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법률문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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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법률문화상은 법률문화 발전에 기여한 인물에게 수여되는 상으로, 1969년부터 매년 시상하고 있다. 역대 수상자로는 상법학자 박원선, 변호사 이태영, 헌법재판소장 조규광, 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 박춘호,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정찬형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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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법률문화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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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법률문화상 | |
![]() | |
정보 | |
주최 | 법원 |
분야 | 법률문화 |
시상 목적 | 법률문화 발전 공헌 |
시상 대상 | 개인 및 단체 |
시상 횟수 | 매년 1회 |
첫 시상 | 2010년 |
2. 역대 수상자
- 1969년: 상사법 분야에서 연구, 저술, 교육에 대한 업적을 평가받았으며 특히 《부보상》, 《객주》, 《수표어음법》을 저술한 상법학자 '''박원선'''[3]
- 1970년: 서울형사지방법원 형사2과장 '''고일석'''
- 1971년: 1969년 펴낸 《혼인법연구》 등 논문을 통해 신분 관계법 연구에 업적을 쌓았던 가족법학자 '''김주수'''[4]
- 1972년: 1956년 8월 가정법률상담소를 설립한 이래 16년간 무료로 가정법률상담을 하고 여성인권옹호, 한국이혼제도연구 등을 저술한 변호사, 여성운동가 '''이태영'''[5]
- 1973년: 1950년부터 1964년 11월까지 서울지검 검사, 국무총리 비서관, 전주지검 차장검사, 서울지검 부장검사 등으로 재직하다 퇴직하여 변호사를 하면서《백만인의 법률상담》,《교육자의 법률》,《주석 형사소송법》,《서식 형사소송법》,《수사기술》의 저술과 《검사동일체의 원칙》 등 100여편의 논문을 발표한 변호사·법률문화연구회장 '''이용훈'''[6]
- 1974년: 현직 법관으로 있으면서 국제대학, 서울신학대학 등에서 강의하며 《판례실무 민사소송법》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하고 기독교 조회 간사로서 수감자들을 위해 헌신한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 '''김상원'''[7]
- 197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김증한'''
- 1976년: 변호사 '''김용진'''
- 1977년: 1975년 건국대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조세법 연구>라는 책을 저술해 조세법의 발전과 비교연구에 기여한 대검찰청 특수부 4과장 '''이종남'''[8]
- 1978년: 변호사 '''김종수'''· 변호사 '''이재성'''
- 1979년: 경북대학교 총장 '''서돈각'''·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김진우 (1932년)'''
- 1980년: 1956년 이후 건국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중앙대학교, 연세대학교 등에서 법학 교수를 하면서 상법 분야에 많은 저서와 논문, 번역물을 펴내고 1979년 2월 이래 한국상사법학회 회장으로서 법률문화의 보급과 창달에 큰 업적을 쌓은 연세대학교 교수, 한국상사법학회 회장 '''손주찬'''[9]
- 1981년: 연세대학교 교수 '''정영석'''은 형법 연구와 학생 지도 및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연세대학교 산하 법률구조상담소를 운영하는 등 사회봉사에 공헌하였다.[10]
- 1982년: 1955년부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를 하면서 현재 한국노동법학회장, 국제법률가협회 이사장, 한국법학원 부원장으로 활약하며 노사문제에 특히 관심을 갖고 한국의 노동법학을 개척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김치선'''[11]
- 1983년: 청주대학교 교수 '''김현태'''·변호사 '''김도창'''
- 1984년: 1935년 평양지방법원 검사국 검사로 출발하여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역임한 변호사 '''최대교'''·1943년 광주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1961년 대법원 판사를 역임한 변호사 '''방순원'''[12]
