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트니 휴스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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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휘트니 휴스턴은 1963년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태어난 미국의 가수이자 배우이다. 가스펠 가수인 어머니와 연예 기획사 임원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으며, 1980년대 초 모델 활동을 시작했다. 1985년 데뷔 앨범 《Whitney Houston》을 발표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고, 이후 《보디가드》, 《사랑을 기다리며》, 《프리쳐스 와이프》 등의 영화에 출연하며 배우로서도 활동했다. 휴스턴은 그래미상,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등 다수의 상을 수상했으며, 앨범 《Whitney Houston》은 여성 아티스트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데뷔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휘트니 휴스턴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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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Welcome Home Heroes 콘서트에서 휴스턴
본명휘트니 엘리자베스 휴스턴
출생일1963년 8월 9일
출생지뉴저지주 뉴어크, 미국
사망일2012년 2월 11일
사망지캘리포니아주 베벌리힐스, 미국
묻힌 곳페어뷰 묘지, 웨스트필드, 뉴저지주
직업가수
배우
영화 제작자
모델
음반 프로듀서
작곡가
자선 사업가
텔레비전 진행자
활동 기간1977년–2012년
작품음반
싱글
뮤직 비디오
필모그래피
공연
녹음된 노래
배우자보비 브라운 (1992년–2007년; 이혼)
자녀보비 크리스티나 브라운
어머니시시 휴스턴
친척게리 갈랜드 (이복형)
디온 워윅 (사촌)
디 디 워윅 (사촌)
리온틴 프라이스 (사촌)
수상수상 내역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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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정보
장르컨템포러리 R&B
팝 음악
소울 음악
댄스 팝
복음성가
펑크
뉴 잭 스윙
레이블아리스타 레코드
RCA 레코드
웹사이트
공식 웹사이트휘트니 휴스턴 공식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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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휘트니 휴스턴은 메조소프라노 음역대를 가진 가수로, 뛰어난 가창력으로 "The Voice"라는 별명을 얻었다. 2008년 롤링 스톤지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100명의 가수' 중 34위로 휴스턴을 선정하며, 그녀의 목소리를 "거대하고 빛나는 외침"이라고 표현했다. 특히, "I Will Always Love You"를 45초간 무반주로 부르는 도입부는 명곡으로 꼽힌다.

휴스턴은 넓은 음역과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노래에 담긴 감정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났으며, 라이브 공연은 스튜디오 음반보다 더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뉴욕 타임스는 그녀의 목소리를 "흠잡을 데 없이 깨끗하고 강하며, 사랑과 열망의 노래에 잘 어울린다"고 평했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휴스턴의 목소리를 "20세기 팝의 풍경을 보여주는 기념비"라고 칭하며, 전성기 시절에는 그 어떤 것도 그녀의 메조소프라노에 필적할 수 없었다고 덧붙였다. 휴스턴은 멜리스마(한 음절 안에 여러 음을 넣어 부르는 기교)를 절제하여 사용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뉴욕 타임스는 1993년 콘서트 리뷰에서 "휘트니 휴스턴은 '목소리 하나면 충분하다'라는 말을 들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팝스타 중 하나"라고 칭찬했다.

헤럴드경제가 2010년 한국 음악 전문가 21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휴스턴은 프레디 머큐리와 함께 '가장 노래를 잘 하는 팝 가수'로 선정되었고, '기교, 성량 등 기술적 능력이 가장 뛰어난 가수'로도 뽑혔다. 1980년대 MTV는 흑인 가수들의 비디오를 충분히 방송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휴스턴은 마이클 잭슨처럼 흑인 여성 가수로서 인종차별의 벽을 허무는 데 기여했다. "How Will I Know" 비디오의 성공 이후, 그녀는 MTV에서 많은 방송 횟수를 기록하는 첫 번째 흑인 여성 가수가 되었다. 올뮤직은 휴스턴이 팝 음악계에서 흑인 아티스트들의 성공에 기여한 바를 주목하며, 그녀가 마이클 잭슨의 뒤를 이어 MTV에서 성공을 거둔 초기 흑인 아티스트 중 한 명이라고 기술했다.

뉴욕 타임스는 휴스턴이 "소울, 팝, 재즈, 가스펠 보컬 전통의 연속성을 인식하고자 했던 흑인 음악계 내부에서의 움직임에 주요 촉매 역할을 했다"고 언급했다. 인디펜던트는 휴스턴이 현대 R&B와 노래 경연 대회에 미친 영향력을 마이클 잭슨과 비교하며, 그녀가 소울 가창 스타일의 기준을 세웠다고 평가했다. 휴스턴은 수많은 가수들에게 영향을 준 "가수들의 가수"로 여겨졌다. 올뮤직은 휴스턴의 보컬 기술이 거의 모든 팝 디바들과 어반 소울 계열 가수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기술했다. 롤링 스톤은 휴스턴이 여성 소울 아이콘의 이미지를 재정립했고, 머라이어 캐리부터 리한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가수들에게 영감을 주었다고 적었다.

