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링 포 콜럼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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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볼링 포 콜럼바인》은 2002년에 개봉한 마이클 무어 감독의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이 영화는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을 중심으로 미국의 폭력 문화와 총기 문제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다. 영화는 사건의 배경, 총기 소유의 용이성, 언론의 공포 조장, 미국의 외교 정책 등을 다양한 인터뷰와 몽타주 기법을 통해 보여준다. 무어는 영화를 통해 미국과 다른 국가들의 총기 관련 사망 통계를 비교하며 미국의 높은 총기 사망률의 원인을 분석하고, 총기 규제를 주장한다. 이 영화는 칸 영화제 55주년 기념상,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상 등 여러 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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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링 포 콜럼바인 - [영화]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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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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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 마이클 무어 |
원작 | 1999년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원인 |
제작 | 마이클 무어 캐슬린 글린 짐 차르네키 찰스 비숍 마이클 도노반 커트 엥페르 |
각본 | 마이클 무어 |
주연 | 마이클 무어 |
내레이터 | 마이클 무어 |
음악 | 제프 깁스 |
편집 | 커트 엥페르 |
제작사 | 유나이티드 아티스츠 얼라이언스 아틀란티스 샐터 스트리트 필름스 도그 잇 도그 필름스 |
배급사 | MGM 배급사 (미국) 얼라이언스 아틀란티스 (국제) |
개봉일 | 2002년 5월 16일 (칸) 2002년 10월 11일 (미국) 2002년 10월 18일 (캐나다) |
상영 시간 | 120분 |
제작 국가 | 미국 캐나다 독일 |
언어 | 영어 |
제작비 | 400만 달러 |
흥행 수입 | 5800만 달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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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영화 내용
마이클 무어는 사우스 파크의 공동 제작자인 맷 스톤, 당시 전미 총기 협회 회장이었던 찰턴 헤스턴, 오클라호마 시티 폭탄 테러 용의자 제임스 니콜스, 그리고 음악가 마릴린 맨슨 등 다양한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의 원인과 미국의 높은 총기 범죄율에 대해 탐구한다.
영화는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의 피해자, 범인이 심취했다고 알려진 마릴린 맨슨, 전미 라이플 협회(NRA) 회장(당시) 찰턴 헤스턴, 사우스 파크 제작자 맷 스톤 등 다양한 인물들의 인터뷰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무어는 청교도의 아메리카 대륙 이주부터 현재까지의 총기 사회 역사를 검증하고, 캐나다, 일본, 영국 등 다른 선진국과의 비교를 통해 미국 총기 사회의 문제점을 드러낸다. 특히 미국 건국 과정에서 발생한 아메리카 원주민 학대와 흑인 노예 강제 노동이 백인들의 복수심에 대한 공포를 야기했고, 이것이 총기 사회를 용인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는 해석을 제시한다.
또한, TV 미디어가 미국 국민의 공포, 불안, 특정 인종에 대한 편견과 증오를 부추기고 있을 가능성을 지적한다.
영화 속에서 무어는 사건 피해자들과 함께 미국 제2의 대형 슈퍼마켓 체인점인 K마트(Kmart) 본사를 방문하여 협상 끝에 모든 점포에서 총알 판매를 중단시키는 데 성공했다.[52]
2. 1. 주요 인터뷰 대상
- 맷 스톤: 사우스 파크의 공동 제작자이자 콜럼바인 고등학교 출신이다. 무어와의 인터뷰에서 고향과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 사건에 대한 생각을 밝혔다.[27][28][29][30][31][52]
- 마릴린 맨슨: 록 음악가로, 콜럼바인 사건 가해자들이 그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무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사회의 공포와 소비문화를 비판했다.[27][28][29][30][31][52]
- 찰턴 헤스턴: 배우이자 전미 총기 협회(NRA) 회장으로, 총기 소유 옹호론자였다. 무어는 헤스턴에게 콜럼바인 사건과 플린트 총격 사건 이후 NRA 집회를 주도한 것에 대해 질문했고, 그의 답변은 논란을 일으켰다.[27][28][29][30][31][52]
2. 2. "Bowling"
영화 제목은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인 에릭 해리스와 딜런 클레보드가 사건 당일 아침 볼링 수업을 들었다는 잘못된 정보에서 비롯되었다.[11] 무어는 "볼링"이라는 요소를 영화 전반에 걸쳐 다양하게 활용한다.무어는 미시간 민병대가 볼링 핀을 표적 연습에 사용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또한 두 학생의 전 동급생들을 인터뷰하면서 학생들이 체육 수업 대신 볼링 수업을 들었다는 점에 주목하고, 이것이 교육적 가치가 거의 없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인터뷰 대상자들은 이에 동의하며 해리스와 클레볼드가 내성적인 생활 방식을 보였고 볼링에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다고 말한다. 무어는 학교 시스템이 학생들의 실제 요구에 부응하고 있는지, 아니면 두려움을 강화하고 있는지 질문을 던진다.
