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 내각
1. 개요
간 내각은 2010년 6월 8일부터 2011년 9월 2일까지 존속한 일본의 내각이다.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의 사임 이후, 간 나오토가 총리로 선출되어 출범했다. 민주당과 국민신당 소속 의원들로 구성되었으며, 2010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여당이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고, 센카쿠 열도 중국 어선 충돌 사건, 엔고 현상 등 다양한 정책적 난관에 직면했다. 내각 구성 및 외교 정책, 특히 대한제국 병합 100주년 관련 담화 발표 등을 두고 비판과 논란이 있었다. 2011년 1월과 6월 두 차례의 개각을 거쳤으며, 2011년 9월 2일 간 내각은 총사퇴했다.
| 내각 명칭 | 간 내각 |
|---|---|
| 내각 종류 | 해당 없음 |
| 내각 번호 | 94대 |
| 관할 지역 | 일본 |
| 재임 기간 | 2010년 6월 8일 – 2011년 9월 2일 |
| 정부 수반 | 간 나오토 |
| 국가 원수 | 아키히토 천황 |
| 의원 수 | 해당 없음 |
| 이전 의원 수 | 해당 없음 |
| 총 의원 수 | 해당 없음 |
| 정당 | 민주당–국민신당 연립 |
| 입법부 현황 | 중의원: 민주당–국민신당 연립 과반수 참의원: 민주당–국민신당 연립 과반수, 2010년 7월부터 소수 |
| 반대 내각 | 해당 없음 |
| 반대 정당 | 자유민주당 |
| 반대 지도자 | 다니가키 사다카즈 |
| 선거 | 2010년 참의원 선거 |
| 마지막 선거 | 해당 없음 |
| 입법 기간 | 해당 없음 |
| 예산 | 해당 없음 |
| 자문 및 동의 | 해당 없음 |
| 후속 구성 | 해당 없음 |
| 이전 구성 |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 |
| 다음 내각 | 노다 요시히코 내각 |
| 링크 | 관저 웹사이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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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 나오토 -
도쿄도 제18구
도쿄도 제18구는 일본 중의원 의원 선거구로, 무사시노시, 고가네이시, 니시토쿄시를 관할하며, 소선거구제 도입 후 간 나오토와 쓰치야 마사타다의 경쟁인 "쓰치칸 전쟁"으로 주목받았고 2024년 총선에서는 후쿠다 가오루가 당선, 마쓰시타 레이코가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 -
간 나오토 -
간 내각 (제2차 개조)
간 내각 (제2차 개조)은 간 나오토가 2011년 1월 14일에 단행한 두 번째 내각 개조로, 참의원 선거 패배와 민주당 대표 선거 재선 이후 경제 회복, 한반도 문제, TPP 참가 등 여러 문제 해결을 위해 단행되었으나,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 대한 미흡한 대응으로 간 나오토가 사임했다. -
2010년 일본 -
일본항공
일본항공은 1951년 설립된 일본의 대표적인 국적 항공사로, 경영 위기와 회사 정리법 신청 후 민영화되었으며, 현재는 원월드 회원사로서 최신 기종을 도입하여 국제선 및 국내선 네트워크를 운영하고 고객 편의성 증대에 힘쓰고 있다. -
2010년 일본 -
일본항공 (지주회사)
일본항공(JAL)은 항공 및 관련 사업을 영위하는 일본의 지주회사로, 2002년 통합 후 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했으나 2009년 경영난으로 회사정리법을 적용받았고, 구조조정 후 2012년 재상장되어 현재는 일본항공인터내셔널을 중심으로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회생 과정에서의 인력 감축과 노조 갈등은 논란거리다. -
헤이세이 시대의 내각 -
제2차 고이즈미 내각
제2차 고이즈미 내각은 2003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에 의해 구성되었으며, 이라크 자위대 파병 결정과 연금 개혁 추진, 후쿠다 야스오 관방장관 사임, 우정 민영화 법안 부결 등의 사건이 있었고, 자유민주당을 중심으로 구조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사회적 논란과 비판도 있었다. -
헤이세이 시대의 내각 -
제3차 고이즈미 내각
2. 재직 기간
3. 정치적 배경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이자 민주당 대표는 오키나와의 미국 해병대 기지 유지와 관련된 비인기 거래와 낮은 지지율로 인해 2010년 6월 2일 사임했다. 하토야마의 사임으로 민주당 대표 선거가 치러졌고, 간 나오토 재무상이 승리했다. 2010년 6월 8일, 간 나오토는 아키히토 일왕에 의해 일본의 94대 총리로 공식 임명되었다.
