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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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권정생은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태어나 가난한 환경에서 성장했으며, 한국전쟁 이후 경상북도 안동에 정착하여 교회 종지기로 생활하며 동화 작가로 활동했다. 그는 결핵과 신부전증으로 투병하다 2007년 사망했다. 그의 작품은 자연, 생명, 어린이, 이웃에 대한 사랑을 주제로 하며, 대표작으로 《강아지똥》, 《몽실언니》 등이 있다. 권정생은 생전에 인세를 북한, 아시아, 아프리카 자선 단체에 기부하고, 자신의 오두막집을 자연으로 돌려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뜻을 기려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이 설립되었고, 2014년에는 안동시에 권정생 동화나라가 개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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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생 - [인물]에 관한 문서 | |
---|---|
한국어 이름 | |
한글 | 권정생 |
한자 | 権正生 |
로마자 표기 | Gwon Jeongsaeng |
매큔-라이샤워 표기 | Kwŏn Chŏngsaeng |
기본 정보 | |
아명 | 권경수 |
출생일 | 1937년 9월 10일 |
출생지 | 일본 제국 도쿄도 시부야구 혼마치 |
사망일 | 2007년 5월 17일 |
사망지 | 대한민국 대구광역시 남구 대명동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
국적 | 대한민국 |
직업 | 동화작가, 수필가, 시인 |
활동 기간 | 1969년 ~ 2007년 |
종교 | 개신교(예장통합) |
배우자 | 없음 (독신) |
부모 | 권유술(부), 안귀순(모) |
형제자매 | 5남 2녀 중 넷째 아들, 누나 2명, 형 3명, 남동생 1명 |
학력 | |
최종 학력 | 일직국민학교 졸업 |
수상 | |
수상 내역 | 1969년 《강아지똥》 제1회 기독교 아동문학상 1975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 |
기타 | |
웹사이트 |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 |
2. 생애
권정생은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해방 후 대한민국으로 귀국했다. 가난으로 인해 정규 교육을 받지 못하고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힘든 삶을 살았다. 1957년 경상북도 안동에 정착하여 교회 관리인으로 일하면서 작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1969년 "강아지똥"을 발표하며 작가로 등단했고, 이후 꾸준한 작품 활동을 통해 소외된 이웃과 자연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장로교 신자로서 믿음을 바탕으로 작품 활동을 했으며, 검소한 삶을 실천하다 2007년 지병으로 사망했다. 그는 자신의 인세를 어려운 이웃에게 기부하고, 자신의 집을 자연에 맡기는 등 마지막까지 나눔을 실천했다.[7][2]
2. 1. 출생과 가난
권정생은 1937년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해방 후 경상북도 청송으로 귀국했다. 가난 때문에 재봉기 상회 점원, 나무 장수, 고구마 장수 등을 하며 객지를 떠돌았다.[7] 1957년 경상북도 안동군 일직면 조탑리에 들어왔으며, 25세 때 지병인 결핵 때문에 집을 나갔다가 1966년에 다시 정착하였다.[7] 그는 매우 가난했기 때문에 정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고, 서기로 일하며 때로는 도박에 의존하며 한국을 떠돌아다녔다.[2]2. 2. 떠돌이 생활과 정착
권정생은 일본 도쿄 시부야에서 가난한 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해방 후 경상북도 청송으로 귀국했다. 가난 때문에 재봉기 상회 점원, 나무장수, 고구마 장수 등을 하며 객지를 떠돌다가 1957년 경상북도 안동군 일직면 조탑리에 들어왔다. 당시 그의 나이는 21세였다. 25세 때 지병인 결핵 때문에 집을 나갔다가, 1966년에 다시 정착하여 1982년까지 마을 교회 종지기로 살았다. 그는 순수한 성품으로 마을 사람들의 호감을 샀으며, 교회 학교 교사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직접 창작한 동화를 구연하기도 했다.[7]2. 3. 작가 활동과 투병
권정생은 1937년 일본 도쿄에서 태어나 해방 후 경상북도 청송군으로 귀국했다. 가난 때문에 재봉기 상회 점원, 나무장수, 고구마 장수 등을 하며 떠돌다가 1957년 경상북도 안동군 일직면 조탑리에 들어왔다. 25세 때 결핵을 앓아 집을 나갔다가, 1966년에 다시 정착하여 1982년까지 마을 교회 종지기로 살았다. 그는 교회학교 교사를 하면서 아이들에게 동화를 구연하기도 했다.1969년 첫 작품인 "강아지똥"을 기독교 교육에 게재했고, 1971년에는 단편 "아기 양의 그림자 딸랑이"(아기 양의 그림자 딸랑이|Agiyangui geurimja ttallangi한국어)가 매일신문 봄 문예 공모전에 당선되었으며, 1973년에는 "무명 저고리와 엄마"(무명 저고리와 엄마|Mumyeong jeogoriwa eomma한국어)가 조선일보 문학 공모에 당선되었다.
