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군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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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국민군주제는 군주의 칭호가 국민의 의지를 반영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프랑스에서는 프랑스 혁명 이후 왕의 칭호가 "프랑스인의 왕"으로 변경되어 국민의 대표성을 강조했고, 벨기에는 국왕을 "벨기에 국민의 국왕"으로 칭하며 국민 주권을 강조했다. 그리스는 1832년 독립 이후 "헬렌인들의 왕" 칭호를 사용하며 국민의 주권을 나타냈으며, 독일 제국은 황제를 통해 군주제를 운영했다. 이 외에도 잉글랜드, 포르투갈, 세르비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군주 칭호가 변화해왔다.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아메리카 대륙에서도 각 지역의 문화와 역사에 따라 다양한 군주 칭호가 사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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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군주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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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 |
정의 | |
특징 | 군주의 권력이 귀족 또는 교회와 같은 비국민적 출처가 아닌 국민의 의지에서 비롯되는 군주제의 형태 |
핵심 | 군주는 국민의 대리인으로서 통치하며,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음 |
차이점 | 일반적인 군주제와 달리 군주는 단순히 세습이나 신성한 권리에 의해 통치하는 것이 아님 공화정과는 달리 국가 원수가 세습되거나 선출되는 인물임 |
역사적 배경 | |
발전 배경 | 프랑스 혁명과 같은 혁명적 변화와 민족주의의 부상과 관련 군주제의 정당성을 유지하면서 변화하는 정치적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시도 |
이론적 근거 | 장 자크 루소의 사회 계약론과 같은 사상에 영향 받음 |
사례 | |
유럽 | 프랑스: 7월 왕정 시기의 루이 필리프 1세 (프랑스의 왕) 벨기에: 벨기에의 왕 (벨기에인의 왕) |
설명 | 군주의 칭호가 영토가 아닌 국민을 나타냄 군주가 국민의 주권을 인정하고 헌법에 따라 통치하는 것을 의미 |
기타 | 통일 이탈리아 |
현대적 함의 | |
상징적 역할 | 현대 입헌군주제에서 군주는 상징적인 역할 수행 국가의 통합과 연속성을 상징하며, 정치적 안정을 제공 |
권력의 원천 | 군주의 권력은 여전히 국민의 동의와 지지에 기반 |
참고 문헌 |
2. 목록
국가 | 왕작 작위명 | 비고 |
---|---|---|
신성 로마 제국 | 로마인의 왕 | 신성로마황제 선출자에게 주어지는 칭호였다. |
예탈란드 왕국 | 기트인의 왕 | 중세 라틴어로 Rex Getarum|렉스 게타룸la, 스웨덴어로 Götar konung|예타르 코눙sv이었다. |
크로아티아 왕국 | 크로아트인의 왕 | 크로아티아어로 Kralj Hrvata|크랄리 흐르바타hr, 중세 라틴어로 Rex Chroatorum|렉스 크로아토룸la이었다. 이후 "크로아트인과 달마티아인의 왕(Kralj Hrvata i Dalmatinaca|크랄리 흐르바타 이 달마티나차hr, Rex Chroatorum Dalmatarumque|렉스 크로아토룸 달마타룸퀘la)"으로 확장되었다. |
포르투갈 왕국 | 포르투갈인의 왕 | 최초의 포르투갈 왕인 아폰수 1세는 자신이 전쟁터에서 왕으로 선출되었음을 기억하기 위해 이 칭호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 후대 왕들은 "포르투갈 국왕(Rex Portugaliae|렉스 포르투갈리아에la, Rei de Portugal|레이 드 포르투갈pt)" 칭호를 선호했다. |
프랑크 왕국 / 중세 프랑스 | 프랑크인의 왕 | 피핀 3세 이후 카롤링거 왕조 및 중세 프랑스에서 사용되었다. |
프랑스-나바르 왕국 | 프랑스인의 왕 | 루이 16세가 1791년-1792년(프랑스 입헌왕국 기간)에, 루이 필리프 1세가 1830년-1848년(7월 왕정)에 사용했다. |
프랑스 제국 | 프랑스인의 황제 | 나폴레옹 1세, 나폴레옹 2세, 나폴레옹 3세가 사용했다. |
