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내각 (제1차 개조)
1. 개요
간 내각 (제1차 개조)는 2010년 9월 17일, 간 나오토 총리가 민주당 대표 선거 재선에 성공한 후 단행한 내각 개조로 출범했다. '탈 오자와' 노선을 강화하며, 민간인 출신 각료를 기용하고, '유언실행 내각'을 표방했다. 주요 인물로는 총무대신 가타야마 요시히로, 외무대신 마에하라 세이지, 재무대신 노다 요시히코 등이 있으며, 2011년 1월 14일 두 번째 내각 개조로 간 내각 (제2차 개조)가 출범하며 종료되었다. 조선왕실의궤 반환 결정 등 대한민국과의 관계와 관련된 정책을 추진했다.
| 내각명 | 간 나오토 제1차 개조내각 |
|---|---|
| 일본어 | 간 다이이치지 카이조 나이카쿠 (菅第1次改造内閣) |
| 대수 | 94 |
| 수상 이름 | 간 나오토 |
| 전직 | 중의원 의원, 민주당 대표 |
| 성립 연도 | 2010년 |
| 성립 월일 | 9월 17일 |
| 종료 연도 | 2011년 |
| 종료 월일 | 1월 14일 |
| 여당 | 민주당, 국민신당 |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명단 | 내각 명단 (일본 총리대신 관저 웹사이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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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나오토 -
간 내각
간 내각은 2010년 6월부터 2011년 9월까지 존속했으며,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 사임 후 간 나오토가 총리로 출범하여, 센카쿠 열도 사건, 엔고 현상 등의 난관에 직면하다가 총사퇴했다. -
간 나오토 -
도쿄도 제18구
도쿄도 제18구는 일본 중의원 의원 선거구로, 무사시노시, 고가네이시, 니시토쿄시를 관할하며, 소선거구제 도입 후 간 나오토와 쓰치야 마사타다의 경쟁인 "쓰치칸 전쟁"으로 주목받았고 2024년 총선에서는 후쿠다 가오루가 당선, 마쓰시타 레이코가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
일본의 역대 내각 -
제2차 고이즈미 내각
제2차 고이즈미 내각은 2003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 의해 구성되었으며, 이라크 자위대 파병 결정과 연금 개혁 추진,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 사임, 우정 민영화 법안 부결 등의 사건이 있었고, 자유민주당을 중심으로 구조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사회적 논란과 비판도 있었다. -
일본의 역대 내각 -
제3차 고이즈미 내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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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세이 시대의 내각 -
제2차 고이즈미 내각
제2차 고이즈미 내각은 2003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 의해 구성되었으며, 이라크 자위대 파병 결정과 연금 개혁 추진,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 사임, 우정 민영화 법안 부결 등의 사건이 있었고, 자유민주당을 중심으로 구조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사회적 논란과 비판도 있었다. -
헤이세이 시대의 내각 -
제3차 고이즈미 내각
2. 성립 배경 및 특징
2010년 9월 14일, 임기 만료에 따른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 간 나오토 총리가 오자와 이치로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간 총리는 제22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패배에 대한 책임을 묻는 당내 쇄신 요구에 따라, 민주당 연립 정권 최초로 내각 개조를 단행했다.
센고쿠 요시토, 마에하라 세이지, 무라타 렌호, 노다 요시히코 등 간 총리 지지파는 대부분 유임되었지만, 하라구치 가즈히로, 야마다 마사히코 등 오자와 지지파는 교체되었다. 오자와 그룹에서는 단 한 명도 입각하지 않아 '탈(脫) 오자와' 노선이 강화되었다.
이번 개조내각에서는 민간인 출신 가타야마 요시히로 전 돗토리현지사가 총무대신 겸 지역 주권 전략 담당 대신에 기용되었다. 한편, 부대신과 대신 정무관 인사는 수상 관저 주도로 이루어져 오자와 지지파를 적극 기용하는 등 당내 융합을 시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러한 '탈 오자와' 노선과 당내 융화 시도는 여론의 긍정적 평가를 받아, 내각 지지율이 60%대까지 회복되기도 했다. 간 총리는 내각 조성 후 기자회견에서 이 개조내각을 '412명 내각'(412人内閣일본어, 민주당 소속 전체 의원을 뜻함)이라고 표현하며, '유언실행 내각’(有言実行内閣일본어)이라고 명명했다.
