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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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출애굽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탈출하여 가나안으로 향하는 과정을 다룬 이야기이다. 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야훼의 도움으로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약속의 땅으로 가는 여정을 묘사하며, 10가지 재앙, 홍해 도하, 시나이 산에서의 율법 수여 등의 사건을 포함한다. 이 이야기는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역사적으로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을 상징하는 모티브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논쟁이 있으며, 학계에서는 이 사건이 유대 민족의 건국 신화로 여겨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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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성경에서의 출애굽기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다가, 야훼의 인도로 10가지 재앙을 거쳐 이집트를 탈출하고, 시나이산에서 계시를 받으며, 가나안 땅 경계까지 광야를 방황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12]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에 의해 노예에서 해방되고, 언약을 통해 야훼에게 속하게 되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13]
창세기는 요셉 덕분에 이스라엘 백성이 고센 땅에 정착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출애굽기는 요셉 사후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파라오의 등장과 함께 시작된다.[12]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많아지자 파라오는 그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 노예로 삼고, 비돔과 라암셋이라는 두 국고성을 건설하도록 강요한다.[13] 또한 모든 히브리 남자아이들을 태어나자마자 죽이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한 히브리 아기는 나일강에 버려졌다가 파라오의 딸에게 발견되어 모세라는 이름으로 입양된다. 성장한 모세는 히브리 노예를 때리는 이집트인을 보고 그를 죽인 후 미디안 땅으로 도망쳐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한다. 그사이 옛 파라오는 죽고 새로운 파라오가 왕위에 오른다.[12]
에스겔서 20장 8-9절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의 신들을 숭배했고, 이에 야훼는 그들을 멸망시키려 했으나 자신의 이름이 모욕당하지 않도록 이를 철회했다.[14]
모세는 호렙산에서 야훼를 만나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그의 음성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시켜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데려가라는 명령을 받는다. 야훼는 모세의 형 아론에게도 말하고,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야훼의 약속을 믿게 하려고 기적을 행한다. 모세와 아론은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달라고 요청하지만, 파라오는 이를 거부하고 그들의 노동량을 늘린다. 다시 요청하자 파라오는 기적을 요구하고, 아론이 모세의 지팡이를 던지자 뱀으로 변한다.[15] 그러나 파라오의 마술사들도 같은 기적을 행하지만, 모세의 뱀이 다른 뱀들을 삼킨다. 그럼에도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주지 않는다.
이후 야훼는 이집트에 여러 재앙을 내린다. 처음에는 나일강을 피로 변하게 하고 개구리 재앙을 내리는데, 파라오의 마술사들도 이를 따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 벌레 재앙부터는 따라 할 수 없었다. 재앙마다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주겠다고 약속하지만, 재앙이 지나가면 번복한다.
모세는 아빕월을 히브리 달력의 첫 달로 고정하라는 명령을 받는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 의식을 지시하고, 마지막 재앙에서 야훼가 천사를 보내 모든 집의 첫째 아들과 가축의 첫 새끼를 죽이지만, 문설주에 피가 묻어 있는 집은 재앙을 피한다. 야훼는 이 사건을 "영원한 규례"로 기념하라고 명령한다.[16]
마침내 파라오는 자신의 첫째 아들이 죽자 이스라엘 백성을 쫓아낸다. 야훼는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한다. 그러나 파라오는 마음을 바꾸고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한다. 모세는 그의 지팡이로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백성이 마른 땅을 건너도록 하지만, 추격하던 이집트 군대는 홍해에 잠겨 모두 죽게 된다.[16]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불평을 시작하고, 야훼는 그들에게 물과 음식, 그리고 만나를 내려주며 그들을 기적으로 먹인다. 아말렉이 르비딤에서 공격하나 패배한다. 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그에게 이스라엘 부족을 다스릴 재판관을 세우도록 조언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광야에 도착하고, 야훼는 모세를 시내산으로 부르며 그의 백성에게 십계명과 모세 언약을 수여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의 율법을 지켜야 하며, 야훼는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한다.[17]
야훼는 아론의 제사장 직분과 예배에 관한 자세한 규칙들을 수립한다. 그러나 모세가 부재중일 때,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야훼를 거역한다. 야훼는 이스라엘 백성 중 삼천 명을 죽이고 그들에게 재앙을 내린다. 이스라엘 백성은 언약을 다시 수용하고, 야훼를 위한 성막을 짓고 그들의 율법을 받는다. 야훼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 조사를 명령하고, 레위 지파의 임무를 정한다. 그 후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출발한다.[17]
야훼는 모세에게 가나안 땅을 정탐할 열두 정탐꾼을 보내라고 명령한다. 정탐꾼들은 가나안의 주민들이 강력하다는 것을 보고하고,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으로 가기를 거부한다. 이에 야훼는 이집트를 떠난 세대가 모두 죽기 전까지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선언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40년을 머물러야 하며,[17]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모든 정탐꾼은 전염병으로 죽게 된다.[18]
2. 1. 서사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과 광야에서의 첫 해를 다룬다.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그 후 39년간의 이야기다.[12]
창세기는 요셉 덕분에 이스라엘 백성이 고센 땅에 정착한 배경을 설명한다. 출애굽기는 요셉 사후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파라오의 등장으로 시작된다.[12]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늘자 반란을 우려해 노예로 삼고, 비돔과 라암셋 건설을 명한다.[13] 히브리 남자아이를 죽이라는 명령도 내린다.
