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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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재록은 1943년 전라남도 무안군에서 태어나 만민중앙성결교회를 설립한 목사이다. 1982년 13명의 신도로 교회를 시작하여 급성장시켰으며, 해외 선교와 저술 활동을 펼쳤다. 1990년 이단으로 규정되어 교단을 떠났고, 1991년 한국예수그리스도통일교회성결회총회를 창립했다. 2018년 여신도 성폭행 혐의로 구속되어 징역 16년형을 선고받았으며, 2023년 사망했다. 그의 목회 활동 중 무안단물 논란, MBC 난입 사건 등이 있었으며,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이재록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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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록
이름이재록
출생일1943년 5월 23일
출생지일제강점기 전라남도 무안군
사망일2023년 12월 31일
국적대한민국
본관함평
직업목사, 작가
배우자이복님
자녀이미영, 이미경, 이수진
웹사이트공식 웹사이트
경력
경력예수교대한연합성결회 총회장
소속
소속만민중앙교회
저서
저서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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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린 시절

1943년 전라남도 무안군에서 3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나 장성군에서 성장했다. 결혼 후 7년간 질병으로 고생하다가 누이의 권유로 현시네 재단의 부흥 성회에 참석한 후 목사가 되었다.

2.1. 출생과 성장

1943년 전라남도 무안군 해제면 산길2리 구등마을에서 아버지 이차범과 어머니 조감장 사이에서 3남 3녀 중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46년 광복 후 3살 때 전남 장성군 남면 분향리로 이주하여 어린 시절을 장성군에서 보냈다.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때 일본을 오가며 여러 사업을 했으나, 장성으로 이주한 후에는 모든 사업을 접고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 어머니가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아버지 이차범은 집에 칩거하며 독서에 열중했고 가끔 찾아오는 손님들과 한학(漢學)을 견주었다고 한다.

2.2. 학창 시절

분향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에 있는 송정중학교를 1959년에 졸업한 후, 서울 성동구 신당동의 큰 누나 집에 기거하며 단국공고를 다녔다. 한양대학교 공대에 재학 중 휴학하고 군에 입대했으며, 전역 직전 친척의 소개로 이복님과 펜팔을 주고받다가 1968년 1월 17일에 결혼하였다. 이재록은 부모로부터 유산을 미리 상속받았으나 사기를 당해 전 재산을 잃고 대학에 복학하지 못한 채 신문사에 취직하였다.

3. 목회 활동

이재록은 1943년 전라남도 무안군에서 태어나 장성군에서 성장했다. 결혼 후 7년간 질병으로 고생하다가 누이의 권유로 현신애 재단의 부흥 성회에 참석한 후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다. 1982년 7월 25일 서울특별시 동작구 신대방동에서 만민중앙교회를 설립하고, 1983년 만민기도원, 1984년 3월 만민선교원을 차례로 설립했다. 1984년 12월 31일 교회를 동작구 대방동으로 이전했으며, 1986년 5월 목사 안수를 받고 1987년 다시 신대방동으로 교회를 이전했다.

1990년 5월 1일, 이재록은 자신이 속해있던 예수교대한성결교단으로부터 이단으로 규정되어 제명되었다. 교단은 1989년 12월 18일 이재록의 활동에 대해 9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고, 만민중앙교회는 이에 항소했으나 기각되었다. 이재록은 자신의 저서에서 총회 측이 자신을 이단으로 몰아갔으며, 변론의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1991년 7월 1일, 이재록은 한국예수그리스도통일교회성결회총회를 창립하고 초대 총회장에 선출되었다. 같은 해 2월 10일, 교회를 서울특별시 구로구로 이전했다. 1996년에는 미국 킹스웨이 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재록은 탄자니아, 아르헨티나, 우간다 등 여러 국가에서 해외 연합 대성회를 인도했으며, 그의 저서는 70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또한, 기독교 세계 부흥 선교 협의회의 상임 총재를 역임하기도 했다.

