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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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레네오는 2세기 소아시아 출신의 기독교 신학자로, 리옹의 두 번째 주교를 역임했다. 그는 영지주의를 반박하고, 구원사, 하나님의 통일성, 예수의 마지막 아담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신학을 제시했다. 특히, 《이단 반박》은 영지주의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성경의 정경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했다. 이레네오는 또한 부활절 논쟁에서 중재 역할을 수행했으며, 가톨릭 교회의 개념을 정립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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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레네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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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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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호 | 성인 교회 박사 |
이름 | 이레네오 |
다른 이름 | 리옹의 이레네오 |
사망 | (만 72세) |
출생지 | 스미르나, 아시아, 로마 제국 |
사망지 | 루그두눔, 갈리아 루그두넨시스, 로마 제국 |
기념일 | 6월 28일 (로마 가톨릭 교회, 정교회, 루터교, 성공회) 8월 23일 (동방 가톨릭, 동방 정교회 및 오리엔트 정교회) 성 십자가 현양 축일 후 넷째 주일 다음 월요일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Domar: the calendrical and liturgical cycle of the Armenian Apostolic Orthodox Church Armenian Orthodox Theological Research Institute, 2002, p. 513-14 |
숭배 | 라틴 가톨릭 교회 및 동방 가톨릭교회 동방 정교회 오리엔트 정교회 동방 아시리아 교회 루터교 성공회 |
성인 칭호 | 주교 순교자 리옹의 주교 교회 박사 |
수여 | 폴리카르포스 |
영향 받은 사상 | 삼위일체 |
주요 관심사 | 신정론 천년왕국설 |
주목할 만한 아이디어 | 이레네오의 신정론 속죄의 요약 이론 |
직책 | |
이전 | 포티누스 |
다음 | 제카리아스 |
교구 | 리옹 |
관할 구역 | 리옹 |
신학 정보 | |
시대 | 교부 시대 |
언어 | 그리스어 |
주요 저서 | 이단 논박 |
기타 정보 |
2. 생애
이레네오는 2세기 전반 소아시아의 스미르나(현재 터키의 이즈미르)에서 태어난 폴리카르포스의 제자로, 그리스인이었다. 정확한 출생년도는 120년에서 140년 사이로 추정된다. 그는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과 달리 성인이 되어 개종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독교 박해 기간 동안, 이레네오는 리옹 교회의 사제였다. 177년, 리옹의 성직자들은 몬타누스주의에 대한 편지와 함께 그를 교황 엘레우테리오에게 보냈다. 이레네오가 로마에 있는 동안 리옹에서 박해가 일어났고, 갈리아로 돌아온 그는 순교자 성 포티누스의 뒤를 이어 리옹 주교가 되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박해 이후 이어진 종교적 평화 기간 동안, 그는 목자로서의 의무와 선교사로서의 의무를 병행했다. 그의 저술은 대부분 영지주의에 반대하는 내용이었으며, 가장 유명한 저서는 ''이단 반박''(Adversus haereses)이다. 그는 론 계곡에서 마법사 마르쿠스의 추종자들이 가르치고 있다고 기록했다.
이레네오는 교황 빅토르 1세에게 사월십사일의 부활절 축제를 고수했던 소아시아의 기독교 공동체를 파문하지 않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의 사망 날짜는 2세기 말이나 3세기 초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는 성 요한 교회 아래에 묻혔으나, 1562년 위그노에 의해 교회가 파괴되었다.
2. 1. 출생 및 유년기
이레네오는 소아시아의 스미르나(오늘날 터키의 이즈미르)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다. 그의 모국어는 코이네 그리스어였으며, 저술 활동도 이 언어로 하였다.[4][5][6] 그는 자신의 저서 《이단반박》에서 어린 시절 폴리카르포스 주교에게 큰 영향을 받았다고 고백한다. 비록 전문적인 글쓰기 교육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그의 작품에 나타나는 수사학적 기교를 보면 고대 학교의 수사학 수업 이상의 교육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이레네오는 2세기 전반 소아시아 스미르나(현재 터키 이즈미르) 출신의 그리스인이었다. 정확한 생년은 120년에서 140년 사이로 추정된다. 그는 동시대의 많은 사람들과 달리 성인이 되어서 개종한 것이 아니라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2. 2. 리옹 주교
161년부터 180년까지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기독교 박해 기간 동안, 이레네오는 리옹 교회의 사제였다. 그 도시의 성직자들은 많은 수가 신앙 때문에 투옥되었는데, 177년에 몬타누스주의의 이단에 대한 편지를 가지고 교황 엘레우테리오에게 파견되었다. 이레네오가 로마에 있는 동안 리옹에서 박해가 일어났다. 갈리아로 돌아온 이레네오는 순교자 성 포티누스의 뒤를 이어 두 번째 리옹 주교가 되었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박해 이후 이어진 종교적 평화 기간 동안, 새로운 주교는 목자로서의 의무와 선교사로서의 의무를 병행했다(이에 대한 자료는 간략하고, 늦으며, 확실하지 않다).
