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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 닉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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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텔마 캐서린 라이언(Thelma Catherine Ryan), 일명 팻 닉슨은 1912년 네바다주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에서 성장했다. 1940년 리처드 닉슨과 결혼하여 정치인의 아내로서 활동을 시작했으며, 남편이 부통령과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영부인 역할을 수행했다. 팻 닉슨은 자원봉사, 백악관 개방, 예술 지원 등 다양한 활동을 펼쳤으며, 남편의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인해 고통을 겪었다. 1993년 사망했으며, 미국 영부인으로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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팻 닉슨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팻 닉슨
본명델마 캐서린 라이언
출생일1912년 3월 16일
출생지일리, 네바다주, 미국
사망일1993년 6월 22일
사망지파크리지, 뉴저지주, 미국
안장 장소리처드 닉슨 대통령 도서관 및 박물관
정당공화당
배우자리처드 닉슨 (1940년 6월 21일 결혼; 1993년 사망)
자녀트리샤
줄리
학력풀러턴 대학교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BS)
서명
직책
제1대 영부인president: 리처드 닉슨
term_start: 1969년 1월 20일
term_end: 1974년 8월 9일
predecessor: 레이디 버드 존슨
successor: 베티 포드
제2대 부통령 영부인vicepresident: 리처드 닉슨
term_start: 1953년 1월 20일
term_end: 1961년 1월 20일
predecessor: 제인 해들리 바클리
successor: 레이디 버드 존슨
미국 국무부 국제관광행정특보비서관임기: 1959년 3월 20일 ~ 1959년 5월 23일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기타 정보
로마자 표기Thelma Catharine “Pat" Nixon

2. 어린 시절

1912년 3월 16일, 텔마 캐서린 라이언은 네바다주의 작은 광산촌 일리에서 태어났다.[1] 아버지는 아일랜드계 윌리엄 M. 라이언, 어머니는 독일계 이민자 캐서린 할버슈타트였다.[1] 아버지 윌리엄은 딸의 생일이 성 패트릭의 날 전날인 것을 기념하여 "팻"이라는 애칭을 지어주었다.[1] 팻은 1931년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텔마" 대신 "팻"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법적으로 개명하지는 않았다.[2][3]

1914년, 팻의 가족은 캘리포니아주 아터지아(현재의 세리토스)로 이주하여 작은 채소 농장을 운영했다.[4] 팻은 가족 농장 일을 돕고, 지역 은행에서 청소부와 회계원으로 일하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24년, 팻이 12세 때 어머니가 으로 사망하자, 팻은 아버지와 두 오빠(윌리엄 주니어와 토마스), 그리고 이복 언니와 오빠(네바 벤더와 매튜 벤더)를 위해 집안일을 도맡았다.[1][6] 5년 후, 아버지마저 규폐증으로 사망하면서 팻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팻은 가족 농장 일과 더불어 지역 은행 청소, 회계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려운 환경을 극복했다.

3. 교육 및 경력

1929년 엑설시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풀러턴 주립대학교에 진학했다. 학비 마련을 위해 운전사, 약국 관리자, 전화 교환원, 타이피스트 등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으며,[1][7] 지역 은행에서 바닥 청소를 하기도 했다.[1] 1930년부터 1931년까지 뉴욕시에서 비서 및 방사선사로 일했다.[6]

1931년 "자신을 위해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결심으로[8]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USC)에 입학하여 상품학을 전공했다. 전직 교수는 그녀가 "그 시대의 멍청하고 화려하게 차려입은 여자 대학생들 사이에서 값싼 종이책 서가에 놓인 좋은 문학작품처럼 눈에 띄었다"고 회상했다.[9] 캠퍼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불럭스-윌셔 백화점에서 판매원으로 일했으며,[10] 고등학교에서 터치 타이핑속기를 가르쳤다.[6] 또한 단역 배우 및 영화계의 엑스트라로 일하며 수입을 보충했고,[15][11] 여러 차례 스크린 테스트를 치렀다.[12] 이러한 활동을 통해 ''베키 샤프''(1935), ''위대한 지그펠트''(1936), ''스몰 타운 걸''(1936) 등의 영화에 짧게 출연했다.[12] ''베키 샤프''에서 그녀의 대사는 편집 과정에서 삭제되기도 했다.[12][13]

