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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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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비자는 전국 시대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저작으로,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 속에서 법치주의를 통해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 것을 주장했다. 주요 내용은 법(法), 술(術), 세(勢)를 통해 군주의 권력을 강화하고 신하를 통제하는 것이다. 한비자는 유교를 비판하고 객관적인 통치 수단을 강조하며, 법의 공정한 적용을 주장했다. 『한비자』는 다양한 학파의 사상을 비판하고, 군주가 경계해야 할 간신 유형과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며, 현대에도 정치 사상적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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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 [서적]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홍문서국에서 발행한 19세기 후반 《한비자》 판본
원제韩非子
저자한비
국가중국
언어중국어
장르중국 고전
출판 시기기원전 3세기
한어 병음Hán Fēi zǐ
웨이드-자일스Han² Fei¹ tzŭ³
보포모포ㄏㄢˊ ㄈㄟ ㄗˇ
광둥어Hon4 Fei1-zi2
민난어Hân Hui-chú
상고음*
다른 표기[한비 선생의 저작]
Hán Fēi zǐ
Harn Feitzyy
Hòhn Fēi-jí
Hân Hui-tsú
Hân Hui-tsú
관련 인물
주요 인물관중
위나라 문후
이괴
진 효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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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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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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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림비공

2. 배경

전국 시기는 중국 역사에서 강대한 제후국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던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고 아들이 부친을 살해하는 등 비윤리적인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1] 한비의 조국 한나라는 외세의 침략으로 쇠퇴하고 있었다. 한비는 기존의 사고방식과 체제로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여, 법치라는 새로운 이념으로 나라를 다스릴 것을 주장했다.[1]

한비가 태어난 전국 말기는 전국칠웅이라 불리는 일곱 나라로 중국이 통합되어, 춘추오패 시대를 거쳐 점차 통일의 기운과 초대국 출현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였다. 통일을 향한 움직임은 물론, 여러 나라의 존망을 건 싸움의 연속이었으며, 국가 간의 총력전이기도 했다. 그리고 혹독한 생존 경쟁은 인재 등용을 활발하게 만들었다.[4]

당시까지 군주의 혈통을 잇는 공자나 귀족 등에 의해 운영되던 국정은, 계급이 낮은 사대부나 출신이 불분명한 유세객들에게 군주의 권한이 위임되는 일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군주에게 권력을 집중시키고, 그것을 신속하게 적재적소에 위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4]

그러나 결과적으로 당시 왕권은 특정 사대부나 왕족에게 독점되는 경우가 많았고, 제(산둥성)나 진(산시성)과 같이 국가 자체를 빼앗기는 사례도 발생했다. 그래서 한비는 분열되고 혼란스러운 군주의 권력을 법으로 일원화하고 체계화함으로써 강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4]

이러한 한비의 사상은 아이러니하게도 한비의 출신국인 한이 아니라, 적대국인 진의 진시황에 의해 높이 평가되었다. 이는 진의 효공 시대에 상앙법가 사상에 의한 군주 독재권을 확립했던 것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4]

2. 1. 사상적 배경

전국 시기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는 당시 중국 역사상 강대한 제후국들이 서로 정벌 전쟁을 일삼고,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는 등 비윤리적인 행위가 빈번했던 혼란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한비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기존 사고방식과 체제로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없다고 판단하여 법치라는 새로운 이념을 제시했다.[45][46]

초기 법가 사상가인 상앙의 상군서가 농업과 전쟁을 강조하며 일반 백성과 관련된 국가 권력에 초점을 맞춘 반면, 한비자는 관리 통제 사상을 책 후반부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이는 신도의 권력 사상과 유사하지만, 초기 저작보다는 후대에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

한비자는 유교를 부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상앙의 상벌(賞罰)을 수용하면서도 유교적인 성향을 보였다. 한비자는 명분론과 유사한 관료 제도의 명칭(역할)을 제시하고, 군현제보다는 관리들의 금지와 장려에 더 중점을 두었다.

한비자는 법을 옹호했지만, 상앙이 법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을 비판하며, 법은 스스로 시행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교의 어진 인재에 대한 주장을 행정적 방법으로 대체하면서, 신불해의 방법을 일부 포함하여, 상앙의 진나라에 대해 "관리들이 법을 엄격하게 시행했지만, 최고 지도자인 군주는 방법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신불해심도의 사상이 공자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상앙과 한비는 과거의 모델을 검증할 수 없거나 쓸모없다고 배척했다. 한비는 예의 시대가 법의 시대로, 자연 질서가 사회 질서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정치 질서로 변화했다고 주장했다. 순자의 사상과 함께 그들의 인간 진보와 이성에 대한 이해는 진나라를 이끌었다.

한비는 통치자가 관계나 도덕과 같이 임의적인 결정에 따라 행동하면 재앙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예(禮)나 모범에 의한 통치 또한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보았다. 그는 통치자가 법(행정적 방법이나 표준)을 통해 행동하는 포괄적인 시스템을 수립해야 하며, 법은 귀족에게 편파적이지 않고, 신하를 배제하지 않으며, 일반 백성을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비는 "공적" 영역을 정의와 객관적인 기준과 연결하면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은 항상 서로 대립한다고 보았다. 그는 유가들을 "오가지 해충" 중 하나로 꼽았고, 유가의 사랑과 연민에 대한 가르침을 "어리석은 가르침"이라고 비판하며, 인(仁)에 대한 강조는 "귀족적이고 엘리트적인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교가 통일된 사상체계가 아니라고 지적하며, 유학자들이 국가의 일과는 멀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유가의 가족 중시 사상에 반대하며, 한비는 구조적 해결책을 요구했다. 예기에 따르면 고위 관리는 형벌법을 적용해서는 안 되지만, 주요한 정치 부패의 원천으로서 신하는 인(仁)과 다른 도덕적 정당화의 명목으로 가족 구성원을 형벌 조치로부터 보호했다. 인맥이 없는 사람들만이 법의 적용을 받았다. 한비는 이러한 불의를 비난했다.

한비자는 성악설을 주장한 유가의 순자에게 배웠으며, 비위의 행위를 예(禮)에 의한 덕화(德化)로 교정한다는 순자의 생각에 대해 법으로써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 2. 시대적 배경

전국 시기는 중국 역사에서 강대한 제후국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던 혼란의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고 아들이 부친을 살해하는 등 비윤리적인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1] 한비의 조국 한나라는 외세의 침략으로 쇠퇴하고 있었다. 한비는 기존의 사고방식과 체제로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여, 법치라는 새로운 이념으로 나라를 다스릴 것을 주장했다.[1]

한비가 태어난 전국 말기는, 전국칠웅이라 불리는 일곱 나라로 중국이 통합되어, 춘추오패 시대를 거쳐 점차 통일의 기운과 초대국 출현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였다. 통일을 향한 움직임은 물론, 여러 나라의 존망을 건 싸움의 연속이었으며, 국가 간의 총력전이기도 했다. 그리고 혹독한 생존 경쟁은 인재 등용을 활발하게 만들었다.[4]

그때까지 군주의 혈통을 잇는 공자나 귀족 등에 의해 운영되던 국정도, 계급이 낮은 사대부나 출신이 불분명한 유세객들에게 군주의 권한이 위임되는 일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군주에게 권력을 집중시키고, 그것을 신속하게 적재적소에 위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4]

그러나 결과적으로 당시 왕권은 특정 사대부나 왕족에게 독점되는 경우가 많았고, 제(산둥성)나 진(산시성)과 같이 국가 자체를 빼앗기는 사례도 발생했다. 그래서 한비는 분열되고 혼란스러운 군주의 권력을 법으로 일원화하고 체계화함으로써 강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4]

이러한 한비의 사상은, 아이러니하게도 한비의 출신국인 한이 아니라, 적대국인 진의 진시황에 의해 높이 평가되었다. 이는 진의 효공 시대에 상앙법가 사상에 의한 군주 독재권을 확립했던 것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4]

3. 주요 내용

명나라 판본 ''한비자''의 페이지


《한비자》는 전국시대에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저작이다. 한비가 활동했던 전국시대는 중국 역사상 강대한 제후국들이 서로 전쟁을 일삼던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또한 각국에서는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고 아들이 부친을 살해하는 등 비윤리적인 행위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시기에 한비의 조국 한나라는 외세의 침략으로 쇠퇴하고 있었다. 한비는 기존 사고방식과 체제로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여 법치라는 새로운 이념으로 나라를 다스릴 것을 주장했다.

