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고지 (194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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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야마모토 고지(1946년)는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로, 1969년부터 1986년까지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활동했다. 호세이 대학 시절 투수에서 외야수로 전향하여 '호세이 3인방'으로 불렸으며, 1968년 드래프트 1순위로 히로시마에 입단했다. 1975년에는 수위 타자와 MVP를 수상하며 팀의 첫 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통산 4번의 홈런왕, 3번의 타점왕을 차지했다. 1986년 은퇴 후에는 히로시마의 감독과 야구 해설 위원으로 활동했으며,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그의 등번호 8번은 히로시마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야마모토 고지 (1946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야마모토 고지
출생일1946년 10월 25일
출생지히로시마현 사에키, 히로시마시
별칭미스터 아카헤루 (Mr. Red Helmet)
등번호8
선수 경력
포지션중견수 / 감독
투구/타석우투/우타
프로 입단1968년 드래프트 1위
소속팀히로시마 도요 카프 (1969년 ~ 1986년)
첫 출장1969년 4월 12일
최종 출장1986년 10월 27일
감독 경력
소속팀히로시마 도요 카프 (1989년 ~ 1993년, 2001년 ~ 2005년)
일본 국가대표팀 (2013년)
리그 우승1991년
수상 내역
정규 시즌2x 센트럴 리그 MVP (1975년, 1980년)
NPB 타격왕 (1975년)
4x NPB 홈런왕 (1978년, 1980년, 1981년, 1983년)
3x NPB 타점왕 (1979년–1981년)
3x NPB 출루율왕 (1979년, 1980년, 1983년)
10x NPB 베스트 나인 (1975년, 1977년–1984년, 1986년)
10x NPB 골든 글러브상 (1972년–1981년)
14x NPB 올스타 선정 (1973년–1986년)
2x NPB 올스타전 MVP (1975년, 1983년)
영구 결번히로시마 도요 카프 #8
기록
주요 기록5x 40홈런 이상 (1977년–1981년)
9x 30홈런 이상 (1975년, 1977년–1984년)
6x 100타점 이상 (1977년–1981년, 1983년)
5년 연속 40홈런 이상 (1977년–1981년)
8년 연속 30홈런 이상 (1977년–1984년)
13년 연속 20홈런 이상 (1974년–1986년)
5년 연속 100타점 이상 (1977년–1981년)
17년 연속 100안타 이상 (1970년–1986년)
사이클링 히트 (1983년 4월 30일)
9연속 안타 (1972년 7월 6일–8일)
302경기 연속 무실책 (1975년)
872경기 연속 출장 (1976년–1983년)
11x 만루 홈런 (1972년, 1977년, 1978년, 1980년–1984년)
통산 기록
소속 리그NPB
안타2,339
홈런536
볼넷1,168
타점1,475
도루231
타율0.290
장타율0.5416
올스타전 타율0.316
올스타전 홈런14
올스타전 타점27
명예의 전당
종류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 연도2008년
헌액 방법경기자 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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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프로 입단 전

야마모토 고지는 히로시마현 사에키 군 이쓰카이치 정(현재의 히로시마시 사에키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영향으로 히로시마 카프의 홈구장인 히로시마 현영 구장에 자주 방문하며 야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특히 하세가와 료헤이, 고즈루 마코토, 가나야마 지로 등을 동경했다.

히로시마 시립 이츠카이치 중학교를 거쳐 히로시마 현립 하쓰카이치 고등학교에 진학, 팀의 에이스 겸 4번 타자로 활약했다. 3학년 때는 주장을 맡아 여름 고시엔 현 예선에 출전했지만, 준결승에서 고료 고등학교에 패했다.

고교 졸업 후, 난카이 호크스의 쓰루오카 가즈토 감독의 권유로 호세이 대학에 진학했다. 쓰루오카 감독은 야마모토의 타격 재능을 높이 평가했다. 대학에서는 투수에서 외야수로 전향, 마쓰나가 레이이치 감독의 지도로 타격 재능을 개화하여 다부치 고이치, 도미타 마사루와 함께 '호세이 대학 3인방'으로 불리며 활약했다. 도쿄 6대학 야구 리그 통산 65경기 출장, 229타수 67안타, 타율 .293, 8홈런, 30타점을 기록했고, 베스트 나인에 두 차례 선정되었다.