휴스턴에게 영향을 받은 아티스트로는 셀린 디온, 머라이어 캐리, 비욘세, 레이디 가가, 브리트니 스피어스,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리한나, 제시 제이, 아리아나 그란데 등이 있다. 머라이어 캐리는 "휴스턴은 내게 큰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고, 셀린 디온은 "휘트니는 내게 놀랄 만한 영감을 주어왔었다"고 말했다. 비욘세는 휴스턴이 "그곳까지 올라가서 그녀가 했던 것을 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었다"고 언급했다.

휴스턴은 음반 판매량, 차트 성적, 수상 등에서 많은 기록을 세웠다. 총 2억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하여 팝 역사상 가장 많은 음반을 판 아티스트 중 한 명이다. 데뷔 앨범 Whitney Houston은 가장 많이 팔린 데뷔 앨범 중 하나이며, The Bodyguard Soundtrack은 팝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사운드트랙이다. 싱글 "I Will Always Love You"는 솔로 여성 아티스트의 곡으로는 팝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다. 휴스턴은 데뷔 앨범으로 빌보드 200 앨범 차트에서 14주간 1위에 올랐고, 3곡의 핫 100 싱글 차트 1위곡을 배출했다. 앨범 Whitney는 빌보드 200 차트에 데뷔와 동시에 1위에 오른 최초의 여성 가수 앨범이며, 이 앨범에서 발표된 싱글 4곡은 연속으로 핫 100 차트 1위를 차지하여, 총 7곡을 연속으로 1위에 올리는 기록을 세웠다. "I Will Always Love You"는 핫 100 차트에서 14주간 1위에 올라 솔로 여성 가수의 곡으로 최장기간 1위를 기록했다.

휴스턴은 6개의 그래미상, 1개의 에미상, 22개의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31개의 빌보드 뮤직 어워드 등을 수상했다. 22번의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수상은 여자 가수 최다 수상 기록이며, 1994년 시상식에서는 특별상인 어워드 오브 메리트를 포함해 총 8개의 상을 휩쓸었다. 2006년 기네스 세계 기록은 휘트니 휴스턴을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많은 상을 수상한 여성 아티스트'라고 발표했다.

2.1. 1963–84: 젊은 시절과 음악 경력의 시작

휘트니 엘리자베스 휴스턴은 1963년 8월 9일 뉴저지주 뉴어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해병대 출신이자 연예 기획사 최고경영자였던 존 러셀 휴스턴 주니어였고, 어머니는 가스펠 가수였던 에밀리 "시시" 드링카드 휴스턴이었다. 외사촌 오빠 게리 갈런드는 가수이자 전직 프로 농구선수였고, 친오빠 마이클은 휘트니의 투어 매니저이자 작곡가였다. 휴스턴의 부모는 모두 미국 흑인이었고, 외가 쪽 조상 중에는 아메리카 원주민과 네덜란드계 혈통이 있다고 한다. 가수 디온 워릭과 디 디 워릭은 휴스턴의 이종사촌이었다. 휴스턴의 대모는 달린 러브였고, 아레사 프랭클린은 휴스턴의 명예 이모(honorary aunt)였다. 휴스턴은 침례교인으로 자랐지만 오순절교회에도 모습을 드러냈다. 1967년 뉴어크 폭동 이후, 가족은 뉴저지주 이스트오렌지의 중산층 지역으로 이사했다.

11살 때 뉴 호프 침례교회(New Hope Baptist Church)의 청소년 가스펠 합창단에서 독창자로 공연하기 시작했고, 그곳에서 피아노 연주를 배웠다. 교회에서 불렀던 첫 번째 독창곡은 "오! 위대한 여호와시여, 저를 인도해 주소서"(Guide Me, O Thou Great Jehovah)였다. 10대 시절 뉴저지주 칼드웰에 있는 가톨릭계 여자 고등학교인 마운트 세인트 도미닉 아카데미(Mount Saint Dominic Academy)에 다녔고, 거기서 오랫동안 가장 친한 친구였던 로빈 크로포드를 만났다. 학창 시절에 어머니로부터 계속해서 노래하는 법을 배웠고, 샤카 칸, 글래디스 나이트, 로버타 플랙과 같은 자신에게 영향을 끼쳤던 가수들의 음악에 백그라운드 보컬리스트로 참여했다.

