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자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한비자는 전국 시대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저작으로,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 속에서 법치주의를 통해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 것을 주장했다. 주요 내용은 법(法), 술(術), 세(勢)를 통해 군주의 권력을 강화하고 신하를 통제하는 것이다. 한비자는 유교를 비판하고 객관적인 통치 수단을 강조하며, 법의 공정한 적용을 주장했다. 『한비자』는 다양한 학파의 사상을 비판하고, 군주가 경계해야 할 간신 유형과 구체적인 지침을 제시하며, 현대에도 정치 사상적 가치를 지닌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법률 책 - 만국공법
만국공법은 윌리엄 알렉산더 파슨스 마틴이 헨리 휘턴의 《국제법 원리》를 번역한 책으로, 19세기 동아시아에 근대 국제법 체계를 소개하고 전통적인 화이 질서에서 벗어나 근대적인 조약 체제로 전환하는 데 기여했지만, 국제법의 이념과 현실 간 괴리,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침략 등으로 실망감도 나타났다. - 한나라 (전국 시대) - 한신 (회음후)
한신은 전한 초기의 군인이자 전략가로, 초한쟁란 시기 유방을 도와 한나라 건국에 공헌했으나, 유방의 경계로 회음후로 강등된 후 모반 혐의로 여후에게 처형당했으며, 그의 삶은 토사구팽, 다다익선 등 고사성어와 관련되어 후대에 다양한 평가를 받는다. - 한나라 (전국 시대) - 한 (전국)
한(韓)은 춘추 시대 진나라의 공족 한만을 시조로 하여 위, 조와 함께 진나라를 분할하여 건국되었으며, 기원전 403년 주나라로부터 제후로 인정받아 전국 시대의 일원이었으나 기원전 230년 진나라에 멸망한 국가이다. - 법가 - 오기
오기는 중국 전국 시대의 군사 전략가이자 정치가로, 여러 나라에서 활약하며 군사적 업적을 세우고 초나라 재상으로 법가 개혁을 추진하여 부국강병을 이끌었으며, 《오자병법》을 저술했다. - 법가 - 상앙
상앙은 위나라 출신의 법가 사상가이자 진나라의 개혁가로, 효공의 신임을 얻어 법률 제도를 개혁하여 능력주의를 강조하고 중앙집권화 및 군사력 강화에 기여했으나, 혜문왕에 의해 처형당했다.
2. 배경
전국 시기는 중국 역사에서 강대한 제후국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던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고 아들이 부친을 살해하는 등 비윤리적인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1] 한비의 조국 한나라는 외세의 침략으로 쇠퇴하고 있었다. 한비는 기존의 사고방식과 체제로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여, 법치라는 새로운 이념으로 나라를 다스릴 것을 주장했다.[1]
한비가 태어난 전국 말기는 전국칠웅이라 불리는 일곱 나라로 중국이 통합되어, 춘추오패 시대를 거쳐 점차 통일의 기운과 초대국 출현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였다. 통일을 향한 움직임은 물론, 여러 나라의 존망을 건 싸움의 연속이었으며, 국가 간의 총력전이기도 했다. 그리고 혹독한 생존 경쟁은 인재 등용을 활발하게 만들었다.[4]
당시까지 군주의 혈통을 잇는 공자나 귀족 등에 의해 운영되던 국정은, 계급이 낮은 사대부나 출신이 불분명한 유세객들에게 군주의 권한이 위임되는 일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군주에게 권력을 집중시키고, 그것을 신속하게 적재적소에 위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4]
그러나 결과적으로 당시 왕권은 특정 사대부나 왕족에게 독점되는 경우가 많았고, 제(산둥성)나 진(산시성)과 같이 국가 자체를 빼앗기는 사례도 발생했다. 그래서 한비는 분열되고 혼란스러운 군주의 권력을 법으로 일원화하고 체계화함으로써 강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4]
이러한 한비의 사상은 아이러니하게도 한비의 출신국인 한이 아니라, 적대국인 진의 진시황에 의해 높이 평가되었다. 이는 진의 효공 시대에 상앙이 법가 사상에 의한 군주 독재권을 확립했던 것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4]
2. 1. 사상적 배경
전국 시기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한비자≫는 당시 중국 역사상 강대한 제후국들이 서로 정벌 전쟁을 일삼고,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는 등 비윤리적인 행위가 빈번했던 혼란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한비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기존 사고방식과 체제로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없다고 판단하여 법치라는 새로운 이념을 제시했다.[45][46]초기 법가 사상가인 상앙의 상군서가 농업과 전쟁을 강조하며 일반 백성과 관련된 국가 권력에 초점을 맞춘 반면, 한비자는 관리 통제 사상을 책 후반부에 와서야 본격적으로 다루었다. 이는 신도의 권력 사상과 유사하지만, 초기 저작보다는 후대에 쓰였을 가능성이 높다.
한비자는 유교를 부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상앙의 상벌(賞罰)을 수용하면서도 유교적인 성향을 보였다. 한비자는 명분론과 유사한 관료 제도의 명칭(역할)을 제시하고, 군현제보다는 관리들의 금지와 장려에 더 중점을 두었다.
한비자는 법을 옹호했지만, 상앙이 법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을 비판하며, 법은 스스로 시행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교의 어진 인재에 대한 주장을 행정적 방법으로 대체하면서, 신불해의 방법을 일부 포함하여, 상앙의 진나라에 대해 "관리들이 법을 엄격하게 시행했지만, 최고 지도자인 군주는 방법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신불해와 심도의 사상이 공자에 대해 적대적이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상앙과 한비는 과거의 모델을 검증할 수 없거나 쓸모없다고 배척했다. 한비는 예의 시대가 법의 시대로, 자연 질서가 사회 질서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정치 질서로 변화했다고 주장했다. 순자의 사상과 함께 그들의 인간 진보와 이성에 대한 이해는 진나라를 이끌었다.
한비는 통치자가 관계나 도덕과 같이 임의적인 결정에 따라 행동하면 재앙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예(禮)나 모범에 의한 통치 또한 너무 비효율적이라고 보았다. 그는 통치자가 법(행정적 방법이나 표준)을 통해 행동하는 포괄적인 시스템을 수립해야 하며, 법은 귀족에게 편파적이지 않고, 신하를 배제하지 않으며, 일반 백성을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비는 "공적" 영역을 정의와 객관적인 기준과 연결하면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은 항상 서로 대립한다고 보았다. 그는 유가들을 "오가지 해충" 중 하나로 꼽았고, 유가의 사랑과 연민에 대한 가르침을 "어리석은 가르침"이라고 비판하며, 인(仁)에 대한 강조는 "귀족적이고 엘리트적인 이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유교가 통일된 사상체계가 아니라고 지적하며, 유학자들이 국가의 일과는 멀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유가의 가족 중시 사상에 반대하며, 한비는 구조적 해결책을 요구했다. 예기에 따르면 고위 관리는 형벌법을 적용해서는 안 되지만, 주요한 정치 부패의 원천으로서 신하는 인(仁)과 다른 도덕적 정당화의 명목으로 가족 구성원을 형벌 조치로부터 보호했다. 인맥이 없는 사람들만이 법의 적용을 받았다. 한비는 이러한 불의를 비난했다.
