닝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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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닝마파는 티베트 불교의 한 종파로, 아디 부처 사만타바드라를 원초적 부처로 여기며, 구루 빠드마삼바바를 중요한 스승으로 숭배한다. 닝마파는 티베트 불교 초창기에 번역된 경전을 따르는 구역(舊譯) 전통을 고수하며, 테르마(숨겨진 보물) 전통과 족첸(Dzogchen) 가르침을 특징으로 한다. 닝마파는 아홉 가지 승차(야나) 체계를 통해 수행의 단계를 구분하며, 카마(구전 경전), 테르마(매장 경전), 탁난(청정현현)의 세 가지 가르침으로 분류한다. 주요 경전으로는 닝마 규붐, 마하요가, 족첸 문헌 등이 있으며, 파드마삼바바를 비롯한 많은 주요 인물들이 존재한다. 닝마파는 중앙집권적인 구조가 없고, 분권화된 형태로 운영되며, 한국과의 관계는 파드마삼바바에 대한 관심 증가와 함께 점차 주목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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닝마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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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이름 | 닝마파 |
한자 표기 | 寧瑪派, 紅教 |
티베트어 | རྙིང་མ་ |
로마자 표기 | rnying ma |
의미 | 오래된 학교 |
다른 이름 | སྔ་འགྱུར་རྙིང་མ། |
다른 이름 로마자 표기 | snga 'gyur rnying ma |
다른 이름 의미 | 고대 번역의 명령 |
주요 인물 | |
창시자 | 파드마삼바바 |
교리 | |
주요 가르침 | 비밀 만트라 대원만 마하요가 아누요가 아티요가 구햔가르바 탄트라 |
삼매 | 카닥 륜드룹 족첸 |
특징 | |
특징 | 탄트라 수행 중심 밀교 전통 고대 번역 강조 |
주요 특징 | 티베트 불교의 가장 오래된 학파 |
역사 | |
기원 | 8세기 티베트 |
설립 시기 | 티베트 불교의 초기 형성 시기 |
기타 | |
관련 학파 | 카규파 겔룩파 사캬파 |
종교 | 불교 |
2. 역사
닝마파의 역사는 티베트에 불교가 전래된 초기부터 시작된다. 적어도 토토리 냔첸 왕 시대부터 티베트, 특히 동부 지역에는 불교가 존재했다.[3] 송첸 감포 왕의 통치 기간에는 티베트의 세력이 확장되고, 문자 체계가 채택되었으며 불교가 장려되었다.
760년경, 트리송 데첸 왕은 빠드마삼바바와 날란다의 주지 샨타락시타를 티베트로 초청하여 불교를 전파하고자 했다. 트리송 데첸은 모든 불교 경전을 티베트어로 번역할 것을 명령했고, 꼼빠, 샨타락시타, 108명의 번역가, 그리고 꼼빠의 가장 가까운 제자 25명은 수년 동안 대규모 번역 사업에 매달렸다. 이 시대의 번역은 "구역(Old Translations)" 및 "초기 번역 학파(Early Translation School)"로 알려져 있으며, 티베트로의 방대한 경전 전승의 기초를 이루었다. 꼼빠는 주로 밀교(tantra) 번역을 감독했고, 샨타락시타는 경전(sutra)에 집중했다. 꼼빠와 샨타락시타는 또한 티베트 최초의 고마(gompa, 불교 사원)인 삼예 사원을 설립했다.
그러나 9세기 중반 티베트 제국이 붕괴되면서 이러한 발전은 중단되었고, 이후 1세기 동안 내전과 분권화의 시기를 겪게 된다. 랑달마 왕(836~842년)의 통치 시대에는 불교가 박해받고 대부분 지하로 숨어들었다. 랑달마는 승려와 수녀들을 박해하고 불교를 없애려고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몇몇 승려들은 티베트 북동부의 암도로 피신하여 승려 서품 계승을 보존했다.[3]
9~10세기에는 조첸 "마음 계열"(셈데)로 분류될 새로운 유형의 경전이 인기를 얻었다. 이 경전들 중 일부는 인도 작품의 번역으로 제시되지만, 대부분은 티베트 원작으로 추정된다. 이 경전들은 마음의 참된 본성은 공하고 광명하다고 주장하며 전통적인 수행 방식을 거부하는 경향을 보였다.[4] 조첸 경전 전통에 대한 강조는 닝마파의 중심 특징이 되었다.
11세기부터 티베트에 바즈라야나 불교를 재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고, 이는 새로운 번역 작업으로 이어져 사르마 "신역(新譯)" 학파로 알려진 새로운 바즈라야나 학파의 기반을 마련했다. 그 당시 닝마파들은 자신들을 독립된 집단으로 보기 시작했고, "닝마"라는 용어는 "구역(舊譯)" 또는 "고역(古譯)"을 계속 사용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다. 롱좀 초키 장포는 11세기 닝마파 저술가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중관과 같은 수트라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불교 밀교와 대종경에서 발견되는 가르침보다 열등하다고 보았다.
11세기부터 닝마파는 테르마 전통을 확장했다. 테르마는 빠드마삼바바에 의해 숨겨졌다가 터톤(보물 발굴자)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고대 스승들의 계시된 보물 경전이다. 11세기에 해당하는 최초의 터톤들은 상예 라마와 드라파 농셰였다. 냥렐 님마 외저(1136~1204)는 빠드마삼바바 신화의 주요 전파자였다. 구루 쵸왕(1212~1270) 또한 빠드마삼바바 신화를 발전시키는 데 영향력이 있었다.
19세기에는 동티베트 캄 지역 델게 왕국의 보호 아래, 종파를 초월하여 교리를 배우는 초종파 운동(리메 운동)이 전개되어 겔룩파의 공격에 저항했다. 잠양 켄체 왕포, 잠곤 콩트룰 로드로 타예, 초규르 데첸 림파 등이 중심이 되어, 산일(散逸) 직전이었던 신구 탄트라 관련 문헌을 수집하여,『린첸 텔즈』60권과『담가크 주』18권 등의 대전집으로 정리했다.