- 1985년: 서울대학교 교수 '''김기두'''와 법률구조협의회 위원장으로 인권옹호에 기여한 변호사 '''김선'''이 수상하였다.[13] 두 사람 모두 후진양성과 법학 연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 1986년: 변호사 이홍규·변호사 강안희·서울대학교 교수 박병호[14]
- 1987년: 서울대학교 교수 '''곽윤직'''
- 1988년: 변호사 '''김정규'''
- 1989년: 대법관 '''박우동'''
- 1990년: 변호사 '''최광률'''
- 1991년: 40년간 행정법 연구저서와 논문을 발표한 고려대학교 교수 '''윤세창'''[15]
- 1992년: 서울대학교 교수 '''김철수 (1933년)'''[16]는 헌법학자로서 헌법상에 보장된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고 구현하는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 1993년: 60여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사법제도의 개혁과 각종 법률의 제·개정을 위해 활발한 연구활동을 해온 변호사, 한국법학원 원장 '''문인구'''가 1993년 제25회 한국법률문화상을 수상하였다.[17]
- 1994년: 법조에 몸을 담은 1950년부터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에 힘쓴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장 '''조규광'''[18]
- 1995년: 기세훈 변호사는 국선변호를 통해 형사 피고인의 인권옹호에 앞장섰으며, 무료 변론 및 무료 법률 상담 등 서민의 권리 구제에 기여하였다.[19]
- 1996년: 변호사 '''계창업'''
- 1997년: 법원도서관장 '''강봉수 (법조인)'''
- 1998년: 서울대학교 교수 '''송상현 (1941년)'''[20]
- 1999년: 제16차 아시아, 태평양지역법률가협회(LAWASIA) 총회 관계로 한 해 쉬었다.
- 2000년: 변호사 '''이시윤'''
- 2001년: 고려대학교 교수 '''이기수 (1945년)'''
- 2002년: 국민대학교 총장 '''정성진 (1940년)'''
- 2003년: 권인숙 성고문 재정신청 사건과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 1980년대 주요 공안사건 변론을 맡는 등 인권변호사로서 인권옹호에 앞장선 변호사 '''유현석'''[21]
- 2004년: 김교창 변호사는 한국법학원 이사, 대한변협이사, 상사중재위원, 대한공증협회장 등을 역임하며 법조 발전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했다. 특히 '선하증권에 관한 최신 판례연구' 및 '회사법의 제문제' 등의 논문을 발표하고 학술활동을 통해 상사법 분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22]
- 2005년: 1983년 9월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겸 사법연수원 교수를 거쳐 변호사로 개업한 이후 서울변호사회 소속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법조후진 양성을 위한 지도교육을 비롯하여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법률 제·개정을 위한 조사연구 및 입법건의 등에 헌신적으로 진력하여 후배 법조인들에게 모범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참다운 변호사상을 구현하고 국민생활의 편의도모 및 인권신장, 법률문화 발전에 앞장서는 등 법조계의 발전에 기여하였고 서울변호사회 법제위원장을 할 때 매주 판례연구발표회를 주도하는가 하면 ‘변호사’등의 법률실무연구지에 많은 논문발표와 각종 법률안에 대한 의견을 마련, 제시한 '''김광년''' 변호사가 제36회 수상자로 선정되었다.[23]
- 2006년: '''박춘호'''(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가 선정되었다. 대한변호사협회 독도특위 변호사는 "1999년 1월 발효된 새 한일어업협정 체결 때 외무부 자문위원 대표로 활동하면서 "독도를 한국과 일본의 중간수역에 두도록 조언하고, 배타적 경제수역(EEZ) 협정과 관련해서도 독도 기점이 아닌 울릉도 기점을 주장했으며,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무시하고 대응하지 않는 게 유리하다는 주장을 폄으로써 일본이 독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며 수상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24]
- 2007년: 30년간 법관으로 재직하면서 형사소송법에 기소 전 보석제도를 신설해 부당한 인신구속을 막고 형사 절차에 있어서 국민의 기본권 신장에 기여한 변호사 '''권성'''이 2007년 제38회 수상자로 선정되었다.[25]