3. 국무대신
| 직책 | 성명 | 출신 등 | 특명 사항 등 | 비고 | |
|---|---|---|---|---|---|
| 내각총리대신 | 간 나오토 | -- | 중의원 민주당 (간 그룹) | 민주당 대표 유임 | |
| 총무대신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지역 주권 추진) | 가타야마 요시히로 | -- | 민간 | 지역 활성화 담당 | 첫 입각 |
| 법무대신 | 야나기다 미노루 | -- | 참의원 민주당 (가와바타 그룹) (하토야마 그룹) | 납치 문제 담당 | 첫 입각 2010년 11월 22일 면직 |
| 센고쿠 요시토 | -- | 중의원 민주당 (마에하라 그룹) | 2010년 11월 22일 임명 내각관방장관 겸임 | ||
| 외무대신 | 마에하라 세이지 | -- | 중의원 민주당 (마에하라 그룹) | 내각총리대신 임시대리 취임 순위 제2위 | |
| 재무대신 | 노다 요시히코 | -- | 중의원 민주당 (노다 그룹) | 유임 | |
| 문부과학대신 | 다카키 요시아키 | -- | 중의원 민주당 (가와바타 그룹) | 국립국회도서관 연락 조정 위원 | 첫 입각 |
| 후생노동대신 | 호소카와 리쓰오 | 중의원 민주당 (간 그룹) | 내각총리대신 임시대리 취임 순위 제5위 | 첫 입각 | |
| 농림수산대신 | 가노 미치히코 | 중의원 민주당 (하타 그룹) | 내각총리대신 임시대리 취임 순위 제3위 | ||
| 경제산업대신 | 오하타 아키히로 | -- | 중의원 민주당 (하토야마 그룹) | 첫 입각 | |
| 국토교통대신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오키나와 및 북방 대책) | 마부치 스미오 | -- | 중의원 민주당 (무파벌) | 해양 정책 담당 | 첫 입각 |
| 환경대신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방재) | 마쓰모토 류 | -- | 중의원 민주당 (요코미치 그룹) | 첫 입각 | |
| 방위대신 | 기타자와 도시미 | -- | 참의원 민주당 (하타 그룹) | 내각총리대신 임시대리 취임 순위 제4위 | 유임 |
| 내각관방장관 | 센고쿠 요시토 | -- | 중의원 민주당 (마에하라 그룹) | 내각총리대신 임시대리 취임 순위 제1위 | |
|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소비자 및 식품 안전) (저출산 대책) (남녀 공동 참여) | 오카자키 도미코 | 참의원 민주당 (간 그룹) (요코미치 그룹) | 첫 입각 | ||
|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금융) | 지미 쇼자부로 | -- | 참의원 국민신당 | 우정 개혁 담당 | 유임 |
|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경제 재정 정책) (과학 기술 정책) | 가이에다 반리 | -- | 중의원 민주당 (하토야마 그룹) | 우주 개발 담당 | 첫 입각 |
|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새로운 공공」) | 겐바 고이치로 | -- | 중의원 민주당 (무파벌) | 국가 전략 담당 | |
|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행정 쇄신) | 무라타 렌호 | -- | 참의원 민주당 (노다 그룹) | 공무원 제도 개혁 담당 | |
* 2010년 9월 17일 ~ 2011년 1월 14일
* 평균 연령: 59.1세
최고령: 72세 (기타자와 도시미)
최연소: 42세 (무라타 렌호)
3.1. 내각관방부장관·내각법제국 장관
* 2010년 9월 17일 임명.
3.2.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 직책 | 성명 | 담당 | 소속 | 비고 |
|---|---|---|---|---|
|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 오가와 가쓰야 | 농어촌 지역 활성화 담당 | 참의원, 민주당 (하토야마 그룹) | 재임 |
| 데라타 마나부 | 행정 쇄신 및 홍보 담당 | 중의원, 민주당 (간 그룹) | 재임 | |
| 가토 고이치 | 국가 전략 담당 | 중의원, 민주당 (간 그룹) |
* 2010년 9월 21일 임명.
