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스파르 카사도
1. 개요
가스파르 카사도는 스페인 출신의 첼리스트, 작곡가, 그리고 교육자이다. 그는 7세에 첼로를 시작하여 파블로 카잘스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유럽과 아르헨티나에서 연주 활동을 펼쳤다. 1920년대부터는 첼로 작품과 더불어 협주곡, 실내악, 오라토리오 등을 작곡했으며, 피아니스트 줄리에타 고르디지아니와 첼로-피아노 듀오를 결성하여 활동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카잘스의 비판으로 인해 활동에 어려움을 겪었으나, 이후 교육 활동과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는 여러 음악적 위작을 남겼으며, 1966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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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클래식 첼로 연주자 -
안익태
안익태는 대한민국의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애국가를 작곡하고 한국환상곡 등의 관현악곡을 남겼으나, 일제강점기 만주국 관련 음악 작곡으로 친일 논란이 있다. -
스페인의 클래식 첼로 연주자 -
파블로 카살스
파블로 카잘스는 스페인 출신의 첼리스트, 지휘자, 작곡가로, 현대 첼로 연주법을 확립하고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널리 알렸으며, 스페인 내전으로 망명 후 평화를 기원하다 1973년에 사망했다. -
스페인의 클래식 작곡가 -
페르난도 소르
페르난도 소르는 스페인 출신의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로, 고전주의와 낭만주의 양식을 결합한 기타 음악과 교육용 연습곡집으로 유명하며 후대 기타리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
스페인의 클래식 작곡가 -
프란시스코 타레가
프란시스코 타레가는 "기타의 사라사테"로 불린 스페인 기타리스트이자 작곡가, 교육자로, 20세기 클래식 기타의 선구자이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등의 대표작과 클래식 기타 레퍼토리 확장에 기여한 편곡 작품들로 널리 알려져 있다. -
20세기 클래식 작곡가 -
에프렘 짐발리스트
러시아 제국 출신 미국 바이올리니스트, 작곡가, 지휘자, 음악 교육자인 에프렘 짐발리스트는 레오폴트 아우어의 제자로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명성을 얻었고 커티스 음악원에서 후학을 양성했으며 은퇴 후에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 등으로 활동했다. -
20세기 클래식 작곡가 -
한스 짐머
독일 출신의 영화 음악 작곡가 한스 짐머는 《레인맨》으로 할리우드에 데뷔하여 《라이온 킹》, 《글래디에이터》, 《다크 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 《듄》 등의 영화 음악을 작곡하며 아카데미상을 수상했고, 신시사이저와 오케스트라를 결합한 독창적인 스타일로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하고 있다.
2. 생애
바르셀로나 출신으로, 교회 음악가인 아버지 호아킨 카사도에게서 음악을 배우기 시작하여 일곱 살 때 첼로 레슨을 받았다. 아홉 살 때 그의 연주를 본 파블로 카잘스에게 발탁되어 파리에서 수학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후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스페인을 중심으로 연주 활동을 시작했으며, 이후 프랑스, 이탈리아, 아르헨티나 등지로 활동 무대를 넓혔다. 1922년부터는 첼로 작품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곡을 작곡하고 편곡하는 등 작곡가로서도 활동했다.
1923년 피아니스트 줄리에타 고르디지아니를 만나 피렌체에 정착했고, 그녀와 첼로-피아노 듀오를 결성하여 10년 이상 유럽 전역에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줄리에타와 함께 스트리아노에서 지냈다.
전후에는 스승이었던 파블로 카잘스가 뉴욕 타임스 기고를 통해 그를 파시스트 정권 협력자로 비난하면서 경력에 큰 위기를 맞았다. 카사도는 카잘스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했으며, 이후 예후디 메뉴인의 중재로 카잘스와 화해했다.
이후 솔리스트 활동과 더불어 키지아나 음악원, 쾰른 국립 음악 대학 등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콤포스텔라 스페인 음악 강좌"를 공동 설립하기도 했다. 또한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의 작품으로 알려졌던 "토카타" 등 몇몇 음악적 위작을 남기기도 했다.