벨기에 왕국 | 벨기에인의 왕 | 1831년 레오폴 1세가 입헌한 이래로 이 칭호를 사용했으며, 현재 유일한 국민군주제 국가이다. |
그리스 왕국 | 헬라인의 왕 | 1863년-1974년 왕정폐지 때까지 사용되었다. |
독일 제국 | 독일 황제 | 1871년-1918년 제정폐지 때까지 사용되었으며, "독일인의 황제"와 "독일국 황제"의 중간 형태이다. |
유고슬라비아 왕국 | 세르브인, 크로아트인, 슬로벤인의 왕 | 1918년에서 1929년 사이 사용되었으며,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왕"으로 변경되었다. 이 시기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슬로베니아인 왕국"이라고도 불렸다. |
알바니아 왕국 | 알바니아인의 왕 | 조그 1세가 사용했다. 1939년 조그 1세로부터 알바니아 왕위를 빼앗은 이탈리아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알바니아 국왕" 칭호를 사용했다. |
루마니아 왕국 | 루마니아인의 왕 | 1881년-1947년 사이에 사용되었다. |
잉글랜드 왕국 | 앵글로색슨인의 왕 또는 앵글인의 왕 | 중세 라틴어로 Rex Anglorum Saxonum|렉스 앙글로룸 삭소눔la 또는 Rex Anglorum|렉스 앙글로룸la이었다. 9세기 말 앨프리드 대왕이 머시아 백성들이 자신을 왕으로 인정하자 그때부터 사용하기 시작했다. "잉글랜드 국왕"이라는 칭호는 애설스턴이 노르드인이 지배하는 요르비크를 쳐부수고 잉글랜드를 통일시켰을 때부터 사용되었다. |
스코틀랜드 왕국 | 스코트인의 왕 | 1707년 연합법으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왕위가 폐지되고 그레이트브리튼 왕위로 통합되었다. |
웨일스 공국 | 웨일스인의 공 | 브리튼인의 왕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12세기부터 "웨일스 공" 으로의 변화가 이루어졌다. 다버드 압 허웰린 시대에 이르러 웨일스인 뿐 아니라 웨일스 땅에 사는 모든 이를 다스린다는 의미에서 "웨일스 공"이 공식화되었다. |
불가리아 차르국 | 불가리아인의 차르 | 페르디난드 1세의 1908년-1918년 사이 공식 왕호였다. 페르디난드의 아들인 보리스 3세와 손자 시메온 2세는 "하느님의 은총과 인민의 의지로 세우신 불가리아인의 차르"가 공식 왕호였다. 페르디난드 1세는 1887년 국회에서 "불가리아국 공"으로 선출되었다. |
하자르 카간국 | 카간 |
2. 1. 유럽
유럽에서는 다양한 국가에서 국민군주제가 나타났으며, 각 국가의 역사와 상황에 따라 다양한 칭호가 사용되었다.국가 | 왕작 작위명 | 비고 |
---|---|---|
신성 로마 제국 | 로마인의 왕 | 신성로마황제 선출자에게 주어지는 칭호였다. |
예탈란드 왕국 | 기트인의 왕 | 중세 라틴어로 Rex Getarum|렉스 게타룸la, 스웨덴어로 Götar konung|예타르 코눙sv이라고 불렸다. |
크로아티아 왕국 | 크로아트인의 왕 | 크로아티아어로 Kralj Hrvata|크랄리 흐르바타hr, 중세 라틴어로 Rex Chroatorum|렉스 크로아토룸la이라고 불렸다. 이후 "크로아트인과 달마티아인의 왕(Kralj Hrvata i Dalmatinaca|크랄리 흐르바타 이 달마티나차hr, Rex Chroatorum Dalmatarumque|렉스 크로아토룸 달마타룸퀘la)"으로 확장되었다. |
포르투갈 왕국 | 포르투갈인의 왕 | 최초의 포르투갈 왕인 아폰수 1세는 자신이 전쟁터에서 왕으로 선출되었음을 기억하기 위해 이 칭호를 사용했다. 하지만 그 후대 왕들은 "포르투갈 국왕(Rex Portugaliae|렉스 포르투갈리아에la, Rei de Portugal|레이 드 포르투갈pt)" 칭호를 선호했다. |
프랑크 왕국 / 중세 프랑스 | 프랑크인의 왕 | 피핀 3세 이후 카롤링거 왕조 및 중세 프랑스에서 사용되었다. |
프랑스 제국 | 프랑스인의 황제 | 나폴레옹 1세, 나폴레옹 2세, 나폴레옹 3세가 사용했다. |
유고슬라비아 왕국 | 세르브인, 크로아트인, 슬로벤인의 왕 | 1918년에서 1929년 사이 사용되었으며,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왕"으로 변경되었다. 이 시기 유고슬라비아 왕국은 "세르비아인-크로아티아인-슬로베니아인 왕국"이라고도 불렸다. |
알바니아 왕국 | 알바니아인의 왕 | 조그 1세가 사용했다. 1939년 조그 1세로부터 알바니아 왕위를 빼앗은 이탈리아의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알바니아 국왕" 왕호를 사용했다. |
스코틀랜드 왕국 | 스코트인의 왕 | 1707년 연합법으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왕위가 폐지되고 그레이트브리튼 왕위로 통합될 때까지 사용되었다. |