10대 시절 잠깐씩 어머니 시시가 공연하던 나이트클럽들을 순회했고, 때때로 무대에 올라 어머니와 함께 공연했다. 14살이었던 1977년, 마이클 제이거 밴드의 싱글 "Life's a Party"의 백업 가수가 되었다. 1978년에는 샤카 칸의 히트곡 "I'm Every Woman"(후에 휴스턴이 The Bodyguard Soundtrack에 수록해 더 큰 히트를 기록함) 백그라운드 보컬에 참여했고, 루 롤스와 저메인 잭슨의 앨범에도 백보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1980년대 초반, 카네기 홀에서 어머니와 노래하는 모습을 본 한 사진작가의 눈에 띄어 패션 모델로 활동을 시작했다. 세븐틴에 모습을 드러내 그 잡지의 커버를 빛낸 첫 번째 유색인종 모델들 중 한 명이 되었다. <글래머>, <코스모폴리탄>, <영 미스>와 같은 잡지의 지면에 등장했고, 캐나다 드라이 TV 광고에도 출연하며, 아름다운 외모와 옆집 소녀와 같은 친근한 매력으로 당시 최고의 주가를 올리는 10대 모델들 중 한 명이 되었다. 모델 활동을 하면서 마이클 베인혼, 빌 라스웰, 마틴 비시와 같은 프로듀서들이 진두지휘한 그룹 머티리얼의 앨범 One Down에 참여하여 레코딩 경력을 쌓아갔다. 이 프로젝트에서 휴스턴은 영국 그룹 소프트 머신의 멤버였던 휴 호퍼의 곡 "Memories"를 리메이크해 불렀다. <더 빌리지 보이스(The Village Voice)>의 음악평론가 로버트 크리스트가우는 이 곡을 "당신이 들었던 가장 멋진 발라드곡들 중의 하나일 것"이라고 평했다. 1983년 앨범 Paul Jabara and Friends의 수록곡 "Eternal Love"에서 리드 보컬을 맡았다.

이전에 여러 레코드사로부터 레코딩 제안을 받았으나 어머니는 딸이 고등학교를 마치는 것이 우선이라며 거절했다. 1983년, 아리스타 레코드사의 신인 발굴 팀(A&R) 대표자였던 제리 그리피스는 뉴욕시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휴스턴이 어머니와 공연하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아리스타의 수장이었던 클라이브 데이비스를 설득해 공연을 보도록 했고, 데이비스 역시 깊은 인상을 받고 휴스턴과 레코딩 계약을 체결했다. 그 해 6월 23일, 데이비스와 함께 <머브 그리핀 쇼>(The Merv Griffin Show)에 출연하여 TV 데뷔 공연을 펼쳤다.

아리스타와 계약을 체결했지만 데뷔 앨범 작업을 즉시 시작하지는 않았다. 아리스타 측은 다른 레코드사들이 계약 체결을 하지 않도록 확실히 하고 싶어 했고, 데이비스는 데뷔 앨범을 위해 제대로 된 곡들과 프로듀서들을 찾고자 했다. 계약 체결 후 테디 펜더그래스, 저메인 잭슨의 앨범에 게스트 보컬리스트로 참여했고 팬더그래스와의 듀엣곡 "Hold Me"는 1984년에 싱글로 발매되어 빌보드 R&B 싱글 차트 5위,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 6위를 기록하며 첫 번째 성공을 안겨 줬다.(저메인 잭슨과의 듀엣곡은 "Take Good Care of My Heart") 이 두 곡의 듀엣곡들은 후에 그래미상 '최우수 신인상'(Best New Artist) 후보 지명 경합에서 자격을 상실하는 근거가 되었다.

2.2. 1985-86: 데뷔 앨범 ''Whitney Houston''과 국제적인 명성

휘트니 휴스턴은 2년간의 준비 끝에 1985년 2월, 마이클 매서, 카시프, 저메인 잭슨, 나라다 마이클 월든과 같은 프로듀서들이 참여한 데뷔 앨범 Whitney Houston을 발표하였다. 미국의 대중음악 잡지인 <롤링 스톤>은 휴스턴을 "몇 년간 등장한 신인들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목소리를 지닌 가수"라고 칭찬했고, <뉴욕 타임즈>는 그 앨범을 "특출한 보컬 재능으로 선보인 인상적이면서도 보수적인 색채의 앨범"이라 평했다. 아리스타 레코드사는 미국, 영국, 그 외 다른 유럽 국가들에서 각기 다른 세 개의 싱글들을 첫 싱글로 내세우며 그녀의 데뷔 앨범을 홍보했다.

미국에서는 흑인음악 시장에서 먼저 휴스턴의 입지를 다지기 위해서 R&B/소울 발라드 "You Give Good Love"를 앨범의 첫 싱글로 발매하였다. 이 곡은 빌보드 핫 100 차트 3위, 알앤비 싱글 차트에서는 1위에 올랐다. 데뷔 앨범에서의 두 번째 싱글은 "Saving All My Love for You"였고, 이 곡은 미국과 영국의 싱글 차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Thinking About You"가 알앤비 싱글 차트에서 10위에 오른 뒤 "How Will I Know"가 앨범에서 공식적인 세 번째 싱글로 발표되었다. 이 곡은 빌보드 핫 100, 알앤비 싱글 차트, 어덜트 컨템포러리 차트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1986년 봄, 앨범 Whitney Houston빌보드 200 앨범 차트에서 1위에 올랐고, 이후 14주간 그 자리를 지켰다. 앨범에서의 네 번째이자 마지막 싱글이었던 "Greatest Love of All"이 5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라 3주간 정상을 지키면서 휴스턴은 데뷔 앨범에서 세 곡의 1위 곡을 배출한 첫 번째 여성 가수가 되었다. 1986년 빌보드지 연말 결산 차트에서 휘트니 휴스턴은 '올해의 아티스트'로 선정되었고, 데뷔앨범은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되어 빌보드지 역사상 최초로 여성 가수의 앨범이 연말 결산 차트 1위에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앨범 Whitney Houston미국 음반 산업 협회(RIAA)로부터 13×플래티넘 인증을 받았고, 전 세계적으로 2,500만 장 이상 팔려나가 팝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데뷔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1986년 2월, 제28회 그래미상 시상식에서 휴스턴은 '올해의 앨범'을 포함하여 3개 부문의 후보로 지명되었고, "Saving All My Love for You"로 그녀 생애의 첫 번째 그래미상인 '팝 부문 최우수 여자 보컬상'을 수상했다. 또한 그 시상식에서의 "Saving All My Love for You" 공연으로 에미상에서 '버라이어티 또는 음악 프로그램 부문에서의 가장 뛰어난 개인 공연상'을 수상했다. 휴스턴은 1986년과 1987년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각각 2개, 5개의 상을 수상했다. 1987년 29회 그래미상에서도 "Greatest Love of All"로 '올해의 레코드' 부문의 후보 지명을 받았다. 앨범 Whitney Houston은 <롤링 스톤>지가 선정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500장의 앨범' 중 하나(257위)로 선정되었고,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서 선정한 최고의 앨범 200 리스트에도 순위에 올랐다(46위).

