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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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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회전(回戰)은 전쟁에서 승리를 결정짓기 위해 병력을 집중하여 치르는 결정적인 전투를 의미한다.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났으며, 승패는 조직력 붕괴, 목표 지점 점령, 핵심 부분 파괴 등을 통해 결정된다. 승리한 군대는 사기를 유지하고 정치적 목표를 달성할 수 있으며, 패배는 사기 저하, 영토 상실, 정권 붕괴로 이어진다. 회전은 공자, 방자와 같은 전쟁관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었으며, 방어 회전과 공격 회전으로 구분된다. 주요 전투 목록으로는 봉천 회전, 마른 전투, 쿠르스크 전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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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 (전쟁)
개요
정의양측이 합의된 장소에서 싸우기로 약속하는 전투
관련 용어야전 (전투)
공성전
특징
전술적 상황양측이 서로에게 유리한 지형을 점령하기 위해 노력함
규모소규모 교전부터 대규모 전투까지 다양함
결과한쪽의 승리, 무승부, 또는 전략적 후퇴로 이어질 수 있음
역사적 중요성
영향국가의 흥망성쇠와 전략적 요충지 확보에 중요한 역할
예시캉 전투 (1346년)
워털루 전투
게티즈버그 전투
참고 자료
관련 문서전쟁
전투
군사 작전

2. 역사

회전은 선사 시대부터 조직적인 전투 방법으로 확립되어 현대에 이르기까지 발전을 거듭했다.

카데시 전투에서 이집트의 전차를 묘사한 부조


선사 시대에는 기본적인 무기를 이용한 느슨한 형태의 전투가 주를 이루었다. 고대에는 무기와 갑옷이 정교해지고 중보병의 역할이 커지면서 전투 방식이 변화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팔랑크스라는 효과적인 창병 대형이 등장했고, 마케도니아 왕국은 이를 더욱 발전시켜 사리사라는 긴 창을 사용했다. 고대 로마는 중무장 보병과 보조 부대로 구성된 군대를 운용했다.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기마 노르만 기사와 궁수들


중세에는 국가가 대규모 군대를 유지하기 어려워지면서 회전의 규모와 빈도가 감소했다. 이 시기에는 판금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전장을 지배했고, 보병 전술은 장창과 할버드 같은 장병기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쇠뇌헤이스팅스 전투에서처럼 활에 대한 효과적인 대안으로 널리 사용되었다.

오다 씨의 조총병을 묘사한 나가시노 전투 병풍 그림의 세부 묘사


근대 초기에는 화기와 포병의 도입으로 전투 방식이 크게 변화했다. 초기 화기는 정확도가 낮고 발사 속도가 느렸지만, 창검병 전술과 같이 다른 보병 부대의 지원을 받으며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 나가시노 전투에서는 오다 노부나가가 조총병을 효과적으로 배치하여 다케다 가쓰요리의 기병대를 격파했다.

돌격하는 줄루족 전사들


근대 후기에는 소총과 같은 기술 발전으로 화기와 포병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 이산들와나 전투와 같이 식민지 전쟁에서는 토착 군대가 근접전을 활용하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 화기의 발달로 인해 회전의 양상이 변화했다.

19세기 말부터 제1차 세계 대전까지 군대 규모가 커지고 무기 기술이 발전하면서 회전은 점차 감소했다. 기관총, 발달된 포병, 철조망 등의 등장으로 대규모 병력 운용이 어려워졌고, 참호전이 등장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전격전과 같이 기동성을 강조하는 전술이 발전했지만, 노르망디 상륙 작전과 같이 대규모 회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에는 위장 전술, 게릴라전, 전략 폭격 등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회전은 더욱 드물어졌다. 현대전에서는 전투가 전선을 따라 일어나는 소규모 교전이나 산발적인 전투에 의존하게 되면서, 회전의 형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2. 1. 선사 시대

회전은 초기 국가들이 영토를 넓히기 위한 주요 수단으로 선사 시대에 처음 기록되었다. 신석기 시대(기원전 1만 년 ~ 기원전 3,000년)에는 폭력이 대규모 사건보다는 일상적인 형태로 나타났다.[60] 기원전 3,000년 이후의 선사 시대에는 전투가 점차 조직화되었고, 청동 무기와 초기 미사일 무기의 사용이 특징이었다.[61]