2023년 12월 31일, 이재록은 80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1. 신앙 생활

이재록은 결혼 후 7년간 각종 질병을 앓다가, 1974년 4월 그의 둘째 누이의 권유로 현신애 재단의 부흥집회에 참석하여 모든 질병을 기적적으로 치료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본래 무신론자였으나, 이 체험을 계기로 개신교 신자가 되었다. 이후 건축 노동과 서점을 운영하며 신앙생활을 하던 중 직통계시를 통해 부름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여러 차례 자살을 시도했지만, 그의 누나가 그를 한국의 치유 전도사에게 데려간 후 그의 병이 사라졌다고 주장했다.

3.2. 교회 개척

1982년 7월 25일 서울 동작구 신대방동에서 단 13명의 신도와 함께 만민중앙교회를 개척하였다. 창립예배는 같은 해 10월 10일에 열렸다. 1983년에는 만민기도원을 설립했고, 1984년 3월 만민선교원을 열었다. 교세가 점차 성장함에 따라 1984년 12월 31일 동작구 대방동으로 교회를 이전했다. 1986년 5월 목사 안수를 받았으며, 1987년 다시 동작구 신대방동으로 교회를 이전했다.

이후 5년 안에 등록 신도 수가 3,000명을 넘어서는 등 급속한 성장을 거듭했다. 이 기간 동안 기도전사회, 봉사회, 성가대, 공연예술위원회 등 많은 교회 조직들이 설립되었다.

3.3. 이단 판정과 제명

이재록은 자신이 속했던 예수교대한성결교단으로부터 1990년 5월 1일에 이단 판정을 받고 제명되었다. 교단은 이재록의 목회 활동에 대한 이단 시비가 많아 조사를 진행했고, 1989년 12월 18일 만민교회 측에 9가지 시정사항을 권고했다. 그러나 만민중앙교회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해명 자료를 제출했으나, 몇 달 후 교단에 의해 기각되었고 총회에서 제명 처분을 받았다.

이재록은 자신의 저서에서 이단 판정과 제명 조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 총회 심리부 목사들이 자신이 말한 적 없는 내용을 말한 것처럼 꾸며 이단으로 정죄했다.
* 1990년 5월 1일 총회 장소에 300여 명의 대의원 중 90여 명만 남은 상태에서 지방회 소속 대의원 30명이 이재록 목사 파직 가결에 찬성했으며, 자신의 좌석을 배치하지 않아 억울함을 소명할 기회조차 없었다.

1989년 12월 18일, 예수교대한성결교단은 만민중앙교회에 다음 9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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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구사항
지방교회 건설 시 '만민' 명칭 사용 금지
증거 소책자 「죽음 앞에 영원한 생명을 맛보다」 판매 금지
설교 테이프 판매 금지
찬미예배 그룹 활동 중단


만민중앙교회는 이에 공식적으로 항소했으나, 몇 달 후 기각되었다. 1990년 5월 1일, 교단 총회는 이재록 목사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교단에서 추방했다.

3.4. 독립교단 설립

이재록은 소속 교단에서 제명당한 후 1991년 7월 1일 '예수교연합성결회'라는 독립교단을 창립하고 초대 총회장으로 선출되었다. 같은 해 2월 10일 서울 구로동에 있는 네 번째 교회 건물로 이전했다. 1996년 미국 킹스웨이 신학대학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3.5. 해외 선교

1999년 MBC 주조정실 난입사건 이후 국내 여론이 악화되자, 이재록은 해외로 교세 확장을 꾀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탄자니아, 아르헨티나, 우간다, 일본, 파키스탄, 케냐, 필리핀, 온두라스, 인도, 러시아, 독일, 페루, 콩고민주공화국, 미국, 이스라엘 등지에서 해외 연합대성회를 개최하면서 교세를 넓혀 해외에도 지교회와 다수의 협력교회를 확보했다. 그 밖에도 이재록은 여러 직함을 가지고 활동하였으며, 종교계 연합체인 기독교세계부흥선교협의회 상임총재로도 재직하였다.

4. 사망과 교세 위축

2023년 12월 31일, 만민중앙교회 당회장 직무대행이자 이재록의 셋째 딸인 이수진은 이재록이 같은 날 오전 11시경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향년 80세였다. 교회 측은 자세한 사망일과 사인은 밝히지 않았다.