2.3. 1987-89: ''Whitney'', 세계적인 크로스오버 슈퍼스타

1987년 모먼트 오브 트루스 월드 투어 중 공연하는 휴스턴
1987년 모먼트 오브 트루스 월드 투어 중 공연하는 휴스턴

1987년 6월, 휴스턴의 두 번째 앨범 위트니가 발매되었다. 롤링 스톤지는 "이 재능이 향해 온 좁은 통로는 답답하다"며 비평했지만,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휴스턴은 빌보드 200 차트에서 1위로 데뷔한 최초의 여성 가수가 되었고, 미국과 영국에서 동시에 1위에 오른 최초의 아티스트였다. 또한 네덜란드, 뉴질랜드, 독일, 스웨덴, 스위스, 오스트레일리아,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캐나다 등 차트에 진입한 모든 국가에서 1위를 차지했다. 이 앨범은 처음 11주 동안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유지했는데, 이는 20세기 여성 아티스트의 기록이자 10주 이상 연속 1위를 차지한 여섯 개의 앨범 중 하나였다.

5월에 먼저 발매된 앨범의 첫 싱글 "아이 워너 댄스 위드 섬바디 (후 러브스 미)"는 빌보드 핫 100 1위를 비롯해 호주, 서독, 영국 등 17개국 싱글 차트 정상을 차지하며 큰 히트를 기록했다. 이후 "디든 위 올모스트 해브 잇 올", "소 이모셔널", "웨어 두 브로큰 하츠 고"가 연이어 빌보드 핫 100 1위에 오르면서, 휴스턴은 7곡 연속 1위라는 신기록을 세웠다. 이는 비틀즈비지스의 6곡 연속 1위 기록을 깬 것이며, 2024년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고 있다. 또한 한 앨범에서 4개의 1위 싱글을 배출한 최초의 여성 아티스트가 되었다. 위트니는 전 세계적으로 2천만 장 이상, 미국에서만 1천만 장 이상 판매되어 다이아몬드 인증을 받았다.

휴스턴은 이 앨범으로 올해의 앨범 부문 그래미상 후보에 올랐고, "아이 워너 댄스 위드 섬바디 (후 러브스 미)"로 두 번째 그래미상을 수상했다. 그 외에도 4개의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와 1개의 소울 트레인 뮤직 어워드를 받았다. 1987년 7월 시작한 두 번째 월드 투어 모먼트 오브 트루스 월드 투어는 북미 지역에서만 20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그 해 최고 수익을 올린 여성 투어이자 1987년 북미 투어 톱 10에 들었다. 런던 웸블리 아레나 8회 매진을 포함해 총 150회 공연을 했다.

1987년 포브스 40인 명단에서 8위에 오르며 그 해에만 43를 벌었다. 이는 흑인 여성 연예인 중 1위였으며, 빌 코스비에디 머피에 이은 3위였다.

1988년 6월 11일, 런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넬슨 만델라 70세 생일 기념 공연에 참가해 아파르트헤이트 반대 운동을 지지했다. 이 공연은 5억 명 이상이 시청했고, 1의 기부금을 모았다. 휴스턴은 1980년대 초 모델 시절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거래하는 에이전시와의 협력을 거부하기도 했다. 같은 해 8월,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흑인연합장학재단(United Negro College Fund) 자선 콘서트를 열어 250를 모금했다. 1988 서울올림픽 NBC 방송을 위해 부른 "원 모먼트 인 타임"은 미국에서 5위, 영국과 독일에서 1위를 기록했다. 1989년 1월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휘트니 휴스턴 재단'(The Whitney Houston Foundation For Children)을 설립해 노숙, 암, 에이즈 등으로 어려움을 겪는 어린이들을 도왔다.