한비자는 성악설을 주장한 유가의 순자에게 배웠으며, 비위의 행위를 예(禮)에 의한 덕화(德化)로 교정한다는 순자의 생각에 대해 법으로써 억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 2. 시대적 배경
전국 시기는 중국 역사에서 강대한 제후국들이 서로 전쟁을 벌이던 혼란의 시기였다. 이 시기에는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고 아들이 부친을 살해하는 등 비윤리적인 일들이 자주 일어났다.[1] 한비의 조국 한나라는 외세의 침략으로 쇠퇴하고 있었다. 한비는 기존의 사고방식과 체제로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여, 법치라는 새로운 이념으로 나라를 다스릴 것을 주장했다.[1]한비가 태어난 전국 말기는, 전국칠웅이라 불리는 일곱 나라로 중국이 통합되어, 춘추오패 시대를 거쳐 점차 통일의 기운과 초대국 출현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한 시기였다. 통일을 향한 움직임은 물론, 여러 나라의 존망을 건 싸움의 연속이었으며, 국가 간의 총력전이기도 했다. 그리고 혹독한 생존 경쟁은 인재 등용을 활발하게 만들었다.[4]
그때까지 군주의 혈통을 잇는 공자나 귀족 등에 의해 운영되던 국정도, 계급이 낮은 사대부나 출신이 불분명한 유세객들에게 군주의 권한이 위임되는 일도 드문 일이 아니었다. 군주에게 권력을 집중시키고, 그것을 신속하게 적재적소에 위임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4]
그러나 결과적으로 당시 왕권은 특정 사대부나 왕족에게 독점되는 경우가 많았고, 제(산둥성)나 진(산시성)과 같이 국가 자체를 빼앗기는 사례도 발생했다. 그래서 한비는 분열되고 혼란스러운 군주의 권력을 법으로 일원화하고 체계화함으로써 강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4]
이러한 한비의 사상은, 아이러니하게도 한비의 출신국인 한이 아니라, 적대국인 진의 진시황에 의해 높이 평가되었다. 이는 진의 효공 시대에 상앙이 법가 사상에 의한 군주 독재권을 확립했던 것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4]
3. 주요 내용
《한비자》는 전국시대에 법가 사상을 집대성한 저작이다. 한비가 활동했던 전국시대는 중국 역사상 강대한 제후국들이 서로 전쟁을 일삼던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또한 각국에서는 신하가 군주를 시해하고 아들이 부친을 살해하는 등 비윤리적인 행위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이러한 시기에 한비의 조국 한나라는 외세의 침략으로 쇠퇴하고 있었다. 한비는 기존 사고방식과 체제로는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하여 법치라는 새로운 이념으로 나라를 다스릴 것을 주장했다.
《한비자》 55편의 내용은 크게 10가지로 나눌 수 있다.
# 잘못된 통치 방식을 비판하고 법치를 주장.
# 계급과 지위를 차지하려는 간신들의 은밀한 활동과 궁정 내부의 잠재된 위험을 이야기.
# 한비자의 정치적 경험과 주장을 반영.
# 군주가 나라를 세우는 방법을 설명하고 한비자의 법치 주장과 이를 실현하는 방식을 서술.
# 선진 제가들의 학술 주장을 비판하며 사상 통제를 강화할 것을 요구.
# 노자 혹은 황로 사상을 해설하며 자신의 관점을 이야기.
#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반박하는 형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주장을 논리적으로 서술.
# 많은 역사적 이야기와 민간 전설을 들어 법·통치술·권세가 결합된 법치 이론을 서술. (이 부분은 문장이 생동적이고 문학성이 뛰어남)
# 한비자가 수집한 원시 자료로 자신의 법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를 인용.
# 한비자와 관련된 역사적 사건들을 기록. (1편에서 4편까지는 군주에 대한 이야기들을 서술함으로써 군주의 태도가 국가 형성의 중요함을 나타냄)
《한비자》에는 다양한 사상들이 등장한다. 도가와 법가의 혼합을 이룬 황로파나 법가의 사상가들인 상앙, 신불해 등이 대표적이다.
- 황로파의 시각 아래 서술된 편장: 5편 〈주도〉, 8편〈양권〉, 20편〈해로〉, 21편〈유로〉, 27-29편〈용인〉〈공명〉〈대체〉.
- 상앙의 시각 아래 서술된 편장: 53편 〈칙령〉, 54편 〈심도〉, 55편 〈제분〉.
- 상앙과 신불해 모두를 인용한 편장: 43편 〈정법〉.
- 타 학파에 대한 비판: 49-51편 〈오두〉,〈현학〉,〈충효〉. (주된 비판 대상은 유가와 묵가, 종횡가의 합종책)
《한비자》에는 군주에 대한 상주문이나 한비 학파의 교과서로 쓰였을 법한 편장들이 다수 발견된다.
- 군주에 대한 상주문: 1-4편.
- 한비 학파의 교과서: 23, 24편 〈설림〉, 30-35편 〈내/외저설〉, 36-39편 〈난〉 1-4.
- 기타: 〈고분〉.
각 편장의 제목과 간략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한비자는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 본성과, 이를 활용하는 정치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그는 소극적 관찰과 체계적인 ''법''(法)을 통해 지도력을 유지하고 인적 자원을 관리하며, 복지 증진 및 정의와의 관계를 설명한다.
한비자는 법을 옹호하지만, 유가가 법을 비판하는 것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상앙을 비판한다. 법은 스스로 시행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상앙이 법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을 비난한다. 신불해에서 유래한 일부 방법을 포함하여, 한비자는 상앙의 진나라에 대해 "관리들이 법을 엄격하게 시행했지만, 최고 지도자인 군주는 방법이 부족했다."라고 평가한다.[14]
한비자는 군주가 신하에게 무자비해야 하며, 아무것도 하지 않음(무위, ''wu wei'')으로써 신하들에게 공포를 심어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적인 이성과 도덕을 버리고, 어떤 개인적인 감정도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 군주의 자질인 "정신력, 도덕적 우수성, 신체적 능력"은 통치 방법만큼 중요하지 않다. 법(Fa)은 군주에게 완벽성을 요구하지 않는다.[15][16] 한비자의 도덕경에 대한 논평은 관점 없는 지식, 즉 절대적인 관점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학계는 일반적으로 이것을 저서의 다른 부분과의 차이점을 고려하여 부록으로 간주한다.[18]
한비자는 행명(行名)에 주목했는데,[19] 사마천과 유향은 이를 "실제 결과를 명(명령, 언행)에 책임지게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20][21][25] 한비자는 말과 행동의 완벽한 일치를 주장하며, 명칭에 맞는 것이 결과보다 중요하다고 보았다.[26] 또한 '행명'을 독재의 필수 요소로 간주하며, "하나됨을 얻는 방법에서 명칭이 가장 중요하다. 명칭이 정돈되면 일이 안정되고, 어긋나면 일이 불안정해진다."라고 말한다.[25]
신불해와 심도의 사상이 공자에 대해 적대적이지는 않았을 수도 있지만, 상앙과 한비는 과거의 모델을 검증할 수 없거나 쓸모없다고 배척하는 것을 강조했다. 한비는 예의 시대가 법의 시대로, 자연 질서가 사회 질서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정치 질서로 변화했다고 주장했다. 순자의 사상과 함께 그들의 인간 진보와 이성에 대한 이해는 진나라를 이끌었다.