《한비자》 55편의 내용은 크게 10가지로 나눌 수 있다.

# 잘못된 통치 방식을 비판하고 법치를 주장.

# 계급과 지위를 차지하려는 간신들의 은밀한 활동과 궁정 내부의 잠재된 위험을 이야기.

# 한비자의 정치적 경험과 주장을 반영.

# 군주가 나라를 세우는 방법을 설명하고 한비자의 법치 주장과 이를 실현하는 방식을 서술.

# 선진 제가들의 학술 주장을 비판하며 사상 통제를 강화할 것을 요구.

# 노자 혹은 황로 사상을 해설하며 자신의 관점을 이야기.

#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반박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논리적으로 서술.

# 많은 역사적 이야기와 민간 전설을 들어 법·통치술·권세가 결합된 법치 이론을 서술. (이 부분은 문장이 생동적이고 문학성이 뛰어남)

# 한비자가 수집한 원시 자료로 자신의 법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를 인용.

# 한비자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 (1편에서 4편까지는 군주에 대한 이야기들을 서술함으로써 군주의 태도가 국가 형성의 중요함을 나타냄)

《한비자》에는 다양한 사상들이 등장한다. 도가법가의 혼합을 이룬 황로파나 법가의 사상가들인 상앙, 신불해 등이 대표적이다.

  • 황로파의 시각 아래 서술된 편장: 5편 〈주도〉, 8편〈양권〉, 20편〈해로〉, 21편〈유로〉, 27-29편〈용인〉〈공명〉〈대체〉.
  • 상앙의 시각 아래 서술된 편장: 53편 〈칙령〉, 54편 〈심도〉, 55편 〈제분〉.
  • 상앙과 신불해 모두를 인용한 편장: 43편 〈정법〉.
  • 타 학파에 대한 비판: 49-51편 〈오두〉,〈현학〉,〈충효〉. (주된 비판 대상은 유가묵가, 종횡가의 합종책)


《한비자》에는 군주에 대한 상주문이나 한비 학파의 교과서로 쓰였을 법한 편장들이 다수 발견된다.

  • 군주에 대한 상주문: 1-4편.
  • 한비 학파의 교과서: 23, 24편 〈설림〉, 30-35편 〈내/외저설〉, 36-39편 〈난〉 1-4.
  • 기타: 〈고분〉.


각 편장의 제목과 간략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비자'' 각 편장 내용
제목내용
1. 초진견初秦見한비가 진왕에게 상주하기 위해 저술.
2. 존한存韓한의 보존을 위해 진왕에게 상주한 글.
3. 난언難言군주에게 올리는 상주문이며, 설득의 어려움을 알리는 형식.
4. 애신愛臣신료를 통제하고 군주의 자리를 보존하기 위해 법으로 명확한 관계를 세워야 함을 역설.
5. 주도主道무위의 치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담고 있음.
6. 유도有度신료에게 법을 철저히 적용시킬 것을 이야기.
7. 이병二柄상·벌권을 함께 손에 쥐어야만 군주로서 군림할 수 있다고 이야기.
8. 양권揚權군주의 자율성을 어떻게 확보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
9. 팔간八姦군주권을 침해하는 요소들을 여덟 가지로 유형화.
10. 십과十過군주가 나라를 잃는 원인으로 저지를 수 있는 과오들에 대한 논의.
11. 고분孤憤법술지사가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분노.
12. 세난說難3편과 유사한 주제를 다룸.
13. 화씨和氏화씨의 옥 이야기에서 제목을 따옴.
14. 간겁시신姦劫弑臣군주를 해치는 신하들의 유형을 분석.
15. 망징亡徵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징조를 분석.
16. 삼수三守군주권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를 서술.
17. 비내備內부인 및 자식들 역시 군주에게 해를 가할 수 있다는 냉정한 분석.
18. 남면南面신료들을 상호 견제시키고, 스스로의 발언에 책임을 묻게 하는 방법 등을 기술.
19. 식사飾邪미신을 타파하자는 합리주의적 성향.
20. 해로解老노자에 대해 쓴 편장.
21. 유로喩老노자에 대해 쓴 편장.
22·23. 설림說林 상/하옛 이야기들이 다수 포함된 자료집.
24. 관행觀行행동의 관찰에도 역시 법술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논지.
25. 안위安危국가를 잘 보존하는 원칙과 위기에 빠지는 길에 대한 유형화.
26. 수도守道나라를 지켜나가는 방법에 대하여 서술.
27. 용인用人황로파의 저작.
28. 공명功名황로파의 저작.
29. 대체大體황로파의 저작.
30. 내저설內儲說 상, 칠술七術군주가 취해야 할 일곱 가지 방법을 제시.
31. 내저설 하, 육미六微군주가 감지해야 할 나쁜 징조들을 제시.
32·33·34·35. 외저설外儲說 좌상/좌하/우상/우하객관적인 (法)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인 (術), 초월적 권위인 세(勢) 등을 제시.
36·37·38·39. 난難 1-4한비가 스스로의 관점에서 가한 역사 비평들.
40. 난세難勢세(勢)에 대한 논의.
41. 문변問辯변론의 존재 가치에 대해 묻고 비판.
42. 문전問田문답 형식.
43. 정법正法문답 형식, 법과 술의 관계를 설명.
44. 설의說疑군주에게 해만 입히는 겉만 뻔지르르한 경우에 대한 비판과 군주의 경계를 촉구.
45. 궤사詭使당시의 실제 정치가 법과 술에 의한 통치의 성격과는 크게 다르게 진행되고 있는 현실에 대한 우려.
46. 육반六反군주에게 득이 되지 않는 인간형이 민의 칭송을 받고, 민의 비난 대상이 군주에게 도리어 존숭되는 모순을 여섯 가지 유형으로 정리.
47. 팔설八說법치에 반하는 여덟 종류의 인간상을 비판.
48. 팔경八經여덟 가지의 통치 원칙을 제시.
49. 오두五蠹주로 유가, 묵가를 비롯한 다른 학파들을 비판.
50. 현학顯學유가와 묵가에 대한 상당히 공격적인 비판.
51. 충효忠孝유가의 충효에 기반을 둔 질서나 정통 도가적 지식인 · 합종가 · 연횡가의 주장을 비판.
52. 인주人主군주로서 신하를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논함.
53. 칙령勅領상앙의 <근령>을 발췌한 부분.
54. 심도心度민의 심리를 고려한 상·벌을 통해 민이 군주에게 복종하게끔 만들어야 한다는 요지.
55. 제분制分상·벌의 명확한 구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그 효과를 분석.



한비자는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 본성과, 이를 활용하는 정치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그는 소극적 관찰과 체계적인 ''''(法)을 통해 지도력을 유지하고 인적 자원을 관리하며, 복지 증진 및 정의와의 관계를 설명한다.

