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44년
1. 개요
기원전 44년은 전한 초원 5년, 정축년으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종신독재관이 되고 암살당한 해이다. 카이사르 사후, 옥타비아누스가 후계자가 되었으며, 클레오파트라는 막내 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4세를 죽이고 카이사리온을 공동 지배자로 삼았다. 3월 15일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장례식을 열고 유언을 공개하며 로마 시민에게 유산을 기증하겠다고 발표했다. 키케로는 안토니우스에 대항하는 연설을 시작했으며, 클레오파트라는 아들 카이사리온을 공동 통치자로 선언했다. 이 해에 키케로의 필리피카이가 발표되었으며, 율리우스 카이사르, 프톨레마이오스 14세 등이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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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4년 -
의무론 (키케로)
키케로가 아들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의 철학 에세이인 《의무론》은 명예로운 것, 편의에 맞는 것, 두 가치의 충돌 해결을 다루며 공적 행동의 이상을 제시하고 카이사르의 독재를 비판하여 서양 사상에 큰 영향을 미쳤다.
3. 사건
*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종신독재관이 되었다.
*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옥타비아누스가 후계자가 되었다.
* 클레오파트라 7세가 막내동생 프톨레마이오스 14세를 죽이고 카이사리온을 공동 지배자로 삼았다.
* 카이사르 혜성이 관측되었다.
*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장례식을 열고, 암살자들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선동하였으며, 유언장을 공개하고 유산을 로마 시민들에게 기증하겠다고 발표하였다.
*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알비누스는 갈리아 키살피나의 총독직을 유지하였다.
*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 대항하여 연설을 시작하였다.
*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유언에 따라 그의 대리인이 되었다.
*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상속자로서 로마로 귀환하였다.
* 안티파테르는 유대의 로마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 클레오파트라 7세는 프톨레마이오스 15세와 함께 이집트로 귀환하였다.
| 월 | 사건 |
|---|---|
| 1월 | 카이사르가 파르티아 원정을 공식 발표하다. |
| 2월 | * 로마는 루페르칼리아 축제를 기념한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에게 왕실의 디아뎀을 바치며 왕이 되어달라고 요청하지만, 카이사르는 이를 거절하고 그 왕관을 유피테르 신전에 놓도록 명령한다. |
| 3월 15일 (3월의 이데스) | 로마의 독재관인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데키무스 브루투스를 포함한 원로원 의원들에 의해 암살당한다. |
| 3월 20일 | 카이사르의 장례식이 거행된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찬사를 읊고 연설에서 살인 혐의를 제기하며 카이사르를 암살한 공모자들과의 영구적인 단절을 확신한다. 그는 카이사르의 피 묻은 토니카와 자주색 토가를 낚아채 군중에게 자상 자국을 보여준다. 시민들은 포룸을 찢어발기고 급조한 화장대에서 카이사르를 화장한다.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로마에서 최고위 정치인이 된다. |
| 4월 | 옥타비아누스는 달마티아의 아폴로니아에서 로마로 돌아와 아티아 (그의 어머니이자 카이사르의 조카)와 집정관 안토니우스의 조언을 무시하고 카이사르의 유산을 물려받는다. |
| 4월 18일–4월 21일 | 옥타비아누스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 대해 맹렬하게 비난하는 집정관 키케로와 함께 매력적인 외교 정책을 펼친다. |
| 6월 | 안토니우스는 북부 및 중부 갈리아 트란살피나 (프랑스)와 치살피나 갈리아(북부 이탈리아)에 대한 5년 임기의 총독직을 부여받는다. |
| 9월 2일 | * 파라오 클레오파트라 7세는 그녀의 아들 프톨레마이오스 15세 카이사리온을 공동 통치자로 선언한다. |
| 12월 | 안토니우스는 브루투스 알비누스를 무티나 (모데나)에서 포위하며, 삼촌의 암살자 중 한 명인 데키무스의 동맹인 옥타비아누스가 가까이 있다. |
3.1. 로마 공화정
*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종신독재관에 취임했다.
* 율리우스 카이사르 암살, 옥타비아누스가 후계자가 되었다.
* 집정관 -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 1월 - 카이사르가 파르티아 원정을 공식 발표했다.
* 2월 - 카이사르가 종신 독재관에 취임했다.
* 3월 15일 - 카이사르가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등을 포함한 원로원파에게 암살당했다.
* 3월 20일 - 카이사르의 장례가 거행되었다.
* 4월 초 - 유언장에 의해 후계자로 지명된 카이사르의 증손자 옥타비아누스가 카이사르의 유산을 상속하기 위해 유학 중이던 달마티아에서 로마로 돌아왔다.
* 4월 18일 또는 4월 21일 - 안토니우스와 대립하고 있던 원로원 의원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가 옥타비아누스에게 접근했다.
* 6월 - 안토니우스가 속주의 갈리아 나르보넨시스와 갈리아 키살피나에 5년간의 자치권을 부여했다.
* 9월 2일 - 최초의 키케로의 안토니우스 공격 연설이 행해졌다.
* 12월 - 안토니우스가 옥타비아누스와 함께 모데나에서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를 포위 공격했다.
* 카이사르의 추모로서, 기념 데나리우스 은화가 제조되었다.
*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의 장례식을 열고, 암살자들에 대한 대중의 분노를 선동했다.
*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의 유언장을 공개하고, 유산을 로마 시민들에게 기증하겠다고 발표했다.
*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알비누스는 갈리아 키살피나의 총독직을 유지했다.
*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에 대항하여 연설을 시작했다.
*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의 유언에 따라 그의 대리인이 되었다.
* 가이우스 옥타비아누스는 카이사르의 상속자로서 로마로 귀환했다.
* 안티파테르는 유대의 로마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3.2. 이집트
기원전 44년 9월 2일, 클레오파트라 7세는 카이사르와의 아들 카이사리온과 공동 통치를 선언하였다. 클레오파트라는 프톨레마이오스 15세와 함께 이집트로 귀환하였다.
4. 문화
키케로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탄핵하는 연설인 필리피카이를 발표하였다.
5. 탄생
그나이우스 칼푸르니우스 피소 - 로마 정치가이자 총독 (20년 사망)
6. 사망
* 3월 15일 - 율리우스 카이사르, 로마의 군인이자 정치가. 폼페이 극장에서 암살당했다. (* 기원전 100년)
* 7월 26일 - 프톨레마이오스 14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파라오. (추정 날짜) (* 기원전 60년/기원전 59년)
* 부레비스타, 게타이와 다키아인 부족의 트라키아 왕. (* 기원전 111년경)
* 루키우스 카니니우스 갈루스, 로마의 정치가
* 푸블리우스 세르빌리우스 바티아 이사우리쿠스, 로마의 집정관
* 푸블리우스 시티우스, 로마의 용병 지휘관
* 안티파트로스(Antipater the Idumaean), 헤로데 대왕의 아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