1968년 드래프트 1위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지명되어 입단했다.

3. 선수 시절

호세이 대학에서 야구를 시작할 당시에는 투수였으나, 타격 재능을 본 감독의 권유로 외야수로 전향했다. 다부치 고이치, 도미타 마사루와 함께 ‘호세이 3인방’으로 불렸다. 1968년 드래프트 1순위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입단했다.

1969년 4월 12일 개막전에서 6번 타자 겸 중견수로 선발 출장하며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주전으로 기용되었고, 8월부터는 클린업 트리오를 맡았다. 같은 해 규정 타석 (22위, 타율 .240)에 도달했으며, 신인 시절에는 1번부터 9번까지 모든 타순을 경험했다.

1970년에는 3번, 1971년에는 주로 5번, 1972년에는 1번이나 5번 타자로 기용되었다. 5월 11일 주니치 드래건스전 (히로시마 시민 구장)에서는 2-2 동점 상황에서 9회말 1, 2루 찬스에 호시노 센이치를 상대로 사요나라 안타를 쳐냈다. 6월 10일 다이요 웨일스전 (가와사키 구장)에서는 1점 뒤진 9회초 2사 만루 상황에서 고타니 마사카쓰를 상대로 자신의 첫 만루 홈런이자 역전 만루 홈런을 기록했다. 네모토 리쿠오 감독, 세키네 준조 타격 코치, 우에다 도시하루 코치 (루키 시절 퇴단), 히로오카 다쓰로 내야 수비 코치 등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했다. 1971년부터 야마우치 가즈히로의 은퇴로 등번호 8을 물려받아 현역 은퇴 때까지 사용했다.

1974년에는 주로 3번 타자로 기용되어 타율 .275, 28홈런(리그 5위), 74타점을 기록했다. 5월 23일 주니치전 (히로시마 시민 구장) 5회에 호시노 센이치로부터 만루 홈런을 쳤고, 8월 27일 야쿠르트 스왈로스전 (히로시마 시민 구장)에서는 1-1 동점 상황에서 연장 11회에 아사노 케이지를 상대로 자신의 첫 사요나라 홈런을 기록했다. 시즌 오프에 성명학의 조언에 따라 이름을 "고지"에서 "코지"로 변경했다.

1975년 6월 하순부터 4번 타자로 정착했다. 올스타전 제1차전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는 센트럴 리그 3번 타자로서 4번 오 사다하루, 5번 다부치와 클린업을 구성했고, 6번 기누가사 사치오와 함께 2타석 연속 아베크 홈런을 기록했다. 8월에는 타율 3할, 7홈런, 19타점으로 월간 MVP에 선정되었다. 시즌 내내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며 첫 타격 타이틀인 수위 타자를 획득했다. 타율 .319, 30홈런, 84타점, 24도루로 개인 최고 성적을 기록했고, 자신의 첫 시즌 타율 3할과 시즌 30홈런을 달성하며 팀의 첫 우승에 크게 기여함과 동시에 시즌 MVP로 선정되었다. 한큐 브레이브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는 6경기에서 24타수 8안타 5타점, 제3차전, 제4차전에서 홈런을 기록했지만, 일본 제일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이 시리즈에서 감투상을 수상했다. 이 시즌부터 히로시마 카프는 빨간 헬멧을 채택했고, 야마모토의 애칭 "미스터 아카헤루"(ミスター赤ヘル일본어)가 정착하게 되었다.

1976년에는 부진했지만, 1977년에 오 사다하루에 이어 리그 2위인 44홈런, 113타점을 기록했고, 같은 해부터 5년 연속 40홈런을 기록했다. 이 기록을 가진 것은 오 사다하루와 야마모토 뿐이다. 5월 22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 (고라쿠엔 구장) 4회에 다카하시 요시마사를 상대로 역전 만루 홈런을 쳤고, 10월 9일 한신 타이거스전 (히로시마 시민 구장)에서는 옛 동료인 아니야 소하치를 상대로 사요나라 2점 홈런을 기록했다.

