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베를린 남북 S반선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베를린 남북 S반선은 베를린 남부와 북부를 연결하는 S반 노선으로, 과거 장거리 열차역이었던 슈테틴역, 안할트역, 포츠담역을 S반에 연결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1930년대 나치 독일 정부의 공공 사업으로 시작되어, 제2차 세계 대전 중 터널 폭파로 인해 큰 피해를 입었으나, 전후 복구 과정을 거쳐 분단과 통일을 거치며 현재에 이르렀다. S21 프로젝트를 통해 베를린 중앙역 접근성을 높이고 남북 연결을 개선하려는 계획도 진행 중이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유럽의 터널 - 베를린 남북 장거리선
    베를린 남북 장거리선은 베를린 철도망 재편 계획으로 1995년 건설을 시작해 2006년 개통되었으며, 베를린 중앙역 지하를 통과하는 터널 구간을 포함하여 남북 방향 이동을 효율적으로 지원하지만, 과포화 상태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 프리드리히스하인크로이츠베르크구 -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
    베를린 유대인 박물관은 다니엘 리베스킨트가 설계한 지그재그 형태의 건물로, 독일 유대인의 역사와 문화를 보여주는 상설 전시와 기획 전시를 개최하며,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기리는 공간을 갖추고 있다.
  • 프리드리히스하인크로이츠베르크구 -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
    체크포인트 찰리 박물관은 베를린 장벽과 냉전 시대의 분단 현실을 전시하는 곳으로, 인권 운동가의 의해 설립되어 동독 주민들의 탈출을 지원했으며, 현재는 베를린의 주요 관광 명소로서 자유와 인권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국제 인권 투쟁 관련 전시도 제공한다.
  • 미테구 - 알렉산더 광장
    알렉산더 광장은 독일 베를린에 있는 광장으로, 1805년 러시아 황제를 기념하여 이름 붙여졌으며, 상업 중심지, 나이트라이프 중심지, 동독의 경제적 상징을 거쳐 현재는 교통 허브이자 관광 명소로 기능한다.
  • 미테구 - 운터덴린덴
    운터 덴 린덴은 베를린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대표적인 거리로, 보리수 가로수길에서 유래되어 브란덴부르크 문에서 베를린 대성당까지 이어지며 베를린의 역사와 문화를 상징하는 주요 명소들을 연결하고, 역사적인 건축물과 문화 시설이 밀집해 있어 독일의 역사와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중요한 관광 명소이자 사회적 상징이다.
베를린 남북 S반선 - [철도 노선]에 관한 문서
노선 정보
베를린 남북 S반선 노선도
노선도
노선 이름베를린 남북 S반선
원어 이름Berliner Nordsüd-S-Bahn (독일어)
종류광역 철도
체계베를린 S반
기점베를린 북역
종점베를린 안할트역
노선 번호6002 (터널 북부 진입부 - 북역)
6032 (북역 - 안할트역 - 쇠네베르크역)
6034 (안할트역 - 안할트선)
총연장5.884 km
궤간1435 mm
전철화S반: 직류 750V 제3궤조
영업 최고 속도60 km/h
복선 구간전 구간
보안 장치ZBS
주요 역 목록
주요 역베를린 북역 (Berlin Nordbahnhof)
오라니엔부르거 슈트라세 (Oranienburger Straße)
프리드리히슈트라세 (Friedrichstraße)
브란덴부르거 토어 (Brandenburger Tor)
포츠다머 플라츠 (Potsdamer Platz)
베를린 안할트역 (Anhalter Bahnhof)
요르크슈트라세(그로스괴르셴슈트라세) (Yorckstraße (Großgörschenstraße))
율리우스레버브뤼케 (Julius-Leber-Brücke)
터널 정보
터널 이름노르트-쥐트-투넬 (독일어: Nord-Süd-Tunnel)
통과 지역보른홀머 슈트라세 (Bornholmer Straße)
게준트브루넨 (Gesundbrunnen)
프리드리히슈트라세 (Friedrichstraße)
안할트역 (Anhalter Bahnhof)
파페슈트라세 (Papestraße)
쥐트크로이츠 (Südkreuz)
쇠네베르크 (Schöneberg)
높이3.83 m
너비3.43 m
기타 정보
비고내용

2. 기능

남북 S반선은 베를린 남부의 반제선, 안할트 근교선(텔토), 드레스덴선(블랑켄펠데)과 북부의 크레멘선(헤니히스도르프), 베를린 북부선(오라니엔부르크), 슈체친선(베르나우)을 연결한다.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에서 동서 방향으로 운행하는 도심선과 환승할 수 있으며, 과거 장거리 열차역이었던 슈테틴역(베를린 북역), 안할트역, 포츠담역을 S반에 연결하는 기능을 수행했다.

