는 1941년 6월 회람 문서에서 기준을 충족하는 폴란드인 아이는 독일의 손으로 키워야 한다는 납치를 용인하는 듯한 발언을 했고, 같은 해 겨울 SS에 폴란드인 아이 중 인종적 가치를 충족하는 아이를 납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73][32]

3. 1. 시설 운영

레벤스보른 시설은 퇴거된 유대인이나 체포된 히틀러의 정적들의 주택을 사용했으며, 뮌헨의 레벤스보른 시설은 작가 토마스 만의 자택이었다.[58] 종전 후, 뉘른베르크 계속 재판에서 피고가 된 Max Sollmann|막스 졸만de은 레벤스보른 시설이 비어 있던 집을 사용했다고 주장했다.[59] (게토 봉기로 실현되지는 않았지만) 바르샤바 게토에서 의료 설비와 가구를 약탈할 계획이 있었던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약탈품으로 시설을 운영하는 것이 상례화되었다고 할 수 있다.[60]

레벤스보른 여성들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도 호화로운 식사를 했으며, 일주일에 한 번 초콜릿, 홍차, 커피를 제공받았다.[61][62][63] 그러나 레벤스보른 여성의 식생활에는 다양한 규칙이 있었고, 우수한 아이를 낳기 위해 비타민 섭취량과 채소 섭취 방법 등이 엄격하게 준수되었다.[32]

SS 대장이자 독일 경찰청 장관인 하인리히 힘러는 혼외 관계를 통해 아이를 임신한 여성들이 불이익을 받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러한 여성들을 보호하고 출산 후에도 지원해야 한다고 여겼다. 이에 따라 1935년 12월 12일, 이러한 여성들을 위한 출산 시설로 레벤스보른(별칭: 생명의 샘 협회)을 설립했다.[41] [42] 1936년 8월 15일, 레벤스보른은 첫 번째 시설인 "고지 저택"을 바이에른주 에버스베르크군 슈타인회링에 개설했다.

하지만 레벤스보른은 초창기에는 출산을 앞둔 SS 대원이나 경찰 조직원의 아내들을 위한 출산 시설이었다.[43] 설립 초기 회원은 약 1만 명이었으며 9개의 지부로 구성되어 있었다.[44] 그러나 레벤스보른에서의 출산은 독일인 중에서도 선발된 사람만 가능했으며, 지원자 100명 중 50명 이상이 SS의 용모나 체형 등의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입소를 거부당했다.[45]

힘러는 독일 국내와 나치 독일이 점령한 국가에 총 20개 이상의 레벤스보른 시설을 설립했다.[67]

3. 2. 확장

하인리히 힘러는 독일 국내외에 20개 이상의 레벤스보른 시설을 설립하였다.[67] 특히 금발 벽안이 많은 이상적인 북방 인종으로 간주된 노르웨이에 9~11개의 시설이 집중되었다.[32][106]

레벤스보른 시설 현황[7]
국가시설 수비고
독일10개
오스트리아3개
폴란드 (총독부 점령하 폴란드 영토 및 폴란드 병합 영토)8개슈테틴, 바트 폴친 포함
노르웨이9개
덴마크2개
프랑스1개라모를레 (1944년 2월~1944년 8월)
벨기에1개수마뉴 베기몽 (1943년 3월~1944년 9월)
네덜란드1개
룩셈부르크1개



그러나 힘러가 다산을 실현하려던 노력은 큰 결실을 맺지 못했다.[32][68] 레벤스보른 주임 의사는 시설에서의 유아 사망률이 당시 독일 평균보다 낮다고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더 높았다는 지적이 있었다.[69][70] 1939년 통계에 따르면, SS 대원의 평균 출생아 수는 독일 국민의 평균 출생아 수와 크게 다르지 않았고, 힘러가 요구했던 1명의 SS 대원 당 4명의 아이를 낳는 것은 실현되지 못했다.[32]