2. 3. 사망
이레네오의 사망 날짜는 2세기 말이나 3세기 초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기록은 없다.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 일부에서 순교자로 여겨진다.[4][5][6] 그는 리옹의 성 요한 교회(현 성 이레네오 교회) 아래에 묻혔으나, 1562년 위그노에 의해 교회가 파괴되었다. 이레네오의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유물은 리옹의 여러 교회에 보관되어 있다. 다른 교회에서 나온 두 개의 두개골은 탄소 연대 측정 결과 중세 시대의 것으로 나타났지만, 리옹 대성당에 보관된 발꿈치뼈 조각은 정확한 시대의 것이다.[4][5][6]3. 저작
이레네오는 영지주의를 반박한 《이단 반박》, 《사도적 설교의 증명》 등의 저작을 남겼으며, 이는 초대교회 신학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교회 대분열 이후에도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양쪽 모두에서 중요한 신학자이자 교부로 칭송받았다. 로마 가톨릭교회와 정교회에서는 성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이레네오의 저작 중 현재 남아있는 가장 중요한 책은 《이단 반박》(''Adversus haereses'')과 《[https://www.ccel.org/ccel/irenaeus/demonstr.preaching_the_demonstration_of_the_apostolic_preaching.html 사도적 설교의 증명]》이다. 《사도적 설교의 증명》은 1904년에 아르메니아어 사본이 발견되었으며, 기독교로 갓 개종한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로 추정된다.
에블린 언더힐은 저서 《신비주의》에서 이레네오를 "가톨릭 신비주의자들이 하나님의 도성을 세우는 데 필요한 탑과 방벽을 세울 수 있게 해준 강력한 비계 시스템을 보존하는 데 기여한 사람들" 중 한 명으로 꼽았다.[10]
이레네오의 작품은 존 케블에 의해 1872년 교부 문고 시리즈의 일부로 처음 영어로 번역되었다.
3. 1. 이단 반박 (Adversus haereses)
이레네오가 저술한 가장 중요한 책은 ''이단 반박(Adversus haereses)''이다. 이 책은 영지주의를 반박하기 위해 쓰여졌으며, 초대교회 신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9]- 제1권에서는 발렌티누스주의 영지주의자들과 그들의 선조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그들이 마법사 시몬 마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말한다.
- 제2권에서는 발렌티누스주의가 교리적으로 아무런 장점이 없음을 논증한다.
- 제3권에서는 복음서에서 수집한 증거를 통해 영지주의 교리가 거짓임을 보인다.
- 제4권에서는 예수의 말씀을 통해 구약성경과 복음서의 통일성을 강조한다.
- 제5권에서는 더 많은 예수의 말씀과 사도 바울의 편지에 초점을 맞춘다.[11]
이레네오는 "교회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진리를 다른 곳에서 찾아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교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1945년 나그 함마디 도서관이 발견되기 전까지, ''이단 반박''은 영지주의에 대한 가장 잘 남아 있는 묘사였다.[9]
바울 서신에 대한 인용 및 암시 빈도는 다음과 같다.