한비에게 있어 "공적" 영역을 정의와 객관적인 기준과 연결하면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은 항상 서로 대립해왔다. 상앙을 본받아 그는 유가들을 "오가지 해충" 중 하나로 꼽았고, 백성에 대한 유가의 사랑과 연민에 대한 가르침을 "어리석은 가르침"과 "혼란스러운 잡담"이라고 불렀다.
3. 1. 법(法)
한비자는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 본성을 언급하며, 이를 국가와 군주에게 유리하게 활용하는 정치적 방법론을 제시한다. 그는 소극적 관찰과 체계적인 법(法)의 사용을 통해 지도력을 유지하고 인적 자원을 관리하며, 복지 증진 및 정의와의 관계를 설명한다.한비자는 신뢰하기 어려운 유능한 인물에 대한 지나친 의존을 경계하며, 체계적인 상벌(’두 손잡이’)을 통해 백성들을 이익으로 유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군주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고, 사실 관찰 이외의 판단을 하지 않아야 한다. 상앙을 비롯한 다른 법가 사상가들과 마찬가지로, 한비자는 광대한 영토와 인원을 통치하기 위해 법이 가장 실용적인 수단이며, 다른 어떤 방법을 위해서도 법을 버려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
한비자의 철학은 그 시대의 왕위 찬탈에서 비롯되었다. 중국학자 골딘(Goldin)은 “'한비자'에 나오는 내용 대부분은 군주와 그의 신하들과의 관계를 다루는데, [그들은] 실제로 그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가장 큰 집단으로 여겨졌다”라고 썼다. 한비자는 『좌전』을 인용하여 “모든 군주 중 절반도 안 되는 수가 병으로 죽는다”라고 말한다. 군주가 이를 모르면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을 것이다. 따라서 “군주의 죽음으로 이득을 보는 자가 많으면, 군주는 위험에 처할 것이다.”[12][13]
한비자는 법을 옹호하지만, 유교가 법을 비판하는 것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상앙을 비판한다. 그는 법이 스스로 시행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상앙이 법에 지나치게 의존했다고 비난한다. 한비자는 신불해에서 유래한 일부 방법을 포함하여, 진나라에 대해 “관리들이 법을 엄격하게 시행했지만, 최고 지도자인 군주는 방법이 부족했다”라고 말한다.
한비자는 '행명(行名)'에 주목했는데,[19] 사마천과 유향은 이를 “실제 결과를 명(명령, 언행)에 책임지게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20][21][25] 이는 유가와 묵가의 명분론[22]과 일치하며, 정부의 목표와 관련하여 특히 약속이나 의무는 처벌이나 보상을 수반한다는 유가 전통과 관련이 있다.[22] 하지만 한비자와 그의 전임자 신불해가 강조한 엄격하고 중앙 집중적인 통제는 자율적인 신하라는 유가적 사상과 상충된다.[23]
'행명'은 법적 계약과 같은 구속력 있는 선언(명)을 통해 기능한다. 구두로 자신을 헌신하는 후보자에게는 직책이 할당되고, 그로 인해 통치자에게 빚을 지게 된다.[25]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결정된) 직위에 “명명”하는 것은 제안된 직무 설명과 그 결과가 그들의 말로 맡겨진 임무에 맞는지 여부에 따라 보상하거나 처벌한다. 진정한 신하는 이를 충족한다.[26][22]
한비자는 말과 행동의 완벽한 일치를 주장한다. 명칭에 맞는 것이 결과보다 중요하다.[26] 직무의 완료, 달성 또는 결과는 고정된 형태(행)를 취하는 것이며, 이는 원래 주장(명)에 대한 표준으로 사용될 수 있다. 큰 주장을 하지만 성과가 적으면 원래의 구두 약속에 부적절하고, 더 큰 성과는 직책의 범위를 넘어서서 공로를 얻는다.[25]
한비자의 '현명한 통치자'는 “명칭이 스스로 명칭을 정하고 일이 스스로 해결되도록 명령한다.”[25]
말과 행동의 책임을 평가하면서,[25] 통치자는 “주체의 진정한 공적에 따라 보상과 처벌을 결정하려고 한다”(법을 사용하여).[25][29][30][31] 명칭(명)을 사용하여 현실(실)을 요구하면 상급자는 고양되고 하급자는 억제된다고 한다.[32] 직무 수행을 점검하고, 자연스럽게 상급자의 높은 지위를 강조하여 하급자가 후자의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한다.[33]
한비자는 '행명'을 독재의 필수 요소로 간주하며, “하나됨을 얻는 방법에서 명칭이 가장 중요하다. 명칭이 정돈되면 일이 안정되고, 어긋나면 일이 불안정해진다.”라고 말한다.[25] 그는 신불해에 의해 이전에 개발된 이 시스템을 통해 언어의 균일성을 개발할 수 있고,[34] 갈등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기능을 엄격하게 정의할 수 있으며, 상반된 해석에 영향을 받지 않는 객관적인 규칙(법)을 확립하고 효과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35] 옵션을 정확히 하나로 좁힘으로써 “올바른 통치 방식”에 대한 논의를 없앨 수 있다. 어떤 상황(실)이 오든 그것이 올바른 도(道)이다.[36]

“모자 관리인”이 잠자는 황제에게 옷을 덮어 놓으면 직무를 넘어섰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야 하며, “옷 관리인”은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야 한다.[40] “두 가지 수단”의 철학은 통치자를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으로 다른 동물들을 제압하는” 호랑이 또는 표범에 비유한다(보상과 처벌). 그것 없이는 그는 다른 어떤 사람과 같다. “신하들의 찬탈 가능성을 피하기 위해” 권력과 “법의 수단”은 “공유되거나 분할되어서는 안 되며”, 통치자에게만 집중되어야 한다.