4. 강제 아동 납치 및 게르만화

자모시치현에서 나치 독일의 재정착 작전 중 폴란드 아동 납치


즈기에르즈 근처 데르자즈나에 있는 나치 독일 노동 수용소의 폴란드 아동


하인리히 힘러는 1941년 6월 회람 문서에서 기준을 충족하는 폴란드인 아이는 독일이 키워야 한다고 언급하며 납치를 사실상 허용했다. 같은 해 겨울, 힘러는 친위대(SS)에게 인종적 가치가 있는 폴란드 아이들을 납치하라는 명령을 내렸다.[73]

납치는 루마니아에서 25명의 아이들을 납치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나치 독일이 점령한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벨라루스, 노르웨이, 벨기에, 덴마크, 프랑스,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우크라이나, 헝가리 등 여러 국가에서 이루어졌다.[74] [75]

전체적으로 수십만 명 이상의 아이들이 납치되었으며, 국가별로는 폴란드에서만 20만 명 이상, 우크라이나와 헝가리를 합쳐 5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76] [77] [78] [32] 납치된 아이들은 독일어를 사용하도록 강요받았고, 신원 확인을 어렵게 하기 위해 원래 이름과 비슷한 독일식 이름으로 변경되거나, 일반적인 독일 이름을 부여받았다.[79][80] [32] 레벤스보른은 아이들에게 원래 생활 환경이 열악했고 부모도 알코올 중독 등 좋지 않은 이유로 사망했다는 거짓 정보를 주입하여 세뇌를 시도했다.[81]

라인하르트 하이드리히 암살에 대한 보복으로 학살된 리디체의 아이들도 납치되었으며, 게르만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된 아이들은 살해되었다.[82][83][84] 납치는 친위대뿐만 아니라 국방군 등 여러 조직이 관여했으며, 독일 적십자는 납치된 아이들의 이송을 담당했다.[85] [86] 이렇게 납치된 아이들은 독일인 가정에 입양되거나 위탁되었다.[87]

힘러는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난 아이의 대부가 되는 등 활동에 적극적이었으며, 1980년까지 북방 인종의 인구가 1억 2천만 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했다.[88] [32]

4. 1. 강제 게르만화



1939년, 나치는 레벤스보른 프로그램을 위해 외국, 주로 유고슬라비아폴란드에서 아이들을 납치하기 시작했으며, 러시아, 우크라이나, 체코슬로바키아, 루마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노르웨이에서도 납치를 감행했다.[9] 이는 "우리는 환경으로부터 [아이들을] 데려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좋은 혈통을 얻어 우리 국민에게 자리를 주거나, 이 혈통을 파괴해야 합니다."라고 하인리히 힘러가 말한 데 따른 것이라고 한다.[10]

나치는 부모가 보는 앞에서 아이들을 납치했다. 납치된 아이들은 여러 검사를 받고 다음과 같이 세 그룹으로 분류되었다.

  • 독일 인구에 포함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아이들.
  • 수용 가능한 아이들.
  • 원치 않는 아이들.


원치 않는 아이들로 분류된 아이들은 일하기 위해 강제 수용소로 보내지거나 살해되었다. 다른 그룹의 아이들은 2세에서 6세 사이의 경우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가정에 입양되어 위탁 아동의 신분으로 양육되었다. 6세에서 12세 사이의 아이들은 독일 기숙학교에 보내졌다. 학교는 아이들에게 새로운 독일 이름을 부여하고 독일의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갖도록 가르쳤다. 그들은 아이들에게 친부모를 잊도록 강요하고 조상에 대한 기록을 지웠다. 게르만화에 저항하는 아이들은 구타를 당했고, 계속 반항하면 강제 수용소로 보내졌다.[11]

전쟁 말기에, 프로그램에 따라 납치된 모든 아이들의 파일이 파기되었다. 그 결과, 연구자들은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납치되었는지 알아내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폴란드 정부는 10,000명의 아이들이 납치되었으며, 그 중 15% 미만이 친부모에게 돌아갔다고 주장했다.[10] 디르크 모세스에 따르면, 더 가능성이 높은 숫자는 약 20,000명이다.[12]

5.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전쟁 후, ''레벤스보른'' 조직은 북동 유럽에서 "인종적으로 가치 있는" 아이들을 납치하여 독일 가정에 재정착시키려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러나 미국이 통제하던 독일 지역에서 발견된 약 10,000명의 외국 출생 아동 중, ''레벤스보른'' 조직 지도자들의 RuSHA 재판(미국 대 울리히 그라이펠트 외)에서 법원은 340명만이 ''레벤스보른 e. V.''에 의해 관리되었음을 확인했다. 피고인들은 납치 혐의에 대해 무죄 판결을 받았다.[13]

