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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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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사건은 1985년 6월 23일, 아일랜드 해안 상공에서 에어 인디아 182편이 폭탄 테러로 공중 폭발하여 승무원과 승객 329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1980년대 인도 내 시크교 분리주의와 관련된 갈등의 연장선상에서 발생했으며, 캐나다에 거주하던 시크교 과격 단체들이 주도한 것으로 밝혀졌다. 캐나다 정부는 이 사건을 '캐나다의 비극'으로 규정하고 공적인 조사를 실시했으며, 2010년 발표된 조사 보고서를 통해 정부와 정보기관의 실수가 테러를 막지 못했음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이 사건은 캐나다 역사상 최악의 테러 사건으로 기록되었으며, 희생자들을 기리는 추모비가 여러 곳에 건립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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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5년 인도 - 나리타 국제공항 폭탄 테러
    1985년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에어 인디아 항공편으로 옮겨질 수하물이 폭발해 일본인 직원 2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당한 이 테러는 시크교 과격 단체의 소행으로, 서머 타임 적용 오류로 폭탄이 조기 폭발한 사건이다.
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사건
사고 개요
사고 유형공중 폭발 (기내 폭발)
원인바바르 칼사의 테러 폭탄 테러 주장
발생 위치대서양, 아일랜드 카운티 케리 워터빌 서남서쪽 지점
항공편 정보
항공사에어 인디아
항공편명AI182 (AIC182)
콜사인AIRINDIA 182
출발지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 토론토, 캐나다 (AI181편으로 운항)
경유지몬트리올 미라벨 국제공항, 미라벨, 퀘벡, 캐나다
런던 히스로 공항, 런던, 영국
최종 경유지팔람 국제공항, 델리, 인도
목적지사하르 국제공항, 봄베이, 인도
항공기 정보
1985년 6월 10일 런던 히스로 공항에 착륙하는 VT-EFO
사고 항공기, VT-EFO. 사고 발생 2주 전인 1985년 6월 10일 런던 히스로 공항에서 촬영됨.
기종보잉 747-237B
등록 기호VT-EFO
항공기 이름엠퍼러 카니슈카
인명 피해
탑승객329명
승객307명
승무원22명
사망자329명
생존자0명
추가 정보
추가 정보상공에서 폭발

2. 사건의 배경

1947년 인도의 분할 이후, 힌두교시크교 간의 종교적, 정치적 갈등이 계속되었다. 시크교 사회는 분리에 따른 폭력과 고난으로 인해 많은 희생을 겪었으며, 인도와 파키스탄으로 분리된 펀자브 주에서는 할리스탄 분리주의 운동이 발생했다.

1970년대, 많은 시크교도들이 캐나다로 이주했으며, 이들 중에는 탈윈더 싱 파마르, 아자이브 싱 바그리 등 바브르 칼사와 같은 과격 단체의 지도자 및 구성원들도 있었다. 1980년대 밴쿠버 주변은 인도 외 지역에서 가장 큰 시크교 인구 밀집 지역이 되었다.[13]

1983년, 담다미 탁살의 지도자 자르나일 싱 빈드란왈레가 이끄는 반군이 황금 사원의 아칼 타크트를 점거하고 시크교 사원에 무기를 비축했다. 이들은 더 큰 자치권을 요구하는 아난드푸르 사히브 결의안을 통과시켰으나,[22][23] 중앙 정부는 이를 거부했다. 1984년, 인도 정부는 블루스타 작전을 통해 황금 사원을 공격했고, 이는 시크교도들의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인디라 간디 총리는 시크교 경호원들에게 암살당했고, 이후 1984년 반시크교 폭동으로 수천 명의 시크교도들이 학살당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은 시크교 과격파들이 인도 정부에 대한 복수를 다짐하는 계기가 되었다.

2. 1. 1978년 시크교-니란카리 충돌

1978년 4월 13일, 인도 암리차르에서 시크교 정통파와 산트 니랑카리 미션 간의 충돌이 발생했다. 아칼리 달 주 정부의 허가를 받아 암리차르에서 개최된 이 집회는 구르바찬 싱이 이끌었으며, 빈드란왈레가 주창한 정통 시크교의 관점에서 이단으로 여겨졌다.[14] 빈드란왈레와 아칸드 키르타니 자타(AKJ)의 파우자 싱이 이끄는 약 200명의 시크교도 행렬이 황금 사원을 출발하여 니랑카리 집회장으로 향했다.[15] 이어진 폭력 사태에서 빈드란왈레의 추종자 2명, 아칸드 키르타니 자타 회원 11명, 니랑카리 3명, 총 16명이 사망했다.[16]

이 사건으로 아칼리 주도 펀자브 주 정부는 13명의 시크교도 살해 혐의로 62명의 니랑카리들을 기소했으나, 하리아나 주에서 열린 재판에서 피고인들은 모두 자기방어를 이유로 무죄 판결을 받았다.[17] 펀자브 주 정부는 판결에 항소하지 않았다.[18] 니랑카리들이 언론의 긍정적인 관심을 받자, 일부 정통 시크교도들은 이것을 시크교를 중상모략하려는 음모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상황은 빈드란왈레가 시크교도들의 적들에 대한 공격적인 발언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아칼 타크트는 산트 니랑카리들을 배척하기 위한 권한 위임장을 발행했다.[19] 이는 일부 추종자들이 시크교의 적들을 살해하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고, 바브르 칼사, 담다미 탁살, 달 칼사, 전인도 시크교 학생 연맹과 같은 단체들이 결성되는 배경이 되었다.

