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리 아키라
1. 개요
아마리 아키라는 일본의 정치인이다. 가나가와현에서 태어나 게이오기주쿠 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소니에 입사했으나 1974년 퇴사 후 아버지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1983년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당선되어 신자유 클럽 소속으로 정계에 입문했으며, 자유민주당으로 복당 후 통상산업성 정무차관, 경제산업대신,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등을 역임했다. 2021년에는 자유민주당 간사장을 지냈으나,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낙선했으나 비례대표로 부활했다. 2024년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낙선한 후 정계 은퇴를 표명했다. 그는 헌법 개정에 찬성하며, 일본회의와 연관되어 있다.
| 이름 | 아마리 아키라 |
|---|---|
| 본명 | (아마리 아키라) |
| 출생일 | 1949년 8월 27일 |
| 출생지 | 가나가와현 아쓰기시, 일본 점령기 |
| 아버지 | (다다시 아마리) |
| 소속 정당 | 자유민주당 |
| 학력 | 게이오 대학교 |
| 전직 | 소니 직원 아마리 다다시 중의원 의원 비서 |
|---|---|
| 칭호/훈장 | 법학사 (게이오기주쿠 대학・1972년) |
| 친족 (정치인) | 아버지: 아마리 다다시 (중의원 의원) |
| 웹사이트 | 아마리 아키라 공식 웹사이트 |
| 소속 정당 | (신 자유 클럽→) 자유민주당 (구 와타나베파→야마자키파→아마리 그룹→아소파) |
|---|---|
| 중의원 의원 | (구 가나가와 3구→) (비례 남관동 블록→) (가나가와 13구→) (비례 남관동 블록→) (가나가와 13구→) 비례 남관동 블록 당선 횟수 13회 |
| 임기 시작 | 1983년 12월 19일 |
| 임기 종료 | 2024년 10월 9일 |
| 자유민주당 간사장 | 제54대 |
|---|---|
| 총재 | 기시다 후미오 |
| 임기 시작 | 2021년 10월 4일 |
| 임기 종료 | 2021년 11월 4일 |
| 자유민주당 세제 조사회장 | 제36대 |
| 총재 | 아베 신조, 스가 요시히데, 기시다 후미오 |
| 임기 시작 | 2019년 9월 17일 |
| 임기 종료 | 2021년 10월 4일 |
| 자유민주당 선거 대책 위원장 | 제6대 |
| 총재 | 아베 신조 |
| 임기 시작 | 2018년 10월 2일 |
| 임기 종료 | 2019년 9월 17일 |
| 자유민주당 정무 조사 회장 | 제54대 |
| 총재 | 아베 신조 |
| 임기 시작 | 2012년 9월 28일 |
| 임기 종료 | 2012년 12월 25일 |
| 총재 | 다니가키 사다카즈 |
| 임기 시작 | 2011년 9월 30일 |
| 임기 종료 | 2012년 9월 28일 |
| 내각 | 제2차 아베 내각 제2차 아베 개조 내각 제3차 아베 내각 제3차 아베 제1차 개조 내각 |
|---|---|
| 임기 시작 | 2012년 12월 26일 |
| 임기 종료 | 2016년 1월 28일 |
| 내각 | 제2차 아베 내각 제2차 아베 개조 내각 제3차 아베 내각 |
| 임기 시작 | 2012년 12월 26일 |
| 임기 종료 | 2015년 10월 7일 |
| 내각 | 아소 내각 |
| 임기 시작 | 2008년 9월 24일 |
| 임기 종료 | 2009년 9월 16일 |
| 경제산업대신 | 제7-8대 |
| 내각 | 제1차 아베 내각 제1차 아베 개조 내각 후쿠다 야스오 내각 |
| 임기 시작 | 2006년 9월 26일 |
| 임기 종료 | 2008년 8월 2일 |
| 노동대신 | 제65대 연금 문제 담당 대신 |
| 내각 | 오부치 내각 오부치 제1차 개조 내각 |
| 임기 시작 | 1998년 7월 30일 |
| 임기 종료 | 1999년 10월 5일 |
-
아마리씨 -
아마리 도라야스
아마리 도라야스는 센고쿠 시대 다케다 신겐을 섬긴 무장으로, 다케다 노부토라 추방에 기여했으며 우에다하라 전투에서 전사했고, 그의 후손은 현대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대중 문화 속에서도 등장한다. -
일본의 경제산업대신 -
오부치 유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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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경제산업대신 -
나카가와 쇼이치
나카가와 쇼이치는 자유민주당 소속 중의원 의원으로, 농림수산대신과 경제산업대신 등 여러 장관직을 역임하고 아소 다로 내각에서 재무대신을 지냈으나 2009년 총선에서 낙선 후 사망했으며, 정치적 견해와 여성관 및 역사 인식, 음주 의혹 등으로 논란이 있었다. -
일본의 노동대신 -
지바 사부로
지바 사부로는 일본의 정치인이자 기업인으로, 도쿄 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하고 석유 및 에너지 관련 기업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미야기현 지사와 중의원 의원, 노동대신을 역임하고 자유민주당 내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대변하다가 1979년 사망했다. -
일본의 노동대신 -
이시다 히로히데
와세다 대학 졸업 후 기자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이시다 히로히데는 이시바시 단잔의 측근으로 활동하며 자유민주당에서 중의원 의원운영위원장, 여러 내각의 관방장관, 노동상, 운수상을 역임하며 노동 문제 해결에 힘썼고, 자민당의 위기를 경고하기도 했으나 소련 간첩 의혹 속에 정계를 은퇴했다.