유럽에서 가장 초기에 발생한 전투 중 하나는 기원전 13세기에 벌어진 톨렌제 계곡 전투로, 최소 수백 명의 전투원이 참여했다.[9] 청동 무기와 부싯돌 및 청동 화살촉의 증거는 전투 중에 보병과 함께 궁수도 사용되었음을 시사한다.[10] 이 전투는 무장한 대규모 무리가 강을 건너려다 도하 지점에서 마주쳐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다.[11] 궁수들은 근접전이 벌어지기 전에 양쪽 강가에 배치되어 사상자를 냈을 수 있다.[12] 톨렌제 계곡 전투는 유럽 선사 시대 초기 전투가 대규모의 반(半)조직적인 전투원 집단과 활과 같은 간단한 수공구 및 발사 무기의 사용으로 특징지어졌음을 보여준다.[13]

카데시 전투 부조, 이집트 전차 묘사


다른 지역에서는, 선사 시대 후기의 기술 및 물류 발전으로 인해 정면 대결이 더 빈번해지고 규모도 커졌다.[10] 기술적 개선 사항으로는 철제 무기, 방패, 그리고 조직적인 대형으로 배치된 기병이 추가되었다.[9] 이러한 발전을 보여주는 정면 대결의 예로는 기원전 1274년 이집트 신왕국의 람세스 2세히타이트 제국의 무와탈리 2세 간의 카데시 전투가 있다. 람세스 2세 사원의 부조에 따르면 전차와 창, 칼을 사용한 대규모 보병 대형이 근접 전투에 투입되었다.[14] 전투는 세 단계로 진행되었다. 첫째, 히타이트 전차가 카데시 요새 북서쪽에 있는 주요 이집트 야영지로 이동 중이던 이집트 사단을 공격했다.[15] 둘째, 람세스 2세는 이집트 야영지를 약탈하던 히타이트 전차에 대한 전차 반격을 시작하여 그들을 오론테스 강과 히타이트 군의 주력 부대로 밀어냈다.[16] 셋째, 히타이트 예비군이 배치되어 강을 넘어 퇴각을 거부하면서 양측이 전담하여 일련의 돌격을 감행했다.[17] 이 정면 대결은 이집트의 전술적 승리였지만 양측 모두에게 전략적 교착 상태를 초래했다.[18]

2. 2. 고전 시대

철기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갑옷과 보병 대형이 발전했고, 이는 투사 무기의 효과를 감소시켜 근접 보병 전투의 중요성을 높였다.[60] 고대 그리스에서는 팔랑크스라고 불리는 새롭고 효과적인 창병 대형이 등장했다.[61] 기원전 550년경, 그리스인들은 홉라이트라고 불리는 병사들이 창과 방패로 밀집 대형을 이루는 팔랑크스를 완성했다.[19] 이들은 촘촘한 대형으로 적을 압박하며 전투를 벌였고, 한쪽이 무너지면 대형이 붕괴되며 개별 전투가 벌어졌다.[19] 팔랑크스는 기원전 490년 마라톤 전투와 기원전 479년 플라타이아 전투에서 페르시아 군을 상대로 승리하며 그 효과를 입증했다.[20] 필리포스 2세알렉산드로스 대왕 휘하의 마케도니아는 팔랑크스를 더욱 발전시켜 더 깊은 대형을 만들고 사리사라는 긴 창을 사용하게 했다. 마케도니아 팔랑크스는 페르시아 제국을 상대로 큰 성공을 거두었고, 기원전 4세기와 3세기 동안 지중해 지역의 전쟁을 지배했다.[20] 이러한 중장 보병 대형의 효과는 로마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는데, 로마는 중무장 보병 부대와 보조 부대로 구성된 대규모 전문 군대를 창설했다.[62]

아헤노바르부스 부조에 묘사된 기원전 2세기의 로마 중보병


고전 시대의 대표적인 회전(會戰)으로는 칸나이 전투가 있다. 이 전투는 로마 공화국카르타고한니발이 맞붙은 전투로, 기원전 216년 8월 2일 이탈리아 칸나이 마을 근처에서 벌어졌다. 로마군은 약 8만 명의 보병과 6천 명의 기병을, 한니발은 약 4만 명의 보병과 지원군, 1만 명의 기병을 이끌었다.[21] 카르타고군은 기병 배치를 위해 평평한 지형을 선호했고, 로마군은 보병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아우피두스 강과 칸나이 마을 사이의 좁은 들판을 선호했다.[22]

