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섭 (목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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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김영섭은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서 수학하다가 개신교 신자가 되어 목회자가 된 인물이다. 와세다 대학 등에서 수학하고 미국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뒤, 정동제일교회와 중앙감리교회 담임 목사로 재직하며 적극신앙단 활동을 했으나 흥업구락부 사건에 연루되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친일 행위를 했으며,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

김영섭 (목회자)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 김영섭
원래 이름: 金永燮
출생일1888년
국가대한민국
직책미국 하와이 주재 총영사
주석트루먼 미국 대통령
임기1948년 9월 29일 ~ 1949년 9월 29일
대통령이승만 대한민국 대통령
부통령이시영 대한민국 부통령
총리이범석 대한민국 국무총리
부주석바클리 미국 부통령
출생지조선 경기도 강화
사망지대한민국 경기도 인천
사망일1950년 (63세)
거주지대한제국 한성부
대한제국 황해도 연안
일제강점기 경성부
대한민국 경기도 인천
경력
정동제일교회 목사
중앙감리교회 목사
내리교회 목사
서울숭실기독대학교 겸임교수(1936년)
혁신교단 사무관 관장(1940년)
조선공산당 당무위원(1941년)
한국민주당 당무위원(1946년)
학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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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본관광산(光山)이며 경기도 강화 출생으로 본래 군인이 되고자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서 수학했다. 그러나 을사조약 체결 후 학교가 폐쇄되자 강화 보창학교 사범과를 졸업하고 황해도 연안군의 봉남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연안에서 개신교 신자가 된 후 목회에 뜻을 두고 일본에 유학했다. 와세다 대학 문과와 아오야마학원 신학부에서 수학한 후 미국에도 유학하여 신학을 공부했다. 1923년 미국 체재 중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27년 귀국한 뒤 서울 종로구 정동의 정동제일교회와 중앙감리교회 담임 목사로 근무했다. 정동교회에서는 귀국 직후부터 1934년까지 7년간 1차로 재직했고, 1938년부터 1943년까지 재차 담임을 맡았다. 목회자로 재임하면서 1930년대에 신흥우가 조직한 적극신앙단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외부 활동을 했으나, 흥업구락부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2.1. 교육 및 종교 활동 (초기)

김영섭의 본관광산(光山)이며, 경기도 강화 출생이다. 본래 군인이 되고자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서 수학했으나, 을사조약 체결 후 학교가 폐쇄되자 강화 보창학교 사범과를 졸업하고 황해도 연안군의 봉남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연안에서 개신교 신자가 된 후 목회에 뜻을 두고 일본에 유학했다. 와세다 대학 문과와 아오야마학원 신학부에서 수학한 후 미국에도 유학하여 신학을 공부했다. 1923년 미국 체재 중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27년 귀국한 뒤 서울 종로구 정동의 정동제일교회와 중앙감리교회 담임 목사로 근무했다. 정동교회에서는 귀국 직후부터 1934년까지 7년간 1차로 재직했고, 1938년부터 1943년까지 재차 담임을 맡았다. 목회자로 재임하면서 1930년대에 신흥우가 조직한 적극신앙단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외부 활동을 했으나, 흥업구락부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2.2. 국내 목회 활동과 사회 참여

김영섭은 광산(光山)이며 경기도 강화 출생이다. 본래 군인이 되고자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에서 수학했으나, 을사조약 체결 후 학교가 폐쇄되자 강화 보창학교 사범과를 졸업하고 황해도 연안군의 봉남학교 교사로 재직했다.

연안에서 개신교 신자가 된 후 목회에 뜻을 두고 일본에 유학했다. 와세다 대학 문과와 아오야마학원 신학부에서 수학한 후 미국에도 유학하여 신학을 공부했다. 1923년 미국 체재 중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27년 귀국한 뒤 서울 종로구 정동의 정동제일교회와 중앙감리교회 담임 목사로 근무했다. 정동교회에서는 귀국 직후부터 1934년까지 7년간 1차로 재직했고, 1938년부터 1943년까지 재차 담임을 맡았다. 목회자로 재임하면서 1930년대에 신흥우가 조직한 적극신앙단에 참여하는 등 활발한 외부 활동을 했으나, 흥업구락부 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되었다.

2.3. 친일 변절과 그 이후

흥업구락부 사건 이후 개신교에서는 많은 친일반민족행위 변절자가 나오게 되었고, 김영섭도 여기에 포함되었다. 1938년 민족대표 33인에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변절한 정춘수가 감리교 내선일체를 위해 7인 특별위원회를 조직했을 때 김영섭은 여기에 참가했다. 1939년 도쿄에서 조선과 일본의 감리교단 통합을 논의하는 회의가 개최되었을 때 정춘수, 신흥우, 양주삼, 유형기 등과 함께 전권위원으로 참석했다.

전시체제 아래서 일제는 종교단체법을 공포하여 종교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했고, 이에 통합 교단 혁신교단이 결성되었다. 혁신교단의 주축은 본래 감리교단이었으며 장로교와의 합동을 위해 장로교 측의 전필순이 초대 통리총장으로 추대되었다. 김영섭은 혁신교단에서 사무관장을 맡았다.

광복 후 감리교단 내부에서 친일 청산을 둘러싸고 재건파와 부흥파로 분열이 일어났을 때, 인천광역시 중구 내동에 있는 감리교회인 내리교회 담임목사인 김영섭은 친일 행적이 뚜렷한 목회자 중 한 명으로 지목되었다. 그럼에도 친일청산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김영섭은 잠시 하와이주 총영사를 지내다가 귀국하여 다시 중앙교회에서 시무하였다.

3. 친일반민족행위 사실 인정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의 종교 부문에 선정되었다. 기독교대한감리회2005년 광복 50주년 기념으로 펴낸 자료집에서 과거사 청산을 위해 공개한 감리교 내 친일 부역자 12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4. 학력

*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를 졸업하였다.
* 경기도 강화 보창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하였다.
* 일본 와세다 대학교 철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 일본 도쿄 아오야마 전문학원 신학과에서 전문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 미국 하트퍼드 신학전문학교에서 전문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