1937년, 팻 라이언은 USC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상품학 이학사 학위를 받았으며,[1] USC는 고등학교 교사 자격증이 석사 학위와 동등하다고 인정했다. 팻은 캘리포니아주 휘티어의 휘티어 유니온 고등학교에서 고등학교 교사로 일자리를 수락했다.[15]

4. 결혼과 가족

휘티어에서 소극단 활동 중 듀크 대학교 법학대학원을 졸업한 젊은 변호사 리처드 닉슨을 만났다. 두 사람은 소극단에서 연극 ''어둠의 탑''에 함께 출연하면서 알게 되었다.[6] 1940년 6월 21일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의 미션 인에서 리처드 닉슨과 결혼했다.[17]

제2차 세계 대전 발발 후 워싱턴 D. C.로 이주하여 남편은 가격관리청(OPA)에서 변호사로,[17] 팻은 미국 적십자사에서 비서로 일했다.[17] 남편이 미국 해군에 입대하여 남태평양에 주둔하는 동안, 샌프란시스코에서 물가 행정소 경제학자로 일했다.[17]

1946년 장녀 트리샤(후에 에드워드 F. 콕스와 결혼)를 낳았다.[1] 1948년 7월 5일 차녀 줄리(후에 데이비드 아이젠하워와 결혼)를 낳았다.[1] 팻은 남편의 정치 경력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며 선거 운동에 참여했다.[19]

5. 닉슨의 정치 역정과 함께

1946년 리처드 닉슨이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팻은 본격적으로 정치인의 아내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겨우 4년 만에 남편이 미국 상원의원이 되었고, 1952년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에 당선되면서 팻은 '세컨드 레이디'가 되었다.[22] 팻은 남편의 정치적 성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녀는 정치와 사람들을 환영하는 데 능숙했고, 열심히 일했다. 1946년 2월 21일 장녀 트리샤를 낳은 지 몇 시간 만에 남편을 위해 선거 운동을 벌였고, 1948년 7월 5일 차녀 줄리를 낳았다.

남편이 부통령 후보로 거론될 당시, 팻은 선거 운동을 싫어했고 남편이 부통령직을 수락하는 것을 반대했다.[22] 그러나 1952년 대선 기간 동안, 남편이 불법 선거 자금 기부를 받았다는 비난을 받자 팻은 남편에게 맞서 싸울 것을 격려했다. 닉슨은 '체커스 연설'을 통해 자신을 변호했고, 이 연설에서 팻과 딸들, 그리고 애완견 체커스가 크게 부각되었다. 닉슨은 "이것만은 말씀드려야겠습니다. 패트는 밍크 코트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훌륭한 공화당 스타일의 천 코트를 가지고 있으며, 저는 그녀에게 어떤 옷을 입어도 잘 어울린다고 항상 말합니다."라고 말하며 아내를 옹호했다.[23][24]

팻은 부통령 부인으로서 남편과 함께 53개국을 여행하며 외교 사절 역할을 수행했다. 파나마의 나병 콜로니를 방문하기도 했고,[1] 베네수엘라 방문 중에는 군중이 닉슨 부부의 리무진에 돌을 던지고 침을 뱉는 공격을 받기도 했다.[9] 1958년 11월 1일 ''시애틀 타임스''는 "닉슨 여사는 항상 친절하고 우호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녀는 낯선 사람을 친구처럼 맞이합니다... 하루가 아무리 길어도 항상 단정한 모습을 유지했습니다."라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는 팻을 "아내의 미덕의 표본"이라고 칭찬하며 "그녀의 효율성은 다른 여성들이 게으르고 재능이 없다고 느끼게 만든다"고 썼다.[25] 팻은 올해의 뛰어난 주부(1953년), 올해의 어머니(1955년), 국가의 이상적인 주부(1957년)로 선정되기도 했다.[8]