간 나오토는 노다 요시히코를 재무상으로, 센고쿠 요시토를 관방장관으로 임명하는 등 주요 인사를 단행했다. 간 나오토는 불과 8개월 만에 두 번째 민주당 총리가 되었다.
일시적인 지지율 회복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2010년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참의원 과반수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고, 분열된 국회에서 법안 통과를 위해 야당의 일부에 의존하게 되었다.
2010년 6월 4일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각각 내각총리대신 지명 선거가 실시되었으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 내각총리대신 후보 | 정당별 | 득표수 | |
|---|---|---|---|
| 민주당, 국민신당, 의장 | 313 | ||
| 다니가키 사다카즈 | 자유민주당, 부의장 | 116 | |
| 야마구치 나쓰오 | 공명당 | 21 | |
| 시이 가즈오 | 일본공산당 | 9 | |
| 후쿠시마 미즈호 | 사회민주당 | 7 | |
| 와타나베 요시미 | 모두의 당 | 5 | |
| 히라누마 다케오 | 일어나라 일본, 무소속 | 5 | |
| 마스조에 요이치 | 무소속 | 1 | |
| 미투표 | 무소속, 민주당 | 3 | |
| 출처: [https://web.archive.org/web/20171201032026/http://www.shugiin.go.jp/internet/itdb_kaigiroku.nsf/html/kaigiroku/000117420100604034.htm 174th Diet Session (House of Representatives)] | |||
| 내각총리대신 후보 | 정당별 | 득표수 | |
|---|---|---|---|
| 민주당-신록풍회-국민신당, 무소속 | 123 | ||
| 다니가키 사다카즈 | 자유민주당, 무소속, 부의장 | 71 | |
| 야마구치 나쓰오 | 공명당 | 21 | |
| 시이 가즈오 | 일본공산당 | 7 | |
| 후쿠시마 미즈호 | 사회민주당, 무소속 | 6 | |
| 마스조에 요이치 | 신당개혁 | 6 | |
| 히라누마 다케오 | 일어나라 일본 | 2 | |
| 와타나베 요시미 | 무소속 | 1 | |
| 미투표 | 자유민주당, 행복실현당, 의장 | 4 | |
| 출처: [https://web.archive.org/web/20190722123924/http://www.sangiin.go.jp/japanese/joho1/kousei/vote/174/174-0604-v001.pdf 174th Diet Session (House of Councillors)] | |||
4. 내각의 구성 및 인사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이 내각 총사퇴를 한 후,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 간 나오토가 새 대표로 선출되어 내각총리대신으로 지명되었다. 간 내각에서는 센고쿠 요시토 특명담당대신이 내각관방장관으로 기용되었고, 노다 요시히코 재무 부대신과 야마다 마사히코 농림수산 부대신이 각각 재무대신과 농림수산대신으로 승격되었다. 지바 게이코 법무대신은 제22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낙선하여 민간인 각료가 되었다.
하토야마 내각의 각료 17명 중 11명이 유임되었고, 오자와 이치로 전 민주당 간사장과 거리를 두고 있는 인물들이 새롭게 입각하여 '탈 오자와'(脱小沢일본어)색이 뚜렷해졌다. 센고쿠는 이 내각을 ‘젊음과 청신함, 일이 너무 좋은 내각’(若さと清新さ、仕事大好き内閣일본어)이라고 평가했고, 간 나오토는 ‘기병대 내각’(奇兵隊内閣일본어)이라고 명명했다.
간 내각의 국무대신, 부대신, 대신 정무관, 내각관방부장관, 내각법제국 장관, 내각총리대신 보좌관은 아래와 같다.