법원은 북동 유럽에서 아동 납치 또는 강제 이동 프로그램이 존재했다는 충분한 증거를 발견했지만, 이러한 활동이 ''레벤스보른'' 구성원이 아닌 개인에 의해 수행되었다고 결론지었다. ''레벤스보른'' 또는 다른 조직에 의해 정확히 몇 명의 아이들이 이동했는지는 연합군의 진격을 피해 도주하기 전에 친위대(SS) 구성원들이 기록 보관소를 파괴했기 때문에 여전히 알려지지 않았다.

뉘른베르크 계속 재판 중 하나인 1947년 10월 친위대 인종 및 이주 본부 재판(RuSHA trial)에서는 독일 민족성 강화 국가 위원 본부, 친위대 인종 및 이주 본부 등과 함께 레벤스보른이 다루어졌다.[91] 레벤스보른의 피고는 대표자 막스 졸만, 주요 건강국 국장 그레고르 에브너, 주요 법률국 국장 군터 테쉬(Günther Tesch), 유일한 여성 피고이자 주요 A국 국장 대리 잉게 비어메츠(Inge Viermetz)였다.[32] 이들은 폴란드, 유고슬라비아, 체코슬로바키아, 노르웨이 등에서 아이들을 납치하고, 호적을 위조, 강제 노동에 동원하고, 유대인의 재산을 몰수한 혐의로 기소되었다.[32]

1948년 3월 10일에 내려진 판결에서 레벤스보른 피고들은 전쟁 범죄나 인도에 반하는 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 남성 피고들은 범죄 조직(친위대) 소속 혐의만으로 징역형을 받았고[94][32], 비어메츠는 친위대 소속이 아니었기 때문에 무죄였다. 졸만과 에브너는 징역 2년 8개월, 테쉬는 징역 2년 10개월의 단기 징역형을 선고받았으나, 체포에서 판결일까지의 기간이 징역 기간으로 계산되어 판결 후 즉시 석방되었다.[32] 레벤스보른은 재판에서 사회 복지 시설로 판단되었고, 납치해 온 아이들을 정성껏 보호했던 점도 감형의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다.[95][32]

그러나 1950년 2월 13일 뮌헨에서 열린 재판에서는 졸만, 에브너, 비어메츠 외에 졸만의 조수 4명을 포함한 총 7명이 피고가 되었으며, 이들은 전원 유죄 판결을 받았다.[96]

5. 1. 레벤스보른 출신 아동들의 삶

독일 항복 이후, 언론은 "슈퍼 아기"들의 건강 상태가 매우 좋다고 보도했다. 이들은 햇볕을 쬐고 하루 두 번 목욕을 했으며, 접촉하는 모든 것은 소독되었다. 간호사들은 아이들이 제공된 음식을 모두 먹도록 했다.[14] 전쟁 마지막 날까지 산부인과의 어머니와 아이들은 다른 사람들이 굶주리는 와중에도 좋은 대우를 받았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지역 사회는 여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머리카락을 자르는 등 보복을 가했다. 많은 레벤스보른 아이들은 미혼모에게서 태어났고, 전쟁 후 종종 따돌림을 당했다.

이 프로그램은 점령 국가에서 독일 군인과 북유럽 여성 간의 관계를 장려하여 아리아인 인구를 늘리려 했다. 레벤스보른은 나치의 북유럽주의적 우생학 및 인종 정책에 따라 제한되었으며, 이는 감독된 선택적 번식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발견된 기록과 레벤스보른 아이들과 일부 부모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부 SS 남성은 힘러의 레벤스보른 프로그램에서 자녀를 낳았다.[15]

노르웨이에서는 독일군 아버지와 노르웨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전쟁 후 괴롭힘, 학대, 정부의 박해를 받았으며 정신병원에 수용되기도 했다. 노르웨이 정부는 레벤스보른 아이들을 브라질과 호주로 추방하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레벤스보른 아이들 중 한 그룹은 노르웨이 정부에 보상을 요구했다. 2008년, 유럽 인권 재판소 제소는 기각되었지만,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각각 8,000파운드를 지급받았다.[17]