현재, 닝마파 육대 사원은 족첸 사원, 카톡 사원, 페유르 사원, 셰첸 사원, 민돌링 사원, 돌제탁 사원이다. 이 사원들은 문화대혁명 시기에 피해를 입었지만, 이후 복원되어 닝마파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또한, 티베트 본토와 네팔 등지에서도 닝마파 사원들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으며, 닝마파의 가르침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2. 1. 기원
닝마파는 빠드마삼바바에서 기원하며, 그의 출현과 활동은 석가모니 부처에 의해 예언되었다고 믿어진다.[16] 닝마파의 기원은 또한 가랍 도르제와 예셰 촉얄에게서 찾을 수 있다.
760년경, 티베트 왕 티손 데첸은 인도에서 빠드마삼바바와 날란다 대학의 승려 샨타락시타를 초빙했다.[16] 티손 데첸은 모든 불교 경전을 티베트어로 번역하도록 요청했다. 빠드마삼바바, 샨타락시타, 108명의 번역가, 빠드마삼바바의 직계 제자 25명이 이 거대한 번역 프로젝트에 수년간 매달렸다. 이 업적은 후대 티베트 불교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빠드마삼바바는 주로 밀교 경전인 탄트라의 번역을 감독하고, 샨타락시타는 대승불교 경전인 수트라를 담당했다. 또한, 빠드마삼바바와 샨타락시타는 협력하여 삼예 사원 건설에 착수하여 767년에 건설을 시작, 771년에[17][18][19] 낙성하였다.
이 시대의 번역은 "구역(Old Translations)" 및 "초기 번역 학파(Early Translation School)"로 알려져 있으며, 티베트로의 방대한 경전 전승의 기초가 되었다.
이때 승려의 7계급이 처음으로 제정되었다. 또한 중국 승려 마하연(마가연)을 삼예 종론 끝에 티베트에서 추방하고, 선종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인도 불교를 정통으로 삼았다.[20] 이러한 활동을 기반으로 티베트에 최승밀교를 기반으로 한 불교가 확립되었다.
840년대부터 랑달마 시대에 본교도와 불교도 간의 정치 종교적 갈등으로 혼란이 발생하여 토번 왕조가 멸망함에 따라 왕실의 보호를 잃은 불교는 표면적으로는 쇠퇴한 것처럼 보였지만, 불교도가 된 유력한 씨족 계열에 계승되었다.[21] 그들은 재가 밀교 수행자 집단을 형성하면서 중앙아시아와 중국에서도 계속 승려를 초빙하여 고대 탄트라 문헌의 번역 활동을 계속했다. 이러한 고대 탄트라가 rNying ma bka' ma|닝마 카마bo라고도 불리는 문헌군이며, 후에 발전하는 닝마파의 교리의 근거가 되었다.
2. 2. 발전
11세기부터 티베트에 바즈라야나 불교를 재도입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이는 새로운 번역 작업으로 이어졌고, 이는 집합적으로 사르마 "신역(新譯)" 학파로 알려진 새로운 바즈라야나 학파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 학파들은 닝마 까논의 옛 번역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 닝마파들은 자신들을 독립된 집단으로 보기 시작했고, "닝마"라는 용어는 "구역(舊譯)" 또는 "고역(古譯)"을 계속 사용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데 사용되기 시작했다.[4] 롱좀(약 11세기)과 냥렐과 같은 닝마파 저술가들은 사르마 번역가들의 비판으로부터 옛 경전을 옹호하고 닝마 전통의 신화와 철학에 대한 기반을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롱좀 초키 장포는 11세기 닝마파 저술가 중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로, "광범위한 외전과 내전 주석"을 저술했다. 그는 중관과 같은 수트라 가르침은 궁극적으로 불교 밀교와 대종경에서 발견되는 가르침보다 열등하다고 보았다. 롱좀은 또한 닝마 전통의 주요 밀교인 구협가르바 밀교에 대한 주석을 저술했다.


사르마 학파의 부상을 가져온 불교의 새로운 전파 시대에는, 특히 '공간 계열'( 롱데)과 '교수 계열'( 멩가그데)(11~14세기)을 중심으로, 새로운 교리와 명상 수행을 담은 새로운 닝마 대종경 경전이 급증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17대 밀교였다.[4] 사르마 학파의 비판에 맞서 이러한 새로운 경전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닝마 학파는 보통 파드마삼바바에 의해 숨겨졌다가 터톤(보물 발굴자)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고대 스승들의 계시된 보물 경전인 "테르마"의 전통을 확장했다. 11세기에 해당하는 최초의 터톤들은 상예 라마와 드라파 농셰였다. 또 다른 중요한 터톤인 냥렐 님마 외저(1136~1204)는 자넷 기야초에 따르면 파드마삼바바 신화의 주요 전파자였다. 구루 쵸왕(1212~1270) 또한 파드마삼바바 신화를 발전시키는 데 영향력이 있었다. 냥렐과 쵸기 왕축(1212~1270)은 터톤의 "태양과 달"로 알려져 있으며, 릭드신 고뎀(1337~1409)과 함께 "3대 터톤"으로 불린다.
이 시대에는 세 가지 주요 닝마 문헌의 종류가 확립되었다. 불교 전파 초부터 중단 없이 번역되고 전승된 것은 "전승 계율"(''bka' ma'')이라고 하며, 숨겨진 "보물"은 ''gter ma''라고 하며, 마지막으로 개별 티베트 저자들의 수집된 작품(''gsung 'bum'')이 있다.
2. 3. 근현대
19세기에는 동티베트 캄 지역 델게 왕국의 보호 아래, 종파를 초월하여 교리를 배우는 초종파 운동(리메 운동)이 전개되어 겔룩파의 공격에 저항했다. 잠양 켄체 왕포(1820년 - 1892년), 잠곤 콩트룰 로드로 타예(1813년 - 1899년), 초규르 데첸 림파(1829년 - 1870년) 등이 중심이 되어, 산일(散逸) 직전이었던 신구 탄트라 관련 문헌을 수집하여,『린첸 텔즈』60권과『담가크 주』18권 등의 대전집으로 정리했다. 특히『린첸 텔즈』에는 수백에 달하는 주요 테르마가 수록되어 있다.[33][34]미팜 잠양 갸초(1846년 - 1912년)는 잠양 켄체 왕포의 지시에 따라, 현교에 대해서는『중관장엄론주』,『량평석주』,『대승장엄경론주』등, 밀교에 대해서는『비밀장 탄트라석』(문셀 콜숨),『시간윤회 탄트라주』,『팔대 헤르카(카기에) 해설』및 미완성인『뉴크셈 콜숨』등 초종파적인 시각에 선 교재를 다수 저술했다. 이러한 교재들은 닝마파뿐만 아니라 사캬파·카규파의 학문 사찰에서도 교재로 채택되었다.
