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랑 나흐 오스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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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드랑 나흐 오스텐(Drang nach Osten)은 "동방으로의 팽창" 또는 "동진 정책"을 의미하는 독일어로,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독일의 팽창주의적 외교 정책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 용어는 독일 민족주의자들이 동유럽, 특히 슬라브족 거주 지역으로의 세력 확장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되었으며, 폴란드의 '서진' 정책에 대한 반발과 나치 독일의 레벤스라움(Lebensraum, 생존권) 개념과 연결되어 동유럽 침략을 정당화하는 데 악용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동부 독일인 추방으로 동방 식민 운동이 종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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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랑 나흐 오스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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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용어의 유래
Drang nach Osten|드랑 나흐 오스텐de이라는 용어는 1849년 폴란드 언론인 줄리안 클라츠코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52][11][39] 하지만 클라츠코가 이 용어를 인용하는 형태로 사용했기 때문에, 그가 직접 용어를 만들었는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52][11][39] 이 용어는 영어, 폴란드어, 러시아어, 체코어 등 다른 여러 언어에서도 거의 예외 없이 독일어 형태 그대로 사용되고 있어, 독일에서 유래된 용어로 여겨진다.[52][11][39]
드랑 나흐 오스텐은 중세 독일의 동방식민운동Ostsiedlung|오스트지들룽deu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세기와 20세기 초에 이 용어는 슬라브족, 발트족 등이 거주하던 동유럽으로 독일 민족이 이동했던 중세의 오스트지들룽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었다.[12] 이 "동부 식민지화" 운동은 해당 지역에 독일 문화와 언어, 정착 등을 확산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이 용어는 독일 민족주의 운동의 핵심적인 구호로 자리 잡았다. 특히 1891년 알데우테첸 베르반데스( Alldeutscher Verband|알데우테첸 베르반데스de )가 결성되면서 "오래된 드랑 나흐 오스텐을 부활시켜야 한다"(Der alte Drang nach dem Osten soll wiederbelebt werdende)는 구호를 내세우며 민족주의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16][40]
3. 배경
고중세 시대 신성 로마 제국 내 라인란트, 플랑드르, 작센 공국 등지에서 인구가 크게 증가하였다. 그 결과 토지를 상속받지 못한 귀족이나 농민, 장인 등이 인구 밀도가 낮은 동쪽 지역으로 이동하였다.[13][14][15] 이러한 이동은 현지 슬라브계 왕이나 공작, 그리고 중세 교회의 지원을 받았다.[13][14][15]
동방식민운동은 발트해와 카르파티아 산맥 사이 동유럽 역사에 법적, 문화적, 언어적, 종교적, 경제적으로 큰 변화를 가져왔다.[12] 그러나 이 과정에서 폴라브 슬라브인이나 이교를 믿던 발트인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북방 십자군 참조).
훗날 프로이센이 되는 지역의 형성 과정 역시 이러한 동방 정착 운동과 관련이 깊다. 중세 말에는 마조비아 공작 콩라드의 초청을 받은 튜턴 기사단이 북부 폴란드로 이동하여 발트해 남부 연안 지역을 점령하고 주민들을 강제로 개종시키고 세력을 확장하였다.
18세기 후반에는 프로이센 왕국, 합스부르크 군주국(오스트리아 제국), 러시아 제국이 폴란드 분할을 단행하여 폴란드 영토를 분할하였다. 이 과정에서 프로이센은 폴란드 서부의 많은 영토를 확보하였다. 이후 프로이센과 통일 독일 제국은 점령한 폴란드 지역에서 폴란드인의 독일화 정책을 추진하며 민족적 갈등의 원인을 제공하였다. 한편, 튜턴 기사단이 점령했던 에스토니아와 리보니아(라트비아 포함) 지역은 이후 러시아 제국과 스웨덴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다.
4. 독일 담론에서의 드랑 나흐 오스텐
독일 내에서 이 슬로건은 독일 문화의 우월성에 대한 믿음과 동방 식민과 같은 과거의 업적을 찬미하는 광범위한 국가적 담론의 일부였다.[40] 나치 독일은 이 용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여, 1938년 주데텐 위기 당시 체코인들을 "드랑 나흐 오스텐에 대한 슬라브 최후의 보루"라고 칭하며 선전에 활용했다.[47][2][33]
그러나 드랑 나흐 오스텐 정책의 의도와는 달리, 실제 인구 이동은 반대 방향으로도 나타났다. 동부의 상대적으로 낙후된 농촌 지역 주민들이 독일 서부의 번영하는 산업 지역에 매력을 느껴 이주하는 현상이 발생했는데, 이는 독일어로 오스트플루트( Ostflucht|오스트플루트de , 동쪽으로부터의 이탈)라고 불렸다.