2. 2. 바그리의 메시지

1984년 7월 28일, 뉴욕 메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열린 세계 시크교 연합(WSO) 대회에서 바그리는 1시간 동안 연설을 했다. 세계 시크교 연합 강령은 외교에 전념하고 폭력에 반대하는 것이었지만, 바그리는 "우리는 힌두교도 50,000명을 죽일 때까지 쉬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해 군중들을 분노하게 했다. 이 발언은 훗날 재판에서 그대로 인용되었다.[13] 그는 시크교 지도자들에게 납치범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인도 정부와 강제적인 "지위"에 의한 협상에 들어갈 것을 촉구했으며, 간디의 비폭력주의를 비판했다. 바그리는 "우리는 자신을 희생하여 전쟁터에서 싸우다 죽을 것이다. 그러한 죽음은 할사의 임무이며 우리의 종교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카슈미르의 이슬람 군부와 아프가니스탄 반군도 집회에 초대되었다.

바그리의 펀자브어 연설은 "시크교도 역사와 문학"을 언급하며 모든 힌두교도에게 복수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었으나, 그는 이를 부인했다. 그러나 그는 "열정을 독려하고 민족적 자긍심을 불러일으켰다"고 인정했다.[13]

3. 사건의 계획

1984년 인디라 간디 인도 총리가 블루스타 작전을 지시하여 암리차르의 황금사원에 진입한 이후, 할리스탄 분리주의 운동은 격화되었다. 이 작전으로 많은 민간인이 사망했고, 1984년 10월 31일 간디 총리는 자신의 시크교도 경호원들에게 암살당했다. 이 사건은 1984년 반 시크교 폭동으로 이어져 인도 전역에서 수천 명의 시크교도가 학살당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던컨에 거주하는 인도계 캐나다인 자동차 정비공이자 전기 기술자인 인더르지트 싱 르얏은 바브르 칼사의 지도자 탈윈더 싱 파마르의 폭탄 제조 요청을 받았다. 르얏은 폭탄의 용도를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던컨 지역 주민들에게 다이너마이트에 대해 묻고, 동료와 폭발물에 대해 논의하며 인도 정부와 인디라 간디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1984년 말, 최소 두 명의 정보원이 몬트리올에서 출발하는 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계획을 당국에 보고했지만, 이 보고들은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묵살되었다. 1985년 3월 5일, 캐나다 안보정보청(CSIS)은 법원 명령을 받아 파마르를 1년간 감시했다.

3. 1. 폭발물과 시계

1985년 5월 8일, 르얏은 던컨에 있는 라디오셱에서 마이크론타 사의 자동차용 디지털 시계를 구입했다. 12볼트의 자동차 전원에 맞춰 설계되었으며, 12볼트 조명용 배터리로도 작동할 수 있었다. 그는 일주일 후 부저 신호를 다른 장치에 전력을 공급하는 방법을 묻고 전기 릴레이를 사러 매장에 다시 갔다. 르얏은 후에 부분적으로 분해된 자동차 시계의 전선을 손전등 배터리에 연결한 채로 텔레비전 수리점을 찾았다. 그는 캠프에서 깨어나기 위해 간헐적인 경고음이 필요하다고 했다. 해당 수리점의 수리공은 르얏이 캠핑카를 소유하지 않았음을 알고 있었으며, 이것은 1991년 파리에서 열린 르얏의 재판에서 타이머가 이상한 목적으로 시험된 것이 추가되면서 르얏에게 타격을 주었다.

캐나다 정부는 2003년에 르얏이 처음에 3개의 시계를 구매한 목적을 알지 못했다고 말한 것을 거짓말이라 비난하였다. 그는 파마르가 인도에서 교량이나 큰 것을 폭파할 폭발 장치가 필요했고, 폭발 장치에 타이머가 필요했다고 언급했다. 이는 발파 캡을 위한 뇌관 회로로 사용될 수 있었으며, 다이너마이트처럼 큰 폭발물을 격발시키는데 필요한 초기의 위력을 제공했다.

5월 중순, 르얏은 12볼트 배터리, 마분지 실린더, 화약, 그리고 일부 다이너마이트와 같이 다른 장치를 시험하기 위해 숲으로 갔으나 장치가 작동하지 않았다.

3. 2. 항공권의 확보

1985년 6월 20일, 탈윈더 파마르와 그의 추종자 하디알 싱 조할은 항공권 확보를 위해 공중전화를 사용했다. 도청된 대화에서 파마르는 조할에게 "이야기를 썼나?"라고 물었고, 조할은 "아니, 안 썼어."라고 답했다. 파마르는 "먼저 그 일을 해."라고 지시했다. 이는 파마르가 항공권 예약을 지시한 것으로, "이야기를 쓰다"는 표현은 항공권 구매를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후 조할은 파마르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요청한 이야기를 읽으러 갈 수 있느냐"고 물었고, 파마르는 동의했다.