두 앨범의 대성공으로 마이클 잭슨에 이어 전 인종, 전 계층의 사랑을 받는 슈퍼스타가 되었지만, 일부 흑인 비평가들은 그녀가 상업적 성공을 위해 흑인 음악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버렸다고 비판했다. 1989년 소울 트레인 뮤직 어워드에서 후보로 호명되자 객석에서 야유가 나오기도 했다. 휴스턴은 1990년 12월 에센스(Essence) 인터뷰에서 "나는 노래하는 법을 알뿐이다. 음악은 피부색이 아니다"라며, "음악계에서 긴 생명력을 가지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어떤 방식이 있고, 난 그렇게 했고 부끄럽지 않다"고 답했다. 1991년 5월 에보니(Ebony) 인터뷰에서는 "그들[야유했던 사람들]은 내가 너무 많은 상을 받는 것에 넌더리가 났고, 더 이상 내가 상 받는 걸 원치 않았다. 난 좋지도 고맙지도 않았다. 무시하면 그만이다"라고 말했다.

2.4. 1990-91: ''I'm Your Baby Tonight'', "The Star Spangled Banner"

휴스턴은 1990년 11월에 발매된 세 번째 앨범 I'm Your Baby Tonight에서 좀 더 도회적인 느낌의 알앤비/소울 곡들을 대거 수록하며 음악적 변신을 꾀했다. 롤링 스톤은 "그녀의 앨범들 중 가장 통합된 앨범"이라고 평가한 반면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그녀의 음악적 방향 전환을 "피상적"이라고 평가했다. 첫 싱글 "I'm Your Baby Tonight"과 두 번째 싱글 "All the Man That I Need"는 모두 빌보드 핫 100과 알앤비 싱글차트의 정상을 차지했고, 후속 싱글 "Miracle"과 "My Name Is Not Susan"은 핫 100차트에서 각각 9위와 20위를 기록했다. 1993년 그래미상에서 '알앤비 부문 최우수 여자 보컬상'(Best R&B Vocal Performance, Female) 후보 지명을 받은 "I Belong to You"는 알앤비 싱글차트에서 10위까지 올랐고, 스티비 원더와의 듀엣곡 "We Didn't Know"는 같은 차트에서 20위를 기록했다. 앨범은 빌보드 200 앨범차트에서는 최고 순위 3위, 알앤비 앨범차트에서는 8주간 1위를 기록했고, 미국 음반 산업 협회로부터 4×플래티넘 인증을 받으며 세계적으로 1,200만장 이상이 팔렸다.

걸프 전쟁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1991년 1월 27일, 휘트니 휴스턴은 마이애미 탐파 스타디움에서 개최된 제25회 수퍼볼 경기에서 미국 국가인 "The Star Spangled Banner"를 공연했다. 휴스턴측 대변인은 "이것은 밀리 바닐리 사건과는 다른 것이다. 그녀는 마이크가 꺼져 있는 상태에서 라이브로 노래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 소음이 섞일 것에 대비한 기술적인 결정이었으며 이것은 이러한 행사의 보통적인 절차이다"라고 발표했다. 이 공연은 많은 대중들의 요청으로 상업적인 싱글과 비디오로 만들어져 발매되었고, 핫 100 차트에서 20위에 올랐다. 휴스턴은 싱글과 비디오로 거둔 수익 500를 걸프전 참전 군인들을 돕기 위한 재단(American Red Cross Gulf Crisis Fund)에 기부했다.

휴스턴의 슈퍼볼 미국 국가 공연은 많은 비평가들로부터 '역사상 최고의 미국국가 공연'이었다는 찬사를 얻었고 다른 가수들의 미국 국가 공연 시 평가 기준이 되었다. 롤링 스톤은 "그녀의 공연은 강력한 애국심을 불러일으킬만한 것이었다. 잊을 수 없는 공연"이었다고 평했고, VH1은 그 공연을 TV를 통해 방영된 100개의 가장 위대한 로큰롤 순간들, TV를 뒤흔든 100개의 순간들 중 하나로 선정했다. 2001년 9·11 테러가 있은 직후, 이 공연은 싱글로 재발매되어 그 수익금 전체가 테러 공격의 희생자들을 위해 기부되었다. 이 싱글은 재발매되었던 당시 핫 100 차트에 재진입하여 최고 순위 6위를 기록했고, 1200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미국 음반 산업 협회로부터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1991년 3월, 휴스턴은 HBO와 함께 걸프전 참전 군인들과 그들의 가족들을 위해 Welcome Home Heroes with Whitney Houston 콘서트를 개최했다. 3,500명의 군인들과 가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펼쳐진 이 공연은 HBO에 의해 생중계되었고, HBO 측에서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시청 제한을 풀어 HBO 역사상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그 후 그녀는 그 해 가을까지 세 번째 월드투어인 I'm Your Baby Tonight World Tour를 통해 미국과 유럽, 일본 등지를 오가며 100회 이상의 공연을 펼쳤다.

1991년 Welcome Home Heroes 콘서트에서 "Saving All My Love for You"를 공연하고 있는 휘트니 휴스턴
1991년 Welcome Home Heroes 콘서트에서 "Saving All My Love for You"를 공연하고 있는 휘트니 휴스턴

2.5. 1992-94: 바비 브라운과의 결혼, ''The Bodyguard''

휴스턴은 1980년대에 미식축구 스타 랜달 커닝햄과 연인 사이였고, 배우 에디 머피와는 데이트를 즐기기도 했다. 1989년 소울 트레인 뮤직 어워드 시상식장에서 R&B 가수 바비 브라운과 만나 3년간 교제 후 1992년 7월 18일 결혼했다. 1993년 3월 4일, 딸 바비 크리스티나 휴스턴 브라운을 출산했다.