한비자는 법을 옹호하지만, 유가가 법을 비판하는 것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상앙을 비판한다. 법은 스스로 시행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상앙이 법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을 비난한다. 신불해에서 유래한 일부 방법을 포함하여, 한비자는 상앙의 진나라에 대해 "관리들이 법을 엄격하게 시행했지만, 최고 지도자인 군주는 방법이 부족했다."라고 평가한다.[14]

한비자는 군주가 신하에게 무자비해야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음(무위, ''wu wei'')으로써 신하들에게 공포를 심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적인 이성과 도덕을 버리고, 어떤 개인적인 감정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군주의 자질인 "정신력, 도덕적 우수성, 신체적 능력"은 통치 방법만큼 중요하지 않다. 법(Fa)은 군주에게 완벽성을 요구하지 않는다.[15][16] 한비자의 도덕경에 대한 논평은 관점 없는 지식, 즉 절대적인 관점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학계는 일반적으로 이것을 저서의 다른 부분과의 차이점을 고려하여 부록으로 간주한다.[18]

한비자는 행명(行名)에 주목했는데,[19] 사마천과 유향은 이를 "실제 결과를 명(명령, 언행)에 책임지게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20][21][25] 한비자는 말과 행동의 완벽한 일치를 주장하며, 명칭에 맞는 것이 결과보다 중요하다고 보았다.[26] 또한 '행명'을 독재의 필수 요소로 간주하며, "하나됨을 얻는 방법에서 명칭이 가장 중요하다. 명칭이 정돈되면 일이 안정되고, 어긋나면 일이 불안정해진다."라고 말한다.[25]

신불해심도의 사상이 공자에 대해 적대적이지는 않았을 수도 있지만, 상앙과 한비는 과거의 모델을 검증할 수 없거나 쓸모없다고 배척하는 것을 강조했다. 한비는 예의 시대가 법의 시대로, 자연 질서가 사회 질서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정치 질서로 변화했다고 주장했다. 순자의 사상과 함께 그들의 인간 진보와 이성에 대한 이해는 진나라를 이끌었다.

한비에게 있어 "공적" 영역을 정의와 객관적인 기준과 연결하면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은 항상 서로 대립해왔다. 상앙을 본받아 그는 유가들을 "오가지 해충" 중 하나로 꼽았고, 백성에 대한 유가의 사랑과 연민에 대한 가르침을 "어리석은 가르침"과 "혼란스러운 잡담"이라고 불렀다.

3. 1. 법(法)

한비자는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 본성을 언급하며, 이를 국가와 군주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는 정치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그는 소극적 관찰과 체계적인 법(法)의 사용을 통해 지도력을 유지하고 인적 자원을 관리하며, 복지 증진 및 정의와의 관계를 설명한다.

한비자는 신뢰하기 어려운 유능한 인물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경계하며, 체계적인 상벌(’두 손잡이’)을 통해 백성들을 이익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주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고, 사실 관찰 이외의 판단을 하지 않아야 한다. 상앙을 비롯한 다른 법가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한비자는 광대한 영토와 인원을 통치하기 위해 법이 가장 실용적인 수단이며, 다른 어떤 방법을 위해서도 법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한비자의 철학은 그 시대의 왕위 찬탈에서 비롯되었다. 중국학자 골딘(Goldin)은 “'한비자'에 나오는 내용 대부분은 군주와 그의 신하들과의 관계를 다루는데, [그들은] 실제로 그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가장 큰 집단으로 여겨졌다”라고 썼다. 한비자는 『좌전』을 인용하여 “모든 군주 중 절반도 안 되는 수가 병으로 죽는다”라고 말한다. 군주가 이를 모르면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군주의 죽음으로 이득을 보는 자가 많으면, 군주는 위험에 처할 것이다.”[12][13]

한비자는 법을 옹호하지만, 유교가 법을 비판하는 것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상앙을 비판한다. 그는 법이 스스로 시행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상앙이 법에 지나치게 의존했다고 비난한다. 한비자는 신불해에서 유래한 일부 방법을 포함하여, 진나라에 대해 “관리들이 법을 엄격하게 시행했지만, 최고 지도자인 군주는 방법이 부족했다”라고 말한다.

한비자는 '행명(行名)'에 주목했는데,[19] 사마천과 유향은 이를 “실제 결과를 명(명령, 언행)에 책임지게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20][21][25] 이는 유가와 묵가의 명분론[22]과 일치하며, 정부의 목표와 관련하여 특히 약속이나 의무는 처벌이나 보상을 수반한다는 유가 전통과 관련이 있다.[22] 하지만 한비자와 그의 전임자 신불해가 강조한 엄격하고 중앙 집중적인 통제는 자율적인 신하라는 유가적 사상과 상충된다.[23]

'행명'은 법적 계약과 같은 구속력 있는 선언(명)을 통해 기능한다. 구두로 자신을 헌신하는 후보자에게는 직책이 할당되고, 그로 인해 통치자에게 빚을 지게 된다.[25]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결정된) 직위에 “명명”하는 것은 제안된 직무 설명과 그 결과가 그들의 말로 맡겨진 임무에 맞는지 여부에 따라 보상하거나 처벌한다. 진정한 신하는 이를 충족한다.[26][22]

한비자는 말과 행동의 완벽한 일치를 주장한다. 명칭에 맞는 것이 결과보다 중요하다.[26] 직무의 완료, 달성 또는 결과는 고정된 형태(행)를 취하는 것이며, 이는 원래 주장(명)에 대한 표준으로 사용될 수 있다. 큰 주장을 하지만 성과가 적으면 원래의 구두 약속에 부적절하고, 더 큰 성과는 직책의 범위를 넘어서서 공로를 얻는다.[25]

한비자의 '현명한 통치자'는 “명칭이 스스로 명칭을 정하고 일이 스스로 해결되도록 명령한다.”[25]

말과 행동의 책임을 평가하면서,[25] 통치자는 “주체의 진정한 공적에 따라 보상과 처벌을 결정하려고 한다”(법을 사용하여).[25][29][30][31] 명칭(명)을 사용하여 현실(실)을 요구하면 상급자는 고양되고 하급자는 억제된다고 한다.[32] 직무 수행을 점검하고, 자연스럽게 상급자의 높은 지위를 강조하여 하급자가 후자의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한다.[33]

한비자는 '행명'을 독재의 필수 요소로 간주하며, “하나됨을 얻는 방법에서 명칭이 가장 중요하다. 명칭이 정돈되면 일이 안정되고, 어긋나면 일이 불안정해진다.”라고 말한다.[25] 그는 신불해에 의해 이전에 개발된 이 시스템을 통해 언어의 균일성을 개발할 수 있고,[34] 갈등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기능을 엄격하게 정의할 수 있으며, 상반된 해석에 영향을 받지 않는 객관적인 규칙(법)을 확립하고 효과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35] 옵션을 정확히 하나로 좁힘으로써 “올바른 통치 방식”에 대한 논의를 없앨 수 있다. 어떤 상황(실)이 오든 그것이 올바른 도(道)이다.[36]

신화 속 백호. 진시황은 “진의 호랑이”라고 불렸다.


“모자 관리인”이 잠자는 황제에게 옷을 덮어 놓으면 직무를 넘어섰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야 하며, “옷 관리인”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야 한다.[40] “두 가지 수단”의 철학은 통치자를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다른 동물들을 제압하는” 호랑이 또는 표범에 비유한다(보상과 처벌). 그것 없이는 그는 다른 어떤 사람과 같다. “신하들의 찬탈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권력과 “법의 수단”은 “공유되거나 분할되어서는 안 되며”, 통치자에게만 집중되어야 한다.

실제로 이것은 통치자가 그의 신하들로부터 고립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신하들의 승진은 통치자를 위험에 빠뜨리므로, 그로부터 엄격히 분리되어야 한다. 처벌은 그의 주권을 확인시켜 주고, 법은 의도에 관계없이 경계를 넘는 사람을 제거한다. 법은 “인간의 이기적인 요소를 없애고 공공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운다.[14]

법가들 중에서 학자(법률 및 방법 전문가)의 사용에 대한 한비자의 드문 호소는 그 점에서 유가사상과 비교할 만하게 만든다. 통치자는 모든 관리들을 직접 감독할 수 없으며, ''법''의 분권화된(그러나 충실한) 적용에 의존해야 한다. 신불해와 자신의 수사와는 반대로, 한비자는 관중, 상앙, 오기와 같은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존재하며, 최대한의 권한으로 그들을 승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가는 통치자의 권력을 강화하려고 했지만, 이 계획은 효과적으로 그를 무력화시켜 그의 역할을 공정한 방법에 따라 결정되고 그 사용을 통해 그를 보호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문가에 의해 제정된 보상과 처벌 시스템의 유지로 축소한다.[41][42] 신불해의 방법과 상앙의 보험 메커니즘을 결합하여 한비자의 통치자는 단순히 자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을 고용한다.[43]

신불해심도의 사상이 공자에 대해 적대적이지는 않았을 수도 있지만, 상앙과 한비는 과거의 모델을 검증할 수 없거나 쓸모없다고( “초대 군주에게 적합했던 것이 현대 통치자에게 적합한 것은 아니다”) 배척하는 것을 강조했다. 한비는 예의 시대가 법의 시대로, 자연 질서가 사회 질서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정치 질서로 변화했다고 주장했다. 순자의 사상과 함께 그들의 인간 진보와 이성에 대한 이해는 진나라를 이끌었다.

