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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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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신동엽은 1930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나 1960년대를 대표하는 참여 시인으로, 민중의 삶과 현실에 대한 깊은 관심과 비판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했다.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했으며, 4·19 혁명과 동학 농민 운동 등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한 작품을 통해 민족의 수난과 극복 의지를 형상화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껍데기는 가라〉, 〈금강〉 등이 있으며, 사후 신동엽문학상이 제정되고 생가가 복원되어 문학관이 건립되는 등 그의 업적을 기리는 다양한 기념 사업이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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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엽 (시인)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1959년 신춘문예 당선 시기의 신동엽
1959년 신춘문예 당선 시기의 신동엽
본명신동엽
한자 표기申東曄
석림(石林)
로마자 표기Sin Dong-yeop
출생일1930년 8월 18일
출생지일제강점기 조선 충청남도 부여군
사망일1969년 4월 7일
사망지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직업시인
배우자인병선
자녀아들 신좌섭, 신우섭, 딸 신정섭
친척장인 인정식
경력
활동 기간1959년 ~ 1969년
수상은관문화훈장 (2003년)

2. 생애

신동엽은 1930년 8월 18일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서 아버지 신연순과 어머니 김영희 사이에서 1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4년 부여국민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같은 해 전주사범학교에 입학했다.[2] 신동엽의 부친은 6살 때부터 아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을 마련해 주는 등 아들의 재능을 키우는 데 힘썼다. 신동엽은 사범학교 시절 독서를 통해 아나키즘 사상을 형성했다.

1948년 11월 이승만 정권의 토지개혁 미실시와 친일파 미청산에 항의하는 동맹 휴학으로 전주사범학교에서 퇴학당했다.[2] 1949년 부여 주변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받았으나 3일 만에 그만두고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부친은 밭을 팔아 아들의 학비를 지원했다.

1950년 한국 전쟁이 발발하자 고향으로 내려갔다. 조선인민군1950년 7월 15일 부여를 점령하고 토지개혁을 시행했다. 신동엽은 정치에 관심이 없었지만, 인민군의 요구로 그해 9월 말까지 부여 민주청년동맹(민청) 선전부장으로 일했다. 그는 무정부주의자였지만,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공산주의자들의 생각에는 동의했다.

1950년 말 국민방위군에 징집되었으나, 1951년 4월 30일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국민방위군이 해체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귀향 후 굶주림 때문에 를 먹고 간흡충에 감염되었다.[1]

1953년, 단국대학교 졸업 후 공군 사관 후보생에 지원하여 합격했으나, 보직을 받지 못했다. 이후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에서 헌책방을 운영했다. 1957년, 인병선과 결혼 후 고향으로 내려가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농업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3] 그는 결핵으로 교직을 그만두고 독서와 글쓰기에 몰두했다.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당선되어 '석림'이라는 필명으로 작가로 데뷔했다.[4] 결핵에서 회복한 후 서울의 교육비평사에 근무했다. 4·19 혁명에 참여하여 '학생 혁명 시집'을 쓰고 항거했다.[5] 이 때문에 신동엽은 많은 작가들에게 '4·19 시인'으로 불린다. 그는 4·19 혁명의 경험을 바탕으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와 '껍데기는 가라'를 썼다.[6] 1961년, 명성여고 야간부 교사로 채용되어 시 창작에 몰두했다. 1964년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63년에는 시집 《아사녀》를 발표했고, 1967년에는 장편서사시 《금강》을 발표했다.

1969년 4월 7일 간암으로 38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14]

2. 1. 어린 시절 및 학창 시절

신동엽은 1930년 8월 18일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서 농사를 짓는 아버지 신연순과 어머니 김영희 사이 1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4년 부여국민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했고, 같은 해 국가에서 숙식과 학비를 지원해 주는 전주사범학교에 입학했다.[2] 김응교 시인이 쓴 《민족시인 신동엽》(사계절)에 따르면 신동엽의 재능을 발견한 사람은 그의 부친 신연순이었다. 성격이 차분한 아들을 보면서 글을 가르쳐야겠다고 생각했다. 6살때부터 글을 가르쳤으며, 없는 살림이었지만 을 마련하였다. 또한 사범학교 시절에 독서에 힘씀으로써 아나키즘이라는 자신의 생각을 만들어 갔다.

