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우키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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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우키포스는 기원전 5세기 전반에 활동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로, 원자론을 발전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밀레투스, 엘레아, 압데라 등 여러 지역과 연관되었으며, 제자 데모크리토스와 함께 원자론을 정립했다. 레우키포스는 원자와 허공을 자연의 근본으로 보고, 모든 것이 원자들의 결합과 분해를 통해 생성된다고 주장했다. 그의 철학은 엘레아 학파의 일원론에 대한 반박으로, 결정론적 세계관과 지각, 영혼에 대한 독창적인 이론을 제시했다. 레우키포스의 저작은 데모크리토스의 저작과 혼동되어 정확히 파악하기 어려우며, 그의 실존 여부에 대한 논쟁도 존재한다. 그의 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와 에피쿠로스 등 후대 철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현대 원자론에도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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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우키포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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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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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정보 | |
이름 | 레우키포스 () |
로마자 표기 | Leucippus |
출생 | 기원전 5세기 전반 |
출생지 | 밀레토스 또는 압데라 |
사망 | 기원전 5세기 |
학문 | |
분야 | 형이상학, 천문학 |
학파 |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 |
주요 사상 | 원자론 |
영향 | 파르메니데스 엘레아의 제논 멜리소스 |
영향을 준 인물 | 데모크리토스 |
2. 생애
레우키포스의 삶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그는 기원전 5세기 전반에 태어났으며, 기원전 430년대에 원자론 철학을 발전시킨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날짜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철학자 소크라테스와 동시대 인물이었지만, 밀레투스 학파 철학자에서 시작된 자연 탐구의 전 소크라테스 전통을 이어갔기 때문에 전 소크라테스 철학자로 분류된다. 레우키포스는 전통적으로 엘레아의 제논의 제자로 알려져 있지만, 다양한 고대 기록에서는 사모스의 멜리수스, 파르메니데스, 피타고라스를 레우키포스의 스승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레우키포스의 제자는 데모크리토스를 제외하고는 확인된 바가 없다. 에피쿠로스는 레우키포스의 제자로 묘사되기도 하지만, 에피쿠로스가 레우키포스의 존재를 부인했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레우키포스는 밀레투스 학파의 자연 탐구 전통을 이어받은 전 소크라테스 철학자로, 엘레아의 제논의 제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사모스의 멜리수스, 파르메니데스, 피타고라스 등도 그의 스승으로 언급되기도 한다.[1] 그의 제자로는 데모크리토스가 있으며, 에피쿠로스는 레우키포스의 존재를 부정했다고 전해진다.
밀레투스, 엘레아, 압데라는 모두 레우키포스가 살았던 곳으로 제시되었지만, 이는 다른 철학자들과의 연관성 때문에 그의 고향으로 묘사된 것으로 보인다. 밀레투스는 레우키포스에게 영향을 준 이오니아 학파와 관련이 있었고, 엘레아는 레우키포스가 반박한 엘레아 학파 철학자들과 관련이 있었으며, 압데라는 그의 제자 데모크리토스의 고향이었다. 발터 크란츠와 존 버넷과 같은 20세기 고전학자들은 그가 이 세 도시 모두에서 살았다고 제안했다. 즉, 그는 밀레투스에서 태어나 엘레아에서 제논 밑에서 공부한 후 압데라에 정착했다는 것이다.
레우키포스는 밀레토스에서 태어나 데모크리토스의 스승으로서 원자론을 창시했다. 기원전 450년경에 엘레아로 가서 파르메니데스에게 배우고, 제논의 강의를 들은 듯하다. 그의 생애는 명확하지 않고, 그의 저작도 데모크리토스의 것과 혼합되어 있어서, 에피쿠로스는 그의 실존을 부정했지만, 아에티오스는 원문을 인용하여 학설을 소개하고 있다. 원자론의 기초는 그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데모크리토스의 것으로 알려진 『대우주 체계 Megas diakosmos』[1]와 『지성에 관하여 Peri nou』는 레우키포스의 저작인 듯하다.