객관적이고 공개적으로 제시될 수 있는 도(통치의 방법)을 의도하면서, 한비는 통치자가 관계나 도덕과 같이 임의적이고 임시적인 의사결정(이성의 산물로서 “특수하고 오류가능성이 있다”)에 따라 행동하면 재앙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예의)나 모범에 의한 통치 또한 너무 비효율적이다. 통치자는 사례별로 행동할 수 없으므로, 법(행정적 방법이나 표준)을 통해 행동하는 포괄적인 시스템을 수립해야 한다. 법은 귀족에게 편파적이지 않고, 신하를 배제하지 않으며, 일반 백성을 차별하지 않는다.

한비에게 있어 “공적” 영역을 정의와 객관적인 기준과 연결하면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은 항상 서로 대립해왔다. 상앙을 본받아 그는 유가들을 “오가지 해충” 중 하나로 꼽았고, 백성에 대한 유가의 사랑과 연민에 대한 가르침을 “어리석은 가르침”과 “혼란스러운 잡담”이라고 부르며, 인(仁)에 대한 강조는 “당시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공자의 제자와 같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귀족적이고 엘리트적인 이상”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그는 그것이 비실용적이라고 일축하며, “유학자들은 그들의 확고한 지식 속에서 국가의 일과는 멀어져 있다… 통치자는 그들의 확고한 지식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말하며, “유교”가 통일된 사상체계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군주가 사람을 따르게 하는 힘의 근원은 형벌(刑)과 상벌(徳)에 있다. 악한 신하는 이 두 가지를 교묘하게 군주로부터 빼앗으려 한다. 군주는 신하에게 형벌과 상벌을 맡겨서는 안 되고, 반드시 자신이 장악해야 한다. 신하에게 부정을 저지르지 않게 하려면, 형명을 심합(審合, 말한 것과 한 것을 비교하는 것)하는 것이 좋다. 신하가 “이것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 것에 맞춰 직무를 수행하게 한다. 신하의 발언에 비해 결과가 떨어지는 경우 말한 것과 한 것이 어긋나므로 반드시 처벌한다. 또한 신하의 발언에 비해 결과가 뛰어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말한 것과 한 것이 어긋나므로 처벌한다. 신하가 군주에게 아첨하여 본성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군주의 큰 고민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자신의 좋고 싫음을 신하에게 알리지 말아야 한다. 군주의 생각하는 바를 알 수 없다면 신하가 아첨할 틈을 주지 않을 수 있다.

3. 2. 술(術)

중국어은 한비자의 핵심 사상 중 하나로, 군주가 신하를 다스리는 기술을 의미한다. 한비자는 군주가 신뢰에 의존하기보다는 체계적인 (法)과 술(術)을 통해 권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보았다.

한비자는 군주의 통치술을 다루는 다양한 편장들을 제시했다. 그중에서도 43편 〈정법〉에서는 흩어져 있던 법가의 개념들을 집대성하여 하나의 체계로 만들었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한비자는 군주가 신하를 통제하기 위해 상벌(賞罰)이라는 '두 가지 수단(二柄)'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7편 〈이병〉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되는데, 군주는 상과 벌을 통해 신하들을 통제하고 자신의 권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군주는 신하들의 '형명(形名)'을 심합(審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신하가 말한 것(名)과 실제로 행한 것(形)을 비교하여 일치하지 않으면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신하의 아첨을 막고 군주의 판단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다.

한비자는 군주를 조종하는 여덟 가지 해악(八姦)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9편 〈팔간〉에서는 군주가 경계해야 할 여덟 가지 유형의 신하들을 제시하고, 그들을 견제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 동침(同床): 군주와 동침하는 부인, 첩, 미녀, 남색 등과 공모한다.
  • 측근(在旁): 광대, 근시 등 군주 곁에서 시중드는 자들에게 아첨하여 군주의 판단력을 잃게 한다.
  • 부형(父兄): 친척이나 신뢰하는 대신과 공모한다.
  • 양앙(養殃): 낭비, 유락 등으로 군주를 만족시켜 정치를 둔하게 만든다.
  • 민맹(民萌): 인기 영합적인 정책을 통해 군주를 만족시켜 판단력을 잃게 한다.
  • 유행(流行): 변사를 고용하여 교묘한 변설로 세상 물정 모르는 군주를 속인다.
  • 위강(威強): 신하가 조폭이나 군인을 길들여 그것을 배후로 권세를 휘두른다.
  • 사방(四方): 외국과 통하여 압력을 가하거나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한비자는 다음을 제시한다.