3.3. 부대신
| 직책 | 성명 | 소속 | 비고 |
|---|---|---|---|
| 내각부 부대신 | 아즈마 쇼조 | 중의원, 민주당(오자와 그룹) | |
| 스에마쓰 요시노리 | 중의원, 민주당(간 그룹) | ||
| 히라노 다쓰오 | 중의원, 민주당(오자와 그룹) | ||
| 총무 부대신 | 스즈키 가쓰마사 | 중의원, 민주당(오자와 그룹) | |
| 히라오카 히데오 | 중의원, 민주당(간 그룹) | 내각부 부대신으로 직무 변경 | |
| 법무 부대신 | 오가와 도시오 | 참의원, 민주당(간 그룹) | |
| 외무 부대신 | 마쓰모토 다케아키 | 중의원, 민주당(노다 그룹) | |
| 반노 유타카 | 중의원, 민주당 | ||
| 재무 부대신 | 이가라시 후미히코 | 중의원, 민주당 | |
| 사쿠라이 미쓰루 | 참의원, 민주당 | ||
| 문부과학 부대신 | 사사키 류조 | 중의원, 민주당 | |
| 스즈키 간 | 참의원, 민주당(하토야마 그룹) | 재임 | |
| 후생노동 부대신 | 후지무라 오사무 | 중의원, 민주당(노다 그룹) | 외무부대신으로 직무 변경 |
| 고미야마 요코 | 중의원, 민주당(마에하라 그룹) | ||
| 농림수산 부대신 | 시노하라 다카시 | 중의원, 민주당 | 재임 |
| 쓰쓰이 노부타카 | 중의원, 민주당(요코미치 그룹) | ||
| 경제산업 부대신 | 마쓰시타 다다히로 | 중의원, 국민신당 | 재임 |
| 이케다 모토히사 | 중의원, 민주당(간 그룹) | 재무부대신으로 직무 변경 | |
| 국토교통 부대신 | 미쓰이 와키오 | 중의원, 민주당(다루토코 그룹) | |
| 이케구치 슈지 | 중의원, 민주당 | ||
| 환경 부대신 | 곤도 쇼이치 | 중의원, 민주당 | |
| 방위 부대신 | 아즈미 준 | 중의원, 민주당 |
* 2010년 9월 21일 임명.
3.4. 대신 정무관
| 직책 | 성명 | 소속 | 비고 |
|---|---|---|---|
| 내각부대신 정무관 | 아쿠쓰 유키히코 | 중의원, 민주당 (간 그룹) | |
| 소노다 야스히로 | 중의원, 민주당 (하타 그룹) | ||
| 와다 다카시 | 중의원, 민주당 | ||
| 총무대신 정무관 | 우치야마 아키라 | 중의원, 민주당 (오자와 그룹) | |
| 오사카 세이지 | 중의원, 민주당 | ||
| 모리타 다카시 | 참의원, 국민신당 | ||
| 법무대신 정무관 | 구로이와 다카히로 | 중의원, 민주당 | |
| 외무대신 정무관 | 기쿠타 마키코 | 중의원, 민주당 | |
| 야마하나 이쿠오 | 중의원, 민주당 (요코미치 그룹) | ||
| 도쿠나가 히사시 | 참의원, 민주당 (마에하라 그룹) | 재임 | |
| 재무대신 정무관 | 요시다 이즈미 | 중의원, 민주당 (하토야마 그룹) | |
| 오다치 모토유키 | 참의원, 민주당 | ||
| 문부과학대신 정무관 | 류 히로후미 | 중의원, 민주당 | |
| 하야시 구미코 | 참의원, 민주당 | ||
| 후생노동대신 정무관 | 오카모토 미쓰노리 | 중의원, 민주당 | |
| 고바야시 마사오 | 참의원, 민주당 | ||
| 농림수산대신 정무관 | 다나부 마사요 | 중의원, 민주당 | |
| 마쓰키 겐코 | 중의원, 민주당 (오자와 그룹) | ||
| 경제산업대신 정무관 | 다지마 가나메 | 중의원, 민주당 | |
| 나카야마 요시카쓰 | 중의원, 민주당 (하토야마 그룹) | ||
| 국토교통대신 정무관 | 고이즈미 도시아키 | 중의원, 민주당 | |
| 쓰가와 쇼고 | 중의원, 민주당 (무파벌) | 재임 | |
| 이치무라 고이치로 | 중의원, 민주당 | ||
| 환경대신 정무관 | 히다카 다케시 | 중의원, 민주당 (오자와 그룹) | |
| 방위대신 정무관 | 마쓰모토 다이스케 | 중의원, 민주당 | |
| 히로타 하지메 | 참의원, 민주당 |
* 2010년 9월 21일에 임명되었다.
