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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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노걸대는 14세기 중반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중국어 학습을 위한 고려 시대의 교재이다. '노걸대'는 중국인을 친근하게 이르는 말로, 베이징을 배경으로 고려 상인이 겪는 여정을 대화 형식으로 담고 있다. 원본 노걸대는 여러 차례 개정되어 다양한 판본으로 존재하며, 언해본, 몽골어, 만주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되어 사역원의 어학 교재로 활용되었다. 현재까지 여러 학자들에 의해 현대 한국어 번역본이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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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걸대 | |
|---|---|
| 개요 | |
| 유형 | 어학 교재 |
| 언어 | 중국어, 한국어 |
| 사용 시기 | 원나라 말 ~ 명나라 초 |
| 대상 독자 | 한국어 화자 |
| 명칭 | |
| 한국어 | 노걸대 |
| 한자 | 老乞大 |
| 로마자 표기 | Nogeoldae |
| 중국어 (표준중국어) | Lǎo Qǐdà |
| 중국어 (웨이드-자일스) | Lao Ch'i-ta |
| 영어 번역 | Old Cathayan |
| 역사 | |
| 창작 시기 | 원나라 말 ~ 명나라 초 |
| 내용 | |
| 특징 | 구어체 북방 중국어 학습 교재 |
| 관련 서적 | 번역노걸대, 노걸대언해, 첩해신어 |
2. ‘노걸대’의 의미
'노걸대'의 '걸대'(乞大)는 요대에 북중국을 통치하던 거란을 한자로 음차한 것이다.[1] '걸대'는 중국과 중국인을 지칭하는 일반적인 명칭이 되었으며, 중국인을 의미한다. '노'(老)는 당대부터 친근함을 나타내기 위한 접두사로 사용되어 왔다.
고려 말에 처음 편찬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사역원의 중국어 교재로 채택되었다. 세 명의 고려 상인이 특산품인 말과 인삼, 모시 등을 싣고 중국의 북경으로 가서 팔고 그곳의 특산품을 사서 돌아올 때까지의 내용을 담았다.[2] 상권은 완전히 회화체로 되어 있으며, 말을 사고 파는 법이나 북경에 도착하여 여관에 드는 방법, 조선의 특산물인 인삼을 소개하는 방법 등이 중국어로 소개되어 있는, 여행이나 실무에 필요한 실용 회화책이다. 48장 106절로 구성되어 주요 장면마다 대화가 있어서 이것을 가지고 중국어를 익힐 수 있도록 하였다.
《노걸대》는 북방 중국어 구어의 변화에 따라 시대별로 개정되었고 여러 판본이 존재한다.[4][8] 원문에는 정음과 속음, 두 종류의 한자음이 달려 있고, 한국어 번역본인 언해본도 있다. 최세진이 언해한 《노걸대언해》(老乞大諺解)는 원본은 전해지지 않고 중간본과 1944년 영인본만 전해진다. 언해본은 중세 한국어 연구 자료로 쓰인다.[4]
3. 내용
이 책은 한국 상인이 베이징으로 여행을 가는 것을 중심으로 한 대화와 그 여정에 함께하는 중국 여행자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베이징에 도착한 후에는 한국 상품을 팔고 한국에서 다시 팔 상품을 구매하는 내용, 그리고 한국 상인이 베이징을 떠나는 것으로 끝을 맺는다.[3]
여행, 사업, 연회, 의학에 사용되는 언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후퉁(골목)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등 베이징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고려시대에 집필된 원본 《노걸대》의 시작 부분은 다음과 같다.[3]중국어 원문 한국어 번역 伴當,恁從那裏來?중국어 노형! 노형들께서는 어디에서 오십니까? 俺從高麗王京來。중국어 우리는 고려 왕경에서 오는 길입니다. 如今那裏去?중국어 지금은 어디로 가십니까? 俺往大都去。중국어 우리는 대도로 갑니다.