4. 1. 드랑 나흐 베스텐
독일 민족주의자들은 폴란드의 Drang nach Westen|드랑 나흐 베스텐de(서진)에 반발하여 새로운 Drang nach Osten|드랑 나흐 오스텐de(동진)을 주장하기도 했다.[45][54][9][37][38] 제1차 세계 대전이 베르사유 조약 체결로 마무리된 후, 새로 건국된 폴란드 제2공화국은 과거 독일 제국의 동부 영토였던 포잔 지역, 서프로이센, 어퍼 실레지아 주 등을 합병했다. 이 과정에서 서프로이센의 단치히(현 그단스크)는 단치히 자유시가 되었다.
Drang nach Westen|드랑 나흐 베스텐de이라는 용어는 현대에도 사용되는데, 폴란드 잡지 Wprost|브프로스트pl는 2002년 8월 기사에서 독일 에너지 기업 RWE가 폴란드 기업 STOEN을 인수한 상황을 Drang nach Osten|드랑 나흐 오스텐de으로, 반대로 폴란드인들이 독일 동부 지역으로 이주하거나 진출하는 현상을 Drang nach Westen|드랑 나흐 베스텐de으로 묘사하며 두 용어를 대비시켰다.[55][17]
또한, 이 용어는 에릭 조셉 골드버그(Eric Joseph Goldberg)의 저서 ''제국을 위한 투쟁''(Struggle for Empire영어)의 한 장에서 아이러니한 제목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이는 동쪽으로의 영토 확장에 소극적이었던 루트비히 독일인이 대신 왕국을 서쪽으로 확장했던 역사적 사실을 지적하며 그의 '부재한' 동방 정책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56][18][42]
5. 폴란드와 범슬라브 담론에서의 드랑 나흐 오스텐
헨리 코어 메이어(Henry Cord Meyer)는 그의 저서 《Drang nach Osten: Fortunes of a Slogan-Concept in German-Slavic Relations, 1849-1990영어|Drang nach Osten: Fortunes of a Slogan-Concept in German-Slavic Relations, 1849-1990}}》(드랑 나흐 오스텐: 게르만-슬라브 관계에서의 슬로건-개념의 운명, 1849-1990)에서 'Drang nach Ostende'이라는 슬로건이 실제로는 독일보다 슬라브 민족 세계에서 더 널리 사용되었다고 분석했다.[57][41] 메이어에 따르면, 대부분의 독일 역사학자들은 이 슬로건을 범슬라브주의(나중에는 소련)의 반(反)독일 선전 구호로 간주하며 거부했다. 이 용어는 특히 소비에트 블록의 역사 서술과 프로파간다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졌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슬라브 역사학계에서 이 개념이 널리 받아들여졌지만, 이것이 반드시 역사적 사실에 정확히 부합한다는 의미는 아니라고 메이어는 지적한다. 오히려 이 구호는 11세기부터 이어지는 독일 역사의 일관된 침략성을 강조하고, 독일 민족성과 슬라브 민족에 대한 특정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데 이용되었다는 것이다.[57][41]
19세기 낭만적 민족주의가 발흥하면서, 폴란드와 러시아의 지식인들은 독일의 중세 동방 식민(Ostsiedlung)을 'Drang nach Ostende'이라는 용어로 규정하며 비판적으로 언급하기 시작했다. 특히 폴란드에서는 이 슬로건이 19세기 중반부터 사용되었는데, 독일 기사단의 침입과 중세 독일인의 동방 이주 역사를 근거로 들며, 독일 민족의 지속적인 동방 팽창 의도와 지정학적 계획을 암시하는 데 사용되었다.[37] 이는 폴란드 민족을 위협하는 독일의 존재를 부각하는 국가적 담론과 깊이 연관되었다.[37] 1896년 폴란드에서 발행된 한 백과사전은 이 용어를 "폴란드인들로부터 토지를 빼앗기 위한 독일인의 동쪽으로의 이동"이라고 정의하기도 했다.[37]
이러한 담론은 독일 제국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실제로 동방으로 세력을 확장하려 했던 제국주의적 움직임과 맞물렸다. 독일 제국은 쇠퇴하는 오스만 제국에 대한 영향력을 증대시키려 했고(동방 문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발칸 반도에서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등을 병합하며 영토를 확장했다. 또한 비스마르크 시대의 문화 투쟁(Kulturkampf) 정책과 연계하여, 독일 제국은 가톨릭 신자가 다수인 폴란드 지역에 독일 개신교도를 이주시켜 독일화를 시도했으나, 이주 희망자가 적어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37]
'Drang nach Ostende'이라는 용어는 종종 범슬라브주의와 연결되기도 했다.[37] 그러나 폴란드는 역사적으로 러시아 중심의 범슬라브주의와는 거리를 두었다. 이는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시절부터 이어져 온 다민족적 코스모폴리타니즘 전통과 러시아 제국에 대한 반감 때문이었다. 폴란드 사회 조직은 1848년 프라하와 1867년 모스크바에서 열린 범슬라브 회의에 대표단을 파견하지 않았으며, 배타적 민족주의보다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을 중요한 가치로 여겼다.