로마군은 중보병을 깊게 배치하고 기병을 양 측면에 배치하여 카르타고군 중앙을 돌파하려 했다.[22] 반면 한니발은 중앙을 약하게 하고 측면을 강화하여 로마군을 포위하는 전략을 택했다.[23] 그는 주력 부대 뒤에 8천 명의 지원 보병을 배치하여 로마군을 기습하려 했다.[22] 한니발의 전략은 성공적이었고, 약 45,500~70,000명의 로마군이 전사하는 큰 피해를 입었다.[23] 이 전투는 한니발의 결정적인 승리로 끝났으며, 당시 회전에서 중보병과 발전된 배치 전략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2. 3. 중세 시대

중세 시대의 회전은 국가들이 고대 시대만큼 큰 군대를 동원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규모와 빈도가 감소했다.[63] 지도자의 사망 가능성과 전투의 결정적인 성격 또한 회전의 수를 줄이는 요인이었다. 전장 전략과 같은 요새를 포위하고 수비대를 통해 통제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이 시기의 회전은 무기와 갑옷의 발전, 그리고 전술과 배치의 효과를 잘 보여준다. 금속 가공 기술의 발전으로 전투에서 더 나은 보호를 제공하는 판금 갑옷이 등장했다. 기사라고 불리는 부유한 병사들은 무거운 판금 갑옷과 말을 결합하여 사용했다. 이들은 중세 시대 전반에 걸쳐 전장을 지배하기 위해 파괴적인 돌격을 하거나, 직접 전투에 참여했다.[64] 결과적으로, 중세 후반으로 갈수록 보병 전술은 장창과 할버드와 같은 장병기의 사용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또한, 이 시기에는 쇠뇌가 널리 사용되었는데,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볼 수 있듯이 쇠뇌는 활에 대한 강력한 대안을 제공했으며 대부분의 갑옷에 효과적이었다.[64]

헤이스팅스 전투 배치도


중세 시대의 전술과 기술 발전을 보여주는 중요한 전투는 1066년 10월 14일에 벌어진 헤이스팅스 전투이다. 이 전투는 정복왕 윌리엄이 이끄는 노르만-프랑스 군대와 해럴드 고드윈슨 왕이 이끄는 앵글로색슨 잉글랜드 군대 사이에서 벌어졌다. 윌리엄은 가파른 경사 꼭대기에 소규모의 조밀한 대형으로 보병 부대를 배치한 고드윈슨과 교전했다. 잉글랜드 군대는 중앙에 호스카를이라 불리는 중보병을, 측면에 경보병을 배치했다.[27] 고드윈슨의 전선 앞에는 병사들이 방패를 맞물려 창을 들고 뒤에는 투사 부대를 배치한 방패벽이 있었다. 윌리엄 휘하의 노르만군은 왼쪽 측면에 브르타뉴인, 중앙에 노르만인, 오른쪽 측면에 프랑코-플랑드르인으로 구성된 세 그룹으로 배치되었다.[28] 윌리엄은 그의 대열 맨 앞에 석궁병을 포함한 투사 부대를 배치하고, 그 뒤에 중보병과 기병을 배치했다.[27] 이 전투에서 윌리엄의 중무장한 노르만 기사들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그들은 기병을 이용하여 도망치는 척하며 고드윈슨의 방패벽을 얇게 만들거나 무너뜨렸다.[28] 이러한 전술을 반복적으로 실행하여 결국 노르만 군은 승리했다. 그들은 잉글랜드 군대를 추격하게 유도한 다음 반격하여 붕괴시킬 수 있었다.[27] 이 전투에서 노르만 군대의 중기병을 효과적으로 배치한 것은 중세 시대의 전투에서 무기 및 갑옷을 통한 기술적 개선과 진화하는 전술의 중요성을 보여준다.[27]

2. 4. 근대 초기

근대 초기에 초기 화기와 포병의 도입으로 전술과 배치 전략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회전은 크게 발전하였다. 이 시기에 각 주가 성장하고 향상된 물류를 사용하여 더 큰 상비군을 운용할 수 있게 되면서 회전의 규모가 전반적으로 증가했다.[65] 16세기에 유럽에 화기가 도입되었고, 순차적으로 발사될 때 파괴적인 효과를 낼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화기는 부정확하고 발사 속도가 느려서 적에게 발사체 덩어리를 발사하는 더 작은 이동식 보병에 가장 효과적으로 배치되었다. 이러한 무기는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특히 적 기병과 마주할 때 다른 보병 그룹의 지원을 받았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창검병(pike and shot) 전술을 통해 기동성 있는 기병을 보호하기 위해 머스킷총과 파이크 무장 군인의 대열을 엮었다.[66] 또한 이 시기에 포병은 기본적인 돌 던지기에서 기동성과 더 효과적인 포위전이 가능한 탄창 대포로 진화했다.