다음은 언해본의 일부이다.중국어 음역 (구어체) IPA 음역 (공식) IPA 한국어 老乞大諺解上 ᄅᅶ키다연계샹 lao kʰi ta jən kje̞ ʂaŋ 라ᇢ키ᇹ따연계ᄿᅣᇰ ɭaw kʰiʔ ta jən kje̞ ʂaŋ - 大哥你從那裏來 다거니충나리레 da kə ni tsʰuŋ na li le̞ 따거니쭝나리래 ta kə ni tsuŋ na li lɛ 큰형아, 어디서부터 오는가? 我從高麗王京來 오충ᄀᅶ리왕깅레 o̞ tsʰuŋ kao li waŋ kiŋ le̞ ᅌᅥ쭝가ᇢ리왕깅래 ŋə tsuŋ kaw li waŋ kiŋ lɛ 내 高麗王京(고려왕경)으로부터 오네. 如今那裏去 ᅀᅲ긴나리큐 ʐu kin na li kʰju ᅀᅲ긴나리큐 ʑu kin na li kçju 이제 어디로 가는가? 我往北京去 오왕버깅큐 o̞ waŋ pə kiŋ kʰju ᅌᅥ왕비ᇹ깅큐 ŋə waŋ biʔ kiŋ kçju 내 北京(북경)으로 향하여 가노라. 你幾時離了王京 니기스리ᄅᅸ왕깅 ni ki sɨ li ljao waŋ kiŋ 니기쓰ᇫ리랴ᇢ왕깅 ni ki sz̩ li ljaw waŋ kiŋ 네 언제 王京(왕경)에서 떠났는가? 我這月初一日離了王京 오져ᄋᆑ추이ᅀᅵ리ᄅᅸ왕깅 o̞ tʂjə jyə tʂʰu i ʐi li ljao waŋ kiŋ ᅌᅥ져ᅌᆑᇹ추ᅙᅵᇹᅀᅵᇹ리랴ᇢ왕깅 ŋə tʂjə ŋjyəʔ tʂʰu iʔ ʑiʔ li ljaw waŋ kiŋ 내 이달 초하룻날 王京(왕경)에서 떠났노라. 旣是這月初一日離了王京 기스져ᄋᆑ추이ᅀᅵ리ᄅᅸ왕깅 ki sɨ tʂjə jyə tʂʰu i ʐi li ljao waŋ kiŋ 기쓰ᇫ져ᅌᆑᇹ추ᅙᅵᇹᅀᅵᇹ리랴ᇢ왕깅 ki sz̩ tʂjə ŋjyəʔ tʂʰu iʔ ʑiʔ li ljaw waŋ kiŋ 이미 이달 초하룻날 王京(왕경)에서 떠났으면, 到今半個月 ᄃᅶ긴번거ᄋᆑ tao kin pən kə jyə 다ᇢ긴번거ᅌᆑᇹ taw kin pən kə ŋjyəʔ 이제 반달에 다다랐거든.
4. 판본
한문본으로는 《노걸대》, 《중간노걸대》(重刊老乞大), 1763년에 내용을 새 실정에 맞춰 펴낸 《노걸대신석》(老乞大新釋)이 있다.
