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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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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예수의 묘사는 기독교 미술에서 중요한 주제로, 시대와 지역, 문화적 배경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 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상징이나 젊은 모습으로 묘사되었으나, 중세 시대에는 수염을 기른 모습이 일반화되었다. 르네상스 이후에는 이상적인 인간의 아름다움을 담은 묘사가 등장했고, 현대에는 다양한 인종적, 지역적 특징을 반영한 묘사도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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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묘사
예수의 묘사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 모자이크, 하기아 소피아, 이스탄불.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 모자이크, 아야 소피아, 이스탄불.
개요
주제예수의 묘사
문화적 중요성기독교 문화에서 매우 중요함.
역사적 맥락
초기 기독교초기 기독교 시대에는 예수의 이미지가 드물었음.
비잔틴 시대비잔틴 시대에 이미지 숭배 논쟁이 있었음.
중세 시대중세 시대에 예수의 다양한 묘사가 발전함.
르네상스 시대르네상스 시대에 예술가들이 예수의 묘사를 탐구함.
주요 묘사
판토크라토르전능하신 그리스도, 동방 정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음.
선한 목자초기 기독교 예술에서 흔히 볼 수 있으며, 양을 어깨에 멘 모습으로 묘사됨.
인자다니엘서에 나오는 종말론적인 인물.
고난받는 종이사야서에 나오는 고통받는 인물.
스타일 및 예술적 표현
비잔틴 양식엄격하고 상징적인 표현.
르네상스 양식인간적이고 이상화된 표현.
바로크 양식극적이고 감정적인 표현.
종교적 의미
신성예수의 신성을 나타냄.
인간성예수의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함.
구원예수의 희생을 통한 구원의 상징.
논쟁 및 해석
이미지 숭배 논쟁비잔틴 시대에 이미지 사용에 대한 논쟁이 있었음.
현대적 해석다양한 문화적 맥락에서 예수의 이미지가 재해석되고 있음.
기타
영향예술, 문화, 신학에 큰 영향을 미침.

2. 역사

헬리오스/솔 인빅투스 태양신으로서 자신의 전차를 타고 있는 예수. 성 베드로 대성당 아래 ''바티칸 동굴''에 있는 3세기 모자이크.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그리스도의 세례'', 1449년.


예수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르 – 성 소피아 대성당의 고대 모자이크.


노엘 쿠아펠의 부활, 1700년, 공중에 떠 있는 묘사 사용.


2. 1. 초기 기독교

초기 기독교에서 예수의 묘사는 정경 복음서에 외모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다양하게 나타났다. 사도행전에서는 "하늘로부터 온 빛"으로, 요한 묵시록에서는 "사람의 아들"과 같은 존재로 묘사되지만, 이는 지상에서의 육체적 모습과는 관련이 없다.[9][10]

1세기 유대인들은 출애굽기 20:4-6에 따라 인물 조형물 제작을 금지했으나,[11] 3세기경 두라 유로포스 회당의 프레스코화처럼 인물 조형물을 제작하는 경우도 있었다.[12][13] 로마 제국 시대 기독교 박해 동안 기독교 미술은 은밀하고 모호했으며, 이레네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등은 예수 이미지 묘사를 반대했다.[14][15] 엘비라 시노드는 교회 내 그림을 금지하기도 했다.[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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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는 익투스, 공작 등 상징으로 표현되었고, 이후 선한 목자처럼 수염 없는 젊은이로 묘사되기도 했다.[19][20] 동방 박사의 경배와 같이 어린 아기로 묘사되는 경우도 있었다.[22] 서기 235년경 시리아 팔레스티나에서 발견된 초상에서는 짧은 머리에 튜닉과 팔리움을 입은 젊은 남성으로 묘사된다.[23]

예수의 외모는 신학적 함의를 가지기도 했다. 일부는 젊고 아름다운 모습,[24] 영지주의자들은 외모를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 반면,[25] 유스티노 순교자와 테르툴리아누스는 평범한 외모라고 믿었다.[26] 히포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상적으로 아름다운 모습이었을 것이라 주장했다.