* 국무대신
* 부대신 및 대신 정무관
* 내각관방부장관, 내각법제국 장관,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4.1. 국무대신
| 직책 | 대수 | 성명 | 주요 경력 | 임시대리 순위 | 재직 기간 | 비고 | |
|---|---|---|---|---|---|---|---|
| 내각총리대신 | 94 | 간 나오토 | 중의원 민주당 (간 그룹) | -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민주당 대표 | |
| 총무대신 | 13 | 하라구치 가즈히로 | 중의원 민주당 (하타 그룹) | -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법무대신 | 지바 게이코 | 참의원 → 민간 민주당 (요코미치 그룹) | 5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외무대신 | 오카다 가쓰야 | 중의원 민주당 (무파벌) | 2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재무대신 | 노다 요시히코 | 중의원 민주당 (노다 그룹) | -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문부과학대신 | 가와바타 다쓰오 | 중의원 민주당 (가와바타 그룹) | -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국립국회도서관 연락조정위원회 위원 | ||
| 후생노동대신 | 나가쓰마 아키라 | 중의원 민주당 (무파벌) | -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연금 개혁 담당 | ||
| 농림수산대신 | 야마다 마사히코 | 중의원 민주당 (오자와 그룹) | -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경제산업대신 | 나오시마 마사유키 | 참의원 민주당 (가와바타 그룹) | -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국토교통대신 | 마에하라 세이지 | 중의원 민주당 (마에하라 그룹) | 3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환경대신 | 오자와 사키히토 | 중의원 민주당 (하토야마 그룹 → 오자와 사키히토 그룹) | -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방위대신 | 기타자와 도시미 | 참의원 민주당 (하타 그룹) | -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내각관방장관 | 센고쿠 요시토 | 중의원 민주당 (마에하라 그룹) | 1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국가공안위원회 위원장 방재 담당 | 나카이 히로시 | 중의원 민주당 (오자와 그룹) (가와바타 그룹) | 4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납치 문제 담당 |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오키나와 및 북방 대책 담당) | 12 | 마에하라 세이지 | 중의원 민주당 (마에하라 그룹) | 3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금융 담당 | 13 | 가메이 시즈카 | 중의원 국민신당 대표 | - | 2010년 6월 8일 ~ 6월 11일 | 우정 개혁 담당 | |
| - | 센고쿠 요시토 | 중의원 민주당 (마에하라 그룹) | 1 | 2010년 6월 11일 | |||
| 14 | 지미 쇼자부로 | 참의원 국민신당 | - | 2010년 6월 11일 ~ 9월 17일 | 우정 개혁 담당 |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소비자 및 식품 안전 담당) | 2 | 아라이 사토시 | 중의원 민주당 (간 그룹) | -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저출산 대책 담당) 남녀 공동 참가 담당) | 6 10 | 겐바 고이치로 | 중의원 민주당 정책조사회장 (무파벌) | -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경제 재정 정책 담당) | 14 | 아라이 사토시 | 중의원 민주당 (간 그룹) | -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국가 전략 담당 |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지역 주권 추진 담당) | 2 | 하라구치 가즈히로 | 중의원 민주당 (하타 그룹) | -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과학 기술 정책 담당) | 13 | 가와바타 다쓰오 | 중의원 민주당 (가와바타 그룹) | -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국립국회도서관 연락조정위원회 위원 | |
| 내각부 특명담당대신 ('새로운 공공' 담당) 행정 쇄신 담당) | 2 3 | 겐바 고이치로 | 중의원 민주당 정책조사회장 (무파벌) | -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공무원 제도 개혁 담당 | |
| 무라타 렌호 | 참의원 민주당 (노다 그룹) | ||||||
4.2. 부대신 및 대신 정무관
간 내각의 부대신 및 대신 정무관은 아래와 같다. 대부분 민주당 소속으로 구성되었다.