1978년 5월 31일 한신전 (한신 고시엔 구장)에서 1회에 우에다 지로를 상대로 친 만루 홈런을 포함해 44홈런으로 본인 첫, 구단 사상 첫 홈런왕에 올랐고, 리그 2위인 112타점을 기록했다. 이 홈런왕 획득으로 오 사다하루는 1976년부터 다시 복귀한 홈런왕 타이틀 획득이 2년 연속으로 멈추게 되었다.

1979년은 5월까지 타율이 .230대로 부진했지만, 아내의 도움으로 6월 이후 회복했다. 올스타전 제3차전 (메이지 진구 야구장)에서는 5-5 동점인 9회 무사 1루 상황에서 야나기타 유타카를 상대로 사요나라 2점 홈런을 쳐 MVP로 선정되었다. 같은 해 리그 2위인 42홈런을 기록했고, 113타점으로 본인 첫, 구단 사상 첫 타점왕을 획득했다. 같은 해 2번째 리그 우승, 첫 일본 시리즈 우승을 경험했지만, 킨테츠 버팔로스와의 일본 시리즈는 7경기에서 23타수 3안타 2타점 1홈런으로 부진했다. 오 사다하루의 8년 연속 타점왕 획득을 저지했고, 야마모토도 강타자로서 다시 평가받게 되었다.

3.1. 입단 초기 ~ 1970년대

야마모토 고지는 1968년 프로 야구 드래프트 1순위로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입단했다. 입단 당시 등번호는 27번이었으나, 야마우치 가즈히로의 은퇴 후 8번을 물려받았다. 1969년 4월 12일 개막전에 6번 타자 겸 중견수로 선발 출전하여 팀의 주전으로 자리잡았고, 시즌 후반에는 4번 타자 등의 클린업 타자로도 활약했다.

입단 초기에는 평범한 중거리 타자로 평가받았으나, 네모토 리쿠오, 우에다 도시하루, 세키네 준조, 히로오카 다쓰로 등 여러 지도자들의 지도를 받으며 성장했다. 1974년에는 주로 3번 타자를 맡아 타율 2할 7푼 5리, 홈런 28개, 74타점 등의 좋은 성적을 남겼다.

1975년, 야마모토는 타격에서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6월 하순부터 4번 타자로 활약하며 그 해 열린 올스타전 제1차전에서는 센트럴 리그의 3번 타자로서 4번 오 사다하루, 5번 다부치 고이치와 함께 클린업 타선을 형성했고, 6번 타자로 출전한 기누가사 사치오와 함께 2타석 연속 홈런을 때려냈다. 시즌 내내 타격 호조를 유지하며 수위타자 타이틀 경쟁을 벌였다. 주니치 드래건스의 이노우에 히로아키와 경쟁 끝에 수위타자를 차지했으며, 최종적으로 타율 0.319, 30홈런, 84타점, 24개의 도루를 기록하며 개인 최고 성적을 달성했다. 이러한 활약으로 팀의 창단 첫 리그 우승에 크게 기여했고, 시즌 MVP를 수상했다. 리그 우승이 결정된 10월 15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전(고라쿠엔 구장)에서 눈물을 흘렸고, 히로시마 사람들에게 '미스터 빨간 헬멧'(ミスター赤ヘル일본어)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1970년대 후반, 야마모토는 허리 통증에도 불구하고 경기에 계속 출전하며 광각 타법을 습득하여 장거리 타자로 성장했다. 1977년부터 5년 연속 40홈런 이상을 기록했는데, 이 기록은 오 사다하루와 야마모토만이 달성한 기록이다. 1978년, 1980년, 1981년, 1983년에는 통산 4차례의 홈런왕을 석권했고, 타점왕도 3차례나 차지했다. 또한, 강한 어깨와 정교한 수비를 바탕으로 1972년부터 1981년까지 골든 글러브상을 10년 연속 수상했다.