2. 생애 및 경력
센고쿠 시대 다케다씨의 중신 아마리 도라야스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으며, 가나가와현 아쓰기시에서 태어났다. 게이오기주쿠 대학 법학부를 1972년 졸업하고 소니에서 잠시 근무한 뒤, 1974년 아버지 아마리 마사시 의원의 비서로 일하며 정계에 입문했다.
1983년 신자유 클럽 소속으로 중의원 의원에 처음 당선되었고, 이후 자유민주당에 합류하여 활동했다. 1998년 오부치 내각에서 노동대신으로 처음 입각했으며, 이후 제1차 아베 내각과 후쿠다 야스오 내각에서 경제산업대신을, 아소 내각에서는 규제개혁 담당 특명대신 등을 역임했다.
2012년 제2차 아베 내각 출범과 함께 경제재생 담당 대신 및 경제재정정책 담당 특명대신으로 임명되어 아베노믹스의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 시기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 협상 담당 국무대신도 겸임했다. 아베 총리 및 내각의 다수 구성원과 마찬가지로 우익 성향의 로비 단체인 일본회의와 연관되어 있다. 2013년 초기 설암 진단을 받고 수술 후 공무에 복귀하기도 했으나, 2016년 건설회사로부터 금전 수수 의혹이 제기되자 책임을 지고 국무대신 직에서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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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대신 사임 후에도 당내 주요 직책을 맡으며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하다가, 2021년 기시다 후미오 총재 취임 후 자유민주당 간사장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직후 치러진 2021년 일본 총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에서 낙선하는 이변을 겪으며 간사장직에서 물러났다. 비례대표로 의원직은 유지했으나, 이는 자민당 역사상 현직 간사장이 소선거구에서 패배한 첫 사례였다. 그의 후임으로는 모테기 도시미쓰가 임명되었다.
2024년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신설된 가나가와현 제20구에서 출마했으나 다시 낙선했고, 선거 후 정계 은퇴 의사를 표명했다. 그는 일한의원연맹 및 일중우호의원연맹의 회원이기도 하다.
2.1. 초기 생애
센고쿠 시대 다케다씨의 중신이었던 아마리 도라야스의 후손으로, 가나가와현 아쓰기시에서 태어났다. 가나가와현립 아쓰기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2년 게이오기주쿠 대학 법학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그는 야나기사와 하쿠오, 규마 후미오, 다카이치 사나에, 이부키 분메이, 나가세 진엔과 같은 다른 자유민주당 소속 정치인들처럼 천리교 신자이다.
대학 졸업 후 1972년 4월 소니에 입사했으나, 2년 뒤인 1974년 9월 퇴사했다. 이후 당시 중의원 의원이었던 아버지 아마리 마사시의 비서로 일했다.
1983년, 아버지 아마리 마사시가 정계 은퇴를 선언하자, 아버지의 지역구였던 구 가나가와 3구에서 신자유 클럽 공천으로 제3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여 처음으로 당선되었다.