실제로 이것은 통치자가 그의 신하들로부터 고립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신하들의 승진은 통치자를 위험에 빠뜨리므로, 그로부터 엄격히 분리되어야 한다. 처벌은 그의 주권을 확인시켜 주고, 법은 의도에 관계없이 경계를 넘는 사람을 제거한다. 법은 “인간의 이기적인 요소를 없애고 공공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사람들에게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운다.[14]
법가들 중에서 학자(법률 및 방법 전문가)의 사용에 대한 한비자의 드문 호소는 그 점에서 유가사상과 비교할 만하게 만든다. 통치자는 모든 관리들을 직접 감독할 수 없으며, ''법''의 분권화된(그러나 충실한) 적용에 의존해야 한다. 신불해와 자신의 수사와는 반대로, 한비자는 관중, 상앙, 오기와 같은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존재하며, 최대한의 권한으로 그들을 승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가는 통치자의 권력을 강화하려고 했지만, 이 계획은 효과적으로 그를 무력화시켜 그의 역할을 공정한 방법에 따라 결정되고 그 사용을 통해 그를 보호할 것으로 예상되는 전문가에 의해 제정된 보상과 처벌 시스템의 유지로 축소한다.[41][42] 신불해의 방법과 상앙의 보험 메커니즘을 결합하여 한비자의 통치자는 단순히 자신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을 고용한다.[43]
신불해와 심도의 사상이 공자에 대해 적대적이지는 않았을 수도 있지만, 상앙과 한비는 과거의 모델을 검증할 수 없거나 쓸모없다고( “초대 군주에게 적합했던 것이 현대 통치자에게 적합한 것은 아니다”) 배척하는 것을 강조했다. 한비는 예의 시대가 법의 시대로, 자연 질서가 사회 질서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정치 질서로 변화했다고 주장했다. 순자의 사상과 함께 그들의 인간 진보와 이성에 대한 이해는 진나라를 이끌었다.
객관적이고 공개적으로 제시될 수 있는 도(통치의 방법)을 의도하면서, 한비는 통치자가 관계나 도덕과 같이 임의적이고 임시적인 의사결정(이성의 산물로서 “특수하고 오류가능성이 있다”)에 따라 행동하면 재앙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예의)나 모범에 의한 통치 또한 너무 비효율적이다. 통치자는 사례별로 행동할 수 없으므로, 법(행정적 방법이나 표준)을 통해 행동하는 포괄적인 시스템을 수립해야 한다. 법은 귀족에게 편파적이지 않고, 신하를 배제하지 않으며, 일반 백성을 차별하지 않는다.
한비에게 있어 “공적” 영역을 정의와 객관적인 기준과 연결하면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은 항상 서로 대립해왔다. 상앙을 본받아 그는 유가들을 “오가지 해충” 중 하나로 꼽았고, 백성에 대한 유가의 사랑과 연민에 대한 가르침을 “어리석은 가르침”과 “혼란스러운 잡담”이라고 부르며, 인(仁)에 대한 강조는 “당시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공자의 제자와 같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귀족적이고 엘리트적인 이상”이라고 말했다. 게다가 그는 그것이 비실용적이라고 일축하며, “유학자들은 그들의 확고한 지식 속에서 국가의 일과는 멀어져 있다… 통치자는 그들의 확고한 지식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말하며, “유교”가 통일된 사상체계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군주가 사람을 따르게 하는 힘의 근원은 형벌(刑)과 상벌(徳)에 있다. 악한 신하는 이 두 가지를 교묘하게 군주로부터 빼앗으려 한다. 군주는 신하에게 형벌과 상벌을 맡겨서는 안 되고, 반드시 자신이 장악해야 한다. 신하에게 부정을 저지르지 않게 하려면, 형명을 심합(審合, 말한 것과 한 것을 비교하는 것)하는 것이 좋다. 신하가 “이것을 할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 것에 맞춰 직무를 수행하게 한다. 신하의 발언에 비해 결과가 떨어지는 경우 말한 것과 한 것이 어긋나므로 반드시 처벌한다. 또한 신하의 발언에 비해 결과가 뛰어난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말한 것과 한 것이 어긋나므로 처벌한다. 신하가 군주에게 아첨하여 본성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 군주의 큰 고민이다. 그러므로 군주는 자신의 좋고 싫음을 신하에게 알리지 말아야 한다. 군주의 생각하는 바를 알 수 없다면 신하가 아첨할 틈을 주지 않을 수 있다.
3. 2. 술(術)
術중국어은 한비자의 핵심 사상 중 하나로, 군주가 신하를 다스리는 기술을 의미한다. 한비자는 군주가 신뢰에 의존하기보다는 체계적인 법(法)과 술(術)을 통해 권력을 유지해야 한다고 보았다.한비자는 군주의 통치술을 다루는 다양한 편장들을 제시했다. 그중에서도 43편 〈정법〉에서는 흩어져 있던 법가의 개념들을 집대성하여 하나의 체계로 만들었다는 점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한비자는 군주가 신하를 통제하기 위해 상벌(賞罰)이라는 '두 가지 수단(二柄)'을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7편 〈이병〉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되는데, 군주는 상과 벌을 통해 신하들을 통제하고 자신의 권위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군주는 신하들의 '형명(形名)'을 심합(審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신하가 말한 것(名)과 실제로 행한 것(形)을 비교하여 일치하지 않으면 처벌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신하의 아첨을 막고 군주의 판단력을 유지하기 위한 방법이다.
한비자는 군주를 조종하는 여덟 가지 해악(八姦)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9편 〈팔간〉에서는 군주가 경계해야 할 여덟 가지 유형의 신하들을 제시하고, 그들을 견제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 동침(同床): 군주와 동침하는 부인, 첩, 미녀, 남색 등과 공모한다.
- 측근(在旁): 광대, 근시 등 군주 곁에서 시중드는 자들에게 아첨하여 군주의 판단력을 잃게 한다.
- 부형(父兄): 친척이나 신뢰하는 대신과 공모한다.
- 양앙(養殃): 낭비, 유락 등으로 군주를 만족시켜 정치를 둔하게 만든다.
- 민맹(民萌): 인기 영합적인 정책을 통해 군주를 만족시켜 판단력을 잃게 한다.
- 유행(流行): 변사를 고용하여 교묘한 변설로 세상 물정 모르는 군주를 속인다.
- 위강(威強): 신하가 조폭이나 군인을 길들여 그것을 배후로 권세를 휘두른다.
- 사방(四方): 외국과 통하여 압력을 가하거나 쿠데타를 일으킨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한비자는 다음을 제시한다.
- 여성에게는 전언이나 부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 측근에게는 발언의 옳고 그름을 꾸짖고, 쓸데없는 말을 삼가도록 한다.
- 친족에게는 의견을 들어들이되, 좋지 않은 경우에는 반드시 처벌하여 경솔한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한다.