196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리처드 닉슨은 존 F. 케네디에게 패배했다. 팻은 남편에게 재검표를 요구했지만, 닉슨은 거절했다.[26] 팻은 남편의 패배 장면을 촬영한 카메라에 큰 실망감을 느꼈고, 한 기자는 "수백만 명의 텔레비전 시청자들은 그녀가 입술에 미소를 유지하려고 필사적으로 애쓰는 모습과...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모습을 목격했습니다."라고 묘사했다.[8] 1962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에서도 닉슨은 팻 브라운에게 패배했다. 팻은 남편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라는 이유로 선거 운동에 참여했지만,[27] 결과는 좋지 않았다.

196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리처드 닉슨은 허버트 험프리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팻은 남편의 경력을 지지했지만, 1960년과 같은 일이 다시 일어날까 두려워했다.[28] 그러나 그녀는 남편과 함께 선거 유세에 참여하며, 미국의 새로운 영부인이 되었다.

6. 영부인 시절 (1969-1974)

1969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 취임과 함께 팻 닉슨은 영부인이 되었다. 그녀는 영부인으로서 여러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활동했으며, 특히 '자원봉사 활동'을 장려하며 미국인들이 지역 사회 문제 해결에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팻 닉슨은 "우리나라의 성공은 다른 사람들의 삶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는 관대한 의지에 달려있다"고 말했다.[32] 그녀는 10개의 자원봉사 프로그램을 방문하는 "자원봉사를 위한 작은 주머니" 여행을 하기도 했다.[32]

팻 닉슨은 교육, 보건, 복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다. 신체장애인 고용 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보건, 교육, 복지부의 "지도하는 권리" 프로그램 명예 의장을 맡았다.[1] 또한 휴양 지역과 공원 개발에도 참여했다.[1] 백악관에서 첫 추수감사절에는 가족이 없는 노인 225명을 위한 식사를 마련했고,[35] 다음 해에는 부상 군인들을 초대해 식사를 대접했다.[35] 조지 워싱턴 이후 대통령들이 추수감사절 선포문을 발표했지만, 팻 닉슨은 추수감사절 선포문을 발표한 유일한 영부인이다.[35]

닉슨 여사와 캐나다 영부인 마가렛 트뤼도(Margaret Trudeau), 갓난아기 저스틴 트뤼도(Justin Trudeau)를 안고 있는 모습, 1972년 4월


팻 닉슨은 백악관을 대중에게 더욱 개방하기 위해 노력했다. 저녁 및 정원 순회를 통해 백악관을 개방하고, 영어 외 다른 언어로 된 백악관 안내 팜플렛을 제작했다.[37] 예술에 대한 열정으로 백악관에 600점이 넘는 그림과 가구를 기증했는데, 이는 역대 대통령 행정부 중 가장 많은 수였다.[1] 지도실을 만들고 중국실을 개조했으며, 적색 방, 청색 방, 녹색 방 등 여러 방을 개보수했다.[37] 백악관 외관 조명 시스템을 개발하고, 대통령 부재 시에도 국기를 게양하도록 했다.[37]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를 설치하고, 시각 장애인들이 골동품을 만져볼 수 있도록 하는 등 세심한 배려를 했다.[37]

1972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하는 패트 닉슨 여사. 그녀는 엘리너 루즈벨트(Eleanor Roosevelt) 이후 전당대회 연설을 한 최초의 영부인이자, 공화당 출신으로는 최초였다.