그러나 한 히브리 아이는 나일강에 버려졌다가 파라오의 딸에게 발견되어 모세로 불리며 입양된다. 모세는 성장 후 히브리 노예를 때리는 이집트인을 죽이고 미디안으로 도망,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한다. 그 사이 옛 파라오는 죽고 새 파라오가 즉위한다.[12]
에스겔서 20장 8-9절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신을 숭배했고, 야훼는 분노했으나 자신의 이름을 위해 징벌을 거둔다.[14]
모세는 호렙산에서 불타는 떨기나무 속 야훼의 음성을 듣고, 백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라는 명을 받는다. 야훼는 아론에게도 말하고, 둘은 기적으로 백성을 설득한다. 파라오에게 백성을 보내달라 청하지만, 파라오는 거부하고 노동량을 늘린다.
모세와 아론이 다시 요청하자 파라오는 기적을 요구한다. 아론의 모세의 지팡이가 뱀이 되나,[15] 파라오의 마술사들도 같은 기적을 행한다. 그러나 모세의 뱀이 다른 뱀을 삼킨다. 파라오는 여전히 백성을 풀어주지 않는다.
야훼는 이집트에 여러 재앙을 내린다. 나일강이 피로 변하고 개구리가 창궐하는 재앙에 마술사들도 똑같이 따라 한다. 그러나 이 재앙부터는 마술사들이 따라 하지 못한다. 재앙마다 파라오는 약속을 번복한다.
모세는 아빕월을 히브리 달력 첫 달로 정하고, 유월절 의식을 지시한다. 마지막 재앙 때 야훼의 천사가 집집마다 첫째를 죽이지만, 문설주에 피를 바른 집은 재앙을 피한다. 야훼는 이 사건을 "영원한 규례"로 기념하라 명한다.[16]
파라오는 아들의 죽음에 이스라엘 백성을 쫓아낸다. 야훼는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한다. 파라오는 변심하여 추격하나,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백성은 마른 땅을 건넌다. 이집트 군대는 홍해에 수장된다.[16]
이스라엘 백성은 불평하고, 야훼는 물, 음식, 만나로 기적을 베푼다. 아말렉이 르비딤에서 공격하나 패배한다. 이드로는 모세에게 재판관 임명을 조언한다. 시내 광야에서 야훼는 모세를 불러 십계명과 모세 언약을 준다. 백성은 율법 준수를, 야훼는 가나안 땅을 약속한다.[17]
야훼는 아론의 제사장 직분과 예배 규칙을 세운다. 모세 부재중 백성은 금송아지를 숭배하고, 야훼는 삼천 명을 죽이고 재앙을 내린다. 백성은 언약을 다시 받아들이고, 성막을 짓고 율법을 받는다. 야훼는 인구 조사와 레위 지파 임무를 명하고, 백성은 시내산을 출발한다.[17]
야훼는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에 보낸다. 정탐꾼은 땅이 비옥하나 거주민이 강하다 보고한다. 백성은 가나안 입성을 두려워하고, 야훼는 여호수아와 갈렙 외 이집트 탈출 세대는 광야에서 죽을 것이라 선언한다.[18]
고라의 반란에 야훼는 땅을 갈라 고라 일당을 삼킨다.[19] 가데스 바네아에서 19년간 머물고 미리암이 죽는다. 모세는 물을 얻으려 야훼의 명령을 어기고 바위를 쳐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호르산에서 아론이 죽는다. 에돔 우회 중 물과 음식 부족에 불평하는 백성에게 야훼는 불뱀을 보낸다.[20] 모세의 놋뱀으로 백성은 치유받는다.[21]
모압 왕 발락은 발람에게 이스라엘 저주를 요청하나, 발람은 축복한다. 일부 백성이 모압 여자와 성관계, 우상 숭배를 하자 야훼는 전염병을 보내고, 비느하스가 이스라엘 남자와 미디안 여자를 처형해 분노를 멈춘다.[22]
이스라엘은 요단강 동쪽을 정복, 가드 지파, 르우벤 지파, 므나쎄 지파 절반이 정착한다. 모세는 요단강 가에서 마지막 연설을 하고,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 지도자가 된다. 모세는 느보산에서 약속의 땅을 보고 죽는다.