2.2. 정치 경력
센고쿠 시대 다케다씨의 중신 아마리 도라야스의 후손으로, 가나가와현 아쓰기시에서 태어났다. 게이오기주쿠 대학 법학부를 1972년 졸업하고 소니에 잠시 근무하다 1974년 아버지 아마리 마사시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1983년 아버지의 지역구를 물려받아 신자유 클럽 소속으로 제3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출마하여 처음 당선되었다. 1986년 신자유 클럽 해산 후 자유민주당에 입당하여 나카소네 파에 속했다. 1989년 통상산업 정무차관을 지냈다.
1996년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소선거구에서는 낙선했으나 비례대표로 5선에 성공했다. 1998년 오부치 내각에서 노동대신으로 처음 입각하며 연금 문제 담당 국무대신을 겸임했고, 같은 해 야마자키 파 결성에 참여했다. 이후 당 재무위원장, 중의원 예산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06년 제1차 아베 내각에서 경제산업대신으로 임명되어 개조 내각 및 후쿠다 야스오 내각까지 유임되었다. 재임 중 러시아의 사할린 2 프로젝트 관련 문제나 중국과의 동중국해 가스전 공동 개발 문제 등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2007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는 파벌 방침과 달리 아소 다로를 지지했다.
2008년 아소 내각에서는 규제개혁 담당 특명대신 및 행정개혁, 공무원 제도 개혁 담당 국무대신을 맡았다. 공무원 제도 개혁 과정에서 인사원 총재와 갈등을 겪기도 했다. 2009년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지역구에서 패배했으나 비례대표로 9선에 성공했다.
2011년 파벌 횡단 정책 그룹 '사이코 일본'을 창립하고 대표를 맡았으며, 자민당 홍보본부장 등을 지냈다. 2012년 자유민주당 총재 선거에서 아베 신조의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아 승리에 기여했고, 이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에 취임했다. 2012년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10선에 성공한 뒤 파벌을 탈퇴했다.
2012년 12월 제2차 아베 내각 출범과 함께 신설된 경제재생 담당 대신 및 경제재정정책 담당 특명대신으로 임명되어 아베노믹스의 핵심 역할을 수행하며 세금·사회보장 개혁,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 협상 등을 담당했다. 아베 총리처럼 우익 성향의 일본회의와 연계되어 있다.
2016년 1월, 건설회사로부터 금전 수수 의혹이 주간지에 보도되자 관련 책임을 지고 국무대신 직에서 사임했다. 후임은 이시하라 노부테루가 맡았다.
이후 2017년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 12선에 성공하고, 자민당 행정개혁추진본부장, 선거대책위원장, 세제조사회장 등 당내 요직을 역임하며 영향력을 유지했다.
2021년 9월, 기시다 후미오 총재 취임 후 자유민주당 간사장에 임명되었으나, 직후 치러진 2021년 일본 총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가나가와 13구)에서 입헌민주당 신인 후토리 히데시에게 패배하는 이변을 겪었다. 비례대표로 13선에는 성공했으나, 선거 패배의 책임을 지고 간사장직에서 물러났다. 후임은 모테기 도시미쓰가 임명되었다.
2022년 12월, 차기 총선부터 적용될 선거구 개편에 따라 신설 가나가와현 제20구의 자민당 지부장으로 결정되었다. 2024년 10월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 가나가와 20구에서 출마했으나, 입헌민주당의 오츠카 사유리에게 다시 패배했다. 자민당의 '73세 정년제' 규정으로 비례대표 중복 입후보를 하지 않아 그대로 낙선했다. 선거 후 정계 은퇴 의사를 밝혔으나, 정치 활동은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일한의원연맹 및 일중우호의원연맹의 회원이기도 하다.