- 2008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이재상'''은 법조 실무계와 학계의 교류, 법률문화 발전, 법조후진 양성 등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26]
- 2009년: 건전한 로펌문화의 확립을 통해 한국의 법률문화발전과 후배 양성에 이바지한 변호사 '''이태희'''[27]
- 2010년: 국민대학교 교수 '''장명봉'''은 40년 간 북한법 연구에 몰두하여 법학연구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28]
- 2011년: 변호사 '''김용준'''
- 2012년: 변호사 김이조는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역대 법조인들의 전기 자료를 수집하여 1997년 '법조비화 100선', 1998년 '잊을 수 없는 법조인', 1999년 '한국법조인 비전', '33인의 법조인상', 2001년 '한국의 법조인' 1~2권, 2002년 '법조 50년 야사(上·下)', 2004년 '법조의 길 법조인의 삶', 2005년 '법조약전', '사건으로 본 법조 100년' 등의 저서를 발간하였다.[29]
- 2013년: 2008년 ICTY 부소장으로 선출되어 국위를 선양했고 ICTY에 대한민국 판사의 펠로 근무 제도를 도입하는 등 대한민국 법조인의 국제무대 진출에 기여한 ICTY 재판관 '''권오곤'''[30]
- 2014년: 최봉태 (변호사)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헌법소원을 대리하여 2011년 국가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이끌어 냈다.[31] 또한, 2012년에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첫 대법원 판결을 받아냈다.[31]
- 2015년: '''조무제''' (前 대법관): 모교에서 후학을 지도하며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사재를 털어 1억여원의 장학금을 남몰래 기부하는 등 '청빈 법조인'의 대명사로 존경받았다.
- 2016년: 한스 켈젠에 대한 연구 등 법실증주의에 따른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통해 한국적 현실에서 독자적 이론을 찾고자 했던 심헌섭이 2016년 제47회 한국법률문화상을 수상했다.[32]
- 2017년: 소순무 변호사는 조세법 분야의 권위자로,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 국세청 법령해석심의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33]
- 2018년: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인 '''정찬형'''은 활발한 연구활동과 올바른 법 개정 및 집행을 위한 각종 활동을 통해 한국 법률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수상하였다.[34]
2. 1. 1960년대
1969년 제1회는 상사법 분야에서 연구, 저술, 교육에 대한 업적을 평가받았으며 특히 《부보상》, 《객주》, 《수표어음법》을 저술한 상법학자 '''박원선'''이 수상하였다.[3]2. 1. 1. 1969년
상사법 분야에서 연구, 저술, 교육에 대한 업적을 평가받았으며 특히 《부보상》, 《객주》, 《수표어음법》을 저술한 상법학자 '''박원선'''[3]2. 2. 1970년대
- 1970년 제2회 수상자는 서울형사지방법원 형사2과장 '''고일석'''이다.
- 1971년 제3회 수상자는 1969년 펴낸 《혼인법연구》 등 논문을 통해 신분 관계법 연구에 업적을 쌓았던 가족법학자 '''김주수'''이다.[4]
- 1972년 제4회 수상자는 1956년 8월 가정법률상담소를 설립한 이래 16년간 무료로 가정법률상담을 하고 여성인권옹호, 한국이혼제도연구 등을 저술한 변호사, 여성운동가 '''이태영'''이다.[5]
- 1973년 제5회 수상자는 1950년부터 1964년 11월까지 서울지검 검사, 국무총리 비서관, 전주지검 차장검사, 서울지검 부장검사 등으로 재직하다 퇴직하여 변호사를 하면서《백만인의 법률상담》,《교육자의 법률》,《주석 형사소송법》,《서식 형사소송법》,《수사기술》의 저술과 《검사동일체의 원칙》 등 100여편의 논문을 발표한 변호사·법률문화연구회장 '''이용훈'''이다.[6]
- 1974년 제6회 수상자는 현직 법관으로 있으면서 국제대학, 서울신학대학 등에서 강의하며 《판례실무 민사소송법》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하고 기독교 조회 간사로서 수감자들을 위해 헌신한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 '''김상원'''이다.[7]
- 1975년 제7회 수상자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김증한'''이다.