같은 시대에 암도 지역 고록 출신의 두죈 림파와 캄 지역 냐롱 출신의 소걀 레랍 림파[33][34] 등의 텔톤도 활약했다. 근현대 닝마파의 지도자는 다음과 같다.
이름 | 설명 |
---|---|
쿵링 린포체 | 1955년 감에 파견되었고, 1956년 티베트 자치구 준비위원회 위원이 되었다.[35] |
둔죈 린포체 | 닝마파의 일곱 번째 종파인 「둔죈 텔살」의 창시자 텔톤 둔죈 림파(1835년 - 1904년)의 환생자이며, 그 자신도 유명한 텔톤이다. 닝마파 육대 종파의 계보와 가르침을 모두 모아 1959년 인도로 망명하여, 외국인에게 처음으로 전통적인 티베트 밀교의 가르침을 공개했다. 『닝마 불교사』는 유럽과 미국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 1959년부터 1987년 사망할 때까지 닝마파의 지도자를 역임했고, 1975년부터 프랑스에 사찰을 건립하고 거주했다.[36] |
딩고 켄체 | 1988년부터 1991년 사망할 때까지 닝마파의 지도자였다. 1956년 티베트에서 부탄으로 망명했고, 부탄 왕비의 스승으로서 국사 대우를 받았다. 부탄에 닝마파의 가르침을 널리 퍼뜨리고 사찰을 건립했으며, 서구에 자주 체류하여 서구인 제자와 신도가 많다.[37] |
페놀 린포체 | 페유르 사원 주지. 딩고 켄체 린포체 사후, 종주(宗主)의 역할을 수행했다. 2009년 3월 입적했다.[38] |
민린 티첸 린포체 | 2003년부터 2008년 사망할 때까지 닝마파의 지도자였다. |
툴시크 린포체 | 딩고 켄체 린포체의 제자로 알려져 있으며, 2010년 3월 임명되어 2011년 9월 입적할 때까지 닝마파 지도자를 역임했다. |
타클룬 체툴 린포체 | 2012년부터 닝마파의 지도자를 역임하고 있다. |
닝마파는 티베트 불교의 다른 종파들과 구별되는 독특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현재, 닝마파 육대 사원은 족첸 사원, 카톡 사원, 페유르 사원, 셰첸 사원, 민돌링 사원, 돌제탁 사원이다.
족첸 사원은 1960년대의 문화대혁명으로 피해를 입었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중국 정부의 묵인 아래 복원이 시작되어, 2004년에는 메인 사원이 재건되었다. 2008년 현재 13대 족첸 7세 텐진 룬톡 니마가 사원장을 역임하고 있다.
카톡 사원은 몽골, 중국, 시킴, 네팔에도 분원을 가지고 있으며, 몇몇 환생한 툴쿠도 거주하고 있다.[39]
페유르 사원은 1959년의 티베트 폭동 당시 주지 페놀 린포체의 망명에 따라 남인도의 바이라쿠페(en)로 이전되었다. 페놀 린포체는 가끔 귀국하여 중국의 페유르 사원 재건에도 참여했으며, 딩고 켄체 린포체가 망명지에서 사망한 후 수년간 닝마파의 지도자(종주) 역할을 맡았다.[39]
셰첸 사원도 문화대혁명으로 파괴되었고, 망명한 화신라마인 셰첸 랍잠 린포체 7세가 네팔에 본산을 옮겼다. 중국의 셰첸 사원도 재건이 진행되고 있다.[40]
민돌링 사원은 문화대혁명으로 피해를 입고 인도에 재건되었다. 민돌링 사원의 주지 민린 티첸 린포체는 인도에 거주하고 있었다. 산남 지구에 남아 있는 민돌링 사원도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창고가 되었지만, 현재는 재건이 진행되고 있다.[41]
돌제탁 사원은 1959년에는 400명의 승려가 있었지만, 1960년대 문화대혁명으로 파괴되었고,[31] 인도에 재건되었다. 중국의 돌제탁 사원도 1985년부터 재건이 시작되었다.[31]
티베트 본토에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닝마파 사원도 있다. 카리스마를 가진 라마 주위에 자연스럽게 모여서 만들어진 것으로, 간즈 티베트족 자치주 바이위 현 부근의 아첸 갈, 라룽 갈 등이다.[42]
네팔의 주요 종교는 힌두교이지만, 불교도 존재한다. 자신이 힌두교도인지 불교도인지를 의식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 네팔은 석가모니의 출생지였던 만큼, 예로부터 불교가 존재하며, 밀교도 일찍부터 전래되었지만, 닝마파의 영향도 보인다. 티베트 폭동으로 인해, 1959년 전후부터 난민들과 함께 티베트 불교가 유입되었기 때문에, 네팔 불교는 최근에는 쇠퇴하는 경향이 있다.[44]
3. 특징
대용청(Dzogchen)(대원만)은 닝마파의 중심 수행법이자 견해이며, 이 종파에서는 최고의 수행으로 여겨진다.[4] 이는 마음의 본성에 대한 궁극적인 이해, 즉 리그파(rigpa)를 깨닫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용청은 다른 밀교 수행처럼 미세신체 수행이나 관상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마음의 본성을 이해하려 한다. 대용청 밀교에서는 관상 수행이 마음의 본성과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대용청보다 열등하다고 본다.[4]
대용청의 주요 특징은 일상적인 마음과 그 장애를 "꿰뚫는"(khregs chod) 수행을 통해 마음의 원초적인 본성, 즉 리그파(rigpa)에 도달하는 것이다. 리그파는 본래 청정함(ka dag)과 자발성(lhun grub)을 지니며, 공(空, shunyata)과 관련이 있다. 대용청 수행의 또 다른 형태는 "직접적인 접근"(thod rgal)으로, 환상이나 현상을 이용하여 자발성을 인식하려는 노력을 포함한다. 이는 숙련된 방편(우빠야(upaya))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4]
지그메 링파(Jigme Lingpa) (1730–1798)의 롱첸 닝틱(Longchen Nyingthig)("광대한 공간의 심오한 정수")은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되는 닝마 족첸(Dzogchen) 가르침 중 하나이다.[4]
닝마파는 불교 수행의 전체 과정을 아홉 가지 승차(야나)로 분류하는 독특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 체계는 소승, 대승, 금강승(밀교)을 모두 포괄한다.[10] 아홉 가지 승차는 다음과 같다:
닝마파는 신격 요가를 중요하게 여기며, 주요 본존(依怙, 이담)은 금강킬라(티베트어: ''Dorje Phurba'')와 금강헤루카(또는 ''비슈다 헤루카''; 티베트어: ''Yangdak Tratung'')이다. 금강헤루카는 팔 헤루카 중 세 번째이며, 차크라삼바라 밀교의 슈리 헤루카와 매우 흡사하다. 닝마 맥락의 세 주요 수호신은 에카자티, 라훌라 그리고 도르제 레그파(산스크리트어: ''Vajrasādhu'')이다.