수염 난 예수와 베드로와 바오로 사이, 마르켈리누스와 베드로의 카타콤, 로마. 4세기 후반.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가 있는 로마 모자이크, 로마의 산타 푸덴치아나 교회, 서기 400–410년경, 서로마 제국 시대


3세기부터 ''그리스도의 생애''의 장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리스도의 세례''와[29] ''라자로의 부활''[30] 등이 대표적이다. 4세기에는 더 많은 장면이 묘사되었고,[31] 예수는 주로 짧은 머리의 수염 없는 젊은이로 묘사되었다.[32] 산타 사비나의 문처럼 지팡이를 사용해 기적을 행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했다.[33][34]

3세기 말 또는 4세기 초부터는 수염을 기른 예수의 묘사가 등장했는데,[39] 이는 제국 이미지, 철학자 유형,[40] 제우스나 유피테르 등에서 유래했다고 한다.[41] 수염 난 유형은 긴 머리카락과 긴 수염을 가진 "카리스마적인" 철학자들과 관련이 있었다.[42][43] 3세기부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 등은 기독교 남성에게 수염을 기르는 것을 권장했다.[46]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의 가장 오래된 현존하는 패널 아이콘, 패널에 템페라, 6세기, 오늘날에도 즉시 인식되는 예수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황제로서의 그리스도, 군복을 입고, 사탄을 나타내는 뱀을 짓밟고 있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 14:6)라는 비문이 있습니다. 라벤나, 서기 500년 이후

2. 2. 중세 시대

4세기 중반,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된 후 그리스도 왕의 새로운 이미지가 나타났고,[47] 장엄한 그리스도로 발전했다. 일부 학자들은 판토크라토르("만물의 통치자")의 개념이 성부에서 그리스도로 이동한 결과로 보았다.[48] 또 다른 묘사는 고대 철학자들의 이미지를 차용했는데, ''법의 전수'' 이미지도 이 유형을 사용했다.[49] 5세기에는 십자형 후광과 함께 수염과 긴 머리를 한 이미지가 지배적이 되었다.[50] 산타폴리나레 누오보 성당의 모자이크에서 예수의 공생애 기간에는 수염이 없지만 수난 장면 이후에는 수염이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50] 산티 코스마 에 다미아노 성당의 앱스 모자이크에서 묘사된 선한 목자는 후광과 화려한 옷을 입고, 열두 사도로서 묘사된 열두 마리의 양과 함께 묘사되기도 한다.

수염과 긴 머리의 예수가 예수의 전통적인 묘사가 되자, 그의 얼굴 특징은 서서히 표준화되기 시작했지만, 동방 교회에서는 6세기까지, 서방에서는 12세기까지 수염이 없는 예수가 흔했다.[50] 중세 후기에는 수염이 거의 보편화되었고,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최후의 심판''에서 수염이 없는 그리스도를 묘사했을 때, 반종교 개혁 분위기의 로마에서 지속적인 공격을 받았다.[51] 폴 비뇽은 이 시점 이후 예수의 아이콘에서 15가지 유사점을 나열하고, 에데사의 상이 예술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주장한다.[52][53] 초기 중세 시대에 기적적인 기원을 가진 이미지나 성 루가가 그린 호데게트리아는 묘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54] 동방 정교회에서 이미지의 형태는 계시된 진실로 간주되었고, 예술가들은 독창성 없이 이전 이미지를 복사했다.[54]

그리스도의 위엄, 털이 없는 모습으로, 12세기 영국의 채색 필사본에서.


5세기 무렵부터 수난의 묘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57] 6세기의 랍불라 복음서에는 십자가형과 부활을 묘사한 가장 오래된 그림이 포함되어 있다. 6세기 무렵에는 수염을 기른 예수의 묘사가 동방에서 표준이 되었지만, 서방에서는 여러 세기 동안 수염이 있는 묘사와 없는 묘사가 혼합되었다. 표준적인 묘사의 역사적 정확성을 입증하기 위해 에데사 이미지와 베로니카의 수건과 같은 전설이 발전했다.[58] 예수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식 묘사는 교회력의 주요 축제와 수난의 사건에 초점을 맞추고, 나사로의 부활을 제외하고는 예수의 공생애의 기적을 무시했다.[59] 십자형 후광은 예수를 구별하는 데 사용되었다.[59]

비잔틴 성상 파괴 운동 시기는 동방의 발전을 가로막았지만, 9세기에는 다시 예술이 허용되었다. 예수의 변모는 동방에서 주요 주제였으며, 동방 정교회 수도사는 변모의 성상을 그림으로써 자신의 기량을 증명해야 했다.[60] 동방의 성상은 원근법에 대한 낮은 고려와 이미지의 크기와 비율의 변화가 영적인 의미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61]