- 1976년 제8회 수상자는 변호사 '''김용진'''이다.
- 1977년 제9회 수상자는 1975년 건국대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조세법 연구>라는 책을 저술해 조세법의 발전과 비교연구에 기여한 대검찰청 특수부 4과장 '''이종남'''이다.[8]
- 1978년 제10회 수상자는 변호사 '''김종수''', 변호사 '''이재성'''이다.
- 1979년 제11회 수상자는 경북대학교 총장 '''서돈각''',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김진우 (1932년)'''이다.
2. 2. 1. 1970년
'''고일석''' (서울형사지방법원 형사2과장)2. 2. 2. 1971년
1969년 펴낸 《혼인법연구》 등 논문을 통해 신분 관계법 연구에 업적을 쌓았던 가족법학자 '''김주수'''가 선정되었다.[4]2. 2. 3. 1972년
1956년 8월 가정법률상담소를 설립한 이래 16년간 무료로 가정법률상담을 하고 여성인권옹호, 한국이혼제도연구 등을 저술한 변호사이자 여성운동가인 '''이태영'''이 선정되었다.[5]2. 2. 4. 1973년
1950년부터 1964년 11월까지 서울지검 검사, 국무총리 비서관, 전주지검 차장검사, 서울지검 부장검사 등으로 재직하다 퇴직하여 변호사를 하면서《백만인의 법률상담》,《교육자의 법률》,《주석 형사소송법》,《서식 형사소송법》,《수사기술》의 저술과 《검사동일체의 원칙》 등 100여편의 논문을 발표한 변호사·법률문화연구회장 '''이용훈'''이 제5회 수상자로 선정되었다.[6]2. 2. 5. 1974년
현직 법관으로 재직하면서 국제대학, 서울신학대학 등에서 강의하며 《판례실무 민사소송법》등 다수의 저서와 논문을 발표하고 기독교 조회 간사로서 수감자들을 위해 헌신한 서울민사지방법원 부장판사 '''김상원'''이 선정되었다.[7]2. 2. 6. 1975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김증한'''2. 2. 7. 1976년
변호사 '''김용진'''2. 2. 8. 1977년
1975년 건국대에서 법학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조세법 연구>라는 책을 저술해 조세법의 발전과 비교연구에 기여한 대검찰청 특수부 4과장 '''이종남'''이 선정되었다.[8]2. 2. 9. 1978년
변호사 '''김종수'''· 변호사 '''이재성'''2. 2. 10. 1979년
경북대학교 총장 '''서돈각'''·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김진우 (1932년)'''2. 3. 1980년대
- 1980년: 1956년 이후 건국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중앙대학교, 연세대학교 등에서 법학 교수를 하면서 상법 분야에 많은 저서와 논문, 번역물을 펴내고 1979년 2월 이래 한국상사법학회 회장으로서 법률문화의 보급과 창달에 큰 업적을 쌓은 연세대학교 교수, 한국상사법학회 회장 '''손주찬'''[9]
- 1981년: 연세대학교 교수 '''정영석'''은 형법 연구와 학생 지도 및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연세대학교 산하 법률구조상담소를 운영하는 등 사회봉사에 공헌하였다.[10]
- 1982년: 1955년부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를 하면서 현재 한국노동법학회장, 국제법률가협회 이사장, 한국법학원 부원장으로 활약하며 노사문제에 특히 관심을 갖고 한국의 노동법학을 개척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김치선'''[11]
- 1983년: 청주대학교 교수 '''김현태'''·변호사 '''김도창'''
- 1984년: 1935년 평양지방법원 검사국 검사로 출발하여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역임한 변호사 '''최대교'''·1943년 광주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1961년 대법원 판사를 역임한 변호사 '''방순원'''[12]