장로교 신자였던 그는 믿음을 바탕으로 자연과 생명, 어린이, 이웃 그리고 무고하게 고난받는 이들에 대한 사랑을 작품의 주요 주제로 다뤘다.[7] 동화 작가로서 많은 인세를 받았지만, 1983년 이후 직접 지은 5평짜리 오두막집에서 강아지와 함께 검소하게 살았다. 2007년 5월 17일 지병이었던 결핵과 신부전증의 합병증으로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에서 7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7]
만년에 병을 얻어 유언으로 자신의 인세 전액을 북한,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자선 단체에 기부하고, 자신의 오두막집을 철거하거나 자연에 맡기고, 시신을 화장하여 집 뒤 산에 뿌려달라고 요청했다.[2]
2. 4. 사후
권정생은 2007년 5월 17일 지병이었던 결핵과 신부전증의 합병증이 악화되어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에서 71세의 나이로 사망했다.[7] 그는 유언으로 자신의 인세 전액을 북한,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자선 단체에 기부하고, 자신의 오두막집을 철거하거나 자연에 맡기고, 시신을 화장하여 집 뒤 산에 뿌려달라고 요청했다.[2]3. 작품 세계
권정생의 작품은 종교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것들에 대한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강아지똥》과 《몽실언니》는 무시당하고 상처받는, 소외된 주인공들의 모습을 잘 그려내어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다.[9]
대한민국 문학번역원은 권정생의 작품을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3]
권정생한국어은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한국 노동자의 아들로 자란 자신의 경험이 문학적 상상력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권정생한국어은 한국 산업화의 격동기에 고통받는 민초들의 슬픔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는 동시에, 어두운 삶 속에서도 희망과 굳건한 생명력을 발견해내려 했다. 그의 작품은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려 한다. 어린아이의 시각을 빌려, 권정생한국어은 이념적 갈등이나 사회적 구조에 물들지 않은 삶의 진실과 순수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3. 1. 주제 의식
권정생의 작품은 종교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것들에 대한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으로 평가된다. 특히 《강아지똥》과 《몽실언니》는 무시당하고 상처받는, 그리고 소외된 주인공들의 모습을 잘 그려내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9]《강아지똥》은 닭과 진흙에게 무시를 당하고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던 강아지 똥이 민들레의 거름이 되어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는 내용으로, 60만 부 이상이 팔렸으며, 현재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있다. 1996년에는 어린이 그림책으로 제작되어 성공을 거두었다.[4]
《몽실언니》는 전쟁과 가난에 허덕이지만 어린 동생과 함께 꿋꿋이 버텨내는 한 절름발이 소녀의 감동적인 이야기로, 1984년 첫 출간 이래 100만 부가 넘게 팔렸고, 1990년 MBC에서 드라마로도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창작동화 중 하나인 《황소아저씨》는 황소 아저씨가 엄마가 없는 생쥐 남매들에게 여물을 먹이고, 자신의 따뜻한 품에서 잘 수 있게 해 주었다는 이야기로서, 이야기는 짧지만 동물을 사랑하는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다. 금성문화사와 길벗 어린이에서 출판하였으며, 황소아저씨는 권정생 자신을 가리킨다는 평가가 있다.[9]
대한민국 문학번역원은 권정생의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3]