13세기는 서방에서 기적을 행하는 자로서 예수의 키리오스 이미지를 묘사하는 데 있어서 전환점을 맞이했는데, 성 프란치스코회가 탄생 장면과 십자가형을 통해 예수의 겸손함을 강조했기 때문이다.[62][63][64] 프란체스코회는 탄생의 기쁨과 십자가형의 고통을 통해 새로운 범위의 감정을 도입했고, 이후 예수의 이미지에 광범위한 문화적 영향을 미쳤다.[62][64][65][66]

|thumb|십자가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 1580년, 엘 그레코의 작품.]]

2. 3. 근대 이후

13세기는 서방에서 기적을 행하는 자로서 예수의 강력한 키리오스 이미지를 묘사하는 데 전환점을 맞이했는데, 성 프란치스코회가 탄생 장면과 십자가형을 통해 예수의 겸손함을 강조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62][63][64] 프란체스코회는 이러한 감정 스펙트럼의 양극단에 접근했고, 탄생의 기쁨이 십자가형의 고통에 더해지면서 새로운 범위의 감정이 도입되었고, 이후 수 세기 동안 예수의 이미지에 광범위한 문화적 영향을 미쳤다.[62][64][65][66]

조토 이후, 프라 안젤리코와 다른 화가들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최후의 만찬''과 같은 작품에서 예수의 묘사에 이상적인 인간의 아름다움을 담아낸 깔끔한 이미지를 체계적으로 발전시켰으며, 이는 아마도 최초의 성기 르네상스 그림일 것이다.[67][68] 그러나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의 ''최후의 심판'' 프레스코에서 수염 없는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데 너무 지나쳤다고 여겨졌는데, 이는 아폴론의 고전 조각을 매우 명확하게 차용한 것이었고, 이러한 경향은 다른 예술가들에게 거의 따르지 않았다.

성기 르네상스는 프로테스탄트 종교 개혁의 시작과 동시대였으며, 특히 초기 수십 년 동안에는 거의 모든 공공 종교 이미지를 우상 숭배로 간주하여 폭력적으로 반대했고, 엄청난 수가 파괴되었다. 점차 예수의 이미지는 대부분의 프로테스탄트에게 다양한 맥락에서, 특히 책 삽화나 판화와 같은 이야기식 맥락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더 큰 그림에서 수용되었다. 프로테스탄트 예술은 예수의 외모에 대한 현재 표준적인 묘사를 계속했다. 한편, 카톨릭 반종교개혁은 신자들의 신앙심을 돕는 데 있어서 예술의 중요성을 재확인했고, 예수의 새로운 이미지를 대량으로 제작하도록 장려했으며, 또한 표준적인 묘사를 계속 사용했다.

19세기 말에는 예수의 기적적인 이미지에 대한 새로운 보고가 나타났고, 여전히 상당한 관심을 받고 있다. 예를 들어 세콘도 피아가 1898년에 찍은 토리노의 수의 사진은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유물 중 하나로, 2010년 5월 전시회에서 200만 명이 넘는 방문객이 방문했다.[70][71][72] 또 다른 20세기의 예수 묘사, 즉 파우스티나 코발스카의 보고된 환상에 근거한 자비의 이미지는 1억 명이 넘는 추종자를 가지고 있다.[73][74] 예수의 첫 번째 영화 묘사는 1897년 파리에서 제작된 5분짜리 영화 ''La Passion du Christ''였다.[75][76] 그 이후 영화 묘사는 전통적인 이미지와 유사한 서양의 표준적인 묘사에서 수염을 기른 예수를 계속 보여주었다.[77]

3. 예수의 외형 묘사



정경 복음서에는 예수의 외모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없지만,[9][10] 사도행전에서는 "하늘로부터 온 빛"으로 나타났다고만 언급된다.[11] 요한 묵시록에는 "사람의 아들"과 같은 존재에 대한 환시가 등장하지만, 이는 영적인 형태이며 지상에서의 육체적 모습과는 관련이 없다.