팻 닉슨은 백악관을 방문하는 일반인들을 직접 맞이하고, 소외된 단체들을 초청하는 등 대중과의 소통을 중시했다.[47] 전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와 자녀들을 백악관에 초대하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어머니 로즈 케네디를 초청하는 등 이전 영부인들과의 관계도 돈독히 했다.[40] 오페라부터 블루그래스까지 다양한 미국 전통 예술 공연을 백악관에서 개최했으며, 1972년에는 카펜터스를 초청하기도 했다.[8] 1971년에는 딸 트리샤의 결혼식을 백악관에서 진행했다.[41]

팻 닉슨은 여성의 정치 참여를 지지했으며, 여성평등헌법개정안을 공개적으로 지지한 최초의 영부인이었다.[1] 1972년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한 최초의 영부인이기도 하다.[1]

팻 닉슨은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친 영부인으로도 유명하다. 힐러리 클린턴 이전까지 가장 많은 해외 순방을 한 영부인이었다.[1] 베트남 방문 시에는 전투 지역을 방문한 최초의 영부인이 되었으며,[1] 군 병원을 방문해 부상병들을 위로했다.[46]

1970년 페루 대지진 때는 구호 물품을 전달하고 피해 지역을 방문하여 주민들을 위로했다.[47] 페루 정부는 그녀에게 태양 훈장 대십자장을 수여했다.[1] 1972년에는 아프리카 3개국(가나, 라이베리아, 코트디부아르)을 방문하여 각국 정상들과 회담을 가졌다.[48]

닉슨 부부는 1972년 2월 역사적인 방문 중 중국 만리장성을 걸었다.


1972년 닉슨 대통령의 역사적인 중국 방문에 동행하여 '외교사절' 역할을 톡톡히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았다.[50] 같은 해 소련을 방문하고, 1974년에는 브라질베네수엘라를 방문하는 등 활발한 외교 활동을 펼쳤다.[50]

6. 1. 워터게이트 사건과 남편의 사임

워터게이트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었을 때, 팻 닉슨은 민주당 전국위원회 본부 침입 사건에 대해 "거의 알아채지 못했다"고 한다.[56] 언론의 질문에는 "신문에서 읽은 것만 알고 있다"고 답했다.[57] 1974년, 한 기자가 "언론이 대통령 문제의 원인인가?"라고 묻자, "어떤 문제 말입니까?"라고 반문하기도 했다.[58] 팻은 남편의 참모들이 지나치게 권력을 행사하고, 리처드 닉슨 대통령이 행정부에서 일어나는 일들과 멀어지고 있다고 느꼈다.[57]

1974년 8월 9일, 포드 부부가 닉슨 대통령의 마지막 날 백악관을 떠나는 닉슨 부부를 배웅하고 있다.


팻 닉슨은 남편이 비밀리에 녹음한 테이프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줄리 닉슨 아이젠하워는 만약 팻이 테이프의 존재를 알았다면 즉시 파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팻은 테이프 공개에 강력히 반대하며, "한 사람만을 위한 사적인 연애 편지"와 같다고 비유했다. 남편의 무죄를 믿었기에, 팻은 닉슨 대통령에게 사임 대신 탄핵에 맞서 싸울 것을 권했다. 그녀는 친구에게 "딕(닉슨 대통령의 애칭)은 나라를 위해 너무 많은 일을 했어요.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죠?"라고 말했다.[51]

닉슨 대통령이 사임 의사를 밝혔을 때, 팻은 "하지만 왜죠?"라고 반문했다.But why?영어 팻은 백악관 관장에게 공식 도자기 개발 중단을 요청하고, 가족의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1974년 8월 7일, 닉슨 가족은 백악관 솔라리움에서 마지막 저녁 식사를 했다. 팻은 소파 가장자리에 앉아 턱을 들고 있었는데, 이는 남편에게 긴장하고 있다는 신호였다.[59] 닉슨 대통령이 들어오자 팻은 그를 껴안고 키스하며 "아빠, 우리 모두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요"라고 말했다.[59] 훗날 팻은 그날 저녁 사진에 대해 "우리의 마음이 부서지고 있었는데, 우리는 미소짓고 있었죠"라고 회상했다.

