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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석기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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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신석기 시대는 홍적세의 빙하기가 끝나고 홀로세가 시작되면서 기원전 8000년경부터 시작되어 기원전 2000년경까지 지속되었다. 이 시기 한반도는 기온 상승과 해수면 상승을 겪으며, 빗살무늬토기, 간석기 등의 도구를 사용하고, 움집을 짓고 정착 생활을 시작했다. 농경과 어로 활동을 통해 식량을 확보했으며, 애니미즘, 토테미즘, 샤머니즘 등의 원시 신앙과 예술 활동이 나타났다. 주요 유적지로는 고산리, 동삼동, 암사동 유적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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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신석기 시대
개요
문화적 특징
생업 경제
취락 및 주거
사회
신앙
대표 유적지
토기
암사동 출토 즐문토기
암사동 출토 즐문토기
도구
참고 문헌
같이 보기

2. 자연환경

우리나라에서는 홍적세의 빙하기가 끝나고 홀로세가 시작되면서 한반도는 온난화되고 해수면이 상승하였다.[2]

2. 1. 기후 변화

홍적세 빙하기가 끝나고 홀로세가 시작되면서 한반도는 온난화되고 해수면이 상승하였다. 구체적인 시기별 변화는 다음과 같다.[2]

  • 기원전 8,000년 ~ 기원전 7,000년: 현재와 거의 같은 기온을 보였다. 남부 지역은 상록활엽수림에 속했고, 기원전 7,000년경에는 낙엽광엽수림 지역이 북부 지방까지 확장되었다. 이 시기 해수면은 약간 높았으며, 해수 온도는 3℃가량 높았다.
  • 기원전 8,000년 ~ 기원전 2,000년: 기온이 점차 상승하는 시기였다. 중부 지방은 낙엽광엽수림 지역에 속했고, 북부 지방은 침엽수림을 이루었다.
  • 기원전 5,000년 ~ 기원전 3,800년: 기온이 다시 하강하여 기원전 2,400년 전후는 가장 한랭한 시기였다. 기온 하강으로 해안선이 바다 쪽으로 후퇴하고 육지가 상승하였다. 특히 기원전 4,400년 ~ 기원전 4,000년에는 춥고 습한 기후로 전 세계적으로 중위도 지방에 큰 홍수가 발생했지만, 현재 우리나라 지역에서는 이 시기에 큰 홍수가 났다는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 기원전 3,800년 ~ 기원전 2,000년: 한랭한 기후가 지속되었다. 중부 지방에는 침엽수림이 늘어나고 해안선은 더욱 바다 쪽으로 후퇴하였다.

2. 2. 식생 분포

홍적세 빙하기가 끝나고 홀로세가 시작되면서 한반도는 온난화되고 해수면이 상승하였다. 기온 변화에 따른 식생 분포는 다음과 같다.[2]

시기중부 지방남부 지방북부 지방
기원전 8,000년 ~ 기원전 2,000년낙엽 광엽수림해당 없음침엽수림
기원전 8,000년 ~ 기원전 7,000년해당 없음상록 활엽수림해당 없음
기원전 7,000년해당 없음해당 없음낙엽 광엽수림 (확장)
기원전 3,800년 ~ 기원전 2,000년침엽수림 증가해당 없음해당 없음


3. 도구

간 돌도끼


이 시대의 중요한 지표는 간석기빗살무늬토기로 대표되는 토기이다. 농경 도구로는 돌쾡이, 돌보습, 돌낫, 갈돌 등이 있었고, 의복 제작이나 어업에는 가락바퀴뼈바늘이 사용되었다.

3. 1. 돌농기구

돌쾡이와 돌보습으로 밭을 갈고, 돌낫으로 곡물이나 이삭을 따 갈돌로 갈아 껍질을 벗기거나 가루를 내어 먹었다.[3]

3. 2. 의복생활·어업 도구

가락바퀴뼈바늘을 이용하여 옷이나 그물을 만들었다.[3]

3. 3. 토기

민무늬토기


이 시대의 중요한 지표가 되는 것은 간석기빗살무늬토기로 대표되는 토기이다.