정규전은 초창기 근대 시대에 초기 화기 및 포병의 도입과 함께 전술과 배치 전략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크게 발전했다. 이 시기에는 국가가 성장하고 개선된 물류를 사용하여 더 큰 상비군을 운용할 수 있게 되면서 정규전의 규모가 전반적으로 증가했다.[29] 화기는 16세기에 유럽에 도입되었고 연발로 사격할 때 파괴적인 효과 때문에 정규전에 혁명을 일으켰다.[30]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화기는 정확도가 떨어지고 발사 속도가 느려 작은 규모의 기동성 있는 보병 부대에서 적에게 대량의 발사체를 쏟아부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배치되었다.[30] 이러한 무기의 신뢰성이 떨어졌기 때문에 이러한 부대는 다른 보병 그룹의 지원을 받았는데, 특히 적 기병과 마주했을 때 그러했다. 16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창검병 보병이 머스킷과 파이크로 무장한 병사들의 얽혀 있는 대열을 갖추어 기동성 있는 기병 방어를 제공했다.[30] 또한 이 기간 동안 포병은 기본적인 돌 투척기에서 기동이 가능하고 보다 효과적인 공성전을 수행할 수 있는 포신 대포로 발전했다.[31]

나가시노 전투는 1575년 6월 28일 일본의 센고쿠 시대 동안 오다와 도쿠가와 연합군이 다케다 군과 벌인 주요 전투였다.

나가시노 전투


이 전투는 오다 노부나가가 나가시노 성에서 다케다 가쓰요리에 의해 포위된 도쿠가와 군을 구원하기 위해 38,000명의 병력을 이끌면서 벌어졌다.[32] 이 전투는 새로운 병력이 도착하면서 포위전이 주요 전투로 발전하는 사례를 보여준다. 전투에서 오다의 성공의 핵심은 10,000명의 아시가루 조총병의 배치였다.[32] 화기는 1543년경 유럽 상인들에 의해 일본에 도입되었으며 빠르게 채택되었다.[33] 나가시노 전투는 이들의 효과적인 전술적 배치의 초기 사례 중 하나였다.[34] 전투 전에 노부나가는 적 기병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아시가루 창병의 지원을 받아 조총병을 대형으로 배치했다.[34] 다케다의 전략은 우세한 기병대를 활용하여 오다 보병을 집중적인 돌격으로 도망가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오다 창병들이 조총병과 협력하여 3열로 조직적인 일제 사격을 가해 다케다 기병대의 돌격을 격퇴하고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이 전략은 실패했다.[32]

2. 5. 근대 후기

라이플링과 같은 기술 발전으로 무기의 신뢰성과 정확성이 향상되면서, 후기 근대에는 화기와 포병이 회전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했다. 18세기에는 사거리와 정확성, 카트리지 탄약과 탄창을 위한 라이플링이 도입되면서 화기의 효능이 급격히 증가했다. 그 결과, 이 시기 대부분의 군대는 화기 보병을 엄격하게 배치했다.[67]

이러한 경향에서 주목할 만한 예외는 식민지 아프리카에서였다. 이곳에서는 토착 군대가 여전히 근접전을 사용하여 어느 정도 성공을 거두었다. 1879년 줄루 제국영국 사이의 이산들와나 전투가 그 예이다.[39] 또한 라이플링과 정교한 재장전 메커니즘을 통해 포병의 기동성과 정확성이 향상되었으며, 19세기 내내 보병과 함께 매우 효과적으로 사용되었다.[36] 이 시기에는 보병 포대와 포병 진지를 괴롭히는 데 사용되었기 때문에 기병이 계속해서 회전에 효과적인 힘을 발휘했다.[67] 이러한 전술은 19세기 말까지 기술 발전으로 인해 회전의 효율성이 떨어질 때까지 전쟁에서 유지되었다.[67]