3. 1. 구역(舊譯) 전통
닝마파는 티베트 불교 초기 전파 시기에 번역된 경전("구역")을 따르는 유일한 종파이다. 11세기 이후 새롭게 번역된 경전을 중심으로 발전한 사캬파, 카규파 등의 "신역"(新譯) 학파(살마파, 薩爾瑪派)와는 구별된다. 닝마파는 종파 조직이라기보다는 토번 시대 불교의 흐름을 계승하는 다양한 유파의 총칭이었다.
8세기부터 11세기까지 닝마파는 티베트에서 유일한 불교 형태였다.[3] 9~10세기에는 조첸(Dzogchen) "마음 계열"(셈데(Semde))로 분류될 새로운 유형의 경전이 등장했다. 이 경전들 중 일부는 인도 작품의 번역으로 제시되지만, 데이비드 저마노(David Germano)에 따르면 대부분은 티베트 원작이다.[4]
11세기 무렵, 서티베트 구게왕조의 보호 아래 번역관 린첸산포(རིན་ཆེན་བཟང་པོ)가 번역 활동을 펼쳤고, 서벵골 출신의 승려 아티샤(Atiśa)에 의해 카담파의 계율 부흥 운동이 일어났다. 인도 서벵골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한 "헤바주라(Hevajra)"와 "차크라삼바라(Cakrasamvara)" 등의 새로운 밀교가 티베트에 도입되면서 신역파가 성립되었다. 이 때문에 고대 왕조의 가신 가문에서 대대로 이어져 내려오던 고대 밀교의 전통을 따르는 불교도들이 이때 처음으로 구역구파(응가규르 닝마파, 舊譯舊派)라 불리게 되었다.
이후 닝마파는 주로 빠드마삼바바(Padmasambhava)의 가르침을 전하는 구역 경전류에 기반한 '닝마 카마(寧瑪迦瑪)'의 가르침과, 그의 25명의 제자들에 의해 매장되었다고 전해지는 교리인 '텔마'를 발굴하는 테르톤(伏藏者)들에 의해 발전했다.
12세기에는 팔대헤르카(八大嘿嚕卡)(bka' brgyad, 카기에, 팔대수호존)의 성취법 집대성인 "카기에 데셰 두파(Kagye Deshe Dupa)" 등 많은 텔마를 발굴한 응가닥 냐넬 니마 외셀(1124년 - 1192년)이 활약했고, 론솜 추키 삼포는 닝마파 교리 체계화를 시도했다. 간자 티베트족 자치주바이위 현 부근의 카탄파 데셰크에 의해 카톡사(卡妥寺)(呷妥寺, 1159년)가 건립되었다.[22]
13세기에는 구루 린포체와 그의 팔변화(구루 첸기에: 연화생대사 팔변화)를 주존으로 하는 교리 체계 "라마 산두"[23]를 발굴한 구루 초키 왕축(1212년 - 1270년)이 활약하여 닝마파 의례 양식이 확립되었다.
14세기에는 "바르도 토돌"을 포함한 "시토 곰파 란돌"을 발굴한 카르마 린파, "라마 곤두"를 발굴한 상기에 린파(1340년 - 1396년), 닝마파와 본교 양쪽 교리를 발굴한 돌제 린파(1346년 – 1405년), 북류 매장 교설(장텔: 북의 텔마) 창시자 리크진 고데무첸(1337년 - 1408년) 등이 활약했다. Longchenpabo(1308년 – 1363년)는 조첸을 중심으로 닝마파 교리를 하나의 이론 체계로 정리했다. 저서로는 '칠장(즈둔, 七藏)', '닝티크 야시(寧提克·亞西)', '응갈소 콜숨', '란돌 콜숨' 등이 있다.[24]
15세기에는 라트나린파(1403년 - 1476년)가 '고대 밀교 집성'(rNying ma rgyud 'bum)을 수집했다.[25][26]
3. 2. 테르마(Terma) 전통
파드마삼바바와 그의 제자들이 미래 세대를 위해 숨겨둔 가르침을 '테르마'라고 한다. 이러한 테르마는 닝마파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카규파와 본교에도 테르마와 관련된 관습이 있지만, 대부분의 티베트 불교 테르퇸(보물 발굴자)은 닝마파 승려였다. 테르마는 과거의 스승들, 특히 파드마삼바바와 예셰 초걀이 적절한 시기에 가르침이 유익할 수 있도록 숨겨둔 물건이나 가르침이다.[22]
테르마는 종종 바위나 동굴에서 물리적으로 발견되기도 하고, 테르퇸의 마음속에 직접 나타나는 '마음 테르마'일 수도 있다. 닝마파에는 이러한 테르마를 중심으로 한 특별한 계보가 티베트 전역에 확립되었다. 이로 인해 닝마파에서는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긴' 구전 전승과 '숨겨진 보물'의 '짧은' 전승, 두 가지 방식으로 가르침이 전해지게 되었다. 이러한 테르마를 처음 발굴한 사람들은 5대 테르퇸 왕과 8대 링파였다.[22]
테르마 전통은 인도에서 시작되었다. 예를 들어, 나가르주나는 부처 석가모니 시대 이후 나가들의 영역에 보관되어 있던 '반야바라밀타 경 10만 구절'의 마지막 부분을 재발견했다.[22]
닝마파 전통에 따르면, 테르퇸들은 종종 파드마삼바바의 25명의 주요 제자들의 화신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방대한 전승 계보 체계가 발전했고, 닝마파 경전은 시기에 맞춰 업데이트되었다. 테르마 가르침은 많은 불교 수행자들이 깨달음과 열반에 이르도록 이끌었다.[22]
테르마의 재발견은 최초의 테르퇸인 상예 라마(1000~1080)로부터 시작되었다. 중요한 테르퇸으로는 낭랄 님 오세르(1124~1192), 구루 초왕(1212~1270), 리진 고뎀(1307~1408), 페마 링파(1450~1521), 밍유르 도르제(1645~1667), 잠양 켄체 왕포(1820~1892), 오르갼 초큐르 링파(1829~1870) 등이 있다. 19세기에는 잠양 켄체, 잠곤 콩트룰, 초큐르 링파를 가리키는 켄 콩 초크 숨 등 유명한 테르퇸들이 있었다.[22]