웨일스 공국 | 웨일스인의 공 | 브리튼인의 왕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12세기부터 "웨일스 공" 으로의 변화가 이루어졌고, 다버드 압 허웰린 시대에 "웨일스 공"이 공식화되었다. |
불가리아 차르국 | 불가리아인의 차르 | 페르디난드 1세가 1908년부터 1918년까지 사용한 공식 왕호였다. 보리스 3세와 시메온 2세는 "하느님의 은총과 인민의 의지로 세우신 불가리아인의 차르"가 공식 왕호였다. 페르디난드 1세는 1887년 국회에서 "불가리아국 공"으로 선출되었었다. |
2. 1. 1. 프랑스
1791년부터 1792년까지 루이 16세는 '프랑스의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고, 1830년부터 1848년까지 루이 필리프 1세 또한 이 칭호를 사용했다.[2] 프랑스 제국 시기에는 나폴레옹 1세, 나폴레옹 2세 (매우 짧고 형식적으로), 나폴레옹 3세가 '프랑스인의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했다.[3]2. 1. 2. 벨기에
벨기에 왕국은 1831년 레오폴 1세가 헌법 서약을 한 이후 ''벨기에인의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2] 이 칭호는 현재 벨기에에서 유일하게 사용되는 대중적 군주제 칭호이다.[2] 이 칭호를 사용한 인물로는 레오폴 1세, 레오폴 2세, 알베르 1세, 레오폴 3세, 보두앵, 알베르 2세, 그리고 현재 국왕인 필리프가 있다.[2]2. 1. 3. 그리스
1863년부터 1973년까지 그리스 왕국(글뤽스부르크 왕가)의 그리스 군주는 ''헬레네스의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콘스탄티노스 2세는 1967년부터 망명 상태였다. 그러나 1832년 5월부터 1862년 10월 추방 및 퇴위까지 통치했던 오토 국왕은 ''그리스 국왕''으로 불렸다.[2]2. 1. 4. 독일
독일 제국은 '독일-로마 황제'라는 칭호를 사용했는데, 이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의 일반적인 독일어 칭호인 뢰미슈-도이처 카이저de를 번역한 것이다. 문자 그대로는 '로마-독일 황제'를 의미한다.[2]2. 1. 5. 루마니아
루마니아 왕국은 1881년부터 1947년까지 '루마니아인의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2][3][4] 이 칭호를 사용한 인물은 루마니아의 카롤 1세, 루마니아의 페르디난드 1세, 루마니아의 카롤 2세, 루마니아의 미하이 1세이다.2. 1. 6. 불가리아
불가리아 왕국의 공식 칭호는 "신의 은총과 인민의 뜻에 따라 불가리아인의 왕"이었다.[2] 이 칭호는 1908년부터 1918년까지 페르디난트 1세가 사용했고, 그의 아들 보리스 3세(1918년-1943년), 보리스의 아들 시메온 2세(1943년-1946년)도 사용했다. 페르디난트 1세는 1887년 국민 의회에서 불가리아 공으로 선출되었다.2. 1. 7. 잉글랜드
앵글로색슨인의 왕 또는 잉글랜드인의 왕(중세 라틴어로 ''Rex Anglorum Saxonum'' 또는 ''Rex Anglorum'')이라는 칭호는 잉글랜드의 앵글로색슨 왕들이 사용했다. ''앵글로색슨인의 왕''이라는 칭호는 알프레드 대왕이 머시아 사람들이 그를 통치자로 받아들였을 때 9세기 후반에 처음 채택되었다. 스스로 ''잉글랜드인의 왕''이라고 칭한 최초의 왕은 927년 노르웨이의 요크 왕국을 정복하여 잉글랜드를 통일한 최초의 통치자가 된 애설스탠이었다.[2]2. 1. 8.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인의 왕이라는 칭호는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가 스코틀랜드의 왕과 여왕으로 불리기로 선택하면서 덜 일반적이 되었다.[2] 1707년 연합법은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왕위를 폐지하고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을 만들었다.[3]2. 1. 9. 크로아티아
크로아티아 왕국의 칭호는 크로아티아어로 Kralj Hrvatahr, 중세 라틴어로 Rex Chroatorumla이었다. 이후 ''크로아티아인과 달마티아인의 왕''(Kralj Hrvata i Dalmatinacahr 또는 Rex Chroatorum Dalmatarumquela)으로 확장되었다.[2][3][4] 여기서 달마티아인은 스플리트, 자다르, 트로기르, 흐바르섬, 라브섬 등 달마티아 도시들의 라틴계 주민을 가리키며, 오늘날 크로아티아 남부 주민을 뜻하는 달마티아인과는 다르다. 1102년 헝가리 왕 칼만이 비오그라드나모루에서 대관하고 크로아티아가 헝가리 왕국과 동군 연합을 맺으면서, 헝가리 왕 칭호에 크로아티아와 달마티아의 왕()이 추가되었고, 크로아티아 군주 칭호에서는 민족적 군주제 성격이 사라졌다.2. 1. 10. 포르투갈