3. 철학
레우키포스는 원자론을 창시한 철학자로, 모든 것이 미세하고 분할 불가능한 입자인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무 일도 무작위로 일어나지 않고, 모든 것은 이유와 필연성에 의해 일어난다"라는 결정론적 관점을 제시하며, 인과율의 원리를 언급했다.[1] 이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운동 생성 원리 및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의 충분한 이유의 원리와도 연결된다.[1] 그는 우주를 지배하는 지적인 힘의 존재를 부정했다.[1]
그의 저작으로는 《대세계론》과 《정신에 관하여》가 전해지지만,[1] 데모크리토스의 저작과 혼동되기도 한다.
3. 1. 원자론
레우키포스는 원자론 철학 학파를 발전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이 상호작용하고 결합하는 미세하고 분할 불가능한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제안했다.[1] 레우키포스가 상정한 원자는 무한히 많은 모양과 크기를 가지고 있지만, 각 원자의 크기와 모양은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다. 그들은 끊임없이 움직이는 상태에 있으며 서로 끊임없이 배열을 바꾼다.[1] 그는 그렇게 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무한한 종류의 원자가 있어야 한다고 추론했다.[1]
4세기경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레우키포스는 논리적으로 모든 것에 분할 불가능한 점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추론은 물체가 전적으로 분할 가능한 점으로 만들어진다면, 구조가 전혀 없고 만질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다.[1] 레우키포스는 그의 제자인 데모크리토스와 함께 원자론을 발전시켰다.[1] 레우키포스는 철학을 창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데모크리토스는 이를 상세히 설명하고 자연 현상에 적용한 것으로 이해된다.[1]
레우키포스의 원자론은 엘레아 학파 철학에 대한 직접적인 응답이었다. 엘레아 학파는 무(無), 즉 공간이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들은 공간이 없다면 운동도 없으며 모든 것은 하나여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1] 레우키포스는 그들의 논리에 동의했지만, 공간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했고, 따라서 운동과 다수성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1] 엘레아 학파처럼 레우키포스는 모든 것이 영원한 상태로 존재하며 어떤 것도 생성되거나 소멸될 수 없다고 믿었고, 이를 원자와 공간 모두에 적용했다.[1] 아리스토텔레스는 레우키포스가 원자는 공간에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원자와 공간은 서로 나란히 존재하는 두 개의 반대라고 말했다고 묘사했다.[1] 6세기 철학자 킬리키아의 심플리키우스도 이 아이디어에 대해 썼지만, 이를 데모크리토스에게 귀속시켰다.[1] 기독교 작가 락탄티우스에 따르면, 레우키포스는 원자를 햇빛에 보이는 부유 먼지 입자에 비유했다.[1]
레우키포스의 원자론은 엘레아 학파가 개발한 현실의 개념을 유지했지만, 그것을 세계의 물리적 설명에 적용했다.[1] 그는 기하학의 추상적인 점과 단위에서 벗어나, 엘레아의 제논이 만들어낸 운동의 역설에 대한 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제논은 불가분성이 운동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1] 레우키포스는 또한 나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한 엘레아 학파의 반론, 즉 두 물체 사이의 분리자는 또한 나뉠 수 있다는 것에 반박했다. 그는 공간은 존재를 가지지 않는 분리자이며, 따라서 나뉠 수 없다고 주장했다.[1] 레우키포스는 원자들이 서로 접촉할 수 있다고 묘사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원자들이 서로 가까이 있다는 의미로 이해했는데, 레우키포스는 모든 원자 사이에 공간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1]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는 열, 불, 그리고 영혼이 구형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는데, 이 모양이 서로를 지나쳐 다른 원자들이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살아있는 것들의 움직임을 이끄는 물리적인 영혼을 믿었으며, 호흡을 영혼 원자를 배출하고 새로운 원자를 흡수하는 과정으로 묘사했다.[1] 따라서 죽음은 마지막 호흡과 일치하는데, 영혼 원자가 더 이상 보충되지 않기 때문이다. 수면은 몸에 영혼 원자의 수가 줄어든 유사한 상태이다.[1]