4. 주요 정책 및 활동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 오자와 이치로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한 간 나오토 총리는, 제22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민주당 집행부 인사를 포함한 쇄신을 위해 내각 개조를 단행했다. 이 개조내각은 인증식을 거쳐 9월 17일에 정식으로 발족했다.
센고쿠 요시토, 마에하라 세이지, 무라타 렌호, 노다 요시히코 등 간 총리를 지지하는 반(反)오자와파 각료들은 대부분 유임되었지만, 하라구치 가즈히로, 야마다 마사히코 등 오자와 지지파는 교체되었다. 오자와 그룹에서는 단 한 명도 입각하지 않아, '탈(脫) 오자와'(脱小沢일본어) 노선이 강화되었다.
국민신당 출신의 지미 쇼자부로는 계속해서 금융 담당 대신 및 우정 개혁 담당 대신을 맡았고, 가타야마 요시히로 전 돗토리현지사가 총무대신 겸 지역 주권 전략 담당 대신으로 기용되어 민간인 각료가 처음으로 등장했다.
수상 관저 주도로 이루어진 부대신과 대신 정무관 인사에서는 오자와 지지파를 적극 기용하는 등 당내 융화에 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러한 '탈 오자와' 노선과 당내 융합 노력은 여론의 지지를 얻어, 내각 지지율이 60%대까지 회복되기도 했다.
간 총리는 내각 조성 후 기자회견에서 이 개조내각을 '거당체제'를 뜻하는 412명 내각(412人内閣일본어)이라고 칭하며, 유언실행 내각(有言実行内閣일본어)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2010년 12월, 국회에서 각료가 허위 답변을 한 경우의 정치적·도의적 책임에 대해 답변 내용에 따른 것이라고 한 정부 답변에 대해, 자유민주당은 철회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2011년 2월 4일 "각료가 국회에서 허위 답변을 한 경우에 해당 각료에게 어떠한 정치적·도의적 책임이 발생하는지에 대해서는, 해당 답변의 취지, 내용, 해당 답변에 이르게 된 경위 등을 감안하여, 개별 구체적으로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를 말한 것이며, '국민으로부터의 신뢰를 훼손하는 것'이라는 지적은 해당되지 않으며, 해당 답변서를 철회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라는 답변서를 제출했다.
4.1. 2010년 9월 ~ 12월
* 9월 14일 - 간 나오토 내각총리대신이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 재선되었다.
* 9월 17일 - 간 개조 내각이 발족되었다.
* 9월 23일 - 간 총리가 제63회 국련 총회에 참석하였다.
* 9월 24일 - 간 총리가 국련 총회의 일반 토론 연설에서 총 8500에 달하는 개발 도상국 지원책과 온실 효과 가스 25% 삭감 목표를 표명하였다.
* 9월 24일 - 정부가 곤약 젤리의 "모양과 경도" 기준을 정하는 프로젝트 팀 "곤약 젤리 등의 물성·형상 등 개선에 관한 연구회"를 발족하였다.
* 10월 1일 - 제176회 국회가 개회되었다.
* 10월 5일 - 간 총리가 아시아 유럽 회의 제8회 수뇌 회담(ASEM8)에 참석하였다.
* 10월 6일 - 영주 외국인에 대한 지방 참정권(선거권) 부여에 대해 간 총리는 중의원의 대표 질문에서 "최고 재판소판결에서, 헌법상 금지되어 있지 않다고 해석하는 것이 상당하다"고 말하며, 외국인에게 참정권 부여에 찬성 입장을 표명하였다.
* 10월 15일 - 간 총리가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 공약한 "국가 공무원의 총 인건비 20% 삭감"을 철회하였다.