  • 여성에게는 전언이나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 측근에게는 발언의 옳고 그름을 꾸짖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도록 한다.
  • 친족에게는 의견을 들어들이되, 좋지 않은 경우에는 반드시 처벌하여 경솔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한다.
  • 오락 관련 물품은 누가 어떻게 상납했는지 출처를 확인하고 신하의 일방적인 처리가 되지 않도록 한다.
  • 곡물 공급 등의 은혜 베풂에 대해서는 반드시 군주의 재산에서 내고 신하가 사적으로 백성에게 이익을 주지 않도록 한다.
  • 논의에서는 옳고 그름 양쪽의 의견을 듣고 공과를 판단하여, 서로 입을 맞춰 말하지 못하게 한다.
  • 위압에 대해서는 군인에게는 공적에 맞는 포상을 주고, 도시에서 악당이 창궐하지 않도록 처벌하며, 신하가 이러한 자들을 부양하지 않도록 한다.
  • 주변 국가에 대해서는 이치에 맞지 않는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15편 〈망징〉에서는 나라가 망할 징조 47가지를 제시하여 군주가 경계해야 할 점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대의
1나라가 작은데 신하의 집이 크고, 임금의 권력이 약하고 신하의 권력이 강하면 위험하다.
2임금이 법을 가볍게 여기고 계략만을 꾀하며, 국내를 황폐하게 하면서 외국의 원조를 기대하는 상황은 위험하다.
3신하들이 (잘못된) 학문을 하고, 신하의 자제들이 말재주만을 좋게 여기며, 상인들이 외국에 재산을 축적하고, 백성들이 위에만 의지하는 것은 위험하다.
4임금이 궁궐과 정원, 연못 등에 집착하고, 수레와 의복, 기구 등에 탐닉하여 백성을 힘들게 하고 재물을 낭비하는 것은 위험하다.
5임금이 길흉일이나 점이나 제사와 같은 (법가의 관점에서는 미신일 뿐인) 것에 치우치는 것은 위험하다.
6임금이 실적도 검증하지 않고 벼슬을 주고, 특정 한 사람의 말만으로 일을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7유력자의 추천만으로 관직을 얻을 수 있고, 뇌물로 벼슬과 봉록을 얻을 수 있는 상황은 위험하다.
8임금이 의지가 부족하고, 결단력이 없으며,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이 결정되지 않고, 확고한 방침이 없는 것은 위험하다.
9탐욕스러워 만족할 줄 모르고, 이익에 눈이 멀어 얻는 것을 좋아하는 임금이 있는 것은 위험하다.
10임금이 함부로 처치를 하고 법을 준수하지 않으며, 효과를 생각하지 않고 말재주를 좋아하고, 허례허식만을 보고 그 효과를 돌보지 않는 것은 위험하다.
11생각이 얕고 쉽게 간파되며, 비밀을 지키지 못하고, 세심하지 못하며 신하들의 말을 곧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사람이 임금이라면 위험하다.
12고집 세고 화합하지 않으며, 간언을 듣지 않고 이기기를 좋아하며, 나라를 돌보지 않고 경솔하게 행동하면서 자신만만한 사람이 임금이라면 위험하다.
13우방을 믿고 인근 국가를 경시하며, 강대국의 도움을 믿고 자국을 압박하는 국가를 무시하는 경우는 위험하다.
14외국 출신으로 재산이 외국에 있는 자가 정치에 많이 관여하는 것은 위험하다.
15백성이 재상을 믿고, 임금이 그 재상을 믿어서 버릴 수 없는 경우는 위험하다.
16국내의 유능한 인물은 등용하지 않고 외국 인물을 구하며, 공훈이 아닌 명성으로 인사를 하고, 외국 출신이 높은 지위에 오르면서 기존의 사람들을 압제하는 상황은 위험하다.
17망명하여 국외에 있는 임금이 있지만 (국내 세력이) 다른 임금을 세우고, 인질로 있는 태자가 돌아오지 않은 사이에 (임금이) 다른 아이를 태자로 삼는다. 이렇게 되면 민심이 이탈하므로 위험하다.
18대신을 욕되게 하고 친밀하게 대해서, 백성을 많이 처형하고 부당하게 부리면, 원한을 품고 반란이 일어나므로 위험하다.
19대신 사이에 두 개의 강한 세력이 있고, 또한 임금의 친족이 힘을 가지고, 국내외의 자와 손을 잡고 세력을 다투는 상황은 위험하다.
20임금이 개인적으로 귀여워하는 자들의 말이 정치에 이용되고, 나라 안팎에 슬퍼하고 원망하는 자가 많고, 임금이 자주 불법을 행하는 상황은 위험하다.
21신하를 무시하고, 친족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고, 백성을 괴롭히고, 죄 없는 자를 죽이는 사람이 임금이라면 위험하다.
22(임금이) 자기 생각대로 법을 고치고, 사적인 일이 공적인 일에 섞이고, 법이 자주 바뀌고, 명령이 자주 바뀌는 상황은 위험하다.
23지형적 방어가 없고, 성곽이 허술하며, 비축물이 없고, 재물이 적고, 방어 준비가 없는데도 경솔하게 공격하는 것은 위험하다.
24왕족이 모두 단명하고, 임금이 자주 바뀌고, 갓난아기가 임금이 되고, 대신이 권력을 독점하고, 외국 출신과 당을 만들고, 자주 땅을 떼어 주면서 외교를 기대하는 상황은 위험하다.
25태자의 지위가 높고, 측근이 많고, 강대국과의 관계가 많고, 즉위 전에 이미 강대한 세력을 가지고 있다면 위험하다.
26임금이 변덕스럽고 마음이 급하며, 경솔하고 행동이 빠르고, 반드시 옹졸하고 성을 내며 전후를 돌아보지 않는 것은 위험하다.
27임금이 성을 잘 내고 전쟁을 좋아하며, 농업과 훈련을 소홀히 하고 경솔하게 공격하는 것은 위험하다.
28고위 신하들이 서로 질투하고, 대신이 번성하며, 외국 세력을 빌리고, 국내 백성이 곤궁하며, 서로 원수를 공격하는데 임금이 처벌하지 않는 상황은 위험하다.
29임금이 불효하고 측실이 현명하거나, 태자가 약하고 서자가 강하거나, 관리가 약하고 백성이 거만하면, 나라는 불안정해져 위험하다.
30임금이 원한을 품고 드러내지 않고, 죄를 사면해 주지 않아 신하들이 임금을 싫어하고 더욱 불안해 하며 오랫동안 알 수 없다면 위험하다.
31출정할 때 장수에게 권한을 너무 많이 주거나, 변방 수비 장수의 지위가 너무 높아 스스로 일을 처리하고 임금에게 묻지 않는 상황은 위험하다.
32왕비나 왕모가 간통을 하고, 안과 밖이 뒤섞이고, 남녀의 구별이 없다. 이를 양주(두 세력)라고 한다. 양주는 위험하다.
33왕비나 정실이 천하고 첩이 귀하게 여겨지고, 태자의 지위가 낮고 서자의 지위가 높고, 재상이 가볍게 여겨지고 전알(謁見을 관장하는 관직)이 중시된다. 이렇게 되면 안과 밖이 불화하므로 위험하다.
34대신이 매우 귀하게 여겨지고, 편당(偏黨)이 많고 강하여 임금의 결단을 막고 나라를 마음대로 하는 상황은 위험하다.
35권력 있는 집안 사람이 등용되고, 대대로 군인 집안은 멸시되고, 고향에서 사적으로 선행을 하는 자는 상을 받지만, 관직에서 일한 자는 공적을 인정받지 못하고, 사적인 행위가 중시되고 공적인 공적은 천하게 여겨지면 위험하다.
36왕실의 창고는 비고 대신의 창고는 가득하며, 원래부터 있는 백성은 가난하고 외부에서 온 자는 부유하며, 농사짓고 전쟁에 나서는 자는 곤궁한데, 하찮은 일을 하는 백성은 이익을 보는 것은 위험하다.
37큰 이익이 있어도 다가가지 않고, 화의 징조를 들어도 준비하지 않고, 싸우고 지키는 일에 얕고, 인의로 자신을 치장하는 사람이 임금이라면 위험하다.
38임금으로서의 도리를 행하지 않고 평범한 사람의 효를 따르며, 나라의 이익을 돌보지 않고 어머니의 명령을 따르고, 여자나 환관이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위험하다.
39임금이 재치 있고 현명하지만 법술(法術)을 무시하는 경우는 위험하다.
40새로 온 신하는 승진하고 옛 신하는 물러나며, 무능한 자가 일을 하고 유능한 자는 숨고, 공이 없는 자가 귀하게 여겨지고 수고한 자는 천하게 여겨지면 아래에서 원망이 생겨 위험하다.
41임금의 친척과 대신이 공에 맞지 않는 봉록을 받고, 옷차림이 지나치고, 궁궐 생활이 지나치게 사치스러우며, 임금이 금하지 않으면 신하의 욕심이 끝이 없어 위험하다.
42임금의 사위나 손자가 백성과 같은 동네에 살면서 이웃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위험하다.



한비자는 군주가 법술의 사(法術의 士, 법과 술을 통해 올바른 정치를 실현하려는 사람)를 등용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당도의 인(黨徒의 人, 군주에게 총애받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신하)에게 밀려 어려움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은 법술의 사를 죽음의 위험으로 몰아넣고, 결국 왕조를 멸망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경고했다.

32, 33, 34, 35편 〈외저설〉에서는 경(經)과 전(傳) 두 부분으로 나누어 객관적인 (法)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인 (術), 초월적 권위인 세(勢)를 확보하는 것이 군주권을 지키는 데 있어 핵심적인 것으로 소개한다. 36, 37, 38, 39편 〈난〉에서는 한비자가 스스로의 관점에서 역사 비평을 하고 있다. 40편 〈난세〉에서는 세(勢)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데, 현명함과 세 개념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비자의 '술'은 군주가 권력을 유지하고 신하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실용적인 방법론이다. 그는 법과 술, 그리고 형명과 팔간 등의 개념을 통해 군주가 경계해야 할 점과 실천해야 할 방안을 제시했다.