말년에는 절친한 친구이자 피아니스트인 알리시아 데 라로차와 교류하며 연주 및 강습 활동을 이어갔고, 일본인 피아니스트 原智恵子jp와 결혼했다. 그의 개인 기록은 아내의 기록과 함께 일본 다마가와 대학 교육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아버지의 기록은 카탈루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2.1. 유년 시절과 교육
가스파르 카사도는 바르셀로나에서 교회 음악가인 아버지 호아킨 카사도에게서 태어나 일곱 살 때 첼로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아홉 살 때 리사이틀에서 연주했는데, 이 연주를 본 파블로 카잘스가 그를 제자로 삼겠다고 제안했다. 바르셀로나 시는 카사도가 파리에서 카잘스에게 배울 수 있도록 장학금을 지원했다.
2.2. 연주 활동과 작곡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후, 가스파르는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스페인의 주요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연주 활동을 시작했다. 1918년부터는 작곡가 알프레도 카셀라와의 친분을 계기로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도 연주 활동을 펼쳤다. 1920년에는 아르헨티나 순회 공연을 가졌다.
1922년부터는 연주 활동과 더불어 작곡가로서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기 시작했는데, 첼로 독주곡 외에도 협주곡, 실내악, 오라토리오, 사르다나 등 다양한 장르의 곡을 작곡했으며, 첼로를 위한 편곡 작업도 병행했다.
1923년에는 프란체스코 폰 멘델스존의 소개로 가수이자 피아니스트인 줄리에타 고르디지아니를 만났다. 이후 두 사람은 30년 이상 피렌체에 함께 거주하며 첼로와 피아노 듀오를 결성했고, 10년 넘게 유럽 전역을 순회하며 큰 성공을 거두었다. 줄리에타 고르디지아니는 훌륭한 피아노 연주로 카사도와 호흡을 맞추었을 뿐만 아니라, 그의 경력 발전과 홍보에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 듀오는 뛰어난 연주 실력으로 수년간 대중의 찬사와 비평가들의 호평을 받았다. 1940년에는 미국 순회 공연을 가졌다.
한편, 그는 몇몇 유명한 음악적 위작의 실제 작곡가이기도 했는데, 대표적으로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의 작품으로 알려졌던 "토카타"가 있다.
2.3.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제2차 세계 대전 시기에는 가수이자 피아니스트인 줄리에타 고르디지아니와 함께 스트리아노 마을에서 보냈다.
전후, 그의 경력은 심각한 타격을 입었는데, 이는 주로 그의 옛 스승 파블로 카잘스가 뉴욕 타임스에 발표한 편지 때문이었다. 카잘스는 이 편지에서 카사도가 파시스트 정권에 협력했다고 비난하며, 그가 연합국에서 연주하는 것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카사도는 카잘스의 주장에 대해 이의를 제기했으며, 일부 학자들은 카잘스의 이러한 주장의 배경과 동기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결국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의 도움으로 화해했다.
카사도는 솔로 연주 활동 외에도 여러 국제 콩쿠르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했다. 1946년부터는 이탈리아 시에나의 키지아나 음악원에서, 1958년부터는 독일 쾰른의 국립 음악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같은 해, 그는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열린 "콤포스텔라 스페인 음악 강좌"의 공동 설립자로 참여했다.
그는 또한 몇몇 유명한 음악적 위작을 남긴 것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특히 지롤라모 프레스코발디의 작품으로 알려졌던 "토카타"가 대표적이다.