- 오락 관련 물품은 누가 어떻게 상납했는지 출처를 확인하고 신하의 일방적인 처리가 되지 않도록 한다.
- 곡물 공급 등의 은혜 베풂에 대해서는 반드시 군주의 재산에서 내고 신하가 사적으로 백성에게 이익을 주지 않도록 한다.
- 논의에서는 옳고 그름 양쪽의 의견을 듣고 공과를 판단하여, 서로 입을 맞춰 말하지 못하게 한다.
- 위압에 대해서는 군인에게는 공적에 맞는 포상을 주고, 도시에서 악당이 창궐하지 않도록 처벌하며, 신하가 이러한 자들을 부양하지 않도록 한다.
- 주변 국가에 대해서는 이치에 맞지 않는 요구는 받아들이지 않는다.
15편 〈망징〉에서는 나라가 망할 징조 47가지를 제시하여 군주가 경계해야 할 점들을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한비자는 군주가 법술의 사(法術의 士, 법과 술을 통해 올바른 정치를 실현하려는 사람)를 등용해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당도의 인(黨徒의 人, 군주에게 총애받고 사리사욕을 채우는 신하)에게 밀려 어려움을 겪는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상황은 법술의 사를 죽음의 위험으로 몰아넣고, 결국 왕조를 멸망시키는 원인이 된다고 경고했다.
32, 33, 34, 35편 〈외저설〉에서는 경(經)과 전(傳) 두 부분으로 나누어 객관적인 법(法)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인 술(術), 초월적 권위인 세(勢)를 확보하는 것이 군주권을 지키는 데 있어 핵심적인 것으로 소개한다. 36, 37, 38, 39편 〈난〉에서는 한비자가 스스로의 관점에서 역사 비평을 하고 있다. 40편 〈난세〉에서는 세(勢)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지는데, 현명함과 세 개념 사이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비자의 '술'은 군주가 권력을 유지하고 신하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실용적인 방법론이다. 그는 법과 술, 그리고 형명과 팔간 등의 개념을 통해 군주가 경계해야 할 점과 실천해야 할 방안을 제시했다.
3. 3. 세(勢)
한비자는 권력을 뜻하는 '세(勢)' 개념을 중시했다. 특히 현명함과 세의 관계에 주목했는데, 현명하다고 해서 세를 활용할 수 있고, 어리석다고 해서 세를 활용할 수 없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즉, 세는 현명함과는 별개의 요소라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세가 가장 효과를 발휘하는 경우는 중간 정도 수준의 군주가 통치할 때라고 밝혔다.[12]4. 한비자 비판
상군서와 비교했을 때, 한비자는 상앙의 상벌(賞罰)을 수용하더라도 여전히 더 유교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한비자는 초기 유교의 명분론과 비교할 수 있는 관료 제도의 명칭(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상군서의 군현제보다는 유교도 자신일 수도 있는 관리들의 금지와 장려에 더 중점을 둔다.[45]
한비자는 법을 옹호하지만, 유교가 법을 비판하는 것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상앙을 비판한다. 법은 스스로 시행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상앙이 법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을 비난한다. 신불해에서 유래한 일부 방법을 포함하여, 한비자는 상앙의 진나라에 대해 "관리들이 법을 엄격하게 시행했지만, 최고 지도자인 군주는 방법이 부족했다."라고 말한다.[46]
신불해와 심도의 사상이 공자에 대해 적대적이지는 않았을 수도 있지만, 상앙과 한비는 과거의 모델을 검증할 수 없거나 쓸모없다고 배척하는 것을 강조했다. 한비는 예의 시대가 법의 시대로, 자연 질서가 사회 질서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정치 질서로 변화했다고 주장했다. 순자의 사상과 함께 그들의 인간 진보와 이성에 대한 이해는 진나라를 이끌었다.[46]
한비는 통치자가 관계나 도덕과 같이 임의적이고 임시적인 의사결정에 따라 행동하면 재앙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예의)나 모범에 의한 통치 또한 너무 비효율적이다.[47][48][49] 통치자는 사례별로 행동할 수 없으므로, 법(행정적 방법이나 표준)을 통해 행동하는 포괄적인 시스템을 수립해야 한다. 법은 귀족에게 편파적이지 않고, 신하를 배제하지 않으며, 일반 백성을 차별하지 않는다.[49]
한비에게 있어 "공적" 영역을 정의와 객관적인 기준과 연결하면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은 항상 서로 대립해왔다.[50] 상앙을 본받아 그는 유가들을 "오가지 해충" 중 하나로 꼽았고, 백성에 대한 유가의 사랑과 연민에 대한 가르침을 "어리석은 가르침"과 "혼란스러운 잡담"이라고 부르며, 인(仁)에 대한 강조는 "당시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공자의 제자와 같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귀족적이고 엘리트적인 이상"이라고 말했다.[47][52] 게다가 그는 그것이 비실용적이라고 일축하며, "유학자들은 그들의 확고한 지식 속에서 국가의 일과는 멀어져 있다… 통치자는 그들의 확고한 지식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말하며, "유교"가 통일된 사상체계가 아니라고 지적했다.[53][54]
유가의 가족 중시 사상에 반대하여, 도강(2021)은 한비의 가족 역학 분석을 통치자의 입장에 전적으로 기반한 것으로 보고, 유가적 교육이나 도덕적 수양이 아닌 구조적 해결책을 요구한다. 예기("중요한 초기 유가 경전")에 따르면 고위 관리는 형벌법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주요한 정치 부패의 원천으로서, 신하는 인(仁)과 다른 도덕적 정당화의 명목으로 가족 구성원을 형벌 조치로부터 보호했다. 인맥이 없는 사람들만이 법의 적용을 받았다. 정치와 도덕의 대립을 언급하면서도, 도강은 한비의 이러한 반대 입장이 그의 정치 질서 비전에서 도덕적 차원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고 본다. 도강이 한비의 "평민들이 겪는 엄청난 불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난" 중 하나로 여기는 것에서, 한비는 이렇게 말한다.[55]
> 상고 시대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와 춘추 시대에 기록된 사건들을 살펴보면, 법을 어기고 반역을 저지르고 중대한 악행을 저지른 자들은 항상 고위 관리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법과 규칙은 일반 백성의 악행을 막기 위해 고안되었고, 형벌과 처벌은 오직 그들에게만 가해진다. 따라서 일반 백성은 희망을 잃고 불만을 토로할 곳이 없다. 한편 고위 관리들은 서로 뭉쳐 통치자의 시야를 가린다. (왓슨 번역, 2003, 89)
춘추전국시대의 묵가 사상가인 순자(한비자와 이사의 스승)의 영향 외에도, 정치적 텍스트로 해석되는 『도덕경』에 대한 『한비자』의 주석 때문에, 『한비자』는 때때로 종합적인 황로도가 전통의 일부로 포함되기도 한다. 이는 도가를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이 자연의 힘처럼 따라야만 하는 자연법으로 보는 관점이다.