=== 약력 ===
| 연도 | 내용 |
|---|---|
| 1972년 3월 | 게이오기주쿠 대학 법학부 정치학과 졸업 |
| 1972년 4월 | 소니 입사 |
| 1974년 9월 | 소니 퇴사, 아버지 아마리 마사시의 비서 |
| 1983년 12월 | 제3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구 가나가와 3구, 신자유 클럽) 첫 당선 |
| 1986년 7월 | 제3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구 가나가와 3구, 신자유 클럽) 재선, 이후 자유민주당 입당 |
| 1989년 6월 | 우노 내각 통상산업 정무차관 |
| 1990년 2월 | 제3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구 가나가와 3구, 자민당) 3선 |
| 1993년 7월 | 제4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구 가나가와 3구, 자민당) 4선 |
| 1995년 9월 | 중의원 상공위원장 |
| 1996년 10월 |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가나가와 13구, 자민당) 5선 (비례 부활) |
| 1998년 7월 | 오부치 내각 노동대신 (연금 문제 담당 국무대신 겸임) |
| 2000년 6월 |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가나가와 13구, 자민당) 6선 |
| 2000년 7월 | 자유민주당 재무위원장 |
| 2001년 5월 | 자유민주당 필두 부간사장 |
| 2003년 11월 |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가나가와 13구, 자민당) 7선 |
| 2004년 9월 | 중의원 예산위원장 |
| 2005년 9월 |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가나가와 13구, 자민당) 8선 |
| 2006년 9월 | 제1차 아베 내각 경제산업대신 |
| 2007년 8월 | 제1차 아베 개조 내각 경제산업대신 유임 |
| 2007년 9월 | 후쿠다 야스오 내각 경제산업대신 재임명 |
| 2008년 9월 | 아소 내각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규제 개혁), 행정 개혁, 공무원 제도 개혁 담당 국무대신 겸임 |
| 2009년 8월 |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가나가와 13구, 자민당) 9선 (비례 부활) |
| 2011년 10월 | 자유민주당 홍보본부장, 경제·재정·금융 정책 조사회장 |
| 2012년 9월 | 자유민주당 정무조사회장 |
| 2012년 12월 |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가나가와 13구, 자민당) 10선 |
| 2012년 12월 | 제2차 아베 내각 내각부 특명 담당 대신 (경제 재정 정책), 경제 재생 담당, 사회 보장·세금 일체 개혁 담당 국무대신 |
| 2013년 4월 | 환태평양 경제 동반자 협정(TPP) 담당 국무대신 겸임 |
| 2014년 9월 | 제2차 아베 개조 내각 유임 (건강·의료 전략 담당 추가) |
| 2014년 12월 |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가나가わ 13구, 자민당) 11선 |
| 2014년 12월 | 제3차 아베 내각 유임 |
| 2015년 10월 | 제3차 아베 제1차 개조 내각 유임 |
| 2016년 1월 | 금전 수수 의혹으로 국무대신 사임 |
| 2017년 10월 |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가나가와 13구, 자민당) 12선 |
| 2017년 11월 | 자유민주당 행정개혁추진본부장 |
| 2018년 10월 | 자유민주당 선거대책위원장 |
| 2019년 9월 | 자유민주당 세제조사회장 |
| 2021년 10월 | 자유민주당 간사장 |
| 2021년 10월 |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가나가와 13구, 자민당) 13선 (비례 부활), 간사장 사임 |
| 2024년 10월 |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가나가와 20구, 자민당) 낙선 |
=== 선거 결과 ===
| 당락 | 선거 | 시행일 | 선거구 | 정당 | 득표수 | 득표율 (%) | 득표순위 /후보자수 | 정수 | 표차 (vs 차점자) | 석패율 (%) | 비례구 순위 | 정당 당선자수 /정당 후보자수 |
|---|---|---|---|---|---|---|---|---|---|---|---|---|
| 당 | 제3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983년 12월 18일 | 구 가나가와 3구 | 신자유 클럽 | 125,939 | 21.67 | 3/6 | 3 | 1,173 | - | - | - |
| 당 | 제3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986년 7월 6일 | 구 가나가와 3구 | 신자유 클럽 | 125,563 | 18.55 | 3/6 | 4 | 30,232 | - | - | - |
| 당 | 제3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990년 2월 18일 | 구 가나가와 3구 | 자유민주당 | 124,931 | 15.81 | 3/7 | 4 | 18,419 | - | - | - |
| 당 | 제4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993년 7월 18일 | 구 가나가와 3구 | 자유민주당 | 129,149 | 16.29 | 2/9 | 5 | 35,065 | - | - | - |