서신 | 빈도 |
---|---|
로마서 | 84 |
고린도전서 | 102 |
고린도후서 | 18 |
갈라디아서 | 27 |
에페소서 | 37 |
빌립보서 | 13 |
골로새서 | 18 |
데살로니가전서 | 2 |
데살로니가후서 | 9 |
디모데전서 | 5 |
디모데후서 | 5 |
디도서 | 4 |
빌레몬서 | 0 |
3. 2. 사도적 설교의 증명
《Demonstration of the Apostolic Preaching영어》은 최근에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을 위한 지침서로 추정된다.[4] 1904년에 아르메니아어 사본이 발견되었다.[4] 이 책은 교회의 사람들에게 신앙의 요점과 근거를 가르치는 문서이다.[4]3. 3. 기타 저작
유세비우스는 이레네오의 다른 작품들(현재는 분실됨)을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4][5][6]- 《오그도아드에 관하여》
- 《분열에 관한 블라스투스에게 보낸 편지》
- 《지식에 관하여》
- 《군주제에 관하여》
- 《부활절에 관하여》
4. 신학
이레네오는 영지주의에 맞서 기독교 신학을 옹호하고 발전시킨 초기 교부였다. 그는 유스티노 순교자에게서 물려받은 로고스 신학을 사용했으며, 아들과 성령을 "하나님의 손"이라고 칭하고, 아들을 "로고스"라고도 불렀다.[28][29]
이레네오는 영지주의, 특히 발렌티누스 영지주의를 비판했다. 발렌티누스 영지주의는 물질 세계가 소피아의 타락으로 인해 생겨난 불완전한 것이며, 비밀 지식(그노시스)을 통해 플레로마로 들어감으로써 구원받는다고 주장했다. 이레네오는 이에 대해 참된 그노시스는 육체적 존재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라고 반박했다.[36]
이레네오는 하나님의 통일성과 선함을 강조했으며, 이를 구원 역사의 통일성과 연결시켰다. 그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그 이후로 계속 감독해 왔다고 주장하며, 인류가 미성숙한 상태로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성장하여 신적인 모습을 갖추도록 의도했다고 믿는다.[36]
이레네오는 예수의 출현을 구원 역사의 절정으로 보았다. 그는 그리스도를 새로운 아담으로 보고, 아담이 한 일을 체계적으로 "무효화"한다고 보았다. 우리의 구원이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으로 성육신(말씀이 육신이 됨)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생각하며,[36]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심으로써 인간이 타락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회복했다고 설명한다.
이레네오는 속죄를 그리스도의 행동으로 돌리는 바울의 주장을 인용한다. "죽음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14]
그리스도께서는 순종을 통해 아담의 불순종을 무효화하셨다. 이레네오는 수난을 그리스도의 순종의 절정으로 제시하며, 십자가 나무에서의 이 순종이 나무를 통해 일어난 불순종을 어떻게 무효화하는지 강조한다.
이레네오는 "죽음이 승리에 삼켜졌다"는 성경 구절[18]은 주님께서 반드시 첫 번째 인간, 즉 아담을 구원받은 자 중 하나로 부활시키실 것임을 암시한다고 보았다.
발렌티누스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을 세 계층으로 나누었다.
계층 | 설명 | 구원 여부 |
---|---|---|
물질적인 자 | 구원을 얻을 수 없음 | X |
정신적인 자 | 행위와 믿음으로 강해짐 (교회의 일부) | △ (중간 상태) |
영적인 자 | 물질적인 행위로 쇠퇴하거나 해를 입을 수 없음 | O (플레로마로 들어감) |
이들은 일반적인 인간은 구원을 얻지 못하고, 영적인 자들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했다.[29]
이레네오는 유다 복음서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이 복음서는 유다를 예수의 지시에 따라 행동한 긍정적인 인물로 묘사한다.[29]
4. 1. 성경관
이레네오는 공적인 신앙의 규칙을 강조했는데, 이는 주교들의 설교와 교회 관습을 통해 표현된 사도적 전통이라고 여겼다.[4] 그는 구약성경뿐만 아니라 현재 신약성경으로 알려진 대부분의 책들을 성경으로 분류했으며, 2세기에 번성하며 성경적 권위를 주장한 많은 작품들, 특히 영지주의자들이 쓴 많은 작품들을 제외했다. 이레네오는 사도 요한의 제자였다고 주장하는 폴리카르포스의 제자로서, 사도들과 동일한 해석학으로 성경을 해석한다고 믿었다.예수와의 이러한 연결은 이레네오에게 중요했는데, 그와 영지주의자 모두 성경에 근거하여 논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이레네오는 자신이 예수에게 권위를 부여받았고 영지주의자들은 그럴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성경 해석이 옳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사도신경과 유사한 "원형 신조"인 "신앙의 규칙"을 성경 해석이 옳다는 것을 주장하는 해석학적 열쇠로 사용했다.
이레네오는 요한, 루가, 마태오, 마르코의 네 복음서(《이단 반박(Adversus haereses)》 III 11,8에서 그의 네 개의 기둥 서술에 제시된 순서)가 정경적 성경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이레네오는 네 개의 정경 복음에 대한 주장의 가장 초기의 증거를 제공하며, 이는 마르키온이 편집한 루가 복음 버전에 대한 반작용일 수 있는데, 마르키온은 이 루가 복음이 유일하고 참된 복음이라고 주장했다.