Phan Ngọc(Phan Ngọc)은 『한비자』 서문에서 한비를 날카롭고 논리적이며 확고한 주장을 펼치는 지식이 풍부한 인물로 칭찬하며, 풍부한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다고 평가했다. 한비의 엄격한 방법론은 사회적 퇴폐의 맥락에서 적절했다. 그러나 Phan Ngọc은 한비의 저술에는 세 가지 단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그의 법가 사상은 독재 정치에 적합하지 않아서 통치 왕조는 조만간 쇠퇴할 것이다. 둘째, 독재 군주제 시스템의 본질적인 한계 때문에 한비는 그가 지적한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셋째, 한비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악하며 명예와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생각한 것은 잘못이며, 한비 자신을 포함하여 더 큰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한 사람들도 있다.[57] Trần Ngọc Vương(Trần Ngọc Vương)은 『한비자』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고 한비의 이념은 당시로서는 매우 세련되었다고 주장했다.[58]
한편, 중국학자인 Chad Hansen은 『한비자』를 풍부하고 박식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비를 특별히 독창적이거나 철학적이거나 윤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이성적이기보다는 논쟁적"이고, "모든 자칭 현실주의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정당하지 않은 가정과 냉소주의를 가지고 있으며, "우월한 현실적인 통찰력을 가진" 냉소적인 어조에 기반하고 있다고 평가한다.[59]
5. 한비자 편장 구성
《한비자》는 전 55편, 10만 자 이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중에서 진시황을 감탄시킨 저술은 「고분편」과 「오두편」 두 편이다. 「초견진편」은 합종연횡과 한나라에 대한 서술 해석에 따라 한비의 저술이 아니라는 설이 있어 논쟁이 되고 있다.
《한비자》의 편장 목록은 다음과 같다.
《한비자》는 다양한 사상( 도가, 법가, 황로파, 상앙, 신불해)의 영향을 받은 편장, 타 학파( 유가, 묵가, 종횡가) 비판, 군주 대상 상주문, 한비 학파 교과서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6. 현대적 의의
한비자는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 본성과, 국가와 군주에게 유리하게 이를 활용하는 정치적 방법론을 설명한다. 즉, 소극적 관찰과 체계적인 법의 사용을 통해 지도력을 유지하고 인적 자원을 관리하며, 복지 증진 및 정의와의 관계를 설명한다.[12][13]
한비자는 유능한 인물에게 지나치게 의존하기보다 체계적인 상벌(‘두 손잡이’)에 그들의 계획을 묶어 이익으로써 백성을 유도해야 한다고 보았다. 군주는 자신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사실 관찰 이외의 판단을 하지 않아야 한다. 상앙과 다른 법가 사상가들처럼, 그는 광대한 영토와 가까이 있는 인원 모두의 통치에 있어 법이 더 실용적인 수단이며, 다른 어떤 방법을 위해서도 법을 버리지 말라고 군주에게 경고한다.
한비자의 철학은 그 시대의 왕위 찬탈에서 비롯된다. 중국학자 골딘(Goldin)은 “'한비자'에 나오는 내용 대부분은 군주와 그의 신하들과의 관계를 다루는데, [그들은] 실제로 그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이 가장 큰 집단으로 여겨졌다.”라고 썼다. 한비자는 『좌전』을 인용하여 “모든 군주 중 절반도 안 되는 수가 병으로 죽는다.”라고 말한다. 만약 군주가 이를 모른다면 혼란은 다양하고 억제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군주의 죽음으로 이득을 보는 자가 많으면, 군주는 위험에 처할 것이다.”라고 경고한다.[12][13]
상군서는 농업과 전쟁을 강조하며 일반 백성과 관련된 국가 권력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다. 관리들을 통제하는 사상은 책의 후반부에 등장한다.
한비자의 저자들 중 일부는 유교를 부정적으로 평가했으며,[47][48][49] 한비자는 유학자나 철학자로서 유교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상군서와 비교했을 때, 한비자는 상앙의 상벌(賞罰)을 수용하더라도 여전히 더 유교적인 성향을 띠고 있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한비자는 초기 유교의 명분론과 비교할 수 있는 관료 제도의 명칭(역할)을 가지고 있으며, 상군서의 군현제보다는 유교도 자신일 수도 있는 관리들의 금지와 장려에 더 중점을 둔다.[22]
한비자는 법을 옹호하지만, 유교가 법을 비판하는 것과 거의 같은 방식으로 상앙을 비판한다. 법은 스스로 시행될 수 없다는 점을 들어, 상앙이 법에 지나치게 의존한 것을 비난한다. 유교의 어진 인재에 대한 주장을 행정적 방법으로 대체하면서, 신불해에서 유래한 일부 방법을 포함하여, 한비자는 상앙의 진나라에 대해 “관리들이 법을 엄격하게 시행했지만, 최고 지도자인 군주는 방법이 부족했다.”라고 평가한다.
한비자는 '행명(行名)'에 주목했는데,[19] 사마천과 유향은 이를 “실제 결과를 명(명령, 언행)에 책임지게 하는 것”으로 정의한다.[20][21][25] 유가와 묵가의 명분의 정정[22]과 일치하여, 정부의 목표와 관련하여 특히 약속이나 의무는 처벌이나 보상을 수반한다는 유가 전통과 관련이 있다.[22] 하지만 한비자와 그의 전임자 신불해가 강조한 엄격하고 중앙 집중적인 통제는 자율적인 신하라는 유가적 사상과 상충된다.[23]
'행명'은 원래 “처벌과 명칭”을 의미했을 수 있지만, 후자에 더 중점을 두었다.[24] 그것은 법적 계약과 같은 구속력 있는 선언(명)을 통해 기능한다. 구두로 자신을 헌신하는 후보자에게는 직책이 할당되고, 그로 인해 통치자에게 빚을 지게 된다.[25]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결정된) 직위에 “명명”하는 것은 제안된 직무 설명과 그 결과가 그들의 말로 맡겨진 임무에 맞는지 여부에 따라 보상하거나 처벌한다. 진정한 신하는 이를 충족한다.[26][22]
한비자는 말과 행동의 완벽한 일치를 주장한다. 명칭에 맞는 것이 결과보다 중요하다.[26] 직무의 완료, 달성 또는 결과는 고정된 형태(행)를 취하는 것이며, 이는 원래 주장(명)에 대한 표준으로 사용될 수 있다. 큰 주장을 하지만 성과가 적으면 원래의 구두 약속에 부적절하고, 더 큰 성과는 직책의 범위를 넘어서서 공로를 얻는다.[25]
한비자의 ‘현명한 통치자’는 “명칭이 스스로 명칭을 정하고 일이 스스로 해결되도록 명령한다.”[25]
말과 행동의 책임을 평가하면서,[25] 통치자는 “주체의 진정한 공적에 따라 보상과 처벌을 결정하려고 한다”(법을 사용하여).[25][29][30][31] 명칭(명)을 사용하여 현실(실)을 요구하면 상급자는 고양되고 하급자는 억제된다고 한다.[32] 직무 수행을 점검하고, 자연스럽게 상급자의 높은 지위를 강조하여 하급자가 후자의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한다.[33]
한비자는 ‘행명’을 독재의 필수 요소로 간주하며, “하나됨을 얻는 방법에서 명칭이 가장 중요하다. 명칭이 정돈되면 일이 안정되고, 어긋나면 일이 불안정해진다.”라고 말한다.[25] 그는 심부해에 의해 이전에 개발된 이 시스템을 통해 언어의 균일성을 개발할 수 있고,[34] 갈등과 부패를 방지하기 위해 기능을 엄격하게 정의할 수 있으며, 상반된 해석에 영향을 받지 않는 객관적인 규칙(법)을 확립하고 효과에 따라 판단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35] 옵션을 정확히 하나로 좁힘으로써 “올바른 통치 방식”에 대한 논의를 없앨 수 있다. 어떤 상황(실)이 오든 그것이 올바른 도(道)이다.[36]
심부해의 기법을 사용할 것을 권장하지만, 한비자의 ‘행명’은 훨씬 더 좁고 구체적이다. 한비자의 기계적인 책임성에 암시된 기능적 이분법은 심부해에게는 쉽게 암시되지 않으며, 심부해나 그의 스승이라고 여겨지는 순자보다는 한나라의 후대 언어학자 허감의 사상과 더 일치한다고 말할 수 있다.