미시간주 오스코다에 거주하는 두 젊은이를 인터뷰하는 장면에서 무어는 정부와 언론이 조성한 공포 문화가 미국인들이 무장하도록 이끌어 총기 제조 회사에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볼링이 마릴린 맨슨이나 당시 유고슬라비아 폭격을 감행한 빌 클린턴 대통령만큼 학교 공격에 책임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12]
'''볼링 포 콜럼바인'''이라는 제목은 다음과 같은 이중 의미를 지닌다.
- 범인들이 마릴린 맨슨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수 미디어로부터 비판받았음에도, 범행 직전까지 했던 볼링의 악영향이 논의되지 않는 것은 이상하다는 풍자. (마릴린 맨슨의 영향은 후에 부정되었다.)
- 볼링 핀은 인간과 형태가 비슷하여 총기 사격 연습에 사용된다는 점.
2. 3. "Free gun for opening a bank account"
영화 초반부 장면은 미국 미시간주 북부의 한 은행에서 일정 금액 이상의 정기 예금 계좌를 개설하는 고객에게 사냥용 소총을 무료로 제공하는 모습을 보여준다.[14] 무어는 은행에 가서 예금을 하고, 서류를 작성하고, 신원 조회를 기다린 후, 새 웨더비 사냥용 소총을 들고 은행을 나선다. 은행을 떠나기 직전, 무어는 "은행에서 총을 나눠주는 게 조금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라고 묻는다.[15]
''보스턴 리뷰''는 이 장면을 조작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월스트리트 저널'' 또한 이 장면을 "연출된 것"이라고 칭했다.[17]
2. 4. "Happiness Is a Warm Gun" 몽타주
비틀즈의 노래 "Happiness Is a Warm Gun"을 배경으로, 미국 사회의 총기 문화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몽타주 시퀀스로 제시된다.[52]- 총기 구매 장면
- 유타주 버진: 모든 주민에게 총기 소지를 의무화하는 법을 통과시킴
- 사격장과 유원지에서 총을 쏘는 사람들
- 데니스 에임스의 소총 조작
- 노스다코타주 파고 출신 시각 장애인 총기 애호가 캐리 맥윌리엄스 (사수)
- 게리 플로셰의 아들 납치 및 성학대범 제프 도세트 살해
- R. 버드 드와이어의 자살
- 1993년 텔레문도 프로그램 ''오쿠리오 아시'' 인터뷰 중 에밀리오 누녜스의 전 부인 마리차 마틴 총격 살해
- 건강 유지 기구에 항의하며 자살한 에이즈 및 암 환자 다니엘 V. 존스
- 폭동 중 상의를 벗고 총에 맞는 남성
2. 5. 대량 살상 무기 (Weapons of mass destruction)
무어는 콜럼바인 고등학교 인근에 위치한 록히드 마틴 공장을 방문하여, 대량 살상 무기 제조와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의 연관성을 제기한다. 그는 제도화된 폭력이 지역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비판한다.[18]무어는 록히드 마틴 공장의 커뮤니케이션 담당 이사 에반 맥컬럼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맥컬럼은 미사일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미국을 방어하기 위해 제작되었기 때문에 특별한 연관성을 찾을 수 없다고 답한다.[18]
영화 개봉 후, 맥컬럼은 해당 공장이 더 이상 미사일을 생산하지 않고, 위성 발사에 사용되는 로켓을 생산한다고 해명했다.[18] 그는 무어에게 NASA, NOAA, 국방부 및 상업 고객을 위해 우주 발사체를 만든다는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했다고 밝혔다.[18]
에릭 뫼러는 무어의 질문이 리틀턴 지역의 록히드 마틴 시설에 국한된 것이 아니며, 록히드 마틴이 미국의 최대 군사 계약자라는 사실을 비평가들이 무시했다고 주장한다.[18]
2. 6. "What a Wonderful World" 몽타주
이 영화는 미국의 외교 정책 결정에 대한 몽타주로 전환되며, 미국이 얼마나 자주 침략 국가였는지에 대한 사례를 인용하여 맥컬럼의 주장에 반박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 몽타주는 루이 암스트롱이 부른 "What a Wonderful World"를 배경으로 한다.다음은 "Wonderful World" 부분의 화면 텍스트 내용이다.