닝마파의 교리는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로 이어지는 「스승과 제자의 계승」인 카마와, 발견된 테르마를 통해 새롭게 얻어지는 것, 두 가지로 구성된다.[22] 닝마파의 가르침에 따르면, 조사 파드마삼바바는 9세기에 이후 티베트인들을 위해 닝마파 가르침의 진수를 다양한 형태로 땅에 묻었다고 한다. 이렇게 묻힌 것이 테르마이며, 그것을 발굴하는 중요한 역할과 재능을 부여받은 승려나 화신 라마가 테르퇸이다.[22]
3. 3. 족첸(Dzogchen) 가르침
대용청(Dzogchen)(대원만)은 닝마파(Nyingma)의 중심이 되는 독특한 수행과 견해이며, 이 종파에서는 최고의 수행으로 여겨진다.[4] 이는 마음의 본성에 대한 궁극적인 이해로, 리그파(rigpa)로 알려져 있다. 대용청은 다른 밀교 형태의 미세신체 수행과 관상 없이 마음의 본성을 이해하려고 한다. 그리고 대용청 밀교는 관상 수행이 마음의 본성 자체와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대용청보다 열등하다고 말한다.[4]
대용청의 주요 특징은 일상적인 마음과 그 장애를 "꿰뚫는"(khregs chod) 수행을 통해 마음의 원초적인 본성 또는 리그파(rigpa)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것은 본래의 청정함(ka dag)과 자발성(lhun grub)을 의미하며, 공(空, shunyata)과 관련이 있다. 대용청 수행의 두 번째 형태는 "직접적인 접근"(thod rgal)으로 불리며, 환상이나 현상을 이용하여 자발성을 인식하려는 노력을 포함한다. 이것은 숙련된 방편(우빠야(upaya))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4]
9승의 정점에 위치하는 아티요가는 즉체견성(족첸)이라고도 불린다. 즉체견성은 “자연성취”(있는 그대로 완성되어 있는 것)를 강조하며, 명지(리그파, རིག་པ་)와 공성이 불이(不二)인 경지를 깨닫는 가르침이다.
오늘날 가장 널리 사용되는 닝마 족첸(Dzogchen) 가르침 중 하나는 지그메 링파(Jigme Lingpa) (1730–1798)의 롱첸 닝틱(Longchen Nyingthig)("광대한 공간의 심오한 정수")이다.[4]
3. 4. 아홉 가지 승차(야나)
닝마파는 불교 수행의 전체 경로를 아홉 가지 승차(야나)로 분류하는 독특한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이 체계는 소승, 대승, 금강승(밀교)을 모두 포함한다.[10] 아홉 가지 승차는 다음과 같다.
후기 학파에서는 내밀한 밀교 가르침을 ''최승요가 밀교''라고 하는데, 이는 닝마파 체계의 마하요가에 해당하며, 후기 학파의 마하무드라 가르침은 즉천 가르침과 유사한 결과로 이어진다고 한다. 처음 두 가지는 소승불교, 세 번째는 대승불교, 나머지 여섯 가지는 특히 밀교로 간주된다.[10]
두좀 지드랄 예셰 도르제는 여덟 가지 하위 승차가 지적으로 만들어지고 꾸며낸 것이라고 강조했다.
롱좀은 켁플이 지적한 바와 같이, 중관학과 같은 불교경전의 견해가 밀교의 견해보다 열등하다고 주장했다.
3. 5. 수행 체계
다른 티베트 불교 전통과 마찬가지로 닝마파는 후속 명상을 위한 마음의 준비를 돕는 다양한 형태의 응온드로(ngöndro), 즉 예비 수행을 가르친다. 여기에는 보리심(bodhicitta) 함양, 마음을 전환시키는 네 가지 사유, 그리고 바즈라사트바(Vajrasattva) 정화 수행이 포함된다.[4]
신격 요가는 닝마파의 특징이기도 하다. 닝마파 스승들이 가장 먼저 수행하는 본존(依怙, 이담)은 금강킬라(티베트어: ''Dorje Phurba'')와 금강헤루카(또는 ''비슈다 헤루카''; 티베트어: ''Yangdak Tratung'')이다. 금강헤루카는 팔 헤루카 중 세 번째이며, 차크라삼바라 밀교의 슈리 헤루카와 매우 흡사하다. 닝마 맥락의 세 주요 수호신은 에카자티, 라훌라 그리고 도르제 레그파(산스크리트어: ''Vajrasādhu'')라고 한다.
닝마파에서는 로종과 미세신체 수행법과 같은 트뢸코르 등의 다른 수행법도 가르친다.
닝마파 수행의 중심은 "비밀장 탄트라"와 그 주존인 "대환화금강"의 가르침에 더하여 "족첸"의 견해와 그 "구루요가"(상사요가)이다.
그러나 그 전 단계로서 고탄트라의 "팔토·투·돌"(티베트 사자의 책)의 실천법인 "시·토"(적정과 분노의 백존법)나 이담(수호존)으로서 "팔대헤르카" 체계의 수법이 있으며, "구르첸기예"(연화생대사 팔대변화법)나 "산발룬지"(연화생대사 십삼법) 등이 있다.
그것들을 완성으로 이끌기 위해 "전행"(응온두: 대례배·금강저법·만다라공양·구루요가의 네 부분으로 구성된 수법과 명상, "사가행"이라고도 표기)을 기초로, 사대종파 공통의 일과 경전이기도 한 "성묘길상진실명의경"의 독송과 그 경전 중의 "대환화송"(비밀장 탄트라의 요약)을 이해하고, 앞의 수법에 관계하는 무상요가탄트라에 기반하는 존격을 모은 제사법이 있다.
이상의 삼본존을 섬기는 "삼근본법"("삼본존법"이라고도 표기)가 있다.