신불해와 심도의 사상이 공자에 대해 적대적이지는 않았을 수도 있지만,[45] 상앙과 한비는 과거의 모델을 검증할 수 없거나 쓸모없다고 배척하는 것을 강조했다. 한비는 예의 시대가 법의 시대로, 자연 질서가 사회 질서로, 그리고 최종적으로 정치 질서로 변화했다고 주장했다. 순자의 사상과 함께 그들의 인간 진보와 이성에 대한 이해는 진나라를 이끌었다.[46]
객관적이고 공개적으로 제시될 수 있는 도(통치의 방법)을 의도하면서,[47][48][49] 한비는 통치자가 관계나 도덕과 같이 임의적이고 임시적인 의사결정(이성의 산물로서 "특수하고 오류가능성이 있다")에 따라 행동하면 재앙적인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예의)나 모범에 의한 통치 또한 너무 비효율적이다. 통치자는 사례별로 행동할 수 없으므로, 법(행정적 방법이나 표준)을 통해 행동하는 포괄적인 시스템을 수립해야 한다. 법은 귀족에게 편파적이지 않고, 신하를 배제하지 않으며, 일반 백성을 차별하지 않는다.[49]
한비에게 있어 “공적” 영역을 정의와 객관적인 기준과 연결하면서 사적 영역과 공적 영역은 항상 서로 대립해왔다.[50] 상앙을 본받아 그는 유가들을 “오가지 해충” 중 하나로 꼽았고,[51] 백성에 대한 유가의 사랑과 연민에 대한 가르침을 “어리석은 가르침”과 “혼란스러운 잡담”이라고 부르며,[52] 인(仁)에 대한 강조는 “당시 모든 평범한 사람들이 공자의 제자와 같아야 한다”고 요구하는 “귀족적이고 엘리트적인 이상”이라고 말했다.[47] 게다가 그는 그것이 비실용적이라고 일축하며, "유학자들은 그들의 확고한 지식 속에서 국가의 일과는 멀어져 있다… 통치자는 그들의 확고한 지식으로부터 무엇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말하며,[53] “유교”가 통일된 사상체계가 아니라고 지적했다.[54]
유가의 가족 중시 사상에 반대하여, 도강(2021)은 한비의 가족 역학 분석을 통치자의 입장에 전적으로 기반한 것으로 보고, 유가적 교육이나 도덕적 수양이 아닌 구조적 해결책을 요구한다. 예기에 따르면 고위 관리는 형벌법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주요한 정치 부패의 원천으로서, 신하는 인(仁)과 다른 도덕적 정당화의 명목으로 가족 구성원을 형벌 조치로부터 보호했다. 인맥이 없는 사람들만이 법의 적용을 받았다. 정치와 도덕의 대립을 언급하면서도, 도강은 한비의 이러한 반대 입장이 그의 정치 질서 비전에서 도덕적 차원을 분명히 지적하고 있다고 본다. 도강이 한비의 “평민들이 겪는 엄청난 불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난” 중 하나로 여기는 것에서, 한비는 이렇게 말한다.[55]
춘추전국시대의 묵가 사상가인 순자(한비자와 이사의 스승)의 영향 외에도, 정치적 텍스트로 해석되는 『도덕경』에 대한 『한비자』의 주석 때문에, 『한비자』는 때때로 종합적인 황로도가 전통의 일부로 포함되기도 한다. 이는 도가를 모든 사람과 모든 사물이 자연의 힘처럼 따라야만 하는 자연법으로 보는 관점이다.
Phan Ngọc(Phan Ngọc)은 『한비자』 서문에서 한비를 날카롭고 논리적이며 확고한 주장을 펼치는 지식이 풍부한 인물로 칭찬하며, 풍부한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증거에 의해 뒷받침된다고 평가했다. 한비의 엄격한 방법론은 사회적 퇴폐의 맥락에서 적절했다. 그러나 Phan Ngọc은 한비의 저술에는 세 가지 단점이 있다고 주장했다. 첫째, 그의 법가 사상은 독재 정치에 적합하지 않아서 통치 왕조는 조만간 쇠퇴할 것이다. 둘째, 독재 군주제 시스템의 본질적인 한계 때문에 한비는 그가 지적한 모든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했다. 셋째, 한비는 인간이 본질적으로 악하며 명예와 이익만을 추구한다고 생각한 것은 잘못이며, 한비 자신을 포함하여 더 큰 이익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한 사람들도 있다.[57] Trần Ngọc Vương(Trần Ngọc Vương)은 『한비자』가 마키아벨리의 『군주론』보다 우수하다고 생각하고 한비의 이념은 당시로서는 매우 세련되었다고 주장했다.[58]
한편, 중국학자인 Chad Hansen은 『한비자』를 풍부하고 박식하다고 생각하면서도 한비를 특별히 독창적이거나 철학적이거나 윤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며, “이성적이기보다는 논쟁적”이고, “모든 자칭 현실주의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정당하지 않은 가정과 냉소주의를 가지고 있으며, “우월한 현실적인 통찰력을 가진” 냉소적인 어조에 기반하고 있다고 평가한다.[59]
참조
[1]
백과사전
Encyclopedia of World Biography
2022-08-00
[2]
웹사이트
Legalism in Chinese Philosophy
http://plato.stanfor[...]