- 1985년: 서울대학교 교수 '''김기두'''와 법률구조협의회 위원장으로 인권옹호에 기여한 변호사 '''김선'''이 수상하였다.[13] 두 사람 모두 후진양성과 법학 연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 1986년: 변호사 이홍규·변호사 강안희·서울대학교 교수 박병호[14]
- 1987년: 서울대학교 교수 '''곽윤직'''
- 1988년: 변호사 '''김정규'''
- 1989년: 대법관 '''박우동'''
2. 3. 1. 1980년
1956년 이후 건국대학교, 성균관대학교, 중앙대학교, 연세대학교 등에서 법학 교수를 하면서 상법 분야에 많은 저서와 논문, 번역물을 펴내고 1979년 2월 이래 한국상사법학회 회장으로서 법률문화의 보급과 창달에 큰 업적을 쌓은 연세대학교 교수, 한국상사법학회 회장 '''손주찬'''[9]2. 3. 2. 1981년
연세대학교 교수 '''정영석'''은 형법 연구와 학생 지도 및 후진 양성에 힘썼으며, 연세대학교 산하 법률구조상담소를 운영하는 등 사회봉사에 공헌하였다.[10]2. 3. 3. 1982년
1955년부터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를 하면서 현재 한국노동법학회장, 국제법률가협회 이사장, 한국법학원 부원장으로 활약하며 노사문제에 특히 관심을 갖고 한국의 노동법학을 개척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장 '''김치선'''[11]2. 3. 4. 1983년
청주대학교 교수 '''김현태'''·변호사 '''김도창'''2. 3. 5. 1984년
1935년 평양지방법원 검사국 검사로 출발하여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을 역임한 변호사 '''최대교'''·1943년 광주지방법원 판사를 시작으로 1961년 대법원 판사를 역임한 변호사 '''방순원'''[12]2. 3. 6. 1985년
서울대학교 교수 '''김기두'''와 법률구조협의회 위원장으로 인권옹호에 기여한 변호사 '''김선'''이 수상하였다.[13] 두 사람 모두 후진양성과 법학 연구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2. 3. 7. 1986년
변호사 이홍규·변호사 강안희·서울대학교 교수 박병호[14]2. 3. 8. 1987년
서울대학교 교수 '''곽윤직'''2. 3. 9. 1988년
변호사 '''김정규'''2. 3. 10. 1989년
대법관 '''박우동'''2. 4. 1990년대
1990년 변호사 '''최광률'''1991년 40년간 행정법 연구저서와 논문을 발표한 고려대학교 교수 '''윤세창'''[15]
1992년 서울대학교 교수 '''김철수 (1933년)'''[16]는 헌법학자로서 헌법상에 보장된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고 구현하는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
1993년 60여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사법제도의 개혁과 각종 법률의 제·개정을 위해 활발한 연구활동을 해온 변호사, 한국법학원 원장 '''문인구'''가 1993년 제25회 한국법률문화상을 수상하였다.[17]
1994년 법조에 몸을 담은 1950년부터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에 힘쓴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장 '''조규광'''[18]
1995년 기세훈 변호사는 국선변호를 통해 형사 피고인의 인권옹호에 앞장섰으며, 무료 변론 및 무료 법률 상담 등 서민의 권리 구제에 기여하였다.[19]
1996년 변호사 '''계창업'''
1997년 법원도서관장 '''강봉수 (법조인)'''
1998년 서울대학교 교수 '''송상현 (1941년)'''[20]
1999년 제16차 아시아, 태평양지역법률가협회(LAWASIA) 총회 관계로 한 해 쉬었다.