그는 1948년 11월 이승만 정권의 토지개혁 미실시와 친일 미청산에 항의하는 동맹 휴학으로 학교에서 퇴학되었다.[2] 고향으로 내려가 있었던 신동엽은 1949년 부여 주변에 있는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사범학교에서 퇴학되었지만 교원자격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3일 만에 교사직을 그만두고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했다. 당시 부친은 사법 서사로 노동을 해서 버는 돈으로는 학비를 대지 못했기 때문에 밭을 내놓았다. 학문을 하겠다는 아들의 뜻을 존중한 것이었다.

2. 2. 한국 전쟁 시기

1950년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고향으로 내려갔다. 조선인민군1950년 7월 15일 부여를 점령했다. 조선인민군은 토지개혁을 시행하고 있었다. 동엽은 정치에 관심이 없었지만, 그의 지식을 조직사업에 활용하려는 인민군의 요구로 그해 9월 말까지 부여 민주청년동맹(민청) 선전부장으로 일했다. 그는 무정부주의자였지만,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공산주의자들의 생각에는 동의했다.

1950년 말 국민방위군에 징집됐다. 1951년 4월 30일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국민방위군이 해체되어 집에 돌아왔는데, 굶주림 때문에 를 먹고 간흡충에 감염되었다.[1]

2. 3. 작가 데뷔 및 활동

1953년, 신동엽은 단국대학교 졸업 후 공군 사관 후보생에 지원하여 합격했으나, 보직을 받지 못했다. 이후 서울특별시 성북구 돈암동에서 헌책방을 운영했다. 1957년, 이화여자고등학교 선배였던 인병선과 결혼 후 고향으로 내려가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농업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3] 그는 결핵으로 인해 교직을 그만두고 독서와 글쓰기에 몰두했다.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가 당선되어 '석림'이라는 필명으로 작가 데뷔를 했다.[4] 결핵에서 회복한 후 서울의 교육비평사에 근무했다. 그는 '학생 혁명 시집'을 쓰고 4·19 혁명에 참여하여 항거했다.[5] 이 때문에 신동엽은 많은 작가들에게 '4·19 시인'으로 불린다. 그는 4·19 혁명의 경험을 바탕으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와 '껍데기는 가라'를 썼다.[6] 1961년, 명성여고 야간부 교사로 채용되어 시 창작에 몰두했다. 1964년 건국대학교 대학원에서 국어국문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63년에는 시집 《아사녀》를 발표했고, 1967년에는 장편서사시 《금강》을 발표했다.

2. 4. 사망

1969년 4월 7일 간암으로 38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14]

3. 작품 세계

신동엽은 민주 세력 내 기회주의 세력을 비판하고 통일을 염원하는 〈껍데기는 가라〉를 비롯하여 〈삼월〉, 〈발〉, 〈4월은 갈아엎는 달〉, 〈주린 땅의 지도원리〉, 〈우리가 본 하늘〉 등 다양한 시를 발표했다.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여자의 삶〉 등과 〈시인정신론〉, 〈시와 사상성〉 등 10여 편의 평론도 남겼다. 유작으로는 통일을 기원하는 〈술을 마시고 잔 어젯밤은〉이 있으며, 사후 1975년 《신동엽 전집》이 출간되었다. 1989년에는 시 〈산에 언덕에〉가 중학교 3학년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3. 1. 주요 작품

신동엽은 민주 세력에 스며든 기회주의 세력을 비판하고 통일을 노래한 〈껍데기는 가라〉를 필두로 〈삼월〉, 〈발〉, 〈4월은 갈아엎는 달〉, 〈주린 땅의 지도원리〉, 〈우리가 본 하늘〉 등 여러 시를 발표하였다.[8][9] 그밖에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여자의 삶〉 등이 있으며, 〈시인정신론〉, 〈시와 사상성〉 등 평론 10여 편을 썼다. 유작으로 통일을 기원하며 쓴 〈술을 마시고 잔 어젯밤은〉이 있으며, 사후 1975년에 《신동엽 전집》이 나왔다. 1989년에는 시 〈산에 언덕에〉가 중학교 3학년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주요 작품은 다음과 같다.