2. 1. 1.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과 모세의 탄생
창세기에 따르면, 요셉은 이집트 파라오 궁정의 고위 관리였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기근 동안 그의 보호 아래 고센 땅에 정착했다.[12] 그러나 출애굽기는 요셉이 죽은 후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파라오가 등장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12]
새로운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의 수가 많아지자 반란을 일으킬 것을 우려하여 그들을 노예로 삼았다.[13]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비돔과 라암셋이라는 두 개의 "보급 도시"를 건설하도록 강요했다.[13] 또한 파라오는 모든 히브리 남자아이들을 태어나자마자 죽이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한 히브리 아기는 구출되어 나일강에 떠 있는 바구니에 버려졌다. 이 아기는 파라오의 딸에게 발견되어 입양되었고, 모세라는 이름을 받았다. 성장한 모세는 어느 날 히브리 노예를 때리는 이집트인을 보고 그를 죽였다. 이 일로 인해 모세는 미디안 땅으로 도망쳤고, 그곳에서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했다. 그동안 늙은 파라오는 죽고 새로운 파라오가 왕위에 올랐다.[12]
에스겔서 20장 8-9절에 따르면, 노예가 된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의 신들을 숭배했다.[14] 이 때문에 야훼는 그들을 멸망시키려 했으나, 자신의 이름이 모독되는 것을 막기 위해 마음을 바꾸었다.[2]
2. 1. 2. 야훼의 부름과 10가지 재앙
모세는 성장하여 히브리 노예를 때리는 이집트인을 죽이고 미디안 땅으로 도망친다. 그곳에서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의 딸 십보라와 결혼한다. 늙은 파라오가 죽고 새로운 파라오가 왕위에 오른다.[12]호렙산에서 모세는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서 야훼의 음성을 듣고,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켜 가나안 땅으로 데려가라는 명령을 받는다. 야훼는 모세의 형 아론에게도 말하고,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야훼의 약속을 믿게 하려고 기적을 행한다.
모세와 아론은 파라오에게 가서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종교 행사를 열 수 있도록 보내달라고 요청하지만, 파라오는 거부하고 오히려 그들의 노동량을 늘린다. 모세와 아론이 다시 파라오에게 요청하자, 파라오는 기적을 요구한다. 아론이 모세의 지팡이를 던지자 뱀으로 변하지만,[15] 파라오의 마술사들도 같은 기적을 행한다. 그러나 모세의 뱀이 다른 뱀들을 삼킨다. 그럼에도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을 풀어주지 않는다.
이후 야훼는 이집트에 여러 재앙을 내린다.
모세는 아빕월을 히브리 달력의 첫 달로 고정하고, 이스라엘 백성에게 유월절 의식을 지키라고 지시한다. 마지막 재앙에서 야훼가 천사를 보내 모든 집의 첫째를 죽이지만, 문설주에 피가 묻어 있는 집은 재앙을 피한다. 야훼는 이 사건을 "영원한 규례"로 기념하라고 명령한다.[16]
2. 1. 3. 홍해의 기적과 시나이산 언약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홍해를 건너는 기적을 이끌었다. 야훼는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했다. 파라오는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 백성을 추격했지만, 모세가 지팡이로 홍해를 갈라 이스라엘 백성은 마른 땅을 건넜고, 뒤쫓아온 이집트 군대는 물에 잠겨 모두 죽었다.[16]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 도착했고, 야훼는 모세를 산으로 불러 십계명과 모세 언약을 주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의 율법을 지키고, 야훼는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했다.[17]
2. 1. 4. 광야 생활과 가나안 입성 준비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넌 후 광야에서 40년 동안 생활한다. 이 기간 동안 물과 음식이 부족하여 불평하기도 했지만, 야훼는 기적적으로 만나를 내려 그들을 먹이고, 르비딤에서는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승리하게 돕는다.[18]모세의 장인 이드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부족을 다스릴 재판관을 세우도록 조언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 광야에 도착하고, 야훼는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십계명과 모세 언약을 수여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의 율법을 지키고, 야훼는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한다.[17]
그러나 모세가 산에 있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는 죄를 짓는다. 야훼는 분노하여 이스라엘 백성 삼천 명을 죽이고 재앙을 내리지만, 이스라엘 백성이 다시 언약을 받아들이자 성막을 짓고 율법을 받는다.