이재록의 사망과 구속 이후, 만민중앙교회는 신도들의 동요와 내분, 분열, 이탈자 발생으로 교세가 크게 위축되었다.

4.1. 사망

2018년 여신도들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 수사를 받았다. 2019년 8월 대법원에서 여신도 9명을 상습적으로 성추행 및 성폭행한 혐의로 징역 16년형을 선고받고 대구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2013년 3월 대장암 발병으로 형집행정지로 풀려나 경기도 가평군에 있는 기도처에서 투병 생활을 하던 중, 2023년 12월 31일 오전에 사망하였다. 향년 80세였다.

만민중앙교회 측은 이재록의 사망 사실은 인정했으나, 자세한 사인은 언급하지 않았다. 당회장 직무대행은 이재록의 셋째 딸인 이수진이 맡고 있다.

4.2. 교회의 분열과 변화

이재록이 구속되고 실형이 선고되자 교회 내 신도들은 크게 동요했고, 각종 내분이 벌어지며 분열되고 이탈자가 대거 발생하여 교세가 크게 위축되었다. '대언자' 역할을 하던 쌍둥이 자매 목사인 이희진, 이희선은 당회장 권한대행을 맡은 이재록의 막내딸 이수진과 대립하다가 만국교회를 설립하여 분리 독립하였다. 이수진 역시 입지가 크게 줄어들었는데, 이는 그녀가 그동안 신도들을 속이고 남자 전도사와 동거 생활을 하다가 낙태를 하는 등의 비리가 드러났고 이를 이수진 역시 인정했기 때문이다. 수감 이전 이재록은 자신의 막내딸 이수진이 남자의 손을 한 번도 잡아본 적이 없는 성결된 자녀라고 거듭 주장하였는데, 그녀와 동거 생활을 하였던 남자 전도사의 폭로로 이것이 모두 거짓임이 드러났다. 교회가 있던 자리도 현재 매각된 후 새로운 건물이 건설되고 있으나, 만민중앙교회는 새로운 성전을 구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

5. 논란

이재록은 1990년 5월 거룩한교회에서 출교되었고, 1999년 4월에는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에서 "이단적 주장"을 이유로 제명되었다. 그러나 2004년 한국장로교연합회는 이러한 혐의를 반박했다. 1998년 7월, 한국선교협회 지도자들은 이재록이 "무죄하며 죽음으로부터 면제되었다"고 주장했다는 이유로 그를 사이비 교주라고 비난했다.

1999년, MBC는 이재록을 비판하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이에 만민중앙교회 신도 300명이 방송국에 난입하여 경비원들을 공격하고 방송 제어실에 침입하여 전력을 차단했으며, 다른 1,500명은 인근 도로에서 농성을 벌였다. 질서를 회복하기 위해 600명의 경찰이 필요했다. MBC는 교회와 난입에 가담한 61명을 상대로 27억 의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했고, 서울남부지방법원은 2000년 11월 교회와 일부 가담자들에게 696의 손해배상을 판결했지만, 이재록 본인에 대한 소송은 기각했다.

2000년 7월, 이재록은 우간다 연합 전도대회를 인도하기 위해 우간다를 방문했다. 우간다 한국선교협회는 이 방문과 관련하여 성명을 발표하고 이재록을 "사이비 교주"로 묘사하며 "한국 교회에서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2006년 이재록이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을 방문했을 때, 현지 한국 목사들은 그의 "이단적인 가르침"을 이유로 이 행사에 항의했다. MLB 선수인 데이비드 라이트 (뉴욕 메츠의 3루수)는 이재록 전도대회 광고 촬영에 속았다. 라이트는 메츠가 이미 행사를 승인했다고 믿고 카메라 앞에 나서 홍보에 동의했지만, 사실 메츠 로고를 무단으로 사용한 광고는 기자의 잘못된 언론 자격을 이용하여 라이트에게 접근하여 촬영한 것이었다. 이러한 사실이 밝혀진 후, 광고 방영은 중단되었고, 라이트는 공개적으로 사과했다.