롱첸 닝티크에서는 전행에 "추우"("시신법"으로 한역: 네 가지 보시의 행으로 구성되며 "악마 払い"로 번역하는 예도 있지만, 내용으로 보면 일본의 "시가키"에 상당한다)와 "포와"("전식"으로 한역)를 넣지만, "추우"는 시체파나 추파에서 전해진 것이며 "칸도·케갼"의 성명이 일반적이지만, 파드마산바바가 실제로 전한 인도 전래의 법은 아니며, "포와"는 다양한 변형의 법요 형식이 있으므로 각각 별행으로 여겨진다.
"삼근본법"에서는 "구루"로 파드마산바바를 중심으로 석가모니와 관음, 금강저, "데바"로 구루·타포(분노상의 연화생대사)나 마하카라(분노상의 대흑천), 팔대헤르카의 풀파금강, "다키니"로 신함카(사자면 공행모)나 예셰·초갼(파드마산바바의 직제자), 마하칼리(분노상의 길상천) 등을 섬겨 법요나 수법·명상 등을 행하는 경우가 많다.
4. 주요 경전
닝마파는 방대한 경전과 문헌을 보유하고 있으며, 크게 카마(구전 경전), 텔마(매장 경전), 탁난(청정현현)으로 분류된다.
- 카마(구전 경전): 구전으로 전승된 가르침으로, 닝마파에서는 두좀 림포체 등이 증보한 것을 가리킨다. 닝마파에서 중요시되는 경전으로는 비밀장 탄트라와 『길상비밀장속후속』 등이 있다. 비밀장 탄트라는 삼예 사원 건립 후 파드마삼바바가 제자들에게 전수한 것으로, 티베트 불교 밀교 가르침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 텔마(매장 경전): 파드마삼바바 등이 비밀로 한 가르침을 땅 속 등 다양한 장소에서 꺼내 해명한 것이다. 사텔(지중의 매장경)이라고도 한다.
- 탁난(청정현현): 파드마삼바바 등의 지신(지법신)이 명상 상태 등에서 테르톤 등에게 직접 전수하는 것이다. 곤텔(어진 마음의 매장경)이라고도 한다.
4. 1. 닝마 규붐(Nyingma Gyubum)
닝마파는 주로 마하요가, 아티요가(족첸)의 마음 계열(셈데)과 공간 계열(롱데) 경전으로 구성된 비밀전승 경전을 ''닝마 규붐''(고대 학파의 십만 탄트라, rnying ma rgyud ‘bumbo)이라는 별도의 집합으로 정리했다.[10] 일반적으로 규붐은 카마(bka' mabo)를 포함하고 있으며, 테르마(gter mabo)는 매우 적다. 아티요가의 세 번째 계열인 비밀 구전 가르침(멩가그데)는 대부분 테르마 경전이다.규붐의 여러 판본이 현존하지만, 전형적인 버전 중 하나는 1974년 뉴델리에서 딜고 껭첸 린포체가 출판한 36권의 티베트어 두루마리이다. 여기에는 다음이 포함된다.
권수 | 내용 |
---|---|
10권 | 아티 요가(족첸) |
3권 | 아누 요가 |
6권 | 마하요가의 탕트라 부분 |
13권 | 마하요가의 사다나 부분 |
1권 | 수호신 탕트라 |
3권 | 목록 및 역사적 배경 |
4. 2. 마하요가
마하요가(Mahāyoga) 전통의 핵심에는 '18대 탄트라'가 있으며, 이는 '5대 근본 탄트라', '5대 수행 탄트라', '5대 활동 탄트라', 그리고 '2대 보충 탄트라'로 분류된다. 이들은 함께 ''마야자라''(Māyājāla)로 알려져 있다. 구햐가르바 탕트라(Guhyagarbha Tantra)는 이들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 나머지 17개의 내용을 요약하고 있다.4. 3. 족첸 문헌
족첸 문헌은 일반적으로 다음 세 가지 범주로 나뉜다.[24]- '''셈데(Wylie: ''sems sde''; Skt: ''cittavarga''), "마음 계열"''': 9세기 이후의 초기 족첸 가르침을 포함한다. '깨달음의 전조'와 쿤제드 걀포(Sanskrit: ''Kulayarāja Tantra''; 대평등자) 탄트라와 같이 '마음' 탄트라 중 가장 중요한 경전이 여기에 속한다. 21개의 주요 탄트라가 있지만, 대평등자는 그중 5개를 포함하고 있으며, 다른 유사한 경전은 마음 부분의 다른 판본에 포함되어 있다.
- '''롱데(Wylie: ''klong sde''; Skt: ''abhyantaravarga''), "공간 계열"''': 11세기~14세기에 만들어졌다. 이 경전들은 공(空) 또는 광대함을 강조한다. 이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경전은 "모든 것을 포함하는 광대함의 사만타바드라 왕실 탄트라"(Sanskrit: Mahāvarntaprasaranirajatantranāma)이다.[24]
- '''멩가그데(Wylie: ''man ngag sde'', Skt: ''upadeshavarga''), "비밀 구전 지침 계열"''': 11세기~14세기에 만들어졌다. 17개의 탄트라를 포함하는 이 부분은 '카닥 트렉촙'(kadag trekchö, 원초적 순수성의 절단)과 '룬드럽 터갈'(lhündrub tögal, 자발적 현존의 직접적인 통과)이라는 두 가지 주요 수행 형태에 중점을 둔다.[24]
4. 4. 테르마(Terma)
닝마파 전통에 따르면, 밀교의 대성자인 파드마삼바바와 그의 주요 제자들은 랑다르마 왕 때 불교가 쇠퇴하는 시기를 견디고, 미래에 불교가 다시 부흥할 때를 대비하여 수백 권의 경전, 의례용품, 유물들을 비밀 장소에 숨겨 놓았다. 이러한 테르마(terma)들은 나중에 다시 발견되었다. 린첸 터조드는 오늘날 닝마파에게 가장 중요한 테르마 보물 모음집이다. 이 모음집은 19세기에 잠곤 콩트룰 로드로 타예가 잠양 켄체 왕포의 요청으로 티베트 전역에서 가장 중요한 수천 권의 테르마 경전을 모아 만든 것이다.'터마'(숨겨진 보물)의 출현은 닝마파 전통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카규파의 '터톤(보물 발굴자)'도 몇몇 있었고, 이러한 관행은 본교에도 만연해 있지만, 티베트 불교 터톤의 대다수는 닝마파 승려들이었다. 과거의 스승들, 특히 밀교의 시조 파드마삼바바와 예셰 초걀이 적절하고 길상스러운 시기에 나중에 터톤들이 발견하여 가르침이 유익할 수 있도록 물건과 가르침을 숨겨두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가르침은 종종 바위와 동굴에서 물리적으로 발견될 수도 있고, 터톤의 마음 흐름 안에 직접 나타나는 '마음 터마'일 수도 있다.