- 1953년: 미국은 이란의 총리 모하마드 모사데크를 전복시킨다. 미국은 팔라비 샤를 절대 군주로 옹립한다.
- 1954년: 미국은 과테말라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 하코보 아르벤스를 내전의 일부로 전복시켰으며, 이로 인해 최대 20만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 1963년: 미국은 남베트남 대통령 응오딘지엠의 암살을 지원했다.
- 1963–75년: 미국 군대는 베트남 전쟁 중 400만 명을 살해했다.
- 1973년 9월 11일: 미국은 칠레에서 쿠데타를 일으켰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가 암살당했다.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세워졌다. 3,000명의 칠레인이 살해되었다.
- 1977년: 미국은 엘살바도르의 군사 정권을 지원했다. 7만 명의 엘살바도르인과 4명의 미국 수녀가 사망했다.
- 1980년대: 미국은 오사마 빈 라덴[19]과 동료 무자헤딘을 훈련시켜 소련을 살해하도록 했다. CIA는 그들에게 30억달러를 제공했다.
- 1981년: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콘트라를 훈련시키고 자금을 지원했다. 3만 명의 니카라과인이 사망했다.
- 1982년: 미국은 사담 후세인에게 이란인을 살해하기 위한 무기를 제공하기 위해 수십억 달러를 지원했다.
- 1983년: 백악관은 이란에 비밀리에 무기를 제공하여 이라크인을 살해하도록 했다.
- 1989년: CIA 요원 마누엘 노리에가 (또한 파나마 대통령을 역임)는 워싱턴 D.C.의 명령을 거부했다. 미국은 파나마를 침공하여 노리에가를 제거했다. 3,000명의 파나마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 1990년: 이라크는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받아 쿠웨이트를 침공했다.
- 1991년: 미국은 이라크에 진입했다. 조지 H. W. 부시는 쿠웨이트의 절대 군주를 복위시켰다.
- 1998년: 빌 클린턴은 무기 공장으로 추정되는 곳을 수단에서 폭격했다. 공장은 아스피린을 만드는 곳으로 밝혀졌다.
- 1991년부터 2003년까지: 미국 비행기는 매주 이라크를 폭격했다. 국제 연합은 50만 명의 이라크 어린이들이 폭격과 제재로 사망했다고 추정한다.
- 2000–01년: 미국은 탈레반이 통치하는 아프가니스탄에 2.45억달러를 지원했다.