ABBA의 멤버인 안니프리드 린스타드는 독일 군인의 딸이었으며, 레벤스보른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가족은 전쟁 후 노르웨이에서 보복을 겪었다. 안니프리드의 외할머니가 그녀를 스웨덴으로 데려가면서 박해를 피할 수 있었다. 린스타드는 아버지가 전쟁에서 사망했다고 믿으며 자랐고, 1970년대 후반에야 그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18][19][20]

2006년 11월, 독일 베르니게로데에서 여러 레벤스보른 아이들이 모여 공개 회의를 열었다.[21][22] 레벤스보른 활동에 대한 일반적인 문서는 국제 추적 서비스와 독일 연방 기록 보관소에서 관리한다.[23] ''Verein kriegskind.de''는 레벤스보른 아이들을 식별하기 위한 수색 노력을 발표한 단체 중 하나이다.[24]

살아남은 여러 레벤스보른 아이들이 리브 울만의 내레이션으로, 2018년 디라즈 아콜카르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영화 ''전쟁은 끝나지 않는다''에 출연했다.[25]

레벤스보른에 의해 독일인 가정에 입양된 납치 아동은 종전 후 다양한 운명을 겪었다. 자신이 독일인이 아님을 알고 친부모에게 돌아간 경우, 성장하면서 친자식이 아님을 알고 진실을 알게 된 경우, 부모(라고 생각했던 인물)가 사망한 후 자신의 신상을 조사한 결과 진실을 알게 된 경우 등 다양했다.[97] [98] [99] [100] [101] 또한, 출신국으로 귀국하더라도 모국어를 잊어버리는 문제도 발생했다.[102] [103]

종전 후, 아이를 납치당한 친부모와 납치된 아이의 출신국은 아이의 수색에 나섰으며, 비교적 나이가 많은 아이는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유아였던 아이는 나치 독일이 호적을 위조하는 등 찾기가 어려웠다.[104] 연합국은 납치된 아이의 처리에 대해, 출신국으로 귀환시키더라도 부모가 없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그대로 독일에 남겨두는 방침을 취했다.[32]

납치되었던 전 아이들은 자신의 신원을 찾을 때 국제 추적 서비스라는 공문서를 의존했지만, 1955년 파리 협정 발효 협정 조항에는 나치 독일의 피해자와 그 가족을 상처 입힐 수 있는 정보에 대한 공개를 금지하는 조항이 있었다.[105] 이로 인해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난 아이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게 되었다.[32] 이러한 정보가 완전히 공개된 것은 2007년이었다.[32]

나치는 노르웨이를 이상적인 북방 인종으로 간주하여, 20여 곳의 레벤스보른 시설 중 9곳에서 11곳이 노르웨이에 집중되었다.[32][106] 히믈러는 친위대원이나 국방군 군인에게 노르웨이 여성과의 관계를 장려하기도 했다.[107] 노르웨이의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난 아이의 수에 관해서는, 노르웨이가 아닌 독일에서 출산한 경우도 있어, 정확한 인원수는 알 수 없지만, 6000명에서 1만 2000명 사이로 추정된다.[108][109][32]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노르웨이에서는 독일 패전까지 독일군이 주둔하고 있었고, 레벤스보른 시설도 많았기 때문에 증거 서류 소각이 이루어지지 못해, 독일인과 관계를 가진 노르웨이 여성 및 출산한 아이의 신원을 특정할 수 있었다.[110] 독일인과 관계를 가진 노르웨이 여성 3000명에서 5000명은 체포되어 포로 수용소로 보내졌다.[32] 노르웨이의 정신과 의사는 독일인과 관계를 가진 여성에게는 정신 장애가 있고, 그 아이도 8할이 지적 장애라고 단정했으며,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난 아이들은 차별받았다. 노르웨이 정부는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난 아이들을 독일로 보내는 것을 검토했지만, 전후 얼마 안 된 독일에는 그런 여유가 없었고, 오스트레일리아로의 이주를 계획했지만 실현되지 못했으며, 일부는 정신 병원이나 양호 시설에 격리되었고, 일부는 스웨덴 정부가 구제 활동을 하여, 스웨덴으로 이주했다.[111][32][112] 한편, 노르웨이의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나 박해를 받은 아이에 대해서는, 2010년에 노르웨이 정부가 전 아이 1인당 34000EUR를 지불했다.[32]