3.2. 1980년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야마모토 고지는 발과 어깨에 노쇠화 징후가 보이기 시작했지만, 나가시마 기요유키와 야마사키 류조의 활약으로 1983년부터 좌익수로 전향했다. 같은 해 4월 30일 한신 타이거스전(한신 고시엔 구장)에서는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했다. 1984년부터는 타격 코치를 겸임하며, 그 해 타이틀은 놓쳤지만 팀의 일본 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오 사다하루(현역 마지막 해인 1980년)를 제치고 당시 야구계 최고 연봉인 8,500만 엔에 계약했다. 1985년에는 역대 두 번째로 개인 통산 500홈런, 200도루를 동시에 달성했다.

1986년, 팀은 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야마모토 고지는 40세의 나이로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일본 시리즈 8차전이 사실상 그의 은퇴 경기가 되었으며, 경기에서 패배하여 세이부 라이온스에게 우승을 내주었지만 히로시마 코칭 스태프와 선수들로부터 헹가래를 받았다. 은퇴 회견에서 그는 눈물을 흘리며 "야마모토 고지는 행복한 남자입니다"라고 말했다. 현역 마지막 시즌에도 타율 2할 7푼 6리, 27홈런을 기록했지만, 고질적인 허리 통증이 악화되어 은퇴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야마모토 고지의 통산 536홈런은 대졸 출신 선수로서 일본 프로 야구 최다 기록이며, 7차례의 타점·홈런왕 타이틀은 모두 30세 이후에 획득했다. 통산 홈런의 7할을 30대 이후에 기록하는 등 전형적인 대기만성형 선수였다. 히로시마 구단은 그의 활약을 기리기 위해 등번호 8번을 구단 최초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

4. 은퇴 후·지도자 시절

현역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NHK의 야구 해설위원을 맡았고 1989년에는 친정팀 히로시마의 감독으로 발탁되었다. 1989년과 1990년에는 리그 2위를 기록했고 이듬해 1991년에는 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그 다음해인 1992년에는 4위를 기록했지만 1993년에는 현역 시절인 1974년 이후 19년 만에 최하위로 추락하면서 성적 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그 후 니혼 TV와 히로시마TV방송에서 해설 위원을 맡고 있었지만 히로시마 구단의 요청으로 2001년에 다시 히로시마 감독으로 재부임했다. 그러나 재임 중에 단 한 번도 팀을 A클래스에 진입시키지 못한 채 2005년 시즌 종료 후 성적 부진으로 감독직에서 물러났다. 감독으로서의 재임 기간(제1기·제2기에 맞추어)은 10년이었고 고바 다케시, 시라이시 가쓰미(모두 11년간 재임)에 이은 히로시마의 최장수 감독이 되었다. 감독 시절인 제1기 시절에는 마에다 도모노리오가타 고이치, 에토 아키라 등을 지도했고 제2기 시절에는 아라이 다카히로, 시마 시게노부, 구리하라 겐타 등을 지도하여 육성했다.

2006년부터 니혼 TV, 히로시마TV방송의 해설위원으로 복귀했고 2007년에는 호시노 센이치 감독의 지휘 하에 베이징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의 수비 주루 코치로 발탁되었지만 이듬해 본선에서는 대한민국과 미국에 패해 4위로 끝났다. 2008년에는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고 2010년에는 일본 프로 야구 명구회의 부회장으로 취임했다.

2012년 10월 10일,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의 감독으로 발탁되었지만 이듬해 2013년 3월 18일 샌프란시스코 AT&T 파크에서 열렸던 푸에르토리코와의 준결승전에서 패해 대회 3연패 달성에는 실패했다.
==== 2013 WBC 대표팀 감독 시절 논란 ====
2012년 10월 10일,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의 감독으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2013년 3월 18일 샌프란시스코 AT&T 파크에서 열렸던 푸에르토리코와의 준결승전에서 패하며 대회 3연패 달성에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대표팀과의 경기 및 푸에르토리코전 선수 기용과 작전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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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도순위경기 수승리패배무승부승률게임 차
홈런