2. 4. 1. 1990년
'''최광률''' (변호사)2. 4. 2. 1991년
40년간 행정법 연구저서와 논문을 발표한 고려대학교 교수 '''윤세창'''[15]2. 4. 3. 1992년
서울대학교 교수 '''김철수 (1933년)'''[16]는 헌법학자로서 헌법상에 보장된 국민 기본권을 보장하고 구현하는 문제를 주로 다루었다.2. 4. 4. 1993년
60여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사법제도의 개혁과 각종 법률의 제·개정을 위해 활발한 연구활동을 해온 변호사, 한국법학원 원장 '''문인구'''가 1993년 제25회 한국법률문화상을 수상하였다.[17]2. 4. 5. 1994년
법조에 몸을 담은 1950년부터 인권옹호와 사회정의 실현에 힘쓴 대한민국의 헌법재판소장 '''조규광'''[18]2. 4. 6. 1995년
기세훈 변호사는 국선변호를 통해 형사 피고인의 인권옹호에 앞장섰으며, 무료 변론 및 무료 법률 상담 등 서민의 권리 구제에 기여하였다.[19]2. 4. 7. 1996년
변호사 '''계창업'''2. 4. 8. 1997년
법원도서관장 '''강봉수 (법조인)'''2. 4. 9. 1998년
서울대학교 교수 '''송상현 (1941년)'''[20]2. 4. 10. 1999년
1999년 제16차 아시아, 태평양지역법률가협회(LAWASIA) 총회 관계로 한 해 쉬었다.2. 5. 2000년대
2000년 제31회 수상자는 변호사 '''이시윤'''이다.2001년 제32회 수상자는 고려대학교 교수 '''이기수 (1945년)'''이다.
2002년 제33회 수상자는 국민대학교 총장 '''정성진 (1940년)'''이다.
2003년 제34회 수상자는 권인숙 성고문 재정신청 사건과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 1980년대 주요 공안사건 변론을 맡는 등 인권변호사로서 인권옹호에 앞장선 변호사 '''유현석'''이다.[21]
2004년 제35회 수상자는 김교창 변호사이다. 그는 한국법학원 이사, 대한변협이사, 상사중재위원, 대한공증협회장 등을 역임하며 법조 발전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했다. 특히 '선하증권에 관한 최신 판례연구' 및 '회사법의 제문제' 등의 논문을 발표하고 학술활동을 통해 상사법 분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22]
2005년 제36회 수상자는 '''김광년''' 변호사이다. 그는 1983년 9월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겸 사법연수원 교수를 거쳐 변호사로 개업한 이후 서울변호사회 소속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법조후진 양성을 위한 지도교육을 비롯하여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법률 제·개정을 위한 조사연구 및 입법건의 등에 헌신적으로 진력하여 후배 법조인들에게 모범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참다운 변호사상을 구현하고 국민생활의 편의도모 및 인권신장, 법률문화 발전에 앞장서는 등 법조계의 발전에 기여하였고 서울변호사회 법제위원장을 할 때 매주 판례연구발표회를 주도하는가 하면 ‘변호사’등의 법률실무연구지에 많은 논문발표와 각종 법률안에 대한 의견을 마련, 제시하였다.[23]
2006년 제37회 수상자는 '''박춘호'''(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이다. 대한변호사협회 독도특위 변호사는 "1999년 1월 발효된 새 한일어업협정 체결 때 외무부 자문위원 대표로 활동하면서 "독도를 한국과 일본의 중간수역에 두도록 조언하고, 배타적 경제수역(EEZ) 협정과 관련해서도 독도 기점이 아닌 울릉도 기점을 주장했으며,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무시하고 대응하지 않는 게 유리하다는 주장을 폄으로써 일본이 독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며 수상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24]
2007년 제38회 수상자는 변호사 '''권성'''이다. 그는 30년간 법관으로 재직하면서 형사소송법에 기소 전 보석제도를 신설해 부당한 인신구속을 막고 형사 절차에 있어서 국민의 기본권 신장에 기여했다.[25]
2008년 제39회 수상자는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이재상'''이다. 그는 법조 실무계와 학계의 교류, 법률문화 발전, 법조후진 양성 등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26]
2009년 제40회 수상자는 변호사 '''이태희'''이다. 그는 건전한 로펌문화의 확립을 통해 한국의 법률문화발전과 후배 양성에 이바지했다.[27]