이산들와나 전투는 1879년 1월 22일 줄루 제국영국 사이에 벌어진 전투이다. 이 격전에서 줄루군은 기술적으로 우위에 있는 군대를 압도하기 위해 뛰어난 전술을 구현했다.[39] 줄루군은 보통 잘 알려진 "버팔로 뿔" 대형으로 배치되었다. 공격 배치는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었다.[38]

  • '''"뿔" 또는 측면 우익 및 좌익 요소'''는 적을 포위하고 고정하기 위한 요소였다. 보통 훈련이 덜 된 병사들이 배치되었다.
  • '''"가슴" 또는 중앙 주력'''은 결정적인 타격을 가하는 부대였다. 핵심 전력이 주력의 구성을 이루었다.
  • '''"허리" 또는 예비대'''는 성공을 활용하거나 다른 곳을 지원하는 데 사용되었다.


줄루군은 일반적으로 연대, 여러 연대로 구성된 군단, 그리고 "군대" 또는 더 큰 편성과 같은 3개의 계층으로 나뉘었다. 충분한 병력이 있으면 서구의 사단 규모에 해당하는 병력을 동원하고 기동할 수 있었다. 전술적 움직임의 조정은 손 신호와 전령을 사용한 인두나스에 의해 제공되었다. 일반적으로 전투에 배치되기 전에 연대들은 반원 형태로 쪼그려 앉도록 했다. 이 반원형 자세는 지휘관이 최종 임무를 할당하고 조정을 하는 동안 다가오는 격전을 향해 모든 부대를 정렬하는 역할을 했다. 전투에서 강력했지만 줄루군의 격전 준비는 예측 가능할 수 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보통 작전에서 동일한 3부분 레이아웃을 사용했기 때문이다.[39]

thumb

이산들와나에서 줄루군은 먼저 마고고 언덕과 망게니 폭포 주변에서 교란 작전을 벌여 영국군이 전력을 분산시키도록 유도한 다음,[40] 신중한 접근 행군을 통해 이 영국군의 실수를 이용하기 위해 이동했으며, 이는 군대의 전체 전력을 숨기는 분산된 부대를 사용했다. 한 역사가가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그런 다음 전체 줄루군은 적의 위치 근처의 깊은 협곡에 집중되었으며, 고전적인 "버팔로 뿔" 돌격을 위해 미리 배치되었지만, 전통에 따라 공격에 좋은 징조가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 영국 기병 정찰대에 의해 발견된 전체 '임피'는 일제히 일어나 약 4마일 떨어진 곳에서 공격을 시작했다. 진격은 영국군의 맹렬한 소총, 로켓 및 포병 사격에 직면하여 진격을 멈추게 했다. 그러나 영국군은 줄루군의 예비 기만에 일부 속아 전력을 분산시켰고, 예를 들어 강력한 중앙 마차 또는 라거 요새에 진영을 배치하지 못한 것과 같은 다른 오류도 영국 방어의 치명적인 약점에 기여했다.[42] 기동하는 줄루군 대형의 압박으로 인해 붉은 코트 부대가 무너지자 줄루군의 뿔이 틈새를 뚫고 돌진하여 진영의 수비대를 전멸시켰다.[43] 아프리카 창병에 의해 현대식 무기를 갖춘 약 1,000명의 유럽 군인이 몰살되자 영국에서 불신과 격노가 일었다. 영국 정규군과 지원하는 원주민 징집병의 손실 외에도, 줄루 '임피'는 워털루 전투에서 나폴레옹이 죽인 사람보다 더 많은 영국 장교를 이산들와나에서 죽였다.[44]

2. 6. 세계 대전

세계대전 속 회전(캉 전투)


군대의 규모가 점점 커지고 무기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세계대전으로 갈수록 회전 빈도가 줄어들었다. 대규모 군대는 전투를 한 번의 사건으로 해결할 수 없음을 의미했고, 제1차 세계 대전기관총, 첨단 포병, 철조망을 도입함에 따라 보병을 이동 가능한 큰 블록에 배치하는 것이 쉽게 움직이지 않고 파괴할 수 있어 비효율적이었다.[68] 철조망만으로도 기병을 쉽게 이동할 수 있고 쉽게 목표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배치가 중단되었다.[46] 전술의 발전은 참호에 요새화된 진지를 강조하고 전술과 기동성보다는 소모와 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수개월의 전투를 초래했다.[47] 제1차 세계 대전 후기에 기계화된 갑옷과 항공기가 도입됨에 따라 참호를 기동하고 포위할 수 있어 참호전의 효율성이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것은 제2차 세계 대전 초기 프랑스에서 독일의 전격전 기간 동안 명확하게 드러났다. 제2차 세계대전의 전술은 적의 진지를 기동하고 포위하기 위해 갑옷, 항공기, 포병과 함께 일하는 기동성 있는 보병 그룹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발전했다. 이는 일반적으로 국지적인 회전보다는 넓은 전장을 따라 많은 소규모 교전을 초래했다.[68] 그러나 전쟁 중에는 더 큰 규모로 회전 전술을 사용하는 중요한 전투가 몇 번 있었다.