같은 날 01:00 UTC에 '미스터 싱'이라고 자신을 밝힌 남성이 6월 22일 출발하는 두 편의 항공편을 예약했다. 하나는 '자스완 싱'이라는 이름으로 밴쿠버에서 토론토로 가는 캐나다 태평양 항공 86편이었고, 다른 하나는 '모힌데르벨 싱'이라는 이름으로 밴쿠버에서 도쿄로 가는 캐나다 태평양 항공 3편과 이후 방콕을 경유하여 델리로 가는 에어 인디아 301편으로 연결되는 항공편이었다. 같은 날 02:20 UTC, 또 다른 전화에서 '자스완 싱'의 예약은 캐나다 태평양 항공 86편에서 밴쿠버발 토론토행 60편으로 변경되었다. 이 남성은 토론토에서 몬트리올로 가는 에어 인디아 181편과 몬트리올에서 뭄바이로 가는 에어 인디아 182편의 대기자 명단에 자신을 올려달라고 요청했다.

다음 날인 6월 21일 19:10 UTC, 터번을 쓴 남성이 밴쿠버의 캐나다 퍼시픽 항공권 판매소에서 3005CAD를 현금으로 지불하고 항공권을 구매했다. 예약된 이름은 '자스완 싱'은 'M. 싱'으로, '모힌데르벨 싱'은 'L. 싱'으로 변경되었다. 이러한 항공권 예약 및 구매는 두 항공편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사용되었다.

연락처로 남겨진 전화번호 중 하나는 밴쿠버 로스 스트리트의 시크교 사원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수사관들이 추적한 첫 번째 단서로, 밴쿠버 고등학교 청소부였던 하디알 싱 조할의 번호였다. 조할은 탈윈더 싱 파마르의 추종자였으며, 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사건 이후 조사에서 면밀히 주시되었다.

4. 폭발의 순간

1985년 6월 22일 13시 30분(그리니치 표준시), '만짓 싱'이라고 자신을 밝힌 남성이 에어 인디아 181/182편 탑승 수속을 하면서 수하물을 탁송하고, 에어 인디아 항공편으로 환승 연결을 요구했다. 그는 토론토발 몬트리올행과 몬트리올발 뭄바이행 좌석이 확인되지 않았음에도 수하물 체크인을 강요했다. 결국 직원은 그의 수하물 탁송을 허락했지만, 토론토에서 에어 인디아에 수하물 확인을 다시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사고 후, 이 직원은 뒤늦게 182편에 실린 가방이 속임수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같은 날 20시 22분경, 'L 싱'이라는 남성도 밴쿠버발 도쿄행 캐나다 태평양 항공 3편에 수하물을 체크인하고, 도쿄발 방콕행 에어 인디아 301편으로 환승 연결을 요구했다. 하지만 L 싱도 만짓 싱과 마찬가지로 탑승하지 않았다.

6월 23일 0시 15분, 181편은 '카니슈카 황제'로 명명된 보잉 747-232B 항공기로 토론토 피어슨 국제공항을 출발하여 몬트리올 미라벨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182편은 왼쪽 주날개 밑에 설치되어 있던 5번째 엔진(스페어 엔진)을 인도로 수리하기 위해 운반해야 했기 때문에 40분에서 1시간가량 출발이 지연되었다. 해당 엔진 및 관련 부품 일부는 후방 화물칸에 적재되었다. 사고기는 오전 1시에 몬트리올 미라벨 국제공항에 도착했으며, 이때 비행편 번호는 181에서 182편으로 바뀌었다.

7시 14분 1초, 182편의 비행 승무원들이 섀넌 공항 관제소에 '스쿼드 2005'를 요청한 직후, 전방 화물칸에서 폭탄이 폭발하여 공중 분해되었다. 이보다 앞선 6시 20분,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에어 인디아 301편으로 옮겨질 예정이던 수하물이 폭발하여 수하물 직원 2명이 사망하고 4명이 부상당했다.

5. 잔해와 시신의 회수

에서 폭발이 발생하여, 1985년 6월 23일 (협정 세계시) 오전 7시 14분 1초에, 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사건의 항공기 잔해는 아일랜드 남서부 해안에서 떨어진 해저 깊은 곳에 가라앉았다. 9시 13분, 캐나다 선적 화물선 로렌티안 포레스트호가 항해 도중 182편의 잔해와 수많은 시신이 떠다니는 것을 목격했다. 승무원 22명과 승객 307명, 총 329명 중 132구의 시신이 수습되었고 197구는 바다에서 실종되었다.

8구의 시신에서는 "채찍 모양"의 상처가 발견되어, 항공기가 물에 닿기 전에 밖으로 튕겨져 나왔음을 나타냈다. 이는 항공기가 공중에서 파손되었다는 신호였다. 26구의 시신에서는 저산소증(산소 부족) 징후가 나타났다. 창문 근처에 앉았던 25명(대부분)의 시신에서는 폭발 감압의 징후가 나타났다. 23명은 "수직 힘에 의한 부상" 흔적을 보였다. 21명의 승객은 옷을 거의 입지 않은 채 발견되었다.