레우키포스는 사고 이론과 지각 이론을 묘사한 최초의 철학자였다.[1] 그는 감각 입력을 외부 원자가 영혼의 원자와 접촉할 때 생성되는 원자 간의 전달로 묘사했다.[1] 레우키포스는 시각이 물체에서 방출되는 원자 필름에 의해 발생하며, 이 필름이 원자의 모양을 유지하고 보는 사람의 눈에 물체의 반사를 생성한다고 말했다. 그의 시각에 대한 묘사는 엠페도클레스의 영향을 받았는데, 엠페도클레스는 물체가 자신들의 필름을 방출한다는 유사한 개념을 형성했다.[1] 레우키포스는 색상과 질감과 같은 개념은 원자의 서로 다른 배열에 의해 생성되며, 정의와 지혜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은 영혼 원자의 배열을 통해 생성된다고 가정했다.[1]
"원자(아톰)"와 "허공(케논)"을 자연의 근원으로 상정한 것은 레우키포스가 처음이라고 한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레우키포스의 큰 공적은 "물체의 일반적인 성질과 감각적인 성질을 구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2]
3. 2. 엘레아 학파와 허공
레우키포스의 원자론은 엘레아 학파 철학에 대한 직접적인 응답이었다. 엘레아 학파는 무(無), 즉 공간이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들은 공간이 없다면 운동도 없으며 모든 것은 하나여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1] 레우키포스는 그들의 논리에 동의했지만, 공간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했고, 따라서 운동과 다수성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2] 엘레아 학파처럼 레우키포스는 모든 것이 영원한 상태로 존재하며 어떤 것도 생성되거나 소멸될 수 없다고 믿었고, 이를 원자와 공간 모두에 적용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레우키포스가 원자는 공간에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원자와 공간은 서로 나란히 존재하는 두 개의 반대라고 말했다고 묘사했다. 6세기 철학자 킬리키아의 심플리키우스도 이 아이디어에 대해 썼지만, 이를 데모크리토스에게 귀속시켰다.
레우키포스는 원자론을 통해 엘레아 학파가 개발한 현실의 개념을 유지하면서도, 그것을 세계의 물리적 설명에 적용했다. 그는 기하학의 추상적인 점과 단위에서 벗어나, 엘레아의 제논이 만들어낸 운동의 역설에 대한 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제논은 불가분성이 운동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레우키포스는 또한 나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한 엘레아 학파의 반론, 즉 두 물체 사이의 분리자는 또한 나뉠 수 있다는 것에 반박했다. 그는 공간은 존재를 가지지 않는 분리자이며, 따라서 나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레우키포스는 원자들이 서로 접촉할 수 있다고 묘사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원자들이 서로 가까이 있다는 의미로 이해했는데, 레우키포스는 모든 원자 사이에 공간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밀레토스에서 태어나 데모크리토스의 스승으로서 원자론을 창시했다. 기원전 450년경에 엘레아로 가서 파르메니데스에게 배우고, 제논의 강의를 들은 듯하다. 그의 저작은 데모크리토스의 것과 혼합되어 있다. 원자론의 기초는 그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데모크리토스의 것으로 알려진 『대우주 체계 Megas diakosmos』와 『지성에 관하여 Peri nou』는 레우키포스의 저작인 듯하다.
레우키포스는 "원자(아톰)"와 "허공(케논)"을 자연의 근원으로 상정하였다.
3. 3. 영혼과 지각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는 열, 불, 그리고 영혼이 구형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이 모양이 서로를 지나쳐 다른 원자들이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살아있는 것들의 움직임을 이끄는 물리적인 영혼을 믿었으며, 호흡을 영혼 원자를 배출하고 새로운 원자를 흡수하는 과정으로 묘사했다.[1] 따라서 죽음은 마지막 호흡과 일치하는데, 영혼 원자가 더 이상 보충되지 않기 때문이다. 수면은 몸에 영혼 원자의 수가 줄어든 유사한 상태이다.[2]
레우키포스는 사고 이론과 지각 이론을 묘사한 최초의 철학자였다. 그는 감각 입력을 외부 원자가 영혼의 원자와 접촉할 때 생성되는 원자 간의 전달로 묘사했다. 레우키포스는 시각이 물체에서 방출되는 원자 필름에 의해 발생하며, 이 필름이 원자의 모양을 유지하고 보는 사람의 눈에 물체의 반사를 생성한다고 말했다. 그의 시각에 대한 묘사는 엠페도클레스의 영향을 받았는데, 엠페도클레스는 물체가 자신들의 필름을 방출한다는 유사한 개념을 형성했다. 레우키포스는 색상과 질감과 같은 개념은 원자의 서로 다른 배열에 의해 생성되며, 정의와 지혜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은 영혼 원자의 배열을 통해 생성된다고 가정했다.