스웨덴의 팝 그룹 ABBA의 멤버였던 아그네타 플래스코그도 독일인 나치 당원의 아버지와 노르웨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였다. 그녀는 노르웨이에서 나치 독일 붕괴 직후에 태어났지만, 나치 잔당에 대한 추궁을 피하기 위해 어머니와 함께 스웨덴으로 도망쳐, 거기서 성장했기 때문에 지적 장애자 시설에의 수용은 면했다. 그녀 또한, 친아버지가 생존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죽었다고 들어서 자랐다.[113]

힘러의 주도로 창설된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모두 엘리트가 된 것은 아니었다. 세 살이 되어도 걷지 못하는 아이나 말을 못하는 아이도 있었다.[114]

5. 2. 정보 공개

종전 후, 아이를 납치당한 친부모와 납치된 아이의 출신국은 아이 수색에 나섰지만, 유아였던 아이의 경우 나치 독일이 호적을 위조하는 등의 행위로 인해 찾기가 어려웠다.[104] 납치되었던 아이들은 자신의 신원을 찾기 위해 국제 추적 서비스라는 공문서에 의존했지만, 1955년 파리 협정 발효와 함께 협정 조항에 나치 독일의 피해자와 그 가족을 상처 입힐 수 있는 정보 공개를 금지하는 조항이 포함되면서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난 아이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없게 되었다.[105][32] 이러한 정보는 2007년에야 완전히 공개되었다.[32]