- 2001년 9월 11일: 오사마 빈 라덴은 그의 전문적인 중앙 정보국 훈련을 이용하여 2,977명을 살해했다.[19]
몽타주는 2001년 9월 11일 유나이티드 항공 175편이 세계 무역 센터 남쪽 타워에 충돌하는 핸드헬드 카메라 영상을 보여주며, 오디오는 카메라 마이크로 기록된 목격자들의 감정적인 반응으로만 구성된다. 이 영화와 함께 제공되는 웹사이트에서 무어는 이 부분에 대한 추가적인 배경 정보를 제공한다.[20]
2. 7. 공포 분위기 (Climate of fear)
무어는 미국 사회에 퍼져 있는 공포 분위기가 총기 폭력의 원인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 그는 캐나다와의 비교를 통해 이를 강조하는데, 캐나다는 총기 소유 수준이 미국과 비슷하지만 범죄와 안전에 대한 걱정이 훨씬 적다는 점을 보여준다. 무어는 캐나다 지역을 방문하여 현관문이 잠겨 있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며, 이는 미국과 대조적이라고 말한다.[21]무어는 언론이 "피가 나면 선두로"라는 사고방식을 따르지 않는 캐나다의 뉴스 기사를 보여주며, 미국의 언론이 공포를 조장하고 사람들의 보호 욕구를 자극한다고 비판한다. "미국 역사 요약"이라는 만화는 미국에서 공포가 어떻게 시작되어 변화해 왔는지에 대한 무어의 견해를 보여준다.[21]
마릴린 맨슨과의 인터뷰에서 맨슨은 미국 사회가 "공포와 소비"에 기반하고 있다고 말하며, 콜게이트 광고와 같이 공포에 기반한 광고를 예로 든다. 그는 또한 언론이 정부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 있으며, 자신의 행동이 빌 클린턴 대통령보다 콜럼바인의 클레볼드와 해리스에게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무어가 콜럼바인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하겠냐고 묻자, 맨슨은 "그들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겠어요. 그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들어줄 거예요.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라고 대답했다.[22]
사우스 파크의 공동 제작자인 맷 스톤은 "미국 역사 요약"이라는 만화가 자신들의 스타일과 유사하게 만들어져 시청자들이 그들이 만들었다고 오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불쾌감을 표현했다.[23]
무어는 또한, TV 미디어가 미국 국민의 공포, 불안, 특정 인종에 대한 편견, 증오를 부추기고 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2. 8. 통계 (Statistics)
마이클 무어는 미국, 독일, 프랑스, 캐나다, 영국, 일본, 호주 등 여러 국가의 연간 총기 관련 사망자 수를 비교하며, 미국의 총기 폭력 문제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심각함을 보여준다.국가 | 연간 총기 사망자 수 | 인구 10만 명당 사망자 수 |
---|---|---|
일본 | 39 | 0.030 |
호주 | 65 | 0.292 |
영국 | 68 | 0.109 |
캐나다 | 165 | 0.484 |
프랑스 | 255 | 0.389 |
독일 | 381 | 0.466 |
미국 | 11,127 | 3.601 |
무어는 마릴린 맨슨의 음악 청취(독일: 연간 381건), 폭력적인 영화 관람(프랑스: 연간 255건), 비디오 게임(일본: 연간 39건) 등 다른 나라와의 비교를 통해 미국의 높은 총기 폭력의 원인에 대한 설명을 시도한다. 또한 독일, 일본, 프랑스, 영국 등 다른 나라들도 비슷한 폭력적인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25]
2. 9. K마트 환불 (Kmart refund)
마이클 무어는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생존자인 마크 테일러와 리처드 카스탈도를 미국 미시간주 트로이에 있는 K마트 본사로 데려갔다. 이들은 범인들이 K마트 매장에서 구입한 총알이 몸에 박혀 있는 것에 대한 환불을 요구했다.[26] 무어와 피해자들은 건물 로비에서 몇 시간 동안 기다리며 여러 K마트 직원들과 대화를 나누었지만, 직원들은 문제를 회피했다. 그러자 무어는 인근 미시간주 스털링 하이츠의 K마트를 방문하여 매장의 모든 탄약을 구입하고, 다음 날 현지 언론인들과 함께 다시 회사 본사로 돌아왔다. 회사의 커뮤니케이션 담당 부사장이 급히 내려와 대응하며, 회사가 90일 이내에 권총 탄약 판매를 단계적으로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무어는 "우리가 이겼어요. 우리가 요구한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습니다."라고 말했다.[26]3. 등장인물