현대에 들어서도 이 용어는 간혹 사용되는데, 예를 들어 폴란드 신문 Wprostpl는 2002년 독일 기업 RWE가 폴란드 기업 STOEN을 인수하는 것을 다루는 기사에서 'Drang nach Ostende'이라는 제목을 사용하기도 했다.[17]
6. 나치 독일의 레반스라움 개념
나치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1933년-1945년 재임)는 독일 민족을 위한 Lebensraum|레반스라움de(생활 공간) 확보를 목표로 Drang nach Osten|드랑 나흐 오스텐de 개념을 이용하여 동유럽으로의 영토 확장을 주장했다.[19][58][43] 당시 이 용어는 외국 신문에서도 별도의 설명 없이 사용될 정도로 알려져 있었다.[19][58]
히틀러와 나치 이데올로기는 슬라브족을 인종적으로 열등한 Untermensch|운터멘쉬de(하위 인간)로 간주했으며,[21][22] 이들이 국가를 형성할 능력이 없다고 보았다.[21] 나치 선전은 동유럽이 본래 게르만족의 영토였으나 훈족이나 아바르족 등에 의해 빼앗겼다는 주장을 퍼뜨렸다.[20] 이러한 반슬라브주의는 나치 이데올로기의 핵심적인 부분이었다.[22]
나치 독일은 Generalplan Ost|제너럴플랜 오스트de(동방 총괄 계획)를 통해 점령한 동유럽 영토에서 슬라브 원주민에 대한 집단 학살을 자행하고, 살아남은 이들은 우랄 산맥 너머로 강제 이주시켜 해당 지역을 독일인으로 채우려 했다.[22][23][24][27][59] 이 계획에는 독일 국경을 방어하기 위해 Wehrbauer|베어바우어de(국방 농민) 정착촌을 건설하는 내용도 포함되었다.[28][60]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독일 국방군은 폴란드, 발트 국가, 벨라루스, 우크라이나, 유럽 러시아의 상당 부분을 점령하며 동방 진출 정책을 실행에 옮겼다.[58] 그러나 Altreich|알트라이히de(1938년 이전의 독일 영토) 출신의 독일인 중 동부 지역 정착을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29][61] 실제로 전쟁 중 건설된 정착촌에는 독소 불가침 조약에 따른 나치-소련 인구 이동으로 소련의 영향권 지역에서 이주해 온 독일계 주민들이 주로 정착했으며,[30][62] 나치에 의해 독일인화가 가능하다고 여겨진 일부 폴란드인들도 정착 대상이 되었다.[31][63]
하지만 1943년부터 소련의 반격이 거세지면서 독일은 점령지를 잃기 시작했고, 1945년 연합국에 의해 나치 독일이 패망하면서 레반스라움 확보를 위한 동방 진출 계획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다.[61]
7.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동부 독일인의 추방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인구통계학적 및 문화적으로 동방식민운동(`Ostsiedlungde`)은 사실상 종결되었다. 1945년부터 1948년까지 포츠담 회담의 결정에 따라 오데르-나이세 선 동쪽 지역에 거주하던 독일인들이 추방되면서, 독일의 동방 팽창을 의미하는 `Drang nach Ostende`은 완전히 끝나게 되었다. 이러한 추방은 이후 해당 지역의 새로운 주민이 된 사람들에 의해 `Drang nach Ostende`의 결과를 되돌리는 과정으로 정당화되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고대 프로이센인과 같은 발트족이 거주했으나, 튜튼 기사단의 정복(13세기) 이후 여러 세기에 걸쳐 독일화되었던 구 독일 동부 영토(역사적 동부 독일)는 폴란드, 러시아, 리투아니아에 의해 분할 점령되었다. 이 지역에는 각국의 새로운 정착민들이 이주하여 채워졌다. 고대 프로이센어는 이러한 동화 과정 속에서 17세기 또는 18세기 초에 사멸되었다.
오데르-나이세 선은 점차 동독의 동쪽 국경으로 받아들여졌고, 독일 통일 이후에는 통일 독일 전체의 동쪽 국경으로 확정되었다. 이로써 독일은 이 선의 동쪽 지역에 대한 영토 확장이나 재점령 의지를 공식적으로 포기하게 되었다.
역사가 헨리 코드 마이어는 그의 저서에서 `Drang nach Ostende`[32]라는 슬로건이 실제로는 독일보다는 슬라브 세계에서 유래했으며, 독일 내부에서보다 슬라브권에서 더 널리 사용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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