永和|영화중국어 연간(345년~356년)은 동진의 주요 인물인 환온, 저포, 은호 등이 활약하며 대내외적으로 많은 사건이 발생한 시기이다.
환온은 347년(영화 3년) 성한을 정벌하여 서남방 영토를 확장하였고, 이후 두 차례의 북벌을 감행하여 356년(영화 12년)에는 한때 서진의 옛 수도였던 낙양을 수복하는 등 군사적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저포와 은호 또한 북벌을 시도하였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고, 특히 은호의 실패는 환온의 정치적 입지를 더욱 강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 외에도 남방의 림읍과의 충돌 및 토벌(영화 3년, 9년), 범분과 소경문 등 내부 반란 진압(영화 5년, 8년), 강족의 요익중·요양 등 이민족 세력의 귀순(영화 7년), 그리고 353년(영화 9년) 왕희지 등이 참여한 난정(蘭亭)에서의 곡수연(曲水宴)과 같은 문화적 사건들이 이 시기의 주요 기록으로 남아 있다.
영화(永和) 연간 동진은 여러 차례 대외 정벌과 외교 활동을 전개하며 영토 확장과 중원 회복을 시도했다.
서남방 안정: 영화 원년(345년) 8월, 환온이 안서장군·도독형사옹익양녕육주제군사로 임명되어 서부 방면의 군사력을 총괄하게 되었다. 이듬해인 영화 2년(346년) 11월 11일, 환온은 성한 정벌에 나섰고, 영화 3년(347년) 3월 17일 마침내 성한을 평정하여 촉 땅을 동진의 판도에 편입시켰다. 이는 동진의 서남방 경계를 안정시키는 중요한 성과였다. 그러나 같은 해 7월, 성한의 잔당인 범분이 반란을 일으키고, 12월에는 파서의 소경문도 반란을 일으키는 등 정복지의 안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익주의 범분은 영화 5년(349년) 4월에 토벌되었고, 파서의 소경문은 영화 8년(352년) 8월에 주살되었다.
남방과의 관계: 영화 3년(347년) 정월, 남방의 림읍(참파) 왕 범문이 일남군을 침공하였고, 영화 4년(348년) 4월에는 구진군을 약탈하는 등 충돌이 발생했다. 이에 동진은 영화 9년(353년) 3월, 림읍의 범불을 토벌하여 남방 경계를 안정시키려 했다.
북벌 시도와 중원 진출: 동진은 여러 차례 북벌을 시도하며 중원 회복을 꾀했다.
영화 5년(349년) 2월, 저포가 북벌에 나섰으나, 7월 대파에서 후조의 이농에게 패배하고 그 해 12월 7일 사망하였다.
영화 7년(351년) 정월에는 청주의 단감이, 11월에는 강족의 요익중과 요양이 동진에 귀순해 왔다. 그러나 같은 해 4월, 사마훈이 한중에서 오장원으로 진격했으나 전진의 부건에게 패퇴하는 등 군사적 충돌도 있었다.
영화 8년(352년) 정월, 은호가 저포의 뒤를 이어 북벌에 나섰다. 같은 해 8월, 염위로부터 전국새를 얻어 목제에게 헌상하며 정통성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영화 9년(353년) 10월, 귀순했던 요양의 배신으로 북벌군은 산상에서 크게 패하고 은호는 실각했다.
영화 10년(354년) 2월, 환온이 제1차 북벌을 시작하여 4월 25일에는 장안 근처의 파상까지 진격했으나 보급 문제 등으로 9월 17일 양양으로 회군했다.
영화 12년(356년) 7월, 환온은 제2차 북벌을 감행하여 8월에는 서진 멸망 이후 45년 만에 낙양을 탈환하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동진 조정은 그해 12월 19일, 서진의 능묘 회복을 기원하는 제전을 거행하며 중원 회복 의지를 다졌다. 그러나 같은 해 11월 14일, 귀순했던 단감이 전연에 투항하는 등 북방 전선은 여전히 불안정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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