| 직책 | 성명 | 주요 경력 | 재직 기간 | 비고 | |
|---|---|---|---|---|---|
| 내각부 부대신 | 오시마 아쓰시 | -- | 중의원 민주당 (하토야마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히라오카 히데오 | -- | 중의원 민주당 (간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오쓰카 고헤이 | -- | 참의원 민주당 (무파벌)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총무 부대신 | 와타나베 슈 | -- | 중의원 민주당 (마에하라 그룹) | 2009년 9월 18일 ~ 2010년 6월 8일 | |
| 나이토 마사미쓰 | -- | 참의원 민주당 (간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법무 부대신 | 가토 고이치 | -- | 중의원 민주당 (간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외무 부대신 | 후지무라 오사무 | 중의원 민주당 (노다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다케마사 고이치 | -- | 참의원 민주당 (노다 그룹) (오자와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재무 부대신 | 후루카와 모토히사 | 중의원 민주당 (마에하라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미네자키 나오키 | -- | 참의원 민주당 (요코미치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문부과학 부대신 | 나카가와 마사하루 | 중의원 민주당 (하타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스즈키 간 | -- | 참의원 민주당 (하토야마 그룹) (마에하라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후생노동 부대신 | 호소카와 리쓰오 | -- | 중의원 민주당 (간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나가하마 히로유키 | -- | 참의원 민주당 (노다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농림수산 부대신 | 시노하라 다카시 | -- | 중의원 민주당 (간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군지 아키라 | -- | 참의원 민주당 (요코미치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경제산업 부대신 | 마시코 데루히코 | -- | 참의원 민주당 (하타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마쓰시타 다다히로 | -- | 중의원 국민신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국토교통 부대신 | 미카즈키 다이조 | -- | 중의원 민주당 (가와바타 그룹) (하토야마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마부치 스미오 | 중의원 민주당 (무파벌)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환경 부대신 | 다지마 잇세이 | -- | 중의원 민주당 (마에하라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방위 부대신 | 신바 가즈야 | -- | 참의원 민주당 (하토야마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직명 | 성명 | 출신 등 | 비고 |
|---|---|---|---|
| 내각부 대신정무관 | 이즈미 켄타 | 중의원/민주당 (마에하라 그룹) | |
| 타무라 켄지 | 중의원/민주당 (칸 그룹) | ||
| 츠무라 케이스케 | 중의원/민주당 (칸 그룹) (마에하라 그룹) | ||
| 총무대신정무관 | 오가와 준야 | 중의원/민주당 (마에하라 그룹) | |
| 카이 타케시 | 중의원/민주당 (오자와 그룹) | ||
| 하세가와 노리마사 | 참의원/국민신당 | ||
| 법무대신정무관 | 나카무라 테츠지 | 참의원/민주당 (마에하라 그룹) | |
| 외무대신정무관 | 키라 슈지 | 중의원/민주당 (오자와 그룹) | |
| 니시무라 치나미 | 중의원/민주당 (칸 그룹) | ||
| 토쿠나가 히사시 | 참의원/민주당 (마에하라 그룹) | ||
| 재무대신정무관 | 오오쿠시 히로시 | 중의원/민주당 (노다 그룹) | |
| 후루모토 신이치로 | 중의원/민주당 (카와바타 그룹) (하토야마 그룹) | ||
| 문부과학대신정무관 | 고토 히토시 | 중의원/민주당 (하타 그룹) | |
| 타카이 미호 | 중의원/민주당 (마에하라 그룹) (칸 그룹) | ||
| 후생노동대신정무관 | 야마이 카즈노리 | 중의원/민주당 (마에하라 그룹) (칸 그룹) | |
| 아다치 신야 | 참의원/민주당 (무파벌) | ||
| 농림수산대신정무관 | 사사키 타카히로 | 중의원/민주당 (요코미치 그룹) | |
| 후나야마 야스에 | 참의원/민주당 (칸 그룹) | ||
| 경제산업대신정무관 | 곤도 요스케 | 중의원/민주당 (노다 그룹) | |
| 타카하시 치아키 | 참의원/민주당 (하토야마 그룹) | ||
| 국토교통대신정무관 | 쵸안 유타카 | 중의원/민주당 (마에하라 그룹) | |
| 츠가와 쇼고 | 중의원/민주당 (무파벌) | ||
| 후지모토 유지 | 참의원/민주당 (노다 그룹) | ||
| 환경대신정무관 | 오오타니 노리모리 | 중의원/민주당 (무파벌) | |
| 방위대신정무관 | 쿠스다 다이조 | 중의원/민주당 (하타 그룹) (노다 그룹) | |
| 나가시마 아키히사 | 중의원/민주당 (노다 그룹) (칸 그룹) | ||
4.3. 기타 인사
내각관방부장관, 내각법제국 장관,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등이 임명되었다.