카사도 아버지의 개인 서류는 카탈루냐 도서관에 보존되어 있으며, 가스파르 카사도 자신의 서류는 그의 아내이자 피아니스트였던 하라 지에코의 서류와 함께 일본 다마가와 대학 교육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1956년부터 1958년까지 그는 절친한 친구이자 피아니스트인 알리시아 데 라로차와 함께 광범위한 연주 여행을 다녔다. 라로차의 초청으로 바르셀로나의 아카데미아 마셜에서 콘서트를 열고 여러 차례 강습을 진행하기도 했다. 현재 아카데미아 마셜의 첼로 교수직은 그의 이름을 기려 명명되었으며, 2018년부터 야콥 쇼 교수가 그 자리를 맡고 있다.
2.4. 교육 활동과 말년
카사도는 솔로 활동과 함께 국제 콩쿠르 심사위원으로도 참여했다. 1946년부터 그는 시에나의 키지아나 음악원에서, 1958년부터는 쾰른의 국립 음악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같은 해(1958년) 그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콤포스텔라 스페인 음악 강좌"를 공동으로 설립했다.
그는 1956년부터 1958년까지 함께 광범위한 투어를 했던 절친한 친구 알리시아 데 라로차의 초청으로, 바르셀로나의 아카데미아 마셜에서 콘서트를 열고 자주 강습을 이끌었다. 아카데미아 마셜의 첼로 교수 자리는 가스파르 카사도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2018년부터 야콥 쇼 교수가 맡고 있다.
1959년에는 일본인 피아니스트 原智恵子jp와 결혼했다. 가스파르의 개인 서류는 그의 아내이자 피아니스트인 하라 지에코의 서류와 함께 다마가와 대학 교육 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3. 작품
카사도의 작품은 전통적인 악기 연주법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고전적인 형식과 카탈루냐 특유의 정서를 자연스럽게 융합시킨다는 평가를 받는다. 첼로 독주를 위한 《모음곡》과 《소나타》는 첼로 연주자들 사이에서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품 《[[사랑의 말 (카사도)|사랑의 말]]》(Requiebros스페인어)이다.
또한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첼로 협주곡으로 편곡하거나 드뷔시의 《달빛》을 오케스트레이션하는 등 다른 작곡가의 작품을 편곡하는 작업도 활발히 진행했다. 카사도가 남긴 귀중한 악보 자료 중 일부는 그의 아내 지에코 카사도와의 인연으로 일본의 다마가와 대학에 기증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바흐의 미발견 칸타타 필사본이 발견되기도 했다.
3.1. 오리지널 작품
카사도는 첼로를 위한 다양한 오리지널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형식에 얽매이지 않으면서도 카탈루냐 지방의 정서를 담아낸 것이 특징이다. 첼로 독주를 위한 《모음곡》과 《소나타》는 그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첼로 연주자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다.
또한, 첼로 협주곡, 현악 사중주, 피아노 삼중주 등 다양한 편성의 작품을 작곡했으며, 특히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품 《[[사랑의 말 (카사도)|사랑의 말]]》(Requiebros스페인어)은 그의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카사도의 주요 오리지널 작품 목록은 아래 하위 섹션에서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3.1.1. 협주곡
*첼로 협주곡 라단조 (1926)
: 이 곡은 스페인 및 동양 민속 음악과 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았다. 카사도는 모리스 라벨에게 작곡을 배웠으며, 라벨의 영향을 받은 "카니발 음악"이 1악장의 두 번째 주제로 나타난다. 2악장은 주제와 변주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5음 음계 론도로 이어진다.
그 외에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편곡한 "아르페지오네 협주곡"도 있다.
3.1.2. 첼로 독주곡
* 첼로 독주 첼로 모음곡
이 모음곡은 첼로 협주곡, 피아노 삼중주와 마찬가지로 1920년대 중반 카사도의 가장 활발한 창작 시기에 만들어졌다. 세 개의 악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 악장은 전주곡-환상곡(a 사라반다) 형식이며, 두 번째 악장은 사르다나, 세 번째 악장은 간주곡과 댄스 피날레(a 호타)이다. 첫 악장에는 졸탄 코다이의 무반주 첼로 소나타, 작품 8번과 모리스 라벨의 발레 다프니스와 클로에 중 유명한 플루트 독주 부분이 인용되어 있다. 두 번째 악장의 사르다나는 카탈루냐 지방의 전통 춤곡이다. 카사도의 무반주 첼로를 위한 이 모음곡과 《소나타》는 고전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모습과 카탈루냐의 정서가 어우러진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첼로 연주자들 사이에서 꽤 알려져 있다.