* 11월 16일 - 한국 정부에 대해 일제 강점기의 구 조선 총독부 경유로 일본에 건너간 조선왕실의궤 등 총 1205권의 도서 인도를 정한 한일 도서 협정의 국회 승인을 요구하는 각의 결정을 실시하였다.
* 11월 19일 - 영주 외국인에 대한 지방 참정권(선거권) 부여에 대해 "헌법상의 국민 주권의 원리와 반드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답변서를 각의 결정하였다.
* 11월 22일 - 야나기다 미노루법무대신이 '국회 경시 발언'을 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하였다.
* 11월 26일 - 센고쿠 요시토내각관방장관에 대해 센카쿠 열도 중국 어선 충돌 사건에 대한 대응이 부적절하다고 하여 문책 결의안이 참의원에서 찬성 127, 반대 111로 가결되었다. 27일에도 유사한 안건으로 마부치 스미오국토교통대신의 문책 결의안이 가결되었다.
* 11월 29일 - 영주 외국인에 대한 지방 참정권 (선거권) 부여에 대해, 1995년(헤이세이 7년)에 기각된 '영주 외국인에 대한 지방 참정권 부여를 요구하는 재판'에서 재일 한국·조선인을 달래는 의미로, 정치적 배려로 제시된방론 부분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는 답변서를 각의 결정하였다.
* 12월 10일 - 자유민주당의 모리 마사코에 의한 "각료가 국회에서 허위의 답변을 한 경우, 이 각료에게 어떤 정치적·도의적 책임이 발생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 주의서에 대해, "질문에 대해서는 답변의 내용에 따른다고 생각한다."라고 허위 답변의 책임은 답변에 달려 있다는 답변서를 결정하였다.
* 12월 25일 - 간 총리가 일어서라 일본에 연립 정권에의 참가를 타진했지만, 27일에 거부되었다.
4.2. 2011년 1월
2011년 1월 14일, 간 총리는 두 번째 내각 개조를 단행하여 간 제2차 개조내각을 발족했다.
5. 평가 및 비판
이 내각은 '탈(脫) 오자와'(脱小沢일본어) 노선을 강화한 것으로 평가된다. 마에하라 세이지 등 반(反)오자와파 인물들이 유임된 반면, 하라구치 가즈히로 등 오자와 지지파는 교체되었다. 오자와 그룹에서는 단 한 명도 입각하지 않아 '탈 오자와' 경향이 뚜렷해졌다.
센고쿠 요시토, 마에하라 세이지, 무라타 렌호, 노다 요시히코 등은 반 오자와파이며 간 나오토 총리를 지지하는 파벌들은 거의 유임되었다. 하지만 마에하라는 국토교통대신에서 외무대신으로 직무가 변경되었다.
이러한 '탈 오자와' 노선은 내각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져, 참의원 선거 전부터 침체되었던 지지율이 60%대까지 회복되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6월 내각 발족 당시의 지지율을 넘어서기도 했다.
간 총리는 이 개조내각을 '거당체제'이자 '412명 내각'(412人内閣일본어, 민주당 소속 전체 의원을 뜻함)이라고 표현하며, 유언실행 내각(有言実行内閣일본어)이라고 명명했다.
6. 대한민국과의 관계
11월 16일 간 내각은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구 조선총독부를 통해 일본에 건너온 조선왕실의궤 등 총 1,205권의 도서 반환을 결정짓는 한일도서협정의 국회 승인을 요구하는 각의 결정을 내렸다. 이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건너간 문화재 반환을 통해 대한민국과의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또한, 간 내각은 영주 외국인에게 지방참정권(선거권)을 부여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논의하였다. 11월 19일에는 "헌법상의 국민 주권의 원리와 반드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답변서를 각의 결정하였고, 11월 29일에는 1995년에 기각된 '영주 외국인에 대한 지방 참정권 부여를 요구하는 재판'에서 재일 한국인을 달래는 의미로 정치적 배려로서 제시된 방론 부분을 "최대한 존중해야 한다"라는 내용의 답변서를 각의 결정하였다. 이는 재일 한국인을 포함한 영주 외국인의 참정권 문제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보여주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