이레네오는 또한 요한복음이 사도 요한에 의해 쓰여졌다고 말한 가장 초기의 인물이며, 루가복음이 바울의 동료인 루카에 의해 쓰여졌다고 말한 가장 초기의 인물이다.
학자들은 이레네오가 27권의 신약성경 중 21권에서 인용했다고 주장한다.
인용된 성경 |
---|
마태오 3:16 |
마르코 3:10 |
루가 3:14 |
요한 3:11 |
사도행전 3:14 |
로마서 3:16 |
고린토전서 1:3 |
고린토후서 3:7 |
갈라디아서 3:22 |
에페소서 5:2 |
필리피서 4:18 |
골로새서 1:3 |
데살로니가전서 5:6 |
데살로니가후서 5:25 |
디모테오전서 (서문) |
디모테오후서 3:14 |
디도서 3:3 |
베드로전서 4:9 |
요한1서 3:16 |
요한2서 1:16 |
요한계시록 4:20 |
그는 히브리서 2:30과 야고보서 4:16, 심지어 베드로후서 5:28을 언급했을 수 있지만, 빌레몬서를 인용하지는 않는다.
이레네오는 신약성경을 약 1,000번 인용했다. 그의 인용 중 약 3분의 1은 바울의 서신에 대한 것이다. 이레네오는 바울 서신으로 여겨지는 13개의 서신이 모두 바울 자신이 썼다고 여겼다.
4. 2. 사도적 권위
영지주의자들은 비밀 구전 전통을 주장했지만, 이레네오는 여러 도시의 주교들이 사도 시대부터 내려오는 구전 전통을 가지고 있으며, 이것이 성경 해석의 안전한 지침이라고 주장했다.[30] 특히 로마 가톨릭 교회를 끊임없이 이어져 내려온 권위의 사슬의 예로 언급했다.[28][29]이레네오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준으로 가톨릭(보편적) 교회를 정의했다.[30]
기준 | 설명 |
---|---|
지도자들의 권한 | 사도들이 가르친 교리와 동일한 교리를 가르치는 것에 기초한다. |
사용하는 성경 | 예언자들과 사도들에 의해 기록된 두 증언(구약성경과 신약성경)으로 구성된다. |
성경 해석 방법 | 초기 신조(사도신경의 전신)로 요약된 사도적 설교에 비추어 해석한다. |
이레네오는 어떤 교회에 가더라도 가르침은 동일하며, 다른 것을 가르치거나 전달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그는 "신앙은 항상 하나이며 동일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말할 수 있는 사람이든, 약간 더 이야기하는 사람이든, 거의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사람이든, 전통을 훼손하는 일은 없다"라고 강조했다.[32]
또한, 이레네오는 성경 정경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인물이었다. 그는 정경으로 간주해야 할 기준을 사도들이 가졌던 것으로 되돌려, 그것을 예수 자신의 말씀과 결정하는 것이라고 보았다.[29] 그는 "신약성경"[33]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이며,[34] 두 증언 중 하나는 구약성경을, 다른 하나는 신약성경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이레네오 시대에는 신약성경에 포함될 서신이 분명하게 정해지지 않았지만,[34] 그 서신이 신성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34] 사도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34]
성경 해석 방법은 신앙의 규칙으로 알려진, 세례를 받을 때의 신조(현재 사도신경의 전신)에 비추어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35] 이레네오가 반박한 영지주의는 사도신경이 가진 예수에 대한 신앙과 크게 달랐으며, 사도신경에 나타나는 기본적인 규칙에 따라 진리를 참조함으로써, 신앙자는 올바르게 성경을 이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35]
4. 3. 하나님의 통일성과 선함
이레네오 신학의 핵심은 하나님의 통일성과 선함이며, 이는 영지주의의 신론에 반대되는 것이었다. 유스티노 순교자로부터 물려받은 로고스 신학을 사용했다. 아들과 성령을 "하나님의 손"이라고 언급했지만, 아들을 "로고스"라고도 말했다.[28][29]4. 4. 구원사
이레네오는 하나님의 통일성을 강조하며, 이를 구원 역사의 통일성과 연결시킨다. 그는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고 그 이후로 계속 감독해 왔다고 주장한다. 이레네오는 인류가 미성숙한 상태로 창조되었으며, 하나님은 그의 피조물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성장하여 신적인 모습을 갖추도록 의도했다고 믿는다.[36]이레네오는 예수의 출현을 구원 역사의 절정으로 보았다. 그는 그리스도를 새로운 아담으로 보고, 아담이 한 일을 체계적으로 "무효화"한다고 보았다. 이레네오는 우리의 구원이 본질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으로 성육신(말씀이 육신이 됨)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36] 그는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심으로써 인간이 타락에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회복했다고 설명한다.