3. 역사

19세기 말, 지멘스는 포츠담 역의 ''반제'' 변전소와 당시의 ''슈테티너 역''(현 베를린 북역)을 연결하는 지하 노선을 제안했다. 이는 오늘날 U-Bahn으로 불리는 노선과 유사했다. 1911년 베를린 시의 추가 개발을 위한 경쟁에서 남북 철도 연결에 대한 여러 제안이 제시되었고,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1920년대에 논의가 재개되었다. 전철화로 터널 건설이 가능해졌다.

나치 정부는 실업자 고용을 위한 공공 사업으로 이 사업을 1933년에 시작했다. 1933년에 결정이 내려지고 계획이 수립되었으며, 1934년에 첫 삽을 떴다.

3. 1. 건설 초기 (1934년 ~ 1939년)

1933년 베를린 S반이 완전히 전철화된 이후, 남북 교외 노선을 베를린의 종착역에 연결하기 위한 노선이 필요해졌다. 당시 도심은 이미 대규모로 개발되어 있었기 때문에 터널 건설이 불가피했다. 지하철 노선과 강, 하천 아래를 통과해야 했기 때문에 좁은 곡선, 작은 프로파일 터널, 그리고 일반적인 것보다 더 가파른 경사가 적용되었다.[4]

1934년에 착공하여 1936년 7월 27일 훔볼트하인-운터 덴 린덴 구간이 개통되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 맞춰 운터 덴 린덴역까지의 터널 구간은 1936년 5월 28일에 개통되었다.

남부 구간인 (포츠다머 플라츠-)안할트역-그로스괴르셴슈트라세(-쇠네베르크) 구간은 1939년 10월 9일에, 안할트역-요르크슈트라세(-파페슈트라세) 구간은 1939년 11월 5일에 개통되었다.

개통 지연 원인에는 계획 변경, 포츠담 광장 주변의 이회암층, 1935년 8월 20일 브란덴부르크 문 근처 블뤼허궁(미국 대사관) 인근에서의 공사장 붕괴 사건이 있었다.[4] 이 사고로 19명의 건설 노동자들이 사망했다.[5]

포츠다머 플라츠역 북쪽의 인상선


포츠다머 플라츠역 북쪽에서 브란덴부르커 토어역까지 남부 순환선 연결선의 인상선으로 활용할 목적으로 복선 지선이 건설되었다. 이 지선에는 향후 라이히스타크(Reichstag), 슈타트크로이츠(Stadtkreuz), 가우하우스(Gauhaus)역을 건설할 예정이었으며, 라이히스타크 및 가우하우스역은 세계수도 게르마니아 계획의 일부였다. 그러나 제2차 세계 대전 발발로 인해 모든 노선 건설이 중단되었다.

총 건설 비용은 1억 7000만 라이히스마르크(구매력 고려 현재 통화로 약 7.65억유로)였다. 약 180만 m³의 지면을 굴착했고, 콘크리트 구조물 44만 m³ 및 강철 구조물 4만 톤이 설치되었다.[6]

3. 2. 제2차 세계 대전 중 피해 (1945년)

1945년 5월 2일 오전 7시 55분, 베를린 공방전 중 항복 명령이 내려지기 몇 시간 전에 란트베어 운하 아래를 지나는 터널이 SS에 의해 폭파되었다.[7] 이로 인해 터널 전체와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 연결 통로를 통해 지하철까지 침수되었고, 근처 BASA 벙커도 침수 피해를 입었다.[8]