보고서에 인용된 한 관계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모든 희생자들은 부검 보고서에서 다발성 손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사망자 중 두 명(유아 1명, 아동 1명)은 질식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유아의 질식사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다른 아동(시신 번호 93)의 경우, 발목을 중심으로 구르거나 회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견이었기 때문에 다소 의문의 여지가 있었습니다. 다른 세 명의 희생자는 분명 익사로 사망했습니다."

이 중 임신 2개월 차의 임산부와 태아인 아들 둘의 익사 사망 원인은 1985년 9월 17일 코크에서 열린 검시 소환에서 존 호건이 증언한 내용과 같다.

> "다른 중요한 소견으로는 입과 코에 다량의 거품이 섞인 체액이 있었고, 모든 기도와 폐는 물에 젖어 매우 무거웠습니다. 위와 자궁에도 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자궁에는 약 5개월 된 정상적인 남성 태아가 들어 있었습니다. 태아는 외상을 입지 않았으며, 제 의견으로는 익사로 사망했습니다."[29]

가드라인 로케이터호


폭탄 테러를 뒷받침하는 추가 증거는 수심 해저에 있는 파손된 항공기에서 회수되었다. 정교한 소나를 갖춘 영국 선박 가드라인 로케이터호와 해저 케이블 설치선 레옹 테브낭호(원격 조종 수중 장비 ''스캐럽 1'' 탑재)가 비행 기록 장치(FDR)와 비행 음성 기록 장치(CVR) 상자를 찾기 위해 파견되었다. 상자를 찾기가 어려울 것이고 신속한 수색이 필수적이었다. 7월 4일, 가드라인 로케이터호는 해저에서 신호를 감지했다. 7월 9일, 스캐럽 1은 CVR을 정확히 찾아 수면으로 끌어올렸다. 다음 날, FDR도 발견되어 회수되었다. 1985년 캐나다 해안 경비대 함정(CCGS) 존 캐벗호가 조사에 참여하여 항공기의 수중 잔해를 조사했다.[30]

6. 사건의 조사

사건 직후, 캐나다 정부는 인도 내 시크교 분리주의 운동과 연계하여 조사를 시작했다. 수사 결과, 바브르 칼사를 비롯한 시크교 테러 단체들이 캐나다, 미국, 영국, 인도 등지에 광범위하게 회원을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의 분노는 1984년 6월 인도 정부의 블루스타 작전에서 촉발되었다.

캐나다 인도계 사회는 희생자들과 함께 인도 정부 관리들이 힌두교도들에 대한 보복으로 폭력을 행사하겠다고 위협하고 실제로 폭력 행위를 저지른 시크교 분리주의자들과의 연관성을 조사하고 있다는 암시와 함께 주목을 받았다.

이후 6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조사에서 여러 실마리가 드러났다. 해상에서 수습된 잔해와 시신을 바탕으로 해저에서 잔해와 비행기록장치를 인양하기로 결정했다. 음성 기록 장치와 비행 기록 장치가 동시에 잘려나간 점, 그리고 앞쪽 화물칸에서 회수된 부품의 손상이 폭발과 일치한다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항공기 추락의 원인은 앞쪽 화물칸 근처에서 발생한 폭발물일 가능성이 높다는 결론이 나왔다. 또한 이 비행기는 앞서 일본에서 발생한 폭발 사건과도 연관이 있었는데, 두 비행기의 항공권 모두 같은 사람이 구매했고, 두 경우 모두 승객이 탑승하지 않은 수하물이 있었다.

바다에서 폭발물의 잔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도쿄 폭발 사건 조사 결과 폭탄이 캐나다 밴쿠버로 배송된 산요사 스테레오 튜너에 설치된 것으로 밝혀졌다. 캐나다 왕립 기마경찰(RCMP)은 산요 튜너를 판매했을 가능성이 있는 모든 상점을 조사하기 위해 135명 이상의 경찰관을 배치하여,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던컨 출신의 정비공 인더지트 싱 레이엇(Inderjit Singh Reyat)에게 최근 판매된 사실을 발견했다. RCMP는 캐나다 보안정보국(CSIS)에 연락하여 시크교 활동가들을 이미 조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CSIS가 이미 도청을 하고 레이엇과 탈윈더 싱 파마르(Parmar)를 던컨 근처의 폭발 실험 현장에서 목격했으며, 폭발 캡 션트와 폭발 캡 포장지에서 나온 종이 뭉치를 회수했음을 알게 되었다. 수색 결과 그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힌 산요 튜너 모델 FMT-611K 영수증과 다른 폭발물 부품 판매 기록이 발견되었다. 1986년 1월, 캐나다 항공 안전 위원회의 캐나다 조사관들은 앞쪽 화물칸에서 발생한 폭발로 여객기가 추락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1986년 2월 26일, 인도 대법원 키르팔(Kirpal) 판사는 H.S. 콜라(H.S. Khola)가 실시한 조사를 바탕으로 한 보고서("'''콜라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에서도 캐나다에서 온 폭탄으로 에어 인디아 항공기가 추락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관찰, 도청, 수색, 용의자 체포 등을 바탕으로 이 폭탄 테러는 캐나다, 미국, 영국, 인도에 광범위한 회원을 가진 최소 두 개의 시크교 테러 단체의 공동 작전으로 판명되었다. 무장 시크교도들은 인도의 분리주의자들에 대한 지상 공격과 1984년 반시크교 폭동[44][45]으로 인한 금빛 사원 파괴와 시크교도 사망에 분노했다.