* 헨델 스타일의 푸가
3.1.3. 기타 독주곡
* 레오나르도의 노래
* 카탈라네스카
* 두 개의 핀란드 민요 (Two Finnish Folk Songs영어)
* 카탈루냐 전설
* 서주와 사르다나
* 시지아나 사르다나
3.1.4.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
이 중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품집 《사랑의 말 Requiebros》(1934)은 카사도의 작품 중 가장 유명한 곡으로 꼽힌다.
3.1.5. 실내악
* 피아노 삼중주 C장조 (1926/1929)
* 현악 사중주 1번 F단조 (1929)
* 현악 사중주 2번 G장조 (1930)
* 현악 사중주 3번 C단조 (1933)
3.2. 편곡 작품
카사도는 작곡가로서뿐만 아니라 편곡가로서도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다양한 작품을 첼로 협주곡이나 오케스트라 편성 등으로 편곡하여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카사도가 남긴 귀중한 악보 자료들은 1990년 그의 아내 지에코 카사도와의 인연이 있는 일본의 다마가와 대학에 기증되었다. 이 자료들은 2016년 가을부터 대학 교육 박물관에서 컬렉션 목록으로 간행되고 데이터베이스로 공개되기 시작했다.
기증되지 않고 미정리 상태로 남아있던 악보 자료 중에서는 바흐의 미발견 작품이었던 "결혼 칸타타 BWV216"의 필사본(바흐의 제자 마이스너가 필사한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이 필사본은 일본 국립음악대학의 이소야마 마사시 교수 등에 의해 진본으로 확인되었으며, 해당 대학에서 팩시밀리판을 출판할 예정이다.
3.2.1. 협주곡 편곡
* 카를 필립 엠마누엘 바흐의 A장조 협주곡 3번, Wq. 172를 기반으로 한 첼로 협주곡 F장조
* 모차르트의 호른 협주곡 3번 E플랫장조, K. 447을 기반으로 한 첼로 협주곡 D장조
*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 D. 821을 기반으로 한 첼로 협주곡 A단조
* 첼로 협주곡 E장조, 차이콥스키의 피아노 소품 Op. 72를 기반으로 함 (1940)
: 카사도는 차이콥스키의 9개 소품을 협주곡으로 편곡했다. 1악장에는 18번 '춤추는 장면 (초대)', 3번 '부드러운 책망', 14번 '엘레지풍의 노래'를, 2악장에는 5번 '명상'과 8번 '대화'를, 3악장에는 4번 '특징적인 춤', 2번 '자장가', 17번 '머나먼 길', 1번 '즉흥곡'을 사용했다. 이 협주곡은 카사도가 가장 아끼던 작품 중 하나였으며, 1940년 Edition Schott No. 3743으로 출판되었다.
* 베버의 클라리넷 협주곡 2번 E플랫장조, Op. 74를 기반으로 한 첼로 협주곡 D장조
* 비발디의 첼로 소나타 5번, RV. 40을 기반으로 한 첼로 협주곡 E단조
* 보케리니의 D장조 협주곡 2번, G. 479를 기반으로 한 기타 협주곡 E장조
: 카사도는 동료 기타리스트 안드레스 세고비아를 위해 이 협주곡을 완전히 새롭게 편곡했다. 이 편곡은 현악 사중주 독주 부분이 특징이며, 트럼펫 팡파르는 로드리고의 작품을 연상시킨다.