권정생은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한국 노동자의 아들로 자란 자신의 경험이 문학적 상상력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다. 권정생은 한국 산업화의 격동기에 고통받는 민초들의 슬픔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는 동시에, 어두운 삶 속에서도 희망과 굳건한 생명력을 발견해내려 했다. 그의 작품은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려 한다. 어린아이의 시각을 빌려, 권정생은 이념적 갈등이나 사회적 구조에 물들지 않은 삶의 진실과 순수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Kwon Jeong-saeng’s work is informed by his experience of growing up as the son of a Korean laborer in Japan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Kwon sought to shed new light on the pains of the common people suffering during the tumult of Korea’s industrialization, and at the same time, to discover hope and a sturdy life-force even in the darkest of lives. His work attempts to represent a love for all life, including those who persevere through hardship without losing hope. By borrowing the gaze of a child, Kwon was able to discover the truth and purity of a life untainted by ideological conflict or social artifice.영어
3. 2. 주요 작품
권정생의 작품은 종교적인 믿음을 바탕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사랑을 아름답게 표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강아지똥》과 《몽실언니》는 소외된 주인공들의 모습을 잘 그려내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9]《강아지똥》은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던 강아지 똥이 민들레의 거름이 되어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는 내용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어 60만 부 이상 팔렸으며, 중학교 1학년 국어 교과서에도 실려있다. 1996년에는 어린이 그림책으로 제작되어 성공을 거두었다.[4]
《몽실언니》는 전쟁과 가난 속에서도 어린 동생과 함께 꿋꿋하게 살아가는 절름발이 소녀의 이야기로, 1984년 첫 출간 이래 100만 부 넘게 팔렸다. 1990년에는 MBC에서 드라마로도 방영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창작동화 《황소아저씨》는 엄마가 없는 생쥐 남매들에게 황소 아저씨가 여물을 먹이고 따뜻한 품에서 재워주는 이야기로, 동물을 사랑하는 작가의 따뜻한 마음이 잘 드러난다. 이 동화는 금성문화사와 길벗 어린이에서 출판되었으며, 황소아저씨는 권정생 자신을 가리킨다는 평가가 있다.[9]
출판 연도 | 제목 |
---|---|
1974년 | 강아지똥 |
1975년 | 꽃님과 아기양들 |
1978년 | 사과나무밭 달님 |
1979년 | 까치 울던 날 |
1984년 | 하느님의 눈물 |
1984년 | 몽실언니 |
1985년 | 도토리예배당 종지기 아저씨 |
1990년 | 점득이네 |
1994년 | 하느님이 우리 옆집에 살고 있네요 |
1999년 | 밥데기 죽데기 |
2002년 | 슬픈 나막신 |
시집 『어머니 사시는 그 나라에는』(1988)과 소설집 『한티재 하늘 1-2』(1998) 등도 있다.[10]
대한민국 문학번역원은 권정생의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3]
권정생은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한국 노동자의 아들로 자란 자신의 경험이 문학적 상상력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권정생은 한국 산업화의 격동기에 고통받는 민초들의 슬픔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는 동시에, 어두운 삶 속에서도 희망과 굳건한 생명력을 발견해내려 했다. 그의 작품은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려 한다.