1980년대에 두 장의 앨범으로 음악계에서 큰 성공을 거둔 후 로버트 드니로, 퀸시 존스, 스파이크 리 등 영화계 유명 인사들의 영화 출연 제의가 쏟아졌다. 1992년, 휴스턴은 첫 주연 영화 《보디가드》에 출연하여 케빈 코스트너와 호흡을 맞췄다. 그녀는 미치광이 팬에게 스토킹당하는 인기 가수 레이철 매런 역을 연기했다. 흑백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이 영화는 당시 할리우드에서 금기시되던 주제였으나, 휴스턴의 크로스오버 이미지는 관객들이 크게 신경 쓰지 않도록 만들었다. 1993년 <롤링 스톤>지와의 인터뷰에서 휴스턴은 "사람들은 휘트니 휴스턴이 누구인지 안다. 나는 흑인이다. 그것은 누구라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휴스턴의 연기는 <워싱턴 포스트>로부터 "터무니없이 겪게 되는 일 속에서도 아무 탈 없이 나오는 것이 가능하다는 듯이 휴스턴 자신을 연기하고 있을 뿐이다"라는 혹평을 받았고, <뉴욕 타임즈>는 영화상에서 열정이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영화는 미국에서만 120, 전 세계적으로 410의 흥행 수입을 올렸다. 한국에서도 1992년 12월 5일 개봉되어 서울에서만 백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서울 개봉관 공식 집계 관객 수 747,238명) 당시 최고의 흥행을 기록했다.

영화의 사운드트랙 역시 기록적인 성공을 거두었다. 휴스턴은 총 6곡에 참여했고, 그녀가 부른 곡들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돌리 파튼이 1974년에 발표했던 "I Will Always Love You"를 리메이크한 곡은 첫 싱글로 발매되어 <롤링 스톤>지와 로부터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 곡은 핫 100 차트 등장 3주 만에 1위에 올라 14주간, 알앤비 싱글차트에서 11주간 1위를 기록하며 당시 최장기간 1위 기록을 경신했다. 1992년 12월 마지막 주에는 632,000장의 싱글이 팔리며 여자가수 곡으로는 한 주 최다 판매량 기록을 경신했고, 미국에서만 450만 장 이상의 피지컬 싱글 판매량을 기록하며 여성가수 곡으로는 가장 많이 팔린 싱글이 되었다. 미국음반산업협회(RIAA)로부터 4×플래티넘 인증을 받으며 RIAA 역사상 최초로 그 레벨의 인증을 받은 여자가수 곡이 되었다. 영국에서도 162만 장의 싱글 판매량을 기록하며 싱글차트 10주간 1위를 차지, 영국 싱글차트 역사상 여성 솔로가수 곡으로는 최장기간 정상을 차지한 곡이 되었다. 미국과 영국 외에도 거의 모든 국가의 싱글차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적으로 2,000만 장 이상 판매되어 여성 솔로 가수 곡으로는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싱글로 기록되고 있다. "I Will Always Love You"가 핫 100 차트 10위 안에 머무르는 동안 후속 싱글 "I'm Every Woman"(샤카 칸의 곡 리메이크, 최고 순위 4위)과 "I Have Nothing"(최고 순위 4위)이 발표되어 1993년 3월 3주간 세 곡이 동시에 톱 11안에 머무르는 기록을 세웠다. "Run to You"는 핫 100 차트에서 31위에 올랐다.

사운드트랙 앨범은 빌보드 200 앨범차트 등장 2주 만에 정상에 올라 1993년 봄까지 20주 동안 1위를 지켰다. 이는 닐슨 사운드스캔 집계(1991년) 이후 최장기간 1위 기록이었으며, 2012년 아델21 앨범(24주)이 기록을 경신했다. 1992년 크리스마스 주에는 1,061,000장이 팔리며 닐슨 사운드스캔 집계 이후 한 주 판매량 100만 장을 넘긴 첫 번째 앨범이 되었다. 미국 음반 산업 협회(RIAA)로부터 18× 플래티넘을 인증받았고, 20세기 가장 많이 팔린 사운드트랙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2014년 10월까지 미국 내에서만 1,214만 장(닐슨 사운드스캔 집계, 1991년 이후 앨범 판매량 6위)이 팔렸고, 한국에서도 120만 장 이상 팔리며 외국가수 음반 최다 판매량 기록을 세웠다. 보디가드 사운드트랙은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4,500만 장 이상 팔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사운드트랙 앨범이다.