이레네오의 구원관은 바울 서신에서 발견되는 이해에 크게 의존한다. 이레네오는 먼저 예수의 죽음으로 제공되는 죄와 악에 대한 승리의 주제를 제기한다. 하나님의 개입은 아담의 타락과 사탄의 악으로부터 인류를 구원했다. 인간 본성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결합되었고, 따라서 인간 본성이 죄에 대한 승리를 얻게 되었다.
이레네오는 속죄를 그리스도의 행동으로 돌리는 바울의 주장을 인용한다. "죽음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14]
이레네오는 그리스도께서 아담의 행위를 되돌리신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순종을 통해 아담의 불순종을 무효화하셨다. 이레네오는 수난을 그리스도의 순종의 절정으로 제시하며, 십자가 나무에서의 이 순종이 나무를 통해 일어난 불순종을 어떻게 무효화하는지 강조한다.
이레네오는 "죽음이 승리에 삼켜졌다"는 성경 구절[18]은 주님께서 반드시 첫 번째 인간, 즉 아담을 구원받은 자 중 하나로 부활시키실 것임을 암시한다고 말한다. 이레네오에 따르면 아담의 구원을 부인하는 자들은 "영원히 생명에서 스스로를 배제하는 것"이다.
4. 5. 발렌티누스 영지주의 비판
이레네오는 발렌티누스의 영지주의를 주요 비판 대상으로 삼았다.[29] 영지주의는 물질 세계가 소피아의 타락으로 인한 완전성의 상실의 결과이며, 비밀 지식(그노시스)을 통해 플레로마로 들어감으로써 구원받는다고 주장했다. 이레네오는 이에 대해 참된 그노시스는 육체적 존재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이라고 반박했다.[36]발렌티누스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을 세 계층으로 나누었다.
계층 | 설명 | 구원 여부 |
---|---|---|
물질적인 자 | 구원을 얻을 수 없음 | X |
정신적인 자 | 행위와 믿음으로 강해짐 (교회의 일부) | △ (중간 상태) |
영적인 자 | 물질적인 행위로 쇠퇴하거나 해를 입을 수 없음 | O (플레로마로 들어감) |
이들은 일반적인 인간, 즉 믿음은 있지만 특별한 지식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구원을 얻지 못하고, 영적인 자들만이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했다.[29]
J.P. 아렌드젠은 발렌티누스적 인간 구원관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육적인 자들은 물질의 거칠음으로 되돌아가 불에 의해 소멸될 것이다. 정신적인 자들은 천국(플레로마)도 지옥(휠레)도 아닌 중간 상태로 들어갈 것이다. 순수한 영적인 자들은 몸(휠레)과 영혼(프쉬케)을 벗어 던진 채 플레로마로 들어갈 것이다."[29]
이러한 구원관에서 성육신의 목적은 영적인 자들을 그들의 물질적인 몸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이었다. 아들이 물질적인 몸을 취함으로써 구세주가 되어 영적인 자들이 그의 영적인 몸을 받을 수 있게 하여 플레로마로 들어가는 것을 돕는 것이다. 그러나, 말씀은 요단강에서 세례 시 구세주에게 강림하여 아들을 그의 부패한 몸과 영혼으로부터 해방시킨다. 이레네오는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는 것을 강조하고, 인류를 구원하는 데 있어 그리스도의 물질적 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구원론을 발전시켰다.[29]
이레네오는 유다 복음서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이 복음서는 유다를 예수의 지시에 따라 행동한 긍정적인 인물로 묘사한다.[29]
5. 가톨릭(보편적) 교회
이레네오는 영지주의와 논쟁하면서 가톨릭(보편적) 교회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의했다.[28]
이 기준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이다.[30]
번호 | 내용 |
---|---|
1 | 지도자들의 권한은 사도들이 가르친 교리와 동일한 교리를 가르치는 것에 기초한다. |
2 | (사용하는) 성경은 예언자들과 사도들에 의해 기록된 두 증언으로 구성되어 있다. |
3 | (사용하는) 성경은 환상적인 이야기나 우주의 신화가 아니라, 초기 신조로 요약된 사도적 설교에 비추어 해석된다. |
'''가톨릭(보편적) 교회의 정의 1번'''