2014
[3]
웹사이트
Legalism in Chinese Philosophy
https://plato.stanfo[...]
Metaphysics Research Lab, Stanford University
2014
[4]
서적
Rhetoric in Ancient China, Fifth to Third Century, B.C.E.: A Comparison with Classical Greek Rhetoric
https://books.google[...]
Univ of South Carolina Press
1998
[5]
서적
Chinese Thought: An Introduction
Motilal Banarsidass Publ.
1995-09-27
[6]
간행물
The Internal Morality of Chinese Legalism
http://law.nus.edu.s[...]
Singapore Journal of Legal Studies
2005
[7]
서적
A Short History of Chinese Philosophy
https://books.google[...]
1948
[8]
서적
Leadership and Management in China
2008
[9]
서적
The Bloomsbury Research Handbook of Chinese Philosophy and Gender
Bloomsbury Publishing
2016
[10]
서적
A History of Chinese Civilization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
[11]
서적
Dao Companion to the Han Feizi
https://books.google[...]
Google Books
2013
[11]
서적
China in Search of a Harmonious Society
https://books.google[...]
Google Books
2008
[11]
웹사이트
Legalism in Chinese Philosophy
https://plato.stanfo[...]
2014-12-10
[12]
웹사이트
Home | East Asian Languages and Civilizations
https://ealc.sas.upe[...]
2022-01-05
[13]
서적
An Introduction to Hanfei's Political Philosophy: The Way of the Ruler
2018
[14]
논문
The Dialectic of Chih (Reason) and Tao (Nature) in The Han Fei-Tzu
1975-12
[15]
서적
Rhetoric in Ancient China, Fifth to Third Century, B.C.E.
https://books.google[...]
Google Books
1998
[16]
서적
The Art of Rulership
https://books.google[...]
Google Books
1983
[17]
웹사이트
The Way of the Ruler
http://www2.iath.vir[...]
[17]
서적
Han Fei Tzu: Basic Writings
Columbia University Press
1964
[17]
논문
Chia I's 'Techniques of the Tao' and the Han Confucian Appropriation of Technical Discourse
1997
[17]
서적
From Destiny to Dao: A Survey of Pre-Qin Philosophy in China
https://books.google[...]
Google Books
2016
[17]
서적
LAW AND MORALITY IN THE HAN FEI ZI
2005
[18]
서적
A Daoist Theory of Chinese Thought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18]
서적
Shen Pu-hai: A Chinese Political Philosopher of the Fourth Century B.C.
1974
[19]
서적
A Daoist Theory of Chinese Thought: A Philosophical Interpretation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2000-08-17
[20]
논문
Legalism in Chinese Philosophy
https://plato.stanfo[...]
2014-12-10
[21]
서적
What Is Taoism?
1970
[22]
서적
A Daoist Theory of Chinese Thought
https://books.google[...]
[23]
서적
What Is Taoism?
1970
[24]
서적
Writing and Authority in Early China
https://books.google[...]
SUNY Press
1999-03-18
[25]
학술지
The Legalist Concept of ''Hsing-Ming'': An Example of the Contribution of Archaeological Evidence to the Re-Interpretation of Transmitted Texts
1990
[26]
서적
Disputers of the Tao
https://books.google[...]
2015-12-15
[27]
서적
A Daoist Theory of Chinese Thought: A Philosophical Interpretation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28]
서적
Disputers of the Tao: Philosophical Argument in Ancient China
https://books.google[...]
Open Court
2015
[29]
서적
A Daoist Theory of Chinese Thought: A Philosophical Interpretation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30]
서적
Researches in Indian and Buddhist Philosophy: Essays in Honour of Professor Alex Wayman
https://books.google[...]
Motilal Banarsidass Publishers
1993
[31]
논문
Persistent Misconceptions about Chinese 'Legalism'
2011-03-01
[32]
서적
The Meaning of Hsing-Ming. Studia Serica: Sinological studies dedicated to Bernhard Kalgren
1959
[33]
서적
What Is Taoism?
1970
[34]
웹사이트
Philosophy of Language in Classical China
https://philosophy.h[...]
2022-01-05
[35]
서적
A History of Chinese Civilization
https://books.google[...]
Cambridge University Press
1996-05-31
[36]
서적
A Daoist Theory of Chinese Thought: A Philosophical Interpretation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2000-08-17
[37]
서적
What Is Taoism?
[38]
서적
What Is Taoism?
1970
[39]
서적
Philosophers and Religious Leaders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13-09-13
[40]
서적
China: Understanding Its Past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Hawaii Press
1997-01-01
[41]
서적
Submerged by Absolute Power
2003
[42]
서적
2000
[43]
서적
A History of Chinese Civilization
https://books.google[...]
[44]
서적
What Is Taoism?: And Other Studies in Chinese Cultural History
https://books.googl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1982-09-15
[45]
논문
Legalism in Chinese Philosophy
#URL not explicitly [...]
2023-08-23
[45]
논문
Fa (standards: laws) and meaning changes in Chinese philosophy
1994-07
[45]
논문
De, Welfare
2013-08
[46]
서적
Hsun Yueh and the Mind of Late Han China
https://books.google[...]
1980
[47]
논문
Reason and Nature in the Han Fei-Tzu
1975
[48]
서적
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 Volume 2, History of Scientific Thought
https://books.google[...]
1956
[49]
서적
The Tradition and Modern Transition of Chinese Law
https://books.google[...]
2014
[50]
논문
The Polarization of the Concepts Si (Private Interest) and Gong (Public Interest) in Early Chinese Thought
[51]
논문
Han Feizi's Criticism of Confucianism and its Implications for Virtue Ethics
http://hutton.philos[...]
2008
[52]
논문
Reason and Nature in the Han Fei-Tzu
1975
[53]
문서
Han Fei's Enlightened Ruler
2013
[54]
논문
Han Feizi's Criticism of Confucianism and its Implications for Virtue Ethics
http://hutton.philos[...]
2008
[55]
문서
2021
[56]
웹사이트
XWomen CONTENT
http://www2.iath.vir[...]
2022-01-05
[57]
간행물
Vietnamese translation
Nhà Xuất bản Văn Học
2011
[58]
웹사이트
PGS – TS Trần Ngọc Vương: Ngụy thiện cũng vừa phải thôi, không thì ai chịu được!
http://antgct.cand.c[...]
2019-11-12
[59]
서적
A Daoist Theory of Chinese Thought: A Philosophical Interpretation
https://books.google[...]
Oxford University Press
2000-08-17
[60]
서적
教養としての中国古典
ミネルヴァ書房
2018
[61]
간행물
韓非子翼毳
冨山房
1911
[62]
서적
韓非子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