2. 5. 1. 2000년
2000년 제31회 수상자는 변호사 '''이시윤'''이다.2. 5. 2. 2001년
고려대학교 교수 '''이기수 (1945년)'''2. 5. 3. 2002년
국민대학교 총장 '''정성진 (1940년)'''2. 5. 4. 2003년
권인숙 성고문 재정신청 사건과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 등 1980년대 주요 공안사건 변론을 맡는 등 인권변호사로서 인권옹호에 앞장선 변호사 '''유현석'''[21]2. 5. 5. 2004년
김교창 변호사는 한국법학원 이사, 대한변협이사, 상사중재위원, 대한공증협회장 등을 역임하며 법조 발전을 위해 왕성한 활동을 했다. 특히 '선하증권에 관한 최신 판례연구' 및 '회사법의 제문제' 등의 논문을 발표하고 학술활동을 통해 상사법 분야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22]2. 5. 6. 2005년
1983년 9월 서울민사지법 부장판사 겸 사법연수원 교수를 거쳐 변호사로 개업한 이후 서울변호사회 소속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법조후진 양성을 위한 지도교육을 비롯하여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법률 제·개정을 위한 조사연구 및 입법건의 등에 헌신적으로 진력하여 후배 법조인들에게 모범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참다운 변호사상을 구현하고 국민생활의 편의도모 및 인권신장, 법률문화 발전에 앞장서는 등 법조계의 발전에 기여하였고 서울변호사회 법제위원장을 할 때 매주 판례연구발표회를 주도하는가 하면 ‘변호사’등의 법률실무연구지에 많은 논문발표와 각종 법률안에 대한 의견을 마련, 제시한 '''김광년''' 변호사가 제36회 수상자로 선정되었다.[23]2. 5. 7. 2006년
'''박춘호'''(국제해양법재판소 재판관)가 선정되었다. 대한변호사협회 독도특위 변호사는 "1999년 1월 발효된 새 한일어업협정 체결 때 외무부 자문위원 대표로 활동하면서 "독도를 한국과 일본의 중간수역에 두도록 조언하고, 배타적 경제수역(EEZ) 협정과 관련해서도 독도 기점이 아닌 울릉도 기점을 주장했으며,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에 무시하고 대응하지 않는 게 유리하다는 주장을 폄으로써 일본이 독도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단서를 제공했다""며 수상을 취소하라고 요구했다.[24]2. 5. 8. 2007년
30년간 법관으로 재직하면서 형사소송법에 기소 전 보석제도를 신설해 부당한 인신구속을 막고 형사 절차에 있어서 국민의 기본권 신장에 기여한 변호사 '''권성'''이 2007년 제38회 수상자로 선정되었다.[25]2. 5. 9. 2008년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이재상'''은 법조 실무계와 학계의 교류, 법률문화 발전, 법조후진 양성 등에 이바지한 공로를 인정받았다.[26]2. 5. 10. 2009년
건전한 로펌문화의 확립을 통해 한국의 법률문화발전과 후배 양성에 이바지한 변호사 '''이태희'''[27]2. 6. 2010년대
국민대학교 교수 '''장명봉'''은 40년 간 북한법 연구에 몰두하여 법학연구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28]변호사 '''김용준'''
변호사 김이조는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역대 법조인들의 전기 자료를 수집하여 1997년 '법조비화 100선', 1998년 '잊을 수 없는 법조인', 1999년 '한국법조인 비전', '33인의 법조인상', 2001년 '한국의 법조인' 1~2권, 2002년 '법조 50년 야사(上·下)', 2004년 '법조의 길 법조인의 삶', 2005년 '법조약전', '사건으로 본 법조 100년' 등의 저서를 발간하였다.[29]
2008년 ICTY 부소장으로 선출되어 국위를 선양했고 ICTY에 대한민국 판사의 펠로 근무 제도를 도입하는 등 대한민국 법조인의 국제무대 진출에 기여한 ICTY 재판관 '''권오곤'''[30]
최봉태 (변호사)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헌법소원을 대리하여 2011년 국가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이끌어 냈다.[31] 또한, 2012년에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첫 대법원 판결을 받아냈다.[31]
'''조무제''' (前 대법관): 모교에서 후학을 지도하며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사재를 털어 1억여원의 장학금을 남몰래 기부하는 등 '청빈 법조인'의 대명사로 존경받았다.