2010년 에스토니아에서 열린 이재록의 한국문화축제에 에스토니아 가수인 토니스 매기와 데이브 벤튼이 출연할 예정이었다. 이들은 이 행사가 주한 대한민국 대사관이 후원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지만, 사실이 아니었고, 이로 인해 매기는 출연을 취소했다.헬싱키 대한민국 대사관은 축제와 잘못 연결된 것을 유감으로 생각했다.

5.1. 단물 사건

1999년 2월, 전라남도 무안군에 위치한 만민중앙교회가 식수를 위해 우물을 팠으나 바닷물이 섞여 마실 수 없게 되자, 성경의 “출애굽기의 쓴물이 단물로 변화했다”는 이야기를 믿고 바닷물을 마실 수 있는 물로 바꾸는 기도를 시작했다. 2000년 3월, 이재록 목사는 무안 만민교회 지부 목사와 함께 식수 문제로 기도한 결과, 다음 날 짠물이 마실 수 있는 물로 변했다고 한다. 이 무안의 단물을 마시거나 몸에 바르는 것으로, 쌍꺼풀이 생기거나 여러 가지 질병이 치유되고, 사고가 치료되었다는 보고가 있었다. 심지어 곤충이나 동물이 되살아나고, 고장난 기계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되었다는 주장까지 있었다.

2007년 무안의 단물이 한국식품의약품안전청에 의해 인체 섭취에 적합하지 않다고 판정되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교회 측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의해 미네랄, 중금속, 잔류농약, 피부 반응, 경구 독성이 검사되어 기능성 미네랄 음료라는 개념에서 안전하고 우수하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교회는 이재록 목사의 저서와 웹사이트에서 이렇게 주장하며, 그 증거로 미네랄과 경구 독성 시험에 대한 두 개의 보고서를 게재했다.

무안단물은 대한민국의 인터넷 환경에서 패러디 소재로 자주 사용되었다.

5.1.1. 권능의 무안단물

전남 무안군에 위치한 무안만민교회는 식용수가 부족하여 지하수를 팠지만 바닷물이 너무 많이 섞여 나와 식용으로는 부적합한 문제가 있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0년 3월 4일 이재록 목사가 기도하자 다음 날 짠물이 마실 수 있는 물로 변했다고 한다. 만민측은 이를 약 3,500년 전 출애굽 당시 모세의 기도에 의해 마라의 쓴물이 단물로 변한 사건과 동일한 기적이라고 주장하며, 이 '무안단물'을 먹거나 바르면 질병 치유와 여러 기적이 일어난다고 주장해 왔다. 심지어 곤충이나 동물이 되살아나고, 고장난 기계가 정상 작동했다는 주장도 있었다.

MBC가 무안단물을 식약청에 검사 의뢰한 결과 식용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고 보도하자, 교회 측은 2007년 무안단물이 미국 FDA의 미네랄, 중금속 등 여러 검사 결과 기능성 미네랄 음료로써 안전하고 우수함이 확인됐다고 발표했고, 검사 결과 보고서 두 건을 홈페이지에 게재하였다. FDA영어에서는 미네랄, 중금속, 잔류농약, 피부 반응, 경구 독성 등을 검사하여 기능성 미네랄 음료라는 개념에서 안전하고 우수하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무안단물은 2020년 11월에 수질 기준 부적합 판정을 받아 폐공되었다. 현재 만민측은 2022년에 조경용으로 다시 허가를 받아 사용하고 있다. 무안단물에 대한 이야기가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지면서 한국의 인터넷상에서 패러디의 소재로 쓰이기도 했다.

5.1.2. 무안단물 수족관

만민중앙교회는 서울에 있는 교회 내에 민물고기와 바닷물고기가 함께 사는 '무안단물 수족관'을 운영하며 공개한 적이 있는데, 이 또한 무안단물의 신비로움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과학계에서는 일반적으로 강 하구에 짠물과 민물이 섞인 기수(汽水)가 형성되는데, 이 기수 구역에는 일부 민물고기와 바닷물고기가 공생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으며, 이는 단물에 의한 신비한 현상이 아니고 과학적으로 설명 가능한 현상이라고 말한다. 민물에 소금을 혼합하여 염도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재현도 가능하다.