| 직책 | 대수 | 성명 | 주요 경력 | 재직 기간 | 비고 | |
|---|---|---|---|---|---|---|
| 내각관방부장관(정무) | - | 후루카와 모토히사 | -- | 중의원 민주당 (마에하라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 | 후쿠야마 데쓰로 | 참의원 민주당 (마에하라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내각관방부장관 (사무) | - | 다키노 긴야 | -- | 국가공무원 총무성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내각법제국 장관 | 가지타 신이치로 | -- | 국가공무원 자치성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
| 내각총리대신 보좌관 | - | 아쿠쓰 유키히코 | -- | 중의원 민주당 (간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중소기업 대책·지역 활성화 대책 담당 |
| - | 오가와 가쓰야 | -- | 참의원 민주당 (하토야마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농어촌 지역 활성화 담당 | |
| - | 오사카 세이지 | 중의원 민주당 (간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지역 주권, 지역 활성화 및 지방 행정 담당 | ||
| - | 데라타 마나부 | -- | 중의원 민주당 (간 그룹) | 2010년 6월 8일 ~ 9월 17일 | 국가 전략·행정 쇄신 담당 | |
5. 국회 총리 지명 선거
2010년 6월 4일,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이 내각 총사퇴를 함에 따라 같은 날 실시된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 새 대표로 선출된 간 나오토가 내각총리대신으로 지명되었다. 중의원과 참의원 양원 모두에서 과반수 득표로 지명되었다.
| 내각총리대신 후보 | 득표수 | ||
|---|---|---|---|
| 정당별 | 총계 | ||
| --간 나오토 | 민주당 (309), 국민신당 (3), 의장 (1) | 313 | |
| 다니가키 사다카즈 | 자유민주당 (115), 부의장 (1) | 116 | |
| 야마구치 나쓰오 | 공명당 (21) | 21 | |
| 시이 가즈오 | 일본공산당 (9) | 9 | |
| 후쿠시마 미즈호 | 사회민주당 (7) | 7 | |
| 와타나베 요시미 | 모두의 당 (5) | 5 | |
| 히라누마 다케오 | 일어나라 일본 (3), 무소속 (2) | 5 | |
| 마스조에 요이치 | 무소속 (1) | 1 | |
| 미투표 | 무소속 (2), 민주당 (1) | 3 | |
| 출처: [https://web.archive.org/web/20171201032026/http://www.shugiin.go.jp/internet/itdb_kaigiroku.nsf/html/kaigiroku/000117420100604034.htm 174th Diet Session (House of Representatives)] | |||
| 내각총리대신 후보 | 득표수 | ||
|---|---|---|---|
| 정당별 | 총계 | ||
| --간 나오토 | 민주당-신록풍회-국민신당 (122), 무소속 (1) | 123 | |
| 다니가키 사다카즈 | 자유민주당 (68), 무소속 (2), 부의장 (1) | 71 | |
| 야마구치 나쓰오 | 공명당 (21) | 21 | |
| 시이 가즈오 | 일본공산당 (7) | 7 | |
| 후쿠시마 미즈호 | 사회민주당 (5), 무소속 (1) | 6 | |
| 마스조에 요이치 | 신당개혁 (6) | 6 | |
| 히라누마 다케오 | 일어나라 일본 (2) | 2 | |
| 와타나베 요시미 | 무소속 (1) | 1 | |
| 미투표 | 자유민주당 (2), 행복실현당 (1), 의장 (1) | 4 | |
| 출처: [https://web.archive.org/web/20190722123924/http://www.sangiin.go.jp/japanese/joho1/kousei/vote/174/174-0604-v001.pdf 174th Diet Session (House of Councillors)] | |||
6. 주요 정책 및 활동
간 내각은 '강한 경제', '강한 재정', '강한 사회 보장'을 목표로 내걸었으나, 구체적인 성과는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0년 8월 10일, 대한제국 병합 10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에 대한 사죄를 담은 담화를 각의 결정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 담화는 무라야마 담화를 답습하는 수준에 그쳐 한국 측에 불만을 안겨주었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과거의 과오를 떨쳐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한다는 일본국 정부의 내용 없는 말장난"이라고 비판했다. 일본 국내에서도 "사죄 외교"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2010년 9월 7일, 센카쿠 열도 근해에서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중국 어선이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중국은 센카쿠 열도의 영유를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했고, 일본 내 일본인 학교가 공격받는 사건도 발생했다. 일본은 선장을 석방했지만, 유약한 외교라는 비판을 받았다.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대한 대응이 미흡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후 일본의 에너지 정책을 변경하여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과 원자력 발전소 폐쇄를 추진했다.