1974년 8월 9일 아침, 닉슨 대통령은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직원들에게 작별 인사를 했다. 팻은 눈물을 참지 못하고, 카메라 때문에 더욱 괴로워했다. 닉슨 부부는 제럴드 포드 부통령 부부와 함께 백악관 남쪽 잔디밭으로 걸어 나갔다. 닉슨 대통령은 마린 원 헬리콥터를 타고 백악관을 떠났다. 팻은 한 팔로 남편의 허리를, 다른 팔로 포드의 허리를 감싸며 "당신은 이런 빨간 카펫을 많이 보게 될 거예요. 그러다 보면 질리게 될 거예요"라고 말했다. 헬리콥터는 그들을 앤드루스 공군기지로 이동시켰고, 그곳에서 캘리포니아로 향했다.[61]

팻 닉슨은 훗날 딸 줄리에게 "워터게이트는 나를 낙담시킨 유일한 위기였어요... 그리고 저는 제가 무죄임을 증명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살 거라는 것을 알아요"라고 말했다.

7. 이후의 삶

1976년 뇌졸중을 겪어 왼쪽 전체가 마비되었으나, 물리 치료를 통해 모든 운동 능력을 회복했다.[1] 1980년대 초반에 두 번째 뇌졸중을 겪었다.[1] 이후 구강암,[77] 폐기종, 폐암[6] 등 건강 악화로 고통받았다.

1993년 6월 22일 뉴저지주 파크리지 자택에서 폐암으로 사망하였다.[78] 향년 81세였으며, 두 딸과 남편이 곁을 지켰다.

1993년 6월 26일 요바린다에 있는 리처드 닉슨 도서관 부지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캘리포니아 주지사 피트 윌슨, 캔자스 상원의원 밥 돌, 빌리 그레이엄 목사 등이 추도사를 낭독했다. 남편과 직계 가족 외에도 로널드 레이건,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과 낸시 레이건, 베티 포드도 참석했다.[79] 빌 클린턴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영부인, 지미 카터,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과 로잘린 카터, 바버라 부시는 참석하지 않았다. 레이디 버드 존슨은 뇌졸중으로 병원에 입원 중이어서, 재클린 케네디 오나시스는 개인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다. 닉슨 전 대통령은 장례식 내내 공개적으로 오열했는데, 이는 전직 대통령으로서 드문 감정 표현이었다.[80]

닉슨의 묘비에는 "패트리샤 라이언 닉슨"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남편 닉슨은 10개월 후인 1994년 4월 22일에 사망했다. 그의 향년 또한 81세였다.[81] 묘비명은 다음과 같다.

8. 유산 및 평가

팻 닉슨은 소탈하고 검소한 모습으로 서민들에게 친근한 이미지를 주었으며,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영부인으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친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여겨진다.[14] 1994년, 캘리포니아주 세리토스에는 팻 닉슨의 어린 시절 집터에 패트 닉슨 공원이 조성되었다.[31] 1996년 4월, 세리토스 시의회는 전 영부인의 동상 건립을 결의했는데, 이는 영부인을 형상화한 몇 안 되는 동상 중 하나이다.[82]

1972년 10월 애틀랜타 유세 중 리무진에서 내려 어린 소녀에게 손을 내미는 패트 닉슨


팻 닉슨은 1995년 영화 ''닉슨''에서 조앤 앨런이 연기하여 여우조연상 후보에 올랐고, 2008년 영화 ''프로스트/닉슨''에서는 패티 매코맥이, 2009년 영화 ''블랙 다이나마이트''에서는 니콜 설리반이 연기했다. 존 애덤스의 오페라 ''중국에서의 닉슨''(1987년 휴스턴 초연)에서는 소프라노 캐롤앤 페이지가 팻 닉슨 역을 맡았는데, ''뉴욕 타임스''는 그녀가 "영부인의 수줍은 태도"를 잘 포착했다고 평했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그녀를 "만성적으로 조용한 영부인"이라고 묘사했다.[83][84] 2011년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초연에서는 제니스 켈리가 팻 닉슨 역을 맡아 "훌륭하게 소화했다"는 평을 받았다. ''뉴욕 타임스''는 켈리가 부른 노래를 통해 "닉슨 여사가 자신이 가질 수도 있었던 전혀 다른 삶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고 썼다.[85]