6. 1. 대안적 이론

일부 단체들은 시크교 극단주의의 책임을 부정하며, 항공기 폭파가 아닌 다른 가능성을 제기했다. 2000년 세계 시크교 연맹은 "시크교는 182편 폭파와 관계없다"는 견해를 홍보하며, 화물칸 문이 떨어져 나갔다고 주장했다.[44] 2007년 세계 시크교 연합은 폭탄 테러였음을 인정했으나, 인도 측이 시크교 분리주의자들을 지원한다고 비난했다.[45]

독립 조사관 존 베리 스미스는 상세한 보고서를 통해 팬암 103편 폭파 사건과 마찬가지로 182편도 "비행 중 파열"로 인해 추락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세계 시크교 연맹과 접촉하여 "시크교도는 물론 어느 누구에게도 폭파되지 않았고, 비행 중 화물칸 문이 열리면서 폭발성 감압 발생으로 인한 추락"이 발생했다는 주장을 펼쳤다.[44] 그러나 이 주장은 2006년 182편 사건 수사에서 진지하게 검토되지 않았다.[45]

1989년 캐나다 언론인 브라이언 맥앤드류와 쥬하이어 카쉬메리는 182편 사건이 시크교 분리주의 운동에 대한 캐나다 정보 당국의 좋지 못한 활동의 결과라는 음모론을 제시하는 책을 출판하기도 했다.

6. 2. 실수와 놓쳐버린 기회

캐나다 정부는 인도 정부로부터 캐나다 내 에어 인디아 항공편에 테러리스트에 의한 폭탄 테러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를 받았다. 사건 발생 2주 전, 캐나다 보안정보국(CSIS)은 캐나다 왕립 기마경찰(RCMP)에 에어 인디아와 캐나다 내 인도 대사관에 대한 잠재적 위협이 높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조치는 취해지지 않았다.

1985년 6월, 에어 인디아의 텔렉스 메시지에서 "시간 지연 장치"를 이용하여 항공기를 표적으로 삼을 수 있다는 내용이 제시되었다. 온타리오 주 부총독 제임스 바틀먼 또한 연방 외무부의 고위 정보 관리로서 폭탄 테러가 발생한 주말에 대한 항공사에 대한 위협 경고가 담긴 보안 "가로채기" 정보를 보았다고 증언했다.[53]

이언 조지슨 판사는 수백 건의 용의자 도청 기록이 CSIS에 의해 파기된 것에 대해 "용납할 수 없는 과실"이라고 판결했다.[58] 사건 전후 몇 달 동안 210건의 도청 기록 중 156건이 삭제되었으며, 심지어 용의자들이 테러리스트로 지목된 이후에도 삭제가 계속되었다.

테이프 원본 기록이 삭제되면서 법정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다. CSIS는 도청 내용에 관련 정보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RCMP는 "CSIS가 1985년 3월부터 8월 사이의 테이프를 보관했다면, 적어도 두 건의 폭탄 테러 주범 중 일부에 대한 성공적인 기소가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았다"라고 기록했다.

인도-캐나다 타임스 발행인이자 브리티시컬럼비아 훈장 수훈자인 타라 싱 헤이어는 1995년 RCMP에 제출한 선서 진술서에서 바그리가 사건에 연루되었음을 시인하는 대화를 들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동료 시크교 신문 발행인 타르셈 싱 퓨어월의 런던 사무실에서 퓨어월과 바그리 사이의 대화를 엿들었는데, 바그리는 "모든 것이 계획대로 되었다면 비행기는 승객 없이 히드로 공항에서 폭발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비행기가 30-45분 지연되면서 바다 위에서 폭발했다.

1998년 11월 18일, 헤이어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 서리(Surrey, British Columbia) 자택 차고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1988년에도 암살 시도가 있었으나 헤이어는 살아남았지만 하반신이 마비되어 휠체어를 사용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선서 진술서는 증거로 채택될 수 없게 되었다.[59]

2000년 10월 28일, RCMP 요원들은 바그리와의 인터뷰에서 수르잔 싱 길(Surjan Singh Gill)이 CSIS 요원이었으며, CSIS 관리자가 그에게 철수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바브르 칼사를 떠났다고 언급했다.