- 마이클 무어
- 찰턴 헤스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다. 무어와의 인터뷰에서 미국 총기 폭력 문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지만, 무어의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고 인터뷰를 중단한다.[27][28][29]
- 마릴린 맨슨
- 맷 스톤
- 크리스 록
- 딕 클라크
출연자 | 일본어 더빙 | |
---|---|---|
소프트판 | TV 도쿄판 | |
마이클 무어 | 에바라 마사시 | 야마데라 코이치 |
마릴린 맨슨 | 마츠오카 미츠루 | 미키 신이치로 |
찰턴 헤스턴 | 코바야시 키요시 | 나야 고로 |
크리스 록 | 타카기 와타루 | |
트레이 파커 | ||
맷 스톤 | 반도 나오키 | |
더빙판 기타 | 오오츠카 호츄, 사토 아이, 이와사키 히로시, 나카노 유타카, 츠치다 다이, 야마조 카오리, 엔도 준이치, 타나다 에미코, 아라가키 타르스케, 시게마츠 토모 | 테라소마 마사키, 아이자와 마사키, 타하라 아르노, 나카무라 다이키, 호시노 미츠아키, 아키모토 요스케, 쿠스미 나오키, 타키자와 로코, 츠치다 다이, 무토 마사시, 사토 시노부, 이와사키 히로시, 테라우치 요리에, 고토 테츠오, 스즈키 노리코, 소노다 케이코, 키타 아유미, 타카세 우코, 아카기 스스무, 소야 키요리, 이이 아츠시, 이케다 아키코, 야노 유코, 아라이 사토미, 키노시타 사야카, 카츠라기 레이나, 츠네마츠 아유미, 카노 치아키, 네모토 케이코 |
일본어판 제작 스태프 | ||
연출 | 타카다 히로미츠 | 타카하시 고 |
번역 | 하라구치 마유미 | 마츠이 마리 |
조정 | 안자이 아유무 | 시게미츠 히데키, 아라이 야스오 |
효과 | 릴레이션 | |
담당 | 베푸 켄지, 미야치 나오 | |
제작 | 프로센 스튜디오 | HALF H・P STUDIO |
첫 방송 | 2004년 9월 16일 『목요양화극장』 21:00~23:24 |
TV 도쿄판에서는 한때 찰턴 헤스턴의 전담 성우였던 나야 고로가 기용되었는데, 본작에서 헤스턴이 불명예스러운 대우를 받게 되자 담당 스태프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나야에게 제안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야 본인은 "헤스턴의 목소리는 나야"라며 흔쾌히 수락했고, 해당 스태프는 "프로 중의 프로"라고 느꼈다고 한다.
4. 평가
《볼링 포 콜럼바인》은 개봉 당시 평론가들로부터 긍정적이면서도 비판적인 평가를 동시에 받았다. 리뷰 애그리게이터 로튼 토마토에서는 95%의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평균 평점 8.20/10을 기록했으며,[34] 메타크리틱에서는 32개 리뷰를 기준으로 100점 만점에 72점을 받아 전반적으로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35]
시카고 트리뷴의 마이클 윌밍턴은 "불안하고 자극적이며, 양쪽 정치 진영 모두에게 분노와 슬픔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으며, 무엇보다도 매우 재미있다"고 평가했다.[36] 뉴욕 타임스의 A.O. 스콧은 "《볼링 포 콜럼바인》에서 보여지는 미끄러운 논리, 편향된 웅변, 그리고 노골적인 선동은 열렬한 지지자들에게 잠시 멈춰 생각하게 할 만큼 충분하며, 미국의 폭력 문화에 대한 불안한 통찰력은 귀를 막고 싶어하는 사람들로부터 진지한 성찰을 불러일으킬 것이다"라고 평가했다.[37]
반면 워싱턴 포스트의 데슨 톰슨은 영화가 일관된 메시지가 부족하다고 비판하며, "이 내용 중 많은 부분이 재미있고 어떻게든 말해준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무엇을 더하는가?"라고 질문했다.[38]
제작비는 400만 달러였지만, 전 세계적으로 4000만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려 다큐멘터리 영화 흥행 기록을 경신했다.[54]
한편, 영화 속 편집이 의도적이라는 비판도 제기되었다. 전미총기협회(NRA)가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직후 콜로라도 주에서 집회를 개최한 것처럼 묘사되었지만, 실제로는 사전에 예정된 연례 집회였다는 점이 지적되었다.[55] NRA 측은 사건을 고려하여 행사 규모를 축소했다고 주장했지만,[56][57] 주요 언론들은 "무신경하고 오만하다"는 비판을 제기했다.[58] 찰턴 헤스턴이 덴버 집회에서 한 것처럼 오인될 수 있는 연출도 비판받았다.