시에나대학교 연구소(Siena College Research Institute)는 1982년부터 역사학자들에게 미국 영부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기준에 따른 누적 점수를 매기는 설문 조사를 정기적으로 실시해 왔다.[86] 팻 닉슨의 누적 평가 순위는 다음과 같다.

연도순위평가 대상
1982년37위42명[87]
1993년18위37명[87]
2003년33위38명[87]
2008년35위38명[87]
2014년33위39명[88]



2014년 설문 조사에서 팻 닉슨과 그녀의 남편은 "권력 부부" 측면에서 39쌍 중 29위를 차지했다.[89]

참조

[1] 웹사이트 First Lady Biography: Pat Nixon https://web.archive.[...] The National First Ladies Library 2007-08-15
[2] 뉴스 First Lady of the Land at 60: Thelma Catherine Ryan Nixon, Woman in the News 1972-03-16
[3] 뉴스 Thelma Ryan's Rise: From White Frame to White House 1971-08-20
[4] 뉴스 First Lady Hailed on Return 'Home' 1969-09-06
[5] 이미지 Illustration in a New York Times article by Judith M. Kinnard, entitled "Thelma Ryan's Rise: From White Frame to White House" 1971-08-20
[6] 뉴스 Pat Nixon, Former First Lady, Dies at 81 https://query.nytime[...] 1993-07-23
[7] 웹사이트 Pat Nixon Biography https://www.nixonfou[...] 2023-07-06
[8] 뉴스 Pat Nixon Is the Ultimate Good Sport https://www.nytimes.[...] 1970-09-13
[9] 간행물 The Silent Partner https://web.archive.[...] 1960-02-29
[10] 서적 Wilshire Boulevard: Grand Concourse of Los Angeles Angel City Press
[11] 뉴스 Pat and Edith: A Fashionable Footnote http://www.newyorker[...] 2011-11-07
[12] 논문
[13] 뉴스 Hollywood Today https://news.google.[...] 1959-10-06
[14] 뉴스 In Your Heart You Know He's Nixon http://nymag.com/new[...] 1968-10-28
[15] 웹사이트 Patricia Ryan Nixon https://www.whitehou[...] The White House
[16] 뉴스 Diplomat in High Heels: Thelma Ryan Nixon 1959-07-28
[17] 서적 Thelma Catherine (Patricia) Ryan Nixon
[18] 논문
[19] 간행물 Pat Nixon: Steel and Sorrow https://web.archive.[...] 2008-08-19
[20] 백과사전 The American Presidency
[21] 간행물 A Worshiper in the White House https://web.archive.[...] 1968-12-06
[22] 서적 Nixon Volume I: The Education of a Politician 1913–1962 Simon & Schuster
[23] 웹사이트 Richard Nixon's Checkers Speech https://web.archive.[...] PBS
[24] 뉴스 Fashion Spotlight Turns to New First Family 1968-12-21
[25] 뉴스 Pat Nixon: A Diplomat in High Heels 1960-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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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논문
[28]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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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웹사이트 Biography of First Lady Pat Nixon http://www.nixonfoun[...] Richard Nixon Library & Birthplace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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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웹사이트 Richard Nixon: Statement on Signing the Domestic Volunteer Service Act of 1973 http://www.presidenc[...] The American Presidency Project 1973-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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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뉴스 A Decorator for Nixons Gives Julie A Bit of Help 1968-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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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뉴스 Clinton Mistily Recalls Kennedy's White House Visit https://www.nytimes.[...] 1999-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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