영국군은 동쪽에서 독일 장갑차의 주력을 붙잡아 놓고 소모전을 벌여, 미국군이 서쪽에서 돌파하여 독일 전선을 파괴했다.


노르망디 상륙 작전 중, 연합군은 독일군의 저항을 격퇴하기 위해 대규모의 격전을 벌였다.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했을 때, 영국 육군 사령관 버나드 몽고메리 장군이 사용한 격전 전략은 해안 교두보의 동쪽 측면에서 영국군이 끊임없이 독일 장갑 부대를 공격하는 것이었다. 영국군의 역할은 연합군 상륙을 위한 거대한 방패 역할을 하는 것이었다. 즉, 왼쪽(동쪽)에서 독일 장갑차를 지속적으로 유인하고, 포병, 전차, 연합군 항공기의 강력한 공격으로 끊임없이 소모시키는 것이었다.[49] 방패가 독일군을 붙잡아두는 동안, 미국군은 연합군 전선의 오른쪽인 서쪽으로 진격하여 독일군 방어선을 돌파할 예정이었다. 따라서 이 전략에서 영국군의 역할은 화려한 것이 아니라, 시를 중심으로 한 소모전의 가혹한 용광로 속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전투였다.[50]

연합군 최고 사령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는 7월 10일 메시지에서 몽고메리의 전반적인 전략을 확인하며 더욱 강력한 노력을 촉구했다.

2. 7. 전후(戰後)

위장 전술, 게릴라전, 전략 폭격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전투는 구식이 되었다. 이러한 전술들은 조직된 부대의 대규모 배치를 막았다.[67] 전투는 전선을 따라 일어난 많은 소규모 교전이나 적대 지역에서의 산발적인 전투에 점점 더 의존하게 되었고, 더 이상 어떤 형태의 전투와도 유사하지 않게 되었다.[67][54]

3. 전쟁론 속 회전

전쟁론 초판


회전(會戰)은 우발적으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종종 적을 압도적으로 섬멸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대체로 (근대 이후의 군제라면) 이상의 대규모 전력으로 수행되는 전투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투 전후의 기동도 포함한다. 복잡한 지형에서는 회전 형태의 전투 전개가 어려워 통상 야전 형태를 취한다. 근대 이전에는 조우전이나 소규모 전투의 대개념으로 생각되었지만, 전투 교리, 병기 등의 변화와 발전으로 회전의 의미와 빈도는 감소하고 있다.

국가 총력전 체제가 갖춰지기 전에는 국가 지도자가 운용할 수 있는 전력이 제한적이었다. 따라서 적의 전력을 철저히 격멸하는 회전은 전쟁이나 전역의 결과를 결정하는 중요한 전투였다. 군사 작전은 제한 전쟁 사상이 일반적이었으며, 군인들은 회전에서의 승리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세기까지 회전은 지휘관의 시야를 넘어서거나 하루를 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부터 전선이 연장되면서 회전의 기간이 길어지는 경향이 나타났고, 지구전 형태로 변화했지만, 당시의 대규모 전투는 여전히 회전으로 불렸다.

현대에는 전투가 과거의 회전보다 유동적이고 대규모가 되었기 때문에 회전의 형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3. 1. 주력회전

주력회전은 단순한 시도가 아니라, 진정한 승리를 위해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싸움이다.[69] 주력회전의 특징은 승패 결정 방식, 획득된 승리의 효과, 그리고 회전의 사용으로 나눌 수 있다.