이후 CSIS가 사건을 막지 못하면서 CSIS 국장은 리드 모던(Reid Morden)으로 교체되었다. CBC 텔레비전(CBC Television) ''더 내셔널'' 인터뷰에서 모던은 CSIS가 사건 처리에 "실수했다"고 인정했다. 보안정보검토위원회(Security Intelligence Review Committee)는 CSIS의 잘못이 없다고 결론 내렸지만, 보고서는 현재까지 비밀로 유지되고 있다. 2003년 6월 현재, 캐나다 정부는 여전히 관련 첩자가 없었다고 주장했다.[60]

7. 재판

당국은 처음에 인더지트 싱 레이엇을 나리타 공항 폭발 사건이나 에어 인디아 폭파 사건과 직접적으로 연결하는 증거가 부족하여 살인 음모 혐의를 추궁하지 못했다. 대신 르얏은 1986년 4월 29일 폭발물 소지 및 미등록 총기 소지 혐의로 유죄를 인정했다. 그의 형은 2,000달러의 가벼운 벌금이었다.

검찰관 자딘과 RCMP(왕립 캐나다 기마경찰) 및 일본 전문가들과 함께 일하는 마운티(RCMP)는 결국 파편으로부터 폭탄의 구성 요소를 확인하고 레이엇이 소지하거나 구입한 물품과 일치시켰다. 여전히 살인 혐의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부족했던 자딘은 두 건의 과실치사 혐의와 다섯 건의 폭발물 관련 혐의를 권고했고, 그 결과 영국에 레이엇의 인도를 요청했다. 레이엇은 1988년 2월 5일 재규어 자동차 공장으로 운전하던 중 체포되었다. 영국으로부터의 인도 절차가 길어진 후, 레이엇은 1989년 12월 13일 밴쿠버로 이송되었고, 그의 재판은 1990년 9월 18일에 시작되었다. 1991년 5월 10일, 그는 나리타 공항 폭탄 테러와 관련하여 과실치사 2건과 폭발물 관련 혐의 4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그는 10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폭탄 테러 15년 후인 2000년 10월 27일, RCMP는 리푸다만 싱 말릭과 아자이브 싱 바그리를 체포했다. 그들은 에어 인디아 182편 탑승객 사망에 대한 1급 살인 혐의 329건, 살인 음모 혐의, 일본 신 도쿄 국제공항(현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캐나다 태평양 항공편의 승객과 승무원 살인 미수 혐의, 그리고 신 도쿄 국제공항에서 수하물 취급 직원 2명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 사건은 "에어 인디아 재판"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2001년 6월 6일, RCMP는 에어 인디아 폭탄 테러 사건과 관련하여 살인, 살인 미수, 음모 혐의로 이전 10년형을 마치려던 레이엇을 체포했다. 2003년 2월 10일, 레이엇은 폭탄 제조에 가담한 혐의로 과실치사 1건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다. 그는 5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레이엇이 폭탄 제조에 도움을 준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했지만, 폭탄 사용 방법에 대한 지식이 없었고 살인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말릭과 바그리의 재판에서 증언할 것으로 예상되었지만, 검찰은 애매모호했다.[50]

말릭과 바그리의 재판은 2003년 4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밴쿠버 법원(Law Courts (Vancouver))에 특별히 건설된 20번 법정(일반적으로 "에어 인디아 법정"으로 알려짐)에서 진행되었다. 이 재판에는 720만 달러의 비용이 소요되었다. 2005년 3월 16일, 이안 조셉슨 판사는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결하여 두 피고인에게 모든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7. 1. 르얏의 위증

2006년 2월, 인더지트 싱 르얏은 재판에서의 증언과 관련하여 위증죄로 기소되었다. 기소장은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대법원에 접수되었으며, 르얏이 증언 중 법정을 27차례 속였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르얏은 폭탄 제작을 인정했지만, 음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고 선서하에 부인했다.

재판에서 판사 란 조세프슨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나는 르얏의 선서에서 거짓말이 누그러지지 않음을 발견했다. 청취자들이 모두 공감했을지라도 종결되었을 뿐이며 그가 관련된 정보를 공개하는 것을 거부하는 동안 그의 증거는 명백하고 가여울 정도로 그는 극단적인 범죄 사실 최소화를 기도하였다.

2007년 7월 3일, 위증 재판이 계류 중인 상태에서 르얏은 국가 가석방 위원회에 의해 가석방이 거부되었다. 위원회는 그가 대중에게 계속 위험을 초래한다고 결론지었다. 이 결정으로 르얏은 2008년 2월 9일에 끝나는 5년형을 전부 복역해야 했다.

8. 공적인 조사

2006년 5월 1일, 스티븐 하퍼 총리는 "캐나다 역사상 최악의 살인 사건에 관하여 몇 가지 주요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으라"는 지시와 함께 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사건에 대한 전면적인 공개 조사를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이 조사의 수장으로는 은퇴한 연방 대법원 판사인 존 메이저가 임명되었다.[53][61]

6월에 시작된 '''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사건 조사에 대한 조사위원회(Commission of Inquiry into the Investigation of the Bombing of Air India Flight 182)'''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조사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 캐나다법이 테러 단체에 대한 자금 지원을 어떻게 제한했는지
  • 테러 사건에서 증인 보호가 얼마나 잘 제공되었는지
  • 캐나다가 공항 보안을 강화해야 하는지
  • RCMP, CSIS 및 기타 법 집행 기관 간의 협력 문제가 해결되었는지 여부


또한 희생자 가족들이 폭파 사건의 영향에 대해 증언할 수 있는 자리를 제공하고, 어떠한 형사 재판도 반복하지 않도록 하였다.