초기 기독교 미술은 로마 제국의 박해로 인해 은밀하고 모호했으며, 우상 숭배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예수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19] 초기에는 익투스(물고기),[19] 공작, 닻,[19] 스타우로그램과 같은 상징적인 표현이 주로 사용되었다.[19] 이후에는 요나,[19] 다니엘,[19] 오르페우스,[19] 선한 목자와 같은 의인화된 기호가 등장했다.[20]

가장 초기의 직접적인 예수 묘사는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특히 ''동방 박사의 경배'' 장면에서 많이 나타난다.[22] 시리아 팔레스티나에서 발견된 서기 235년경의 초상화는 수염이 없고 짧은 머리에 튜닉과 팔리움을 입은 젊은 남성으로 묘사된다.[23]

예수의 외모는 신학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었다. 일부는 예수가 아름다운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24] 영지주의자들은 외모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25] 반면, 유스티노 순교자와 테르툴리아누스를 포함한 다른 교부들은 평범한 외모였다고 믿었다.[26]

3세기부터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룬 서사 장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예수의 세례''와[29] ''라자로의 부활''이 대표적이다.[30] 4세기에는 더 많은 장면이 묘사되었으며, 예수는 주로 짧은 머리에 수염이 없는 젊은 모습으로 나타났다.[31][32]

예수는 때때로 지팡이를 사용하여 기적을 행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했다.[33] 이는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일부 학자들은 예수를 마법사나 불가사의한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35][36]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모세의 지팡이와의 성경적 연속성을 나타내는 것이며, 초기 기독교인들은 마법과 관련된 모든 것을 거부했다고 주장한다.[38]

3세기 말 또는 4세기 초부터는 수염을 기른 예수의 묘사가 등장하기 시작했으며,[39] 이는 제우스,[41] 유피테르,[41] 또는 카리스마적인 철학자들의 이미지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42][43] 이 묘사는 주로 위엄 있는 예수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생애 장면에서는 수염 없는 젊은 유형이 더 많이 사용되었다.[44] 3세기부터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은 기독교 남성에게 수염을 기르는 것을 권장했다.[46]

3. 1. 초기 묘사

정경 복음서에는 예수의 외모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없지만,[9][10] 사도행전에서는 "하늘로부터 온 빛"으로 나타났다고만 언급된다.[11] 요한 묵시록에는 "사람의 아들"과 같은 존재에 대한 환시가 등장하지만, 이는 영적인 형태이며 지상에서의 육체적 모습과는 관련이 없다.

초기 기독교 미술은 로마 제국의 박해로 인해 은밀하고 모호했으며, 우상 숭배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예수의 모습을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경우는 드물었다.[19] 초기에는 익투스(물고기),[19] 공작, 닻,[19] 스타우로그램과 같은 상징적인 표현이 주로 사용되었다.[19] 이후에는 요나,[19] 다니엘,[19] 오르페우스,[19] 선한 목자와 같은 의인화된 기호가 등장했다.[20]

가장 초기의 직접적인 예수 묘사는 어린 아기의 모습으로, 특히 ''동방 박사의 경배'' 장면에서 많이 나타난다.[22] 시리아 팔레스티나에서 발견된 서기 235년경의 초상화는 수염이 없고 짧은 머리에 튜닉과 팔리움을 입은 젊은 남성으로 묘사된다.[23]

예수의 외모는 신학적인 함의를 지니고 있었다. 일부는 예수가 아름다운 모습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고,[24] 영지주의자들은 외모를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25] 반면, 유스티노 순교자와 테르툴리아누스를 포함한 다른 교부들은 평범한 외모였다고 믿었다.[26]

3세기부터 ''그리스도의 생애''를 다룬 서사 장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예수의 세례''와[29] ''라자로의 부활''이 대표적이다.[30] 4세기에는 더 많은 장면이 묘사되었으며, 예수는 주로 짧은 머리에 수염이 없는 젊은 모습으로 나타났다.[31][32]

예수는 때때로 지팡이를 사용하여 기적을 행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기도 했다.[33] 이는 권력의 상징으로 여겨지며, 일부 학자들은 예수를 마법사나 불가사의한 능력을 가진 사람으로 묘사한 것이라고 주장한다.[35][36] 그러나 다른 학자들은 모세의 지팡이와의 성경적 연속성을 나타내는 것이며, 초기 기독교인들은 마법과 관련된 모든 것을 거부했다고 주장한다.[38]