5.1.3. 화정 샘물

이재록의 생가터 인근에 있던 화정(花井, 꽃샘)샘물은 1999년에 음용수 부적합 판정을 받은 후 방치되었다. 만민중앙교회 측은 1998년 9월 이재록이 안수기도를 한 이후에 이 샘물이 기적의 물이 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이 샘물을 먹고 질병이 나았다는 소문을 믿을 수 없다고 하며, 원래 이 지역에는 두 개의 샘이 있었는데 천등산에 있는 우물보다는 화정샘물을 주로 사용했었다고 한다. 2000년 3월 이후, 만민중앙교회는 화정샘물 대신 무안단물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5.1.4. 단물의 기원과 문제점

생명체의 약 70%를 차지하는 물은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요소이다. 수분 손실이 4~10% 정도 발생하면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생명 유지가 어려워지기도 하므로 '생명수'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좋은 물은 질병 치료와 장수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있으며, 실제로 약수나 온천수는 위장병, 피부병 등 각종 질병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또한, 가톨릭과 이슬람 등 여러 종교에서는 성직자가 축성(祝聖)한 물을 종교 의식에서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안단물과 같이 기독교 계열 신흥 종교에서 사용하는 성수는 이용 방법이나 성격이 조금 다르다. 한국에 처음으로 기적의 생명물(성수) 개념을 도입한 사이비 종교 교주는 신앙촌으로 유명한 박태선이었다. 1956년부터 박태선이 생명물을 이용한 이래 할렐루야 기도원의 생수, JMS의 월명수 등 후대의 여러 사이비 종교들이 교세 확장과 재산 축적의 수단, 그리고 불치병을 치유할 수 있다는 기적의 성수라는 명목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무안단물도 이와 유사한 사례라 할 수 있다.

무안단물에서는 대장균을 포함해 8개 항목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결과가 나왔다. 보론과 과망간산칼륨, 염소이온 등은 먹는 물 기준의 2배에서 최대 10배를 넘어섰다. 이는 바다새우 양식장 물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무안단물 이전에 만민측이 사용했던 화정샘물 역시 일반 세균이 기준치의 2.5배, 질산성 질소는 기준치의 6배를 넘었다. 이는 어린아이가 장기간 복용할 경우 청색증을 유발할 수 있는 수치이다.

1999년 2월, 전라남도 무안군에 위치한 만민중앙교회가 식수 문제로 우물을 팠으나 바닷물이 섞여 마실 수 없게 되자, 성경의 “출애굽기의 쓴물이 단물로 변화했다”는 이야기를 믿고 바닷물을 마실 수 있는 물로 바꾸는 기도를 시작했다. 2000년 3월, 이재록 목사는 무안 만민교회 지부 목사와 함께 기도한 결과, 다음 날 짠물이 마실 수 있는 물로 변했다고 한다. 이 무안단물을 마시거나 몸에 바르면 쌍꺼풀이 생기거나 여러 가지 질병 및 사고가 치료되었다고 하며, 심지어 곤충이나 동물이 되살아나고 고장난 기계가 정상 작동되었다는 주장까지 있었다.

2007년 무안단물이 한국식품의약품안전청에 의해 인체 섭취에 부적합하다고 판정되자, 교회 측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의해 미네랄, 중금속, 잔류농약, 피부 반응, 경구 독성이 검사되어 기능성 미네랄 음료라는 개념에서 안전하고 우수하다는 것이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교회는 이재록 목사의 저서와 웹사이트에서 이와 같이 주장하며, 미네랄과 경구 독성 시험에 대한 두 개의 보고서를 증거로 게재했다.

무안단물은 대한민국의 인터넷 환경에서 패러디 소재로 자주 사용되었다.

5.2. MBC 난입 사건

1999년 MBC는 이재록의 비리 의혹을 다루는 PD수첩을 방영하려 했으나, 신도들이 방송국을 점거하여 방송을 방해하였다.

PD수첩은 당시 이재록의 미국 원정도박, 불법 건축물 문제, 신도 명의의 불법 대출, 헌금 강요, 성추문 등에 대해 방송하려 했으나, 법원이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여 성추문 관련 내용은 제외되었다. 그럼에도 신도들의 방송사 난입으로 방송이 7분간 중단되었다.