3. 4. 우주론
레우키포스는 원자론 철학 학파를 발전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은 상호작용하고 결합하는 미세하고 분할 불가능한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제안했다.[2] 레우키포스가 상정한 원자는 무한히 많은 모양과 크기를 가지고 있지만, 각 원자의 크기와 모양은 고정되어 변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상태에서 서로 배열을 바꾼다.[2] 그는 그렇게 되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무한한 종류의 원자가 있어야 한다고 추론했다.
4세기경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레우키포스는 논리적으로 모든 것에 분할 불가능한 점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추론은 물체가 전적으로 분할 가능한 점으로 만들어진다면, 구조가 전혀 없고 만질 수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레우키포스는 그의 제자인 데모크리토스와 함께 원자론을 발전시켰다. 레우키포스는 철학을 창시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데모크리토스는 이를 상세히 설명하고 자연 현상에 적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레우키포스는 모든 일이 결정론적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믿었는데, 원자의 위치와 운동은 그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충돌할 것을 보장하며, 인과율의 원리를 언급했다. 이것은 6세기경의 철학자 아낙시만드로스가 차이에 의해 운동이 생성된다고 주장한 것을 연상시켰으며, 나중에 17세기 철학자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에 의해 충분한 이유의 원리로 성문화되었다. 레우키포스는 우주를 지배하는 지적인 힘이 있다는 생각을 거부했다.
레우키포스의 원자론은 엘레아 학파 철학에 대한 직접적인 응답이었다. 엘레아 학파는 무(無), 즉 공간이 그 자체로 존재할 수 없다고 믿었다. 그들은 공간이 없다면 운동도 없으며 모든 것은 하나여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레우키포스는 그들의 논리에 동의했지만, 공간은 실제로 존재한다고 말했고, 따라서 운동과 다수성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엘레아 학파처럼 레우키포스는 모든 것이 영원한 상태로 존재하며 어떤 것도 생성되거나 소멸될 수 없다고 믿었고, 이를 원자와 공간 모두에 적용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레우키포스가 원자는 공간에 더해지는 것이 아니라, 원자와 공간은 서로 나란히 존재하는 두 개의 반대라고 말했다고 묘사했다. 6세기 철학자 킬리키아의 심플리키우스도 이 아이디어에 대해 썼지만, 이를 데모크리토스에게 귀속시켰다. 기독교 작가 락탄티우스에 따르면, 레우키포스는 원자를 햇빛에 보이는 부유 먼지 입자에 비유했다.
레우키포스의 원자론은 엘레아 학파가 개발한 현실의 개념을 유지했지만, 그것을 세계의 물리적 설명에 적용했다. 그는 기하학의 추상적인 점과 단위에서 벗어나, 엘레아의 제논이 만들어낸 운동의 역설에 대한 가능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제논은 불가분성이 운동을 불가능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레우키포스는 또한 나뉠 수 없다는 주장에 대한 엘레아 학파의 반론, 즉 두 물체 사이의 분리자는 또한 나뉠 수 있다는 것에 반박했다. 그는 공간은 존재를 가지지 않는 분리자이며, 따라서 나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레우키포스는 원자들이 서로 접촉할 수 있다고 묘사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를 원자들이 서로 가까이 있다는 의미로 이해했는데, 레우키포스는 모든 원자 사이에 공간이 존재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레우키포스는 허공이 무한히 뻗어 우주 전체로 확장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허공에 무한히 많은 수의 원자가 흩어져 있다고 말했다. 지구와 코스모스(태양, 달, 별, 밤하늘에서 보이는 모든 것을 포함)는 허공에 함께 존재한다.