3세기 말 또는 4세기 초부터는 수염을 기른 예수의 묘사가 등장하기 시작했으며,[39] 이는 제우스,[41] 유피테르,[41] 또는 카리스마적인 철학자들의 이미지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42][43] 이 묘사는 주로 위엄 있는 예수의 이미지를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생애 장면에서는 수염 없는 젊은 유형이 더 많이 사용되었다.[44] 3세기부터 일부 기독교 지도자들은 기독교 남성에게 수염을 기르는 것을 권장했다.[46]

3. 2. 수염과 긴 머리

4세기 중반,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가 공인된 후, 그리스도 왕의 새로운 이미지가 나타났는데,[47] 황제의 도상학의 의상과 포즈를 종종 채택했다. 이는 다양한 형태의 장엄한 그리스도로 발전했다.[47] 일부 학자들은 판토크라토르("만물의 통치자")의 개념이 성부에서 그리스도로 이동한 결과로 보았다.[48] 또 다른 묘사는 고대 철학자들의 이미지를 차용했는데, 로마의 석관에서 종종 젊은 "지적인 신동"으로 묘사되었다.[49] ''법의 전수'' 이미지도 처음에는 이 유형을 사용했다.[49] 점차 예수는 나이가 들어 보이게 되었고, 5세기에는 십자형 후광과 함께 수염과 긴 머리를 한 이미지가 특히 동로마 제국에서 지배적이 되었다.[50] 최초의 대규모 신약 모자이크 주기인 라벤나의 산타폴리나레 누오보 성당 (520년경)에서, 예수의 공생 기간 동안에는 수염이 없지만 수난 장면 이후에는 수염이 있는 모습으로 묘사된다.[50]

수염과 긴 머리의 예수가 예수의 전통적인 묘사가 되자, 그의 얼굴 특징은 서서히 표준화되기 시작했지만, 이 과정은 동방 교회에서는 6세기까지, 서방에서는 12세기까지 더 오래 걸렸다.[51] 미켈란젤로가 시스티나 성당의 ''최후의 심판''에서 수염이 없는 그리스도를 묘사했을 때, 반종교 개혁 분위기의 로마에서 지속적인 공격을 받았다.[51]

프랑스 학자 폴 비뇽은 이 시점 이후 예수의 대부분의 아이콘에서 15가지 유사점, 즉 "표시"를 나열했다.[52] 그는 이것들이 에데사의 상이 콘스탄티노플을 통해 예술가들에게 제공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53] 초기 중세 시대에 호데게트리아는 묘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54] 동방 정교회에서 이미지의 형태는 성경과 거의 동등한 지위를 가진 계시된 진실로 간주되었다.[54]

예수의 역사적 외모에 관해서, 사도 바울의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첫째 편지의 한 번역본에서, 바울은 1세기 고린토의 기독교인 남성들에게 긴 머리를 하지 말라고 권고한다.[55] 펠라기우스는 "바울은 남자들이 머리 모양에 대해 신경 쓰고 여자들이 교회에서 머리를 과시하는 것에 대해 불평했다. 이것은 그들에게 수치스러운 일일 뿐만 아니라 간음을 유발하는 것이었다."라고 언급했다.[56] 일부는 예수와/또는 바울이 나지르인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예수는 유대교를 실천했으므로 수염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3. 3. 지역적 특징

특정 지역의 전통은 때때로 지역적, 인종적 특징을 반영하는 다양한 예수 묘사를 유지해 왔으며, 이는 가톨릭과 정교회 묘사에서도 나타난다. 이집트 콥트 교회는 5세기에 분리되었으며, 콥트 미술과 일치하는 예수의 독특한 묘사를 가지고 있다. 콥트교에서 발전한 에티오피아 교회는 콥트 전통을 따르지만 예수와 모든 성경 인물을 에티오피아인의 외모로 묘사한다.
예수의 18세기 에티오피아 이미지
중국, 중앙아시아 등의 다른 전통에서도 예수는 현지 인구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유럽에서는 스페인, 독일 또는 초기 네덜란드 회화에서 예수 묘사에 나타나는 지역적 민족적 경향을 볼 수 있지만, 주변 인물은 거의 항상 더 강하게 특징지어진다. 예를 들어, 스웨덴의 브리짓이 보고한 환상 이후 성모 마리아는 금발로 자주 묘사되었지만, 그리스도의 머리카락은 밝은 갈색보다 더 창백한 경우는 거의 없다. 일부 중세 서부 묘사에서는 엠마오로 가는 길의 예수가 유대인 모자를 쓰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기도 한다.[79]