6. 레벤스보른을 다룬 작품


  • 소피의 선택: 윌리엄 스타이론의 소설 및 영화이다. 소피는 폴란드인 가톨릭 신자로, 아우슈비츠 KL에 납치되어 아들을 레벤스보른 프로그램에 넣으려 했지만 실패한다.[31]
  • 007 뷰 투 어 킬: 존 글렌 감독의 영화로, 주인공과 대결하는 맥스 조린은 레벤스보른 출신이라는 설정이다.
  • ''Eiszeiten'': Eiszeiten|아이스자이텐de은 한네롤레 히페의 소설이다. 레벤스보른을 배경으로 한 여성의 기구한 운명을 그린 서스펜스 소설로, 이후 게오르그 마스|게오르크 마스de 감독에 의해 『아무도 아닌 여자』(Zwei Leben)라는 제목으로 영화화되었다.
  • 비합법원: 후나토 요이치의 소설로, 파괴 공작원인 주인공의 파트너 볼만은 레벤스보른에서 태어났지만, 선천성 장애로 인해 처분될 뻔했으나 패전으로 살아남았다는 설정이다.
  • 절멸의 흉조: 사토 다이스케의 소설로, 본편 에필로그에서 주인공의 양녀가 되는 고아 요세피네 크니케(페피)는 유아기에 SS가 노르웨이에서 납치해 왔다는 설정이다.
  • 죽음의 샘: 미나가와 히로코의 소설로, 레벤스보른에 몸담은 어머니의 시선을 통해 나치 시대의 광기를 그린다.
  • 마이 차일드 레벤스보른: 사렙타 스튜디오가 개발한 게임 소프트웨어로, 플레이어는 레벤스보른의 양부모가 되어 이유 없는 차별이 소용돌이치는 사회 속에서 그 아이를 키워야 한다. 2018년 "게임 비욘드 엔터테인먼트" 부문에서 BAFTA 게임 어워드를 수상했으며,[28] 플레이어는 전쟁 후 레벤스보른 아이들이 겪었던 괴롭힘을 경험하게 된다.[29][30]
  • 몬스터: 구 동유럽 공산권판 레벤스보른이라고 할 수 있는 작중 가공 시설 511 킨더하임 출신의 요한 빌헬름 리베르트와 일본인 신경외과 의사의 대결을 그린 만화 작품이다.
  • 고르고13 (제51권, 문고판에서는 제43권) 「마오쩌둥의 유언」: 일본군의 세균 부대가 동맹국 나치 독일의 레벤스보른을 모방하여 설립한 초고도 동양 종족 창출소에 의해 탄생한 도고 쿄스케(중국명: 샤오둥샹)와 그 행적을 쫓는 중국 변공실(중국 인민해방군 변공실 제4처 "국방정보국")과 주인공의 대결을 그린다.
  • 광사로 2030: 국책에 의해 사회의 적으로 여겨지는 M형 유전자 이상 아동들을 수용하여 특수 군사 훈련을 실시하는 간토 후생 병원이라는 시설이 작중에 등장하며, 주인공도 이 시설 출신 중 한 명이다.
  • 정해진 운명: 2012년 프랑스 영화로, 나치 독일 점령 하의 알자스에서 자란 두 소녀가 노동 봉사 시설에서 레벤스보른으로 보내지는 내용을 다룬다. 드니 마르발 감독.
  • 삶의 봄: 체코 TV 영화로, 폴란드의 레벤스보른에서 미래의 어머니로 모집된 주데텐 독일인 십 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26]
  • 높은 성의 사나이: 텔레비전 시리즈로, 조 블레이크와 니콜 뢸머는 레벤스보른 아이들 중 일부이다.[27]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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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웹인용 Fountain of Life http://news.bbc.co.u[...] BBC Radio 4 2005-06-13
[3] 간행물 Founding of the organization "Lebensborn e.V.", 13 September 1936 https://www.loc.gov/[...] United States Government Printing Office 2011-08-16
[4] 웹사이트 http://www.wernigero[...] 2007-03-29
[5] 뉴스 Nazi Program to Breed Master Race: Lebensborn Children Break Silence http://www.spiegel.d[...] 2006-11-07
[6] 웹사이트 Lebensborn (Spring of Life) https://spartacus-ed[...]
[7] 문서 Bydgoszcz, Kraków, Helenówek pod Łodzią, Otwock, Smoszew koło Krotoszyna, Smoszewo; 8 if you include Stettin and Połczyn-Zdrój (which became a part of Poland only after the war)
[8] 논문 Into the open – or hidden away? https://edoc.hu-berl[...] 2019-12-01
[9] 웹사이트 Children of the Hated: the "Lebensborn" program of racial breeding http://www.radioneth[...] 2018-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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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웹사이트 The Lebensborn https://www.jewish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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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웹사이트 Trial of Ulrich Greifelt and Others http://www.ess.uwe.a[...] 200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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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서적 The 12-Year Rei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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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웹사이트 ABBA the Articles: Bravo, 1977: Alfred Haase, Anni-Frid's father has something to tell you https://abbaarticles[...] 2010-04-18
[19] 웹사이트 Anni-Frid Lyngstad https://abbasite.com[...] 2018-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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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뉴스 Nazi 'master race' children meet http://news.bbc.co.u[...] BBC News 2006-11-04
[22] 뉴스 Nazi Program to Breed Master Race: Lebensborn Children Break Silence http://www.spiegel.d[...] Spiegel 2015-04-23
[23] 웹사이트 New "Findbuch" (register) to still existing general „Lebensborn“-documents https://www.its-arol[...]
[24] 웹사이트 Search efforts (Suchbitten) for Lebensborn-children http://www.kriegskin[...] 2012-06-26
[25] Youtube Wars Don't End https://vimeo.com/on[...] Vimeo 2020-06-26
[26] 웹사이트 Der Lebensborn http://www.miff.it/s[...] Milano International Film Festival 2020-09-07
[27] 뉴스 The Man in the High Castle's Nazi imagery isn't what makes its second season relevant https://slate.com/cu[...] 2016-12-19
[28] 웹사이트 Winners Announced: British Academy Games Awards in 2019 http://www.bafta.org[...] 2019-10-15
[29] 웹사이트 A game about the child of a Nazi interrogates the complexities of bullying https://www.polygon.[...] 2019-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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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문서 [[#イレル&ヘンリー|イレル&ヘンリー]]、36頁
[35] 문서 [[#イレル&ヘンリー|イレル&ヘンリー]]、35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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