6.1. 경제 정책
円高일본어 및 주가 하락에 대한 대응: 2010년 9월, 円高일본어 시정을 위해 환율 개입을 실시했다. '강한 경제', '강한 재정', '강한 사회 보장'을 목표로 내걸었으나, 구체적인 성과는 미흡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0년 8월, 미국 경제에 대한 경기 둔화 우려로 엔화가 대량으로 매수되면서, 8월 11일에는 15년 만에 1달러당 84엔 대에 돌입했다. 이에 따라 닛케이 평균 주가도 하락세를 지속했다.
이 급격한 円高일본어 및 주가 하락은 자동차, 전기 메이커 각사에게 최대의 리스크 요인으로 부상했고, 일본자동차공업회의 시가 토시유키 회장은 정부 및 일본은행에 조속한 대책을 요구했지만, 간 나오토 총리는 하계 휴가를 속행하고 구체적인 지시도 내리지 않아 총리 관저는 휴업 상태가 지속되었다. 간 나오토 총리는 종래부터 "강한 경제", "강한 재정", "강한 사회 보장"을 내각의 목표로 내걸고 있지만, 강한 메시지는 아무것도 내놓지 못한다고 산케이 비즈는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해 민주당의 "디플레이션에서 탈피하여 경기 회복을 목표로 하는 의원 연맹"은, 조속하고 철저한 엔고 대책을 요구하는 긴급 성명을 발표하고, 정부 및 일본은행에 대해 대책을 요구했다.
6.2. 외교 정책
2010년 8월 10일, 간 내각은 대한제국 병합 10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에 대한 사죄를 담은 담화를 각의 결정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 담화는 기본적으로 무라야마 내각총리대신 담화 '전후 50주년의 종전 기념일에 즈음하여'를 답습하는 것이어서 한국 측에 강한 불만을 안겨주었다. 게다가,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과 적대했던 중화인민공화국이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 의해 통치되었던 대만으로부터 한국에만 사죄하는 담화에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북한은 "무라야마 담화나 고이즈미 내각총리대신 담화보다 후퇴한 것이며, 우리나라에 대한 국권 강탈을 인정하지 않고 사죄도 배상도 하려 하지 않는 강도와 같은 본성이 숨어 있다"고 비난했다。또한, 종군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점에 대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과거의 과오를 떨쳐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한다는 일본국 정부의 내용 없는 말장난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통렬하게 비난했다。
일본 국내에서도 "사죄 외교", "뒤처진 담화", "이미 해결된 문제를 들추어낸다" 등의 비판이 제기되었으며, 사쿠라이 요시코 등의 저널리스트는 간 총리의 외교를 "초보 집단 외교"라고 평했다。
중국 언론은 간 담화가 일본, 한국, 북한 어느 나라에서도 불만을 사고 있다며,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한반도를 병합한 것에 대해 설마 일본, 한국, 북한 '3방향'에서 강렬한 '꾸짖음'을 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보도하며 담화에 대한 관계국 및 주변국, 그리고 일본 국내에서의 낮은 평가를 소개했다。
한국 정부는 이 담화를 번역할 때, 한반도 유래의 문화재를 "전해 드린다"라고 표현한 것을 의도적으로 "반환"으로 수정했지만, 이에 대해 오카다 가쓰야 외무상은 항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산케이 신문은 우려했던 "사죄 외교의 악순환"이 벌써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2010년 9월 7일, 센카쿠 열도 근해에서 해상보안청의 순시선과 중국 어선이 충돌하는 사건이 발생했다.해상보안청은 중국 어선 측이 고의로 순시선에 충돌했다고 판단, 선장을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체포하고, 배를 나포했다.