| 비당 | 제41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1996년 10월 20일 | 비례 미나미칸토(가나가와 13구) | 자유민주당 | 72,022 | 33.22 | 2/6 | 23 | - | 97.63 | 4 | 7/16 |
| 당 |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00년 6월 25일 | 가나가와 13구 | 자유민주당 | 114,351 | 45.78 | 1/5 | 1 | 27,472 | - | - | - |
| 당 |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03년 11월 9일 | 가나가와 13구 | 자유민주당 | 139,239 | 56.85 | 1/3 | 1 | 52,983 | - | - | - |
| 당 | 제44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05년 9월 11일 | 가나가와 13구 | 자유민주당 | 174,361 | 61.07 | 1/3 | 1 | 86,191 | - | - | - |
| 비당 | 제45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09년 8월 30일 | 비례 미나미칸토(가나가와 13구) | 자유민주당 | 136,164 | 45.45 | 2/4 | 22 | - | 98.60 | 1 | 6/31 |
| 당 | 제46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12년 12월 16일 | 가나가와 13구 | 자유민주당 | 111,733 | 42.96 | 1/5 | 1 | 60,907 | - | - | - |
| 당 | 제47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14년 12월 14일 | 가나가와 13구 | 자유민주당 | 142,201 | 60.47 | 1/3 | 1 | 83,260 | - | - | - |
| 당 | 제48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17년 10월 22일 | 가나가와 13구 | 자유민주당 | 127,214 | 56.14 | 1/3 | 1 | 64,435 | - | - | - |
| 비당 |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21년 10월 31일 | 비례 미나미칸토(가나가와 13구) | 자유민주당 | 124,595 | 48.91 | 2/2 | 22 | - | 95.75 | 2 | 9/16 |
| 낙 |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 2024년 10월 27일 | 가나가와 20구 | 자유민주당 | 63,217 | 35.5 | 2/3 | 1 | - | - | - | - |
| 당선 횟수 13회 (중의원 의원 13) | ||||||||||||
3. 정책 및 주장
* 헌법
헌법 개정에 대해 2017년, 2021년, 2024년 설문 조사에서 찬성 입장을 보였다.
개정 항목으로는 2021년 아사히 신문사 설문 조사에서 "자위대 보유 명기", "교육 충실을 위한 환경 정비 명기", "각 도도부현별 참의원 1명 이상 선출 보장 명기", "헌법 재판소 설치", "헌법 개정 발의 요건 완화(각 원 과반수)", "긴급 사태 조항 신설" 등을 주장했다.
헌법 9조에 자위대를 명기하는 것에 대해 2021년과 2024년 NHK 설문 조사에서 찬성했다.
* 안보·외교
타국 공격이 예상될 경우 적 기지 공격도 불사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2021년 설문에서 "어느 쪽이냐 하면 찬성"이라고 답변했다.
북한에 대해서는 대화보다 압력을 우선해야 한다는 입장에 2021년 설문에서 찬성했다.
후텐마 기지의 헤노코 이전에 대해 2021년 설문에서 찬성했다.
* 사회
선택적 부부별성 제도 도입에 대한 입장은 시간에 따라 변화했다.
* 2014년 아사히 신문사 설문: "반대"
* 2017년 아사히 신문사 설문: "어느 쪽도 아니다"
* 2021년 아사히 신문사 설문: "어느 쪽도 아니다"
* 2024년 NHK 설문: 응답하지 않음
동성 결혼 법제화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경향을 보였다.
* 2017년 아사히 신문사 설문: "어느 쪽이냐 하면 반대"
* 2021년 아사히 신문사 설문: "어느 쪽이냐 하면 반대"
* 2021년 NHK 설문: "반대"
* 2021년 마이니치 신문사 설문 ("동성 결혼을 제도로 인정해야 하는가"): 응답하지 않음
* 2024년 NHK 설문: "반대"
LGBT 등 성 소수자 이해 증진 법안의 조기 성립 필요성에 대해 2021년 아사히 신문사 설문에서 "어느 쪽이냐 하면 찬성"으로 응답했다.
쿼터제 도입에 대해 2021년 NHK 설문 조사에서 "어느 쪽이냐 하면 찬성"으로 응답했으나, 2024년 NHK 설문 조사에서는 응답하지 않았다.
* 정치
모리토모 학원 국유지 매각 관련 공문서 위조 문제에 대한 국가의 재조사 거부 등 대응에 대한 입장을 묻는 2021년 마이니치 신문사 설문에 응답하지 않았다.
정치 자금 규제 강화에 반대하며 "의원은 정치 자금 문제로 아침부터 밤까지 고민한다. 모으기 어렵게 한다고 좋은 정치가 된다는 것은 이상하다"고 발언했다.
* 황실
남계 천황을 우선하되, 최종 선택지로는 여계 천황도 용인해야 한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 경제
야당 시절 민주당 정권의 국가 전략 회의를 과거 경제 재정 자문 회의와 비교하며 개최 빈도, 투명성, 내용 면에서 미흡하다고 비판했다.