1994년 넬슨 만델라의 미국 방문을 기념하는 백악관 만찬에서 공연 중인 휴스턴
1994년 넬슨 만델라의 미국 방문을 기념하는 백악관 만찬에서 공연 중인 휴스턴


휴스턴은 사운드트랙의 성공으로 1993-94년 각종 음악 시상식에서 주요 부문을 석권했다. 1994년 제36회 그래미상에서 '올해의 앨범(The Bodyguard Soundtrack)', '올해의 레코드'("I Will Always Love You")' 등 3개 부문, 1994년 제21회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에서 공로상 포함 8개 부문(한 해 최다부문 수상 기록)을 수상했다. 그 외 11개의 빌보드 뮤직 어워드, 3개의 소울 트레인 뮤직 어워드, 5개의 NAACP 이미지 어워드, 1개의 브릿 어워드, 5개의 월드 뮤직 어워드 등을 수상했다. 영화와 사운드트랙 성공 후 The Bodyguard World Tour를 통해 120회가 넘는 공연을 펼쳤다. 휴스턴은 영화, 공연, 음반 등으로 33의 수익을 올려 1993-94년 오프라 윈프리,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수입을 올린 여성 연예인이 되었다.

1994년 10월, 휴스턴은 아파르트헤이트 철폐 후 남아프리카 공화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넬슨 만델라의 미국 방문을 기념하는 백악관 만찬에서 "Love's in Need of Love Today", "People", "Greatest Love of All" 등을 불렀다. 11월에는 넬슨 만델라 대통령 선출을 기념, 남아프리카 공화국 3개 도시에서 Whitney―The Concert for a New South Africa 콘서트를 개최하여 20만 명 넘는 관객을 동원했다. 휴스턴은 만델라 선출 이후 통합된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방문한 첫 주요 뮤지션이었고, 그녀의 공연은 만델라 취임식 이후 가장 크게 펼쳐진 미디어 행사로 간주되었다.

2.6. 1995–97: 영화 활동과 사운드트랙, ''Waiting to Exhale'', ''The Preacher's Wife'' 그리고 ''Cinderella''

1995년, 휘트니 휴스턴은 영화 《사랑을 기다리며》(Waiting to Exhale)에 앤절라 배싯, 로레타 더바인, 릴라 로숀과 함께 출연했다. 이 영화는 인간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네 흑인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었으며, 휴스턴은 유부남과 사랑에 빠지는 TV 프로듀서 서배너 잭슨 역을 연기했다. 휴스턴은 이 영화가 "흑인 여성의 이미지를 위한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출연을 결심했다고 말하며, "전문가로서의 면모와 배려심 많은 엄마로서의 모습을 모두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영화는 개봉 첫 주 미국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미국 내 수입 67, 전 세계 수입 81를 기록하며 흥행에 성공했다. 이는 흑인을 주 관객층으로 하는 영화도 성공할 수 있음을 증명했고, 이후 《레게 파티》(1998)나 2000년대에 인기를 얻은 타일러 페리의 영화들처럼 출연진 전원이 흑인인 영화도 상업적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또한, 이 영화는 기존 영화에서 전형적으로만 그려지던 흑인 여성들을 중산층 시민으로 묘사하여 주목받았다. 영화는 앙상블 캐스트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뉴욕 타임스는 "휴스턴은 《보디가드》에서 팝스타를 연기하며 방어적이고 거만한 태도를 보였지만, 이 영화를 통해 이를 떨쳐냈다"고 평했다. 휴스턴은 이 영화로 1996년 NAACP 이미지 어워드에서 '영화 부문 최우수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영화의 사운드트랙은 휴스턴과 베이비페이스가 제작했다. 베이비페이스는 원래 앨범의 모든 곡을 휴스턴이 녹음하길 원했지만, 휴스턴은 강한 여성에 관한 영화의 메시지에 맞게 뛰어난 흑인 여성 보컬리스트들을 모아 앨범을 만들고 싶어했다. 그 결과, 앨범에는 휘트니 휴스턴 외에도 메리 J. 블라이지, 토니 브랙스턴, 아레사 프랭클린, 패티 라벨, 브랜디 등 당대 최고의 알앤비 여성 가수들이 대거 참여했다.

휴스턴의 "Exhale (Shoop Shoop)"은 1995년 11월 25일자 빌보드 핫 100 싱글차트에서 1위로 데뷔하며, 마이클 잭슨의 "You Are Not Alone", 머라이어 캐리의 "Fantasy"에 이어 역사상 세 번째로 1위로 데뷔한 싱글이 되었다. 이 곡은 이후 11주간 2위에 머물러 2위에 최장 기간 머문 곡이 되었고, 알앤비 싱글차트에서는 1위로 데뷔한 후 8주간 정상을 지켰다. 시시 와이넌스와의 듀엣곡 "Count on Me"는 핫 100차트에서 8위에 올랐고, 휴스턴이 사운드트랙에 참여한 세 곡 중 마지막으로 싱글로 발표된 "Why Does It Hurt So Bad"는 최고 순위 26위를 기록했다. 앨범은 빌보드 200 앨범차트에서 1위로 데뷔하여 5주간 정상을 차지했고, 미국 음반 산업 협회로부터 7×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다.