중국은 센카쿠 열도의 영유를 주장하고 있어, 승무원과 어선을 돌려줄 것을 강력히 주장했다. 일본 측은 센카쿠 열도는 일본 고유의 영토이며, 영유 문제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에서 이를 거부했다. 중국은 주중국 대사인 니와 우이치로를 불러 엄중 항의를 했다. 니와는 같은 문제로 5번이나 중국에 불려갔다(그 중 1번은 심야로, 외교상 매우 무례한 행위로 여겨진다).
중국에서는 톈진의 일본인 학교에 쇳덩이를 학교를 향해 발사하여 창문을 파괴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또한 같은 학교에는 "중국의 국민은 침범을 허용하지 않는다"라는 중국어 낙서가 쓰여지는 사건도 발생했다。
일본은 9월 24일에 선장을 석방했지만, 이에 대해 야당과 여론은 유약한 외교라고 비판을 강화했다。 미국의 월스트리트 저널은 "온라인 여론을 보면, 일본은 완전한 패자"라고 지적했다。
6.3. 기타 정책
간 내각은 동일본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에 대한 대응이 미흡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지진, 쓰나미,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발생한 이후, 간 내각은 일본의 에너지 정책 노선을 변경하여 친원자력 정책에서 벗어나 재생 에너지로의 전환과 원자력 발전소 폐쇄를 추진했다.
7. 비판 및 논란
자유민주당 총재 타니가키 사다카즈는 "지금까지 이상으로 좌익적인 색채를 가진 정권이 될 것"이라고 비판했고, 공명당 대표 야마구치 나쓰오는 "폐자재를 모은 임시 내각"이라고 비판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사상 유례없는 음습한 좌익 정권"이라고 비판했고, 아소 다로 전 총리도 "시민 운동이라고 하면 듣기 좋지만, 이 정도의 좌익 정권은 처음이다."라고 비판했다.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는 "이번 간 내각은 극좌",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준다니. 이건 대체 뭔가"라고 비판했다.
7.1. 내각 구성에 대한 비판
자유민주당 총재 타니가키 사다카즈는 "멤버를 보면 지금까지 이상으로 좌익적인 색채를 가진 정권이 될 것이라는 위구심을 가지고 있다"라고 비판했고, 공명당 대표 야마구치 나쓰오는 "간 내각은 '폐자재를 모은 임시 내각'이다.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이 학급 붕괴 상태라고 말해지던 와중에, 불 속의 밤을 주우려 하지 않고 가만히 있던 간이 총리가 되어 무엇인가 기대를 할 수 있을까"라고 비판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는 "사상 유례없는 음습한 좌익 정권"이라고 비판했고, 아소 다로 전 총리도 "시민 운동이라고 하면 듣기 좋지만, 이 정도의 좌익 정권은 처음이다. 대립축이 뚜렷해졌다"라고 비판했다.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도지사는 간 내각에 대해 "이번 간 내각, 저것도 극좌니까", "극좌니까 같은 말을 하고, 더 심한 짓을 할지도 모르지만, 지방에 한정해 (외국인에게) 참정권을 준다니. 이건 대체 뭔가"라고 비판했다.
7.2. 간 담화에 대한 비판
2010년 8월 10일, 간 내각은 대한제국 병합 10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에 대한 사죄를 담은 담화를 각의 결정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 담화는 기본적으로 무라야마 내각총리대신 담화 '전후 50주년의 종전 기념일에 즈음하여'를 답습하는 것이어서 한국 측에 강한 불만을 안겨주었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 일본과 적대했던 중화인민공화국이나,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 의해 통치되었던 대만으로부터 한국에만 사죄하는 담화에 불만의 목소리가 나왔다. 북한은 "무라야마 담화나 고이즈미 내각총리대신 담화보다 후퇴한 것이며, 우리나라에 대한 국권 강탈을 인정하지 않고 사죄도 배상도 하려 하지 않는 강도와 같은 본성이 숨어 있다"고 비난했다. 종군 위안부 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점에 대해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과거의 과오를 떨쳐내고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한다는 일본국 정부의 내용 없는 말장난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라고 통렬하게 비난했다.