야훼는 모세에게 열두 정탐꾼을 가나안 땅에 보내 정탐하게 한다. 정탐꾼들은 가나안 땅이 비옥하지만,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 강하다는 보고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두려워하고, 야훼는 이집트에서 나온 세대 중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하고는 모두 광야에서 죽을 것이라고 선언한다.[18]
고라가 모세에게 반란을 일으키지만, 야훼는 땅을 갈라지게 하여 고라와 그의 추종자들을 삼키게 한다.[19] 이스라엘 백성은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하여 19년 동안 머물고, 미리암이 그곳에서 죽는다. 물이 부족하자 모세는 야훼의 명령을 어기고 바위를 쳐서 물을 얻게 되고, 이 때문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
이스라엘 백성은 호르산으로 이동하고, 그곳에서 아론이 죽는다. 에돔을 우회하려 하지만, 물과 음식이 부족하여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야훼는 불뱀을 보내 벌한다.[20]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보고 치유받게 한다.[21]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왕 발락이 발람에게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요청하지만, 발람은 오히려 이스라엘을 축복한다. 일부 이스라엘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성관계를 맺고 우상 숭배를 하자, 야훼는 전염병을 보내고, 비느하스가 이스라엘 남자와 미디안 여자를 처형하여 야훼의 분노를 멈춘다.[22]
이스라엘 백성은 요단강 동쪽의 땅을 정복하고, 가드 지파, 르우벤 지파, 므나쎄 지파의 절반이 그곳에 정착한다. 모세는 요단강 가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마지막 연설을 하고, 여호수아가 가나안 정복의 지도자가 된다. 모세는 느보산에서 약속의 땅을 바라보고 죽는다.
2. 2. 언약과 율법
출애굽기의 절정은 시나이 산에서 모세가 중재한 야훼와 이스라엘 백성 간의 언약(구속력 있는 법적 계약)이다. 야훼는 이스라엘 백성을 영원히 자신의 선택된 백성으로 보호할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의 율법을 지키고 그만을 숭배할 것이다.[23] 이 언약은 여러 단계로 묘사된다. 출애굽기 24:3–8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그들에게 방금 읽어준 "언약의 책"을 준수하기로 동의한다. 그 직후 야훼는 십계명인 "언약의 말씀"을 돌판에 기록한다. 마지막으로 백성이 가나안의 약속의 땅으로 건너가기 위해 모압에 모였을 때, 모세는 야훼의 새로운 언약을 "호렙산에서 그들과 맺은 언약 외에" (신명기 29:1) 계시한다.[23] 율법은 여러 법전으로 제시된다.- 윤리적 십계명 또는 십계명, 출애굽기 20장 및 신명기 5장
- 언약의 책, 출애굽기 20:22–23:3
- 제례 십계명, 출애굽기 34장
- 레위기 1–6장 및 민수기 1–10장의 제례 율법
- 거룩함 법전, 레위기 17–26장
- 신명기 법전, 신명기 12–26장
3. 출애굽기의 기원과 역사성
출애굽기의 출처와 유사점과 성경의 역사성도 참조하십시오.