레우키포스는 코스모스가 원자들의 큰 무리가 모여 소용돌이치면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들은 서로 주위를 이동하다가 "유사한 것끼리" 정렬되었다. 더 큰 원자들은 중앙에 모였고 더 작은 원자들은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더 작은 원자들은 코스모스의 천체가 되었다. 중앙에 있는 더 큰 원자들은 지구를 형성하는 막으로 뭉쳤다. 고대 작가들은 레우키포스가 막에 대해 묘사한 의미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아이티오스는 더 작은 원자들이 더 큰 원자를 둘러싸는 막의 일부라고 말했지만,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더 큰 원자 자체가 막을 형성하고 더 작은 원자들은 제외되었다고 말했다. 레우키포스는 또한 허공의 다른 부분에 멀리 떨어진 코스모스들이 있다고 믿었다. 이것은 그를 지구 외에 다른 세계의 존재를 제안한 최초의 철학자로 만들었지만, 일부 고대 족보학자들은 이러한 아이디어를 더 이전의 이오니아 철학자들에게 귀속시켰다.
다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처럼, 레우키포스는 지구가 코스모스의 중심에 있다고 믿었다. 그는 다른 천체들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으며, 달은 지구에 가장 가깝고 태양은 가장 멀리 있다고 말했다. 그는 별들이 가장 빠르게 궤도를 돈다고 묘사했다. 처음에는 "습하고 진흙투성이"였지만, 별들은 마르고 불타올랐다.
레우키포스는 지구가 평평하다는 이오니아 철학자들의 생각을 받아들였다. 아이티오스에 따르면, 레우키포스는 지구를 평평한 표면과 어느 정도의 깊이를 가진 "북 모양"으로 생각했다. 그는 평평한 지구가 수평축에서 기울어져 남쪽이 북쪽보다 낮아서 북쪽 지역이 남쪽 지역보다 더 춥고, 북쪽의 차가운 압축 공기가 남쪽의 따뜻하고 희박한 공기보다 지구의 무게를 더 잘 지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티오스는 또한 레우키포스가 천둥에 대한 설명을 이야기한다: 그것은 구름 속에서 불이 압축된 다음 터져서 발생한다.
많은 초기 철학자들은 지구상의 물체가 아래로 떨어지는 반면 천체는 곡선 궤도로 움직인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했다. 이것은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천체를 구성하는 비지구 물질을 믿게 만들었다. 코스모스 모델을 통해 레우키포스는 이러한 개체들이 동일한 물질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다르게 움직이는지 정당화할 수 있었다. 레우키포스는 운동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지 않았고,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을 받았다. 레우키포스가 소용돌이가 우연히 발생하는 것으로 간주했는지 아니면 결정론적인 결과로 간주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레우키포스는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이처럼 "원자(아톰)"와 "허공(케논)"을 자연의 근원으로 상정한 것은 레우키포스가 처음이라고 한다. 독일의 철학자 헤겔은 레우키포스의 큰 공적은 "물체의 일반적인 성질과 감각적인 성질을 구별한 것"이라고 생각했다.[2]
4. 저작
- Μέγας διάκοσμος|Megas Diakosmos|메가스 디아코스모스grc; 번역: 《대세계론》 또는 《대우주론》
- Περί Νού|Peri Nou|페리 누grc; 번역: 《정신에 관하여》 - 이 저작에는 레우키포스가 쓴 유일하게 남아있는 단편이 포함되어 있다. "οὐδὲν χρῆμα μάτην γίνεται, ἀλλὰ πάντα ἐκ λόγου τε καὶ ὑπ’ ἀνάγκης"|ouden chrema maten ginetai, alla panta ek logou te kai hyp anankes|어떤 일도 우연히 일어나는 것은 없으며, 모든 일은 이유와 필연성에 의해 일어난다."grc
밀레토스에서 태어나 데모크리토스의 스승으로서 원자론을 창시했다. 기원전 450년경 엘레아로 가서 파르메니데스에게 배우고, 제논의 강의를 들은 듯하다. 그의 생애는 명확하지 않고, 그의 저작도 데모크리토스의 것과 섞여 있어서, 에피쿠로스는 그의 실존을 부정했지만, 아에티오스는 원문을 인용하여 학설을 소개하고 있다. 원자론의 기초는 그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데모크리토스의 것으로 알려진 《대우주 체계》와 《지성에 관하여》는 레우키포스의 저작인 듯하다.