사운드트랙은 평론가들로부터도 좋은 평가를 받았다. 워싱턴 포스트의 제프리 하임스는 "올해 최고의 팝, 어덜트 컨템포러리 앨범"이라고 평했고, 뉴욕 타임스의 제임스 헌터는 이 앨범이 "새로운 리듬앤블루스의 상업적, 예술적 정점"이라고 말했다. 엔터테인먼트 위클리는 "앨범은 휘트니 휴스턴이 부른 첫 트랙에 의해 틀이 잡혀 당신이 기대했던 것처럼 부드럽고 쉽게 진행된다. 이 사운드트랙은 감각적인 서스펜스에서 맴돌며 숨을 내쉬기를 기다린다"라고 언급했고, 2011년 발표한 '100장의 최고 영화 사운드트랙' 순위에서 이 앨범을 88위로 선정했다.

1996년, 휴스턴은 《프리쳐스 와이프》(The Preacher's Wife)에서 덴절 워싱턴과 함께 주연을 맡아 가스펠을 부르는 목사 아내를 연기했다. 이 영화는 로레타 영, 데이비드 니븐, 케리 그랜트가 주연한 1948년작 《주교의 부인》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었다. 휴스턴은 이 역을 맡으며 출연료로 10를 받아 당시 할리우드에서 가장 높은 출연료를 받는 여배우 중 한 명이 되었다. 흑인 출연진으로 구성된 이 영화는 미국 박스오피스에서 48가 넘는 수입을 거두었다.

프리쳐스 와이프》에서 휴스턴의 연기는 이전 출연작보다 훨씬 좋은 평가를 받았다.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은 "휴스턴은 도덕적이면서 동시에 교태를 부리는 특별한 재능을 보여주며 (영화에서 천사 역을 맡은 덴절 워싱턴보다 더) 천사같은 그녀 자신을 드러낸다"고 언급했고, "그녀는 영화 상에서 온화하지만 활기찬 따뜻함을 물씬 풍긴다. 특히나 멋진 목소리로 주를 찬양하는 노래를 부를 때 더욱 두드러진다"고 덧붙였다. 휴스턴은 이 영화에서 선보인 연기로 NAACP 이미지 어워드에서 '영화 부문 최우수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영화 사운드트랙은 휴스턴과 머빈 워런이 공동 제작한 가스펠 곡들로 채워졌다. 애틀랜타의 한 교회에서 조지아 미사곡 합창단과 함께 녹음한 6곡 외에 가스펠계 전설 셜리 시저와의 듀엣곡도 수록되었다. 앨범은 대체로 호의적인 평가를 받았다. USA 투데이 등 몇몇 매체에서는 휴스턴의 노래에서 드러나는 감정의 깊이에 주목했고, 영국 타임스는 "그녀가 35인조 조지아 미사곡 합창단과 전력을 다해 노래를 부르는 것을 듣게 되면 그녀의 경이로운 목소리가 무엇을 위해 만들어졌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다. 사운드트랙은 미국 음반 산업 협회로부터 3× 플래티넘 인증을 받았고, 세계적으로 600만 장 이상 팔리며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가스펠 앨범으로 기록되었다. 앨범에서 발표된 첫 싱글 "I Believe in You and Me"는 핫 100 차트 4위까지 올랐고, 후속 싱글 "Step by Step"(15위)과 "My Heart Is Calling"(77위)도 소폭의 히트를 기록했다.

1997년, 휴스턴의 제작사는 브라운하우스 프로덕션으로 이름을 바꾸고 흑인 여성 제작자인 데브라 마틴 체이스를 영입했다. 당시 영화나 TV에서 미국 흑인들을 묘사하는 방식이 점차 나아지고 있었지만, 그들은 이전에는 스크린에 담아내지 못했던 미국 흑인들의 다양한 삶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들의 첫 번째 프로젝트는 《로저스와 해머스타인의 신데렐라》를 TV 방송용으로 리메이크한 작품이었다. 휴스턴은 이 프로젝트에서 공동 제작자로 참여했고, 영화에도 요정대모 역으로 출연하여 브랜디, 제이슨 알렉산더, 우피 골드버그 등과 함께 연기했다. 휴스턴은 1993년에 이미 신데렐라 역을 제안받았으나 당시 다른 프로젝트로 인해 성사되지 못했다. 이 영화는 다양한 인종의 출연진과 전형적이지 않은 메시지가 주목할 만한 점이었다. ABC는 약 6천만 명이 시청한 이 영화로 16년 만에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1998년 에미상에서 《신데렐라》는 '최우수 버라이어티, 뮤지컬 또는 코미디 스페셜' 부문을 비롯해 총 7개 부문의 후보로 지명되었다.

1997년 10월, 휴스턴은 워싱턴 D.C.의 역사적인 컨스티튜션 홀(Constitution Hall)에서 Classic Whitney Live from Washington, D.C.라는 제목의 콘서트 2회를 개최했다. 이 콘서트에서 그녀는 아레사 프랭클린, 다이애나 로스, 디온 워릭과 같이 자신에게 영향을 미쳤던 선배 여성 가수들의 히트곡들과 여러 고전곡을 공연했고, 두 번째 날 공연은 HBO를 통해 생중계되었다. 한국에서도 음악 채널인 Mnet을 통해 10월 5일자 공연이 녹화 방송되었다. 이 공연에서 모금된 300는 어린이 보호기금에 기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