현대 학계에서는 출애굽기의 역사성에 대해 크게 두 가지 입장이 존재한다.[1] 다수의 학자들은 출애굽 이야기가 어느 정도 역사적 기반을 가지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은 거의 없다고 본다. 성경 최소주의 학파는 출애굽 이야기가 유배 이후 유대 공동체의 창작물이며 역사적 근거가 거의 또는 전혀 없다고 주장한다.[3]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정확하게 묘사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문화와 제도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하는 유대 민족의 건국 신화로 이해하는 것이 좋다. 성경의 이야기가 명백하게 틀렸다고 증명될 수 없는 한 본질적으로 옳다는 견해(성경 최대주의)는 오늘날 주류 학계에서 거의 지지받지 못하며, 극소수만이 지지한다.[1] 출애굽기의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비성경 고대 텍스트나 고고학적 유물에서 발견되지 않아, 대부분의 학자들은 출애굽기 사건을 이스라엘 역사에서 제외한다.
시나이 산에서의 하나님의 계시는 원래 출애굽과는 무관한 전승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조엘 S. 바덴은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구출된 이야기에 그들이 가나안 외의 다른 곳으로 인도될 것이라는 암시는 거의 없지만, 예상치 못하게, 그리고 명확한 지리적 순서 없이, 먼저 알려지지 않은 산으로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출애굽과 광야 전승 사이의] 이음새가 여전히 드러난다."고 언급한다. 신명기에서 율법의 계시가 원래 출애굽과 분리되어 있었다는 것에 광범위한 합의가 이루어져 있으며, 신명기의 원래 버전은 일반적으로 기원전 7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1] 레위기와 민수기의 내용은 제사장 자료에 의해 늦게 추가된 것이다.
학자들은 토라(또는 원형 오경)의 출판이 페르시아 제국 시대 중반(기원전 5세기)에 이루어졌다는 데 대체로 동의하며, 이는 바빌론 유수에서 돌아온 유대 공동체의 지도자였던 에스라에게 그것의 반포에 중추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전통적인 유대교적 견해를 반영한다.[5] 성경의 처음 다섯 권의 구성에 대한 많은 이론이 제시되었지만, 두 가지가 특히 영향력이 있다. 첫 번째는 피터 프라이가 제시한 페르시아 제국의 인가설로, 페르시아 당국이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지역 자치의 대가로 단일 법전을 제시하도록 요구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 이론은 요엘 P. 와인버그의 "시민-성전 공동체" 이론으로, 출애굽 이야기는 성전을 중심으로 조직된 포로 후 유대 공동체의 필요에 봉사하기 위해 구성되었다는 것이다. 출애굽 이야기를 담고 있는 책들은 이 공동체에 속한 사람을 정의하는 "신분증" 역할을 했다.
3. 1. 역사적 신뢰성 논쟁
현대 학계에서는 출애굽기의 역사성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다수의 학자들은 출애굽 이야기가 어느 정도 역사적 기반을 가지고 있지만,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의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기는 어렵다고 본다.성경의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를 정확하게 묘사했다기보다는, 그들의 문화와 제도의 이념적 기초를 제공하는 건국 신화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주류 학자들이 성경의 출애굽기를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 기록 시기: 대부분의 학자들은 출애굽 이야기가 사건 발생 시점보다 수 세기 후에 기록되었다는 데 동의한다.
- 내부 모순: 민수기에 기록된 이스라엘 백성의 수는 250만에서 300만 명에 달하는데, 이는 시나이 사막에서 부양 가능한 규모를 훨씬 초과한다. 또한 오경의 연대기에도 내부적인 문제가 존재한다.
- 고고학적 증거 부족: 출애굽기의 인물이나 사건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비성경 고대 텍스트나 고고학적 유물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 이집트 기록과의 불일치: 고대 이집트의 이집트 신왕국 텍스트에는 이집트에 거주하는 "아시아인"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이들을 이스라엘인과 확실하게 연결할 수 없으며, 성경에 묘사된 것과 같은 대규모 노예 탈출에 대한 언급은 없다.
- 기적적인 요소: 이집트의 재앙과 홍해 도하와 같은 기적적인 요소들은 합리적인 설명이 불가능하다.
- 파라오의 이름: 성경은 관련된 파라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아 고고학적으로 발견된 이집트 역사와 성경적 서술의 비교를 더욱 모호하게 한다.
메르넵타 비석은 이스라엘인에 대한 가장 초기의 역사적 언급을 담고 있는데, 이 비석은 그들을 가나안 또는 그 주변에 위치시키며, 탈출에 대한 어떠한 징후도 제공하지 않는다.
현대 고고학은 가나안과 이스라엘 정착 사이의 연속성을 보여주며, 초기 이스라엘이 이집트에서 온 외국인 집단으로 구성되었다는 시사점 없이, 주로 가나안 기원을 시사한다.