한스 켈젠에 대한 연구 등 법실증주의에 따른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통해 한국적 현실에서 독자적 이론을 찾고자 했던 심헌섭이 2016년 제47회 한국법률문화상을 수상했다.[32]
소순무 변호사는 조세법 분야의 권위자로,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 국세청 법령해석심의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33]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인 '''정찬형'''은 활발한 연구활동과 올바른 법 개정 및 집행을 위한 각종 활동을 통해 한국 법률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수상하였다.[34]
2. 6. 1. 2010년
국민대학교 교수 '''장명봉'''은 40년 간 북한법 연구에 몰두하여 법학연구의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를 받았다.[28]2. 6. 2. 2011년
변호사 '''김용준'''2. 6. 3. 2012년
변호사 김이조는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까지 역대 법조인들의 전기 자료를 수집하여 1997년 '법조비화 100선', 1998년 '잊을 수 없는 법조인', 1999년 '한국법조인 비전', '33인의 법조인상', 2001년 '한국의 법조인' 1~2권, 2002년 '법조 50년 야사(上·下)', 2004년 '법조의 길 법조인의 삶', 2005년 '법조약전', '사건으로 본 법조 100년' 등의 저서를 발간하였다.[29]2. 6. 4. 2013년
2008년 ICTY 부소장으로 선출되어 국위를 선양했고 ICTY에 대한민국 판사의 펠로 근무 제도를 도입하는 등 대한민국 법조인의 국제무대 진출에 기여한 ICTY 재판관 '''권오곤'''[30]2. 6. 5. 2014년
최봉태 (변호사)는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헌법소원을 대리하여 2011년 국가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이끌어 냈다.[31] 또한, 2012년에는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첫 대법원 판결을 받아냈다.[31]2. 6. 6. 2015년
'''조무제''' (前 대법관): 모교에서 후학을 지도하며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사재를 털어 1억여원의 장학금을 남몰래 기부하는 등 '청빈 법조인'의 대명사로 존경받았다.2. 6. 7. 2016년
한스 켈젠에 대한 연구 등 법실증주의에 따른 다수의 논문과 저서를 통해 한국적 현실에서 독자적 이론을 찾고자 했던 심헌섭이 2016년 제47회 한국법률문화상을 수상했다.[32]2. 6. 8. 2017년
소순무 변호사는 조세법 분야의 권위자로, 기획재정부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 국세청 법령해석심의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33]2. 6. 9. 2018년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인 '''정찬형'''은 활발한 연구활동과 올바른 법 개정 및 집행을 위한 각종 활동을 통해 한국 법률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수상하였다.[34]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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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11월 13일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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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 11월 11일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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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1년 11월 11일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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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1월 11일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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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0월 31일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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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11월 11일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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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7년 11월 11일자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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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12월 18일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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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12월 21일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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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2월 15일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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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 8월 10일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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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9월 16일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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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8월 14일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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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8월 12일자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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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8월 4일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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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회 한국법률문화상 수상한 소순무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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