일본 국내에서도 "사죄 외교", "뒤처진 담화", "이미 해결된 문제를 들추어낸다" 등의 비판이 제기되었으며, 사쿠라이 요시코 등의 저널리스트는 간 총리의 외교를 "초보 집단 외교"라고 평했다.
중국 언론은 간 담화가 일본, 한국, 북한 어느 나라에서도 불만을 사고 있다며,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한반도를 병합한 것에 대해 설마 일본, 한국, 북한 '3방향'에서 강렬한 '꾸짖음'을 받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보도하며 담화에 대한 관계국 및 주변국, 그리고 일본 국내에서의 낮은 평가를 소개했다.
한국 정부는 이 담화를 번역할 때, 한반도 유래의 문화재를 "전해 드린다"라고 표현한 것을 의도적으로 "반환"으로 수정했지만, 오카다 가쓰야 외무상은 항의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산케이 신문은 우려했던 "사죄 외교의 악순환"이 벌써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7.3. 지바 법무대신의 유임 논란
제22회 참의원 의원 통상 선거에서 가나가와현 선거구에 출마한 지바 게이코 법무대신은 차점으로 낙선했으나, 법무대신 직을 유임했다. 이는 국민의 심판인 선거에서 낙선한 정치인이 각료 자리에 머무르는 것에 대해 야당 등으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지바는 낙선 68일 후인 2010년 9월 17일 퇴임할 때까지 민간인 각료로서 49일간 재임했는데, 이는 국정 선거에서 낙선한 각료가 직무를 계속한 이전 최장 기록인 제4차 요시다 내각의 하야시야 가메지로 (낙선 27일 후 퇴임, 민간인 각료 19일 재임)를 크게 갱신한 것이다.
2010년 7월 28일, 지바는 취임 후 처음으로 사형 집행 명령을 내렸다. 센고쿠 요시토 관방장관 등은 지바가 법에 따라 적정하게 사형을 집행했다고 옹호했다. 그러나 지바가 소속되었던 "사형 폐지를 추진하는 의원 연맹" 회원들은 "지바 씨는 엄청난 변절을 했다"고 비판했다. 8월 2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는 "국민의 지지를 위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왔지만, 지바는 이를 강하게 부정했다.
간 나오토는 2010년 8월 3일 중의원 본회의에서 다이라이 사부로가 1977년 참의원 선거 전국구에서 낙선했지만 2년 후인 1979년에 민간인 각료로서 외무대신에 취임한 예를 들며, 현직 각료로서 낙선한 지바의 각료 유임은 국정 선거 당락이나 의원 자격 유무와 관계없이 대신에 적임이기 때문이라고 답변했다.
8. 연표
* 2010년 6월 4일 - 하토야마 유키오 내각총리대신의 사임으로 내각총리대신 지명선거에서 간 나오토 민주당 대표가 제94대 내각총리대신으로 선출되었다.
* 2010년 6월 8일 - 천황에 의한 친임식을 거쳐 정식으로 내각을 발족했다.
* 2010년 6월 11일 - 가메이 시즈카 국민신당 대표가 금융 담당 대신과 우정 개혁 담당 대신을 동시에 사임, 후임에는 국민신당 소속의 지미 쇼자부로가 임명되었다.
* 2010년 7월 11일 - 제22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여당이 과반수 확보에 실패하였고, 지바 게이코 법무대신이 낙선하였다.
* 2010년 9월 14일 - 임기 만료에 따른 민주당 대표 선거에서 간 총리가 오자와 이치로 전 간사장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 2010년 9월 17일 - 간 총리가 민주당 집행부를 쇄신함과 동시에 내각 개조를 단행, 간 나오토 개조내각이 발족되었다.
* 2011년 1월 14일 - 간 내각 제2차 개조 내각 발족.
* 2011년 9월 2일 - 간 내각 총사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