3.2.2. 첼로 독주 편곡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첼로 모음곡 4번, BWV 1010 (바장조로 조옮김)
* 프레데리크 쇼팽 - 연습곡, 작품 25, 1번
* 게오르크 프리드리히 헨델 - 조화로운 대장장이 (하프시코드 모음곡 1권 5번 "에어와 변주곡"에서)
3.2.3. 첼로와 피아노 편곡
* 이삭 알베니스:
카디스 (세레나타 에스파뇰라)
말라게냐, 작품번호 165, 3번
* 마르탱 베르토 - 스튜디오
* 루이지 보케리니 - 미뉴에토
* 알렉산드르 보로딘 - 세레나타 알 스파뇰라 (현악 사중주 B-라-F에서)
* 장-밥티스트 브레발 - G장조 소나타 (통주 저음 실현)
* 프레데리크 쇼팽 - 즉흥 환상곡, 작품번호 64, 1번
* 콘스탄티노 데 크레센초 - 프리마 카레차
* 클로드 드뷔시:
달빛
골리워그의 케이크워크
음유 시인
* 안토닌 드보르자크 - G장조 소나티나, 작품번호 100 (인디언의 애가)
* 가브리엘 포레 - 야상곡 4번
* 엔리케 그라나도스 - 간주곡 (오페라 고예스카스에서)
* 에르네스토 할프테르 - 칸초네 에 파스토렐라
* 블라스 데 라세르나 - 토나디야
* 프란츠 리스트 - 사랑의 꿈 (야상곡) 3번
* 베네데토 마르첼로:
C장조 소나타 1번
A단조 소나타 4번
* 페데리코 몽포우 - 노래와 춤
* 페데리코 모레노 토로바 - 판당기요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터키 행진곡 (피아노 소나타 K.331에서)
세레나데 돈 조반니 [Deh vieni alla finestra]
소나타 K. 358 (피아노 연탄 소나타에서)
* 게오르크 무파트 - 아리오소
* 이그나치 얀 파데레프스키 - G장조 미뉴에트
* 마누엘 폰세 - 에스트레야 (작은 별)
* 다비드 포퍼 - 엘펜탄츠
* 요한 슈트라우스 2세 - 아름다운 푸른 도나우
4. 유산
카사도의 작품 경향은 전통적인 틀에 얽매이지 않는 면모를 보이기도 하지만, 특히 무반주 첼로를 위한 《모음곡》과 《소나타》는 고전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과 카탈루냐 특유의 정서가 어우러진 작품으로 평가받으며 첼로 연주자들 사이에서 잘 알려져 있다. 이 외에도 첼로 협주곡, 현악 사중주, 피아노 삼중주와 같은 대규모 작품들도 남겼다. 그러나 카사도의 작품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아마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소품인 《사랑의 말 (Requiebros스페인어)》일 것이다.
또한 카사도는 편곡가로서도 중요한 기여를 했는데, 슈베르트의 아르페지오네 소나타를 첼로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아르페지오네 협주곡"으로 편곡했으며, 드뷔시의 베르가마스크 모음곡 중 '달빛'을 오케스트라 버전으로 편곡하기도 했다.
카사도의 악보, 편지, 사진 등 귀중한 자료들은 1990년에 그의 아내이자 피아니스트였던 하라 지에코와의 인연으로 일본의 다마가와 대학에 기증되었다. 이 자료들은 2016년 가을, 다마가와 대학 교육 박물관에서 컬렉션 목록으로 정리되어 간행되었고, 데이터베이스 형태로도 공개되기 시작했다.
한편, 하라 지에코가 세상을 떠난 후 정리되지 않은 악보 자료들 속에서 중요한 발견이 이루어졌다. 바흐의 것으로 추정되는 미발견 상태였던 "결혼 칸타타 BWV 216"의 수고본(자필 악보가 아닌 바흐의 제자 마이스너가 필사한 것)이 발견된 것이다. 이 악보는 일본 국립음악대학의 이소야마 마사시 교수 등에 의해 확인되었으며, 국립음악대학에서는 이 악보의 팩시밀리판(자필보 복사)을 출판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