  •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1959):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작.[4]
  • 《아사녀》 (1963): 시집.[10]
  • 〈금강〉 (1963): 서사시.[11]
  • 〈껍데기는 가라〉 (1967): 4·19 혁명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시.[6]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1979): 시집.

3. 2. 작품 특징

신동엽은 민주세력에 스며든 기회주의 세력을 비판하고 통일을 노래한 〈껍데기는 가라〉를 필두로 〈삼월〉, 〈발〉, 〈4월은 갈아엎는 달〉, 〈주린 땅의 지도원리〉, 〈우리가 본 하늘〉 등 여러 시를 발표하였다. 그밖에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여자의 삶〉 등이 있으며, 〈시인정신론〉, 〈시와 사상성〉 등 평론 10여 편을 썼다. 유작으로 통일을 기원하며 쓴 〈술을 마시고 잔 어젯밤은〉이 있으며, 사후 1975년에 《신동엽 전집》이 나왔다. 1989년에는 시 〈산에 언덕에〉가 중학교 3학년 교과서에 수록되었다. 4·19 혁명의 경험을 바탕으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와 〈껍데기는 가라〉를 쓸 수 있었다.[6]

4. 사후 평가 및 기념

신동엽은 1969년 4월 9일 경기도 파주군 금촌읍 월롱산 기슭에 안장되었으며, 12월 14일 묘비가 세워졌다.[18] 묘소는 1993년 11월 부여로 옮겨져 능산리 고분 건너편 산에 자리 잡았다.

신동엽이 세상을 떠난 뒤 ‘신동엽 시비 건립위원회’(위원장 구상)가 구성되었다. 문인, 동료, 제자 등 100여 명이 참여하였으며, 건립비는 26만 3천 원이 들었고, 시비의 글씨는 박병규, 설계는 정건모, 조각은 최석구가 맡았다. 1970년 4월 18일 고향인 부여읍 동남리 백제교 옆 백마강 기슭에 시비 〈산에 언덕에〉가 세워졌다.

이후 단국대학교(1990년), 부여초등학교(1999년), 전주교육대학교(2001년)에 신동엽 시비가 세워졌다. 현재 신동엽 시비는 4군데에 세워져 있다.


  • 단국대학의 신동엽 시비는 1990년 4월, 신동엽 24주기를 맞아 시인을 흠모하는 단국대학교 교수, 재학생, 동문 그리고 문단의 뜻을 모아 세워졌다. 처음에는 단국대학(서울시 용산구 한남동) 교정에 세워졌다가, 2007년 단국대학의 죽전캠퍼스로 이전함에 따라 현재는 단국대학교 죽전캠퍼스 상경대학 1층 입구 앞에 있다.
  • 부여초등학교에는 1999년 신동엽 30주기를 맞아 교정에 신동엽 시비가 세워졌다. 높이 2미터 정도의 시비에는 〈금강〉의 한 구절이 적혀 있다.
  • 전주사범대학에는 2001년 5월 15일에 시비 제막식을 가졌다. 사범과 3회 동기생들은 졸업 50주년 기념행사의 하나로 동기생이자 한국 시단을 빛낸 시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시비를 세웠다. 가로 2미터, 세로 2.3미터의 검은색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이 시비에는 시인의 대표작 〈껍데기는 가라〉 일부가 새겨져 있다.[19]