최초의 포르투갈 국왕인 아폰수 엔리케스는 오리케 전투 (1139년) 이후 동료와 신하들에 의해 전장에서 선출되었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포르투갈인의 왕'' (Rex Portugalensium|렉스 포르투갈렌시움la)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그러나 그 후손들은 ''포르투갈의 왕'' (Rex Portugaliae|렉스 포르투갈리아에la 또는 Rei de Portugal|레이 드 포르투갈pt)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2. 1. 11. 세르비아/유고슬라비아
페타르 1세와 알렉산다르 1세는 1918년부터 1929년까지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의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1929년 이후에는 이 칭호가 '유고슬라비아 국왕'으로 변경되었다.[2][3][4]2. 1. 12. 알바니아
알바니아 왕국의 알바니아인의 왕이라는 칭호는 1928년 사실상, 1939년부터 1946년까지 법적으로 조그 1세가 사용했다.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1939년부터 1943년까지 알바니아 왕위를 주장하며 ''알바니아 국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2]2. 2. 기타 지역
하자르를 제외한 다른 지역의 군주들은 각 국가의 백성을 기반으로 한 칭호를 사용했다. 예를 들어, 알바니아 왕국에서는 '알바니아인의 왕', 벨기에 왕국에서는 '벨기에인의 왕', 불가리아 왕국에서는 '불가리아인의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 스코틀랜드 왕국에서는 '스코틀랜드인의 왕'이라는 칭호를 사용하다가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 때부터 덜 쓰이게 되었고, 1707년 연합법으로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의 왕위가 폐지되고 그레이트브리튼 왕국이 만들어졌다. 세르비아 왕국 / 유고슬라비아 왕국에서는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의 왕' 또는 '유고슬라비아 국왕'이라는 칭호를 1918년부터 1929년까지 사용했고,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 국왕'으로 칭호를 변경했다.국가 | 칭호 | 비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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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니아 왕국 | 알바니아인의 왕 | 1928년부터 조그 1세가 사용했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는 1939년부터 1943년까지 이 칭호를 사용했다. |
벨기에 왕국 | 벨기에인의 왕 | 1831년 레오폴 1세 이후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다. |
불가리아 왕국 | 불가리아인의 왕 | 1908년부터 페르디난트 1세, 보리스 3세, 시메온 2세가 사용했다. |
스코틀랜드 왕국 | 스코틀랜드인의 왕 | 윌리엄 3세와 메리 2세 이후 덜 사용되었고, 1707년 연합법으로 폐지되었다. |
세르비아 왕국 / 유고슬라비아 왕국 |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의 왕 또는 유고슬라비아 국왕 | 1918년부터 1929년까지 사용되었으며, 이후에는 유고슬라비아 국왕으로 변경되었다. |
2. 2. 1. 하자르
하자르 카간국의 통치자는 '카간'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참조
[1]
간행물
The Evolution of Popular Monarchy
1936-04-01
[2]
인용
[3]
인용
[4]
인용
[5]
간행물
The Evolution of Popular Monarchy
200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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