조사 결과는 2010년 6월 17일 최종 보고서 '''에어 인디아 182편: 캐나다의 비극(Air India Flight 182: A Canadian Tragedy)'''에 발표되었다.[62] 5권, 4,000페이지 분량의 보고서에는 64개의 권고안이 담겨 있었다.[53][61] 메이저 판사는 정부 부처, RCMP 및 CSIS의 "연쇄적인 일련의 실수"로 인해 테러 공격이 발생했다고 결론지었다.[63] 그는 다음과 같은 광범위한 변화를 촉구했다.

  • 캐나다 정부의 국가안보보좌관에게 기관 간의 갈등을 방지할 책임 부여
  • 테러 기소 국가 책임자 신설
  • 테러 사건 증인 보호 담당 조정관 신설
  • 공항 보안의 허점 보완[53]


조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스티븐 하퍼 총리는 보고서 발표 1주일 후이자 사건 25주년이 되는 날, 언론을 통해 "폭파 사건으로 이어진 정보, 경찰 및 항공 보안의 치명적인 실패와 그 이후의 기소 소홀을 인정하고" 현직 캐나다 내각을 대표하여 사과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9. 사건의 유산

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사건은 캐나다 역사상 최악의 테러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캐나다 정부는 테러 대응 및 보안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으며,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 사업도 진행되었다.

2006년, 스티븐 하퍼 총리의 자문으로 존 메이저 판사가 이끄는 에어 인디아 폭파 사건에 대한 공개 조사가 시작되었다. 조사는 폭파 사건과 그 이후의 수사 과정을 조사하고, 캐나다의 안보 및 정보 시스템의 허점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었다.[53][61] 2010년에 발표된 조사 보고서에서는 정부 부처, 캐나다 왕립 기마 경찰(RCMP) 및 캐나다 보안 정보국(CSIS)의 "연쇄적인 일련의 실수"로 인해 테러 공격이 발생했다고 결론지었다.[63]

조사위원회의 권고에 따라 스티븐 하퍼 총리는 사건 25주년이 되는 날, 캐나다 내각을 대표하여 "폭파 사건으로 이어진 정보, 경찰 및 항공 보안의 치명적인 실패와 그 이후의 기소 소홀"에 대해 사과했다.

이 사건은 캐나다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캐나다와 아일랜드 등지에 추모비가 건립되었다.

토론토 온타리오주 에어 인디아 182편 추모비


아하키스타 추모비


2007년 7월 헌정된 182편 희생자들을 기리는 스탠리 공원의 기념비와 놀이터

9. 1. "캐나다의 비극"

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사건은 1985년 6월 23일 아일랜드 해안 상공에서 발생하여 탑승객 329명 전원이 사망한 사건이다. 희생자 대부분은 캐나다인이었으며, 이 중에는 80여 명의 어린이와 29가족이 포함되어 있었다.

1970년대부터 많은 시크교도들이 캐나다 서부로 이주해 왔고, 1980년대에는 브리티시컬럼비아주 밴쿠버 주변이 인도 외 지역에서 가장 큰 시크교 인구 밀집 지역이 되었다.[13] 이들 중에는 바브르 칼사의 지도자 및 구성원이 된 탈윈더 싱 파마르, 아자이브 싱 바그리, 리푸다만 싱 말릭, 인더짓 싱 레이엇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1978년 인도에서 발생한 시크교도와 니랑카리 간의 충돌 이후, 펀자브주 정부는 시크교도 살해 혐의로 니랑카리들을 기소했지만, 법원은 이들이 자기방어 차원에서 행동했다며 무죄 판결을 내렸다.[17][18] 이에 일부 정통 시크교도들은 니랑카리들이 시크교를 중상모략하려는 음모를 꾸몄다고 주장하며, 시크교의 적들에 대한 공격적인 발언을 강화했다.[17][19]

이러한 배경 속에서 밴쿠버의 시크교 종파(판탄) 집단 설립자들은 시크교도들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맹세했다. 1984년 인도 정부의 블루스타 작전으로 황금 사원에서 많은 시크교도들이 사망하고, 인디라 간디 총리가 시크교 경호원에게 암살당한 후, 1984년 반시크교 폭동으로 인도에서 수천 명의 시크교도들이 살해당하면서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다.

이 사건은 캐나다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으며, 이후 캐나다 정부는 테러 대응 및 보안 시스템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를 취했다. 2006년에는 스티븐 하퍼 총리의 자문으로 존 메이저 판사가 이끄는 에어 인디아 폭파 사건에 대한 공개 조사가 시작되었다. 2010년 발표된 조사 보고서에서는 정부 부처, RCMP 및 CSIS의 "연쇄적인 일련의 실수"로 인해 테러 공격이 발생했다고 결론지었다.[63]

사건 발생 20주년인 2005년, 폴 마틴 총리는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아일랜드 추모식에 참석하여 이 사건이 캐나다의 비극임을 강조했다.