타율

방어율
나이구단
1989년2위13073516.5899101.2713.0143세히로시마
1990년2위13266642.50822140.2673.5744세
1991년1위13274562.56988.2543.2345세
1992년4위13066640.5083122.2603.6046세
1993년6위13153771.40827155.2534.2947세
2001년4위14068657.511155.2693.8255세
2002년5위14064724.47121154.2594.3656세
2003년5위14067712.48620153.2594.2357세
2004년5위13860771.43820187.2764.7558세
2005년6위14658844.40829.5184.2754.8059세
통산: 10년135964968129.488A클래스 3회, B클래스 7회

4.1. 2013 WBC 대표팀 감독 시절 논란

2012년 10월 10일,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일본 대표팀의 감독으로 발탁되었다. 그러나 2013년 3월 18일 샌프란시스코 AT&T 파크에서 열렸던 푸에르토리코와의 준결승전에서 패하며 대회 3연패 달성에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 대표팀과의 경기 및 푸에르토리코전 선수 기용과 작전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5. 상세 정보

5.1. 출신 학교

* 히로시마 현립 하쓰카이치 고등학교
* 호세이 대학

5.2. 선수 경력

야마모토 고지(야마모토 고지/山本 浩二일본어)는 1969년부터 1986년까지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서 활약한 일본의 프로 야구 선수이다. 히로시마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호세이 대학에 입학하여 야구를 시작했으며, 원래 투수였으나 타자로서의 잠재력을 인정받아 외야수로 전향했다. 다부치 고이치, 도미타 마사루와 함께 "호세이 트리오"로 불렸다.

1968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 1라운드로 지명된 후, 1975년 타율 .319와 30홈런을 기록하며 팀의 창단 첫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1977년부터 5년 연속 40개 이상의 홈런을 기록했는데, 이는 오 사다하루만이 달성한 기록과 같다. 1978년, 1980년, 1981년, 1983년 시즌 홈런왕이었으며, 1979년부터 1981년까지 타점왕을 차지했다. 또한 1972년부터 10년 연속 미쓰이 골든 글러브 상을 수상했다.

1986년 팀의 리그 우승을 이끌었지만, 세이부 라이온스와의 일본 시리즈에서 패배한 후 은퇴했다. 그의 등번호 8번은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영구 결번으로 지정되었다.

5.3. 지도자·기타 경력

야마모토 고지는 1987년부터 1988년까지 NHK 야구 해설 위원으로 활동했다. 1989년부터 1993년까지, 그리고 2001년부터 2005년까지 히로시마 도요 카프 감독을 역임했다. 1991년에는 팀을 센트럴 리그 우승으로 이끌었으나, 1993년에는 팀을 리그 최하위로 몰락시킨 후 감독직에서 사임했다. 2001년 다시 감독으로 복귀했지만, 2005년 다시 최하위를 기록하며 팀을 떠났다.

1994년부터 2000년까지, 그리고 2006년부터 니혼 TV 및 히로시마 TV 야구 해설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일본 국가대표팀 코치를 맡았고, 2013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일본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히로시마 감독 시절 통산 성적은 10시즌 동안 649승 681패 29무(승률 .488)를 기록했으며, A클래스(상위 3팀) 3회, B클래스(4위 이하) 7회를 기록했다.

5.4. 수상·타이틀 경력

* 타이틀
수위 타자: 1회 (1975년)
홈런왕: 4회 (1978년, 1980년, 1981년, 1983년) ※센트럴 리그 우타자 기록
타점왕: 3회 (1979년 - 1981년)
최다 출루수: 3회 (1979년, 1980년, 1983년)
* 수상
최우수 선수: 2회 (1975년, 1980년)
베스트 나인: 10회 (1975년, 1977년 - 1984년, 1986년) ※외야수로서 10회 수상은 역대 2위 타이, 센트럴 리그 최다. 외야수로서 8년 연속은 역대 2위 타이 (아키야마 고지, 마쓰이 히데키)이며, 마쓰이와 함께 센트럴 리그 최장 기간
다이아몬드 글러브상: 10회 (1972년 - 1981년) ※외야수로서 통산 10회 수상·10년 연속 수상은 모두 센트럴 리그 기록, 10년 연속은 역대 2위 타이 (다른 선수: 아키야마 고지, 키쿠치 료스케) 1972년에는 다카다 시게루, 시바타 이사오와 함께 외야수 부문에서 센트럴 리그 사상 최초의 수상
일본 시리즈 감투상: 1회 (1975년)
일본 시리즈 우수 선수상: 1회 (1984년)
월간 MVP: 5회 (1975년 8월, 1978년 8월, 1980년 6월, 1983년 4월, 1986년 4월)
올스타전 MVP: 2회 (1975년 제1전, 1979년 제3전)
야구 명예의 전당 경기자 표창 (2008년)
호치 프로 스포츠 대상: 1회 (1987년)
히로시마 현민 영예상 (1987년)