2014년 3월 참의원 예산 위원회에서 일본은행의 금융 정책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낮은 금리 유지가 경제 성장과 재정 재건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경제 성장 없이는 재정 재건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며, 재무성과 다른 견해를 보였다. 단순한 세출 억제는 디플레이션으로 회귀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베노믹스의 물가 목표 2% 달성에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며, 개인적인 견해로 "1%라도 디플레이션 탈피라고 말해도 좋지 않은가"라고 언급했다.
국채 발행에 대해서는 "어느 쪽이라고 하면 억제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일본의 "국제 금융 도시" 구상과 관련하여, 해외 금융업 및 인재 유치를 위해 상속세 등 세금 우대 조치를 "검토할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4. 논란 및 비판
아마리 아키라는 여러 논란과 비판에 직면해 왔다.
정치 자금 관련 논란
* 도로 특정 재원을 재원으로 하는 도로 운송 경영 연구회로부터 헌금을 받았다. 이 단체는 도로 특정 재원의 일반 재원화에 반대하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에 따르면, 2004년과 2005년에 전국 대금업 정치 연맹(전정련)이 아마리의 파티 티켓을 총 360어치 구입했다. 아마리 측은 2006년에 이를 반환했으며 전정련과 특별한 관계는 없다고 해명했다. 일본 공산당 기관지 신문 아카하타는 2003년 전정련이 작성한 파티 티켓 구입 정치인 명단에 아마리가 포함되어 있었다고 보도했다.
* 정부 보조금을 받는 기업으로부터 2013년 7월과 2014년 1월에 총 120의 헌금을 받은 사실이 야당에 의해 지적되었다.
* 도쿄 전력 및 관련 기업들이 정치인의 중요도에 따라 파티 티켓 구입액을 정했는데, 아마리는 상위 10명의 의원 중 한 명으로 분류되었다. 구입액은 보고 의무가 없는 200 이하였다고 보도되었다. 아마리는 간사장 취임 후 소형 원전 신증설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 신문 아카하타는 파칭코 제조업체 SANKYO가 7년간 4차례에 걸쳐 총 4500 상당의 파티 티켓을 구입했다고 보도했다.
* 노동자 파견법 규제 완화를 요구하던 일본 인재 파견 협회 소속 기업 중 한 곳으로부터, 노동대신 재임 시기를 포함한 6년간 709의 헌금을 받은 사실이 국회에서 일본 공산당 의원에 의해 추궁당했다.
* 2013년과 2014년, 2년간 6차례에 걸쳐 10을 넘는 정치 자금 파티를 개최했다. 이는 "국민의 의혹을 초래할 수 있는 대규모 파티는 자숙한다"는 대신 규범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았다.
개인 비리 및 부적절 행위
* 2004년 정치인의 연금 미납 문제가 불거졌을 때, 1986년 4월부터 15년 11개월간 국민 연금 보험료를 미납한 사실이 드러났다. 아마리는 의원 연금과 국민연금 이중 가입 의무를 몰랐다고 해명하며 사과했지만, 사회 보험청의 독촉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 2009년 1월, 아마리의 자금 관리 단체 '감산회'가 직원의 노동 보험(노동자 재해 보상 보험 포함)에 장기간 가입하지 않은 사실이 발각되었다. 이는 노동자 재해 보상 보험법 위반에 해당한다. 아마리 사무소는 아르바이트는 가입 의무가 없는 것으로 오해했다고 해명했으며, 2009년 1월에 가입하고 2006년도분까지 소급 납부했다. 아마리는 노동 대신 경험자이기도 하다.
기타 논란
* 2022년 봄, 통일교 (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관련 단체인 "Peace Road 해바라기"의 요청으로 "경제 안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4.1. UR을 둘러싼 알선 의혹
2016년 1월, 주간문춘은 치바현의 건설 회사 "사쓰마흥업"이 2013년 도로 건설과 관련하여 아마리 아키라 측에 도시재생기구에 대한 청탁을 의뢰했으며, 그 대가로 총 12 상당의 현금이나 접대를 제공했다고 보도했다。이에 대해 아마리는 "사장이 장관실을 방문한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하면서도 "무슨 일을 했는지는 기억이 흐릿하다"고 해명했다.
같은 달 28일, 아마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자신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사쓰마흥업 측으로부터 2013년 11월 장관실에서 500, 2014년 2월 야마토시 지역 사무소에서 500, 총 두 차례에 걸쳐 현금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자금은 제13구 지부에 기부하는 것으로 처리하도록 지시했으며,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에도 기재된 것이 확인되었다고 말했다.