《노걸대》의 한어본과 언해본 연대는 다음과 같다.한어본 연대 한어 언해본 연대 원본 《노걸대》 14세기 산개본 《노걸대》 1483년 (번역)《노걸대》 1510년대 《노걸대언해》 1670년 평양판 《노걸대언해》 1745년 《노걸대신석》 1761년 《노걸대신석언해》 1763년 《중간노걸대》 1795년 《중간노걸대언해》 1795년
4. 1. 원본 《노걸대》 (14세기 중반)
원대의 한아(漢兒) 언어로 적힌 《노걸대》 원본은 1346년에 중국을 여행한 고려 상인이 14세기 중반에 작성하여 고려 사역원에서 사용되었다.[4] 《노걸대》와 《박통사》는 저명한 어학서였고, 15세기 조선의 기록에서 역관의 필수 도서로 묘사되었다.[5] 1998년 서지학자 남권희가 대구에서 원본과 가장 가깝다고 여겨지는 15세기 초 판본을 발견하여 정광이 이를 연구하였다. 원본 《노걸대》는 고관화(古官話)와 원대 한아(漢兒) 언어에 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한다.[8]
4. 2. 산개본 《노걸대》 (1483년)
1483년 중국인 갈귀(葛貴)가 원본 언어와 크게 달라진 명대의 관화(官話)를 반영하여 《노걸대》를 수정하였다.[4] 원간본은 전해지지 않고 산개본(刪改本)의 복각본만 전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의 학자 최세진이 16세기 초에 언해본을 저술했으며,[6] 구분을 위해 편의상 《번역노걸대》(飜譯老乞大)라고 칭한다.[8]
4. 3. 번역노걸대 (1510년대)
1483년 중국인 갈귀(葛貴)가 원본의 언어와 크게 달라진 명대의 관화(官話)를 반영하여 《노걸대》를 수정하였다. 원간본은 전하지 않고 산개본(刪改本)의 복각본만 전한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의 학자 최세진이 16세기 초에 언해본을 저술했으며,[6] 구분을 위해 편의상 《번역노걸대》(飜譯老乞大)라고 칭한다.[8] 飜譯老乞大|번역노걸대중국어 최세진의 판본은 중국어의 음을 훈민정음으로 달고 언해한 것으로, 후기 중세 한국어의 구어체를 반영했다.[4] 1547년 이전에 간행된 갑인자 복각본도 있으며 통문관 산기문고(山氣文庫)에서 소장 중이다.
4. 4. 노걸대언해 (1670년)
1670년 사역원에서 펴낸 《노걸대언해》(老乞大諺解)는 산개본의 일종이다.[7] 《번역노걸대》와 마찬가지로 원문과 언해문이 실려 있고, 17세기 당시의 상황을 반영한 발음과 번역으로 개정되었다.[6] 1745년에 이것을 중간한 평양판 《노걸대언해》도 존재한다. 원고는 사역원에서 담당했고 간행만 평양에서 이루어졌다.[7]
4. 5. 노걸대신석 (1761년)
1761년 변헌(邊憲) 등이 청대의 관화를 반영하여 수정한 《노걸대신석》(老乞大新釋)이 간행되었다.[4] 이 때 원문의 '고려(高麗)'가 모두 '조선(朝鮮)'으로 변경되었다.[5] 1763년에는 새 실정에 맞춰 내용을 수정한 《노걸대신석언해》(老乞大新釋諺解)가 간행되었으며, 권1이 컬럼비아 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6]
4. 6. 노걸대신석언해 (1763년)
《노걸대신석》을 언해한 판본이다.[8] 1761년에 변헌(邊憲) 등이 청대의 관화로 수정한 《노걸대신석》(老乞大新釋)이 간행되었고,[8] 1763년에 이를 새 실정에 맞춰 펴낸 것이 《노걸대신석언해》(老乞大新釋諺解)이다.[8] 권1이 컬럼비아 대학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4. 7. 중간노걸대 (1795년 이후)
이수(李洙) 등이 《노걸대신석》을 다시 아어(雅語)로 고쳐 중간한 《중간노걸대》(重刊老乞大)는 1795년 이후에 나타났으며, 그것을 언해한 《중간노걸대언해》(重刊老乞大諺解)는 연대와 저자가 확실치 않다. 이 판본에서는 중국어의 구어적인 면모가 더 적게 나타난다.[8]
4. 8. 중간노걸대언해
《중간노걸대언해》(重刊老乞大諺解)는 1795년 이후에 나타난 《중간노걸대》(重刊老乞大)를 한글로 번역한 책으로, 누가 언제 만들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이 책은 중국어의 구어적인 특징이 이전 판본보다 적게 나타난다.[8]
5. 번역본

한어(중국어) 원문 외에도 몽골어, 만주어, 일본어 등으로 번역되어 조선 사역원의 어학 교재로 사용되었다.