티베트 전역에 특별한 터마 계보가 확립되었다. 이 활동으로 특히 닝마파 전통 내에서 두 가지의 다르마 전승 방식이 발전했다. 스승으로부터 제자에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보를 통해 이루어지는 소위 '긴' 구전 전승과 '숨겨진 보물'의 '짧은' 전승이다. 이러한 터마를 가장 먼저 발굴한 사람들은 5대 터톤 왕과 8대 링파였다.
터마 전통은 인도에 그 기원이 있다. 예를 들어, 나가르주나는 부처 석가모니 시대 이후로 나가들의 영역에 보관되어 있던 '반야바라밀타 경 10만 구절'의 마지막 부분을 재발견했다.
닝마파 전통에 따르면, 터톤들은 종종 파드마삼바바의 25명의 주요 제자들의 마음 흐름의 화신이다. 시대를 거치면서 방대한 전승 계보 체계가 발전했다. 닝마파 경전은 시기가 적절할 때 업데이트되었다. 터마 가르침은 많은 불교 수행자들이 깨달음과 열반에 이르도록 인도했다.
터마의 재발견은 최초의 터톤인 상예 라마(1000~1080)로 시작되었다. 특히 중요한 터톤으로는 낭랄 님 오세르(1124~1192), 구루 초왕(1212~1270), 리진 고뎀(1307~1408), 페마 링파(1450~1521), 밍유르 도르제(1645~1667), 잠양 켄체 왕포(1820~1892), 오르갼 초큐르 링파(1829~1870) 등이 있다. 19세기에는 잠양 켄체, 잠곤 콩트룰, 초큐르 링파를 가리키는 켄 콩 초크 숨 등 가장 유명한 터톤들이 있었다.
5. 주요 인물 및 조직
19세기에는 동티베트 캄 지역 델게 왕국의 보호 아래, 종파를 초월하여 교리를 배우는 초종파 운동(리메 운동)이 전개되어 겔룩파의 공격에 저항했다. 이 운동은 잠양 켄체 왕포(1820년 - 1892년), 잠곤 콩트룰 로드로 타예(1813년 - 1899년), 초규르 데첸 림파(1829년 - 1870년) 등이 중심이 되어 진행되었다. 이들은 흩어질 뻔했던 신구 탄트라 관련 문헌을 수집하여, 『린첸 텔즈』 60권과 『담가크 주』 18권 등의 대전집으로 정리했다. 특히 『린첸 텔즈』에는 수백에 달하는 주요 텔마가 수록되어 있다.[33][34]
미팜 잠양 갸초(1846년 - 1912년)는 주로 잠양 켄체 왕포의 지시에 따라, 현교와 밀교에 대한 다양한 교재를 저술했다. 현교에 대해서는 『중관장엄론주』, 『량평석주』, 『대승장엄경론주』 등을, 밀교에 대해서는 『비밀장 탄트라석』(문셀 콜숨), 『시간윤회 탄트라주』, 『팔대 헤르카(카기에) 해설』 및 미완성인 『뉴크셈 콜숨』 등을 저술하여 초종파적인 시각을 제시했다. 이러한 교재들은 닝마파뿐만 아니라 사캬파·카규파의 학문 사찰에서도 교재로 채택되었다.
같은 시대에 암도 지역 고록 출신의 두죈 림파와 캄 지역 냐롱 출신의 소걀 레랍 림파 등 텔톤도 활약했다.
닝마파는 중앙집권적인 권위나 전역의 계층 구조가 없는 분권화된 조직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개별 사원 행정 결정은 라마 공동체와 고위 승가 구성원들이 함께 내리는 경우가 많다.
5. 1. 주요 인물
닝마파의 기원은 빠드마삼바바에서 찾을 수 있는데, 그는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지며, 석가모니 부처에 의해 그의 출현과 활동이 예언되었다고 믿어진다. 닝마파는 가랍 도르제와 예셰 촉얄을 기원으로 보기도 한다.닝마파는 (사만타바드라의 화신인) 금강계주와 다른 부처들을 그들의 많은 교리의 스승으로 본다. 사만타바드라의 지혜와 자비는 무수한 가르침을 자발적으로 발산하며, 모든 존재의 능력에 적합하고 "지식 보유자"(비디아다라)에게 맡기는데, 그 중 수장은 도르제 초랍이며, 그는 그것들을 금강저와 다키니 레기 왕모체에게 주고, 그들은 차례로 그것들을 인간 시디하들에게 전파한다. 이 전통의 첫 번째 인간 스승은 금강저의 환상을 본 가랍 도르제(55년생)라고 한다. 빠드마삼바바는 초기 인간 스승들 중 가장 유명하고 존경받는 인물이며, 그에 대한 많은 전설이 있어 역사와 신화를 구분하기 어렵다. 다른 초기 스승으로는 비말라미트라, 잠벨 셰 넨, 스리 심하, 지냐나수트라가 있다.
'터마'(숨겨진 보물)의 출현은 닝마파 전통에서 특히 중요하다. 과거의 스승들, 특히 파드마삼바바와 예셰 초걀이 적절한 시기에 터톤(보물 발굴자)들이 발견하여 가르침이 유익할 수 있도록 물건과 가르침을 숨겨두었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가르침은 종종 바위와 동굴에서 물리적으로 발견되거나, 터톤의 마음속에 직접 나타나는 '마음 터마'일 수도 있다.
닝마파 전통에 따르면, 터톤들은 종종 파드마삼바바의 25명의 주요 제자들의 화신이다. 터마 가르침은 많은 불교 수행자들이 깨달음에 이르도록 인도했다.
터마의 재발견은 최초의 터톤인 상예 라마(1000~1080)로 시작되었다. 특히 중요한 터톤으로는 낭랄 님 오세르(1124~1192), 구루 초왕(1212~1270), 리진 고뎀(1307~1408), 페마 링파(1450~1521), 밍유르 도르제(1645~1667), 잠양 켄체 왕포(1820~1892), 오르갼 초큐르 링파(1829~1870) 등이 있다. 19세기에는 켄 콩 초크 숨 등 유명한 터톤들이 있었다.