2001년, 텔레비전 시리즈 ''신의 아들''은 1세기 유대인 두개골을 사용하여 예수를 새로운 방식으로 묘사했다.[80] 리처드 니브는 법의 인류학을 사용하여 예수의 얼굴을 만들었는데, 넓은 얼굴과 큰 코를 가진 모습으로, 르네상스 미술에서의 전통적인 예수 묘사와는 달랐다.[81] 마크 굿에이커는 가장 초기의 유대인 사진을[82] 사용하여 예수의 피부색이 더 어둡고 거무스름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또한 예수가 짧고 곱슬머리에 짧게 다듬은 수염을 가졌을 것이라고 제안했다.[83] 이 연구는 예수의 피부가 올리브색에 더 가까웠을 것이며, 전형적인 갈릴리 유대인처럼 보였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81] 겟세마네에서 예수를 체포하는 사람들에게 유다가 그를 가리켜야 했다는 성경 기록은, 예수의 외모가 제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음을 시사한다.[83]
2001년에 제작된 CGI 모델은 예수의 피부색을 서양 미술에서의 전통적인 묘사보다 더 어둡고 올리브색 피부로 묘사했습니다.

3. 4. 현대의 묘사

특정 지역 전통은 때때로 지역적 인종적 특징을 반영하는 다양한 묘사를 유지해 왔으며, 이는 가톨릭과 정교회 묘사에서도 나타난다. 이집트 콥트 교회는 5세기에 분리되었으며, 콥트 미술과 일치하는 예수의 독특한 묘사를 가지고 있다. 또한 콥트교에서 발전한 에티오피아 교회는 콥트 전통을 따르지만 예수와 모든 성경 인물을 그 구성원들의 에티오피아인 외모로 묘사한다. 중국, 중앙아시아 등의 다른 전통에서는 일반적으로 예수의 외모를 현지 인구의 모습으로 묘사한다.

현대에 들어 이러한 변형이 더욱 흔해졌지만, 육체적 외모와 의상 모두에서 전통적인 묘사를 따르는 이미지가 여전히 지배적이다. 유럽에서는 스페인, 독일 또는 초기 네덜란드 회화에서 예수 묘사에 나타나는 지역적 민족적 경향을 볼 수 있지만, 주변 인물은 거의 항상 더 강하게 특징지어집니다.

일부 중세 서부 묘사에서는 엠마오로 가는 길 (누가복음 24:13–32)에서 예수가 유대인 모자를 쓰고 있는 것으로 묘사되었다.[79]

2001년, 텔레비전 시리즈 ''신의 아들''은 이스라엘의 선도적인 법의학 부서에서 얻은 1세기 유대인 두개골 3개 중 하나를 사용하여 예수를 새로운 방식으로 묘사했다.[80] 맨체스터 대학교 의학 미술 부서에서 은퇴한 의학 예술가인 리처드 니브가 법의 인류학을 사용하여 얼굴을 만들었다.[84] 니브가 제작한 얼굴은 예수가 넓은 얼굴과 큰 코를 가졌을 것이라고 제안했으며, 르네상스 미술에서의 전통적인 예수 묘사와 상당히 달랐다.[81] 예수의 피부색과 머리카락에 대한 추가 정보는 듀크 대학교의 신약학자이자 교수인 마크 굿에이커가 제공했다.[81]

굿에이커는 회당에서 가져온 3세기 이미지를 사용하여—가장 초기의 유대인 사진[82]—예수의 피부색이 전통적인 서양 이미지보다 더 어둡고 거무스름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그는 또한 예수가 짧고 곱슬머리에 짧게 다듬은 수염을 가졌을 것이라고 제안했다.[83] 비록 예수의 얼굴에 대한 완전한 추측이지만,[84] 이 연구의 결과는 예수의 피부가 흰색이나 검은색보다 올리브색에 더 가까웠을 것이며,[81] 전형적인 갈릴리 유대인처럼 보였을 것이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제시된 요점 중 하나는 성경에 예수의 제자 유다가 겟세마네에서 그를 체포하는 사람들에게 그를 가리켜야 했다는 기록이 있다는 것이다. 암시된 주장은 예수의 외모가 그의 제자들과 현저하게 달랐다면, 그를 비교적 쉽게 식별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점이다.[83]

4. 예술에서의 묘사

3세기경 성 베드로 대성전 아래 율리우스 묘의 모자이크에는 예수를 무적의 태양으로 묘사한 그림이 있다. 초기 8세기 비잔틴 동전에도 예수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으며, 비잔틴 성상 파괴 운동 이후 모든 동전에 예수가 등장했다. 9세기에는 복원된 동방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그림이, 10세기 중반에는 앵글로색슨 뉴 민스터 헌장, 윈체스터에 수염 없는 예수의 모습이 묘사되었다.