3. 3. 세(勢)

한비자는 권력을 뜻하는 '세(勢)' 개념을 중시했다. 특히 현명함과 세의 관계에 주목했는데, 현명하다고 해서 세를 활용할 수 있고, 어리석다고 해서 세를 활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즉, 세는 현명함과는 별개의 요소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세가 가장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는 중간 정도 수준의 군주가 통치할 때라고 밝혔다.[12]

4. 한비자 비판

상군서와 비교했을 때, 한비자는 상앙의 상벌(賞罰)을 수용하더라도 여전히 더 유교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한비자는 초기 유교의 명분론과 비교할 수 있는 관료 제도의 명칭(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상군서의 군현제보다는 유교도 자신일 수도 있는 관리들의 금지와 장려에 더 중점을 둔다.[45]

한비자는 법을 옹호하지만, 유교가 법을 비판하는 것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상앙을 비판한다. 법은 스스로 시행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상앙이 법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을 비난한다. 신불해에서 유래한 일부 방법을 포함하여, 한비자는 상앙의 진나라에 대해 "관리들이 법을 엄격하게 시행했지만, 최고 지도자인 군주는 방법이 부족했다."라고 말한다.[46]

신불해심도의 사상이 공자에 대해 적대적이지는 않았을 수도 있지만, 상앙과 한비는 과거의 모델을 검증할 수 없거나 쓸모없다고 배척하는 것을 강조했다. 한비는 예의 시대가 법의 시대로, 자연 질서가 사회 질서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정치 질서로 변화했다고 주장했다. 순자의 사상과 함께 그들의 인간 진보와 이성에 대한 이해는 진나라를 이끌었다.[46]

한비는 통치자가 관계나 도덕과 같이 임의적이고 임시적인 의사결정에 따라 행동하면 재앙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예의)나 모범에 의한 통치 또한 너무 비효율적이다.[47][48][49] 통치자는 사례별로 행동할 수 없으므로, 법(행정적 방법이나 표준)을 통해 행동하는 포괄적인 시스템을 수립해야 한다. 법은 귀족에게 편파적이지 않고, 신하를 배제하지 않으며, 일반 백성을 차별하지 않는다.[49]

한비에게 있어 "공적" 영역을 정의와 객관적인 기준과 연결하면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은 항상 서로 대립해왔다.[50] 상앙을 본받아 그는 유가들을 "오가지 해충" 중 하나로 꼽았고, 백성에 대한 유가의 사랑과 연민에 대한 가르침을 "어리석은 가르침"과 "혼란스러운 잡담"이라고 부르며, 인(仁)에 대한 강조는 "당시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공자의 제자와 같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귀족적이고 엘리트적인 이상"이라고 말했다.[47][52] 게다가 그는 그것이 비실용적이라고 일축하며, "유학자들은 그들의 확고한 지식 속에서 국가의 일과는 멀어져 있다… 통치자는 그들의 확고한 지식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말하며, "유교"가 통일된 사상체계가 아니라고 지적했다.[53][54]

유가의 가족 중시 사상에 반대하여, 도강(2021)은 한비의 가족 역학 분석을 통치자의 입장에 전적으로 기반한 것으로 보고, 유가적 교육이나 도덕적 수양이 아닌 구조적 해결책을 요구한다. 예기("중요한 초기 유가 경전")에 따르면 고위 관리는 형벌법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주요한 정치 부패의 원천으로서, 신하는 인(仁)과 다른 도덕적 정당화의 명목으로 가족 구성원을 형벌 조치로부터 보호했다. 인맥이 없는 사람들만이 법의 적용을 받았다. 정치와 도덕의 대립을 언급하면서도, 도강은 한비의 이러한 반대 입장이 그의 정치 질서 비전에서 도덕적 차원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고 본다. 도강이 한비의 "평민들이 겪는 엄청난 불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난" 중 하나로 여기는 것에서, 한비는 이렇게 말한다.[55]

> 상고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와 춘추 시대에 기록된 사건들을 살펴보면, 법을 어기고 반역을 저지르고 중대한 악행을 저지른 자들은 항상 고위 관리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법과 규칙은 일반 백성의 악행을 막기 위해 고안되었고, 형벌과 처벌은 오직 그들에게만 가해진다. 따라서 일반 백성은 희망을 잃고 불만을 토로할 곳이 없다. 한편 고위 관리들은 서로 뭉쳐 통치자의 시야를 가린다. (왓슨 번역, 2003, 89)

춘추전국시대의 묵가 사상가인 순자(한비자와 이사의 스승)의 영향 외에도, 정치적 텍스트로 해석되는 『도덕경』에 대한 『한비자』의 주석 때문에, 『한비자』는 때때로 종합적인 황로도가 전통의 일부로 포함되기도 한다. 이는 도가를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이 자연의 힘처럼 따라야만 하는 자연법으로 보는 관점이다.

Phan Ngọc(Phan Ngọc)은 『한비자』 서문에서 한비를 날카롭고 논리적이며 확고한 주장을 펼치는 지식이 풍부한 인물로 칭찬하며, 풍부한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다고 평가했다. 한비의 엄격한 방법론은 사회적 퇴폐의 맥락에서 적절했다. 그러나 Phan Ngọc은 한비의 저술에는 세 가지 단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그의 법가 사상은 독재 정치에 적합하지 않아서 통치 왕조는 조만간 쇠퇴할 것이다. 둘째, 독재 군주제 시스템의 본질적인 한계 때문에 한비는 그가 지적한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셋째, 한비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악하며 명예와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생각한 것은 잘못이며, 한비 자신을 포함하여 더 큰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한 사람들도 있다.[57] Trần Ngọc Vương(Trần Ngọc Vương)은 『한비자』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고 한비의 이념은 당시로서는 매우 세련되었다고 주장했다.[58]

한편, 중국학자인 Chad Hansen은 『한비자』를 풍부하고 박식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비를 특별히 독창적이거나 철학적이거나 윤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이성적이기보다는 논쟁적"이고, "모든 자칭 현실주의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정당하지 않은 가정과 냉소주의를 가지고 있으며, "우월한 현실적인 통찰력을 가진" 냉소적인 어조에 기반하고 있다고 평가한다.[59]

5. 한비자 편장 구성

《한비자》는 전 55편, 10만 자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진시황을 감탄시킨 저술은 「고분편」과 「오두편」 두 편이다. 「초견진편」은 합종연횡과 한나라에 대한 서술 해석에 따라 한비의 저술이 아니라는 설이 있어 논쟁이 되고 있다.

《한비자》의 편장 목록은 다음과 같다.