영화 속에서 "폭력적인 게임의 대부분은 일본산이다"라는 나레이션과 함께 일본산 게임인 버추어 파이터와 미국산 게임인 모탈 컴뱃이 함께 등장하는 장면에 대한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영화 공개 당시 인기 게임의 대부분이 일본산이었다는 것은 사실이다.[59]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볼링 포 콜럼바인》은 미국을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03년에는 세자르 영화상 최우수 외국 영화상, 아카데미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상을 수상했으며, 칸 영화제에서는 55주년 기념 특별상을 받았다.[60]
4. 1. 수상 내역
연도 | 상 | 영화제 및 시상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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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 55주년 기념상 | 2002 칸 영화제[5] |
2002년 | VPRO IDFA 관객상 | 암스테르담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
2002년 | 관객상 | 아틀란티스 영화제 |
2002년 | 관객상 | 베를린 국제 영화제 |
2002년 | 방송 영화 비평가 협회상 | 방송 영화 비평가 협회 |
2002년 |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 시카고 영화 비평가 협회 |
2002년 |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 전미 비평 위원회 |
2002년 | 관객상 | 산세바스티안 국제 영화제 |
2002년 |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 사우스 이스트턴 영화 비평가 협회 |
2002년 | 다큐멘터리 부문 관객상 | 상파울루 국제 영화제 |
2002년 |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 토론토 영화 비평가 협회 |
2002년 | 최우수 작품상 | 밴쿠버 국제 영화제 |
2002년 | 최우수 각본상 | 미국 작가 조합 |
2003년 |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 세자르 영화상 |
2003년 | 역대 최고의 다큐멘터리 | 국제 다큐멘터리 협회(IDA) |
2003년 | 최우수 장편 다큐멘터리 영화상 | 아카데미상[44] |
2003년 |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 플로리다 영화 비평가 협회 |
2003년 | 골든 새틀라이트상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 새틀라이트상 |
2003년 |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드 |
2003년 |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 캔자스시티 영화 비평가 협회 |
2003년 |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 온라인 영화 비평가 협회상 |
2003년 | 최우수 외국어 영화상 | 세자르상 |
2003년 |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 댈러스-포트워스 영화 비평가 협회 |
2003년 | 최우수 편집상 에디상 | 미국 영화 편집자 협회상 |
2002 칸 영화제 상영 당시 이 영화는 13분간의 기립 박수를 받았다. 또한 2002년 밴쿠버 국제 영화제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국제 영화"로 선정되었다.
마이클 무어는 2003년 3월 23일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환호와 야유를 동시에 받았는데, 이는 그가 수상 소감을 통해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불과 며칠 전에 시작된 미국 주도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이다.[45][46]
2005년, 영국 채널 4 프로그램 ''역대 최고의 다큐멘터리 50편''에서 세 번째로 인기 있는 영화로 선정되었다.[47]
5. 한국어 더빙
이 영화는 2004년에 대한민국의 MBC에서 한국어 더빙으로 방영되었다.
TV 도쿄판에서는 찰턴 헤스턴의 전담 성우였던 나야 고로가 기용되었는데, 본작에서 헤스턴이 불명예스러운 대우를 받게 되자 담당 스태프는 안타까운 마음으로 나야에게 제안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나야 본인은 "헤스턴의 목소리는 나야"라며 흔쾌히 수락했고, 해당 스태프는 "프로 중의 프로"라고 느꼈다고 한다.
5. 1. MBC 성우진
5. 2. TV 도쿄판
아이자와 마사키타하라 아르노
나카무라 다이키
호시노 미츠아키
아키모토 요스케
쿠스미 나오키
타키자와 로코
츠치다 다이
무토 마사시
사토 시노부
이와사키 히로시
테라우치 요리에
고토 테츠오
스즈키 노리코
소노다 케이코
키타 아유미
타카세 우코
아카기 스스무
소야 키요리
이이 아츠시
이케다 아키코
야노 유코
아라이 사토미
키노시타 사야카
카츠라기 레이나
츠네마츠 아유미
카노 치아키
네모토 케이코
아라이 야스오
미야치 나오
『목요양화극장』
21:00~2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