4. 1. 학계 및 문단의 평가

신동엽은 1960년대를 대표하는 참여 시인으로, 한국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는다.[16] 그의 작품은 민중의 삶과 현실을 진솔하게 그려냈으며, 민주주의와 통일에 대한 열망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는 4.19 혁명 당시의 상황을 묘사하며, 진정한 민주주의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 하늘을 보았다 / 하는가. (중략) 닦아라, 사람들아 / 네 마음속 구름 / 찢어라, 사람들아, /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중략)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또 다른 대표작 〈껍데기는 가라〉는 순수한 민족의 얼과 통일을 염원하는 시인의 정신을 담아낸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

‘껍데기는 가라. /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 (중략) 껍데기는 가라. / 한라에서 백두까지 /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

1970년대 민주화의 상징시 ‘껍데기는 가라’는 출판되자마자 곧바로 판매 금지되기도 하였다.[16]

신동엽 시인의 문학적 업적과 정신은 그의 사후에도 꾸준히 연구되고 있으며, 관련 서적들도 다수 출간되었다.

저자제목출판사출간 연도ISBN
신동엽, 그의삶과문학 | 온누리 | 1983 |
금강을노래한민족시인신동엽 | 사계절 | 1994 | 8871965221
신동엽시연구 | 시와시학사 | 1995 |
신동엽: 60년대의미망을위하여 | 건국대학교출판부 | 1997 | 8971071796
민족 시인 신 동엽 | 소명 출판사 | 1999 | 8988375106
신동엽 (선생님과 함께 읽는) | 실천문학사 | 2004 | 8939204921
시인 신동엽 | 현암사 | 2005 | 893231375X
김수영 VS 신동엽 | 숨비소리 | 2005 | 8990431352
신동엽(민족시인) (사계절아동문고 25) | 사계절 | 2005 | 8958281146
신동엽 (글누림 작가총서) | 글누림 | 2011 | 8963271412


4. 2. 기념 사업

1982년 그의 뜻을 기려 신동엽창작기금이 조성되어 매해 신동엽문학상을 수여한다.[20] 1985년 5월 유족과 문인들이 부여읍 동남리 294번지의 신동엽 생가를 복원했으며, 2003년 2월 19일 신동엽의 아들 신우섭은 생가의 영구보존을 위해 생가를 부여군에 기부했다. 생가 터는 274m2에 목조초가지붕 단층기념관 33.6m2, 부속건물 목조초가지붕 단층 관리사 24.76m2로 되어있다.[21] 부여군에서는 생가 뒷편에 연면적 800m2신동엽문학관을 2013년 5월 3일 개관하였다. 2010년 9월 10일 신동엽을 사랑하는 문인들의 모임인 신동엽학회(회장 구중서)가 서울 종로구 혜화동에 사무실을 열었다. 이민호 (서강대학교 교수), 고명철 (문학평론가), 정우영 (상임이사) 등이 참여한 이 학회에서는 2010년 신동엽이 지향하던 “온전한 인간”이라는 뜻의 전경인(全耕人)을 넣어 《전경인 어문연구》 창간호를 냈다.[22] 2010년 4월 17일4월 18일 양일간 고향인 충남 부여에서 41주기 추모 행사가 열렸다. 부여군, 부여문화원, 한국작가회의, 신동엽학회 등이 공동 개최하는 추모행사였다. 이 행사는 부여읍 동남리 백마강변 신동엽 시비에서 추모제를 시작으로 부여청소년수련원에서 이원규 시인의 ‘늦봄의 미학, 백일홍과 신동엽’ 등 논문 발표와 함께 ‘신동엽 문학의 밤’을 가졌다. 구중서 문학평론가, 도종환 시인 등이 참석하고 맏아들 신좌섭 서울대 의대 교수도 참석해 아버지 신동엽을 회고하였다. 또한 신동엽의 시비, 생가, 묘소와 금강 등을 둘러보는 ‘신동엽 유적지 문학기행’과 부여 정림사지 박물관에서 초·중·고생 400여명이 시와 산문을 겨루는 백일장이 열렸고, 4월 내내 도로변 등에 ‘산에 언덕에’ ‘금강’ 등 신동엽 시인의 대표 시 액자걸기와 신동엽의 흉상 건립 모금 운동이 펼쳐졌다.[23]