정확한 사망자 수는 집계되지 않았지만, 터널에서 발견된 80~130구의 시신은 전쟁 말기 전투로 인해 침수 이전에 사망했을 가능성도 있다. 전쟁 말기에 터널상의 철도역은 S반 열차를 정차시켜 응급 치료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터널 폭파 지시자는 밝혀지지 않았으며, 터널 폭파에는 지리 및 건축 지식이 필요했다. 히틀러의 "네로 명령"을 실행하려는 SS 대원의 소행이라는 가설이 있지만, 목격자들은 4월 말 이미 터널 일부가 침수되었고 이는 터널 폭격이나 부실 공사로 인한 지하수 유입 때문이었다고 증언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전인 1945년 5월 2일, 란트베어 운하 아래에서 폭발이 발생하여 터널, U-반, S-반 일부가 침수되었다.[1] 이 사건은 베를린 역사상 많은 상반된 정보를 낳았다. 침수 과정에서 익사자가 발생했는지, 누가 터널을 파괴했고 누가 명령했는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으며, 오늘날까지도 불분명하다. 폭발을 위해서는 해당 지역과 건물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필요했을 것이다. SS가 폭발을 감행했다는 이론이 있지만, 증인은 거의 없다. 오히려 전쟁 마지막 날 손상된 파이프에서 새어 나온 담수와 하수로 인해 터널이 부분적으로 침수되었다고 보고한다.

3. 3. 전후 복구 (1945년 ~ 1947년)

슈프레강 하저 구간의 피해 (1946년)


전투로 인한 정전으로 지하수 펌프를 가동할 수 없었다. 1945년 종전 이후 재보수 작업이 시작되었다. 반제선 열차는 지상에 있었던 포츠담 순환선역으로 견인되었다. 1946년 6월 2일 안할터 반호프과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 간 임시 운행이 시작되었고, 7월 27일에는 반제선 열차가 터널로 운행을 다시 시작했다. 같은 해 8월 15일에는 리히터펠데 쥐트역 방면으로 S반 열차가 운행을 재개했다. 슈프레강 하저 통과 구간 피해도 1947년 11월 15일에 복구되었으며, 다음 날 열차 운행이 재개되었다.

3. 4. 베를린 분단과 유령역 (1961년 ~ 1989년)

1987년 베를린 북역에서 터널로 진입하는 S반 열차


1997년 북역을 나가는 BVG 480 전동차


1961년 베를린 장벽 건설로 동베를린 영토 내 모든 S반과 U반 지하 정거장은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을 제외하고 통행이 금지되었다.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은 국경 통과점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서베를린 열차는 안할트역에서 프리드리히슈트라세역, 훔볼트하인역 사이를 무정차 통과했다. 1984년 1월 8일/9일 밤, 도이체 라이히스반은 서베를린 시의회에 S반 영업권을 양도했고, 이는 베를린교통공사(BVG)로 이관되었다. BVG는 터널 남부 안할트역까지만 사용했고, 1984년 5월 전체 터널 구간 운행을 재개했다.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1992년이 되어서야 분단 기간 폐쇄되었던 모든 유령역 영업이 재개되었다. 베를린 분단 기간 노르트-쥐트 터널에서는 어떠한 공사도 허용되지 않았다.[1]

3. 5. 통일 이후 재개통과 보수 (1990년 ~ 현재)

베를린 장벽 붕괴 이후 1990년부터 1992년 사이에 분단 기간 동안 폐쇄되었던 유령역들의 영업이 순차적으로 재개되었다.[9]

재개통 날짜
1990년 7월 2일오라니엔부르커 슈트라세 역
1990년 9월 1일베를린 북역, 운터 덴 린덴 역
1990년 12월 22일보른홀머 슈트라세 역
1992년 3월 1일포츠다머 플라츠 역 (터널 전 구간 보수공사 완료)



1991년에는 1945년 이후 최초로 전 구간에 걸친 대대적인 보수 공사가 시작되었다. 이 공사로 터널 내 거의 모든 자재가 교체되었고, 벽면이 보수되었으며, 터널 침수 피해가 완전히 복구되었다.[9] 베를린 중앙역으로 가는 새로운 장거리 터널과 가공전차선으로 인한 전자기 간섭 때문에 전자식 신호소가 설치되어야 했다.[9] 터널의 작은 건축한계 때문에 소형화된 Ks 신호기가 설치되었고, 출발 처리에 필요한 추가 신호기(Zp 8, Zp 9)가 설치되었다.[9]

2002년에는 동독 시절의 흔적을 제거하기 위한 보수 공사가 진행되었다. 2005년 7월부터 2006년 5월까지는 새로운 신호 시스템 설치 작업이 이루어졌다.[9] 이로써 남북 S반선은 자동 블록 신호 AB 37형과 기계식 계전기를 사용한 마지막 구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1인 승무가 도입되면서 출발 신호기는 더 이상 사용하지 않고 ZAT로 대체되었으며, 이후 터널 구간에서 단선 병렬 운행이 가능해졌다.