제목내용
「초견진편」(初見秦篇)한비가 진왕에게 상주하기 위해 저술했지만, 실제와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 그의 저작으로 보기 어렵다.
「존한편」(存韓篇)한의 보존을 위해 진왕에게 상주한 글로, 한비의 저술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난언편」(難言篇)군주에게 올리는 상주문이며, 설득의 어려움을 군주에게 알리는 형식이다.
「애신편」(愛臣篇)총애받는 신하라는 머리글자를 딴 편으로, 신료 통제와 군주 자리 보존을 위해 법으로 명확한 관계를 세워야 함을 역설한다.
「주도편」(主道篇)군주의 길이라는 뜻으로, 《노자》와 흡사한 운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무위의 치에 대한 나름의 해석을 담고 있다. 노자와 법가를 혼합한 황로파 사상이 진/한 시기에 있었다는 점을 시사한다.
「유도편」(有度篇)법도의 존재를 뜻하며, 신료에게 법을 철저히 적용할 것을 이야기한다.
「이병편」(二柄篇)상벌권을 함께 손에 쥐어야만 군주로서 군림할 수 있다고 말하는 편장이다.
「양권편」(揚權篇)5편 〈주도〉와 함께 운문으로 이루어진 편장으로, 군주의 자율성 확보 방법에 대한 논의를 전개한다.
「팔간편」(八姦篇)군주권을 침해하는 여덟 가지 요소를 유형화하여 논의한다.
「십과편」(十過篇)군주가 나라를 잃는 원인이 될 수 있는 과오들을 논하며, 다양한 옛 이야기를 인용하여 흥미를 끈다.
「고분편」(孤憤篇)법술지사가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는 핵심적인 편장이다.
「설난편」(說難篇)3편과 유사한 주제를 다룬다.
「화씨편」(和氏篇)화씨의 옥 이야기에서 제목을 따왔으며, 법술에 의한 통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을 한탄한다.
「간겁사신편」(姦劫弑臣篇)군주를 해치는 신하들의 유형을 분석한 편장이다.
「망징편」(亡徵篇)나라가 망할 징조를 분석한 편장이다.
「삼수편」(三守篇)군주권 수호를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할 세 가지를 서술하며, 정보와 결정권 불균형 유지가 핵심이다.
「비내편」(備內篇)부인과 자식들도 군주에게 해를 가할 수 있다는 냉정한 분석을 제시한다.
「남면편」(南面篇)군주가 마주하는 방향을 통해 군주의 군림을 비유적으로 표현하며, 신료들을 상호 견제시키고 발언에 책임을 묻게 하는 방법 등을 기술한다.
「식사편」(飾邪篇)미신 타파를 주장하는 합리주의적 성향을 드러내며, 법만이 유일한 기준임을 강조한다.
「해로편」(解老篇)《노자》에 대한 해석으로, 법가와 도가의 절충적 지점인 황로파에 가까운 해석을 보인다. 인용되는 《노자》 문구들은 문헌학적으로 중요하게 취급된다.
「유로편」(喩老篇)《노자》에 대한 또 다른 해석으로, 좀 더 독자적인 비유가 많이 사용된다.
「설림편 상」(說林篇 上)
「설림편 하」(說林篇 下)옛 이야기들이 다수 포함된 자료집이다.
「관행편」(觀行篇)행동 관찰에도 법술의 기준이 필요함을 주장한다.
「안위편」(安危篇)국가 보존 원칙과 위기 상황을 유형화하며, 법 존중을 핵심으로 강조한다.
「수도편」(守道篇)나라를 지키는 방법을 서술하며, 객관적 기준을 강조한다.
「용인편」(用人篇)하늘(天)을 언급하는 등 황로파 저작임을 알 수 있으며, 법술과 신상필벌 원리가 무위의 치와 결합된다.
「공명편」(功名篇)황로파 저작으로, 군주가 공을 세우는 데 필요한 요소로 천시, 인심, 재능, 세를 언급한다.
「대체편」(大体篇)황로파 저작으로, 군주와 신하 간 안정적 관계 유지는 도(道)와 자연 순응에 달려있다고 본다.
「내저설편 상 칠술」(內儲說篇 上 七術)경(經)과 전(傳)으로 나뉘며, 경에서는 군주가 취해야 할 일곱 가지 방법을, 전에서는 구체적 사례를 해설한다.
「내저설편 하 육미」(內儲說篇 下 六微)경(經)과 전(傳)으로 나뉘며, 경에서는 군주가 감지해야 할 나쁜 징조를, 전에서는 구체적 사례를 설명한다.
「외저설편 좌상」(外儲說篇 左上)
「외저설편 좌하」(外儲說篇 左下)
「외저설편 우상」(外儲說篇 右上)
「외저설편 우하」(外儲說篇 右下)경(經)과 전(傳)으로 나뉘며, 객관적 (法), (術), (勢) 확보가 군주권 수호의 핵심임을 경에서 밝힌다.
「난일편」(難一 篇)
「난이편」(難二 篇)
「난삼편」(難三 篇)
「난사편」(難四 篇)
「난세편」(難勢篇)세(勢)에 대한 논의를 다루며, 현명함과 세 개념의 관계를 밝힌다. 중질 정도 군주에게 세가 가장 유효함을 강조한다.
「문변편」(問辨篇)변론의 무의미함을 주장하며 강하게 비판한다.
「문전편」(問田篇)논어맹자처럼 대화를 기록한 방식으로, 한자(韓子) 표현 때문에 후대에 쓰였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정법편」(定法篇)문답 형식으로 법과 술의 관계를 명쾌하게 설명한다.
「설의편」(說疑篇)사이비를 가려내 밝힌다는 뜻으로, 군주에게 해만 끼치는 겉만 번지르르한 경우를 비판하고 경계를 촉구한다.
「궤사편」(詭使篇)당시 정치가 법과 술에 의한 통치와 다르게 진행되는 현실에 대한 우려와 울분을 토로한다.
「육반편」(六反篇)군주에게 득이 되지 않지만 백성의 칭송을 받는 모순된 여섯 가지 유형을 정리한다.
「팔설편」(八說篇)법치에 반하는 여덟 가지 인간상을 비판한다.
「팔경편」(八經篇)여덟 가지 통치 원칙을 제시한다.
「오두편」(五蠹篇)혼란을 조장하는 다섯 가지 벌레라는 뜻으로, 유가, 묵가 등 다른 학파를 비판하며, 전국시대 말기 상황을 반영한다.
「현학편」(顯學篇)유가와 묵가에 대한 공격적인 비판을 담고 있다.
「충효편」(忠孝篇)유가의 충효 기반 질서나 도가적 지식인, 합종가, 연횡가의 주장을 비판한다.
「인주편」(人主篇)군주가 신하를 대하는 마음가짐을 논한다.
「척령편」(飭令篇)상앙의 <근령>을 발췌한 부분으로 추정되며, 법 확립과 명령 준수가 정치 안정의 길임을 강조한다.
「심도편」(心度篇)백성의 심리를 고려한 상벌을 통해 군주에게 복종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요지이다.
「제분편」(制分篇)상벌의 명확한 구별과 그 효과를 분석한다.



《한비자》는 다양한 사상( 도가, 법가, 황로파, 상앙, 신불해)의 영향을 받은 편장, 타 학파( 유가, 묵가, 종횡가) 비판, 군주 대상 상주문, 한비 학파 교과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 사상적 배경:
  • 황로파: 5편 〈주도〉, 8편〈양권〉, 20편〈해로〉, 21편〈유로〉, 27-29편〈용인〉, 〈공명〉, 〈대체〉
  • 상앙: 53편 〈칙령〉, 54편 〈심도〉, 55편 〈제분〉, 43편 <정법> (상앙과 신불해 모두 인용)
  • 타 학파 비판: 49-51편 〈오두〉, 〈현학〉, 〈충효〉
  • 독자층:
  • 군주: 1-4편, 이론적 논문 대부분
  • 한비 학파 학생: 23, 24편 〈설림〉, 30-35 〈내/외저설〉, 36-39편 〈난〉 1-4, 〈고분〉

6. 현대적 의의

한비자는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 본성과, 국가와 군주에게 유리하게 이를 활용하는 정치적 방법론을 설명한다. 즉, 소극적 관찰과 체계적인 의 사용을 통해 지도력을 유지하고 인적 자원을 관리하며, 복지 증진 및 정의와의 관계를 설명한다.[12][13]

한비자는 유능한 인물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기보다 체계적인 상벌(‘두 손잡이’)에 그들의 계획을 묶어 이익으로써 백성을 유도해야 한다고 보았다. 군주는 자신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사실 관찰 이외의 판단을 하지 않아야 한다. 상앙과 다른 법가 사상가들처럼, 그는 광대한 영토와 가까이 있는 인원 모두의 통치에 있어 법이 더 실용적인 수단이며, 다른 어떤 방법을 위해서도 법을 버리지 말라고 군주에게 경고한다.

한비자의 철학은 그 시대의 왕위 찬탈에서 비롯된다. 중국학자 골딘(Goldin)은 “'한비자'에 나오는 내용 대부분은 군주와 그의 신하들과의 관계를 다루는데, [그들은] 실제로 그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가장 큰 집단으로 여겨졌다.”라고 썼다. 한비자는 『좌전』을 인용하여 “모든 군주 중 절반도 안 되는 수가 병으로 죽는다.”라고 말한다. 만약 군주가 이를 모른다면 혼란은 다양하고 억제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군주의 죽음으로 이득을 보는 자가 많으면, 군주는 위험에 처할 것이다.”라고 경고한다.[12][13]

상군서는 농업과 전쟁을 강조하며 일반 백성과 관련된 국가 권력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관리들을 통제하는 사상은 책의 후반부에 등장한다.

한비자의 저자들 중 일부는 유교를 부정적으로 평가했으며,[47][48][49] 한비자는 유학자나 철학자로서 유교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상군서와 비교했을 때, 한비자는 상앙의 상벌(賞罰)을 수용하더라도 여전히 더 유교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한비자는 초기 유교의 명분론과 비교할 수 있는 관료 제도의 명칭(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상군서의 군현제보다는 유교도 자신일 수도 있는 관리들의 금지와 장려에 더 중점을 둔다.[22]

한비자는 법을 옹호하지만, 유교가 법을 비판하는 것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상앙을 비판한다. 법은 스스로 시행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상앙이 법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을 비난한다. 유교의 어진 인재에 대한 주장을 행정적 방법으로 대체하면서, 신불해에서 유래한 일부 방법을 포함하여, 한비자는 상앙의 진나라에 대해 “관리들이 법을 엄격하게 시행했지만, 최고 지도자인 군주는 방법이 부족했다.”라고 평가한다.