4. 연보
연도 | 내용 |
---|---|
1937년 | 일본 도쿄 도 시부야 구 혼마치에서 출생. |
1946년 | 귀국. 생활고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짐. 모친, 동생과 함께 청송에 있는 외가에서 지냄. |
1947년 | 안동에 가족이 다시 모임. |
1950년 | 6.25 전쟁으로 가족이 몇 해 동안 흩어져 지냄. |
1951년 | 이 해부터 몇 년간 부산에서 재봉기 상회, 서점 등의 점원 생활을 함. |
1955년 | 결핵을 앓기 시작함. 이후 평생 병고를 겪게 됨. |
1957년 | 결핵으로 피폐해진 몸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옴. |
1965년 | 집을 나와 대구, 김천, 상주, 문경, 점촌, 예천 등을 걸인으로 떠돌다 석 달 뒤에 귀가함. |
1967년 | 안동군 일직면 조탑리(조탑동)에 정착해 이 마을교회의 문간방에서 지내며 교회 종지기 일을 함. |
1969년 | 동화 〈강아지똥〉으로 월간 《천주교 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 공모 당선 |
1971년 | 동화 〈아기양의 그림자 딸랑이〉로 매일신문 신춘문예에 입선. |
1973년 | 동화 〈무명저고리와 엄마〉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
1975년 | 동화집 《강아지똥》(세종문화사)을 펴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 수상. |
1979년 | 동화집 《사과나무밭 달님》(창작과비평사) 펴냄.[8] |
5. 수상 경력
6. 평가와 영향
권정생은 일제강점기, 해방, 6·25전쟁 등을 겪으면서도 특정 이념이나 사상에 휩쓸리지 않고 왜곡된 역사 인식과 시대 의식을 작품에 담아내, 삶과 문학이 일치된 작가로 평가받는다.[11] 종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희생적인 삶을 몸소 실천했기에,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의 작품뿐 아니라 삶 전체가 여전히 큰 영향을 주고 있다.
6. 1. 1970년대 한국 아동문학계의 흐름
권정생이 아동문학계에 발을 내딛어 활동하던 대한민국의 1970년대는 ‘반공’과 ‘조국 근대화’를 표상으로 하는 체제 이데올로기의 영향이 사회 전반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한 시기였다. 이 무렵의 아동문학은 후대 이론가들에 의해, 국가적 교육 목표에 순응하는 교훈주의와 순수하고 착한 동심을 지향하는 일명 ‘동심천사주의’에 치우쳐 있었다는 지적을 받게 된다. 그런 시기에 권정생은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 개발 일변도의 사회 분위기에 동화되지 못하고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즘적’ 글쓰기를 통해 가난한 이웃들에게 무한한 사랑으로 희망을 주고 고난 극복의 정신을 심어주어 아동문학계의 중요한 한 흐름을 선도한 작가로 평가되고 있다.[11]6. 2. 삶과 문학의 일치
권정생은 삶과 문학이 일치된 작가로, 일제강점기, 해방, 6·25전쟁 등을 겪으면서도 특정 이념이나 사상에 휩쓸리지 않고 왜곡된 역사 인식과 시대 의식을 작품에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11] 특히 종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희생적인 삶을 몸소 실천했기에,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의 작품뿐 아니라 삶 전체가 여전히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또한 동화, 옛이야기, 동시, 동극, 산문, 평론뿐 아니라 수많은 기고문을 남기는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한 전방위 작가로도 의미 있는 발자취를 남겼다.[11]권정생이 아동문학계에서 활동하던 대한민국의 1970년대는 ‘반공’과 ‘조국 근대화’라는 체제 이데올로기의 영향이 매우 강했던 시기였다. 당시 아동문학은 국가 교육 목표에 따르는 교훈주의와 순수한 동심을 강조하는 ‘동심천사주의’에 치우쳐 있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그러한 시기에 권정생은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 개발 중심의 사회 분위기에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즘적’ 글쓰기를 통해 가난한 이웃들에게 사랑과 희망, 고난 극복 정신을 심어주며 아동문학계의 중요한 흐름을 이끌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한민국 문학번역원은 권정생의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3]
권정생은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한국 노동자의 아들로 자란 자신의 경험이 문학적 상상력에 큰 영향을 미쳤다. 권정생은 한국 산업화의 격동기에 고통받는 민초들의 슬픔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는 동시에, 어두운 삶 속에서도 희망과 굳건한 생명력을 발견해내려 했다. 그의 작품은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려 한다. 어린아이의 시각을 빌려, 권정생은 이념적 갈등이나 사회적 구조에 물들지 않은 삶의 진실과 순수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1996년, 권정생의 작품 "강아지똥"은 어린이 그림책으로 만들어져 큰 성공을 거두었다.[4]