사무소 비서의 문제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A 비서는 사쓰마흥업으로부터 받은 5 중 1을 제13구 지부에 헌금으로 기부 처리하고 정치자금 수지 보고서에도 기재했다. 나머지 4은 사쓰마흥업에 돌려주려 했으나 받지 않아, 그중 1은 사쓰마흥업 총무 담당자와 상의하여 아마리의 전 비서인 현의원이 대표를 맡은 야마토시 제2지부에 기부했다. 남은 3은 A 비서가 무단으로 사용했다고 주장했다。아마리는 이 자금에 대해 "선거관리위원회 등과 상의한 후 전부 반환하도록 사무소에 지시했다"고 덧붙였다.
청탁 의혹과 관련해서는 "A 비서는 사쓰마흥업으로부터 UR과의 보상 교섭에 관한 진정을 받아 야마토 사무소의 C 비서에게 조사를 부탁했다고 말하고 있다"며, "C 비서는 논의의 진척 상황 확인을 위해 UR에 갔지만, 무슨 부탁을 한 기억은 없다고 말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A 비서와 B 비서가 사쓰마흥업 측으로부터 여러 차례 음식 대접이나 금품 수수 등 접대를 받은 사실을 인정하고 사직서를 제출했으며, 이를 수리했다고 밝혔다. 이 기자회견에서 아마리는 특명담당대신직 사임 의사를 표명했다。 이후 그는 "수면 장애"를 이유로 제190회 국회가 끝날 때까지 결석했다。
2016년 3월 15일, 변호사 그룹 "사회문화법률센터"와 4월 8일 "정치자금옴부즈만"은 각각 아마리와 그의 전 비서를 알선 이득 처벌법 위반 혐의로 도쿄지방검찰청에 형사 고발했다. 아마리 사무소 측은 혐의를 부인했다。 같은 해 5월, 도쿄지방검찰청 특별수사부는 아마리와 전 비서 모두에 대해 혐의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고발한 양측은 검찰심사회에 심사를 신청했다. 검찰심사회는 심사 결과, 아마리에 대해서는 불기소 상당, 비서에 대해서는 불기소 부당으로 의결했다。 이로써 아마리의 불기소는 확정되었다. 검찰은 불기소 부당 의결을 받은 비서에 대해 재수사를 진행했으나, 다시 혐의 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분하여 비서의 불기소 역시 확정되었다。 이후 관련 혐의에 대한 공소시효가 완성되었다.
아마리는 1월 28일 사임 회견 당시 사무소 비서에 대한 의혹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여 적절한 시기에 공표할 기회를 갖도록 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이후 추가적인 해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2021년 10월 자민당 간사장 취임 회견에서는 "나 자신에 대해서는 기자 회견에서 질문이 다할 때까지 모든 질문에 답하고, 서면 질문에도 답해왔다. 나로서는 설명 책임을 포함하여, 책무를 다 마쳤다고 생각한다"고 발언하며 논란에 대한 해명이 충분했다는 입장을 보였다。
4.2. 학술회의 '천인계획' 관련 블로그 수정
2020년 8월 6일자 자신의 블로그 '국회 리포트 제410호'에서, 일본 학술회의가 중국의 군사 연구와 관련된 천인 계획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습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내용이 "잘못된 정보"라는 지적이 잇따르자, 같은 해 10월 12일 해당 부분을 "간접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라고 수정했다。 이 수정 과정에서 별도의 주석이나 정정문은 추가되지 않았다。
이후 아마리는 12일 밤에 공개한 다른 블로그 글('국회 리포트 제413호')을 통해, 이전 글에서 일본 학술회의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취지를 설명했다. 그는 학술회의의 문제점으로 생각하는 점들을 열거하며, "일본의 공적 기관이면서 대일본과 대중국 간 대응의 차이를 지적하고 싶었던 것"이며, "'적극적으로 협력'이라는 표현이 적절하지 않다면 '간접적으로 협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고 고치겠다"고 해명했다。
아마리가 블로그 내용을 수정하기 전에, 보수 성향의 정리 사이트인 '아노니머스 포스트'를 비롯한 여러 언론 매체는 아마리의 블로그를 근거로 삼아 내용을 확산시켰다. 이로 인해 인터넷상에서는 학술회의를 "반일 조직", "중국에 정보를 흘리고 있다" 등으로 비난하는 댓글이 쏟아졌다。
이에 대해 10월 15일, 학술회의 전 회장은 중국과의 협력설은 "악의적인 유언비어"라고 강하게 반박했으며, 내각부 역시 "관여하지 않는다"고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그러나 아마리가 블로그 내용을 수정한 후에도, "학술회의가 중국의 군사 연구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는 그의 주장은 인터넷상에서 계속 퍼져나가며 영향력을 미쳤다는 지적이 있다。
4.3. 2021년 중의원 선거 절규 연설
2021년 10월 29일, 금전 수수 문제를 안고 있던 제49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거리 연설에서, 화제가 경제 안보로 넘어가자 아마리는 "나는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 그런 내가 없어진다면 큰일이 날 것이다. 미래가 바뀌어 버린다. 내 손 안에는 일본의 미래가 들어있다. 나를 방해한다면, 이것은 국가의 앞날을 방해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라고 외치며 연설했다. 이 발언은 논란이 되었다. 다음 날인 10월 30일 선거에서, 아마리는 현직 자유민주당 간사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소선거구(가나가와현 제13구)에서 낙선하는 이변을 겪었으나, 비례대표 제도를 통해 의원직을 유지했다.