5. 유산
레우키포스는 원자론 철학 학파를 발전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이 상호작용하고 결합하는 미세하고 분할 불가능한 입자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제안했다. Atom영어이라 불리는 이 원자들은 무한히 많은 모양과 크기를 가지고 있지만, 각 원자의 크기와 모양은 고정되어 변하지 않으며 끊임없이 움직이며 서로 배열을 바꾼다. 그는 무한한 종류의 원자가 있어야 한다고 추론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레우키포스는 모든 것에 분할 불가능한 점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물체가 전적으로 분할 가능한 점으로 만들어진다면 구조가 없고 만질 수 없을 것이라는 추론이었다. 레우키포스는 제자인 데모크리토스와 함께 원자론을 발전시켰다. 레우키포스는 철학을 창시했고, 데모크리토스는 이를 상세히 설명하고 자연 현상에 적용한 것으로 이해된다.
레우키포스에게 귀속되는 두 작품은 《대세계론》과 《정신에 관하여》이다. 전자는 원래 《세계론》이라는 제목이었을 수 있으며, 데모크리토스의 《소세계론》과의 혼동을 피하기 위해 변경되었을 수 있다. 레우키포스의 《대세계론》은 때때로 데모크리토스에게 귀속되기도 했다. 레우키포스에게 귀속되는 현존하는 문학 단편은 《정신에 관하여》에서 가져온 것으로, "아무 일도 무작위로 일어나지 않고, 모든 것은 이유와 필연성에 의해 일어난다"이다. 그는 모든 일이 결정론적으로 일어나야 한다고 믿었고, 인과율의 원리를 언급했다. 이는 아낙시만드로스의 운동 생성 주장과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의 충분한 이유의 원리와 연관된다. 레우키포스는 우주를 지배하는 지적인 힘이 있다는 생각을 거부했다.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는 열, 불, 영혼이 구형의 원자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이 모양이 서로를 지나쳐 다른 원자들이 더 효율적으로 움직이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살아있는 것들의 움직임을 이끄는 물리적인 영혼을 믿었으며, 호흡을 영혼 원자를 배출하고 새로운 원자를 흡수하는 과정으로 묘사했다. 따라서 죽음은 마지막 호흡과 일치하는데, 영혼 원자가 더 이상 보충되지 않기 때문이다. 수면은 몸에 영혼 원자의 수가 줄어든 유사한 상태이다.
레우키포스는 사고 이론과 지각 이론을 묘사한 최초의 철학자였다. 그는 감각 입력을 외부 원자가 영혼의 원자와 접촉할 때 생성되는 원자 간의 전달로 묘사했다. 시각은 물체에서 방출되는 원자 필름에 의해 발생하며, 이 필름이 원자의 모양을 유지하고 보는 사람의 눈에 물체의 반사를 생성한다고 말했다. 그의 시각에 대한 묘사는 엠페도클레스의 영향을 받았다. 색상과 질감 같은 개념은 원자의 서로 다른 배열에 의해 생성되며, 정의와 지혜와 같은 추상적인 개념은 영혼 원자의 배열을 통해 생성된다고 가정했다.
레우키포스는 허공이 무한히 뻗어 우주 전체로 확장된다고 말했다. 또한 허공에 무한히 많은 수의 원자가 흩어져 있다고 말했다. 지구와 코스모스(태양, 달, 별, 밤하늘에서 보이는 모든 것)는 허공에 함께 존재한다.