  • 이른 민무늬 토기

: 강석, 운모, 석영 따위의 모래가 섞여 있어 표면이 거칠고 흡수성이 강하다. 단조로운 문양이 가끔 있을 뿐 대체로 무늬가 없고 두꺼운 것이 특징이다. 색깔은 다갈색, 회색이 보통이며 크고 작은 여러 가지 모양이 있는데 주로 사발, 단지 같은 것이다. 주둥이 부분은 대개 직선으로 올라간 것이 많으나 밖으로 벌어진 것도 있다. 밑바닥은 평면으로 된 것, 뾰족한 것 등 여러 가지이며 뿔 모양의 손잡이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 눌러찍기무늬 토기

: 한반도의 남해안 지역에서 많이 출토되었으며, 주로 신석기 시대 전기와 중기에 많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만드는 방법과 무늬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다. 그릇 표면을 엄지와 검지로 찍거나 집어 눌러서 돌출 부분과 다음 돌출 부분 사이에 하트 문양이 생기게 하는 방식, 그릇 표면을 동물 뼈의 마디 부분으로 찍어 문양을 새기는 방식, 끝이 뾰족하거나 둥근 도구 및 속이 빈 대롱 모양의 도구로 문양을 찍어 열을 짓게 하는 방식 등이 있다.[3]

덧무늬토기

  • 덧무늬 토기

: 덧무늬토기(융기문토기)는 오산리에서도 탄소연대측정법에 의해 BC 5100년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하층에서 아가리 둘레에 덧무늬가 시문된 토기가 발견되어 이 토기가 신석기시대 가장 이른 시기의 토기였음을 입증해 주었다. 덧무늬는 흙띠를 지그재그식으로 배열한 것과 돋은 평행선 바깥쪽에 팥알처럼 돋은 점열을 한 줄씩 배치한 것 등이 있다. 제주도의 고산리나 울산의 해안가에 우봉리 등 남쪽 지방에서는 덧무늬토기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빗살무늬토기

  • 빗살무늬 토기

: 대체로 나무·뼈연장 또는 그것으로 만든 여러 가닥이 난 빗살모양의 무늬새기개를 가지고 그릇 바깥면에 짤막한 줄을 배게 누르거나 그어서 새긴 것을 빗살무늬라고 부른다. 이러한 빗살무늬는 질그릇에 따라 여러 모습을 나타내는데, 한국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선·점선으로 된 짧은 줄을 한쪽 방향으로 또는 서로 방향을 엇바꾸어가면서 그려서 그 모습이 생선뼈처럼 생긴 것이다.

  • 그 외의 토기

: 기하문토기, 생선뼈무늬토기, 납작바닥토기, 물결무늬토기 등이 있다.

  • 번개무늬토기

: 2~4줄의 평행선과 점선을 긋고 그 사이를 점이나 빗금으로 사각형 또는 마름모꼴 등의 기하학적 무늬로 채운 신석기시대 후기에 나타나는 빗살무늬토기로 뇌문토기라고도 한다. 번개무늬토기의 분포상은 신석기 후기에 북동지역 빗살무늬토기인이 폭넓게 다른 지역으로 진출하였음을 보여준다. 주로 사용된 시기는 서포항 제Ⅳ기층의 예를 통해 볼 때 제2 빗살무늬토기 시기인 BC 3000~BC 2000년인 신석기시대 후기이다.

4. 생활상

신석기인들은 창, 활, 결합식 작살, 그물 등 발달된 장비로 고기잡이와 사냥을 했고, 농경 생활을 시작하였다. 통나무배를 만들어 강이나 가까운 바다를 이용해 이동하였다. 그리고 토기를 만들어 음식을 조리, 저장하였다.[1]

4. 1. 주거지

신석기인들은 주로 물가에 움집을 짓고 살았다.[1] 이들은 강가나 바닷가에 움집을 지었으며, 움집 중앙에는 취사 및 난방용 화덕이 있었다.[1]

4. 2. 공동체

신석기 시대 사람들은 주로 물가에 움집을 짓고 살았다. 이들은 창, 활, 결합식 작살, 그물 등 발달된 장비로 고기잡이와 사냥을 했고, 농경 생활을 시작하였다. 통나무를 깎아 만든 배를 이용하여 강이나 가까운 바다를 통해 이동하였다. 그리고 토기를 만들어 음식을 조리, 저장하였다. 신석기 시대는 다른 씨족 간의 족외혼을 통해 부족을 형성(배타적)하였고, 연장자나 경험이 많은 사람이 부족을 이끄는 평등한 사회(부족 사회)였다.[1]

5. 신앙

농경과 목축 등의 생산 경제가 시작되면서 원시 신앙이 발전하였다. 애니미즘, 토테미즘, 샤머니즘과 같은 신앙 형태가 나타났다. 동침신전앙와장(東枕伸展仰臥葬)을 통해 태양 숭배와 내세 신앙을 엿볼 수 있다.