4.4. 심사 전 의약품 홍보 논란
2022년 2월 4일, 아마리 아키라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시오노기 제약이 개발 중인 코로나19 치료제 엔시트렐비르(상품명: 조코바)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임상 시험 보고를 받았다고 밝히며, 해당 약물이 "일본인 대상 임상 시험에서 부작용은 기존 약보다 극히 적고 효능은 다른 약을 압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외국 승인을 알리바이 삼아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는 후생노동성을 독촉 중이다"라고 덧붙였다.
이 트윗은 즉각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승인 심사가 완료되지 않은 의약품의 효능을 단정적으로 홍보하는 것은 약사법에서 금지하는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또한, 의약품 승인 절차를 진행 중인 후생노동성에 대해 공개적으로 압력을 행사하는 듯한 발언을 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4.5. 저출산 대책 재원 관련 발언 논란
2023년 1월 5일, BS TV 도쿄의 "닛케이 뉴스 플러스 9"에 출연하여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언급한 "이차원의 저출산 대책"의 재원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는 "육아는 전국민과 관련되어 폭넓게 지원하는 체제를 갖춰야 하며, 미래의 소비세 (증세)를 포함하여 조금 현실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이 발언은 언론에 의해 즉시 보도되었고, 소속 정당인 자민당 내부에서도 이를 부인하는 등 상당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해 아마리 아키라는 언론 보도가 "진의를 전달하지 않고 단편적인 사실을 짜맞추는 미스 리드"라고 비판했으며, 지역 신문인 가나가와 신문과의 인터뷰에서도 같은 취지로 반론했다。 그는 자신의 트위터에 해당 프로그램의 공식 유튜브 영상과 질의응답 "요지"를 게시하며, 자신이 "(기시다) 총리는 소비세를 인상할 생각은 없다"고 발언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팩트 체크 결과, 해당 프로그램 영상에는 아마리가 주장하는 발언 내용이 없었으며, 방송국 측 역시 "방송된 내용이 전부"라고 확인해주었다. 또한 아마리가 제시한 "요지"에는 실제 방송에서 하지 않은 발언이 기록되어 있음이 확인되었다。
5. 소속 단체 및 의원 연맹
아베 신조 내각의 구성원 대부분과 마찬가지로, 공개적으로 수정주의적인 단체인 일본회의와 연관되어 있다. 또한 일한의원연맹 및 일중우호의원연맹의 회원이다.
주요 소속 단체 및 의원 연맹은 다음과 같다.
* 최신형 원자력 리플레이스 추진 의원 연맹 (고문)
* 신도정치연맹 국회의원 간담회
*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
* 최고 일본 (대표)
* 금융 서비스 제도 검토 회 (대표 간사)
* 일중 우호 의원 연맹 (간사장)
* 해사 진흥 연맹 (부회장)
* 음악 문화 진흥 의원 간담회 (부회장)
* 모두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 일한 의원 연맹
* NASA의 회
* 소규모 기업 세제 확립 의원 연맹
* FCV(연료 전지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수소 사회 실현을 촉진하는 연구회 (최고 고문 / 회장)
* 전일본 가라테도 연맹 렌부회 (회장)
* 다마 대학 룰 형성 전략 연구소 (고문)
* 가나가와현 보디빌딩·피트니스 연맹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