레우키포스는 코스모스가 원자들의 큰 무리가 모여 소용돌이치면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들은 서로 주위를 이동하다가 "유사한 것끼리" 정렬되었다. 더 큰 원자들은 중앙에 모였고 더 작은 원자들은 가장자리로 밀려났다. 더 작은 원자들은 코스모스의 천체가 되었다. 중앙에 있는 더 큰 원자들은 지구를 형성하는 막으로 뭉쳤다. 고대 작가들은 레우키포스가 막을 어떻게 묘사했는지에 대해 의견이 일치하지 않았다. 아이티오스는 더 작은 원자들이 더 큰 원자를 둘러싸는 막의 일부라고 말했지만,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는 더 큰 원자 자체가 막을 형성하고 더 작은 원자들은 제외되었다고 말했다. 레우키포스는 또한 허공의 다른 부분에 멀리 떨어진 코스모스들이 있다고 믿었다. 이는 그를 지구 외 다른 세계의 존재를 제안한 최초의 철학자로 만들었지만, 일부는 이러한 아이디어를 이전 이오니아 철학자들에게 귀속시켰다.
다른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처럼, 레우키포스는 지구가 코스모스의 중심에 있다고 믿었다. 다른 천체들이 지구 주위를 돌고 있으며, 달은 지구에 가장 가깝고 태양은 가장 멀리 있다고 말했다. 별들이 가장 빠르게 궤도를 돈다고 묘사했다. 처음에는 "습하고 진흙투성이"였지만, 별들은 마르고 불타올랐다.
레우키포스는 지구가 평평하다는 이오니아 철학자들의 생각을 받아들였다. 아이티오스에 따르면, 지구를 평평한 표면과 어느 정도의 깊이를 가진 "북 모양"으로 생각했다. 평평한 지구가 수평축에서 기울어져 남쪽이 북쪽보다 낮아서 북쪽 지역이 더 춥고, 북쪽의 차가운 압축 공기가 남쪽의 따뜻하고 희박한 공기보다 지구의 무게를 더 잘 지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티오스는 또한 레우키포스의 천둥에 대한 설명을 이야기한다. 구름 속에서 불이 압축된 다음 터져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많은 초기 철학자들은 지구상의 물체가 아래로 떨어지는 반면 천체는 곡선 궤도로 움직인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했다. 이는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천체를 구성하는 비지구 물질을 믿게 만들었다. 코스모스 모델을 통해 레우키포스는 이러한 개체들이 동일한 물질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왜 다르게 움직이는지 정당화할 수 있었다. 레우키포스는 운동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제시하지 않았고, 이에 대해 아리스토텔레스의 비판을 받았다. 레우키포스가 소용돌이가 우연히 발생하는 것으로 간주했는지 아니면 결정론적인 결과로 간주했는지는 불분명하다.
레우키포스가 원자론 발전에 기여한 역할에 대한 현대적 이해는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테오프라스토스의 저술에서 비롯된다. 기원전 4세기의 아리스토텔레스의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의 철학 기록은 이 주제에 관한 가장 오래된 현존 자료이지만, 누가 어떤 원자론적 아이디어를 개발했는지는 구분하지 않았다. 아에티우스도 레우키포스에 대해 글을 썼지만, 이는 레우키포스 시대보다 훨씬 후대였으며 이전 저술에서 파생된 것이었다. 일부 후대의 철학사에서는 레우키포스를 완전히 생략하기도 했다. 고대 시대부터 레우키포스는 데모크리토스에 비해 잊혀졌고, 원자론적 사상의 가장 초창기 기록부터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의 생각을 구분하기보다는 집합적으로 고려하는 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레우키포스와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 철학은 특히 아리스토텔레스와 에피쿠로스의 저술에서 수 세기 동안 그리스 철학에 영향을 미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원자론을 비판했다. 돌과 불이 모두 같은 물질로 만들어졌다면 왜 돌은 떨어지고 불은 올라가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에 따르면, 아폴로니아의 디오게네스의 공백에 대한 해석은 레우키포스에게서 영감을 받았을 수 있다. 플라톤은 대화편 ''티마이오스''에서 레우키포스와 유사한 우주론적 아이디어를 탐구했다.
16세기와 17세기에 고대 원자론이 부활했는데, 특히 피에르 가상디(1592–1655)와 로버트 보일(1627–1691)과 같은 기계 철학의 지지자들에 의해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일과 같은 실험 화학자들은 실제로는 중세 연금술에서 발전한 입자설의 전통에 의존했는데, 이는 궁극적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기상학 IV''와 같은 저작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8세기 내내 화학자들은 철학적 원자론과 독립적으로 활동했으며, 존 돌턴(1766–1844)이 화학 실험에 뿌리를 둔 원자론 형태를 제안했을 때 비로소 변화했다.