근현대 닝마파의 지도자는 다음과 같다.
- 쿵링 린포체: 1955년 감에 파견되었고, 1956년 티베트 자치구 준비위원회 위원이 되었다.[35]
- 둔죈 린포체 (약 1904년 – 1987년): 닝마파의 일곱 번째 종파인 「둔죈 텔살」의 창시자 텔톤 둔죈 림파(1835년 - 1904년)의 환생자.
- 딩고 켄체 (약 1910년 – 1991년): 1988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닝마파의 지도자였다.
- 페놀 린포체 (1932년 - 2009년, 재직 1991년 - 2003년): 페유르 사원 주지.
- 민린 티첸 린포체 (약 1930년 – 2008년): 2003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닝마파의 지도자였다.
- 툴시크 린포체 (1923년 - 2011년): 2010년 3월 임명되어 2011년 9월 입적할 때까지 역임했다.
- 타클룬 체툴 린포체 (1926년생): 2012년부터 닝마파의 지도자를 역임하고 있다.
닝마파의 교리에 따르면, 많은 텔톤(terton)들은 팟마산바바(Padmasambhava)의 25명의 주요 제자들의 화신이다.
최초로 나타난 텔톤은 상예 라마(1000년 - 1080년)이다. 텔마(terma)의 발견자로 유명한 이들은 5대 텔톤과 8대 린파이다.
이름 | 출생년도 | 사망년도 |
---|---|---|
냥랄 니다오셀 | 1124년 | 1192년 |
구루 추왕 | 1212년 | 1273년 |
돌제 린파 | 1346년 | 1405년 |
페마 린파 | 1403년 | 1479년 |
잠양 켄체 왕포 | 1820년 | 1892년 |
- 8대 린파
이름 | 출생년도 | 사망년도 |
---|---|---|
상예 린파 | 1340년 | 1396년 |
돌제 린파 | 1346년 | 1405년 |
린첸 린파 | ||
페마 린파 | 1445/50년 | 1521년 |
라트나 린파 | 1403년 | 1471/76년 |
쿵경 린파 | ||
돈가크 린파 | ||
텐니 린파 |
그 외 중요한 텔톤으로는 리그진 고뎀첸(1307년 - 1408년), 우꼐엔 초귈 린파(1829년 - 1870년) 등이 있다.
5. 2. 조직
닝마파는 전통적으로 중앙집권적인 권위나 닝마파 전역의 계층 구조가 없었다. 까르마 까규의 까르마파나 사캬의 사캬 트리진, 또는 겔룩파의 간덴 트리파와 같은 방식으로 단일한 "계보의 수장"이 존재한 적이 결코 없었다.중국의 티베트 침공 이후 티베트 망명이 있은 후, 닝마파는 일시적으로 종파의 수장을 두었다. 14대 달라이 라마는 1960년에 두좀 린포체를 준공식적인 지위로 임명했다.[12] 두좀 린포체는 1987년 서거할 때까지 망명 공동체를 안정시키고 티베트 불교 경전을 수집하는 노력을 이끌었다. 일시적인 닝마파 지도자직은 1960년부터 2018년까지 지속되었으며 대부분 행정적인 것이었지만, 이 역할을 수행한 린포체들은 가장 널리 존경받는 사람들 중에 속한다.
닝마파 임시 수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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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좀 지드랄 예셰 도르제 린포체 (약 1904년–1987년), 1960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재임. |
딜고 켄체 린포체 (약 1910년–1991년), 1987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재임. |
페놀 린포체 (1932년–2009년), 1991년부터 2003년 은퇴할 때까지 재임. |
민드롤링 트리첸 린포체 (약 1930년–2008년), 2003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재임. |
트룰시크 린포체 (1923년–2011년), 2010년부터 2011년 9월 2일 사망할 때까지 재임. 차트랄 린포체가 자리를 사퇴한 후 선출됨. |
타클룽 체트룰 린포체 (1926년–2015년), 2012년부터 사망할 때까지 재임. |
그 후, 내부 행정은 6개의 주요 닝마파 사원(카톡, 조첸, 셰첸, 민드롤링, 도르제 드락, 팔률)의 수장 라마들 사이에서 순환하기로 만장일치로 결정되었다. 대표들은 매년 열리는 닝마 몬람에서 3년 임기로 임명되었다.
닝마파 임시 수장 (순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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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 게체 린포체 (1954년–2018년), 2018년 1월 보드가야에서 열린 제29회 닝마 몬람에서 임명됨, 2018년 11월 사망할 때까지 재임. |
조첸 린포체 (1964년생), 인도 보드가야에서 열린 제30회 닝마 몬람에서 2019년 1월 15일에 임명됨. 건강 문제로 인해 린포체는 자리를 사퇴했다. |
최근 내부 행정이 변경되었다. 2020년 제31회 닝마 몬람에서 셰첸 랍잠 린포체에게 직책을 수락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린포체는 수락하지 않았고, "전통의 수장"을 계속 임명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했다. 그의 제안에 따라 주요 닝마파 사원 대표들은 "닝마 전통의 수장" 직책을 앞으로 선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대신, 전통의 복지를 돌볼 닝마 몬람 위원회 대표가 선출될 것이다.
따라서 닝마파는 분권화되어 있으며, 종종 개별 사원 행정 결정은 라마 공동체와 고위 승가 구성원들이 함께 내린다. 닝마파는 역사적으로 이러한 분권화와 광범위한 정치적 무관심으로 특징지어지고 구분된다. 그들은 '적색과 백색'의 이중 승가를 가지고 있다.[12] '적색 승가'는 일반적으로 사원과 비구니 사찰에 거주하는 계율을 받은 승려와 비구니로 구성되며; '백색 승가'는 서원을 지키는 응악파로 구성되며, 가정을 가질 수 있다.
6. 한국과의 관계
대한민국에서는 닝마파가 티베트 불교 종파 중에서는 비교적 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파드마삼바바의 가르침과 티베트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점차 주목받고 있다. 일부 한국 불교 수행자들은 닝마파의 가르침을 배우고 수행하기 위해 인도, 네팔 등지의 닝마파 사원을 방문하기도 한다. 한국의 불교 학자들은 닝마파의 역사, 철학, 수행 체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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