5. 1. 애니미즘

애니미즘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힘 또는 존재가 자연물에 깃들어 있다고 믿는 신앙이다.

5. 2. 토테미즘

농경 및 목축 등의 생산경제로 인해 원시신앙이 발전하였다. 토테미즘은 특정 동식물을 숭배하는 신앙 형태이다.[1]

5. 3. 샤머니즘

농경 및 목축 등의 생산경제로 인해 원시신앙이 발전하였다. 샤머니즘은 신을 불러들이는 무당, 샤먼을 중심으로 한 신앙 체계이다.[1]

5. 4. 조상 숭배

농경과 목축 등 생산 경제가 시작되면서 원시 신앙이 발전하였다. 애니미즘, 토테미즘, 샤머니즘과 같은 신앙 형태가 나타났다.

6. 예술활동

신석기 시대에는 부적과 같은 긴 막대기 모양의 호신부, 짐승의 뼈나 이빨로 만든 치레걸이(장신구), 조개가면, 흙으로 빚은 얼굴상 등의 예술 활동을 하였다.[1]

6. 1. 치레걸이

짐승의 뼈나 이빨로 만든 치레걸이(장신구)를 사용하였다.[1]

6. 2. 조개가면

신석기 시대에는 부적과 같은 긴 막대기 모양의 호신부, 짐승의 뼈나 이빨로 만든 치레걸이(장신구), 조개가면, 흙으로 빚은 얼굴상 등의 예술 활동을 하였다.

6. 3. 흙으로 빚은 얼굴상



신석기 시대에는 흙으로 빚은 얼굴상을 만들기도 하였다.[1] 이는 당시 사람들의 미적 감각과 표현력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7. 유적지

한국의 신석기 시대 유적은 전국 각지에서 발견되며, 시기에 따라 전기, 중·후기, 기타 유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기에는 제주도 한경 고산리 자구내 유적, 부산 영도구 동삼동 조개더미, 강원도 양양 오산리 유적 등이 대표적이다. 중·후기에는 서울특별시 강동구 암사동 유적과 황해북도 봉산 지탑리 유적 등이 있다.

이 외에도 함경북도 웅기 서포항 유적, 함경북도 청진 농포동 유적, 평안남도 온천 궁산리 유적 등 다양한 유적들이 전국에 분포해 있다.

7. 1. 전기

제주도 한경 고산리 자구내 유적과 부산 영도구 동삼동 조개더미는 한국 신석기 시대 전기를 대표하는 유적이다.[1][2]

7. 2. 중·후기

서울 암사동 유적에서는 방형(사각형) 거주지와 빗살무늬 토기, 반달돌칼 등이 발굴되었다. 당시의 집이 복원되어 있다.[1]

7. 3. 기타

8. 발굴

2011년 5월 부산 강서구 성북동 부산 신항 준설토 투기장 예정지 일대에서 발굴이 이루어져, 신석기 전기 시대 인골 14구와 옥제품 4점이 발견되었다.[6]

8. 1. 부산 신항 유적 발굴

2011년 5월 부산 강서구 성북동 부산 신항 준설토 투기장 예정지 일대에서 지난 2월 이후 추가 발굴 작업을 한 결과, 이전 발굴 유물과 같은 신석기 전기 시대 인골 14구와 옥제품 4점을 수습했다.[6]

참조

[1] 서적 EBS 뉴탐스런 한국사 상 2014
[2] 논문 강원도 동해안지역의 신석기문화 http://www.riss.kr/s[...] 강원대학교 2010
[3] 백과사전 눌러찍기무늬토기 https://terms.naver.[...] 두산백과
[4] 서적 EBS 뉴탐스런 한국사 상 2014
[5] 서적 EBS 뉴탐스런 한국사 상 2014
[6] 뉴스 부산 가덕도 신석기 유적서 유골 추가 발굴 http://media.daum.ne[...] 연합뉴스 2011-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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