11세기 판토크라토르 예수는 후광이 십자가 형태로 되어 있으며, 중세 시대 전반에 걸쳐 사용되었다. 그는 화가의 문화와 비슷한 특징과 피부색을 가지고 묘사되는 것이 특징적이다. 성 소피아 대성당의 13세기 모자이크에는 예수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르가 묘사되어 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c. 1448-1450), 치마 다 코넬리아노 (1459–1517)의 예수 초상화, 피에트로 페루지노가 묘사한 십자가형 ''슬픔의 성모''(1482), 안드레아 만테냐의 ''고통받는 구세주로서의 그리스도''(c. 1488–1500) 등 다양한 화가들이 예수를 묘사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1541)에 등장하는 마리아와 그리스도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티치아노는 1558년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을 묘사했다. 로도비코 카라치는 1594년 예수의 변용에서 예수를 엘리야, 모세 그리고 세 명의 사도와 함께 묘사했다.

노엘 코이펠의 ''부활''(1700)은 예수를 공중 부양하는 묘사 기법을 사용했다. 프란체스코 트레비사니는 1723년 전형적인 세례 장면으로,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는 모습을 묘사했다.

4. 1. 회화

3세기경 성 베드로 대성전 아래에 있는 율리우스 묘의 모자이크에는 예수를 무적의 태양으로 묘사한 그림이 있다. 초기 8세기 비잔틴 동전에도 예수의 모습이 묘사되어 있으며, 비잔틴 성상 파괴 운동 이후 모든 동전에 예수가 등장했다. 9세기에는 복원된 동방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그림이, 10세기 중반에는 앵글로색슨 뉴 민스터 헌장, 윈체스터에 수염 없는 예수의 모습이 묘사되었다.

11세기 판토크라토르 예수는 후광이 십자가 형태로 되어 있으며, 중세 시대 전반에 걸쳐 사용되었다. 그는 화가의 문화와 비슷한 특징과 피부색을 가지고 묘사되는 것이 특징적이다. 성 소피아 대성당의 13세기 모자이크에는 예수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르가 묘사되어 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c. 1448-1450), 치마 다 코넬리아노 (1459–1517)의 예수 초상화, 피에트로 페루지노가 묘사한 십자가형 ''슬픔의 성모''(1482), 안드레아 만테냐의 ''고통받는 구세주로서의 그리스도''(c. 1488–1500) 등 다양한 화가들이 예수를 묘사했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1541)에 등장하는 마리아와 그리스도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티치아노는 1558년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을 묘사했다. 로도비코 카라치는 1594년 예수의 변용에서 예수를 엘리야, 모세 그리고 세 명의 사도와 함께 묘사했다.

노엘 코이펠의 ''부활''(1700)은 예수를 공중 부양하는 묘사 기법을 사용했다. 프란체스코 트레비사니는 1723년 전형적인 세례 장면으로,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는 모습을 묘사했다.

4. 2. 조각

엘살바도르 신의 구세주 기념비는 산살바도르 시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랜드마크이다. 이는 세상의 구세주로서 지구 위에 서 있는 예수의 변용을 상징한다.


예수 조각상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예수 조각상 목록을 참고하라.

4. 3. 기타 매체

3세기경 성 베드로 대성전 아래에 있는 율리우스 묘의 모자이크에는 예수를 무적의 태양으로 묘사한 그림이 있다. 초기 8세기 비잔틴 동전에는 예수의 모습이 묘사되었으며, 비잔틴 성상 파괴 운동 이후 모든 동전에 예수가 등장했다. 9세기에는 복원된 동방 교회의 예수 그리스도 그림이 있었다. 10세기 중반에는 앵글로색슨 뉴 민스터 헌장에 수염 없는 예수의 모습이 묘사되었다.