  • 승패 결정 방식: 조직력의 파괴와 핵심 부분 점령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 획득된 승리의 효과: 야전사령관들과 군, 교전 국가들, 그리고 전쟁의 차후 진행 과정에 영향을 미친다.
  • 회전의 사용: 공자의 경우 자발적으로, 방자의 경우 강요에 의해 유발되지만, 상황에 따라 방자도 사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


회전(會戰)은 우발적으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적을 압도적으로 섬멸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경우가 많으며, 대체로 이상의 대규모 전력으로 수행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전투 전후의 기동도 포함한다. 복잡한 지형에서는 회전 형태의 전투 전개가 어려워 통상 야전 형태를 취한다. 근대 이전에는 조우전이나 소규모 전투의 대개념으로 생각되었지만, 전투 교리, 병기 등의 변화와 발전으로 회전의 의미와 빈도는 감소하고 있다.

국가 총력전 체제가 갖춰지기 전에는 국가 지도자가 운용할 수 있는 전력이 제한적이었다. 따라서 적의 전력을 철저히 격멸하는 회전은 전쟁이나 전역의 결과를 결정하는 중요한 전투였다. 군사 작전은 제한 전쟁 사상이 일반적이었으며, 군인들은 회전에서의 승리를 최우선 목표로 삼고, 이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19세기까지 회전은 지휘관의 시야를 넘어서거나 하루를 넘는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나 제1차 세계 대전부터 전선이 연장되면서 회전의 기간이 길어지는 경향이 나타났고, 지구전 형태로 변화했지만, 당시의 대규모 전투는 여전히 회전으로 불렸다.

현대에는 전투가 과거의 회전보다 유동적이고 대규모가 되었기 때문에 회전의 형태는 거의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3. 1. 1. 승패 결정 방식

조직력이 파괴될 경우, 용맹스러운 군대의 정교한 조직 및 연계가 불가능해진다. 이는 승리를 얻기 위한 기본 조건이 충족되지 않음을 의미하며, 결국 패배로 이어진다. 핵심 진지가 상실되면 전체 진지를 더 이상 방어할 수 없게 되므로, 핵심 부분의 점령 역시 패배의 원인이 된다.[69] 승리 조건은 이와 반대되는 경우이다.

3. 1. 2. 획득된 승리의 효과

주력회전의 특징 중 하나는 획득된 승리의 효과이다.[69] 획득된 승리의 효과는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획득된 승리의 효과
내용
야전사령관들과 군에 미치는 효과
교전 국가들에 미치는 효과
전쟁의 차후 진행 과정에 미치는 효과



대규모 전투의 결과가 지닌 심리적 효과는 승자보다 패자에게 더욱 크게 작용하고, 이 심리적 효과는 물질적 전투력의 손실을 더욱 유발하며, 이는 다시 정신적 전투력의 손실에 영향을 준다.[69] 패배한 군은 지역의 손실과 후퇴 행군 등으로 인해 패배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는 적이 아군보다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3. 1. 3. 회전의 사용

주력회전은 공자의 경우에는 자발적으로, 방자의 경우에는 강요에 의해 유발된다. 그래서 대부분의 경우 주력회전은 공자의 수단이지만 공격과 방어의 개념을 상세하게 규정하지 않고 논급한다면 방자의 입장에서도 주력회전은 상황을 파악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수단이다.[69]

3. 2. 방어회전

결정적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목표일 경우 공세적 요소는 결코 완전히 배제될 수 없다. 모든 방어회전에 귀속되어 있는 공세적 요소가 완전한 승리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면 전략적 배합 측면에서 공격회전과 방어회전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없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 공자와 방자의 전투력은 교전 지점에서 서로 소모되지만 방자는 적은 전투력으로 공자의 많은 전투력을 파괴한다.[70] 그럼에도 방자가 전투력은 물론 전체적인 상황에서 공자보다 불리하기 때문에 방어회전에서 방자는 단지 적을 막을 뿐 격멸하지 않는다고 단정한다면, 이것은 치명적인 오류의 하나이며 본질과 형식을 혼동하는 것으로 간주된다.[70]

3. 3. 공격회전

공격회전은 일반적으로 연락선의 유리한 여건과 정신적, 물질적 우위에서 비롯된 결과이다.[71] 이는 방어회전에 관한 논의에서부터 이어진다. 공격자는 포위의 이점을 사용해 방어자가 압박과 위협을 받는 상황에 처하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공격회전에서 공격자는 포위선이나 배면 전선을 이용해야 한다.

4. 주요 전투 목록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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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서적 전쟁론
[70] 서적 전쟁론
[71] 서적 전쟁론 책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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