5.4.1. 타이틀

* 수위 타자 : 1회(1975년)
* 홈런왕 : 4회(1978년, 1980년, 1981년, 1983년)
* 타점왕 : 3회(1979년 ~ 1981년)
* 최다 출루수 : 3회(1979년, 1980년, 1983년)

5.4.2. 수상

* MVP: 2회(1975년, 1980년)
* 베스트 나인: 10회(1975년, 1977년 ~ 1984년, 1986년) ※외야수로서 10회 수상은 역대 2위 타이, 센트럴 리그 최다. 외야수로서 8년 연속은 역대 2위 타이 (아키야마 고지, 마쓰이 히데키)이며, 마쓰이와 함께 센트럴 리그 최장 기간
* 다이아몬드 글러브상: 10회(1972년 ~ 1981년) ※외야수로서 통산 10회 수상·10년 연속 수상은 모두 센트럴 리그 기록, 10년 연속은 역대 2위 타이 (다른 선수: 아키야마 고지, 키쿠치 료스케)。1972년에는 다카다 시게루, 시바타 이사오와 함께 외야수 부문에서 센트럴 리그 사상 최초의 수상
* 일본 시리즈 감투상: 1회(1975년)
* 일본 시리즈 우수 선수상: 1회(1984년)
* 월간 MVP: 5회(1975년 8월, 1978년 8월, 1980년 6월, 1983년 4월, 1986년 4월)
* 올스타전 MVP: 2회(1975년 1차전, 1979년 3차전)
* 일본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자(2008년)

5.5. 주요 기록

야마모토 고지는 1969년 4월 12일 주니치 드래건스와의 1차전에 6번 타자 겸 중견수로 첫 출장 및 첫 선발 출장을 기록했다. 같은 해 4월 13일 주니치와의 2차전에서 첫 안타, 4월 19일 아톰스와의 2차전에서 첫 타점을 기록했다. 5월 14일 요미우리 자이언츠와의 3차전에서는 첫 홈런을 기록했다.

1974년 6월 13일 통산 100홈런, 1985년 7월 26일 통산 500홈런을 달성했다. 1984년 5월 5일에는 통산 2000안타를 기록했고, 1983년 4월 30일에는 사이클링 안타를 달성했다.

그 외 주요 기록으로는 시즌 40홈런 이상 5회, 시즌 30홈런 이상 9회, 시즌 100타점 이상 6회를 기록했다. 5년 연속 시즌 40홈런 이상(1977년~1981년)과 5년 연속 시즌 100타점 이상(1977년~1981년)을 기록하기도 했다. 또한, 13년 연속 시즌 20홈런 이상(1974년~1986년)을 기록했다.

1972년 7월 6일부터 7월 8일까지는 9타수 연속 안타를 기록했고, 1975년 4월 5일부터 9월 24일까지는 외야수로서 302수비 기회 연속 무실책이라는 센트럴 리그 기록을 세웠다. 1976년 10월 22일부터 1983년 8월 28일까지는 872경기 연속 출장을 기록했다.

통산 500홈런과 200도루를 달성했으며, 통산 만루 홈런은 11개, 통산 장타율은 .5416이다. 통산 외야수 척살 4637개와 통산 외야수 보살 154개는 각각 역대 2위 및 센트럴 리그 기록이다.

올스타전에는 14회 출전했으며, 올스타전 통산 타율 .316, 통산 홈런 14개, 통산 타점 27타점을 기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