2009년에는 운터 덴 린덴역이 브란덴부르거 토어역으로 개명되었다.

4. 기술적 특징

안할트 및 드레스덴선 분기점으로 향하는 열차, 1987년


중앙에 반전 및 대기 야드가 있는 포츠다머 플라츠역 북쪽의 터널


포츠다머 플라츠역 남쪽의 터널과 링반 지선 연결을 위한 사용되지 않은 경사로


베를린 남북 S반선은 고밀도로 개발된 도심부에 터널을 건설해야 했기 때문에 당시의 철도 건설 및 운영 규칙의 예외를 적용해야 했다. S반 차량한계에 따라 다음과 같은 조건으로 계획되었다.[11]

  • 최소 곡선 반경: 150m (승강장 400m)
  • 최대 구배: 33
  • 영업최고속도: 48km/h (설계: 60km/h)
  • 최대 기동 가속도: 0.4 m/s² (1.44 km/h/s)
  • 최대 전고: 3.80m


남북 S반선의 최소 곡선 반경은 포츠다머 플라츠 S반역 남쪽 안할트역 방면 2번 선로의 145m이다. 해당 지점에 계획된 남부 순환선 연결선은 2번 선로와 3번 선로로 연결되며 최소 곡선 반경은 140m로 계획되었다.[12]

차량을 안전하게 운행하려면 터널에 맞는 차륜 구조가 필요했다. BVG는 차량 인수 초기에 서독 독일연방철도 기준 차륜 구조를 적용했다가 열차가 여러 번 탈선한 이후 동독 철도 기준 차륜을 사용했다.

남북 S반선은 최대 전고 3.83m, 전폭 3.43m인 특수 차량한계를 사용한다. 간선 철도와 비교했을 때 최대 전고가 더 낮다. 따라서 1962년까지 베를린 S반의 다른 지역에서 운행했던 ET 169형 전동차는 전고와 전장 때문에 터널에 진입할 수 없었고, 오라니엔부르크형 ET 168 전동차는 터널에 진입할 수 있도록 개조해야 했다. 남북 S반선의 작은 차량한계는 현재까지도 전체 S반용 차량 한계에 적용되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서 사용하는 S반 철도차량을 베를린에서 단순한 집전 장치 변경만으로 사용할 수 없다.

지하철 노선이 여러 개 교차하고, 강과 하천 아래를 지나야 했기 때문에 좁은 곡선, 작은 프로파일 터널, 그리고 일반적인 것보다 더 가파른 경사가 계획 매개변수에 포함되었다.

5. 역 목록

포츠다머 플라츠 S반역


남서부 터널 진입부(반제선)


남동부 터널 진입부(안할트 근교선)

6. S21 프로젝트 (계획)

중장기적으로 두 번째 남북 터널을 통해 남북 연결을 개선할 예정이며, 1단계에서는 중앙역포츠다머 반호프를 연결할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는 S21이라는 계획명으로 추진되고 있으며, 현재 베를린 중앙역과 남북 S반선 간의 열악한 연결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2]

이 프로젝트는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진행될 예정이다.



1단계에서는 신설 구간이 베딩과 베스트하펜 역 사이에서 ''중앙역''으로 우회한다. 페를레베르거 브뤼케 (Bahnhof Berlin Perleberger Brücke|반호프 베를린 페를레베르거 브뤼케de)에 새로운 역을 건설하는 방안도 고려되었지만 현재 계획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2] 이 구간을 통해 ''링반''에서 오는 열차와 북쪽 교외 노선에서 오는 열차가 ''중앙역''과 연결될 수 있다. 링반 아래의 언더패스는 ''노르트링''(Ringbahn의 북쪽 구간) 재건축 중에 이미 건설되었다. 이 노선은 지상으로 운행하며, 미나-카우어-슈트라세 북쪽의 터널로 진입한다. ''중앙역''은 U-반 역 중앙역 동쪽에 위치해 있다. 완공은 당초 2017년으로 예정되었으나 2022년으로 연기되었다.