국적승객승무원총계
캐나다2680268
영국27027
인도02222
불명12012
총계30722329



사망자 대부분은 온타리오주 남부에 거주하는 힌두교도였으며, 일부는 시크교도였다.[37] 토론토 광역권과 몬트리올 광역권에 가장 많은 승객이 거주했다.[39]

9. 1. 1. 추모

캐나다와 다른 지역에는 희생자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졌다. 1986년, 폭탄 테러 1주년을 맞아 아일랜드 아하키스타에 기념비가 공개되었다.

2006년 8월 11일,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스탠리 공원에 기념공원의 일부가 될 놀이터 건설이 시작되었다.

2007년 6월 22일, 온타리오 주 토론토 험버 베이 공원 동쪽에 또 다른 기념비가 공개되었다. 폭탄 테러 희생자 중 많은 수가 토론토에 거주했었다. 이 기념비에는 캐나다의 모든 주와 준주, 그리고 다른 희생자들의 국가에서 가져온 돌로 이루어진 기둥 위에 해시계가 설치되어 있으며, 아일랜드를 향하고 사망자들의 이름이 새겨진 벽이 있다.

세 번째 캐나다 기념비는 2014년 오타와에 세워졌다.[64] 네 번째 기념비는 비극 26주년이 되는 해에 몬트리올 라신에서 공개되었다. 현재까지 인도에는 기념비가 없다.

9. 2. 대중의 기억 속에

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 사건은 캐나다 사회에서 제대로 기억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 사건을 "캐나다의 9.11"로 언급하기도 했으나, 그에 걸맞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었다.

2005년 6월 23일, 사건 20주년을 맞아 폴 마틴 캐나다 총리는 희생자 가족들과 함께 아일랜드 웨스트 코크주 아하키스타(Ahakista)에서 추모식에 참석했다. 이는 폭파 사건 이후 건립된 아일랜드 추모비를 캐나다 총리가 방문한 첫 번째 사례였다.[53] 애드리엔 클락슨 캐나다 총독은 국가 애도일을 선포했고, 마틴 총리는 이 사건이 캐나다의 문제임을 강조했다.

2007년 5월, 앵거스 리드 전략(Angus Reid Strategies)의 여론 조사 결과, 응답자의 48%가 이 사건을 캐나다 사건으로, 22%는 주로 인도 사건으로 인식했다. 많은 응답자가 캐나다 정보국(CSIS), 왕립 캐나다 기마경찰(RCMP), 캐나다 교통부(Transport Canada) 등에 책임이 있다고 보았다.

2023년, 앤거스 리드 연구소(Angus Reid Institute)의 연구에 따르면 캐나다인 10명 중 9명이 이 사건에 대해 거의 또는 전혀 알지 못했으며, 5명 중 1명만이 캐나다 역사상 최악의 대량 살인 사건 중 하나로 정확하게 분류했다. 특히 35세 이하의 58%는 사건 자체를 알지 못했다.[66]

9. 2. 1. 언론에서의 조명

이 사건은 영화, 텔레비전, 문학 등 다양한 매체에서 다루어졌다.

분야작품명작가/감독비고
영화에어인디아 182편스투를라 구나르손(Sturla Gunnarsson)CBC 제작, 다큐멘터리, 2008년 핫독스 캐나다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초연[67]
텔레비전"에어인디아: 폭발적인 증거"다큐멘터리 시리즈 메이데이 5시즌 에피소드
언론Death of Air India Flight 182살림 지와(Salim Jiwa)
Loss of Faith: How the Air-India Bombers Got Away With Murder킴 볼란(Kim Bolan)
'Margin of Terror: A reporters twenty-year odyssey covering the tragedies of the Air India bombing''살림 지와(Salim Jiwa), 돈 하우카(Don Hauka)
Blood for Blood: Fifty Years of the Global Khalistan Project테리 밀레우스키(Terry Milewski)
문학Can you hear the nightbird call?아니타 라우 바다미(Anita Rau Badami)소설[68]
"The Management of Grief"바라티 무케르지(Bharati Mukherjee)단편 소설, 더 미들맨 앤드 어더 스토리즈(The Middleman and Other Stories) 수록
슬픔과 공포: 에어인디아 비극의 잊을 수 없는 유산바라티 무케르지(Bharati Mukherjee), 클라크 블레즈(Clark Blaise)
The Soul of All Great Designs닐 비순다스(Neil Bissoondath)
에어인디아의 아이들: 승인되지 않은 전시와 개입레네 사로지니 삭리카르(Renée Sarojini Saklikar)시집[69]
All Inclusive파르자나 닥터(Farzana Doctor)소설
자서전Ray of Hope찬드라 상쿠라쓰리(Chandra Sankurathri) 박사[70]



이 외에도, 로런션 대학교(Laurentian University)의 파다 기념상(Pada memorial awards)과 매니토바 대학교(University of Manitoba)의 도널드 조지 루기드 기념 장학금(Donald George Lougheed Memorial Scholarship)이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제정되었다.[71][72] 또한, 희생자 가족들은 산자이 디팍 어린이 신탁(Sanjay Deepak Children Trust)과 산쿠라스리 재단(Sankurathri Foundation)을 설립하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사회 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3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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