10세기경 코초 (중앙아시아 동부)에서 온 마니교 사원 배너에는 옥좌에 앉은 예수 (Yišōpal) 이미지가 재구성되어 있다. 11세기 판토크라토르 예수는 후광이 십자가 형태로 되어 있으며, 중세 시대 전반에 걸쳐 사용되었다. 그는 화가의 문화와 비슷한 특징과 피부색을 가지고 묘사되는 것이 특징적이다. "모든 자비의 그리스도" 동방 정교회 성상도 이 시기에 제작되었다. 13세기에는 마니교 부처 예수 그림이 등장하는데, 이는 예수를 마니교 예언자 Yišō로 묘사한 12세기 또는 13세기 중국 족자이다.

성 소피아 대성당에는 13세기 예수 그리스도 판토크라토르 모자이크가 있다. 15세기에는 베로니카의 수건을 기반으로 한 귀속 문장을 지닌 중세 기사로서의 예수의 특이한 이미지가 나타났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c. 1448-1450), 치마 다 코넬리아노 (1459–1517)의 예수 초상화, 피에트로 페루지노가 묘사한 십자가형과 ''슬픔의 성모''(1482) 등이 이 시기에 제작되었다. 안드레아 만테냐의 ''고통받는 구세주로서의 그리스도''(c. 1488–1500)도 있다.

16세기에는 네스토리우스파의 "예수의 십자가형"을 묘사한 ''네스토리우스 복음서''의 삽화가 제작되었다. 팔마 일 베키오의 그리스도의 머리 (16세기, 이탈리아)도 이 시기의 작품이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 등장하는 마리아와 그리스도 (1541)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티치아노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 (1558)도 이 시기에 그려졌다.

로도비코 카라치는 예수의 변용을 주제로 하여 엘리야, 모세 그리고 세 명의 사도와 함께 있는 예수를 묘사했다 (1594). 호세 데 리베라는 12세의 예수를 ''예수가 율법학자들 가운데 (어린 시절 성전에서 논쟁하며)'' (1630)라는 작품으로 표현했다. 노엘 코이펠의 ''부활''(1700)은 예수를 공중 부양하는 묘사 기법을 사용했다. 프란체스코 트레비사니는 전형적인 세례 장면으로,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처럼 내려오는 모습을 묘사했다(1723).

19세기 러시아에는 판토크라토르 성상이 제작되었다. 에티오피아에서는 전형적인 에티오피아의 특징을 가진 예수와 마리아의 전통적인 묘사가 이루어졌다. 엔리케 시모네는 ''예수의 머리'' (1890)를 그렸다. 예루살렘 성묘 교회의 카톨리콘 위에는 돔의 판토크라토르 모자이크가 있다.

20세기에는 에티오피아 알완 코덱스에 예수의 십자가형이 묘사되었다. 스웨덴 헤슬홀름의 lt=교회/Hässleholms kyrkasv에서는 화가 게오르그 한센 (1868-1932)이 그린 예수 그리스도 그림을 볼 수 있다. 세인트 존 애시필드의 스테인드 글라스에는 선한 목자로서의 예수 (1932)가 묘사되어 있다. 아이티의 전형적인 시골 풍경에서 예수 세례를 묘사한 벽화 (1951)는 포르토프랭스 성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볼 수 있다. 노트르담 대학교 헤스버그 도서관 측면에는 벽화 ''생명의 말씀'' (1964)이 있다. 필리핀 만달루용의 ''산투아리오 데 산 호세''에는 예수 묘사가 있다.

아이티의 전형적인 시골 풍경에서 예수 세례를 묘사한 벽화 (1951), 포르토프랭스 성 삼위일체 대성당, 포르토프랭스, 아이티


5. 한국의 관점

5. 1. 한국 기독교의 수용

5. 2. 한국 미술에서의 예수

5. 3. 남북 관계와 기독교

6. 더 보기

wikitext


  • David R. Cartlidge영어와 J.K. Elliott영어의 ''Art and the Christian Apocrypha'', Routledge, 2001, ISBN 0-415-23392-5, ISBN 978-0-415-23392-7, [http://books.google.co.uk/books?id=o0LBvOMYArYC&pg=PA240&dq=Dura+Europas+Christian&as_brr=3&ei=RZLkSebpF5KKNbePpZoN#PPA53,M1 Google books]
  • George Every영어의 ''Christian Mythology'', Hamlyn 1988 (1970 1st edn.) ISBN 0-600-342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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