시내산에서의 하나님의 계시는 원래 출애굽과는 무관한 전승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학자들은 토라(또는 원형 오경)의 출판이 페르시아 제국 시대 중반(기원전 5세기)에 이루어졌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3. 2. 잠재적 역사적 기원
현대 학계에서는 출애굽기의 역사성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존재한다. 다수의 학자들은 성경의 출애굽 이야기가 어느 정도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보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다고 본다.[2] 반면, 성경 최소주의 학파는 출애굽 이야기가 유배 이후 유대 공동체가 만들어낸 창작물이며 역사적 근거가 거의 없다고 주장한다.[3]
대부분의 학자들은 출애굽 이야기가 실제 사건 발생 시점보다 수 세기 후에 기록되었다는 데 동의한다. 또한, 출애굽기에는 연대, 지명, 인구수 등에서 여러 가지 비현실적인 요소들이 발견된다. 예를 들어, 민수기에 기록된 이스라엘 남자 수는 603,550명으로,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하면 총 250만에서 300만 명에 달하는데, 이는 시나이 사막에서 부양하기 어려운 규모이다.
고대 이집트의 이집트 신왕국 텍스트에는 이집트에 노예와 노동자로 거주한 "아시아인"에 대한 언급이 있지만, 이들이 이스라엘인과 동일하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또한, 이집트 텍스트에는 성경에 묘사된 것과 같은 대규모 노예 탈출에 대한 언급이 없다. 이스라엘인에 대한 최초의 역사적 언급인 메르넵타 비석(기원전 1207년경)은 그들을 가나안 또는 그 주변에 위치시키며, 탈출에 대한 어떤 암시도 제공하지 않는다.
고고학적 증거는 부족하지만, 많은 학자들은 출애굽 이야기가 어느 정도 역사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고 믿는다. 소규모 이집트 출신 집단이 초기 이스라엘인과 합류하여 자신들의 출애굽 이야기를 이스라엘 전체에 전파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4] 이 가능한 출애굽 집단의 시기는 람세스 2세 (제19왕조) 시대인 기원전 13세기로 추정된다.
출애굽 이야기의 잠재적 기원으로는 제17왕조가 셈족 침략 집단인 힉소스를 몰아낸 사건이 자주 언급된다. 또한, 기원전 2천년기 후반, 특히 제19왕조와 제20왕조 동안 가나안에 대한 이집트의 압제가 소규모 이집트 난민 집단의 출애굽 이야기를 촉발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4. 헬레니즘 시대 이집트의 출애굽 유사 서사
프톨레마이오스 왕국(기원전 4세기 말 ~ 기원전 1세기 말) 시대의 그리스 및 라틴 작가들은 출애굽과 관련된 한 집단의 외국인 추방에 대한 몇 가지 이집트 이야기를 기록했다.[4] 이 이야기들은 종종 이집트 제2중간기("힉소스 시대")의 요소를 포함하고 있으며, 대부분 극도로 반유대주의적이다.[5]
가장 초기의 비성경적 이야기는 아브데라의 헤카타이오스(기원전 320년경)의 이야기로, 1세기 CE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가 쓴 ''아피온 반박''과 1세기 BCE 그리스 역사가 디오도로스의 변형된 버전에서 보존되었다.[6] 헤카타이오스는 이집트인들이 역병의 책임을 외국인에게 돌리고 그들을 나라에서 추방했으며, 그 후 그들의 지도자 모세가 그들을 가나안으로 데려갔다고 말한다.[7] 이 버전에서 모세는 매우 긍정적으로 묘사된다.[8]
마네토 또한 요세푸스의 ''아피온 반박''에 보존되어 있는데, 80,000명의 나병 환자와 기타 "부정한 사람들"이 오사르세프라는 사제의 지도하에 당시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전직 힉소스와 연합하여 이집트를 장악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파라오와 그의 아들이 그들을 시리아 국경까지 쫓아낼 때까지 큰 피해를 입힌다. 오사르세프는 나병 환자들에게 법전을 주고 그의 이름을 모세로 바꾼다. 마네토의 이야기에서 오사르세프가 모세와 동일시되는 것은 삽입이거나 마네토에게서 유래했을 수 있다.[9]