한비자는 '행명(行名)'에 주목했는데,[19] 사마천과 유향은 이를 “실제 결과를 명(명령, 언행)에 책임지게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20][21][25] 유가와 묵가의 명분의 정정[22]과 일치하여, 정부의 목표와 관련하여 특히 약속이나 의무는 처벌이나 보상을 수반한다는 유가 전통과 관련이 있다.[22] 하지만 한비자와 그의 전임자 신불해가 강조한 엄격하고 중앙 집중적인 통제는 자율적인 신하라는 유가적 사상과 상충된다.[23]

'행명'은 원래 “처벌과 명칭”을 의미했을 수 있지만, 후자에 더 중점을 두었다.[24] 그것은 법적 계약과 같은 구속력 있는 선언(명)을 통해 기능한다. 구두로 자신을 헌신하는 후보자에게는 직책이 할당되고, 그로 인해 통치자에게 빚을 지게 된다.[25]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결정된) 직위에 “명명”하는 것은 제안된 직무 설명과 그 결과가 그들의 말로 맡겨진 임무에 맞는지 여부에 따라 보상하거나 처벌한다. 진정한 신하는 이를 충족한다.[26][22]

한비자는 말과 행동의 완벽한 일치를 주장한다. 명칭에 맞는 것이 결과보다 중요하다.[26] 직무의 완료, 달성 또는 결과는 고정된 형태(행)를 취하는 것이며, 이는 원래 주장(명)에 대한 표준으로 사용될 수 있다. 큰 주장을 하지만 성과가 적으면 원래의 구두 약속에 부적절하고, 더 큰 성과는 직책의 범위를 넘어서서 공로를 얻는다.[25]

한비자의 ‘현명한 통치자’는 “명칭이 스스로 명칭을 정하고 일이 스스로 해결되도록 명령한다.”[25]

말과 행동의 책임을 평가하면서,[25] 통치자는 “주체의 진정한 공적에 따라 보상과 처벌을 결정하려고 한다”(법을 사용하여).[25][29][30][31] 명칭(명)을 사용하여 현실(실)을 요구하면 상급자는 고양되고 하급자는 억제된다고 한다.[32] 직무 수행을 점검하고, 자연스럽게 상급자의 높은 지위를 강조하여 하급자가 후자의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한다.[33]

한비자는 ‘행명’을 독재의 필수 요소로 간주하며, “하나됨을 얻는 방법에서 명칭이 가장 중요하다. 명칭이 정돈되면 일이 안정되고, 어긋나면 일이 불안정해진다.”라고 말한다.[25] 그는 심부해에 의해 이전에 개발된 이 시스템을 통해 언어의 균일성을 개발할 수 있고,[34] 갈등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기능을 엄격하게 정의할 수 있으며, 상반된 해석에 영향을 받지 않는 객관적인 규칙(법)을 확립하고 효과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35] 옵션을 정확히 하나로 좁힘으로써 “올바른 통치 방식”에 대한 논의를 없앨 수 있다. 어떤 상황(실)이 오든 그것이 올바른 도(道)이다.[36]

심부해의 기법을 사용할 것을 권장하지만, 한비자의 ‘행명’은 훨씬 더 좁고 구체적이다. 한비자의 기계적인 책임성에 암시된 기능적 이분법은 심부해에게는 쉽게 암시되지 않으며, 심부해나 그의 스승이라고 여겨지는 순자보다는 한나라의 후대 언어학자 허감의 사상과 더 일치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신불해심도의 사상이 공자에 대해 적대적이지는 않았을 수도 있지만,[45] 상앙과 한비는 과거의 모델을 검증할 수 없거나 쓸모없다고 배척하는 것을 강조했다. 한비는 예의 시대가 법의 시대로, 자연 질서가 사회 질서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정치 질서로 변화했다고 주장했다. 순자의 사상과 함께 그들의 인간 진보와 이성에 대한 이해는 진나라를 이끌었다.[46]

객관적이고 공개적으로 제시될 수 있는 도(통치의 방법)을 의도하면서,[47][48][49] 한비는 통치자가 관계나 도덕과 같이 임의적이고 임시적인 의사결정(이성의 산물로서 "특수하고 오류가능성이 있다")에 따라 행동하면 재앙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예의)나 모범에 의한 통치 또한 너무 비효율적이다. 통치자는 사례별로 행동할 수 없으므로, 법(행정적 방법이나 표준)을 통해 행동하는 포괄적인 시스템을 수립해야 한다. 법은 귀족에게 편파적이지 않고, 신하를 배제하지 않으며, 일반 백성을 차별하지 않는다.[49]

한비에게 있어 “공적” 영역을 정의와 객관적인 기준과 연결하면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은 항상 서로 대립해왔다.[50] 상앙을 본받아 그는 유가들을 “오가지 해충” 중 하나로 꼽았고,[51] 백성에 대한 유가의 사랑과 연민에 대한 가르침을 “어리석은 가르침”과 “혼란스러운 잡담”이라고 부르며,[52] 인(仁)에 대한 강조는 “당시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공자의 제자와 같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귀족적이고 엘리트적인 이상”이라고 말했다.[47] 게다가 그는 그것이 비실용적이라고 일축하며, "유학자들은 그들의 확고한 지식 속에서 국가의 일과는 멀어져 있다… 통치자는 그들의 확고한 지식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말하며,[53] “유교”가 통일된 사상체계가 아니라고 지적했다.[54]

유가의 가족 중시 사상에 반대하여, 도강(2021)은 한비의 가족 역학 분석을 통치자의 입장에 전적으로 기반한 것으로 보고, 유가적 교육이나 도덕적 수양이 아닌 구조적 해결책을 요구한다. 예기에 따르면 고위 관리는 형벌법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주요한 정치 부패의 원천으로서, 신하는 인(仁)과 다른 도덕적 정당화의 명목으로 가족 구성원을 형벌 조치로부터 보호했다. 인맥이 없는 사람들만이 법의 적용을 받았다. 정치와 도덕의 대립을 언급하면서도, 도강은 한비의 이러한 반대 입장이 그의 정치 질서 비전에서 도덕적 차원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고 본다. 도강이 한비의 “평민들이 겪는 엄청난 불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난” 중 하나로 여기는 것에서, 한비는 이렇게 말한다.[55]

춘추전국시대의 묵가 사상가인 순자(한비자와 이사의 스승)의 영향 외에도, 정치적 텍스트로 해석되는 『도덕경』에 대한 『한비자』의 주석 때문에, 『한비자』는 때때로 종합적인 황로도가 전통의 일부로 포함되기도 한다. 이는 도가를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이 자연의 힘처럼 따라야만 하는 자연법으로 보는 관점이다.

Phan Ngọc(Phan Ngọc)은 『한비자』 서문에서 한비를 날카롭고 논리적이며 확고한 주장을 펼치는 지식이 풍부한 인물로 칭찬하며, 풍부한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다고 평가했다. 한비의 엄격한 방법론은 사회적 퇴폐의 맥락에서 적절했다. 그러나 Phan Ngọc은 한비의 저술에는 세 가지 단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그의 법가 사상은 독재 정치에 적합하지 않아서 통치 왕조는 조만간 쇠퇴할 것이다. 둘째, 독재 군주제 시스템의 본질적인 한계 때문에 한비는 그가 지적한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셋째, 한비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악하며 명예와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생각한 것은 잘못이며, 한비 자신을 포함하여 더 큰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한 사람들도 있다.[57] Trần Ngọc Vương(Trần Ngọc Vương)은 『한비자』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고 한비의 이념은 당시로서는 매우 세련되었다고 주장했다.[58]

한편, 중국학자인 Chad Hansen은 『한비자』를 풍부하고 박식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비를 특별히 독창적이거나 철학적이거나 윤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이성적이기보다는 논쟁적”이고, “모든 자칭 현실주의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정당하지 않은 가정과 냉소주의를 가지고 있으며, “우월한 현실적인 통찰력을 가진” 냉소적인 어조에 기반하고 있다고 평가한다.[59]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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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서적 韓非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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