5. 가족 관계


  • 배우자: 인병선 (짚풀생활사박물관장)[15]
  • 자녀: 2남 1녀[16]
  • * 장남: 신좌섭 (1959년 ~ 2024년 3월 30일)
  • ** 며느리: 정승혜

손녀: 신정원

  • * 차남: 신우섭
  • * 장녀: 신정섭

6. 학력

7. 경력

참조

[1] 웹사이트 신동엽 http://terms.naver.c[...] 2015-11-05
[2] 서적 신동엽 (사랑과 혁명의 시인) Kŭl Nurim 2011
[3] 뉴스 '시인 신동엽' 펴낸 부인 인병선씨 – 이 책으로 남편의 그늘과 '이혼'입니다 http://www.hani.co.k[...] The Hankyoreh 2006-03-02
[4] 서적 한국의 고전을 읽는다 1 (고전문학 상, 신화ㆍ민담ㆍ여행기) Hyumŏnisŭt'ŭ 2006
[5] 뉴스 4.19 그날, 시인 신동엽도 거리에 있었다 http://www.nocutnews[...] No Cut News 2006-04-13
[6] 서적 나는 문학이다 (이광수에서 배수아까지 111명) http://terms.naver.c[...] Namu Iyagi 2009
[7] 서적 신동엽 전집 창작과비평사 1985
[8] 서적 껍데기는 가라 2013
[9] 서적 Modern Korean Poetry https://books.google[...] Jain Publishing Company 1994
[10] 서적 신동엽 전집 Ch'angjak-kwa pip'yŏngsa 2002
[11] 서적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신동엽 시전집) Ch'angjak kwa Pip'yŏngsa 1989
[12] 뉴스 권은정의 인터뷰 무제한/'시인 신동엽' 펴낸 부인 http://www.hani.co.k[...] The Hankyoreh 2006-03-16
[13] 뉴스 문화예술계 유공자 발표 http://legacy.www.ha[...] The Hankyoreh 2003-10-19
[14] 뉴스 ‘시인 신동엽’ 펴낸 부인 인병선씨 http://www.hani.co.k[...] 한겨레 2010-02-26
[15] 뉴스 4.19 그날, 시인 신동엽도 거리에 있었다 http://www.cbs.co.kr[...] 노컷뉴스 2010-03-30
[16] 뉴스 인병선 “욕망·음해의 도가니더라…껍데기는 다 날렸다” http://news.nate.com[...] 경향신문 2010-03-31
[17] 뉴스 40주기 신동엽 미공개 詩 발굴 http://news.nate.com[...] 연합뉴스 2010-03-31
[18] 서적 신동엽전집(수정증보판) 창작과비평사 1985
[19] 웹인용 한국문학 거목 배출한 수준 높은 문학의 고장 http://www.sjbnews.c[...] 2015-10-12
[20] 웹인용 "[권은정의인터뷰무제한] 못다한 시인과 사랑 짚풀로 엮고 엮었지" http://www.hani.co.k[...] 2006-03-16
[21] 뉴스 신동엽 시인 생가 영구보존 http://www.cctoday.c[...] 충청투데이 2011-01-30
[22] 뉴스 신동엽 서사시 ‘금강’에 영화 ‘아바타’ 있다? http://news.kukinews[...] 쿠키뉴스 2011-01-30
[23] 뉴스 ‘껍데기는 가라’ 신동엽시인 추모행사 http://www.seoul.co.[...] 서울신문 2010-05-20
[24] 뉴스 문화예술계 유공자 발표 http://www.hani.co.k[...] 한겨레 2012-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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