이야기의 다른 버전은 1세기 BCE 이집트 문법학자 알렉산드리아의 리시마쿠스, 파라오 바켄라네프 (보코리스) 시대에 이야기를 설정한 1세기 CE 이집트 역사가 알렉산드리아의 카이레몬, 그리고 1세기 BCE 갈로-로마 역사가 그나이우스 폼페이우스 트로구스에 의해 기록되었다.[10] 1세기 CE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히브리인들이 이집트 종교를 조롱하기 위해 그들의 신으로 당나귀를 숭배했다고 주장하는 이야기의 한 버전을 포함했으며, 로마 전기 작가 플루타르코스는 이집트 신 세트가 이집트에서 추방되었고 유다와 히에로솔리마라는 두 아들을 두었다고 주장했다.[11]
이 이야기들은 출애굽 내러티브에 대한 이집트의 논쟁적인 반응을 나타낼 수 있다.[12] 이집트학자 얀 아스만은 이 이야기가 "이집트 작가가 히브리 성경과 처음으로 접촉하기 전에" 구전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13] 아스만은 이 이야기가 단일 기원을 가지고 있지 않고 아마르나 시대와 힉소스 시대를 포함한 수많은 역사적 경험을 민속 기억으로 결합한 것이라고 제안했다.[14]
이 이야기들이 원래 유대인과 아무 관련이 없었다는 데 일반적으로 동의한다.[15] 에리히 S. 그루엔은 이집트인의 관점에서 사원 파괴와 같은 다양한 부정적 행위를 긍정적으로 해석한 마네토의 내러티브에 유대인들이 스스로를 삽입했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16]
5. 종교적, 문화적 의의
출애굽기는 이스라엘 백성이 야훼에 의해 노예 상태에서 구원받았고, 언약에 의해 그에게 속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2] 이 이야기는 기원전 10세기나 9세기에 시작되었을 수 있으며, 트란스요르단 지역과 남부 유다 왕국에서 페르시아 시대에 통일되기 전에 여러 형태를 취했을 것으로 보인다.[3] 출애굽 이야기는 기원전 6세기에 바빌론 유수로부터의 귀환의 영향을 받아 더욱 수정되고 확장되었을 가능성이 높다.[4]
출애굽에 대한 초기 기록은 북부 예언자 아모스[5]와 호세아[6]에서 나타나는데, 이들은 북부 이스라엘에서 기원전 8세기에 활동했다. 남부의 이사야는 출애굽에 대해 알지 못했고, 미가는 출애굽을 언급했지만, 이 구절이 후대에 추가되었는지 논쟁의 여지가 있다.[7] 7세기에 활동했던 예레미야는 모세[8]와 출애굽을 모두 언급한다.[9]
성경에 따르면 출애굽은 북이스라엘 왕국의 "기초 신화" 또는 "국가 이데올로기"를 형성했다.[10] 북부 시편인 80편과 81편은 하나님이 "이집트에서 포도나무를 이끌어 내셨다"고 언급하며, 이집트로부터의 이스라엘 구원을 기념하는 의식과 십계명의 일부를 기록하고 있다.[11]
유다 전통에서 출애굽의 초기 증거는 시편 78편에서 발견되는데, 이 시는 출애굽을 예루살렘 성전 건립으로 절정에 이르는 역사로 묘사한다. 이 시편에는 오경과 달리 모세에 대한 언급이 없고, 만나는 "강한 자의 음식"으로 묘사된다.[13] 출애굽과 관련된 유다의 종교적 대상은 놋뱀 또는 느후스단이었으며, 히스기야 왕 시대까지 성전에서 숭배되었고 종교 개혁의 일환으로 파괴되었다.[14]
성찬례와 부활절은 유월절과 출애굽의 이미지를 차용한다.[15] 신약성경에서 예수는 출애굽의 모티프와 자주 연관된다.[16]
5. 1. 유대교에서의 의의
출애굽 사건은 유대교와 유대 문화의 핵심이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창조하고 그들과 하느님과의 유대를 형성한 사건으로 자주 언급되며, 호세아, 예레미야, 에제키엘 예언자들이 그렇게 묘사했다.[9] 출애굽 사건은 유대교 기도문에서 매일 언급되며 과월절, 샤부오트, 수코트 등 유대교 명절 기간에 매년 기념된다.[10]
유대인들에게 과월절은 이스라엘인들의 이집트에서의 포로 생활로부터의 자유, 이스라엘인들의 가나안 정착, 그리고 맏아들의 죽음 동안 죽음의 천사의 "통과"를 기념한다.[11][12] 과월절에는 세데르라고 하는 의식적인 식사가 포함되며, 이 동안 출애굽 사건의 이야기가 다시 이야기된다.[13] 세데르의 하가다에는 모든 세대가 출애굽 사건과 관련하여 자신을 상기시키고 동일시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따라서 페사힘 (10:5)의 다음 구절이 낭독된다. "모든 세대에서 사람은 자신이 이집트에서 직접 나왔다고 생각해야 할 의무가 있다."[14] 이스라엘인들이 빵이 부풀 시간이 없이 급하게 이집트를 탈출했기 때문에, 무교병 마짜를 과월절에 먹으며, 가정은 하메츠로 알려진 발효제가 포함된 모든 물품에서 깨끗이 정화되어야 한다.[15]