2단계 건설에서는 슈프레 강을 건너 국회의사당 건물 동쪽을 지나, 에베르트슈트라세 아래의 2층 터널 상부와 연결될 수 있는 역이 건설될 예정이며, 이 터널은 1935년에 건설되었고, 기존의 포츠다머 플라츠 역으로 연결될 예정이다. 이 터널은 원래 1935/36년에 포츠다머 플라츠 역에 도입된 ''링반'' 열차의 반전 및 측선으로만 건설되었다. 이를 통해 기존 남북 터널을 통과하는 열차 중 하나가 새로운 연결을 통해 ''중앙역''으로 이동하여 ''''의 북쪽 구간과 그 너머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 이 두 번째 구간은 2023년에 완공될 예정이다.

3단계 구간에서 글라이스드라이에크 (베를린 U-반)의 새로운 환승역을 경유하여 요르크슈트라세 (그로스괴르셴슈트라세)로 이어지고, 율리우스-레버-브뤼케역에서 반제선과 환승하는 새로운 남북 연결을 구상하고 있다. 이 구간은 1935/36년에 ''링반'' 열차가 포츠다머 반호프 남쪽이 아닌 ''포츠다머 플라츠'' 지하에서 종착하도록 건설된 지하 포츠다머 플라츠 역 남쪽 끝의 출구를 사용하게 된다.

4단계 구간은 새로운 남북 연결에서 반제선으로 우회한 다음, 복원된 „체루스커쿠르베“ (Südringspitzkehre|쥐트링슈피츠케레de)를 거쳐 링반의 남쪽 부분으로 연결될 것이다.

공동 운송 자금 조달법에 따라 독일 연방 정부가 자금을 지원하는 중앙역까지의 북쪽 구간 건설에는 2400만유로가 소요되었다. 베를린 주 재정 계획에 따라 나머지 구간은 2030년까지 건설될 예정이다.

2007년 7월, 도이치반은 1단계 건설 지연을 발표했다. 재정 합의를 체결하고 프로젝트 서명을 연기한 후, 건설 공사는 계획대로 2007년 말 대신 2008년에 시작될 것이다.[3]

7. 한국에 대한 시사점

베를린 남북 S반선 사례는 분단된 지역을 연결하는 철도 노선이 경제적, 사회적으로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남북한 철도 연결은 한반도 통합과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1] 이 사례는 장기적인 계획과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함을 시사하며, 한국도 남북 철도 연결에 있어 장기적인 비전을 가지고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1]

베를린 남북 S반선은 전쟁, 분단, 기술적 어려움 등 다양한 난관을 극복하고 건설되었다. 19세기 말, 지멘스는 U-Bahn과 유사한 지하 노선을 제안하여 포츠담 역의 ''반제'' 변전소와 당시의 ''슈테티너 역''을 연결하고자 했다.[1] 1911년에는 남북 철도 연결에 대한 여러 제안이 제시되었다.[1]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1920년대에 논의가 다시 시작되었고, 전철화 도입으로 터널 건설이 가능해졌다.[1] 1933년 나치 정부의 공공 사업 중 하나로 시작되어 1934년에 첫 삽을 떴다.[1] 한국도 남북 철도 연결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여러 문제들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1]

참조

[1] 문서 History of the Berlin U-Bahn#World War II
[2] 간행물 Kein Geld für S-Bahnhof Perleberger Brücke, aber Geld für unnützen S21-Pendelbetrieb http://www.igeb.org/[...] 2017-08-30
[3] 뉴스 Mehr Platz im ICE von Berlin nach Hamburg http://www.berlinonl[...] Berliner Zeitung 2007-07-19
[4] 논문 Die Ursachen des Einsturzes der Baugrube der Berliner Nord-Süd-S-Bahn in der Hermann Göring Straße Der Bauingenieur 1937
[5] 서적 Dorpmüllers Reichsbahn. Die Ära des Reichsverkehrsministers Julius Dorpmüller Freiburg 2009
[6] 서적 Nordsüd-S-Bahn Berlin …
[7] 서적 Nordsüd-S-Bahn Berlin GVE 2008
[8] 서적 Nordsüd-S-Bahn Berlin GVE 2008
[9] 뉴스 Chaos nach Stellwerksdefekt Eisenbahn-Revue International 2006-03
[10] 웹사이트 Kundenzeitung Punkt 3 http://issuu.com/s-b[...] 2015-05-07
[11] 서적 Nordsüd-S-Bahn Berlin …
[12] 서적 Nordsüd-S-Bahn Berlin …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