레우키포스의 아이디어는 일반적으로 원자 개념에 대한 중요한 역사적 선례를 형성하지만, 현대 원자론과는 피상적인 유사성만을 지닌다. 레우키포스의 철학은 ''선험''적 증거에 기반한 추측이었지만, 현대 원자론은 과학적 방법을 통해 발견된 경험적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다. 레우키포스의 원자론과 현대 원자론의 주요 실질적 차이점은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 및 기본 힘과 같은 비가시적 현상의 도입이다. 레우키포스의 순수한 물질적 원자와 달리, 현대 원자론은 기본 힘이 서브 원자 입자를 원자로 결합하고, 원자를 분자로 연결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20세기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플라톤의 이데아론이 레우키포스의 원자 개념보다 20세기 물리학의 이해에 더 가깝다고 주장하며, 현대 원자는 레우키포스의 개별적 물질 단위보다 비가시적인 플라톤적 이데아와 더 유사하다고 말했다.
5. 1. 실존 여부 논쟁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우스에 따르면, 에피쿠로스는 레우키포스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광범위한 철학적 논쟁을 촉발시켰다.[1] 대부분의 현대 철학자들은 레우키포스가 존재했다고 동의하지만, 그의 저작이 데모크리토스의 저작과 의미 있게 구별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다. 2008년, 철학자 다니엘 그레이엄은 레우키포스의 역사성에 대한 중요한 연구가 20세기 초 이후로 나오지 않았다고 쓰면서 "최근의 학문은 가능한 한 이 질문을 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주장했다.레우키포스가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그가 구두로만 가르쳤거나, 그가 저술한 모든 저작이 출판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20세기 고전학자 존 버넷은 에피쿠로스의 주장에 대한 다른 해석을 제시했는데, 에피쿠로스는 레우키포스가 문자 그대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철학자로서 논의할 가치가 없다고 말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은 에피쿠로스가 윤리학을 철학의 기초로 여겼고 레우키포스는 그 주제에 대한 가르침이 없었다는 것이다. 레우키포스의 존재에 반대하는 학자들 사이에서는 레우키포스는 데모크리토스의 가명이었거나, 대화의 등장인물이었을 수도 있다는 등의 다른 아이디어가 제안되었다. 레우키포스의 존재를 부정한 현대 학자들로는 에르빈 로데, 파울 나토르프, 폴 타네리 등이 있다.
레우키포스의 존재는 19세기 독일 철학에서 중요한 문제였으며, 로데, 나토르프, 그리고 헤르만 알렉산더 디엘스 사이의 논쟁을 촉발시켰다. 로데는 에피쿠로스 시대에도 레우키포스의 존재에 대한 증거가 없었으며,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레우키포스와 같은 알려지지 않은 인물에게 귀속시킬 이유가 없다고 믿었고, 테오프라스토스의 설명을 거부했다. 나토르프 역시 아폴로니아의 디오게네스가 레우키포스에 앞선다는 것을 부인했다. 디엘스는 테오프라스토스의 설명을 옹호하며 로데와 나토르프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 이 문제는 독일어로 die Leukipp-fragede (die Leukipp-frage|레우키포스 문제de)라는 자체적인 이름을 얻을 만큼 중요했다.
밀레토스에서 태어나 데모크리토스의 스승으로서 원자론을 창시했다. 기원전 450년경에 엘레아로 가서 파르메니데스에게 배우고, 제논의 강의를 들은 듯하다. 그의 생애는 명확하지 않고, 그의 저작도 데모크리토스의 것과 혼합되어 있어서, 에피쿠로스는 그의 실존을 부정했지만, 아에티오스는 원문을 인용하여 학설을 소개하고 있다. 원자론의 기초는 그에 의해 만들어졌으며, 데모크리토스의 것으로 알려진 『대우주 체계 Megas diakosmos』[1]와 『지성에 관하여 Peri nou』는 레우키포스의 저작인 듯하다.
참조
[1]
서적
すごい物理学講義
河出文庫
[2]
서적
哲学史講義 Ⅰ
河出文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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