샤부오트는 시나이 산에서 모세에게 율법이 주어진 것을 기념한다. 유대인들은 이 날 언약에 자신을 헌신하라는 부름을 받는다.[16] 세 번째 유대교 축제인 수코트는 이스라엘인들이 이집트에서 이전 집을 떠난 후 초막에서 살았던 것과 관련이 있다.[10] 그것은 하느님께서 음식과 거처 없이 광야를 방황하는 동안 이스라엘인들을 어떻게 돌보셨는지를 기념한다.[17]
5. 2. 기독교에서의 의의
신약성경에서 예수는 출애굽의 모티프와 자주 연관된다.[1] 마가 복음은 예수의 피 흘림이 모세가 수소 희생으로 언약을 세운 것(출애굽기 24:5)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언약을 창조한다고 암시한다(마가복음 14:24).[2] 마태 복음에서 예수는 헤롯 대왕이 저지른 어린 아이 학살에서 도망쳐 이집트에서 돌아옴으로써 출애굽의 방향을 뒤집는다(마태복음 2:13-15).[3] 마태복음의 다른 유사점으로는, 그가 물로 세례를 받고(마태복음 3:13-17), 광야에서 시험을 받지만 이스라엘 백성과 달리 유혹을 이겨낸다는 점(마태복음 4:1-3)이 있다. 요한 복음은 예수를 유월절 어린 양(요한복음 1:29, 13:1, 19:36)이라고 반복해서 부르는데, 이는 베드로전서(1 베드로 1:18-20)와 고린도전서(1 고린도 5:7-8)에서도 발견된다. 요한은 또한 예수를 만나(요한복음 6:31-5), 광야의 반석에서 흘러나오는 물(요한복음 7:37-9), 불기둥(요한복음 8:12)에 비유한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출애굽에서 일어난 사건들, 때로는 출애굽 전체를 유형론적으로 해석하여 예수나 예수의 행위를 예시했다.[1]성찬례의 기독교 의식과 부활절은 유월절과 출애굽의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차용한다.[4] 로마서 9:17에서 바울은 이집트 재앙 동안 파라오의 완악한 마음을 그리스도를 거부한 유대인들의 완악한 마음에 비유하여 해석한다.[5] 유스티누스 순교자, 이레네우스, 아우구스티누스와 같은 초기 기독교 저자들은 모세의 옛 언약이 예수의 새 언약으로 대체되었음을 강조했는데, 이는 유대인에게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었다.[6]
5. 3. 이슬람교에서의 의의
쿠란에서는 출애굽 이야기가 언급되며, 모세는 가장 저명한 예언자이자 사자 중 한 명으로 묘사된다. 모세는 쿠란에서 136번 언급되어 개인으로는 가장 많이 언급되었으며, 그의 삶은 다른 어떤 예언자보다 더 많이 서술되고 언급된다.[9][10]5. 4. 역사적 영감으로서의 출애굽기
출애굽 이야기는 역사 속에서 다양한 사건과 상황에 비유되며 영감을 주었다. 초기 미국 정착민들은 유럽에서 아메리카로 이주한 자신들의 경험을 새로운 출애굽으로 해석했다. 미국의 "건국의 아버지"인 토머스 제퍼슨과 벤저민 프랭클린은 미국 국장에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홍해를 건너게 하는 장면을 묘사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5] 노예 제도와 인종 차별로 고통받던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상황을 출애굽기에 비추어 해석했고, 이는 사회 변화의 촉매제가 되었다.[6][7][8] 남아메리카의 해방 신학 또한 출애굽기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9]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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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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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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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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