MBC는 해당 사건에 대해 손해배상을 청구하였으나, 법원은 만민중앙교회와 부목사 등의 책임은 인정하였으나, 이재록 목사의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재록 목사의 경우는 방송사 난입에 가담하거나 피고들의 불법행위를 교사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

서울지방법원 남부지원(제1민사부)은 만민중앙교회와 이재록 목사가 MBC를 상대로 낸 '반론보도청구' 일부를 받아들여 총 23건의 반론보도를 하라고 판결했다. 서울지법은 MBC가 충분한 반론 기회를 제공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고 달리 이를 인정할 증거가 없으며, 방송국에 들어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방송을 방해한 당사자가 아닌 이재록 목사 등 청구인들에게 반론보도 청구까지 할 수 없게 할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MBC는 이에 대해 반론보도를 정지시키는 간접강제 집행정지를 법원에 냈으나 기각됐다.

5.3. 여신도 성폭행 사건

2018년, 이재록은 1990년대 후반부터 2015년까지 여성 신도들을 성폭행하거나 성추행했다는 혐의로 고소당했다. 피해자들은 이재록이 성관계를 신의 지시나 요구라고 강요했다고 주장했다. 이재록은 여신도들에게 '영육 간 하나가 되자'며 '하나팀'을 만들어 자신을 성령 하나님으로 믿게 한 뒤 성관계를 유도했다는 것이다. 또한 피해자들은 이재록이 성폭행 후 매번 돈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이재록은 이러한 주장이 모두 사실이 아니라며 방송 금지 가처분 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되었다. 경찰은 이재록에 대해 '상습 준강간' 혐의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도주와 증거 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1심에서 중형을 선고받은 후, 항소심에서 서울고법 형사11부(성지용 부장판사)는 상습준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록에게 징역 15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16년을 선고했다. 2019년 8월 9일, 대법원은 징역 16년을 선고한 2심 판결을 확정하였다. 이재록은 수감 생활 3년 5개월 만에 대장암 발병으로 형집행정지를 받아 석방되었으며, 투병 생활을 이어가던 중 2023년 12월 31일에 사망했다.

6. 저서

이재록은 간증수기 《죽음 앞에서 영생을 맛보며》, 《나의 삶 나의 신앙》을 비롯하여 《십자가의 도》, 《천국》, 《지옥》 등 100여 권의 저서를 출간했으며, 이 책들은 70여 개국 언어로 번역되었다. 그의 저서들은 전자책으로도 출판되었으며, 특히 중국어판 전자책이 특화되었다.

그의 자서전 《나의 삶 나의 신앙》 1권은 35개 언어로 출판되었으며, 교회 성장의 요인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예언적인 환상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다. 2권에서는 미래 세계가 미국, 중국, EU를 중심으로 주도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또한, 신앙을 통해 질병에서 치유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베트남에서는 정부의 공식 허가를 받아 베트남 종교 출판사(VRP)에서 베트남어로 출판되었다.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메시지》는 57개 언어로 번역되었으며, 힌디어판은 CNN-IBN에서 다루어졌다.

《천국》 1권은 천국의 여러 장소와 믿음의 분량에 따른 상급에 대해 논하며, 2권은 천국의 열두 보석과 엘리야, 에녹, 아브라함, 모세 등 예언자들에 대해 다룬다. 《천국》과 《지옥》의 인도네시아어 번역본은 인도네시아에서 베스트셀러로 등재되었다. 2011년 예루살렘 도서전에서는 이스라엘 대통령 시몬 페레스와 예루살렘 시장 니르 바르카트에게 이 책이 전달되었다.

이 외에도 십계명을 다룬 《하나님의 법》, 하나님을 만나는 과정을 소개하는 《하나님의 능력》, 욥기 설교를 모은 《육체의 사람, 영의 사람》, 성경 용어의 의미를 설명하는 《영, 혼, 몸》, 하나님의 사랑을 논하는 책, 예수의 생애와 사역을 다룬 《주님의 발자취》, 하나님으로부터 응답받는 법칙을 주장하는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주시리라》,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설명하는 《악에 대항하는 법은 없다》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