6. 3.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작가
권정생은 아동문학계에 발을 내딛어 활동하던 대한민국의 1970년대는 ‘반공’과 ‘조국 근대화’를 표방하는 체제 이데올로기의 영향이 사회 전반적으로 강했던 시기였다. 당시 아동문학은 후대 이론가들에 의해 국가적 교육 목표에 순응하는 교훈주의와 순수하고 착한 동심을 지향하는 ‘동심천사주의’에 치우쳐 있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권정생은 전쟁 후유증에 시달리는 사람들, 개발 일변도의 사회 분위기에 동화되지 못하고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리얼리즘적’ 글쓰기를 통해 가난한 이웃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주고 고난 극복의 정신을 심어주어 아동문학계의 중요한 흐름을 이끌었다고 평가받는다.권정생은 삶과 문학이 한 몸을 이룬 작가로 일제강점기, 해방, 6·25전쟁 등을 겪으면서도 어느 한쪽의 이념이나 사상에 치우치지 않고, 왜곡된 역사인식과 시대의식을 작품에 담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종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자기희생적 삶을 실천한 개인사 덕분에 타계 이후에도 작품뿐 아니라 그의 삶 전반이 여전히 영향력이 크다. 또한 동화, 옛이야기, 동시, 동극, 산문, 평론뿐 아니라 수많은 기고문을 남기는 등 장르를 넘나들며 작품 활동을 했던 전방위 작가로도 뚯깊은 사례를 남겼다.[11]
대한민국 문학번역원은 권정생의 작품에 대해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3]
권정생은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한국 노동자의 아들로 자란 자신의 경험이 문학적 상상력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그는 한국 산업화의 격동기에 고통받는 민초들의 슬픔을 새로운 시각으로 조명하는 동시에, 어두운 삶 속에서도 희망과 굳건한 생명력을 발견하려 했다. 그의 작품은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사람들을 포함한 모든 생명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려 한다. 어린아이의 시각을 빌려, 권정생은 이념적 갈등이나 사회적 구조에 물들지 않은 삶의 진실과 순수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1996년, 권정생의 작품 "강아지똥"은 어린이 그림책으로 제작되어 성공을 거두었다.[4]
7. 권정생어린이문화재단과 권정생문학상
권정생의 뜻을 존중하며 유산관리자로 지목된 이들이 마음을 보태어 설립한 재단법인이다. 2011년부터 〈권정생창작기금〉을 시상했으며, 2018년 11월, 〈권정생문학상〉으로 이름을 바꾸었다.[13]
8. 권정생 동화나라
참조
[1]
웹사이트
Writers Database : - Korea Literature Translation Institute
http://www.klti.or.k[...]
2014-06-23
[2]
웹사이트
In Memory of Kwon Jeong-saeng
https://www.koreatim[...]
2007-07-06
[3]
웹사이트
Writers Database : - Korea Literature Translation Institute
http://www.klti.or.k[...]
2014-06-23
[4]
간행물
Puppy Poo
Spring 2009
[5]
웹사이트
수상내역
http://people.search[...]
Naver
2014-06-23
[6]
뉴스
“적당히 고루고루” 권정생이 남긴 ‘간곡한 마음’
https://news.naver.c[...]
한국일보
2020-03-13
[7]
뉴스
"[단독]동화작가 권정생, 결핵 아닌 의료사고로 숨졌다"
http://www.hani.co.k[...]
한겨레
2017-09-19
[8]
서적
우리들의 하느님
녹색평론사
[9]
웹인용
권정생 그림책, 황소 아저씨
http://blog.daum.net[...]
2009-06-21
[10]
웹사이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
[11]
서적
권정생 연구
단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2010-08
[12]
웹사이트
《녹색평론》2007년 7-8월호, 권정생의 유서
http://basileian.com[...]
[13]
웹인용
'권정생문학상'
http://kcfc.or.kr/ne[...]
2018-12-04
[14]
뉴스
어린이 문학체험 학습장 ‘권정생 동화나라’ 개관
http://www.yeongnam.[...]
영남일보
2014-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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