이레네오는 이단 반박에서 어떤 교회에 가더라도 가르치는 것은 동일하며, 다른 것을 가르치거나 전달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이미 관찰했듯이, 이 설교와 이 신앙을 받은 교회는 전 세계에 흩어져 있지만, 마치 한 집을 점령하고 있는 것처럼, 정성껏 그것들을 보존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마치 자신이 단 하나의 영혼, 단 하나의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이것들을 믿고, 선언하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그녀가 단 하나의 입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완전히 조화롭게 전달합니다. 왜냐하면, 세계의 언어는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의 중요성은 하나이며,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독일에 세워진 교회는 어떤 다른 것을 믿거나 전달하지 않습니다. 스페인, 갈리아, 동쪽, 이집트, 리비아의 교회, 세계의 중앙 지역[31]에 설립된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이 창조한 태양은 하나이며,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진리의 설교도 도처에서 빛나며, 진리를 알기를 꺼리지 않는 모든 사람을 계몽합니다. 또한, 교회의 지배자 중 아무도, 그가 웅변술에서 매우 재능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것들과 다른 교리를 가르치지 않습니다(아무도 주님보다 위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반면에, 표현력이 부족한 사람이라도 전통에 상처를 입히는 일은 없습니다. 신앙은 항상 하나이며 동일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말할 수 있는 사람이든, 약간 더 이야기하는 사람이든, 거의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사람이든, 전통을 훼손하는 일은 없습니다."(IRENÆUS AGAINST HERESIES. book1 Chap. x.—Unity of the faith of the church throughout the whole world[32])
'''가톨릭(보편적) 교회의 정의 2번'''
이레네오는 성경 정경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었다. 이레네오는 정경으로 간주해야 할 기준을 사도들이 가졌던 것으로 되돌려, 그것을 예수 자신의 말씀과 결정하는 것이었다.[29] 그리고 이것이 정통파가 무엇인지 결정했다.[29]
이레네오는 현재 기독교가 인식하고 있는 것과 같은 의미로, "신약성경[33]"이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한 사람이다.[34] 구약 성경을 가리키는 증언과 신약 성경을 가리키는 증언, 이 두가지 증언이 존재한다. 이레네오스 시대에는 신약 성경에 포함될 서신은 분명하게 정해지지 않았다.[34] 다만, 그 서신이 신성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34] 그리고, 이 신약 성경은, 사도들과 밀접한 관계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34]
'''가톨릭(보편적) 교회의 정의 3번'''
성경을 해석하는 방법은, 세례를 받을 때의 신조에 비추어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다.[35] 이는 현재 사도신경이라고 부르는 것의 전신이다. 그러므로, "이 신조는 사도들이 항상 선언했던 형태로, 기독교의 정확한 요약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35]
이레네오스가 반박한 영지주의는 사도신경이 가진 예수에 대한 신앙과 크게 달랐으며, 사도신경에 나타나는 기본적인 규칙에 따라 진리를 참조함으로써, 신앙자는 올바르게 성경을 이해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35]
6. 부활절 논쟁
이레네오는 부활절을 언제 축하할 것인가에 대한 지역 간의 차이에서 시작된 부활절 논쟁에 참여했다. 십사일 논쟁에서 로마의 교황 빅토르 1세는 유대교 관습을 대체하고 기독교인이 과월절에 참여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부활절까지 단식하는 보편적인 관행을 강요하려 했다. 그러나 소아시아 교회를 이끌던 에페소스의 폴리크라테스는 과월절 축제의 옛 전통을 고수했고, 이에 빅토르 1세는 폴리크라테스와 그의 지지자들을 파문하려 했다. 하지만 이레네오와 다른 주교들은 이를 과도한 조치로 여겼다.[26]
이레네오는 소아시아의 교회에 대해서는 부활절을 일요일에 축하하도록 설득하는 한편,[26] 로마의 빅토르 1세의 강경한 자세에 대해 다른 주교들과 함께 비판했다.[26] 이러한 조정 역할을 수행한 것은 후에 에우세비우스에게 칭찬을 받았다.[27]
7. 한국 기독교에 미친 영향
이레네오는 이단 반박을 통해 영지주의를 비판하고, 구원사라는 신학을 처음으로 제시하여, 통일된 가톨릭 (보편적인) 교회가 출현하는 데 기여한 인물로 교회사학자들에게 인정받고 있다.[2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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