몽골어판 노걸대인 《몽어노걸대》는 이최대가 1741년에 출판했으며, 1766년과 1790년에 개정되었다.[1]
만주어판 노걸대인 《청어노걸대》는 최후택 등이 저술하여 1704년에 출판되었고, 1765년에 개정되었다.[2]
1669년의 칙령에 포함된 교과서 목록에는 일본어 번역본인 왜어노걸대가 언급되어 있지만,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1]
5. 1. 몽어노걸대 (1741년)
《'''몽어노걸대'''》(蒙語老乞大)는 몽골어로 《노걸대》의 내용을 싣고 한글로 음을 달아 풀이해 놓은 책이다. 8권 8책의 목판본이다. 1741년(영조 17년)에 당시 몽학관(蒙學官)이던 이최대(李最大)가 펴냈다. 1790년(정조 14년)에 훈장 이억성(李億成)이 증보 간행하였다.[1] 《첩해몽어》, 《몽어유해》와 함께 '몽학삼서(蒙學三書)'라 불린다.2007년 5월 당시 몽골 대통령 부부가 《몽어노걸대》를 보기 위해 서울대학교 규장각을 방문하였다.
이최대는 1741년에 몽골어 판본인 『몽어노걸대』를 만들었으며, 이 책은 1766년과 1790년에 개정되었다.[1]
5. 2. 청어노걸대 (1680년)
숙종 6년(1680년)에 최후택(崔厚澤) 등이 만주어로 된 《'''청어노걸대'''》(淸語老乞大)를 펴냈다. 현재는 영조 41년(1765년)의 수정본만이 파리 동양어학교 도서관과 대영도서관, 탁족문고에 소장되어 있다. 수정본은 당시 함흥역학으로 있던 김진하(金振夏)가 만주어의 음과 철자를 고쳐 기영(箕營, 지금의 평양)에서 간행한 것이다. 행마다 왼쪽에 만주문자를 적고 오른쪽에 그 음을 한글로 옮겨 적었으며, 문장이나 구절이 끝나면 한국어로 뜻을 풀이해 놓았다. 이후 간행된 《청어총해》(淸語總解)에 포함되어 출판되었지만 현재는 전하지 않는다.연세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에서 파리 동양어학교 도서관 소장본을 영인하여 출간하였다.[1]
《청어노걸대》는 사역원에서 출판한 『노걸대』의 만주어 번역본 중 하나로, 한글 발음과 한국어 번역, 만주어 텍스트를 포함한다.[2] 1704년에 출판되었고, 1765년에 개정되었다.[2]
5. 3. 왜어노걸대
《'''왜어노걸대'''》(倭語老乞大)는 현전하지 않는다.[1] 1669년의 칙령에 포함된 교과서 목록에는 일본어 번역본이 언급되어 있지만,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1]6. 현대 한국어역
여러 학자에 의해 현대 한국어로 번역된 판본들이 출간되었다.
| 옮긴이 | 제목 | 출판사 | 출판 연도 | ISBN |
|---|---|---|---|---|
| 정광 | 《원본 노걸대》 | 김영사 | 2004년 | |
| 정광 | 《역주 번역노걸대와 노걸대언해》 | 신구문화사 | 2006년 | |
| 정광 | 《역주 원본노걸대》 | 박문사 | 2010년 | |
| 최동권·김양진·김유범·황국정·신상현 | 《역주 청어노걸대신석》 | 박문사 | 2012년 | |
| 이육화 | 《원본노걸대 신주신역》 | 신아사 | 2015년 |
참조
[1]
서적
中原音韻表稿
吉林文史出版社
1985
[2]
기록
《세종실록》 권20, 세종 5년(1423년) 6월 23일(임신) 7번째 기사
[3]
간행물
原本老乞大新註新釋(一)
중국어문연구회
2011
[4]
간행물
18세기 동북아시아 언어 교류 -이른바 『노걸대』사역원을 중심으로-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3
[5]
뉴스
고려말 중국어회화책 ‘老乞大’ 원본 발견
https://www.hankooki[...]
1998-12-16
[6]
간행물
18세기 동북아시아 언어 교류 -이른바 『노걸대』사역원을 중심으로-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3
[7]
간행물
18세기 동북아시아 언어 교류 -이른바 『노걸대』사역원을 중심으로-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3
[8]
간행물
18세기 동북아시아 언어 교류 -이른바 『노걸대』사역원을 중심으로-
경희대학교 인문학연구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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